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일곱번째 사사 돌라와 야일
❖ 사밀에 살았던 잇사갈 사람 돌라
사사들 가운데에서 그 이야기의 분량이 조금 적다고 해서 그 사사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덜 중요한 사사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분량이 적은 사사들의 경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할 때 가지고 있는 역사 자료의 분량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짧게 소개했을 수도 있겠고요. 그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史觀]에 따라서 사사들의 이야기의 분량이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돌라와 야일을 다른 사사들에 비해서 역사적으로 무게감이 적었던 사사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면에서 사사들을 대(大) 사사와 소(小) 사사로 나누는 것은 편견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돌라와 야일은 어떤면에 있어서는 그 앞의 이야기인 아비멜렉의 이야기와 뒤따라 나오는 입다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비멜렉의 시대를 닫는 이야기로 돌라를, 입다 이야기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역할로 야일을 소개합니다.
“아비멜렉 다음에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는데, 그는 에브라임의 산간지방에 있는 사밀에 살고 있었다.”(삿 10:1)
성경에서 돌라의 출신과 그가 살았던 지역을 이야기하는데요. 잇사갈 지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잇시갈 지파 사람이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살았다고 하네요. 에브라임 산간 지방이라고 하면, 주로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면서 일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요단강 서쪽의 남쪽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밀(히. 샤밀 שָׁמִיר)이 현재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에브라임 지파 또는 므낫세 지파 땅의 어디일 겁니다.
고대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이사 하기가 쉽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특히나 더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지파 별로 땅을 나누어 주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에 거주하면서 대를 이어서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통이지요. 땅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래서 한 개인이 특정한 땅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땅을 재산으로 삼아서 한 사람이 땅을 독과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해서 땅을 파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땅을 팔아도 친족, 그리고 같은 지파에 있는 누구에게 팔고 희년에 다시 돌려받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땅에 대한 신앙의 전통입니다(레 25). 그러니, 일시적으로 토지의 소유권이 이전될 수는 있어도, 다시 돌려받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영원히 이주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이 온전히 지켜지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또 이렇게 땅을 사주는 것이 고엘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고엘의 의무와 희년의 의무를 잘 지켜나간다면,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나갈 법률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공동체였습니다. 당시의 어떤 나라도 이런 법령을 없었으니, 혁명적인 율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한 지파에 속한 사람이 다른 지파의 땅에 살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잇사갈 지파의 사람인 돌라가 자기 땅을 떠나서 다른 지파 땅으로 가서 살았다고해요. 아마도 하나님의 유업으로 받은 땅에서 살수 없을 만한 딱한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 사정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지요. 이렇게 자기 지파는 잇사갈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살수가 없어서 다른 지파의 땅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이고, 그 사회에서는 빈곤층으로 내려갈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지요.
사실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계를 위해서 잠시 땅을 사고 파는 행위는 있을 지언정, 빈곤층으로 떨어져 고통 받는 사람들은 없어야 합니다. 또 땅을 잠시 팔았을 지라로 희년이 되면, 다시 이 땅을 돌려 받게 되니, 한 가족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 50년 마다 모든 것이 원상태도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레 25:28).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옆에 있는 가족들과 가까운 친족들은 고엘로서 돌봄의 의무가 있습니다(레 25:25). 그러나 자기 살던 지파의 땅을 떠나 다른 지파의 땅에 까지 가서 살아야할 지경이 되었다면, 아마도 이 시대는 이런 돌봄의 의무[히. 고엘 גֹּאֵ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짧은 돌라의 출신 이야기를 통해서 , 사사 시대에 벌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소홀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명령도 소 귀에 경 읽기 마냥 흘려 보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돌라의 가정이 살고 있는 성읍이 사밀이라는 것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에둘러 말하는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사밀이라는 마을의 이름의 어근이 ‘가시덤불’이거든요. 아비멜렉의 이야기에서 요담이 사람들에게 비유로 아비멜렉을 비꼬아 이야기하며, 아비멜렉을 ‘가시나무'[히. 아타드אָטָד]에 견주어 이야기하였고, 그의 통치가 가시나무 가운데에 나오는 불과 같을 것이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비멜렉과 연결되는 사사 돌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던 시대가 꼭 가시 덤불이 광야를 뒤덮은 듯, 고통의 시대였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돌라를 시대의 구원자로 부르셨습니다. 돌라의 집안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영원한 나그네와 같은 집안이었습니다. ‘돌라’ תּוֹלָע 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는 ‘벌레’입니다. 자주색 염료를 채취하는데 이용되는 벌레인데요. 에브라임 산지에서 돌라와 그 가족의 위치는 그 이름처럼 벌레같은 처지였습니다. 나그네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권력과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들의 가시덤불(사밀) 같은 통치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힘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벌레같은 돌라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 길르앗 사람 야일
그런데 돌라와 완전히 배치되는 인물이 바로 뒤, 3,4,5절에 곧바로 나옵니다.
