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사사 삼손
❖ 땅을 분배 받았지만, 제대로 살지 못했던 지파
단 지파는 지중해 해변, 비옥한 땅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지중해변의 오래된 항구 중의 하나인 욥바 항구를 포함하고 있는 이 지역은 농사를 짓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지중해의 온화한 기후는 밀 농사를 짓기에 최고의 장소였고, 또 지중해성 기후의 과실 농사를 짓기에도 딱 좋은 지역이 단 지파의 땅입니다. 단 지파의 땅을 머릿 속에 굳이 그려본다면, 우리 나라의 곡창 지대인 호남 평야 정도를 떠올리면 되겠네요. 이 지역은 욥바 항구를 기반으로 삼아서 해상 무역을 하기도 좋았습니다. 욥바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레바논으로부터 보낸 백향목을 받은 항구이자, 선지자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배를 탔던 항구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 다. 이곳 항구의 역사는 이미 기원전 15세기에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3세(Thutmose III)가 이 항구를 정복하였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서 그 이전시대부터 쭉 항구로 사용되었을 겁니다. 해상 무역으로는 제격이지요. 단 지파의 땅은 해변을 따라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해변 길(Via Maris)이 지나는 지역이기에 육상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바다와 연계하여서 육상 무역을 원활하게 육성할 수 있는 상업의 중심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땅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는 거겠지요. 그래서인가요? 단 지파의 운명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단 지파가 받은 땅은 블레셋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지역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접하는 성서 지도에서는 블레셋의 다섯 도시와 그 주변 지역 만이 블레셋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혼동하기 쉽상인데, 그렇게 보아도 단 지파의 땅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들의 영역과 이웃하고 있는데에다가 지중해 해변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 그리스 이민자들의 도시들이 즐비하다는 것이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알려졌습니다. 이 그리스 이민자들을 흔히 ‘해양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블레셋’은 미케네 문명이 지중해 동편을 따라서 이주하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한 해양 민족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중해 해변을 따라서 농사 지을 만한 평지들은 거의 다 이 해양 민족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지역이었다 보아도 됩니다. 결국 단 지파는 분배받은 영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산간 지역과 붙어있는 구릉지대를 따라서 모여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도시가 바로 소라입니다.
❖ 나실인 삼손
임신하지 못했던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을 할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그녀에게 나타나서 약속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태어날 아이에게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가 나실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낼 것이라는 약속을 주었습니다.
나실인이 지켜야할 의무에 대해서는 민수기 6장에 나와 있습니다. 첫번째,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야합니다. 또 포도즙이 포도가 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온도가 높으면, 포도주가 되지 못하고 식초가 되어 버리는데, 포도 뿐 아니라,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식초가 되어 버린 음료들 조차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포도즙도 마시지 말아야합니다. 포도즙과 포도주와의 경계선이 불분명할 수 있으니 사전에 아예 포도즙도 마사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좀 지나칠 정도가 아닌가 싶은데, 그냥 아예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건포도이던 포도이던 아예 포도 자체를 먹지 말랍니다. 심지어는 씨나 껍질 마저도 말이지요(민 6:3-4). 두번째, 머리를 깍아서는 안됩니다(민 6:5). 왜 머리를 깍지 말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중세 유대교에서는 관심을 자기에게 두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세번째로, 사람의 시체 또는 동물의 사체에게 가까이 가서도 안됩니다(민 6:6). 죽은 동물들은 물론이려니와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누이가 죽었을 때에라도, 그들의 주검에 가까이가면 안됩니다. 정결하게 살아야하는 거지요.
나실인은 ‘따로 구별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실인은 특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 동안 나실인으로서의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일반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제사장처럼 엄격하게 정결의 예법을 지켜나가는 것이지요. 왜 나실인으로 서원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지 않기는 하지만, 마치 요즈음도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며칠을 작정하고 금식기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금식 기도를 하는 기간에 유흥을 즐기지는 않잖아요. 그와 같이 구약 성경의 시대에 특정기간을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살면서, 스스로를 정결하게 지켜나가는 기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가리켜 나실인이라 불렀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나실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유일하게 삼손 만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태어나자 마자 곧바로 나실인이 된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나는 기묘자라
임신하리라는 소식을 들은 마노아의 아내가 남편에게 쫓아가서 하나님의 사람이 준 약속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또 놀라고 기쁜 소식이어서 그 사람의 이름도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인지도 묻지 못했습니다. 마노아도 기뻤지만, 자기의 눈과 귀로 다시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노아가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해주십시오.”(삿 13:8).
주님께서 마노아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왔다는 아내의 말에 마노아는 기뻤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지난번에 아내에게 말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마노아에게 다시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새끼 염소를 한 마리 잡아 대접할 터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사람은 마노아에게, 기다리라면 기다릴 수는 있으나 음식은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마노아가 번제를 준비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 ‘여호와 사자’, ‘여호와의 천사’ 모두가 같은 말이고, 이들은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이미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설명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정확하게 자기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마노아와 그 아내의 대접이 자기가 받아야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것임을 알았던 거지요. 번제는 하나님이 받으셔야할 것이고, 자신은 이 메세지를 전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겠다는 거절은 이 시대에 스스로 왕이 되려는 사사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여호와의 사자의 등장으로 에둘러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과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들'(사사들)을 비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때,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만이라도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정말 아기가 태어난다면, 그에게 그 영광을 돌리고 싶다면서 말이지요. 하나님의 사람은 그런 마노아를 꾸짖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꾸짖음은 세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영광을 받아야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이 소식을 가지고 온 그의 사자에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사사들이 그랬습니다.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구원자이자,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사사로 부름받기는 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경배를 받아야하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기드온 이후 사사들은 자기들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섰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려고 하였습니다. 마치 이웃 나라의 왕들처럼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마노아와 그 아내를 찾아온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사 시대에 스스로 경배 받는 자리에 올라서려던 사사들을 에둘러 고발하고 있는 겁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는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에서 신들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소유한다는 것은 오늘 교인들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들의 이름을 알면 그 신을 소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신을 언제라도 필요에 따라서 불러내기도하고,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이용하는 것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처럼 하나님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던 사사 시대의 사람들의 단면을 이 이야기에 투영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번째, 신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다신론의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서 밤하늘에 별이 한 개 밖에 없다면, 굳이 그 별에 이름을 붙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라”고 하면, 누구나 바로 그 별을 봅니다. 그렇지만, 하늘에 별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그 별을 상대방에게 보려주려면, 그 별에 이름을 붙여야하는 것이지요. “새벽 하늘 반짝 반짝 빛나는 저 금성을 봐봐”라면서 말이지요. 그러니 신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이미 다른 어떤 신이 있고, 그 신과 구별되는 지금 내가 만나는 이 신을 구별해서 인식하기 위해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신이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시대에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마노아와 그 아내를 찾아온 하나님의 사람은 그래서 대답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내 이름은 기묘자”라고 번역을 해 놓아서, 하나님의 이름이 마치 ‘기묘자’인 것처럼 약간의 혼동이 생길 여지가 있는 번역을 해 놓았는데요. ‘기묘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저 ‘놀랍다’는 형용사일 뿐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우리말로 번역한 것과는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략 세가지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לָ֥מָּה זֶּ֖ה תִּשְׁאַ֣ל לִשְׁמִ֑י וְהוּא־פֶ֛לִאי׃ ס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삿 13:18)
첫번째는 잉태의 소식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아기를 허락하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존경을 받아야한다는 문맥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이름을 묻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부부를 향해서 “(왜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내 이름을 왜 묻느냐?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다더냐? 나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다니,) 정말 놀랍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영광을 받아야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마노아와 그 아내에 대한 꾸짖음인 것이지요.
둘째는 아직도 셀수 없이 많은 신들이 있다는 가나안과 주변 나라들의 사람들처럼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고 그 중에서 자기들에게 아기를 잉태하게 해주는 신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려는 의중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물어 본 것이라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 이름(하나님의 이름)을 왜 묻느냐? (아직도 그들을 신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들처럼 내 이름을 소유하면 내게서 더 많은 것들을 얻고 나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놀랍구나!”
셋째는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권위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것이라면, 이렇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내 이름(하나님의 이름)을 왜 묻는냐? 그 이름(내 이름)은 (네가 소유할 수 없다) 놀라울 뿐이다.”
❖ 삼손의 첫번째 여자: 그녀가 내 눈에 옳습니다
흔히들 ‘삼손’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리는 연관된 이름은 ‘들릴라’일 겁니다.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하지요. 하지만, 삼손에게 여인이 한 명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들릴라 이전에 이미 사랑했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블레셋 여인이 있었고, 사사가 된 후에도 기생을 쫓아 다녔습니다. 먼저 블레셋 땅 딤나에 살던 여인과 얽힌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 딤나에 갔습니다. 사사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역사라고 이미 이 책을 시작하면서 말했었는데요. 삼손의 시대에는 블레셋 사람들과 서로 오가면서 공생하는 것이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이었나 봅니다. 단 지파가 해야할 일은 블레셋과 전쟁을 해서 블레셋 땅,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단 지파가 거주할 땅이라고 유산으로 받은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소명이고, 단 지파가 마땅히 해야할 바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의 삼손은 그곳에서 한 여인과 사랑을 빠져서 그 블레셋 여자와 결혼까지 하겠다고 합니다!(삿14:2)
사실 이 때는 이스라엘 전체는 아닐 지라도, 적어도 블레셋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단 지파와 유다 지파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배를 받던 시대였습니다(삿 15:11). 그러니 단 지파 사람들이 감히 블레셋에 반대하거나, 항거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백보 양보해서 블레셋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치적으로야 압제 당하고 있는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블레셋과 교류를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실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한 약속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치 제사장처럼 정결하게 살겠다고 서원한 이가 블레셋 여자와 결혼을 한다니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삼손이 블레셋의 딤나로 가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삼손이 딤나에 내려갔다”(산 14:1)라고 말합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성경에서 오르고 내려가는 장면들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성경에서 어디 어디로 내려간다라는 표현이 나오면 불길한 사건의 징조로, 어디 어디로 올라간다라는 표현이 나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징조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삼손이 딤나로 내려가는 이야기는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태어났으나, 전혀 나실인 답지 않게 살아갔던 삼손이 인생의 저 밑바닥을 찍는 이야기의 서두로 제격입니다.
