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 세번째 사사 삼갈
이 글은 2019년 봄 성서학연구소 BIBLIA가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와 함께 진행한 “사사기-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 삼갈, 소(小)사사?
삼갈은 성경에 딱 한 절 나옵니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삿 3:31)
한 절 나와있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시작 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사기의 이야기를 설명할 때 그 순환구조 — 사람들이 죄를 짓고, 벌을 받고, 구원받고, 평안하고, 다시 죄를 짓고— 를 따라갈수가 없겠죠. 과거에 사사들을 구분을 할 때, 대(大)사사와 소(小)사사로 구분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사사기의 옷니엘의 이야기에서와 같이 사사의 일대기가 순환 구조에 잘 맞거나, 드보라나 기드온, 삼손처럼 사사가 했던 일들이 세부적으로 길게 기록되어 있는 사사들을 대사사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소사사라고 부릅니다.
이 구준에 따르면, 삼갈은 사사 중에서도 소(小)사사로 분류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사사니, 소사사니 하는 분류도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사면 다같은 사사이지 큰 사사는 뭐고, 작은 사사는 뭐겠어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웠으면 모두가 다 똑같은 사사입니다. 누구는 더 위대하고, 누구는 덜하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큰 사사, 작은 사사의 개념에 괜히 울컥합니다. 그리고 크고 작음을 나누는 기준도 참 억지스럽습니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나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가 일반이고, 목사나 전도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일반이듯이 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학자들이 대사사(major judge)니, 소사사(minor judge)니 하는 표현을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삼갈, 비록 혈통으로는 이방인지만
‘삼갈’이라고하는 이름은 이스라엘식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삼갈의 이름을 근거로 삼갈이 후르족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갈이 이스라엘 민족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출애굽 당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출애굽 1세대 갈렙 역시 학자들은 그가 그나스족(The Kenizzite)이며, 이들이 신앙 공동체로서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니까요.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단일 민족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강제 노역으로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쫓아 광야로 나와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공동체를 부르는 이름이 히브리인이고, 이들을 성경은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파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신앙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갈은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삼갈의 선조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후르 사람들의 신들을 섬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삼갈은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만을 유일한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삼갈을 부르셨습니다.
❖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이기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해양 민족이 블레셋입니다. 람세스 2세가 죽고난 다음, 가나안 땅은 일종의 진공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지요. 이 때 가나안 땅에 들어온 두 민족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로 대표되는 해양 민족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대략 10년에서 20년 정도 일찍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요. 이 두 민족이 기원전 12세기에 서로 가나안 땅의 더 비옥한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서로 싸웁니다. 그 전쟁의 이야기가 사사기에 기록된 것이지요.
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삼갈이 사용한 무기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말마드’ מַלְמָד 라고 소개된 ‘막대기’입니다. 이 말마드는 Hapax Legomenon 입니다. 성경에는 딱 한번 사사기의 삼갈 이야기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소를 모는데 사용하는 농기구 이거나, 소를 보호하는데 사용하는 무기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길이는 어떻게 되는지, 모양은 어떤지에 대해서 까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삼갈이 이런 무기를 사용한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해양 민족이라고 말했는데요. 흔히들 블레셋의 모체가 되는 해양 민족을 오늘날의 그리스 지역에 거주하던 미케네 사람들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해양 민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신과 그 신을 상징하는 동물이 ‘소’였습니다. 해양 민족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던 미데아 (Acropolis of Midea)와 그들의 이주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키프로스(Cyprus)에는 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들과 흙으로 빚어 구운 조상(彫像)들이 어렵지 않게 발굴됩니다. 해양 민족 미케네 사람들의 삶에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미케네 문명이 도리스인들의 침입과 지진으로 멸망하면서 이들이 동쪽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레반트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며 가나안까지 들어오게 되지요. 이 해양 민족의 상징이 소이거나, 또는 그들이 소를 중요시 하였기에 아마 이들에게 소가 신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거예요. 그리스 신화에도 제우스가 자주 소로 그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그 소의 민족, 또는 소를 신으로 삼아 섬기는 민족을 ‘소 모는 막대기’로 무찔렀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소 모는 막대기와 청동/철의 싸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이긴 것을 다른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블레셋으로 대표되는 해양 민족들은 이미 청동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였고, 철기도 사용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삼갈이 블레셋과 싸우던 사사의 시대가 대략 후기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청동기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지배 층과 전쟁 무기부터 철기로 바뀌기 시작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지역을 점령하였던 도리스 사람들이 그리스 지역에 철기 문화를 전파하였고, 이들에 밀려서 미케네 사람들이 가나안까지 들어왔으니, 미케네 사람들도 철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성경에서는 삼상 13:19에서 말하길, “그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의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구절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사사 시대의 마지막 때인 사울의 시대 이미 블레셋 사람들은 철기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삼상 13:20-21을 보건데, 블레셋 사람들은 벌써 철기를 농사에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람들은 철기는 커녕 청동기도 귀하던 공동체였습니다. 굳이 표현하지만, 아주 낙후된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문명의 수준이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격차가 큰 두 공동체가 전쟁을 했습니다. 블레셋의 승리는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다릅니다. 소 모는 막대기는 아마 나무로 만들어 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농기구를 들고 이스라엘을 이끈 사사 삼갈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삼갈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신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말이지요. 아니 시간 순으로 말하자면, 거꾸로 이야기 해야겠네요. 블레셋 군사들 앞에 선 삼갈처럼,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말이지요.
❀후르족 사람들(Hurrays)
‘삼갈’이라는 이름으로 보아서 삼갈의 혈통이 이스라엘, 또는 가나안 민족 중의 하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삼갈은 셈어족의 이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갈과 같은 어근과 발음을 가진 이름이 누지(Nuzi) 토판에서 발견되기에, 삼갈이 후르 사람(호리 사람)의 후손이라는 데에 학자들의 동의한다.
이 민족은 지중해 서쪽 지역, 오늘날의 아르메니아 주변에 근거지를 두고 대략 기원전 1550년을 전후로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놓은 글자 유산이 풍부하지 않아, 이들의 언어를 온전히 해독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들의 역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리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나라의 기록에도 이들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2차 사료로 이들을 파악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기원전 1550년 이후, 후르족 사람들의 지역이 확장되어서, 시리아 북부 지역과 아나톨리아 반도 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미타니 왕국은 후르족이 세운 국가로 널리 알려졌다. 후르 사람들과 가나안 땅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자료가 없지만, 후르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도 일부 거주한 것은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4세(1401-1391 BCE)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 알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호리 족속(창 14:6; 36:20,21,29,30; 신 2:12,22)이 바로 후르 사람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아마르나 서신에 의하면 이들의 신은 헵파(Hepa/Hepat)이다. 헵파를 주신으로 섬기는 후리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나안의 신들도 받아들였으며, 바알의 아내로 여겨지던 아나트(Anath) 역시 그들의 문화 속에 흡수하였다. 그러므로 삼갈을 소개하면서, “아낫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가나안의 여신인 아낫(Anath)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사기 [5] 네번째 사사 드보라
❖ 드보라,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꿀벌!
삼갈의 이야기를 하면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미 청동기는 일상 생활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이미 철기를 사용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가나안 지역을 호령하던 하솔의 왕 야빈은 철병거 구백 대를 보유한 군사 강국이었습니다. 또 신임이 두터웠던 시스라를 앞세워, 삼갈의 이후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혹한 정치로 괴롭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던 선지자가 드보라였습니다. 드보라의 남편은 랍비돗(לַפִּידוֹת)이었습니다. 랍비돗이라는 이름은 “횃불” 또는 “번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드보라(דְּבוֹרָה)라는 이름은 ‘꿀벌’이라는 뜻인데요. 하나님께서 번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꿀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여자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의 최종 책임자로 선택하셨다는 것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바깥으로 보이는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과거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여자들이 일종의 재산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 사람의 수를 셀 때 조차도 여인들의 숫자를 세지 않았더랬습니다. 집에서 식사를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가정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일들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하는 일들에 연장자인 여자의 생각이 반영될 지언정, 여자들은 남자들 아래에 종속되었던 사회가 지중해를 마주보고 있는 고대 서아시아 지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런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솔의 왕으로부터 압제를 받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펼치던 지도자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는데, “번개” 또는 “횃불”이라는 멋진 이름의 남자가 아니라, “꿀벌”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라니요!