“그 뒤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른 마리의 나귀를 타고 다녔고, 성읍도 길르앗 땅에 서른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 성읍들은 오늘날까지도 하봇야일이라 불린다. 야일은 죽어서 가몬에 묻혔다.”
길르앗 사람 야일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 말 성경은 22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고 소개합니다만, 이 구절을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는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을 도맡았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별 다를 것 없어 보이고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작은 이 차이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이전의 돌라를 설명할 때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삿 10:1)라고 돌라를 소개한 역사가가 야일을 설명할 때에는 매우 건조하게 그냥 ‘다스렸다’며 휙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로 22년 동안 있었지만, 그 자리에 썩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야일이 그 22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고발합니다. 아들이 서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많았다는 말이 꼭 아내가 많았다는 말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이 사람의 아들들이 나귀 30마리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의 광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광야의 승용차가 나귀였습니다. 낙타는 화물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성경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사사 야일의 아들들 모두가 승용차 한대씩 몰고 다녔다는 이야기인데요. 아버지를 잘 만난 금수저라는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들들이 전부 길르앗에서 성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여호수아 시대에 갓 지파에 속한 대표적인 성읍들을 열거할 때, 그 수가 대략 열 한개입니다(수 13:24-28). 물론 ‘○○지역’이라고 말한 곳에 또 성읍들이 몇개 더 있다손 치더라도 그 수가 서른이 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마을들도 더 생겨났겠지요. 그래서 성읍의 수가 늘었을 텐데, 그 때마다 모두 야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고 쳐야, 야일이 성읍 30개를 소유할 수 있는 겁니다. 야일이 가진 사유재산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냥 갓 지파 전체가 야일의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만큼 말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재산도 많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좋고, 그 재판도 공평하여 하나님의 영이 늘 함께 했던 야일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한 나그네 인생의 벌레같은 돌라와는 달리 야일에 대해서는 그저 평범하게 ‘다스렸다’는 말로 슬며시 지나가 버리면서 야일이 다스렸던 그 시대를 평가절하해 버립니다. 아니 평가절하를 하다 못해, 그 야일의 시대에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야일의 아들들이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권력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가져야할 역사의식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던 무능한 이들이었는가를 고발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라’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야일(히. 야이르 יָאִיר)은 오로지 자기와 자기 가족이 드러나기 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공동체의 지도자라면 정말 끔찍한 일인데요. 그 아픈 이야기가 이어지는 입다의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여덟번째 사사 입다
여덟번째 사사 입다
❖ 권력과 재산이 여호와 보다 더 가치있었던 시대
사유재산을 늘려가며 권력을 누렸던 야일의 시대의 끝물은 이전에는 열거된 적이 없는 많은 신들의 향연입니다. 바알 신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사람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겼다고 하는데요(삿 10:6). 모두가 복수로 ‘~들’이라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신들을 섬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을 저질렀다. 그들은 바알 신들과 아스다롯과 시리아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사람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주님을 저버려, 더 이상 주님을 섬기지 않았다.”(삿 10:6)
이렇게 많은 신들을 섬겼다는 보도에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의도한 바가 있습니다. 사사 야일이 처음부터 그렇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분명히 처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던 믿음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를 경험하면서 권력을 맛보고, 권력이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부유함을 누리면서 점점 바뀌어진 것은 아닌가 합니다. 야일이 사사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던 시대에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삿 10:6에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넌지시 실마리를 줍니다.
