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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성경의 인물들 -다윗, 모세 등등

by 은총가득 2021. 12. 7.

다윗의 생애

기원전 1030-기원전 961
이스라엘 2대 왕이며, 기원전 1010년부터 기원전 970년까지 통치했다. 유다 지파이며, 아버지는 이새의 여덟번째로 막내이다. 목동이며, 음악가이며, 뛰어난 정치가이자 예언자이다. 다윗의 지은 시가 적지 않다. 다윗의 시중 가장 유명한 시는 시편23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위의 자손'이다.

 

다윗과 골리앗

2. 다윗의 생애


왕이 되기 전의 다윗

목자 다윗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양을 키우는 목동이었다. 사무엘이 사울을 대신할 왕을 세우러 왔을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다. 목자는그 당시도, 그 이후로도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목자들 역시 낮은 신분이다. 목자들은 양들과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잠을 제대로는 자는 곳도 없고, 움막의 한 구석에서 작은 방을 만들어 자는 것이 보통이다. 목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깨끗하지 않다. 거의 노숙자와 비슷한 상태로 일을 했다.

다위과 골리앗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 나갔을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발견한다. 엘라 골짜기에 이스라엘 군이 진을 치고있을 때 건너편에 있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나와 40일을 조롱한다. 골리앗을 가드 사람이요 키가 거의 250cm에 이르는 당신이었다. 다윗의 아버지는 이새는 전장에 나가있는 형들에게 다윗을 심부름 보낸다. 장자 엘리압, 둘째 아비나답, 셋째 삼미가 전쟁터에 있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이 키와 고함에 놀라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인 자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자신의 딸을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세금 면제 주겠다고 약속한다.(삼상 17:25) 하지만 아무도 나가지 못했다. 이 때 다윗이 나서서 골리앗을 죽이 겠다고 한다. 사울이 불러 주의를 준다. 저 사람은 어려서부터 용사였다고. 다윗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간다고 하자 자신의 갑옷을 벗어서 입힌다. 하지만 작은 소년에 불과했던 다윗은 장신의 사울 갑옷이 맞지 않아 벗어 버린다.

 

다윗은 조용히 시냇가로 가서 물매에 들어가 돌 다섯개를 골라 자신의 제구에 넣고 온다.(삼상 17:40) 골리앗은 앞에 방패 든 사람을 앞 세우고 나왔다. 다윗을 본 골리앗은 귀엽게 생긴 모습을 조롱한다. 그리고 그가 무기라고 가져올 물매와 막대기를 보고 나를 개로 여기느냐며 책망한다. 그는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한다.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린다. 이후 사울의 눈에 들어 왕궁에서 수금을 치는 자가 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 삼상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을 물매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춰 쓰러뜨린다. 골리앗이 쓰러지자 골리앗에게 달려가 골리앗이 가지고 있던 칼로 골리앗의 목을 자른다. 골리앗이 죽은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뿔뿔히 흩어진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다.

 


왕궁에서의 다윗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사울의 미움을 받게 된다. 요나단의 도움으로 피신하게 된다.

사울은 깜짝 놀라 다윗을 부른다. 다윗은 자신을 사울에게 소개한다. 그때 요나단이 다윗을 보고 다윗과 한 마음을 품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다윗의 마음이 요나단에게 크게 감동을 준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과 함께 하라고 하고 집으로 돌려 보내지 않는다. 사울은 다윗을 여러 전쟁에 보낸 듯하다.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자 그는 군대의 장으로 삼는다.(삼상 18:5) 하지만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한다. 그러자 사울이 듣고 불쾌하여 진노한다. 그는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다윗을 주목한다.

 

사울에게 악령이 들자 수금을 타고 있던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진다. 여호와는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함으로 사울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사울은 맏딸 메랍을 다윗에게 준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사울은 메랍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줘 버린다. 다행히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고 이것을 사울에게 알린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미갈을 준다는 빌미로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들의 표피 백개를 요구한다.(삼상 18:22-25) 다윗은 즐거이 결혼할 날이 차기 전 블레셋 백명이 아니 이백명을 가져온다.(18:27) 이일로 사울은 다윗을 더욱 두려워한다.