랍비돗 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에게 납달리 게데스에 살고 있던 바락을 불러다가 납달리 사람과 스불론 사람들을 모아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전쟁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드보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바락이 선뜻 응하지 않습니다. 다볼산에 납달리 사람과 스불론 사람들 1만명을 모을 지언정,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시스라의 병거와 전쟁해서 이길 확률은 매우 적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무모한 전쟁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의심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함게 가면 내가 가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나도 이 전쟁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바락의 이 말에는 바락의 두려움과 믿음 없이 함께 녹아있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다볼산에 오릅니다. 전장터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 것이지요. “번개”라는 이름을 가진 바락(בָּרָק)도 두려워하는 그 전쟁터에 “꿀벌” 한 마리가 전쟁을 이끄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꿀벌’이라는 이름의 선지자 드보라가 사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건조한 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외적인 조건, 그리고 전통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선이 어떨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비록 여성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 다볼산에 꾸려야할 진영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또는 가나안 사람과 전쟁을 할 때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산 위에 진영을 꾸미는 것입니다. 평지에는 안됩니다. 언제라도 병거의 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병거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터 이스라엘이 병거를 갖추며 전쟁을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삼하 8:4에서 다윗이 하닷에셀과의 전쟁에서 병거를 탈취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솔로몬의 시대에 이미 천사백대의 병거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서, 다윗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에서 병거가 주요 무기체계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추측만 할 뿐입니다. 병거는 당시의 탱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 명의 군사를 조직했어도 굳이 비유하자면, 소총수들일 뿐 입니다. 그런 소총수들 사이로 탱크가 지나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무리 소총수들이 탱크를 향해 사격을 한들, 탱크가 멈추어 설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병거는 그 탱크보다 기동력이 더 좋습니다. 그러니 병거가 있고 없음은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아직 병거를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병거의 기동력을 감당해낼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병거가 쉽게 오를 수 없는 산 위에 진을 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래야하는 원칙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산이 다볼산입니다.
다볼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한가운데 있는 산입니다. ‘골짜기’라고 부르지만, 갈릴리 산지와 사마리아 산지가 사이에 끼어 가나안 땅을 동서로 나누는 분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길이가 대략 65km가 되니, 정말 어머어마한 평야지대입니다. 이 골짜기의 한 가운데 있는 다볼산(해발 575m)은 주변의 다른 산들과는 달리 모양이 독특하고 높습니다. 멀리서 보는 것 보다, 훨씬 경사가 급해서 병거가 오르기는 불가능한 산이지요. 그러나, 그 정상은 평탄해서 많은 수의 군인들이 진영을 갖추고 전열을 정비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습니다.
❖ 왕국 시대와 전혀 다른 사사 시대
꼭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드보라의 이야기에서 은근히 말하고 싶은 그것이 있거든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드보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드보라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여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서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와 벧엘 사이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면서, 드보라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삿 4:5). 그런데, 드보라가 여자이면서도 사사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드보라가 선지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니, 이스라엘이 의사결정을 하거나 분쟁이 있을 때, 재판을 하는 권위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왕정 시대는 달랐습니다. 대하 19:8에 보면 여호사밧의 종교개혁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여호사밧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재판 조직을 말합니다. 여호사밧이 만든 재판 제도에 따르면,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서 재판을 주도하게 합니다. 왕정은 거대한 나라와 제국을 시스템으로 통치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시스템의 원칙을 갖추어 놓아야 사람들 사이에 불만이 없고, 왕의 입장에서도 시스템 안에서 예측 가능한 통치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스템 안에서 예측 가능해야 원할한 통치와 왕의 명령이 세워질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왕은 레위인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자들과만 잘 관계를 맺으면 손쉽게 한 나라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왕은 이들과 동맹을 맺습니다. 왕은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풍요를 보장하고, 그들은 성전과 왕궁을 중심으로 왕과 결탁해서 그 왕의 통치에 정당성을 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제사장과 왕, 정치 지도자들과 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기원전 3세기 이후로는 레위인들 가운데에서도 서로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왕과 결탁해서 대제사장의 직위를 매관매직하는 어이없는 일들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이런 왕과 지배 계층에 속한 이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입니다. 예언자라고도 하지요. 선지자들은 조직과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돌무화과 나무 농사를 짓는 사람도, 목동도, 심지어 가정 주부인 여자도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옳지 않은 것에 침묵하지 않아요. 왕과 왕의 주위에서 권력을 탐하는 제사장들과 지파의 정치 지도자들의 도덕과 신앙의 타락을 모른 척 지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지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은요, 그 상대가 누군라도 “아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선지자들입니다. 그래서 왕과 제사장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공공연한 적이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선지자라고 앞으로 나온 사람이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수준이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아마 무시와 경멸도 서슴지 않았을 겁니다. 왕정 시대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던 때입니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 그 시대를 경험했던 사람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입니다. 이들이 과거의 역사를 꼼꼼히 다시 되돌아보니, 사사 시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자격과 사사들이 이끌어 가는 다스림의 원칙이 너무나 다른 겁닌다. 역사를 통해 보건데, 재판관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에게 (그녀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는가?” 성별도, 출신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출신을 따지자면 삼갈은 안 되죠. 이름이 벌써 이방 사람 이름이 잖아요. 성별로 따지면, 드보라도 안될 사람이죠. 하지만 성경에서는요 출신과 성별을 따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냐 임하지 않았느냐이고, 그것이 오로지 사사가 되는 기준이었거든요.