경제적인 면으로만 보았을대, 고대의 제사장이나 권력자들이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제의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제의가 많을 수록 성전이나 제의를 드리는 장소로 더 많은 돈이 흘러들어 옵니다. 그런데 한분 여호와 하나님께만 제의를 드리면 매일 같이 드리는 상번제(출 29:38-46) 외에 사람들이 가져오는 매일 몇몇의 제사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들의 숫자가 많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많은 신들에게 하루에 한번씩만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보다 열 배 이상의 제의가 있을 것이고, 당연히 제사장의 몫이 들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때문에 돌아가는 경제적인 효과로 경제 권력층에 있는 이들도 더 많은 돈들을 함께 벌어들일 것입니다. 더 많은 돈의 맛을 보면 볼 수록 제의의 지도자들과 정치와 경제의 지도자들이 더욱 공고하게 결탁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의 욕심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보다는 오히려 신들을 이용하는 이교도처럼 되어 버리겠지요. 그리고 그들의 통치 아래에서 백성들은 고통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사 야일의 때가 바로 그런 때였고, 그 야일의 시대를 이어받은 입다의 때는 그런 부조리들이 절정을 달하던 시대였습니다. 신들의 명단을 보건데, 이것은 단지 야일이 있었던 길르앗 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봅니다. 페니키아 지역과 아람, 시돈과 모압, 암몬과 블레셋을 경계로 두고 있는 모든 지역에서 두루 이런 현상들이 있었던 것같아요. 결국 하나님은 그 이방의 우상들을 이용해서 자기 배를 불리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바램(?)대로 그들로부터 억압당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의 결과는 오롯이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 잠시의 안정을 위해서 하나님을 포기했던 시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또 다른 이유는 나라의 안정을 정치에서 찾으려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국제 정치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그 나라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일반적인 방법이 그 나라의 신들을 자기 나라의 성전, 또는 제의의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자기 나라의 신과 함께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국제 외교에서 찾으려는 순간 이방 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를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것은 단지 그들에게 보여주는 요식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 그들의 새로운 문명의 이기(利器)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잠시 그들의 신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예배 드리는 척만 하자.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절대로 잊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이웃 나라의 신들에게 형식적으로 예배 드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요식 행위 때문에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만한 멋진 제의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주변 나라들의 신들을 위한 제사가 정례화 되면서 점차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 우상들을 참 신인양 섬기게 되었습니다. 또 이방의 나라가 그러하듯, 특별한 상황과 장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한 신들이 있는 양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주변의 나라들과 같이 다신(多神)의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선조인 아브라함이 다신 사회로부터 떠나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만을 바라보며 가나안 땅에 정착한 것과는 정반대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가나안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을 둘러싸고 있는 당시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더욱 절실하게 매달려해 해던 여호와 하나님을 잊은 채, 국제 외교라는 방법으로 일시적인 안정을 추구하던 이스라엘이 드디어 한계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의 도움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롭게 정착한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광야 생활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문명 세계의 모든 것들이 혁신적이고 아름다와 보였을지 모릅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했습니다. ‘압제와 고통’ 그리고 ‘한분 하나님,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포기’로 말이지요.
❖ 벌하는 하나님, 그러나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
결국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에서 요단 강 동쪽에 길르앗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억압을 당하였고, 암몬 사람들은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를 치려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본토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걸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의 아우성에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나 가서 부르짖어라. 너희가 괴로울 때에 그들에게 가서 구원하여 달라고 해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해야할 바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참 약하신 분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시고, 또 그들의 고통을 보시고는 가만 있으실 수 없으셨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보같이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잊고 다른 길로 걸어가는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이스라엘의 편에서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늘 그러셨습니다.
❖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겠느냐?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에 진을 쳤습니다. 이미 갓 지파의 땅 길르앗의 많은 지역이 암몬의 수중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에 맞서서 이스라엘도 미스바에 진을 꾸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여서 길르앗 지방을 자치하고 살고 있는 갓 지파 사람들과 함께 회의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일 때에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습니다. 한 지파가 곤경에 처해서 전쟁을 치룰 때에는 이스라엘의 나머지 형제 지파들이 도와야합니다. 그러나, 그 지파의 지리와 지형은 그 지파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 전쟁에서 지휘관으로 제일 앞장 서는 것은 도움을 요청한 그 지파의 지도자여야 합니다. 그런데 갓 지파 길르앗 사람 중에 아무도 이 전쟁에 선뜻 맨 앞에 서겠다는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제안을 했습니다.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겠느냐? 그 사람이 길르앗에 사는 모든 사람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삿 10:18)
아직 당대는 갓 지파의 땅이었던 길르앗에 삼십 성읍을 차지하고 있는 야일의 아들들이 있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아들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요? 적어도 사사인 아버지 야일의 아래에서 길르앗 삽십 성읍의 머리들로 길르앗의 최대 맹주 역할을 자처하였다면, 길르앗을 전장으로 하는 전투의 맨 앞에서서 잃어버린 내 성읍을 다시 찾겠노라고 앞장 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질 것이 분명한 전쟁이어서 그랬을까요? 성읍에서 자기들의 이권을 찾을 때에는 행복했을 그 아들들이 정작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는 전쟁에서 목숨을 내 놓아야할 때에는 슬쩍 뒤로 빠지는 모습이 너무 얄밉습니다. 그래서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길르앗 사람들이 삿 10:18처럼 말한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 싸워 이기면’도 아니라, 그저 맨 앞장 서서 싸우기로 하기만 해도 지파의 머리로 인정해 준다는 말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있습니다.