 

다윗에게 창을 던지는 사울

도피 생활하는 다윗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사울의 마음을 알고 다윗을 불러 소식을 알린다. 다시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나 다윗이 나가서 크게 승리한다. 악령이 사울에게 임하자 또 단창으로 다윗을 죽이려 한다. 다윗이 그밤에 도피한다. 사울은 자신의 부하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 다윗을 죽이려 한다. 미갈이 이 사실을 알고 다윗에게 전하고 다윗을 창으로 달아 내린다. 다윗의 침상에는 지푸라기로 사람모양으로 만들어 사울의 전령들을 속인다. 하지만 나중에 속은 줄 알게 되고 사울이 미갈을 야단친다.

다윗을 도망치게 하는 미갈

 

다윗이 라마 나욧으로 도망한다. 요나단은 다윗의 말을 듣고 아버지 사울을 찾아가 본심을 떠본다. 결국 사울이 다윗이 죽이려 하는 것을 확신한다. 화살 쏘기를 통해 다윗에게 얻은 정보를 알리고 다시 다윗을 만나 축복하며 보낸다.

 

놉의 제사장의 살육

다윗이 놉으로 도피하며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간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두려워하며 영접한다. 아히멜렉은 진설병의 떡을 다윗에게 주고 골리앗의 칼을 보자기에 싸서 준다. 그후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로에게 들어간다. 하지만 가드 사람들이 모함하자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한다. 결국 다윗은 다행히 쫓겨나 아둘람 굴로 도망친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온다.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고 칼을 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가 모두 죽인다. 에돔 사람 도엑이 모든 것을 낱낱이 고하고, 아무도 제사장들을 죽이려 하지 않자 사울에게 허락을 받고 자신이 직접 제사장들을 죽이고, 그의 가족들까지 살육한다.(삼상22:18-19)

 

그일라를 구원하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마당을 탈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격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윗에게 공격하도록 명한다.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다윗은 그일로 내려가 블레셋 사람을 공격하여 승리한다. 이때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에 에봇을가지고 도망쳐 온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 준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빠져 나간다.(삼상 23:13)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를 빠져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일라를 공격하기를 그친다.

 

다윗은 십 광야 수풀로 도주한다. 요단이 다윗을 찾아가 하나님께서 너(다윗)를 이스라엘의 왕이 될거라고 위로한다.그 때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거처를 고발한다. 다윗은 또 다시 도망한다.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다 엔게디 요새로 도피한다.(삼상 23:29)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다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기 위해 모은 삼천 명을 거느리고 들염소 바위로 향한다. 길가에 양이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간다. 이때 다윗이 굴 속에 있다 사울의 옷을 벤다. 다윗은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고 빠져 나갈 때까지 숨어 있는다.

 

[삼상 24:4-7]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사울이 나가 다윗은 뒤에서 사울에게 외쳐서 절을 하며 자신은 사울을 해할 기회가 있어도 해하지 않았음을 알린다. 사울은 다윗에게 울면서 너보다 의롭다 말하며 다시는 추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돌아간다.

 


성경인물 롯(Lot)

1. 롯에 대한 일반적인 개요

롯은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갈 때 조카인 롯을 데리고 함께 갔다. 애굽에서 올라온 후 아브라함과 결별한 후 소돔 성에 거하다. 후에 소돔이 멸망할 때 모든 재산을 잃고 홀몸으로 빠져나온다. 두 딸과 관계를 맺고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된다. 롯은 믿음은 있지만 세상을 버리지 못한 세속적 성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2. 롯의 생애

롯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1장 셈의 족보이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는다.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고향(우르)에서 죽는다. 하란의 아들인 롯은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아브람과 함께 지낸 듯 보인다. 어쩌면 롯은 어릴 때부터 아브람의 수하에서 아들처럼 자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여튼 데라는 가족들을 데리고 하란으로 이주한다. 하란에서 나홀은 정착하게 되고, 데라는 죽음을 맞이한다. 하란에 있을 때 아브람은 제2차 소명을 받은 듯하다. 모든 것을 정리해서 가나안으로 향한다. 이때 조카 롯도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온다. 정황상 롯은 적은 나이는 아닌듯하다. 아브람이 75세라면 롯은 적어도 20살은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나안이 기근이 들어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롯도 함께 내려간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올라올 때 함께 올라온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롯도 사래로 인해 아브람이 가축을 선물 받을 때 많은 가축을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니 아브람과 롯은 가축이 많아져 함께 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로인해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 서로 떨어져 지내자고 한다. 롯은 요단들을 선택하고 떠난다. 아브람은 그대로 헤브론 산지에 남는다. 요단을 향해 롯을 발길을 옮길 때 성경은 의미심장한 표현을 한다.