사사기 역사가가 드보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을 알기 위해서 이제는 ‘바락’이라는 사람을 보겠습니다. 성경은 바락을 소개하면서, 바락이 아비노암의 아들이었고, 납달리 땅의 게데스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소개를 읽고서는 바락이 납달리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호수아 19장 을 읽어보면,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지도에는 레위인들이 받은 도시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48개의 도시들의 명단입니다. 48개의 도시에 명단 중에 게데스가 있어요. 게데스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 장소가 서로 경합하지만, 게데스는 레위인이 살던 도시이자 심지어는 도피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들에게 땅을 줄 때,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히 48개의 도시들을 나누어 주었어요. 그렇다면,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레위 지파 사람이라는 말이겠지요. 비록 그 도시가 있는 땅은 납달리 지파가 할당 받은 영역이지만, 그 도시는 레위 사람들의 도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바락은 레위 지파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이제 다시 드보라로 돌아와서 드보라와 바락의 관계를 볼까요? 여성이자 선지자인 드보라가 남성이자 레위인이고 군대 장관인 바락에게 다볼 산으로 가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싸우라고 합니다. 왕정의 시대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조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고 다들 인정하는 레위인들이 사회적으로는 한 남자의 아내인 드보라의 명령을 받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에는 그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보라의 말에 바락이 오롯이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두려웠던 거지요. 그래서 드보라가 함께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겠노라고 한 발을 뺍니다. 결국, 선지자 드보라와 레위인 바락이 함께 하는 전쟁의 지도자가 남자이자 레위인인 바락이 아니라, 여자이자 선지자인 드보라가 된 셈입니다. 이게 놀라운 것이죠. 이 이야기를 글로 읽고 있는 왕국 시대 사람들, 또는 왕국 시대를 경험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몸으로 알고 있는 상식과 드보라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읽고 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레위인, 제사장, 열두 지파의 지도자가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출애굽한 선조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던 시대로 가보니,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이 그의 출신과 사회적인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는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이웃 나라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서로 연합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의 요건은 오로지 그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왕국의 시대와 사사 시대의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 힘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략으로
잠시 발칙한 상상을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에도 일종의 낭만이 있었습니다. 삼국지에 보면, 장군들이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대열에서 앞으로 나와서는 서로 적장끼리서 통성명을 하고 상대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하잖아요. 성경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을 보면, 전장에서 서로 만나 싸우기 전에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럼 드보라의 이 전쟁에도 그런 낭만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냥 상상해 보는 겁니다. 저 멀리서 이스라엘의 전쟁 지도자라는 자가 오는데, 걸음걸이도 그리 우람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점점 가까이오면서 자세히 보니, 여자인 거지요. 철로된 갑옷으로 중무장한 시스라 앞에, 글쎄요. 가죽 갑옷이라도 입었을까 모르겠을 드보라가 섰습니다. 일단 이 상황이 시스라에게는 모욕적이었을 겁니다. 아마 이스라엘의 적장이 자기를 만나러 왔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여자 하나를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깔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시스라가 드보라에게 말합니다. “나는 하솔 왕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다.” “나는 태양의 아들(‘시스라’라는 이름의 뜻으로 추정)이다”. 그 때 상대편의 여자가 대답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사사 드보라다.” “나는 ‘꿀벌’이다.” 전쟁의 지도자 쯤 되면, ‘번개’니, ‘천둥’이니, ‘태양의 아들’이니, 뭐 이런 거창한 이름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말벌이나 땡벌도 아니라, ‘꿀벌’이라니요! 그러니 시스라가 드보라를 얼마나 우습게 봤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태양의 아들’ 도 아니고, ‘번개’도 아니라 ‘꿀벌’을 통해서 새 역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다볼 산에 진을 치고 있는 드보라가 산 밑으로 이스라엘 군인들과 함께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거지요. 이스라엘은 산 위에서 버텨야하는 겁니다. 내려오면 죽는 거예요. 이스라엘 군대에는 병거가 없잖아요. 시스라는 애초에 이 전쟁을 시작할 때, 장기전이 될 수도 있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왔을 겁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산 위에서 금방 내려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다볼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겁니다. 시스라가 보기에 전쟁 경험이 없는 것이 분명한 여자 지도자는 기본적인 전쟁의 전술과 전략도 모르는 어리석은 장군일 뿐입니다. 얕잡아 봤겠죠.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 전쟁터에 여자 꿀벌이 나올 때부터 알아봤어. 전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그런데 드보라와 시스라의 전장인 이스르엘 골짜기는 한 가지 특징 있습니다. 건기와 우기 때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평야와 같은 곳이 이스르엘 골짜기입니다. 이 지역은 원래 물이 많아요. 성경에도 이 이스라엘 평야에 있는 기손 강이라는 강이 나오는데(삿 4:13), 평야와 같은 이스르엘 골짜기 구석구석을 마치 사람 몸의 실핏줄처럼 뿌려져 있는 강이 기손 강입니다. 비록 농수로 같은 강이지만, 그만큼 땅이 물이 풍부하고 비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기가 되면요, 이 땅 전체에서 물이 올라 와요. 땅이 머금고 있는 물이 워낙에 많다 보니까 우기에는 물이 올라오는 거에요. 물이 올라 와서 이스르엘 골짜기가 완전히 진흙창이 됩니다. 지금도 우기에 이스라엘 골짜기의 밭을 걸을라 치면, 운동화 밑에 쩍쩍 달라붙는 진흙 때문에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걷기를 포기할 정도예요. 드보라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스라는 몰랐구요.
시스라가 다볼 산에서 군대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서는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 병거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이스라엘 군대가 다볼산 자락 앞에서 머리를 돌려 산 뒤로 돌아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시스라는 두려움에 떤 이스라엘 군대가 도망간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더 열심히 이스라엘 군대를 뒤쫓아가는데, 아무리 달려도 이스라엘 군대와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거예요. 병거가 전부 진흙에 쳐박힌 거지요. 그야 말로 기손의 물결이 땅을 적시고 병거들을 꼭 붙들고 있는 듯 꿈쩍하지 않는 것입니다(삿 5:21). 땅이 병거가 달리기에 좋을 때나 시스라가 전쟁에서 유리한 거지, 이미 전차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면 병거에서 내려와 싸워야합니다. 이제는 창과 화살의 전쟁일 뿐입니다. 그리고 육탄전이 벌어지겠지요. 그런데 철 갑옷을 두르고 있는 시스라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병거에서 내려 오면, 오히려 진흙에 더 깊게 발이 빠져서 움직이기가 더 힘들겁니다. 전쟁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병거에서 내린 시스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도망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병거를 타고 도망하는 것이 빠를까요, 내려서 달리는 것이 빠를까요? 뛰어서 도망가는 것이 빠를까요, 걷는 것이 빠를까요? 당연히 달리는 것이, 병거를 타고 달리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겠지요. 그러나 시스라는 걸어서 도망하였습니다(삿 4:17). 진흙 때문에요. 오히려 입고 있었던 철갑옷이 진흙을 걷기에 거추장스러워서 다 내벗어던지고 가지는 않았을까요?
❖ 여인의 명령으로 시작한 전쟁, 그리고 여인의 손으로 끝난 전쟁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겐 사람들이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의 하나라고 소개합니다(삿 4:11). 겐 사람들은 지역적으로 하솔과 가깝기 때문에 하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또 겐족 자체가 원래는 유목을 하면서 시나이 반도 북쪽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인지라, 유목민들의 전통을 따라서 자기들이 만나는 사람이 우리의 적이든 아니면 친구든 모두에게 먼저 친절하게 맞이해 주고 대해주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었습니다. 시스라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망 간 겁니다. 나름대로 시스라가 판단한 현명한 선택이었지요.
이곳으로 도망갔을 때, 잘 아시다시피, 야엘이 시스라에게 우유를 주고, 따뜻한 이불로 그를 덮어 주었습니다. 시스라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여태까지 전쟁하고 도망 가는 중인데, 그 장막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아마 시스라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하나처럼 함께 출애굽한 모세의 장인의 가족의 장막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가장 좋은 피난처였기 때문에 마음을 놓았을 수 있었을 거구요. 또 이 긴 거리를 진흙창을 달렸으니, 체력이 거의 방전되었을 겁니다. 배도 부르고, 이제 몸도 따뜻하니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에게로 가서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노리에 박아버렸습니다. 갈릴리 북부를 호령하고 이스라엘을 떨게 했던 그 위대한 장군이 여인의 손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드보라의 전쟁 이야기는 그냥 사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은 소수자들이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역사의 전면으로 드러나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선택하여 사사로 세우셨을까요? 왜 드보라와 바락을 불렀을까요?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를 보면,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삿 5:4-5)
출애굽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드보라는 출애굽의 역사를 알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의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 책의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예언자들의 가장 큰 역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었던 역사,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었던 율법을 다시 기억나게 해서, 그들의 현재와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과거(역사)를 통해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궁극적으로 현재를 바꾸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드보라는 역사를 알고 있는 여자였고, 선지자였습니다. 드보라는 출애굽의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의 이유가 과거 선조들이 출애굽 당시 새 신들을 선택하여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터 징계를 받던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삿 5:8).
결국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뛰어난 문화와 기술에 눌려서 그들을 두려워했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지에 큰 길이 있었지만, 그 길로 다니지도 못하고, 산에 나 있는 오솔길로 다녔습니다. 조금 평지와 가까운 곳에 정착할라 치면 가나안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서는 마을을 쑥대빹으로 만들어 버려서 이제는 평지 가까이로 내려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삿 5:6-7).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옳지 못한 일을 일삼던 이스라엘이 받은 응분의 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것을 바꾸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알고 있던 여선지자 드보라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평지의 길을 마음 껏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고, 여선지자 드보라를 통해서 하셨습니다.