삼손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부모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여인이 이스라엘 공동체 중의 하나가 아니라 블레셋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삼손의 부모는 삼손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게 하겠노라고 약속한 마노아와 그 아내가 어떻게 정결하지 않은 이 결혼을 허락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합니다.”(삿14:3) 우리 말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만,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내 눈에 옳습니다.” “그녀가 내 눈에 좋아 보입니다”(히. 히 야쉬라 베에이나이 הִ֖יא יָשְׁרָ֥ה בְעֵינָֽי׃).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그 많은 표현들 가운데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의도적입니다. 그녀가 옳고 좋아 보인답니다. 그녀의 삶의 방식이 옳고 좋으며, 그녀가 섬기는 신이 옳고 좋고, 그녀와 어울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옳고 좋답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다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블레셋 사람이면, 그리고 그 블레셋의 삶의 방식이 이스라엘 하나님이 제정한 율법에 벗어난 것이라면 위험합니다. 이것은 말하나마나겠지요. 삼손의 자기 정체성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스라엘 공동체 중 단 지파의 일원이지만, 지금은 이 블레셋 여자가 맞답니다. 옳답니다. 좋아 보인답니다. 그 여자의 삶의 방식과 그 여자가 섬기는 신과 문화, 그 모든 것들이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옳다’ ‘좋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삼손의 눈’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의 눈'(히. 베에네이 아도나이 בְּעֵינֵ֣י יְהוָ֑ה)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을 행하였는가 그렇지 않은 가의 기준도 ‘하나님의 눈’이었습니다(삿 2:11; 3:7,12; 4:1; 6:1; 10:6; 13:1).
모든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여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의 길을 걷고, 자기의 눈에 보기에 좋은대로 따라갈 지라도, 하나님에게 민감하고, 그 율례를 지켜나가는 것에 예민해야하는 나실인 삼손은 그러면 안되는 거였어요. 그런데도 신앙적으로 그 누구보다 철저해야할 나실인 삼손마저 ‘자기의 눈에 좋아보이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사사기를 최종적으로 하나의 책으로 묶은 이는 이 가운데에도 일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이것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고백하기는 하지만,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삼손의 이야기에서 나실인이지만 나실인 답지 않은 삼손을 비판합니다. 이 실랄한 비판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 삼손이 사자를 죽이다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더니만,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가서 한번 만이라도 아들이 좋아하는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삼손과 그 부모가 함게 딤나를 내려가다가 딤나에 있는 어떤 포도원에 도착했는데, 어린 사자가 덤벼들었습니다. 아마 부모님이 어딘가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나,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딤나 근처 포도원까지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함께 따라갔으나, 이게 아니다 싶어서 그 둘은 그냥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손 혼자서 그 사자와 싸웠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어 죽였습니다. 그러나 마노아와 그 아내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주일 학교 때, 선생님이 재미있게 들려주시던 이 이야기는 삼손이 그 만큼 힘이 세고 용맹한 용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삼손이 힘이 세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이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삼손이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기를 일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가 바로 사자를 죽인 이야기이고, 그 뒤를 이어 나오는 이야기도 일관되게 삼손이 나실인의 의무를 저버린 예들입니다. 어린 사자를 죽였으니, 삼손은 나실인의 규례를 어긴 셈이 되는 거예요. 민 6:6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 뿐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있다가 죽은 동물의 사체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시체 또는 사체를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어린 사자를 찢어 죽였으니 자연스럽게 동물의 주검과 접촉한 사람이 되고, 그 과정에서 사자의 피와도 접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부정하기 때문에 하지 나실인이라면 하지 말아야하는 것들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규례를 깨뜨린 겁니다. 나실인은 레위인이나 제사장은 아니지만, 그에 해당하는 엄격한 정결이 요구되었습니다. 물론 블레셋 땅의 여인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도 나실인의 삶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인데, 게다가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금령을 어긴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사자를 죽인 것을 말하지 못한 겁니다(삿 14:6).
얼마 후, 결혼 계획을 마무리 짓고 딤나의 블레셋 여자를 신부로 데려가려고 삼손은 다시 한번 부모님과 함께 딤나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죽였던 사자의 주검에 벌떼가 있고, 그곳에 벌집을 지어 놓았는지 꿀도 있는 겁니다. 삼손이 그 꿀을 떠서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참 예의바른 것같지요.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삼손이 예의 바르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사자를 죽이며 나실인으로서 지켜야할 의무를 저버린 삼손은 다시 그 사자의 사체를 만진 셈이 됩니다. 동물의 사체를 만진 수준이 아니라, 그 사체에 집을 짓고 사는 벌들의 벌집에서 꿀까지 떠서는 자기도 먹고 심지어는 부모에게까지 주었습니다. 부정한 것과 접촉하는 모든 것들은 부정하다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입니다. 사자의 주검에서 떠낸 꿀이니, 이 꿀이 부정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규례를 어긴 것은 고사하고, 자기의 부모들까지 부정해 지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었던 거예요(삿 14:8-9). 그나마 그런 행동을 부모가 옳게 여기지 않을 것같다는 것은 인지했나 봅니다. 꿀을 드리면서도 죽은 사자의 몸에서 떠왔노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지요. 참 답답한 나실인입니다.
❖ 이상한 결혼식-잔치집에서 벌어진 일
결혼 잔치라고 하지만, 그리 보기 좋은 결혼은 아닙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남자, 그것도 이스라엘의 나실인과 블레셋 여자와의 결혼이라는 이상한 결혼식이었는데에다가, 이 결혼식을 성사시키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삼손이라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 풍속에 의하면, 결혼을 위한 배우자의 선정부터 결혼식의 모든 준비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진행이 됩니다. 그러나 삿 14장의 이야기에서 삼손의 부모님이 특별히 이 결혼을 위해서 한 일이 없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의도적으로 이것을 부각시켰습니다. 나실인인 삼손과 블레셋 여인이 만난 것으로부터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이스라엘의 전통과 맞지 않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거지요.
“그의 아버지는 사돈 될 사람의 집으로 갔다. 삼손은, 신랑들이 장가갈 때 하는 풍습을 따라서, 거기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보자, 젊은이 서른 명을 데려다가 그와 한 자리에 앉게 하였다.”(삿 14:10-11)
삿 14:10-11에서 말하는 ‘풍습’도 이스라엘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풍습에는 결혼식 잔치 기간동안 신랑에게 남자 서른 명을 친구 삼아 그 옆에 붙여 두는 전통이 없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블레셋의 풍습일 것입니다. 삼손은 마치 블레셋 사람처럼 행동하며, 블레셋의 전통과 문화를 따르고 있는 겁니다. ‘삼손의 눈’에는 블레셋의 것이 ‘좋아 보였고, 옳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이스라엘의 풍속이 아니라, 블레셋의 풍습을 쫓았을 거예요. 그것이 ‘좋아 보이고, 옳아 보이니까’ 요.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살아야하는 나실인의 삶과 어쩜 이렇게 정반대 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부분을 설명하는 사사기 연구자들 가운데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이 결혼식이 그리 편한 결혼식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블레셋의 풍습에서 신랑이 오면 그들에게 그 가문의 사람 서른명을 친구로 만들게 해서 잔치 기간 내내 신랑과 함께 있게 하는 풍습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성격과 그 본심을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잔치 기간 내내 포도주로 술이 취한채 자기 가슴 속에 담아 놓은 이야기라던가, 자기의 성장 배경이나, 이 결혼식을 대하는 신랑의 마음이 슬며시 드러나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온 신랑은 같은 블레셋 사람도 아니고, 이웃이기는 하나, 언제 적으로 돌변할 지 알 수 없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입장에도 이 결혼식 뒤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의 풍습에 따라서 삼손의 주변에 삼십 명의 남자들을 두어서 삼손이 가진 다른 뜻은 없는지 확인도 할겸, 또 생각지 못한 갑작스런 일이 발생할 경우, 삼손을 제지하거나, 싸울 수도 있는 일종의 안전 장치로 이 사람들을 배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 또한 매우 합리적인 설명입니다.
이 블레셋 사람들이 그리스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 배경에서,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적인 결혼 풍습이 두 개가 삿 14장에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방금 설명한 것과 같이 결혼식이 되면, 새롭게 공동체와 연관을 맺게 되는 새로운 구성원인 신랑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에게 삼십 명의 친구를 붙여 주는 것이고, 또 다른 풍속은 신랑의 주변에서 잔치 기간 내내 신부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으면서 수수께끼나 노래들을 서로 주고 받는 풍습입니다. 그렇다면, 삼손의 수수께끼는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이런 그리스의 문화적 정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하나님의 전통의 수호자인 나실인이 그리스 문화를 따르는 것을 탐탁하게 여길리가 없겠지요. 결국 이 결혼식은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애초부터 하면 안되는 결혼이었습니다.
❖ 블레셋과의 싸움: 안전을 위해서 형제를 버리다
삼손이 수수께끼의 답을 아내가 될 블레셋 여자에게 알려주었는데, 삼손은 아내가 된 그 여인이 답을 딤나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바람에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 만치,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블레셋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블레셋 안에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블레셋 도시 아스글론으로 가서 그곳 사람 삼십명을 죽이고, 노력하여 수수께끼의 정답을 낸 사람들에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주고는 분에 겨워 소라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삿 14:19-20).
얼마 후, 밀 거둘 때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딤나의 아내에게로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성질을 부리고, 결혼식 마지막 날을 망친 후, 혈기를 부리며 혼자서 집이 있는 소라로 돌아온 것이 미안할 만도 합니다. 그런데, 장인의 집에 찾아가보니,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화가 난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여우의 꼬리와 꼬리를 서로 매고 그 사이에 홰를 매달아서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여우를 내몰았습니다. 이미 베어 쌓아 놓은 곡식가리와 아직 베지 않은 곡식과 포도원과 올리브 농원까지 다 태워 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일년의 농사를 망쳐버린 대가로 삼손과 결혼시켰던 딤나에 사는 삼손의 장인과 삼손과 결혼식을 하였던 그 여인을 죽이고서 유다 사람들과 전쟁을 치루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제일 억울해할 사람들은 유다 지파의 사람들일 겁니다. 단 지파,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스리는 영토와 맞대고 살고 있는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정복전쟁의 전통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냥 손바닥 만하더라도 내 땅이 생겼으니, 그곳에서 만족하며 대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과 싸우려고 삼손이 숨어 들어온 유다 땅까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삼손의 불똥이 유다 지파에게 튈 새라 걱정했습니다. 그리고는 유다 땅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있는 삼손을 잡아다가 결박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넘겨줍니다(삿 15:9-13). 이것은 충격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그동안 지파들 사이의 연대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전쟁 이야기에서 슬며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에둘러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지파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간다는 수준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형제도 적들에게 내어주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브레이크 없이 계속 사사 시대의 역사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있는 겁니다.