  •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악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
  •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싸우다


이 구절은 앞으로 롯의 운명을 예지한다. 롯은 요단들에서 지내다 장막을 옮겨 결국 ‘소돔까지’(창 13:12) 들어간다. 결국 소돔은 롯의 정신이자 마음 깊이 들어가 있는 갈망의 표지(標紙)인 셈이다. 그 후 하필 가나안 전쟁이 일어난다.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이 소돔의 연합군을 공격한 것이다. 그 일로 롯은 함께 포로로 끌려간다. 아브람으로 인해 롯을 구출된다. 하지만 롯은 아브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시 소돔으로 들어간다. 아브람은 소돔에서 나오지 못한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롯은 소돔에 들어가 결혼한 듯 보인다. 이때쯤 두 딸을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19장에서 딸들이 장성한 상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18장의 아브라함은 99세다. 그렇다면 14장에서 아브라함은 80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즉 2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19장에서 롯의 딸들은 성인이 될 수 있다. [롯의 아내는 아래에서 따로 다룬다]


14장에서 적어도 15년 이상 지나 아브라함이 99세 때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당한다. 그동안 롯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창세기 19장 소돔의 멸망 이야기로 넘어간다. 결국 소돔이 멸망할 때 두 천사가 롯을 찾아와 도망가라 명한다. 롯은 사위들에게도 가자고 하지만 농담으로 여기고 가지 않는다. 결국 롯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소돔을 빠져 나온다. 중간에 롯의 처는 뒤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된다. 산으로 도망친 롯의 가족은 두 딸이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성..하여 아이를 낳는다. 이들은 후에 모암과 암몬의 조상이 된다. 그렇게 롯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성경에서 사라진다.


소돔에서의 롯의 생활


소돔으로 돌아간 롯은 어떻게 살았을까? 소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쓴 것으로 보인다. 두 천사가 찾아올 때 롯이 나가서 소돔 사람들을 말릴 때 소돔 사람들은 롯을 향해 ‘이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창 19:9)라며 위협하기 때문이다. 롯은 최대한 소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돔 사람들은 결코 롯은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롯의 신앙은 어떤가?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답게 믿음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천사가 찾아왔을 때 아브라함처럼 성문에 앉아 있다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환대하려 했다. 이것은 롯이 소돔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드로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 베드로후서 2장 7절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하지만 롯은 신앙은 가졌지만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세상도 가지려 했다. 한 발은 하나님께, 한 발은 세상에 두었던 인물이었다. 결국 롯은 세상도 얻지 못하고, 믿음도 지키지 못한 실패자가 된 것이다. 결국 소돔이 멸망할 때 모은 모든 재산을 잃고 홀몸으로 도망쳐야 했다.

 

소돔에서 도망치는 롯과 두 딸


롯의 아내와 딸들


롯은 언제 결혼한 것일까? 필자기 보기에 롯은 아브람과 결별하고 소돔으로 옮겨 갈 때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롯의 아내는 소돔의 여자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소돔 사람인 롯의 처는 철저히 세속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소돔이 멸망할 때 소돔에 남겨진 자신의 재산과 모든 것들이 아까워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롯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주님은 세속적인 그녀를 이렇게 경고하신다.

  • 눅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인가?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주는 경고가 바로 롯의 처다. 버려질 세상에 미려는 두는 자들은 세상이 멸망할 때 함께 멸망할 것이라 경고하신다. 롯의 두 딸들 역시 지극히 세속적인 존재들이다. 그녀들은 소돔에서 도망쳐 나와 동굴에 거할 때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행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은 롯은 왜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너무나 염치가 없어서 그런 걸까?

 

결론: 너무나 세속적인 그리스도인

롯을 정의해 본다면 너무나 세족적인 그리스도인이라할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을 믿지만 아직 세상을 끊어내지 못한 상태로 한 발은아직 세상에, 한 발은 하나님께 두는 고통스러운 삶의 양태를 가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롯은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체 비운의 삶으로 막을 내립니다. 여호수아처럼 우상을 택하든지 하나님을 택하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인물 이삭


이삭은 구약의 인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백세 낳은 아들이다. 리브가와 결혼하여 야곱과 에서를 낳았다. 이삭의 구체적인 생애와 믿음을 알아보자.