❖ 불행의 그림자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는 마냥 즐거운 승리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 노래의 중간, 13절에서 18절 사이에는 함께 싸운 이스라엘 지파의 명단이 나오는데요. 에브라임 사람, 베냐민 사람, 므낫세 사람(? 마길), 스불론 사람, 잇사갈 사람, 르우벤 사람, 납달리 사람들이 내려와서 싸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명단의 끝에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했다”고 이야기하고, “단은 배에 머물렀다”고, 그리고 “아셀은 해변에 앉아 자기 부둣가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길르앗 지역에는 갓지파가 살고 있었으니, 길르앗은 갓지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단지파와 아셀지파는 해변의 땅을 받은 지파들인데요. 이 세 지파의 사람들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답니다. 더군다나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아예 이야기 조차 하지 않아요. 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일까요?
사사의 시대는 끝나지 않은 정복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다만 공동체의 지도력이 여호수아에서 사사로 이전이 된 시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경계를 나누어 주시고 각 지파에게 주신 것은 땅만이 아니라, 그 땅을 정복해야하는 소명도 함께 주신 거예요. 그 소명은 지파 혼자 감당할 수있는 몫이 아닙니다. 열두 지파가 연합하여 함께 이루어 나아가야할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도우며 싸워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모세에게 땅을 받으며, 가나안 땅의 정복이 끝날 때까지 분배 받은 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민 32:20-42). 출애굽한 이스라엘 중의 하나라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그 약속을 실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약속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사 드보라가 소집한 전쟁에 함께하지 않은 지파들이 있는거예요. 여호수아라는 지도자가 죽고 난 후, 사사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파들 사이의 연대 의식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는 그 재앙의 시작을 울리는 서곡과 같은 노래입니다. 광야의 시대와는 달리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난 다음부터 문화, 경제적인 수준은 광야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으로 연결된 지파의 정체성들이 정착해서 누리는 안정적인 삶을 누리면서 느슨해 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것이 나중에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마저도 느슨해 지는 이유가 되었고, ‘지파의 연합’이 아니라, 결국은 지파들 사이에 내전까지 벌어지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그 징조를 슬쩍 내비쳐주는 겁니다. “아, 아무개는 오지 않았구나! 누구 누구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며 시스라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왔는데, 아무개는 주판알을 튕겨보고 오지 않았구나!”
결국 드보라도 아니고, 바락은 더더욱 아니고, 전쟁에 참전한 지파 중의 어느 장수도 아니고, 출애굽할 때 함께 나온 겐족의 여인의 손에 시스라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전쟁 무기가 아니라, 여인의 천막을 붙들고 있는 말뚝에 시스라가 죽었다는 노래를 통해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런 것을 덧붙여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전쟁은 드보라와 바락이 이끈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 전쟁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열두 지파가 여호와 하나님의 땅에서 연합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생각하기에 하찮게 보이고, 그 존재감 조차 없어 보이는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그 때,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고 선택하신 그 만이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그가 비록 이스라엘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지라도!
사사기 [6] 다섯번째 사사 기드온
❖ 미디안 사람들
므낫세사람 기드온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미디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시작에 대해서는 창세기 25장에 나와 있는데요. 아브라함이 얻은 세번째 아내 그두라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의 명단에 미디안이 있습니다(창 25:2). 굳이 조상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아담의 후손이고 한 가족이겠지만, 조금더 가까이 올라가보면, 아브라함-이삭-야곱(이스라엘)으로 내려오는 족보를 보건데, 미디안이나 이스라엘이나 모두가 같은 할아버지(아브라함)를 두고 있는 커다란 범위의 한 가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혈통으로 한 가족이라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신앙으로 한 가족이 되는 것 사이에는 정말 큰 간격이 있는 것같아요. 창세기의 내용에 보면, 미디안의 자손들이 가나안을 떠나 동쪽으로 갔다고 말하는데요(창 25:6). 아마 오늘날로 말하자면,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의 땅으로 이주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가나안식 문자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남겨놓은 문학이라고 할만한 글이라던가, 기록해 놓은 석비, 또는 토기 위에 써 놓은 글과 같은 것들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미디안 사람들이 나라를 만든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요. 향료나 향신료를 주요 물품으로 지역과 나라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래서 요셉도 미디안 사람들에 의해서 팔려갔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창 37:28)? 한 지역에 정착하며 살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주거지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미디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 중에 홍해에 가까운 딤나(Timnah)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 지역은 당시 번창하던 구리 광산었어요. 이 구리 광산 지역에 하토르(Hathor)라는 풍요의 여신을 섬기던 신전이 있는데, 미디안 사람들이 세운 신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디안 사람들, 또는 적어도 미디안 사람들 중의 일부는 하토르를 섬겼다고 추정할 수 있겠네요.
일반적으로 대상들은 단지 물건 만을 파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군인이기도 하거든요. 미디안 사람들이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닐 때,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있는 물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다니다보면, 마을 사람들의 성향은 어떤지, 그리고 그 성의 치안의 상태는 어떤지, 마을 사람들이 그 성읍의 지도자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등등 시시콜콜한 마을과 성읍의 정황들을 알게 되는데, 이런 정보가 축적되다보면, 그들이 가진 무력으로 한 성읍이나 마을을 약탈하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삿 6:5). 그러니, 미디안 사람들을 사막의 바이킹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이들은 이렇게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용사
낙타를 탄 베테랑 전사들인 미디안 사람들이 워낙에 강력한 지라, 이 들이 한번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휘저으면 감당해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에다가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고 살았다고 합니다.
산에 파놓은 굴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광야의 오아시스인 엔게디에 가보면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 절벽 한 가운데 굴을 파놓고, 그 굴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동굴은 기원전 8-7세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쿰란 사람들이 기록했던 두루마리 중의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살 만큼의 넓은 공간을 만들기 전에 이미 작은 동굴이 자연적으로 있었을 거예요. 그 동굴을 사람이 손을 대서 팠을 텐데요. 아마도 절벽 맨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작업을 했을 겁니다. 작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하면, 이제는 파놓은 동굴에서 물이 있는 아래 골짜기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잠을 잘 때나, 적들이 쳐들어 오면 사다리를 걷어 올리는 거예요. 그러면 적들이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안전한 피신처가 되는 겁니다. 기드온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동굴에 살았다고 상상해 보세요. 물론 “안전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동굴에 들어가서는 그 아래쪽에 심어 놓은 농작물과 양, 소, 나귀들이 약탈 당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볼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처지도 함께 상상해 본다면, 삿 6:2이 매우 비참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묘사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비참했던 이스라엘의 상황은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그림 그리듯 묘사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던 중이었습니다(삿 6:11). 밀은 타작마당에서 나귀가 타작하는 타작판을 끌면서 밀의 낱알을 떨구고, 바람에 날려서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타작마당의 크기야 각 집안마다 그 수확량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나귀가 빙빙 돌면서 타작판을 끌고가는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면, 아무리 적어도 30평 남짓의 공간은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포도주를 짜는 틀은 대부분 바위를 깍아서 만들기 때문에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나귀가 타작판을 끌 수도 없을 뿐더러, 그 크기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3평을 넘지 않습니다. 또 타작마당은 평지에 만들어 놓지만, 포도주를 짜는 틀은 언덕배기나 산에 있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그 시기에 당연히 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시기에 타작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면, 미디안 사람들에게 약탈을 당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 중턱이나 언덕 어딘가에 만들어 놓은 작은 포도주를 짜는 틀에서 미디안 사람들 몰래 손으로 밀 낱알을 털고 있었던 것이지요. 기드온과 같은 이스라엘의 큰 용사(삿 6:12)가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 끝없는 수탈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구절이지만, 조금더 깊이 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미디안 사람들에게 잔혹한 수탈을 당했는지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수탈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위의 이야기처럼 밀을 수확하는 시기에 쳐들어 와서는 지난 한 해의 농사의 결실을 빼앗아가기도 했지만, 파종할 때에도 이스라엘 땅에 와서 약탈을 했습니다(삿 6:3). 이스라엘의 달력을 참조해 보면, 씨를 뿌리는 시기는 아홉번째 달이나, 열번째 달입니다. 그리고 밀을 거두는 시기는 세째달이구요. 그러니 기드온 시대에 미디안의 약탈을 서술하는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미디안 사람들이 아말렉 사람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반년(6개월)마다 이스라엘에 와서는 파종하기 위해사 지난 여름 창고해 보관해 놓은 밀 씨앗들과 밀을 추수하고 거두어 들인 낱알들을 모조리 쓸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또 파종하는 시기에 양, 소, 나귀도 남기지 않고 가져갔다고 했는데요(삿 6:3-5). 씨뿌리는 달인 열번째 달 바로 한 달 후가, 양들이 새끼를 낳는 시즌입니다. 그러니, 파종하는 때 이스라엘에 메뚜기처럼 몰려들어와서는 곧 출산을 앞둔 임신한 암양들을 약탈해 갔다는 것이지요. 끝임 없는 수탈이면서 셈조차 할 수 없는 대규모의 약탈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던 이스라엘이 하나님 없이 살면 자유로울 것 같고, 내 눈에 좋아보이는 대로 살면 행복할 것같아 보였지만, 결국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끝없는 약탈이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아이러니 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이들의 결말이기도 하구요. 결국 이스라엘은 그제서야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 여호와, 여호와의 사자, 선지자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때문에 드디어 정신을 차린 모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살려달라고 했겠지요.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달라고 했겠지요. 그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삿 6:8).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제일 먼저 전한 것은 ‘출애굽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잊고 살았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이스라엘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신들보다 위대한 신이며, 더 나아가서는 이집트의 그것들이나, 지금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섬기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다시금 출애굽의 역사를 되짚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그 선지자를 ‘여호와의 사자’라고 부릅니다(삿 6:11).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기드온이 그 선지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물어보지요. 그 때, 선지자가 기드온에게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사사기 6:14에서 “선지자가 그를 향하여 이르되,” 또는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여호와의 사자, 선지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모두가 같은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번역을 해 놓았지만, 이 표현의 히브리어 ‘말아크 아도나이’ מלאך יהוה는 ‘여호와의 천사’라고도 번역이 됩니다.