❖ 삼손 사사가 되다
유다 지파 사람들은 레히에 진을 치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삼손을 넘겨주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려고 달려들 때,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였습니다. 나실인이었던 삼손이 사사가 되는 순간입니다. 부족하지만, 정말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들어서 블레셋과 싸우게 하시고, 단 지파가 이 전쟁으로 그동안 잊었던 가나안 정복의 소명을 새삼 깨닫기를 원하셨는지 모릅니다. 삼손을 묶고 있던 새 밧줄은 맥없이 끊어졌습니다. 마침 그곳에 나귀의 새 턱뼈가 있었습니다. 삼손은 그것을 집어 들고서는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입니다. 삼손은 대단한 영웅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전쟁의 승리를 이끈 것은 하나님이셨지만, 삼손은 그 승리를 여지없이 자기의 능력으로 한 것인양 포장을 하고, 자기 멋대로 전쟁을 했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매우 집약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판에서는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일 때, ‘나귀의 새 턱뼈’를 가지고 싸웠다고 묘사하고 있는데요. 새번역 성경에서는 ‘싱싱한 당나귀의 턱뼈’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싱싱한 나귀의 턱뼈'(히. 레히 하모르 테리야 לְחִֽי־חֲמ֖וֹר טְרִיָּ֑ה)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나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봅니다. 최근에 죽은 나귀의 사체의 턱뼈를 뽑아서 싸우는 삼손이 천 명을 죽이든, 만 명을 죽이든, 나실인의 규례를 깨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만진 셈이 됩니다. 싱싱한 턱뼈이니 피를 만질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제사장과 같이 엄격하게 정결법을 지켜야하는 나실인이 피를 만져 부정하게까지 되었네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삼손의 위대한 승리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서 지켜야할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승리라는 결과물만을 쫓아가는 삼손의 모습과 그 시대의 세태를 이 이야기 속에 담아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삼손은 그 승리가 자기 승리인 양, 스스로 취했습니다.
“나귀 턱뼈로 한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삿 15:16)
전쟁을 승리한 뒤에 부른 드보라의 노래나(삿 5), 홍해를 건너고 난 후에 이집트 군인들을 바다에 묻고 노래한 미리암의 노래나(출 15) 모두가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1대 1000의 전쟁에서 자기가 이겼노라고, 내가 죽였노라고 노래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영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전쟁이었는데, 정작 삼손은 전쟁 중에 한번도 그 입으로 하나님을 부르지도 찾지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죽은 나귀의 사체에서 뜯어 잡은 싱싱한 턱뼈를 들고서 자기의 용맹 스러움과 힘을 과시할 뿐이었습니다. 정작 하나님을 찾을 때는 언제였는지 아시나요? 전쟁이 다 끝나고 열심히 싸운후 너무 목이 말랐거든요. 그때 물 좀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게 부르짖었다고 합니다(삿 15:18).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사 마저도 자기의 업적과 승리가 마치 자기의 뛰어난 능력때문인 마냥 승리에 취해서 자기를 높이는 삼손의 모습을 고발하면서,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내 목이 마르다’는 자기 욕구를 채우기 원할 때만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삿 15:18-19).
❖ 삼손의 두번째 여자: 삼손의 여성 편력
그가 사사로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의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이십년이라는 숫자(삿 15:20)가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재앙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재앙이었습니다.
들릴라를 만나기 이전에도 사사가 된 삼손이 블레셋의 가사로 가서 그곳의 기생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가 짧막하게 나옵니다. 이야기 역시 삼손이 가사 성읍의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가지고서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올라갔다는 이유로 삼손이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구절로 이해하거나, 삼손이 블레셋의 저 깊숙한 가사 지역에까지 알려졌고, 또 그들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삼손은 그렇게 힘이 센 사람이고, 그 힘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힘이 두려워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기를 잠시 멈추었을 수도 있습니다. ‘삼손이 이룬 업적’이라는 측면으로 삼손의 이야기를 바라보면, 이 이야기 조차 영웅담입니다.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평가는 다릅니다. 가사로 내려가 기생과 하룻밤을 보내는 삼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앞뒤의 이야기가 모두 삼손과 연결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비추어 보아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개인의 욕망을 쫓는 삼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 짤막한 이야기를 비교적 긴 삼손의 여자들의 이야기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집어 넣은 것입니다. 본인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사사라는 책임 의식보다는 그저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 살아갔던 사람이 삼손이라는 것이지요. 자기의 눈에 좋아 보이는대로 말입니다.
❖ 삼손의 세번째 여자: 들릴라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살고 있었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소렉 골짜기는 삼손의 집이 있는 소라와 벧세메스 사이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들릴라가 어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소렉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고 말할 뿐, 그 가족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살던 소라도 소렉 골짜기에 있는 마을입니다. 소렉 골짜기는 동쪽으로는 예루살렘 못미처 유다 산지로 올라가고, 서쪽으로는 블레셋 평야로 내려가기 때문에 소렉 골짜기에 산다는 사실이 들릴라가 블레셋 사람이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삼손의 첫번째 여자와 이야기의 흐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들릴라를 블레셋 여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또 블레셋 사람들의 우두머리들이 올라와서 삼손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를 알아내 달라고 스파이 활동을 종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들릴라가 블레셋 여자였으리라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들릴라(히. 델릴라 דְּלִילָה)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셈족의 이름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이 아니예요. 그러니 혹 이스라엘 공동체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들릴라는 돈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그 여자를 찾아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그를 꾀어 그의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잡아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시오. 그러면 우리가 각각 당신에게 은 천백 세겔씩 주겠소.””(삿 16:5)
그냥 은 천백 세겔이 아니라, 각각 그만큼씩 주겠다고 하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이 몇명이나 들릴라를 찾아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블레셋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도시를 대표해서 한명씩 왔다는 가정 아래에서 적어도 오천 오백세겔은 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잘 알다시피, 삼손은 세번이나 들릴라를 속이지요. 처음에는 마르지 않은 새 줄 입곱 가닥으로 묶으면 자기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두번째는 한번도 쓰지 않은 새 밧줄로 결박하면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세번째는 들릴라가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사실을 말합니다. 머리카락이 잘리면 힘이 떠나간다고요. 그런데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삼손의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그의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고, 나실인의 의무가 머리카락을 깎지 않는 것이었으니, 그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고 한다면, 삼손의 힘의 원천인 ‘나실인이 지켜야할 의무’는 그것 만이 아니었지요. 삼손은 지금까지 나실인이 지켜야할 의무를 모두 어기면서 살았습니다. 나실인의 의무에 대해서 진지하게 지킬 의사가 있었나 의심스러웠던 사람이 삼손입니다. 다른 것은 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머리카락 하나만 지켜내면 힘이 나온다? 이것은 말이 안됩니다. 오히려 “나의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으면, 나는 힘을 잃고 약해져서, 여느 사람처럼 될 것이오”(삿 16:17)라는 말은 삼손이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적인 말입니다. 의도만 한다면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들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어길 수 있지만, 머리카락 만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삼손은 그렇게 드러나는 자기의 모습과 그 모습 때문에 얻게 되는 자기의 평판에 마음을 두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지적하는 것입니다. 삼손의 힘이 사라진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삼손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삿 16:20).
❖ 시각을 바꾸면 알게 되는 것들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떠난 삼손을 붙잡아 그에게 내린 형벌이 매우 상징적입니다. 삼손의 눈을 빼버린 거예요. 끔찍하지요.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삼손의 형벌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의 눈’으로 판단하며 여자들을 선택하고, 블레셋의 것을 좋고 옳게 보았던 삼손이 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사사 시대의 역사들을 정리하면서 알게된 가장 큰 문제는 사사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눈’이 보시기에는 옳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과 소견대로 살아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살던 시대도 여전히 그랬을지 모릅니다. 결국 이런 삼손과 이런 이스라엘 공동체를 회복 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눈을 빼버리는 것이지요. ‘자기의 눈’을 말입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삿 16:22). 그러나 삼손은 힘이 다시 세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삼손이 잡힌 이후로 머리카락이 조금 더 자란들, 지금까지 몇십년 동안 한번도 자르지 않은 그 머리카락의 길이만 해질까요.
삼손은 ‘자기 눈’이 뽑히자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힘이 머리카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신을 위해서 드리는 큰 제사의 날에 삼손은 사람들이 모인 그 건물을 버티는 기둥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거 아세요? 삼손의 일대기를 기록하면서 삼손이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은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자기 눈이 뽑혀 나갔을 때 말이지요.
“그 때에 삼손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였다. “주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두 눈을 뽑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단번에 원수를 갚게 하여 주십시오.””(삿 16:28)
기둥은 넘어갔고, 건물은 무너졌습니다. 그 안에 있었던 삼천명 가량의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기 눈이 뽑히고 나서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나실인이자 사사인 삼손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같지만 전혀 행복한 결말이 아닙니다. 전쟁터 같은 그곳에서 사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적들과 함께 죽은 사사가 마지막 사사 삼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단 지파는 더이상 그나마 살고 있는 그 좁은 땅에서 떠나야했으니 말입니다. 결국 ‘자기의 눈’을 따라서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던 삼손과 이스라엘 공동체 중의 단 지파는 유일하게 땅을 잃어버린 지파가 되었습니다. 소명을 잃어버린 사람은 받은 모든 은혜를 함께 잃어버린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야기합니다.