 

1. 이삭의 간략한 생애


성경에 이삭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7장 19절이다. 창세기 17장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해이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모양으로 나타나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이삭의 출생을 알린다.


창세기 17장 1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출생한다. 25년 기다림 끝에 얻은 아들이며, 나이가 백세가 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이삭의 출생은 아브라함 자체보다는 사라가 불임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 이후 후처인 그두라를 얻어 다른 자녀들을 낳기 때문이다.


이후 이삭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것이다. 특히 사라에게 있어서 이삭은 거의 자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도한 이삭에 대한 집착은 후에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내게 된다. 이러한 사라가 이삭을 대하는 태도는 후에 이삭을 고집스러운 존재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삭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다. 물론 드리지 않고 숫양을 대신드리지만 당시 이삭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트라우마가 절대 작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라는 어떠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라를 죽음을 맞이하고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을 한다.


리브가도 불임이었다. 성경은 짤막한 한 구절로 끝나지만 그 기간이 무려 20년이다. 이삭은 40세에 결혼을 했고(창 25:20), 에서와 야곱을 낳은 대가 육십 세였다.(창 25:26) 이후 이사고가 야곱의 생애가 겹친다. 성경은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잠시 뒤로 미루고 이삭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로 속이는 사건을 소개한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했던 잘못과 거의 동일하다. 하여튼 성경은 이삭이 그 해 농사를 지어 백배를 얻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이삭이 판 우물을 메워 버린다.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다시 우물을 파고 다시 메우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판 우물은 메우지 않자 그곳 이름을 르호봇이라 한다. 이후 브엘세바로 가서 다시 우물을 파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한다.

 

 

야곱을 축복하는 이삭, 귀스타브 도레


이삭이 나이가 들어 장자인 에서를 축복하려고 사냥하여 음식을 만들어 오라 한다. 리브가가 그 고식을 듣고 야곱을 꼬듣겨 대신 들어가게 한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고 음성은 야곱이나 피부는 에서라 생각하여 축복한다. 나중에 에서가 오지만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야곱을 죽이려 한다. 리브가는 에서의 소리를 듣고 하란을 보내기로 작정한다. 결국 야곱은 이삭의 기도를 받고 하란으로 이동한다. 이후 이삭은 성경에서 죽음까지 사라진다. 하란에서 20년을 보낸 야곱은 가난으로 돌아온 후 에서와 화해한다. 하지만 이삭을 찾지 않고 세겜에 거하다 디나가 강간을 당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결국 그 일로 벧엘로 올라가고, 벧엘에서 에브랏(베들레헴)으로 오는 길에 라헬이 죽는다. 야곱은 이삭이 거하던 기럇아르바(헤브론)에 도착한다. 이삭은 18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2. 이삭의 믿음


이삭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사이를 잇는 가교이다. 창세기 안에서 이삭은 특별한 존재가로 부각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인내 가운데 얻은 아들이지만, 이삭 자체로는 특별히 강조할 것이 없다. 이삭은 아브라함을 닮은 듯 다르다.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다.

이삭이 믿음의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단적으로 리브가가 불임일 때 20년을 기도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했다.
히브리서 11장 20절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삭은 고집쟁이였다.

리브가는 태중에서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다.(창 25:23)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야곱이 에서에게 행한 것들을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삭은 리브가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해도 이삭은 장자인 에서가 좋았다. 그는 에서가 사냥해서 해오는 음식이 좋았던 것이다. 에서가 장자 권을 판 것도 알고, 리브가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이삭은 자신이 늙자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 한다. 여기서 리브기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야곱을 들여보낸 것이다.

 


야곱(Jacob)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이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개명되며 민족 이스라엘이 되는 터를 닦은 인물이다.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두 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후에 이스라엘의 기원이 되는 열두 지파의 열 두 아들을 낳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기 때문입니다. 야곱 이야기는 요셉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액자 형태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족장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마무리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를 야곱의 이야기에서 꺼내 따로 구분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것은 네 번째 족장 요셉에서 다루겠습니다. 이제 야곱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개요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이며, 앞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게될 열두 아들의 아버지다. 네 명의 아내가 있었으나 라헬 만을 자신의 본처로 생각했다. 그로 인해 본처의 큰 아들인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게 된다.