히브리어 ‘말아크’ מלאך를 천사라고 번역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천사’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영적인 존재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영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메신저'(Messanger)입니다. 그러니, 우리 말로 ‘사자’라고 번역한 것은 참 잘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말 구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이 ‘말라기’이지요? 히브리어로는 ‘말아키’ מלאכי, 우리 말로 해석하면, ‘나의 천사’, ‘나의 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말라기는 ‘나의 사자’,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선지자의 역할이 바로 그거예요. 자기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부르신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순간, 그는 메신저, 천사, 사자, 선지자가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곧 ‘하나님의 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기드온에게 이야기 하는데,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삿 6:14,16)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삿 6:20)라고 기록해는데, 이 모든 표현은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곧 여호와의 사자요, 여호와의 사자가 곧 여호와의 천사이며, 여호와의 천사가 곧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그 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도식은 여기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이야기(창18),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한 이야기(창 32),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이야기(삿 13) 등에서도 계속 나옵니다.
❖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 그러나 여호와 샬롬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출 33:20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라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등 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는 사실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이고요. 기드온은 자기가 만난 사람이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사자이고, 하나님의 천사이며, 곧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하기에 자기에게는 여호와’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갑작스레 그 사자가 놀라운 기적과 함께 제물이 드려진 뒤 사라진 것을 보고서는 떨면서 말하지요. “여호와 하나님, 내가 주님의 천사를 대면하여 뵈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가 곧 여호와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본 셈입니다. 그러니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기드온은 곧 죽게 될 겁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안심해라. 두려워 할 필요없어. 넌 죽지 않을거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그 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그가 여호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가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말이니까요.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죽음이 아니라,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기드온 사이의 관계 회복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과의 관계회복을 뜻하는 것이 아닐지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샬롬)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집에는 바알의 제단이 있었습니다(삿 6:25). 참 아이러니 합니다. ‘요아스'(히. 요아쉬 יוֹאָשׁ)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집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알을 위해서 불을 피우고 제사를 드리는 바알의 제단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알 수 있지요. 기드온의 집에 바알을 위한 제단이 있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냥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성경을 잘 읽어보니, 기드온의 아버지의 제단은 개인용 제단이 아니라, 그 성읍의 사람들 모두가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려면 그 제단을 찾아왔다는 것도 알수 있습니다(삿 6:28이하). 그러고 보면, 요아스가 바알의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했거나, 바알 신앙을 수호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그것으로 돈을 벌었던 사람이었을 겁니다. 기드온은 그런 집안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바알 신앙에 물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호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샬롬)를 회복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분명해 졌습니다. 그 제단을 허물고, 바알 신앙을 그 집안과 이스라엘로부터 끊어낸 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 이상한 제사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을 향한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먼저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바알의 제단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발견되는 이방신들을 위한 제단들의 일반적인 모양들로 보아서, 사각형 또는 동그라미 모양으로 돌들을 쌓은 형태일 겁니다. 기드온은 산성의 꼭대기, 헐어버린 아버지 집의 제단 옆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제단을 만들 때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재료의 문제와 모양의 문제인데요. 하나는 돌로 제단을 쌓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돌로 제단을 쌓을 때에는 다음지 않은 돌로 만들어야합니다. 정으로 쪼아서 다듬은 돌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제단을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지 말아야합니다. 이유는 제사장의 하체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이스라엘의 므깃도(Tel Megiddo)라는 곳에 초기 청동기 시대, 그러니까 대략 3500–3100 BCE 사이에 만들어진 제단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직 가나안 땅으로 오기 이전의 시대였고, 므깃도에 사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떠오르는 해, 또는 달을 섬겼을 것입니다. 이 제단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단은 저렇게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 때, 정으로 쪼개며 깎지 말고, 이방의 제단처럼 계단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양의 차별화를 통해서 그들과 우리 이스라엘이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두번째는 흙으로 단을 쌓는 방법이예요(출 20:22-26).
기드온은 급하게 만들어야 했으니, 아마도 흙으로 만든 제단을 만들었을 겁니다. 이미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를 드리던 부정한 돌로 제단을 만들 것같으면, 헐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만든 후, 나무로 만든 아세라 상들과 바알들을 찍어서 그 나무들로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된 우상들의 모양들을 보면, 대부분이 흙을 구운 것이거나, 청동, 또는 금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아마도 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은 오랜 기간 동안 보존되기 힘들었기 때문에 현재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원래 율법에서 말하는 것과도 크게 부딛치는 것도 없고요.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기드온의 아버지에게 있는 칠년된 둘째 수소를 끌어다가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왜 하필 둘째 수소일까?” 제물을 드릴 때 몇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수컷이어야한다는 조건도 있고, 흠이 없어야한다는 조건도 있습니다. 또, 제사에 따라서 처음 태어난 것을 제물로 드려야한다는 단서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둘째 수소”를 제물로 규정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둘째 수소”라는 표현이 성서 해석자들에게는 고민거리였습니다. ‘둘째 수소’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파르 하쉐니’ פַר הַשֵּׁנִי 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이 없었어요. 그러니, 원래는 모음 없이 פר השני 라고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자음들만 나열된 히브리어는 ‘파르 하쉐니’라고 읽을 수도 있지만, ‘파르 하샤니”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파르 하샤니’라고 읽으면, ‘튼실하고 기름기 많은 보기좋은 수소’로 뜻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에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리스어로 번역이 된 성경의 사사기에는 “칠년 된 둘째 수소”가 아니라, “칠년된 기름진 수소”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 기드온, 여룹바알
그 튼실한 숫소를 끌고 와서 밤 중에 제사를 드립니다. 무서웠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이라고 섬기고, 최고의 신이라고 모시는 바알의 제단을 허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지는 충분히 상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아버지와 기드온의 가족들에게는 그 바알 제단이 큰 수익을 안겨주는 장소인데, 그것을 허물었을 때, 아버지와 가족들로부터 받게 될 비난 역시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밤 중에 제단을 허물고, 밤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지요. 아침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완전히 사색이 되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에게 아침 제사를 드려야하는데, 제단은 허물어 졌고, 흙으로 쌓아 올린 허름한 제단이 떡허니 있는 거지요. 이제 곳 성읍의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를 지내러 올텐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했을 것입니다. 성읍의 사람들의 반응은 더 격렬했습니다. “네 아들을 끌어 내라. 반드시 죽여야 하겠다.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어냈다.” 바알의 제단이 허물어 진 것을 보고 분노했던 사람들, 나무로 만든 바알과 아세라 상이 찍혀 나가고 태워진 것에 분개한 사람들은 므낫세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지요.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바알의 제단이 허물어진 것을 보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으로부터 압제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못살겠노라고, 그래서 구원해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부르셨습니다. 사사기의 순환구조에 의하면 이제 기드온을 중심으로 전쟁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전쟁을 하기전에 ‘기드온의 집에서 벌어진 일’이 불쑥 끼어 들어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이 부분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문제는요, 이스라엘과 미디안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거예요. 미디안의 억압을 끊어내고 다시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하게(샬롬) 회복시켜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사기의 순환 구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툭 튀어 나온 겁니다. 기드온(גִּדְעוֹן)은 ‘잘라 버리다'(גד”ע)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단지 바알과 아세라의 상을 찍어버린다는 의미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과거의 삶을 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오늘을 알리는 이름입니다. 기드온의 적은 표면적으로는 미디안이었지만, 진짜 적은 바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있은 후, 기드온은 ‘바알과 다투는 자’, ‘여룹바알'(יְרֻבַּעַ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겁니다.