❖ 입다, 창녀의 아들
입다는 길르앗이 창녀에게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길르앗은 본처에게서도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들은 아버지가 창녀에게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아들인 입다를 꽤나 구박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입다에게 “너는 우리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의 아들이므로, 우리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다.”(삿 11:2)며 쫓아냈습니다. 이것은 그냥 쫓아낸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손해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문으로부터 완전히 버림 받아, 사회적으로 보호 받을 만한 어떤 장치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가히 사형선고에 가까운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다는 형제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길르앗 산지에서 살 수 없어서 골짜기를 건너 돕으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으로 도망간 다윗의 주변에 압제 받는 사람들,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들 듯, 입다의 주변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히. 아나쉼 레킴 אֲנָשִׁים רֵיקִים)이모여들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단어를 왜 ‘잡류'(개역개정), 또는 ‘건달패'(새번역)라고 번역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마치 입다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 ‘박탈 당한 사람들’이 입다의 주변에 모여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는 입다에게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길르앗의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우리 아버지 집에서 나를 쫓아낼 때는 언제이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해서 나에게 올 때는 또 언제요?” 그러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이오.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운다면, 당신은 모든 길르앗 사람의 통치자가 될 것이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나를 데리고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나에게 넘겨 주신다면, 과연 당신들은 나를 통치자로 받들겠소?” 그러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다짐하였다. “주님께서 우리 사이의 증인이십니다. 당신이 말한 그대로 우리가 할 것입니다.”(삿 11:7-10)
이것이 길르앗의 장로들과 입다의 차이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구절을 통해서 길르앗의 장로들과 입다가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큰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가 굉장한 용사이기 때문에 분명히 암몬과의 전장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맨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입다에게 갔습니다(삿 11:1). 그들은 입다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주님께서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들을 입다의 손에 넘겨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삿 11:9). 입다의 태생과 출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시각,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야일의 아들들처럼, 그리고 길르앗의 합법적인 아들들처럼, 법적으로 아무리 적법한 결혼 관계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들이라 할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전쟁을 주인이시고, 그분이 싸우신다는 믿음이 없다면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력과 경제력을 지키기에 급급해서 사람을 의지하고 모략을 의지하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것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입다와 그의 친구들은 달랐습니다. 주님께서 싸우십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역사를 아는 자가 여는 새 시대
입다(히. 이프타흐, יִפְתָּח ‘그가 열것이다’ 또는 ‘그가 자유케할 것이다’)는 그 출생의 신분과 관계없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역사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따른다면 누구라도 사사가 될 수 있는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입다가 암몬 왕에게 먼저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암몬 왕이 대답하기를 아르논 강에서부터 얍복 강과 요단 강에 이르는 자기의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점령하였으니, 그 땅을 도로 내 놓는 것이 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입다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시작합니다. 요점은 암몬 사람들이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라는 겁니다.