 

야곱의 생애


야곱의 출생

야곱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죽음 직후 시작합니다.(창 25)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와 결혼합니다.(창 25:20) 리브가는 나홀의 딸이며 오빠 라반이 있습니다. 라반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22장 20-24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홀의 아내 밀가가 자녀를 낳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은 우스, 부스 그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이들랍, 브두엘입니다. 브두엘게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탄생합니다. 성경은 라반에 대해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습니다. 라반은 아브라람이 종을 하란으로 보내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리브가를 만나면서 알려집니다.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창 24:29)

라반은 리브가에 장식된 보석들을 보고 종을 찾아 나섭니다. 종은 아브라함의 소식을 전하고 리브가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튿날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이삭이 기도합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낳은 때 이삭의 나이가 ‘육십 세’(창 25:26)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이십 년을 자녀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싸웠습니다. 둘은 일란성쌍둥이인데 야곱이 먼저 나오기 위해 에서의 뒷발꿈치를 잡습니다. 먼저 태어난 에서는 전신 털옷 같고 붉다 하여 ‘붉다’는 뜻의 ‘에서’라는 이름을 줍니다. 둘째인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 하여 ‘야곱’이라 짓습니다. 은어적으로 ‘발꿈치를 잡다’는 ‘사기뿐’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사기꾼인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이름대로 사기를 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장자권 탈취 사건

에서는 자라서 사냥꾼이 됩니다. 그는 들에 나가 짐승을 사냥하여 요리하는 것을 즐겼던 모양입니다. 후에 이삭이 에서의 고기 요리 때문에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 합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파 달라고 하자 야곱은 당돌하게 ‘형의 장자권을 팥죽과 바꾸자’고 말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에 마음이 없어서 ‘그러자’며 말하고 팥죽을 받아먹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첫 번째 사기인 에서의 장자권 탈취 사건입니다.(창 25)

 

 

[성경의 팥죽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렌즈콩, 렌틸콩을 말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가까워 온줄 알고 장자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서 잡아온 고기로 맛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삭은 이상하게 에서만 좋아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하여 잡아온 고기 요리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 리브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둘째 아들, 그러니까 막내를 불러 에서처럼 꾸미고 이삭에게 들어가라 말합니다. 처음에는 겁을 냈지만 그래도 축복을 받을 생각에 들어갑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야곱의 손에 들려 이삭에게 야곱을 들여보냅니다. 이삭은 목소리를 야곱인데 피부는 에서라며 축복을 해줍니다.(창 27)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아버지가 있다니. 참 말도 안 나오네요. 이삭은 육신의 눈이 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셨음을 알고도 장자인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리브가와 야곱의 간교함을 이용하여 이삭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인간은 악하고, 어리석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결국 축복을 빼앗긴 것을 안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을 우연히 듣게 된 리브가는 자신의 오빠 라반에게 야곱을 보냅니다. 이삭은 야곱이 떠나기 전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이십 년이란 세월을 하란에서 보내게 됩니다.

 

하란에서 이십 년


야곱을 피해 밧단아람-하란으로 도망가다 벧엘에서 밤을 맞이합니다. 돌을 베개삼아 잠을 자는데 꿈에서 사닥다리가 보이고,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사닥다리는 하늘에 닿았고, 사닥다리 끝에 하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 누워있는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며, 이곳에 돌아오기까지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돌을 기둥 삼아 기름을 붓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하고 다시 떠납니다. 벧엘의 원래 이름을 루스입니다. 루스는 히브리어로 아몬드(감복숭아, 살구)를 뜻하는 솨케드이고, 고대 셈어로 ‘루스’입니다. 즉 루스는 ‘아몬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 지역에 아몬드가 많이 재배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  


하란에 도착하자 양들에게 물을 먹이는 한 여인을 도와 줍니다.(창 29) 그 여인의 이름은 후에 결혼하게 될 야곱의 아내 라헬입니다. 한 달 동안 공짜로 입혀주고 먹여주다 일을 시킵니다. 라반은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소개시켜 주고 아내를 삼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출중한 외모와 눈매를 가진 라헬을 선택합니다. 7년 동안 열심히 일해 드디어 결혼에 이릅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닌 호박 같은 레아였습니다. 화가 난 야곱은 라반을 찾아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따지지만 라반은 태연하게 여기서는 다 이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라헬을 얻고 싶다면 다시 7년을 일하라고 말합니다.(창 29:27) 이렇게 하면 다시 칠 년을 채웁니다. 이때 두 딸의 여종 실바와 빌하는 주어 네 명의 아내를 갖게 됩니다. 이들을 통해 열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 디나를 얻게 됩니다. 무려 14년 동안 두 아내를 얻기 위해 야곱은 라반의 종이 되어 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요셉까지 낳은 시간이 단지 7년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의 추론을 통해 개략적인 시간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하단에 첨부된 [부록: 야곱의 열 두 아들을 낳은 시간]에서 확인 바랍니다. 막내인 베냐민은 하란이 아닌 가나안으로 돌아가 벧엘로 올라간 후에 에브랏(베들레헴) 길에서 태어납니다.(창 35:16-22)