❖ 사사도 온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이 그 삶을 바꾸어 놓았을지라도, 어제까지 바알을 섬기던 기드온이 갑자기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사사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이 책에서 기드온의 시대부터는 사사들의 부족한 점들이 조명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사사들 조차도 점점 온전한 하나님 신앙으로부터 멀어져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사사들의 내리막 길’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에 미디안,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이 진을 쳤습니다. 기드온은 사자들을 보내서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는 불렀습니다. 왜 열 두지파 모두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만, 이미 드보라의 시대부터 그 징조를 보인 열두 지파들의 연대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것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미디안은 강력한 낙타 부대를 이끌고 지금까지 칠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낙타 부대들은 주로 평지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대상들은 주요한 길을 따라서 장사를 하고 약탈을 일삼았는데, 이 주요한 길들이 산지를 통과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왕의 대로와 해변 길, 그리고 골짜기의 평지를 따라서 형성되었고, 미디안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 길들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이 길들에서 벗어나 있거나, 이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산지에 속하는 유다, 시므온, 베냐민과 에브라임은 처음부터 미디안과의 전쟁을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사라면, 온 이스라엘을 불렀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들을 모두 부르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인 이스르엘 골짜기를 기대어 살고 있는 네 개 지파만을 소집한 것입니다. 막상 이 지파들을 불러 놓고도 정말 이길 수 있는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징표를 구합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둘텐데, 아침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에는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른 땅에서 이슬에 흠쩍 젖은 양털을 보여주었으면, “아이고,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주님을 의심했습니다. 이제는 주님 말씀대로 나가서 싸우겠습니다.”해야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양털의 이슬은 마르기 쉽지 않지만, 땅의 이슬은 해가 뜨면 곧 마르니, 이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그냥 자연 현상이겠다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또 다시 하나님께 징표를 요구해요. 이번에는 땅은 다 젖고, 양털만 말라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마음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요청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단지 기적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기적은 사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바램대로 응해 주셨지만, 이제 사사도 예전의 사사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희석되는 현상이 단지 일부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사를 비롯한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흐르는 풍조가 되었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기적을 통해서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 이상한 전쟁, 하나님의 전쟁
기드온은 하롯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진영은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전쟁을 하기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 3만2천명이었습니다. 참 많이 모였겠다 싶지만, 미디안 군사의 수가 13만5천명이었으니(삿 8:10), 절대로 3만2천명이라는 수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 수가 많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동안 봐왔던 이스라엘의 믿음의 상태로 보건데, 이 전쟁에서 이기면 분명히 자기들이 잘 싸워서 이겼노라고 으스댈 것이 분명하거든요.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우리가 1:5로 싸워서 이겼다!”며 자랑들을 늘어 놓겠지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두려운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말하니, 2만2천명이나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2/3가 이탈한 것입니다. 불러서 오기는 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땅에서 그 누구를 신이라고 부르던 내 배만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바알이던지 아세라이던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미디안으로부터 약탈을 당해서 힘들게 살아갈 지언정, 목숨만 붙어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1만명 밖에 안남았으니,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아도 한 사람이 적어도 13명을 맡아서 싸워야 하는 힘든 전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다시 이 수도 너무 많다며 이들 중에서 싸울만한 사람을 선택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싸울 자격이 있는 자들인지 ‘시험’하시겠다고 합니다.
바로 전에 기드온은 이 전쟁에서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정말 구원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곧이어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이스라엘을 시험하십니다. 이 또한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현실점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롯으로 내려간 기드온은 병사들에게 물을 마시라고 합니다. 그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시원한 물이 터져나오는 샘을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물에 뛰어드는 사람, 들고 있는 창과 방패를 잠시 내려놓고, 벌컥벌컥 무릎을 꿇고 머리를 물 속에 쳐 박으며 마시는 사람,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사람만이 전쟁에 나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고대 성서해석자들은 이렇게 물을 마시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한 손에는 창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두 손으로 마시면 손을 모아서 후르륵 마실 수 있는데, 개처럼 핥았다면, 분명히 한손으로 물을 떴을 것이고, 그렇다면 다른 한손에는 창이나 방패를 잡고 있지 않았겠나하는 상상인거지요. 전쟁터에서 물을 만났지만, 늘 주변에 적들이 있는지를 경계하면서 마시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쟁터에 나왔지만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나온 이들을 선택하신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신 사람들이 고작 300명입니다. 3만2천명 중에 300명이라고 한다면, 그 수가 1/100 이하로 줄어든 셈입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 전쟁은 사람이 이끄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300명 대 13만5천명, 그러나 병사들의 수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을 염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때, 미디안 진영에서 대화하는 미디안 군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보리떡 한 덩이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서는 장막을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삿 7:13). 그리고는 그 보리떡이 기드온일 것이라는 염려어린 대화였습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라고 번역이 된 ‘쯜릴 레헴 세오림’ צְלוּל לֶחֶם שְׂעֹרִים 이라는 말 중에서 ‘쯜릴’이라는 히브리어는 성경에 딱 한번 나오는 Hapax Legomenon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문맥상 그냥 ‘덩어리’라고 번역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원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그 어원을 찾아 올라간다거나, 이와 같은 어근을 가진 말이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연구하는데, 아랍어에 이 단어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뜻은 ‘말라 비틀어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보리떡 한 덩어리’는 ‘말라 비틀어진 보리 빵’이라는 뜻일 텐데요. 이 말라 비틀어진 보리빵이 딱 기드온의 군사의 처지와 같습니다. 갓 구운 따뜻한 빵도 아니고, 밀 수확을 끝낸 후 갓 도정한 밀로 만든 빵도 아닙니다. 미디안을 피해서 산지 구석구석의 척박한 땅에서 자란 거친 보리로 만든 빵, 그것도 오래전에 만들어서 말라 비틀어진 빵과 같은 신세가 꼭 이스라엘의 신세이고, 기드온과 함께한 군사의 신세입니다.