사사기 [12] 미가의 집에서 생긴 일
미가의 집에서 생긴 일
❖ 사사기를 감싸는 보따리의 뒷 부분
처음에도 말했던 것처럼 사사기라는 보따리의 내용물이 사사들의 이야기라면, 이제는 사사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는 보따리로 다시 나옵니다. 17장부터는 이제까지 말했던 사사들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묶어냅니다. 사사기 3장부터 16장까지의 사사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지도자들이 점점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오면서 브레이크 없이 계속 바닥으로 가속도를 내며 내려가는 형세였습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으셨으면 성경의 그 모든 사사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이름 없는 개인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시고 부르심으로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사사의 삶이 바뀌었고, 그 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사사들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사 기드온 이후로 사사들의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사가 왕이 되려고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사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사결정의 최고의 자리에 올라 권력을 맛보자 더 큰 권력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재산을 축적하게 되었고, 그 위치를 이용해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부(富)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자녀를 통해 그 권력과 부를 대물림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독점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종교의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오르려고 욕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탐욕으로 왕이 되려고 하였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었으나, 지도자의 자리에서 맛본 권력이 마음 속에 있던 탐욕을 부추겼고, 결국에는 자기 힘으로 왕이 되려던 사사들, 그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려던 사사들의 역사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사사기 3장부터 16장까지의 사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치, 군사, 경제의 지도자 뿐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종교 지도자들의 삶도 함께 무너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눈에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은 사사들의 타락 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요즈음 시쳇말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역사에서 목격한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은 이스라엘 공동체 타락의 ‘끝판 왕’이었습니다. 이런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는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의 양태마저도 바꾸었습니다. 자기들의 부를 축적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했던 종교 지도자들처럼,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을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 마음대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
에브라임 산간지방에 미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미가의 집은 매우 부유했던 가정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집에 은 천백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야기에 미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미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나 봅니다. 범인을 잡을 길 없는 미가의 어머니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그 도둑을 저주했습니다. 이 저주를 미가가 들었습니다. 저주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 저주가 꽤나 무서웠었나 봐요. 저주의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정말 그 일이 자기에게 벌어질까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는 어머니에게 말하였습니다.
“누군가가 은돈 천백 냥을 훔쳐 갔을 때에, 어머니는 그 훔친 사람을 저주하셨습니다. 나도 이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은돈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것을 가져 갔습니다.”(삿 17:2)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지요. 돈을 잃어버려서 분에 못이길 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저주를 말하다가도, 정작 그 저주가 내 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그 저주가 복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재빨리 저주의 말을 거두어 들입니다.
“얘야, 주님께서 너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삿 17:2)
그러나, 이 대화를 단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만 보기에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굳이 왜 이 이야기로 종교의 타락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시작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와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잘 보면 역사가의 의도를 조금 엿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 습관에서 들먹이는 신의 이름 중에 하나이거나, 문화일 뿐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또하나의 사회 현상은 이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려고 하였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의 욕구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던 시대에는 누군가가 내게 경제적인 손실을 입히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었고, 또 그 누군가가 나와 관계된 인물이라면 언제라도 내가 쏟아 놓았던 저주를 하나님께서 복으로 바꾸어 주길 요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들인 사사들도 그랬는데, 그 백성들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미가가 훔쳐갔던 어머니의 돈 은 천 백을 다시 돌려주니, 미가의 어머니가 일종의 액땜을 합니다. 아들인 미가가 저주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요량으로 그 돈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받고 마음을 풀라는 이야기이지요. 여기까지 읽다보면 이 미가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라는 말인가?’하는 마음에서 말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본 사사 시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입니다(잠 17:8).
거기에다가 한술 더 뜹니다. 그 은돈으로 신상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만든 신상을 히브리어 성경에는 ‘페셀’ פֶּסֶל 과 ‘마쎄카’ מַסֵּכָה 라고 합니다. 십계명에서 만들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두번째 계명에서 말씀하신 형상이 ‘페셀’입니다. 그리고 시내산 아래에서 만든 황금 송아지가 ‘마쎄카’입니다.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금령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의 형상을 소유하는 자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면 안된다고 명령하였습니다. 사사들의 시대에 이미 이 십계명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시대에 이미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여호와 앞에 두지 말라”(출 20:3; 신 5:7)라는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 마저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과 삶에서 지워진지 오래이구요. 결국 미가의 어머니가 마음대로 저주를 복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신상을 부어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내 마음의 탐욕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사사 시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는 거예요.
❖ 재력가의 마음대로 하나님을 부리는 시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미 ‘돈을 가진 자가 사회와 하나님을 움직이는 시대’가 되어 버린 사사 시대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앞서 미가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돈이 은 천백이라고 했습니다.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신당에 제사장을 고용하는데, 그 제사장의 일년 연봉이 은 열이었습니다. 그냥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그 제사장의 110년치 연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엄청난 재력가에게는 개인 전용 ‘하나님의 집’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워줄 여호와 하나님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서는 그 신상이 머물 집을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신당’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만, 아마 이 번역은 성경을 읽는 교인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단어를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집'(히. 베트 엘로힘 בֵּית אֱלֹהִים)이라고 써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하는 장소가 ‘하나님의 집’이며, 성막과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삿 18:31). 그러나 그 집에 하나님을 가두고, 그 집에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하나님을 개인이 소유하면서, 내가 원하는대로 내 삶을 윤택하게 해줄 하나님을 기대할 때, 그 하나님의 형상은 우상이되고, 그 ‘하나님의 집’은 ‘우상의 집’, ‘우상 숭배의 소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소굴에는 격에 맞추기 위해서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제사장이 없었나 봅니다. 아니, 그 마을에 제사장이 있었던 들, 제사장이 한 개인의 집에 고용되어서 고용주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아니었을테니(이쯤 되면, 제발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미가는 개인 맞춤형(?) 제사장을 세워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제사장이 입을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빔도 만들었네요!(삿 17:5) 이 정도 되면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 놓고서는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겨 놓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두고서는, 그 하나님과 함께 드라빔을 두는 장소가 사사 시대의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미 이런 장소가 되어 버렸는데, 그 곳에 제사장을 세워서 아침 저녁으로 제의를 드린들 이미 그 제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닙니다.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집’도 만들어 놓았고, 하나님의 형상도 만들었고, 제사장이 입을 에봇도 만들어 놓았지만, 이것을 입고 미가 집안의 번영을 위한 기복의 제의를 드려줄 제사장이 없자,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레위인 가운데에도 아론의 아들들만 될 수 있는 제사장의 자리를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는 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스스로 차지한 것입니다. 어차피 그 ‘하나님의 집’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아니고, 그 신상이 하나님도 아니니, 제사장을 누군 세운들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이것이 사사들이 살던 시대입니다. 이정도면,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닥의 인생, 바닥의 신앙을 살던 사람들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 청년?
유다 지파에 속한 유다 땅 베들레헴에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자기가 살던 베들레헴을 떠나서 있을 곳을 찾다가, 에브라임 산간지방까지 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습니다(삿 17:7).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절이지만,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레위 청년의 출신지를 굳이 밝혀 주면서 레위 사람들을 넌지시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파 가운데에서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처럼 커다란 덩어리의 땅을 분배 받지 못한 지파입니다. 대신에 그들에게 돌아온 몫은 마흔 여덟개의 성읍과 그 주변의 땅입니다(수 21). 레위 사람들이 받은 성읍은 매우 독특해서 한 장소에 모여 있지 않고, 각 지파의 땅에 몇개씩 성읍이 할당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골고루 성읍을 흩어 놓은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제사의 법을 따르자면, 피와 기름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를 땅에 함부로 흘리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기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을 죽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곳에 가서 제사장의 인도 아래에서 죽여야 합니다. 이 살생이 죽이는 동물을 온당하지 않은 않은 이유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육류 섭취는 불법적인 살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거든요. 이렇게 사람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물을 죽일 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그리고 하나님께 그 죽임의 의미를 먼저 알리는 것이 화목제사입니다.
레위인 제사장들이 어느 땅 한곳에 모여산다면, 그 땅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파의 사람들은 고기 한번 먹겠다고 온 가족이 양을 데리고 며칠 길을 와야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곳곳에 레위인들의 성읍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제단을 만들고 그 지파의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의 제단에서 먼저 화목제사를 드리고 육류를 섭취하거나, 제의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레위인들의 도시 목록에 베들레헴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사는 레위 사람인데, 살 곳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삿 17:9)라는 대답에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숨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레위인들 가운데에서도 아론의 직계 중에서 맏아들 계열이 아니었다면, 레위인들은 풍요롭지 않았습니다. 레위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 영역에서의 권력이 꼭 경제적인 부요함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레위기에서 정한 제사의 법률들 가운데에서 제사를 드린 후,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소제와 화목제 뿐이었습니다(레 1,2,6,7).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동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그 제사 자체가 많은 양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예요. 그리고 화목제는 가슴살과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의 몫으로 주는데, 얼마나 많은 화목제사가 드려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대 사회는 육식 사회가 아니라, 빵과 유제품이 주식인 사회였기 때문에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제사장들을 먹여 살릴 만한 양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제사는 한 가정이 함께 드립니다.
한 가정에 남자 10명이 있다손 치더라도 제사는 한 마리를 드립니다. 자발적으로 두 마리, 세 마리를 드릴 수는 있지만, 원칙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인구의 수가 늘어나면 분명히 제사의 수도 늘어나겠지만,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레위인들의 인구 수는 늘어나는 제사의 수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레위인들이 제사를 통해서 받은 것 만으로는 풍요로울 수 없습니다. 레위인이 받은 도시 주변의 땅도 받았기에 레위인들이 알아서 그 땅을 개간해서 먹고 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레위인의 땅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왜 레위인들의 도시도 아닌 베들레헴에 레위인 젊은이가 살고 있었는지 슬쩍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매우 불경스러운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이것 만큼 이 상황을 잘 묘사해주는 단어가 없기에 사용합니다. “시장개척!”
유다 땅의 아홉개 성에는 이제 레위인들이 차고 넘치거든요. 그곳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고기 몇조각 빵 몇개를 얻기도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레위인이 거주하는 도시가 아니어서 제단이 없는 베들레헴으로 가서 제단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의 입장에서 너무 좋지요. 이제는 더이상 화목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까운 아나돗이나 헤브론과 같은 도시를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서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레위인들의 필요와 베들레헴 사람의 편의가 서로 맞아 떨어지면 그만이었던 시대가 사사들의 시대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의 삶도 만만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의 소식이 레위인들 사이에 돌자 또다른 레위인들이 베들레헴에 모여들었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베들레헴의 레위인 인구가 늘어났고, 그 가운데에서 시장(?)에서 도태되었던지, 아니면 더이상 큰 부를 그곳에서 누릴 수 없어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서 다시 길을 떠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곳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온 것이지요. 에브라임 산지가 목적지도 아니었습니다. 살 곳을 찾아, 새로운 시장을 찾아 정처없이 떠나는 길이었으니까요.