 

14년 동안 라반에게 봉사한 야곱은 라반을 찾아가 이제는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창 30:25) 라반은 야곱이 돌아가면 야곱을 통해 들어왔던 복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야곱에게 품삯을 주며 일을 시킵니다. 야곱은 품삯을 주지 말고 라반의 양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어 그것들이 있으면 품삯을 대신해 달라고 한다. 양이나 염소는 점이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에 라반은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렇게하여 아롱진 것들을 골라내어 사흘 길을 띄어 분리시킵니다. 야곱은 라반의 양 떼를 치면서 신풍나무(플라타너스) 등의 나무를 임신한 양들 앞에 놓게 하여 새끼를 낳게 하니 점 있는 아롱진 새끼를 낳습니다. 이들은 모두 야곱의 것이 됩니다. 결국 야곱은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창 30:43)아지게 됩니다.

  • 이스라엘 열두아들과 열두 지파

야곱의 열두 아들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야곱


이것을 지켜본 라반과 아들들은 시기심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야곱의 자신들의 아버지의 재산을 탈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야곱에 의해 아버지의 재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근시안적인 생각을 합니다.

  • 창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그때 하나님은 꿈에 야곱에게 나타난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 31:13)고 명령합니다. 야곱은 라반과 아들들이 양털 깎을 간 사이 라반을 피해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소식을 듣고 뒷 쫓아온 라반은 야곱을 쫓아갑니다. 그러나 그 전날 하나님은 라반에게 야곱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라반은 야곱을 만나 야단을 치고 왜 드라빔을 훔쳐 가냐고 따집니다. 드라빔을 가진 자는 그 집의 모든 소유를 가질 권리를 획득하기 때문에 라헬이 훔쳐 간 것입니다. 드라빔을 찾지 못한 라반은 야곱과 서로 경계를 넘어오지 못하는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혹시 야곱이 가져갔을지 모를 드라빔의 효력을 차단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창세기 31:44-55 야곱과 라반의 언약
31: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31: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31: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31: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31: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31: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31: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31: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31: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31: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31: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31: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성경의 신들 드라빔

 


브니엘 사건

라반과 헤어진 야곱은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이제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접경 마하나임(뜻: 두 진영)에 접어들자 형 에서에게 사자를 먼저 보냅니다. 그들이 돌아와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답답해진 야곱은 얍복강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밤에 어떤 사람들이 야곱과 씨름하고 야곱은 그에게 복을 빕니다. 그 사람이 허벅지 관절을 쳐서 걷지 못하게 하지만 야곱은 복을 주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고 떠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이기다니 참으로 기이한 표현입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야곱은 그가 사람의 모습으로 온 하나님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결국 에서를 만나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화해를 합니다.

 

세겜에서의 디나 사건

에서와 화해한 야곱은 한껏 들떠 세겜 근처에 장막을 칩니다. 장막을 친 곳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땅이었는데 그곳을 백 크시타에 구입하고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겉으론 하나님을 높이는 듯하지만 거만하고 태만해진 이스라엘의 마음이 보입니다. 결국 디나가 세겜 성에 자주 드나들다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강간합니다. 디나는 한 번 우연히 찾아간 것이 아니가 습관적으로 세겜 성을 흠모했습니다. 시골 처녀가 도시의 화려한 모습에 넋이 나간 것

입니다. 유목민의 초라한 행색으로 살아가던 디나는 세겜이란 도시의 여성들을 보자 정신이 나간 것입니다.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 등 상상도 못 한 화려함에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디나는 야곱의 숨겨진 욕망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일로 디나의 오빠들은 분노하게 되고, 할례를 받으면 결혼 시켜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삼일 째 되는 날 야곱의 아들이 세겜 성에 들어가 세겜 사람들을 죽이고 방화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결국 야곱은 위기감을 느끼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야곱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 35)라고 말합니다.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세겜을 떠날 때 야곱의 가족들을 보면 세겜에 지내면서 얼마나 세속적으로 변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방 신상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벧엘에서 제사를드리고서야 하란으로 도망갈 때 약속했던 것을 그제야 지키게 됩니다. 그제야 성경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창 35:9)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제야 야곱을 다시 만나고 복을 주십니다.