가데스로부터 시작하는 출애굽의 여정에서 에돔과 모압의 영토를 지나가려고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모압의 왕도 이스라엘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며, 그래서 에돔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 동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압 땅에는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지요. 길르앗 산지의 남쪽에 해당하는 아르논과 얍복 사이의 땅은 당시 아모리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곳도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과 동시에 오히려 싸움을 걸어와서 아모리의 시혼과 그 군대를 무찌르고 그 영토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나열합니다. 즉, 현재 르우벤 지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갓 지파의 일부가 살고 있는 길르앗 산지의 남쪽 지역은 당시 암몬의 땅이 아니라, 아모리의 땅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암몬과는 전쟁을 한 적이 없다(참조 신 2:19)! 그리고 그 지역을 벌써 삼백년이 되는 시간동안 르우벤과 갓 지파가 살고 있는데, 왜 갑자기 암몬의 왕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냐?”는 것이 입다의 답변의 요지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의 전통이 몇개가 있는데, 그 전통에 따라서 그 땅의 주인을 표시하는 방식과 그 땅의 당시 소유주에 대해서 조금 다른 견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기억하는 출애굽의 여정과 당시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왕국의 경계가 입다가 말한 바와 같고, 입다는 그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몬 왕이 내건 명분을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시작할 때에는 나름대로 그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기의 명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암몬 왕의 이 명분 역시 입다를 찾아가기 이전에 이미 암몬 사람들이 전쟁을 걸어올 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암몬 사람들이 내건 이 전쟁의 명분이 가짜 뉴스라는 것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합법적인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자칭하며, 그 사회에서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경제적인 풍요를 즐겼던 그들은 정작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저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을까라? 어떻게 무력으로 저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에만 모든 생각이 매몰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그렇게 권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법령과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서 그것에 문자적으로 묶여 살아가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며, 그들과 다른 자신들의 정통성을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 출생은 비천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붙잡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삿 11:29). 하나님의 눈에는 이 사람이 나그네냐 아니냐, 그 태생이 합법적이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릴 만한 공동체를 이루는 조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믿음과 주인 되신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강제노역에 고통 받던 히브리인들을 자유케 하셨다는 역사 의식, 그리고 광야에서 그 공동체의 쓸 것을 준비하셨고, 전쟁 터에서 하나님이 싸우시고 이기셨던 그 역사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일 뿐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입다의 연설을 통해서 정작 스스로 ‘정통’ 이스라엘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출애굽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주인되신 하나님에 대한 역사 의식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었던 입다.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입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전쟁에서 직접 싸우시는 분이시며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입다는 한 지파의 머리(삿 10:18)에서 이제 사사가 되었습니다(삿 11:29).
❖ 입다의 말실수?
일장 연설 후에,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습니다. 한 지파의 머리에서 이제는 사사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임하고 암몬과 전쟁을 하러 나갈 때, 입다가 이렇게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신다면, 내가 암몬 자손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삿 11:30-31)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받으시는 분이실까요? 레위기에 보면, 제사의 법들이 나오고,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하는지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규정을 해 놓았는데, 소, 양, 염소, 새, 곡식과 같은 제물은 나오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입다의 이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제물로 받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정말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동물로 대속하여 드리는 제사 이전에 사람을 제물로 삼아서 제사를 드렸던 흔적들이 있고, 성경에서도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에서 모압 왕이 궁지에 몰렸을 때, 성벽에서 자기를 대신하여 왕이 될 장자를 죽여서 번제로 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왕하 3:26-27).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에서 사람을 제물로 드렸던 예가 있나요?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고대 근동지역의 제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드리는 제사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고대 사회의 심상을 가지고 있는 고대의 사람들 이니까요.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던 아브라함의 이야기 입니다(창 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일러주는 산에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제사로 드리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심도 없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허락하신 아들을 죽여야한다는 슬픔은 있을 지언정, 아브라함의 마음에 “왜 사람을 번제로 드리라고 그러시는 거지?”라는 질문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서 살던 아브라함, 그리고 가나안의 문화에 익숙해진 아브라함에게 사람을 제사로 드리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이기는 했어도, 남들이 하지 않는 완전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만 확인하시고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산의 수풀 속에서 걸려 있던 숫 양 한마리를 보게 하시고, 이삭을 대신해서 그 숫양을 제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창세기의 이 사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이집트 및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제의와 여호와 하나님의 제의의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지적합니다. 이집트와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비록 지리적으로는 그 안에 속해 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제의의 정체성입니다. 아브라함도 그 문명과 문화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을 바치는 제사를 알고 있지만, 그 아브라함을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우상들이 요구하는 사람을 바쳐 죽이는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이야기의 중심 메세지 중의 하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을 제물로 받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초태생은 다 하나님의 것이지요. 동물이든 사람이든 처음 태어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라아도나이’ לַיהוָֹה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우리 말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돌리다’라고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처음 태어난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려야’합니다. 동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돌립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럴 수 없겠지요. 그래서 대속할 수 있게 했습니다(출 12:12-16). 출애굽기에서는 맏아들을 어떻게 대속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문맥상 어린 양과 같은 동물이나, 또는 돈으로하는 속전(레 27:1-25)을 하였을 겁니다.