그런데, 그 빵 때문에 장막이 무너졌다는 미디안 군사들의 꿈 해몽은 그야말로 기드온에 주신 하나님의 메세지인 셈이지요. 그 준비부터 이상한 전쟁의 승리 무기도 이상합니다. 빈 항아리와 그 항아리 안에 든 횃불, 그리고 나팔이거든요. 칼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니까요. 미디안 군사들의 자기들을 둘러싸고 있는 횃불과 나팔 소리를 들으며 혼비백산 도망가면서 자기들끼리 칼로 싸우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이 하셨으니까요. 13만5천명을 상대로 300명이 싸운 전쟁, 항아리와 횃불, 그리고 나팔을 들고 싸운 전쟁, 이 이상한 전쟁은 바로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 에브라임의 참전과 지파들 사이의 다툼
미디안 사람들이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자기 땅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 때, 기드온이 에브라임에 전령을 보내서 도망가는 미디안 사람들을 앞질러 요단강에 이르는 길목을 막고 함께 싸우자고 말합니다. 드디어 에브라임 지파가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미디안의 부대 지휘자였던 오렙과 스엡을 잡았습니다. 오렙은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포도주 틀에서 죽였는데 그 죽임의 장소 또한 상징적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의 약탈이 두려워서 타작마당에서 밀을 타작하지 못하고, 포도주 짜는 틀에서 밀의 낱알을 손으로 일일이 털어 내야했습니다. 포도주를 짜를 틀은 바위를 깍아서 만드는데, 바위에서 죽이고, 포도주 틀에서 죽였다는 것은 약탈로 인해 당했던 고난의 상징이었던 포도주 짜는 틀이 있는 바위에서 둘을 죽임으로 이제 더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에브라임 사람들과 기드온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왜 전쟁을 할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따지는 거지요. 왜 부르지 않았을까요? 이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어 놓겠습니다. 어찌되었든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요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이 당신들의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이 떨어진 포도를 주운 것이 아비에셀이 추수한 것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기드온은 에브라임이 한 일이 그동안 전쟁을 치룬 네 개 지파가 한 일보다 더 뛰어났다며 칭찬을 했습니다. 이 말 역시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잠시 뒤로 미루어 놓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에브라임의 마음을 풀어 준 후, 기드온과 그 군사들은 요단 강을 건너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합니다. 단 300명의 군인들로 이 큰 전쟁을 치룬 것과 이 긴 거리를 쫗아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요단 강을 건너 지친 몸을 이끌고 적들을 추격하다가 숙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숙곳의 사람들에게 지금 병사들이 지쳤으니, 빵 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숙곳의 지도자들이 비아냥 거리면서 거절합니다. “세바와 살문나를 마치 이미 잡았다는 듯이 우리에게 말하시는 구려?” 그렇게 거절 당한 기드온이 미디안의 군사들을 추격하며 산지 동네인 브누엘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숙곳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드온의 용사들을 조롱하며 빵을 건네주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그것 아시나요? 이 숙곳과 브누엘이 이스라엘 지파 중의 하나인 갓지파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르우벤 자손들과 갓 자손들은 가축 떼가 많아서 가축 떼를 놓아 먹일 만한 적절한 장소로 요단 동편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요단의 동편은 가나안이 아니지요. 가나안의 문턱이기는 하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라고 정해주신 그 땅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를 설득하여 그 땅에 머물게 되었습니다(민 32). 그렇지만, 그 땅들은 아람, 암몬, 모압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땅이면서, 왕의 대로(King’s Highway,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를 연결하던 도로)가 지나가서 이방인들의 왕래가 잦았던 곳인지라, 고유한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과 문화가 위협을 받을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살면서 아마도 이 사람들은 요단강 건너에 살고 있는 10개의 지파들보다는 그 지역을 오가며 장사하던 미디안 사람들과 더 친분을 쌓았던 모양입니다. 성경에서 소개하는 기드온과 갓지파 사람들의 대화로 보건데, 갓지파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미디안과 오히려 더 가깝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추측이지만, 그렇게 싸운 미디안 적군 가운데 숙곳 사람, 그러니까 갓지파 사람도 있지 않았나 의심스럽습니다(삿 8:14). 기드온은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사로 잡아온 세바와 살문나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떠벌였던 말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망대를 허물고 그 성읍 사람들 가운데 책임져야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형제들 끼리,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살상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바와 살문나도 죽였습니다. 출애굽한 열두 지파의 공동체는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이상적인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 기드온의 본색
이렇게 전쟁 이야기 뒤에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삿 8:28)라고 끝내는 것이 사사기의 순환구조 상으로는 자연스러운 배치입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의 눈에 기드온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낼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전의 사사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거든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찾아와서는 “우리를 미디안 손에서 구하여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삿 8:22)라고 부탁을 합니다. ‘왕’이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았지, 왕이 되어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이 요청을 기드온이 거절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삿 8:23)라는 기드온의 대답이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이 대답은 다음 장에서 ‘아비멜렉’을 이야기할 때 덧붙여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드온은 왕으로 추대되는 것은 거절하였지만,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그 기드온이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다고 은근슬쩍 이야기를 합니다. 왕이 되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획득한 전리품 중에서 귀고리 하나씩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요청으로 들어온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1,700세겔입니다. 세겔이라는 단위가 시대에 따라서 또 지역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1,700세겔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평균적으로 1세겔을 10g이라고 계산한다면, 17kg입니다. 거기에다가 초승달 모양의 장식품과 패물들,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을 달라고 합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타던 낙타의 목에서 초승달 모양의 장식은 이미 기드온이 떼어 가졌는데요(삿 8:21).
또 다른 낙타들의 목에 초승달 모양의 장식품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낙타의 목에 있는 그 초승달 모양의 장식품은 사슬, 그러니까 일종의 목걸이 형태였나봐요. 낙타 목이 좀 두꺼운가요? 그 낙타의 목에 목걸이를 하고 그 목걸이에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달았으니, 그 무게가 꽤 되었을 겁니다. 또 패물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꽤나 값이 나가는 것들이었겠지요. 왕이 되기를 거절했으나, 엄청난 전리품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의 탐욕스러운 면에서 전쟁터에 네 개의 지파만을 부른 것이 조금 이해가 될 법도 합니다. 전쟁에 참전한 모든 지파의 모든 군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 전리품을 받습니다. 승리한 전쟁의 전리품은 대단했겠지요. 그런데, 참전한 지파의 수가 많을 수록 얻게 되는 전리품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기드온은 그것이 못마땅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드온의 속내를 에브라임이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그들을 띄워주는 말로 에브라임의 환심을 사려고 한 정황적인 증거가 너무나 명백합니다. 이렇게 금붙이들을 요구한 것이 단지 재산에 대한 욕심때문 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곧 드러납니다. 기드온은 그것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28장과 39장에는 에봇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또 그 모양과 재질까지도 잘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에봇은 거룩한 제사장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사람입니다. 므낫세 땅에도 레위인이 살 수는 있지만, 기드온은 레위 지파의 사람이 아닙니다. 기드온의 집에 바알을 위한 제단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뒤에 그 바알의 제단을 허물고 새로 쌓은 제단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드온이 갑자기 레위인이 된 것도, 제사장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에봇을 만들어서 레위인의 도시도 아닌 그 땅에 에봇을 두고 공식적으로 스스로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자기가 입을 것이 아니라, 혹 제사장을 데리고 와서 그에게 입혔다고 친들, 기드온의 불순한 의도는 똑같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한다면, 그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나를 통하라!”라는 말이거든요. 기드온의 집에 바알의 제단이 있던 때, 그 집안은 그것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이제 바알의 제단이 사라진 지금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이 우리 집에 있으니, 이것으로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설명은 기드온이 ‘왕놀음’을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도 제의와 정치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은 왕이 곧 제사장이었어요. 또는 왕이 신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제의와 정치를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기드온이 지금 그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왕이 되는 것을 거절했지만, 그 마음 속에는 왕이되려는 마음과 함께, 이웃 나라들처럼 제사장의 역할까지 모두 독점하고 싶었던 기드온의 마음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제부터 사사의 시대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입니다. 시대를 거듭하고 사사를 거듭할 수록 이스라엘의 탐욕과 사사들의 부패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역사를 바라보면서 그 시대를 아파했던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기드온 집안의 비극을 기록하면서 이스라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역사를 통해서 들을 귀 있는 사람들만이 그 역사가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사사기 [7] 다섯번째 사사 기드온-아비멜렉 이야기
❖ 하나님을 잃어버린 기드온
기드온의 가족 이야기는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자기 집에 돌아가서 살았다는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기드온을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소개할 때는 항상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삿 8:29에는 성경에서 단 한번 기드온을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라고 부릅니다.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집으로 갔다”(삿 8:29).