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35: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35: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기근과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

 

벧엘에서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으로 내려 갑니다. 왜 그곳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가는 길에 라헬은 산통을 겪고 마지막 베냐민을 낳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라헬의 죽음은 야곱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오로지 라헬만을 자신의 아내로 생각했고,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만을 자신의 친아들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믿음의 족장이라 하더라도 야곱은 옹졸하고 치졸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야곱의 이러한 편협적인 자녀 사랑은 결국 요셉을 죽음으로 내몰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성경은 야곱의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요셉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와 뒤섞여 나갑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고 슬퍼하지만 마지막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나타납니다.(창 45) 야곱의 가족들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46)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고, 고센 땅에 머물게 됩니다. 노년이 되어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 대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대신하게 입양을 합니다. 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레위가 빠지고, 요셉의 두 아들이 추가되어 열두 지파가 만들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①르우벤 ②시므온 ③유다 ④단 ⑤납달리 ⑥갓 ⑦아셀 ⑧잇사갈 ⑨스블론 요셉(⑩에브라임 ⑪므낫세) ⑫베냐민입니다. 자녀들을 축복한 야곱은 애굽에서 눈을 감습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막벨라 굴에 묻습니다.(창 50) 창세기는 야곱의 죽음으로 사실 끝이 납니다. 야곱의 죽음 이후 요셉의 죽음까지 기록되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이제 요셉 이야기도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야곱의 믿음과 성격

야곱은 언제 참된 믿음을 가졌는가?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얍복가에서 브니엘 사건을 통해 변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전혀 아니다. 야곱은 벧엘 사건을 통해 새로운 믿음의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브니엘 사건은 야곱에 큰 사건이었지만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벧엘보다 앞서지 못한다. 잠깐 창세기 28장으로 돌아가 보자.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다음 이렇게 고백한다.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의 고백을 보면 고백이라기보다는 거래에 가깝다. 그럼에도 야곱은 이전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니엘 사건이 야곱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사건이라면 벧엘의 경험은 탄생과 각성의 시간이었다. 야곱의 믿음은 창세기 31장에서 도주를 계획하며 아내들을 불러 이야기할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야곱은 이때 지금까지 하나님께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 자신에게 주었다고 선언합니다. 즉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함을 신뢰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신앙이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야곱이 잔머리를 굴려 신풍나무를 임신한 양들 앞에 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31: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31: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31: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31: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31: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31: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편애와 불공평의 아버지

우리가 야곱을 생각하면서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은 야곱은 이삭의 고집에 맞먹을 만큼 편애가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삭도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리라는 계시를 들었음에도 끝까지 에서만을 고집했다. 장자라는 것과 에서가 만들어준 고기 요리 때문이다. 야곱은 그러한 편애로 인해 상처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그러한 편애에 편승하고 만다. 그는 오직 라헬만을 자신의 아내로 생각했고, 라헬의 자녀만을 자신의 자녀로 생각했다. 이것은 요셉에게만 긴 곳을 만들어준 것과 후에 요셉이 베냐민을 데려 오라고 할 때 마지막까지 내놓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다. 요셉의 형들은 야곱이 요셉을 유난히 사랑함을 보고 요셉을 미워하게 된다. 결국 요셉의 고통을 야곱이 만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장본인이 야곱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세기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세기 43장에서 야곱은 결국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베냐민을 내놓으며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라'말한다. 요셉까지 잃은 상태에서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베냐민까지 내주어야 하는 야곱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야곱의 마음을 다른 아들들도 알고 있었다.

 

창세기 43: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창세기 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베냐민을 도둑으로 말아 가두려 할때 유다가 나서서 자신을 베냐민 대신 잡아 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에서 유다는 아버지(야곱)와 베냐민의 생명이 하나로 묶여 있다고 말한다. 즉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얼마나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했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다의 증언은 위대한 것이다.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아버지에게 생명과 같은 베냐민을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려 한 것이다.