입다의 서원을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אִם־נָת֥וֹן תִּתֵּ֛ן אֶת־בְּנֵ֥י עַמּ֖וֹן בְּיָדִֽי׃ וְהָיָ֣ה הַיּוֹצֵ֗א אֲשֶׁ֨ר יֵצֵ֜א מִדַּלְתֵ֤י בֵיתִי֙ לִקְרָאתִ֔י בְּשׁוּבִ֥י בְשָׁל֖וֹם מִבְּנֵ֣י עַמּ֑וֹן וְהָיָה֙ לַֽיהוָ֔ה וְהַעֲלִיתִ֖הוּ עוֹלָֽה׃ פ
“만약 암몬 자손들을 내 손에 주신다면, 내가 암몬 자손들로부터 평안히 돌아올 때, 내 집의 문에서 나와서 나와 만나는 그를(그것을)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거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히브리어 접속사 ‘베’ וְ는 ‘그리고’라고 번역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자주 ‘그러나’, ‘또는’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입다의 서원은 만약 입다가 전쟁에서 이기고 평안 돌아올 때, 자기 집의 문에서 나와서 그와 만나는 것이 동물이라면 그것을 번제로 드리겠고, 사람이라면 그를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하나님에게 속하게’하겠다는지는 이 서원에서 입다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을 ‘하나님에게 속한 자’, ‘하나님의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 입다의 서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입다가 하나님의 전쟁을 나가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이방의 신들에게나 드리는 사람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하겠다고 서원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겠지요?
❖ 내 처녀됨을 애곡하겠나이다
입다가 암몬 사람들을 크게 무찌르고 위풍당당하게 돌아왔습니다. 입다가 전장에서 서원한 약속을 가족들이 알 리가 없겠지요. 입다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집에서 무남독녀 외딸이 기뻐하며 나왔습니다.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아버지를 맞이 하였습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사랑하는 외딸을 보는 순간 하나님과의 약속이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딸이 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입으로 주님께 서원하셨으니, 서원하신 말씀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이미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에게 복수하여 주셨습니다.”(삿 11:36)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성경을 읽는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한 가지만 저에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 달만 저에게 말미를 주십시오. 처녀로 죽는 이 몸,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실컷 울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삿 11:37)
그러고는 이 장면을 38절에서 다시 설명해 줍니다.
“딸은 친구들과 더불어 산으로 올라가서, 처녀로 죽는 것을 슬퍼하며 실컷 울었다.”(삿 11:38)
이 성경 구절을 보자니, 입다의 딸이 정말 죽은 것같거든요. 번제의 제물로 말이지요.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죽음’ ‘죽는다’라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구절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입다의 딸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이 일이 내게 있게 해주세요. 두 달만 나를 내버려 두세요. 산에 갔다가 내려 오겠습니다. 나의 친구들과 나의 처녀됨을 통곡하겠습니다.” 그가 말하였다. “가라.” 그가 그녀를 두달 동안 보내주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산으로 가서 그녀(입다의 딸)의 처녀됨을 통곡했습니다.”
문장이 매우 깔끔하지는 않지만, 히브리어 문장을 그냥 다듬지 않고 한글로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렇게 거칠게 옮긴 이유는 히브리어 문장에는 ‘죽음’이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입다가 번제로 그 딸을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입다의 딸이 슬퍼한 이유는 그녀가 누군가와 결혼하지 못하고 평생을 처녀로 살아야 할 처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여자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결혼하지 못하는 것과 자녀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결혼을 앞두고 여인이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것 중의 최고는 자기의 ‘처녀됨’입니다. 입다의 딸은 그것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의 서원에 따라서 결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나이가 되도록 지켜왔던 자신의 순결을 증명할 방법도 없어졌습니다. 여러모로 입다의 딸은 일반적인 이스라엘의 여자로서 누려야할 삶도 박탈 당하고, 자기의 순결함과 신실함을 보여주는 ‘처녀성’도 증명할 수 없게 된 처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슬펐던 것이지요.