❖ 경제 권력과 종교 권력의 콜라보
미가의 제안은 매우 솔깃했습니다. 제사장을 시켜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봉도 어김없이 주겠답니다. 그리고 한 집안의 아버지로 대우하겠답니다(삿 17:10-13). 레위인 가운데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론의 아들들로 율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청년이 아론 계열의 레위인인지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미가’ 본인이 그 젊은이를 제사장으로 임명해 주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매우 불편합니다. 율법에서는 제사를 드린 후,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몫이 일정치 않습니다. 레위인으로 살면서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레위인들의 수가 점점 많아져서 제사를 드리고 나서도 나의 몫으로 들어오는 것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가는 일정한 연봉을 제시 한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올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죠. 미가의 이 제안은 레위인의 경제사정을 고려해서 배려해 준 자비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제사장을 사유화하고, 개인 비서와 같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편하게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편하게 ‘이용’하겠다는 너무나 불순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매우 불신앙적인 제안입니다. 미가와 미가의 집에 안주하겠다는 이 레위인 청년에 대한 분노가, “그 젊은 레위 사람은 미가와 함께 살기로 하고, 미가의 친아들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다”(삿 17:11)에 다다르면, “가족같이 함께 일하실 분 구함”이라는 아르바이트 구하는 광고를 보는 것같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마음은 얼마나 더 했겠습니까!
사족같은 말이지만,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미가가 이 레위 청년을 아들같이 대했다는 것도 미가가 제사장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 이 레위인 청년을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삼을 때에 했던 부탁은 “우리 집에 살면서, 어른이 되어 주시고, 제사장이 되어 주십시오.”(삿 17:10)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통해서 말씀을 전달하시니, 나이와 관계없이 제사장의 말과 하나님의 뜻을 어른 섬기듯 따르고 섬기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고용하고 나서는 아들처럼 대했다는 것은 이제 이 제사장이 하나님을 말을 전하는 집안의 어른이 아니라, 아버지 미가의 말을 잘 따르고 순종하며 미가의 의중을 하나님에게 전하고, 아버지 미가가 흡족하도록 살아가는 아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보았던 이 시대, 그리고 반복해서 고발하는 이 시대는 권력을 가지고, 돈을 가진 이들이 자기들을 위한 전속 제사장을 보유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빌미삼아 내가 가지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들을 빌던 시대였고,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였습니다. 사사들이나, 종교의 지도자들인 레위인들이나, 사회의 지도자라 불릴 만큼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어느 누구하나 예외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모두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사회의 어둡고 추한 시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사사기 17장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 단 지파의 이주(1)-정탐꾼과 레위 청년의 만남
삼손의 죽음이 해피엔딩이 아니었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삼손 이전까지 사사들 가운데에서 긴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사들은 일시적으로나마 그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사 중에서 적들과의 대치 상황에서 죽은 사사도 처음이자 마지막 이려니와, 삼손이 죽은 후에 단 지파는 그나마 살고 있던 그 땅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되어서 살 곳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번역을 하나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삿 18:1인데요. “그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때까지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였음이라”라고 우리 말 성경 개역개정판은 번역했습니다. 새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서 아직 그들이 유산으로 받을 땅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자리잡고 살 땅을 찾고 있었다”라는 번역은 마치 아직까지 단 지파가 땅을 분배 받지 못한 상태라고 오해하게 만듭니다. 이미 여호수아가 땅의 분배를 마치고 땅을 차지할 수명을 각 지파에게 주었고(수 19:40-48), 다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자기 땅에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삿 18:1의 해당 구절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때 단 지파는 거주할 유업을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기업에 관한한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에서 (단지파는) 그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땅이라는 유산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빈 땅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땅의 분배는 사명의 분배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사명을 분배해준거에요. 그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편만하게 흐르도록 하게하는 그 사명. 그래서 다른 지파 사람들은 그 사명에 따라서 땅들을 잘 정복해 나아갔어요. 그런데 아직 단 지파사람들은 그때까지 유업에 살지 못했습니다. 아직 그 사명을 제대로 실현해내지 못하고 있는거지요. 그러니, 이 성경 구절을 읽고 당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미가의 집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섯 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살만한 곳을 살피던 중, 이 정탐꾼이 우연찮게 미가의 집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어?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집에서 제사장 일을 하고 있는 레위인 청년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었습니다. 얼굴을 볼 필요도 없었나 봅니다. 목소리만 듣고도 딱 그 사람인줄 알았다고 하네요. 이걸 그냥 참 기묘한 인연이라고 슬쩍 지나가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의도를 지나치는 것입니다.
레위인 청년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누군인지를 알았더라면, 분명히 서로 아주 잘 알고 있던 사이였을 것입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관계말이지요. 그런데 이 레위인 청년이 살던 지역은 베들레헴이예요. 물론 나중에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하기는 했지만 말이지요. 과거는 이사가 자유로운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서로 알고 있었을까요?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로 이 레위인 청년이 단 지파 땅에도 가본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시장 개척을 위해서라면, 베들레헴 뿐 아니라 단 지파의 어느 곳이라고 가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곳에서 오랜 동안 제사장 일을 하거나, 레위인의 일을 했기 때문에 단 지파의 정탐꾼들이 이 청년의 목소리를 알아 들은 것이 아닐까요?
두번째는 이 청년이 원래 단 지파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에 살던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단 지파의 땅에는 엘드게와 깁브돈, 아얄론과 가드 림몬이라는 레위인의 성읍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얄론을 제외한 세 개의 성읍은 실질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영토 안에 있었기 때문에 분배는 받았지만, 살아보지 못했을 성읍입니다. 그렇다면, 단 지파에 할당된 레위 사람들 그핫 자손들은 아얄론에 모여 살아야했는데, 성읍의 크기에 비해서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셈이 되지요. 성읍에 비해서 제사장의 수가 많다보니, 원만한 제사 몇번으로는 그 성읍에 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살아가기 힘이 들었을 겁니다. 그 청년은 그래서 떠났을 수 있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단 지파의 재앙이 도미노처럼 단 지파 뿐 아니라, 그 안에 함께 살던 레위 지파의 사람들까지 무너뜨리고, 레위 사람의 가장 세상적인 가치 추구가 도미노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무너뜨렸습니다. 무너진 하나님의 율법은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힘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고, 결국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권력으로 삼은 가진 자들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일으키듯, 사명을 잃어버린 삶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 단 지파의 이주(2)-정탐꾼의 눈에 본 라이스
라이스는 헐몬산 자락 아래에 있는 가나안 땅의 최북단의 성읍입니다. 당시에는 시돈 사람들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미쳤는데, 라이스는 시돈과 꽤 떨어져 있는 지역인지라, 그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지 않았던 지역이었습니다. 라이스는 헐몬산 자락에서 터져나오는 샘이 있는 곳이도 합니다. 이 땅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탐꾼들이 라이스를 좋게 평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조금 불편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 땅이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였기 때문이랍니다. 시돈은 페니키아의 땅입니다. 페니키아는 당시 지중해 동쪽의 맹주였습니다. 엄청난 기술 문명을 소유하고 있었고 무역을 통해서 얻어들이는 수익이 대단했습니다. 롯이 이집트를 보고 난 후, 이집트 땅과 같은 요단의 동편 소돔과 고모라, 그리소 소알을 살 곳으로 선택하였듯이(창 13:10), 이 정탐꾼들은 라이스를 가보니, 도시도 잘 정돈되어 있고, 체계도 잘 잡혀 있는 것이 그들이 부러워 했던 시돈 땅과 같았기 때문에 그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보고한 겁니다. 이들의 땅 선택 기준은 시돈이었습니다.
두번째로 댄 이유는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서 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어서 랍니다. 이들의 땅 선택의 또 다른 기준은 얼마나 우리에게 경제적인 선물을 안겨주는가 였던 것입니다. 어느 조건 하나 하나님의 눈으로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자기 땅으로 돌아가서는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삿 18:10)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이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지 그 당시도 돌아가서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지 단 지파의 정탐꾼들 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눈이 곧 사사 시대를 살아갔던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부터 갖게 된 ‘자기들의 눈’이었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 단 지파의 이주(3)-형제들 사이의 약탈
정탐꾼들은 정탐후에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가서는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단 지파 사람들은 육백 명의 무기를 든 용사들을 앞세우고 유다 땅을 거쳐 에브라임 산지를 지나갈 요량으로 집단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미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정탐을 나갔던 다섯 사람이 단 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지요.
“여기 여러 채의 집이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한 집에 은을 입힌 목상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을 것이오. 목상뿐만 아니라 드라빔과 에봇도 있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소?”(삿 18:14)
너무나 직설적으로 빼앗자고 말하는 겁니다. 미가의 집을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같은 열 두지파 공동체의 한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미가가 지난번 이 정탐꾼들을 재워줄 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재워준 것이니, 이것 만큼은 미가가 잘 한 일이지요. 그런데 지금 은혜를 원수로 값자는 모의를 하는 것입니다.
신상의 은이 탐났을 수도 있습니다. 에봇에 박힌 보석들이 탐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상, 바로 그 자체가 탐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사사의 시대에 소유가 곧 권력이며, 소유가 나와 우리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팽배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가의집에 가서 문안을 했다고 써있기는 합니다(삿 18:15). 그렇지만, 말이 문안이지, 인사하는 사람의 뒤로 육백명이 무장을 하고 서있는데, 그것이 정말 그동안 잘 있었냐는 안녕을 묻는 인사였겠습니까? 문이 열리자 마자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는 은으로 만들어진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레위 청년 제사장이 놀라며 도대체 무슨 일들을 벌이는 것이냐고 물으니, 단 지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하시오. 아무 말 말고 우리를 따라 나서시오.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주시오. 이 집에서 한 집안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야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삿 18:19)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달라”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나요? 삿 17:10에서 미가가 그 레위 청년에게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그 어순까지 똑같습니다. 아마 레위 제사장은 이 말이 달콤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하지만, 막상 내가 그들과 함께 하면 자신을 아들처럼 대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것을 부탁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면서,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전하는 거짓 제사장의 역할을 시킬 것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레위 청년 제사장에게 중요한 가치는 새로운 시장과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무렴 한 지파의 제사장이라면, 지파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 일년에 은 열과 의복 한벌 보다야 많이 주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 고발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종교 지도자인 레위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쫓아가죠. 뒤도 안 돌아보고 쫓아갑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삿 18:20에서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서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 들어갔다”라고 비꼬며 이야기합니다.