 

창세기 44: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창세기 44: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이유야 어떻든 야곱은 결코 이러한 편애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지만 야곱은 편협적이고 지극히 편애를 추구하는 속 좁은 인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야곱의 이러한 행위는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은혜를 더하려고 죄를 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는 죄다.

그럼에도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야곱은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물론 야곱은 비판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야곱의 모든 것이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야곱은 믿음의 조상이며, 연약한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랐던 족장이다. 자녀들을 축복하는 장면에서 이삭과 야곱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삭은 고집스럽게 에서를 편애한 반면 야곱은 기꺼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인다. 둘 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야곱은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사라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창세기 27: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창세기 48: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모세 Moses

 

 

모세는 신구약을 통털어서 가장 중요한 성경 인물의 한 명입니다. 유대인들의 성경 중의 성경으로 여기는 모세 오경의 저자인 동시에 구약의 율법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위대한 인물이며, 거의 신처럼 숭배 받는 존재입니다. 이곳에서는 모세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모세의 생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 출생 (B.C.1527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와 바로에게 학대를 받을 때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요게벳이며, 아버지는 아므람입니다. 요게벳은 아므람의 아내이지만 고모였습니다.(출 6:20) ‘아버지의 누이’라는 표현이 한국적 친족관계와 일치하는지는 확실한 수 없으나 친족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에게는 아론이란 형과 미리암이란 누나가 있었습니다.(대상 6:3) 레위 지파이며, 고핫 자손이었습니다.

 

모세는 태어나자 석 달 동안 숨겨져 길러집니다. 바로가 히브리인들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강에 던지라고 명했기 때문입니다.(출 1:22) 석 달이 지나자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의 부모는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넣고 나일 강에 흘려보냅니다. 누이인 미리암에 따라갑니다. 이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려 왔다가 모세를 발견합니다. 바로의 딸은 우는 아기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아기를 자신이 기르기로 합니다. 그녀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출 2:6)라고 말했으며, 아이가 히브리인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미리암이 바로의 딸에게 아이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소개해 준다며 자신의 엄마를 소개합니다. 그렇게 모세는 다시 엄마의 품에서 길러집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바로의 딸이 아이를 ‘물에서 건졌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입니다.(출 2:10)

 

 

 

2. 청년기

 

애굽에서의 시절은 극히 짧으며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 두 번에 걸쳐 애굽에서의 생활을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행 7:22)했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딸의 양자로서 애굽의 왕족들이 배워야할 것들을 모두 배웠을 것입니다. 최고의 학문과 점성술, 전쟁에 필요한 전술들을 배웠을 것입니다.

모세가 장서한 후에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의 고통을 봅니다. 모세가 그 전에 히브리인들의 고통을 모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흔이 되서야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하게 하여 민족들을 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애굽이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없음을 알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 속에 묻습니다. 이틑날 다시 히브리 인들에게 가니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모세는 잘못한 사람에게 왜 동포를 치느냐고 따지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출 2:14)

모세는 자신의 일이 탄로 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가 이 사실을 알고 모세를 죽이고자합니다. 그러자 결국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도망가게 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도망 간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고난을 받고자 그리스도를 위해 애굽의 보화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히 11:23-29]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결국 모세는 애굽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갑니다.(출 2:15) 그곳에서 일곱 딸을 둔 미디안의 제사장을 만나게 되고, 이드로는 모세에게 딸 중의 한 명인 십보라를 주어 결혼하게 합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나게 됩니다. 모세의 나이 80이 되었을 때에야 소명을 받게 됩니다. 애굽에서 40년, 광야에서의 40년을 보내게 됩니다. 80이란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거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소멸되어 가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3. 미디안 광야 생활 (B.C.1487~1447년)

미디안 광야 생활을 4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성경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하고 있습니다.(출 2:16-21) 모세는 이드로의 집에 머물며 십보라와 결혼했습니다. 게르솜과 엘레에셀을 낳습니다.(출 2:21,22) 성경은 광야에서의 생활을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곧바로 소명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이상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꺼지지 않고 계속하여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타고 사그러집니다. 이상하게 여긴 모세는 떨기나무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때 여호와가 모세를 부릅니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결코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광야에 있었던 탓일까요? 가지 않으려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화를 발합니다. 결국 모세는 애굽으로 향합니다.


출처 [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