입다의 딸의 이야기로 유추해 보건데, ‘하나님의 것’,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는 방법으로 입다는 어린 양과 같이 대신할 동물을 번제로 드린다거나, 30세겔의 돈으로 속전하는 방법이 아니라, 딸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 중세 랍비들은 입다의 딸이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부로 성막에서 일하는 여자로 살게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39-40절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는 이스라엘의 관습’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성막에서 일하는 여인들에 대한 존경어린 애곡의 전통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종교-문화적인 측면을 이해한다면, 우리 말 성경에서 “처녀로 죽는 것을 슬퍼하며 실컷 울었다”는 번역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려서 죽이지 않았다는 것과 하나님은 사람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욕심이 빚어낸 내전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를 찾아갔습니다. 이미 전쟁도 다 끝났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전쟁을 하는데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삿 10:17에 보니, 암몬이 쳐들어 왔을때, 이미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가 미스바에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할 때 에브라임 사람들이 없었다면, 에브라임 사람들은 자기들의 계산에 따라서 참전하지 않은 것이지, 입다가 부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왜 에브라임 사람들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것인지, 또 왜 갑자기 뒤늦게 나타난 것인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만, 굳이 추측을 해보자면, 질 것같은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두려웠는데, 막상 입다가 이기고 나니,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 탐났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뭐 어디까지나 추측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 지파와 함께 요셉의 아들들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도맡아 했는데, 이제 길르앗의 갓 지파가 주도권을 잡은 듯하니, 그것이 못마땅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삿 12:4에서는 이런 지파 간의 주도권 싸움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평소에 늘 길르앗 사람들을 보고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속한 자들이다!” 하고 말하였다.”(삿 12:4)
그동안의 전쟁들은 이스라엘과 외부의 적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연대의식이 점점 허술해지더니만, 이제는 같은 공동체가 분열하고 서로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입다의 구원 이야기 가운데 쏙 들어와 있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주로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말은 ‘쉽볼렛’과 ‘십볼렛’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잘한 에피소드 말고 정말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이 전쟁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내전’, 즉 ‘공동체의 분열’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분명히 그 전쟁에서 전리품도 좀 얻었겠지만, 딸 때문에 마음이 많이 어려운 입다의 마음에 에브라임이 불을 붙인 격이 되었습니다. 사사기에서 처음으로 같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벌어진 전면전입니다.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무찔렀습니다. 그리고 도망가는 에브라임의 잔당들을 잡기 위해서 요단 강 나루터를 점령합니다. 그리고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쉰’ שׁ 발음을 하지 못하고, ‘신’ ס으로 발음 하는 지역색을 이용해서 나루터에서 4만2천명의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입니다. 입다가 암몬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암몬 사람들을 죽인 것만큼 많은 수의 형제들을 죽인 셈입니다. 이런 면에서 입다의 이야기는 이집트에서 강제 노역으로 고통 받던 이들을 한 공동체로 만드시고, 강제 노역으로부터 자유케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공동체가 서로 힘을 차지하려고 분열하고 싸우던 시대를 바라보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고발이기도 합니다.
아홉번째, 열번째, 열한번째 사사 입산, 엘론, 압돈
❖ 입산, 엘론, 그리고 압돈
굳이 말하자면, 사사기는 기드온 이전과 기드온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드온 이전의 사사는 이스라엘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로서 본받을 만한 구원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시대 이후로는 사사들마저도 탐욕과 부패에 찌들어져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의사결정권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자기를 드러내고, 부를 축적하며,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내려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사사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하나님이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기드온 이후로는 이웃 나라의 왕들처럼 그 권력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하였고, 자녀가 그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사사의 역할을 통해서 얻은 재산이라도 물려 주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사들은 점점 스스로 바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처럼, 절대반지를 끼어 본 사람들이 그 반지의 권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듯, 사사들고 한번 맛본 권력과 명예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한 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던 사람들이었고, 한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편으로 이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사들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할 때, 왕이신 하나님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유다지파 베들레헴 사람 입산의 경우도 그런 모습을 살짝 엿보입니다.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삿 12:9)
성경에서는 삼십 명의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삼십 명의 며느리들을 ‘밖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말 새번역 성경에는 이미 해석이 가미가 되어서 ‘다른 집안에서’라고 번역을 했는데,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냥 ‘밖으로’, 그리고 ‘밖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본문을 ‘가문 밖’, 또는 ‘지파 밖’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공동체 밖’이라고 볼 수있다고도 합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기드온 이후의 사사들의 집안에 대해서 평가를 하면서 그들이 지나치게 많은 아내와 재산을 소유하게 된 점을 꼬집는다는 맥락에서, ‘밖에서’ 또는 ‘밖으로’라는 말을 ‘이스라엘 공동체 밖’이라고 해석한다면, 사사 입산도 문제적인 사사 중의 하나입니다. 앞서도 말하였지만, 기드온의 때 이후로 사사들은 자주 국제 관계나 경쟁하는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안전을 보장 받는 수단으로 국제 정치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국제 관계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을 좋게 평가해 주자면,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사들의 불신앙을 매우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이런 사사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본인의 시대에 안정을 추구하면서 자기의 통치 기간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 국제 정치를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정치도, 문화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분 하나님을 향한 신앙마저도 흔들어 버리는 중대한 잘못이었습니다.