❖ 단 지파의 이주(4)-약육강식의 시대
미가가 이웃집 사람들을 모아 쫓아왔습니다. 워낙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집에 들어온 지라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했지만, 이들이 떠난 후에 곧바로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서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기 위해서 쫓아온 것입니다. 미가가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그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찾으러 온 것일가요? 그저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기 위해서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강탈해 가지고간 단 지파 사람들은 전혀 미안한 마음도 없습니다. 오히려 뒤쫓아온 미가를 위협합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거요. 이 사람들이 성이 나서 당신들을 치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생명을 빼앗을까 염려되오.”(삿 18:25)
그러니까, 쉽게 풀어쓰자면,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돌아가라. 만약 가만히 있지 않은면 우리가 너희들을 힘으로 칠 텐데, 그러면 미가 당신 때문에 쫓아온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려고 왔다가 오히려 우리에게 호되게 당할 것이고, 그 사람들이 당신과 당신 가족에게 그 분풀이를 하지 않겠느냐?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느냐? 네 목숨이 위태로울 텐데!”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위협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말을 듣고는 미가가 돌아갑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상대가 자기보다 더 강한 것을 알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삿 18:26)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사사의 시대가 바로 이런 시대입니다. 그 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 하나님의 법은 없고 오로지 정글의 법칙 만이 통용이 되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는 힘만 있다면, 누구의 것이든 무엇이든 약탈할 수 있었던 시대, 그리고 힘이 약한 자는 누구로부터도 보호 받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레위 제사장들은 힘을 가진 권력자들을 추종하고 그들과 결탁하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수호하는 제사장들마저도 돈을 따라서 언제나 신앙을 꺾을 수도 있고, 재물을 쫓아 하나님이 주신 유업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살던 시대가 사사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성읍을 떠나서 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아무데나 가서 불법한 제단을 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살던 시대, 레위 제사장이라는 이가 우상과 드라빔도 거리낌 없이 섬길 수 있는 시대, 한 민족과 공동체를 위한 레위인 제사장이 아니라 한사람의 번영과 안위를 빌어주는 한 집안의 개인 제사장으로 전락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시대가 사사들의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17장과 18장은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된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하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날카로운 고발장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왕이신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사가 왕이 되려고 욕심을 내기 시작한 시대,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려서 오히려 개인의 종으로 삼으려고 했던 시대를 그리면서,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눈’에 옳은대로 하였다”(삿 17:6)고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사사들이나 종교 지도자인 레위인들이나 매 한가지 였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이 역사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큰 한 숨 쉬었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탄식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사사기 [13] 이스라엘의 내전
❖ 모든 것은 신앙의 지도자들로부터
사사기를 시작하면서 설명하였던 것처럼, 사사기에서 3장부터 16장까지의 이야기는 사사들, 그러니까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리더인 사사들이 어떻게 점점 타락해가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정말 말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적인 메세지는 사사들의 이야기를 한데로 묶는 보따리의 역할을 하는 사사기의 앞과 뒤였습니다. 뒷 이야기는 종교 지도자인 레위 제사장들의 타락을 이야기합니다. 이미 미가의 집에서 벌어진 일들로 레위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권력에 의지하고, 그 권력으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을 쫓아 레위 제사장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정결함 뿐 아니라, 순수한 신앙 마저 저버리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레위인이 레위인다움, 제사장 다움을 포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하는 지도자인 사사들이 타락한다손 치더라도, 신앙의 지도자들인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깨어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나약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치 다윗을 찾아간 나단 선지자처럼 레위 제사장들이나 종교의 지도자들이 사사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내쫓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들이 고발하는 사사 시대는 정치와 경제의 지도자들이나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너나할 것없이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한 술 더 떠서 이 타락한 두 집단이 서로 유착하여 눈에 보이는 권력과 개인의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을 도구삼아 이용하던 시대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이방의 나라로부터 압제를 당하던 시대였고, 심지어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다툼과 전쟁까지 벌이던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3장부터 16장까지는 그나마 이스라엘 공동체가 압제하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레위인들의 종교적인 타락을 지적하는 이야기 뒤에는, 이 레위인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대규모의 내전까지 벌어집니다.
그러고보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신앙의 지도자인 레위들의 이야기를 사사들의 이야기를 묶어내는 보따리의 뒤에 배치를 해 놓은 의도가 있는 것같아요. 정치와 군사, 경제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그 밑바닥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의 지도자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타락이 있었다는 것을 고발하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사기 17장부터의 이야기에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레위 제사장의 이야기는 목회자인 제가 말하기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매우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지적입니다.
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인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타락의 시대를 다시한번 “왕이 없었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왕이 신 하나님은 자기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도구가 되어 버렸고, 정작 하나님을 이용하는 레위 제사장들이 넘쳐나던 시대였으니까요.
❖ 레위인, 그리고 그의 첩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던 레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살았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에브라임 산지 중에서 에브라임 땅에 속해 살던 레위인이라면, 세겜이나, 게셀, 깁사임과 벳호론 중의 하나일텐데, 사사기의 19장 이야기의 배경이 기브아인 것으로 보아서, 아마 이 레위인이 레위인의 성읍 중의 하나에 살았다는 가정 아래에서 세겜이나, 깁사임에 살던 사람이 아니었나 합니다. 물론 삿 17-18장을 보면, 꼭 그렇게 추측할 필요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레위 사람에게는 첩이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첩(히. 필레게쉬 פִּֽלֶגֶ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합법적으로 결혼한 아내와는 대비가 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는 기억하실 것입니다(삿 8:31). 그러니 이 레위 사람은 합법적이지 않은 결혼으로 이 여인과 실질적인 부부 관계를 맺고 살았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들 레위인, 그리고 레위인의 역할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제사장, 또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하는가를 알려주는 율법의 교사이기도 했고요. 율법을 어긴 사람들을 판단하는 재판관이기도 했고요, 율법 어긴 사람들에게 내린 형벌을 집행하는 집행관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레 24:21에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짐승을 죽인자는 그것을 물어주어야한다. 사람을 죽인자는 죽임을 당해야한다”라면서 누군가를 죽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로 “죽임을 당해야한다”라고 수동태를 사용하여 문장을 구성했습니다. 그럼 누군가가 그 죽이는 역할을 해야하는데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레위 사람입니다. 율법에 따라 형벌이 주어지면, 그것을 집행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면, 레위인들은 제의를 드리는 제사장이자,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의 인도자입니다. 율법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해박한 학자요, 하나님의 법대로 정결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재판관이자, 부정한 자들을 구별해 내고 그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는 엄격한 법집행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레위 사람에게 첩이 있다니요! 그 엄격한 법 집행자가 ‘나는 예외!’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니면, 모두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레위 사람 조차 그 문제에 대해서 경각심 없이 그들처럼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떤 모양이든, 율법과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정결한 삶,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가르치고, 그것을 잘 지키는지를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레위 사람이 솔선수범(?)해서 가르침과 다른 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이 시대가 레위인 마저도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던 시대였다는 것은 이미 미가 집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미가의 집에서 벌어진 그 엄청난 사건의 원인을 파고들면, 아마도 레위인의 가장 개인적인 가정의 삶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성경에 “첩을 두지 말라”라는 법률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손 치더라도, 이 레위과 그의 첩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하나님의 법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첩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행음했습니다. 여기서 ‘행음’했다는 말은 그냥 바람이 났다는 말이 아니라, 마치 창녀처럼 몸을 팔았다(히. 자나 זָנָה)는 말입니다. 율법에는 이럴 경우, 이 첩, 그리고 그 첩과 함께 동침한 남자 둘 모두를 죽이라고 규정해 놓았습니다(신 22:22). 그런데 이 여자는 죽음이 두려웠는지 자기의 친정인 베들레헴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넉달이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남편은 레위인입니다. 이런 법 위반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재판과 그 재판의 결과를 집행하는 사람들 말이지요.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 법 집행에 ‘자신(레위) 예외’였습니다. 법률이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라, 레위인들이 자기의 범죄에 대해서 스스로 관대한 것이지요. 남편인 레위 사람이 법에 따라 첩과 함께 행음한 남자, 그리고 자기의 첩에 대해서 율법에 따른 법 집행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다른 남자와 창녀와 같이 몸을 준 여자의 마음을 달래서 데려오려고, 자기의 종과 함께 나귀 두 마리를 끌고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예사 롭지 않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사사 시대의 레위인들은 단지 권력과 경제적인 이권을 추구하는 탐욕에만 취해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가르치는 성경의 원칙과 레위인 개인의 삶에 큰 틈새가 있었으며, 레위인들의 삶의 가장 최소의 단위인 가정부터 문제들이 만연해 있고, 도무지 풀 수 없을 정도로 엉클어져 있었습니다.
❖ 레위인의 정략결혼
그렇다면, 이 레위인은 왜 합법적이지 않은 결혼 관계로 첩을 들였을까요? 성경에는 그 답이 나오지 않지만, 이것을 추측해 볼만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삿 19:2)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삿 19:9)
우리말 성경에는 삿 19:2에서 레위인의 베들레헴 출신의 첩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에 왔을 때, 장인이 사위를 붙잡으면서 내일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삿 19:9의 ‘그대의 집’이라는 말이 벽을 갖추고 마당을 두고 있는 ‘집’이 아니라, 염소털과 다른 털들로 엮어 짠 ‘장막'(히. 오헬 אֹהֶל)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 사람은 장막에 거주하던 사람이고, 그의 첩은 잘 건축된 집에 살던 여자였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정확하게 이 단어를 구별해서 대비를 지켜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결혼은 가난하지만 종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회적인 지위를 올리고 싶었던 부자와의 정략 결혼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사랑하지 않는 결혼이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진 사실혼 관계였다는 것이지요. 레위인이 필요했던 것은 장인 어른 집안의 경제적인 도움이었을 뿐입니다. 정말로 70인역 성경을 번역한 유대교 율법학자들은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삿 19:2도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라는 구절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을 떠나”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에는 사사기를 읽는 이들이 뒷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려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부요한 집에서 자란 여인이 장막에 거주하는 비교적 가난한 레위인과의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도저히 이런 장막에서는 더이상 못살겠다는 마음으로 뛰쳐나와 부요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거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이 레위인으로 대표되는 종교 지도자들의 세속적이고 한심한 모습은 그 뒤로 계속됩니다.