스불론 사람 엘론에 대해서는 그저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만 전하고 급히 넘어가고, 곧 이어 므낫세 땅의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압돈에 대한 소개는 마치 길르앗 사람 사사 야일처럼 아들 사십명과 손자 삼십명이 모두 나귀를 타고 다닌다는 기록으로 자녀들에게 부를 상속하는 사사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세 사사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이 셋의 존재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있을 뿐, 자세한 그들의 삶을 전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할만한 어떤 단서도 주지 않은 채, 오히려 마치 ‘사사’라는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처럼 이들을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명의 이야기에 그 백성들을 ‘구원하였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구원하였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근거로 그들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였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사사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오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이야기 줄기를 따른다면, 이 세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사사가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으로 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으셨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세 사사들을 소개하면서 점점 사사들이 욕심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고발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빠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름의 사사 입산(히.입짠 אִבְצָן)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기에 바빴으며, ‘상수리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사사 엘론(히.엘론 אֵילוֹן)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종’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사사 압돈(히. 압돈 עַבְדּוֹן)은 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인 행세를 하고 다녔습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이야기를 거듭할 수록 점점 내리막을 향해 달려가는 듯합니다. 이 세 사사들의 시대 이후 삼손의 시대는 그야 말로 사사 시대가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보려는 듯 내리막의 막장을 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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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열번째, 열한번째 사사 입산, 엘론, 압돈
❖ 입산, 엘론, 그리고 압돈
굳이 말하자면, 사사기는 기드온 이전과 기드온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드온 이전의 사사는 이스라엘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로서 본받을 만한 구원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시대 이후로는 사사들마저도 탐욕과 부패에 찌들어져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의사결정권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자기를 드러내고, 부를 축적하며,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내려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사사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하나님이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기드온 이후로는 이웃 나라의 왕들처럼 그 권력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하였고, 자녀가 그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사사의 역할을 통해서 얻은 재산이라도 물려 주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사들은 점점 스스로 바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처럼, 절대반지를 끼어 본 사람들이 그 반지의 권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듯, 사사들고 한번 맛본 권력과 명예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한 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던 사람들이었고, 한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편으로 이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사들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할 때, 왕이신 하나님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유다지파 베들레헴 사람 입산의 경우도 그런 모습을 살짝 엿보입니다.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삿 12:9)
성경에서는 삼십 명의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삼십 명의 며느리들을 ‘밖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말 새번역 성경에는 이미 해석이 가미가 되어서 ‘다른 집안에서’라고 번역을 했는데,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냥 ‘밖으로’, 그리고 ‘밖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본문을 ‘가문 밖’, 또는 ‘지파 밖’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공동체 밖’이라고 볼 수있다고도 합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기드온 이후의 사사들의 집안에 대해서 평가를 하면서 그들이 지나치게 많은 아내와 재산을 소유하게 된 점을 꼬집는다는 맥락에서, ‘밖에서’ 또는 ‘밖으로’라는 말을 ‘이스라엘 공동체 밖’이라고 해석한다면, 사사 입산도 문제적인 사사 중의 하나입니다. 앞서도 말하였지만, 기드온의 때 이후로 사사들은 자주 국제 관계나 경쟁하는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안전을 보장 받는 수단으로 국제 정치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국제 관계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을 좋게 평가해 주자면,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사들의 불신앙을 매우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이런 사사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본인의 시대에 안정을 추구하면서 자기의 통치 기간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 국제 정치를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정치도, 문화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분 하나님을 향한 신앙마저도 흔들어 버리는 중대한 잘못이었습니다.
스불론 사람 엘론에 대해서는 그저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만 전하고 급히 넘어가고, 곧 이어 므낫세 땅의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압돈에 대한 소개는 마치 길르앗 사람 사사 야일처럼 아들 사십명과 손자 삼십명이 모두 나귀를 타고 다닌다는 기록으로 자녀들에게 부를 상속하는 사사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세 사사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이 셋의 존재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있을 뿐, 자세한 그들의 삶을 전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할만한 어떤 단서도 주지 않은 채, 오히려 마치 ‘사사’라는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처럼 이들을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명의 이야기에 그 백성들을 ‘구원하였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구원하였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근거로 그들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였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사사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오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이야기 줄기를 따른다면, 이 세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사사가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으로 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으셨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세 사사들을 소개하면서 점점 사사들이 욕심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고발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빠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름의 사사 입산(히.입짠 אִבְצָן)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기에 바빴으며, ‘상수리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사사 엘론(히.엘론 אֵילוֹן)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종’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사사 압돈(히. 압돈 עַבְדּוֹן)은 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인 행세를 하고 다녔습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이야기를 거듭할 수록 점점 내리막을 향해 달려가는 듯합니다. 이 세 사사들의 시대 이후 삼손의 시대는 그야 말로 사사 시대가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보려는 듯 내리막의 막장을 보는 듯 합니다.
출처: 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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