❖ 베들레헴에서 기브아로 : 전통을 잃어가는 이스라엘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으로 가자 장인이 레위 사람을 맞이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의 유목민 전통을 아직도 많은 부분 보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베두인’이라고 부릅니다. ‘베두인’이라는 말은 ‘사막의 사람들’이라는 아랍어입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에는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삼일간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던 간에 말이지요. 그가 잘 알지 못하는 나그네라 할지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다시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그들이 고대로부터 지켜온 광야의 전통이었습니다. 삼일이 지나면, 이제는 그 장막을 떠나거나, 조금 더 머무려면 그 집안의 일들을 도와야했는데요. 아마 사사의 시대에도 여전히 그런 전통을 지켜나갔다면, 이 장인어른은 이 전통을 지킨 전통의 수호자요, 사위를 정말 극진하게 대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신분상승을 꿈꾸는 부자의 계산된 대접일 지라도 말이지요.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온 전통에 따라서 삼일 동안 사위를 잘 대접했을 뿐 아니라, 네째 날도, 다섯 째 날도 심지어는 여섯째 날도 대접하려고 했던 사람이예요. 그야 말로 최고의 대접이지요. 레위 사람의 장인이 단지 돈이 많아서 이렇게 환대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넓은 마음으로 사회적인 약자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돕는 것은 아니니 말이지요.
레위인은 여섯째 날이 되기 전에 그 집을 떠납니다. 오후 늦게 해가 지기 머지 않은 시간에 서둘러 떠난 것으로 보아서 꼭 가야하는 특별한 일이 있었을 겁니다. 이 또한 성경에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지만, 합리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 레위인이 집나간 첩을 찾아올 때가 안식일이 끝난 후, 첫째날이었다면, 여섯째 날 저녁은 안식일이 시작이 되는 때입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무너진들, 그래도 레위 사람으로 지켜야할 안식일의 의무는 지켜야 했을 겁니다. 습관적일지라도 말이지요. 그러니 안식일이 시작하기 전에 출발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문제는 너무 늦게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해가 질 시간이 되자, 잠잘 곳을 위해서 가까운 여부스의 성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여부스 사람의 성은 나중에 다윗이 점령하여 예루살렘이라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레위 사람은 여부스 사람의 성읍이 이스라엘 형제들의 성읍이 아닌 이방인의 도시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운 기브아나 라마로 가자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브아까지는 걸어서 대략 한시간, 그리고 라마까지는 대략 두 시간 정도의 거리였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레위 사람이 도착한 기브아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매우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기브아의 성읍 광장에 앉아있었지만, 아무도 이들을 집으로 맞아들여 묵게 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바로 앞의 성대한 대접과 기브아의 삭막함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여기에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대조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이스라엘의 세태가 있습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에 대해서 단지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출 23:9), 신명기에서는 나그네를 사랑하고 지켜주라고 합니다(신 10:10).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거에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는 과거의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역사를 기억하며, 보호받지 못하는 나그네의 두려움, 환대받지 못하는 나그네의 서러움을 공감하고,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대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을 대접하면 과거를 기억하고, 이들을 환대하면서 역사를 반복하여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이런 환대의 전통이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린 겁니다.
❖ 기브아의 한 노인의 집에서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다가 거리에서 노숙을 하게 될 처지의 레위인 부부를 만났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굳이 이 노인의 출신을 이야기합니다. 본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사람인데, 베냐민 땅 기브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유산으로 받은 땅을 떠나 다른 지파의 땅에서 산다는 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겁니다. 그 사정도 아플텐데, 유산으로 받은 땅을 떠나면 그 때부터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에게 땅이 있기 만무합니다. 이미 그 땅에 본디 살던 사람들이 땅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노인은 아마 기브아 사람의 밭에서 일하다가 해질무렵 돌아오는 길이었나 봅니다. 나그네의 마음은 나그네가 압니다. 기브아 사람들 누구도 이 지나가는 나그네 부부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때, 노인은 이 부부가 눈 밟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집에 들입니다.
그러나, 기브아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방 한칸 내주지 않던 기브아 사람들이 노인을 찾아왔습니다. 문을 두들기며 그 집에 들어온 레위 사람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성관계를 하겠답니다. 만약에 그 노인이 그 베냐민 지파 땅에서 그래도 한가닥 하고, 그 마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면, 불량배들이 와서 감히 그 문을 두들기면서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나그네의 삶을 사는 만만한 노인의 집에, 기브아의 어느 사람도 보호해 주지 않는 나그네들이 있으니, 그들을 만만하게 본 것이지요.
역사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그런 나그네 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말이지요. 그 나그네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좀 살더니, 하나님께서 주인되시고, 그분이 주신 그 땅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겁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 25:23)
알고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모두가 그 땅의 나그네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땅에 잠시 거주하는, 나의 소유는 없고 잠시 하나님의 땅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스스로 그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되었고,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인식할 필요도 없고,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들이 주인이고, 자기들이 왕이니까요. 그러고는 주변의 다른 나라들의 사람들이 하듯 성관계를 폭력의 도구로 삼아 약자인 나그네를 학대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공동체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시대, 이제는 마치 이방인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던 이스라엘 공동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역사를 잊은 이스라엘 백성, 그래서 스스로 주인이 되고 왕이 되어 나그네를 학대하는 공동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 사랑없는 결혼의 종말
레위 사람은 자기 첩을 밖으로 내보내어 그 남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오늘 장인의 집을 나섰습니다. 잘 살아 보겠노라고 형식적으로나마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자를 한 집안에 속한 재산으로 여긴다는 상식을 넘어서서, 그럼에도 한 남자가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에게 이 여인은 이용 가치로만 의미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자기의 부족한 경제력을 채워주는 여인이었고, 자기를 조금더 윤택하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용 가치 말입니다. 한 여자를 이용가치로 생각하는 남자라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내 여자를 내어주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실상입니다. 사사기를 읽으면서 제일 읽기 곤란하고 그냥 휙 지나가고 싶고, 건너 뛰어 버리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 여인은 밤새도록 여러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노인의 집 문앞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죽어 있는 것도 모르고, 아침에 문을 열고 나와서 “일어나라. 이제 가자.”(삿 19:28)라고 말하는 레위인을 머리 속에 그리면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리고 속으로 외칩니다. “너는 그러면 안되지. 이스라엘이 다 미쳐 돌아가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가장 정결해야하는 레위 사람 너는 그러면 안되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부분을 읽는 모든 성경을 읽는 이들이 그러하듯,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도 이 부분에 울분이 치밀었을 것입니다. 이 울분은 단지 기브아의 그 불량배 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그 레위 사람도 그리고 그 노인도 이 울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 첩을 조각낸 레위인의 절반의 진실
주검을 만지는 사람은 부정해집니다. 사람을 제외한 생명체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하며, 자기가 당시 입고 있던 옷도 다 빨아야 합니다(레 11). 부정한 것이 곧 다 죄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의 상태가 그렇다는 겁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을 치르고 매장을 해야하는데 자연스럽게 시신과 접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정결해 질때까지 기다리고, 그 옷을 빨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제사장들은 다릅니다. 제사장들은 스스로 더럽히지 말아야합니다. 심지어는 가족이 죽었을 경우도 그 시신을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레 21-22). 사사기 19장의 레위 사람이 아론의 자손인지는 나와 있지 않으니,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가족이 죽었으니, 당연히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해떨어지기 전까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장례를 치르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스라엘 전통에서 가족된 의무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자기 첩의 시신을 칼로 열두 토막을 내고, 이스라엘 온 지역으로 그것을 보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례 절차와 방식을 보더라도, 시신은 온전한 상태로 매장하고, 그 뼈는 나중에 추스리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것이 죽은 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은 자기 첩의 시신을 매우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자기 분노를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주변 나라에서 전쟁을 소집할 때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메소포타미아식 메시지 전달이에요. 시리아의 마리(Mari)라는 도시 국가의 왕의 왕실서고에서 발견된 편지에보면, 지원군이 일부러 늑장을 부리면서 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지원군을 요청한 지휘관이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휘관은 왕에게 죄를 지어서 옥에 있는 사람 하나를 죽여서 그 머리를 잘라 오지 않는 지원군의 지휘관에게 보내도록 허락해 달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죽은 이 사람처럼 될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지요.
지금 레위 사람이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쟁 소집의 메세지 전달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인 중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무개가 이런 일을 했다면, 아마 다들 관심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세지를 받고 기브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미스바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순식간에 모여든 것을 보면, 이 레위인이 레위인 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층에 속했고, 아마 모든 지파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었던 제사장이 아니었겠나 싶어요. 그렇다면 더 문제입니다. 가족의 시신 조차 만지는 것이 금지된 사람들이 제사장인데, 시체를 만지고 그 시체를 훼손까지 한데에다가, 제사장이 아니다손 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나아가야할 전통의 수호자인 레위인이 그 전통을 버리고 이웃 나라의 관습을 따라 살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이 레위인은 절반의 진실로 선동을 합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삿 20:5)
첫번째로, 비록 베냐민 사람들이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인 약자를 압제하였으며, 성경에서 금하는 같은 성 간의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하나님의 백성같지 않은 사람들처럼 옳지 않은 행동하기는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레위 사람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레위인 스스로가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수는 있었겠지만,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였다.”라는 말은 대체로 거짓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욕보여 죽게 하였다는 말은 사실입니다만, 그 앞서 자기가 자기 손으로 자기의 첩을 그들에게 내 주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된 사실혼 관계의 여자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는 것은 율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에 따르면, 기브아의 그 불량배들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남편이 사주를 하였거나, 방조하였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마치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레위인은 자기의 문제적인 행동은 슬쩍 덮어버린 것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레위 사람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그들의 뼛속 깊은 타락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 거짓이 만든 전쟁의 비참함
이스라엘 공동체와 베냐민의 전쟁은 이런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거룩한 레위 사람이 그의 첩과 함께 기브아로 갔는데, 기브아 사람들이 아무 이유없이 레위 사람을 죽이려 하였다더라. 그리고 그를 죽이지 못하자 그 첩을 죽였다네! 어떻게 우리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내전은 레위 사람의 절반의 진실, 대체로 거짓말에서 시작된 전쟁입니다. 전쟁의 결과는 전쟁에 참전한 베냐민 사람 사만 오천명 이상과 베냐민 지파의 온 성읍과 가축의 죽음이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군도 사만 명 이상이 이 전쟁에서 죽었거나 다쳤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끌던 정복 전쟁의 시대는 가나안의 적들, 공동체 바깥의 적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사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외부의 적과의 싸움이 공동체 내부의 전쟁으로 그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양상은 이미 기드온의 시대 이후부터 그 싹이 보였습니다만, 레위인의 첩 사건을 통해서 사사 시대의 뒷쪽으로 갈수록 죄의식 없이 이런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로서의 연대는 무너졌고, 각자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며, 때로는 같은 공동체의 다른 지파 사람들을 이용하는 시대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죽이는 전쟁마저도 거리낌없이 일으키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 모든 전쟁이 그 레위인의 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전에 기브아에 모인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에 대한 진멸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들의 후손이 남지 않도록 그들과 결혼조차도 시키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들이 결정하고 하나님께 통보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들이 전쟁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찾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참조. 삿 20:7). 그저 전쟁을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통보하는 구조인 거지요. 삿 20:18에서 하나님께 어느 지파가 먼저 앞장서서 올라갈 것인지를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뉘앙스를 살려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는 이 전쟁을 할지 하지 말아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한번도 묻지 않더니만, 이제 너희들끼리 전쟁을 다 정해 놓고서는 내게 와서 누가 전쟁에 앞장을 설지를 물어보는 거니? 그래 너희들이 너희들 힘으로 할 수 있다면, 유다가 맨 앞에 서서 해봐.” 정도로 말이지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전쟁에서 승리할 리가 만무하겠지요. 두번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세번째 전쟁을 앞두고서야 비로서 금식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울부짖고 찾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허락하십니다.
❖ 사라질 위기의 베냐민 지파와 야베스 길르앗의 주민들
전쟁의 결과 베냐민 사람들 중에서는 광야로 급히 도망갔던 육백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제가서 갑자기 생각이 났나 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중에 하나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면서 큰 소리로 울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나를 여호와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한탄이지, 정말 여호와 하나님께 물어본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물어 보았으면 답하셔야 하는데, 하나님의 답은 없으니 말이지요.
따지고보면,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전쟁을 나가서 승리에 가깝게 되자 그들의 아드레날린이 그런 말을 하게 만들고, 실행에 옮긴 것 뿐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 중, 단 한번도 하나님께 그 깊은 뜻을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열두 지파 연합으로서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붕괴된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다다르게 되니,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떠넘겨 버리는 것이지요.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왜 그러셨냐고 묻더니, 하나님은 아직 대답도 하지 않으셨는데, 다시 이들이 자기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미스바에서 모여 베냐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일 때, 갓 지파의 가문 중에서 야베스 길르앗의 주민들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 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동맹군은 야베스 길르앗의 사람들 모두를 죽이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또 진멸하겠다는 겁니다(삿 21:11)! 앞서도 말했듯이, 진멸의 대상은 가나안의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모든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얻게 되는 노략물에 대한 욕심과 탐욕이 진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는 정말 진멸해야할 것과는 친구한 채, 같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진멸시키겠다는 엉뚱한 발상을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만 빼고 말이지요! 그 여자들을 빼앗아서 광야로 도망가서 살아남은 베냐민 사람 육 백명에게 아내삼아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도미노 처럼 무너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고, 모든 의사결정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이 자기들의 머리를 모아서 낸 묘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묘책은 결국 패착이었습니다. 한 지파를 살리기 위해서 한 가문을 진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리는 없습니다. 그저 강한 다수가 힘없는 소수를 짓밟는 일일뿐입니다.
그런데도 여자가 모자르니, 한다는 말이 실로에 가서 여인들이 춤을 추러 나올 때, 그 여인들을 붙들어 가지고 그들의 아내로 삼게 하자는 것입니다. 아무나 데려가라는 말인데, 이것은 납치를 종용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말은 그 다음입니다. 납치를 하다가 혹 그 여자의 아버지들이나 형제들에게 발각이 되어서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전쟁에서 여자를 잡아다가 아내로 삼듯 여자들을 빼앗아 온 것이 아니니, 딸들을 그들의 아내로 삼도록 하여 주시오.”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우리(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들)도 실로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딸들을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당신들이 맹세한 것을 스스로 깨뜨린 것도 아니오” 하고 대답하겠오.”(삿 21:22)
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혼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이런 강제적인 방식일 경우라 할지라도 율법은 그 여인과 여인의 집안에게 지불해야하는 배상이 있었습니다(신 22:28-29).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어기고 여인들을 납치해 가는 것을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묵인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실로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이 명분을 만들어서 조용히 시키겠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런 괴물로 만들어 버렸을까요?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그렇게 진단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나,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인 사사나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 제의의 지도자인 레위인 그리고 레위 제사장이나 모두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가 사사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오히려 자기들의 종으로 삼아 기득권과 정치 경제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자기들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왕이 되어서 자기들의 눈에 보이기에 좋을 대로 행하던 시대가 바로 사사들의 시대였다는 것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진단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현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사기의 맨 마지막이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것이 끝인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이런 사사들의 악행을 이야기하면서도 맨 마지낙에는 듣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좋은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다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삿 21:25)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어설픈 문학가처럼 억지로라도 이런 시대 속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교훈적인 메세지를 집어 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 될 것이라는 어떤 희망의 소식도 주지 않습니다. 기대 같아서는 이렇게 너희들이 나쁠지라도 하나님이 누군가를 보내주셔서 너희들을 회복시키겠고, 너희가 결국 내 백성이 될것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사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사기에서 소개하는 사사들의 이야기가 거듭될 수록 계속 어두워지고, 계속 내리막을 향해 달려가고, 점점 더 불편해 집니다. 그리고 사사기라는 책의 끝맺음은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정치 지도자, 군사 지도자, 경제적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이 타락했어. 그런데 너희 신앙의 지도자라고 하는 너희 레위인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야. 아니, 그 레위 사람들이라는 이들이 더해. 결국 이 모든 사단의 시작도 종교 지도자들이고,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종교 지도자들이 묵인한 세상의 부정함이 결국 이렇게 만든거야. 그냥 너희들은 하나님 없는 백성, 왕이 없는 공동체일 뿐이지.” 사사기의 역사가는 이렇게 사사시대의 역사를 고발하며 어떤 희망도, 어떤 회개도 요청하지 않고 이 책을 끝맺습니다.
❖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
“그러면, 누가 옛부터 전해 내려오던 사사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역사책의 형식으로 모았던가?”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사사들의 시대를 실랄하게 비판했던가? 모두가 온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사기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사사기’라는 역사의 형식을 띄고 있는 예언서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형태로 묶은 이를 신명기적인 신학을 가진 역사가(Deuternomist)라고 부릅니다. 이 신명기적인 신학을 가진 역사가는 예언자적인 전통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Nicholson), 지혜 문학에 능통한 제사장 계열의 서기관 공동체의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Weinfeld).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위 제사장 계열의 사람들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요(Von Rad). 통합적으로 본다면, 예언자적 신학을 가지고 부패한 사회를 꿰뚫어 보며,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레위 제사장(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사기는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사기를 레위 제사장들의 자기 반성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단순하게 기록한 역사 나열이 아닙니다. 왜 이스라엘 공동체가 분열하게 되었고, 정치, 군사, 종교 지도자로부터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유업을 잃어버렸고, 왜 하나님의 역사와 율법에 잊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들과 기록들을 모은 것입니다. 이 기록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잊고 가나안 사람과 그 주변의 나라 사람들처럼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왕의 자리에 올라 자기의 눈에 좋아 보이는대로 살아가려던 이스라엘 공동체를 책망하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길의 앞에 서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던 ‘그(들)’은 곧 ‘나’입니다. 과거 선조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고,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시대가 지금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과거 선조들의 역사 속에서 여전히 자신들과 같은 종교의 지도자들이 직무 유기를 하였고, 그들이 나태함과 타락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흔들었고, 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임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도 여전히 그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으며 답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겪고 있는 비극의 원인을 ‘과거의 그들’로 돌리는 것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의도하는 바가 아닙니다.
신명기적인 신학을 가진 역사가가 활동하던 시대를 대략 페르시아 시대 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고레스의 칙령 이후, 유다 땅으로 돌아온 이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는 신앙적인 기초를 닦으려 했던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세워야할 성전과 나라는 과거와는 같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과거를 되짚으며, 이 비극을 레위인 제사장인 자기의 조상의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가 이 비극의 원인 제공자이며, ‘지금의 나’가 하나님의 공동체를 허물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이자, 현재입니다.
종교 지도자인 레위 제사장들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를 고발하는 것만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의무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도 내 선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비극 속에서도 그 조그마한 공동체 안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다툼을 하고, 그 안에서도 주도권을 잡으려는 암투가 벌어지는 한 복판에 ‘지금의 나’가 서있습니다. 과거로부터 가나안 땅 한 구석에서 밭을 갈고 있는 농부나 광야의 한 가운데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잘못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졌던 적은 없었습니다. 늘 정치, 경제, 군사, 종교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싸우는 이들 때문에 나라는 흔들렸고, 신앙은 무너졌고, 하나님의 공동체의 삶을 피폐해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사 시대의 레위 제사장 선조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가 내리막길로 향해 가속도를 붙이면서 내려갈 때, 하나님의 법과 말씀, 그리고 온전한 신앙으로 그들의 역사에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수레에 올라타 함께 내려갔습니다. 아니,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했습니다. ‘지금의 나’도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사의 내리막 길에 멈춤 없이 달리는 수레를 더 힘차게 밀고 나가면서, 나락으로 떨어질 수레 안에서 권력을 잡아 보겠노라고 아둥바둥 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과거’의 선조들의 모습 속에서 ‘지금의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내일을 바꾸어야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의 나’와 나의 공동체가 맞이할 운명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눈으로 ‘과거의 나’의 역사를 바라보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고쳐가면서, ‘내일의 나’의 운명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나의 과거를 하나님의 눈으로 냉철하게 바라보고, 나의 현재를 하나님의 눈으로 직시하면서, 나의 미래를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는 것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인 레위 제사장들이 역사를 마주하는 시각이었습니다. 과거에 선조들이 걸었던 길의 결과로 그들이 맞이한 미래가 오늘입니다. 오늘이 불행하다면, 그리고 내일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들처럼 살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외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우리의 왕 되심을 잊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그 비극의 역사, 지금 경험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 이것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리라.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곧 예언입니다.
출처: 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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