자기 집에서 바알 신상과 아세라 신상들을 다 태워버리고, 바알 제단을 전부 다 쓸어버려서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얻기는 하였지만, 이제 스스로가 바알의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기드온이 이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은근슬쩍 돌려서 비꼬는 말이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입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게 권력을 잡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서 좋을 것같지만, 그 ‘다 할 수 있는 권력과 재력’이 기드온의 집안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습니다.
기드온에게는 아내가 많았습니다. 그 아내로부터 낳은 아들의 수만 70명입니다. 아들이 70명이니, 딸의 수까지 더한다면, 족히 100명은 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오로지 상상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기드온은 그만한 대식구를 먹여살릴 여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 아내가 많고, 아들이 많다는 것은 그가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지도자가 그렇게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은 율법이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신 17:17). 신명기에서는 지도자가 지켜야하는 법령으로 많은 아내를 두는 것과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 모두를 경계하는데, 기드온은 이 두 법을 모두 어긴 셈입니다. 많은 아내들과 아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하나님이 왕된 나라를 세워가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에, 그리고 집안의 재산을 두고 이 아들들이 암투를 벌이는 것이 역사를 돌아보건데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이런 법률을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법률을 몰랐거나, 무시하였던 거지요. 더군다나 기드온은 그 많은 아내들도 모자라 첩까지 있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정의하는 첩(히. 필레게쉬 פִּלֶגֶשׁ)은 아내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아내(히. 이샤 אִשָּׁה)라는 말은 합법적인 결혼 관계로 맺어진 남녀의 관계이고, 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럼 왜 세겜의 출신의 여인과는 합법적인 결혼을 하지 못했을까요? 세겜의 여인이 공동체 밖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드온과 결혼한 세겜 출신의 여인이 이스라엘 여인이었다면, 기드온과 결혼을 할 경우, 그냥 ‘아내’가 됩니다. 합법적인 결혼이니까요. 만약 세겜 출신의 여인이 다른 남자의 여자였는데, 기드온이 강제로 빼앗았다면, 불법적인 결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범죄입니다. 둘다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레 20:10). 그러니 이 둘의 경우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불법적인 결혼 관계라는 것의 범위가 줄어드는데,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야기 줄거리의 정황에서 보건데, 하나님께서 금지한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기에 적법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첩’이라 불린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조금 뒤에 다시 또 말하겠습니다.
어찌되었든, 기드온은 적법한 결혼이 아니라 불법적인 이방 여인과의 결혼 관계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기드온이 지어준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은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슬며시 자기의 마음을 집어 넣은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기드온이 외양은 왕이 아니지만, 주변의 나라들의 왕이 그러하듯 정치와 종교를 모두를 틀어잡고 살았기 때문에 실절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이런 기드온의 자신감이었을까요? 그래도 그나마 대견한 것은 끝까지 스스로를 ‘왕’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사 기드온과 그 집안은 이렇게 무너져 내립니다.
❖ 이스라엘이 바알브릿을 신으로 삼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기드온 집안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의도적으로 ‘바알’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바알을 섬기던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뒤에 바알 제단을 허물어 버립니다. 그래서 ‘바알과 싸운 자’ 여룹바알이 되었습니다. 여룹바알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떠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룹바알의 탐욕이 여룹바알을 바알의 자리에 올려 놓았습니다. 바알과 다투던 이가 바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바알브릿을 자기 신으로 삼았습니다. 바알과 언약(히. 베리트 בְּרִית)을 맺고 살게 된 것이지요. 바알을 떠나게 된 것도 여룹바알 덕분이었고, 다시 바알과 언약을 맺게 된 것도 여룹바알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다고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늘 유혹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취해서 눈에 보이는 그것들에 만족하며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떠나 어느덧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말입니다. 기드온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더 무섭습니다.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 순간, 어느덧 괴물이 되어 버리거든요. 기드온은 자기가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을 올무에 걸려서 넘어뜨리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권력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괴물이 돼버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풍요를 보장한다고 꾀는 바알을 따르는 괴물이 돼버렸습니다.
❖ 왜 세겜 여인과?
그렇다면, 기드온이 왜 세겜 여자와 결혼을 한걸까요? 이 질문에 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의견을 제시하는데요. 첫번째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두 지파들인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연합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막강한 힘을 지랑하는 지파 둘을 꼽으라면,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이 둘은 모두가 요셉의 아들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요셉의 아들들이라는 정체성 아래에서 이 둘의 연합을 공고히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가지! 세겜이 에브라임에 속하는지(수 21:21), 아니면 므낫세 지파에 속하는지(수 17:2)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수 16:9와 수17:8에 의하면, 므낫세 자손의 유산 가운데는 에브라임 자손 몫으로 구별된 성읍들과 그 주변의 마을들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세겜의 바로 남쪽에 있는 답부아를 말하며 므낫세의 소유이나 에브라임 자손의 소유라는 점으로보아,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듯한 수 17:2와 수 21:21는 사실 세겜이 므낫세 자손의 유업이나, 에브라임 사람들의 몫으로 구별된 성읍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구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므낫세 사람 기드온이 세겜에 살고 있는 에브라임 여인과 결혼을 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장 영향력이 있는 두 지파가 함께 장악하려는 정치적인 계산이 숨어 있다는 것이 첫번째 견해 입니다.
두 번째는 첫번째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 가나안 땅의 안정을 위해서 일종의 정략적인 결혼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땅의 크기만으로 보았을 때는 므낫세가 제일 큰 지파 인데, 실질적으로 가장 처음으로 손꼽히는 지파는 에브라임이었다는 것이예요. 알다시피, 모세를 이어서 출애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자, 땅 분배를 완성한 지도자는 여호수아입니다. 이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사람이거든요. 사사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뒤의 때이지만, 에브라임 지파가 여전히 힘을 갖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므낫세 지파가 가장 껄끄러워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인 라이벌은 에브라임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에브라임 여자 중 세겜에 사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둘 간의 갈등을 막고자 하는 예방주사와 같이 말입니다.
세번째는 세겜에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과 결혼 관계를 맺어서 기드온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안정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참조. 삿9:28). 위의 첫번째와 두번째 의견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만약에 정말 첫번째와 두번째와 같은 의도로 결혼했다면 같은 이스라엘 공동체 지파 간의 합법적인 결혼을 한 셈인데, 그러면 세겜의 여인은 첩이 아니라, 아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굳이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아내와 첩을 구분한 것은 세겜의 여인이 다른 아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그 다름은 이 세겜 여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여인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 생활 40년동안 물질 문화라는 것을 만들거나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한 자리에 정착하면서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냈던 가나안 사람들에 비해서, 유랑 생활 40년의 히브리인들이 누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문명은 질적으로 가나안의 것들과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들보다 더 멋진 문명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세겜과 결혼을 매개로 정치적인 동맹을 맺고, 그 안에서 평안한 삶을 추구하려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은 한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직접 경험한 사사입니다. 그 때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 믿음이 기드온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과 300명을 이끌고 미디안과 싸우는 전장터에 나갈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이 인도자 되신다는 생각보다는 자기가 이웃 나라의 왕들이 그런 것처럼 이스라엘을 인도하려고 했습니다. 의사결정의 맨 꼭대기에, 하나님을 향한 제의의 맨 꼭대기에 자기가 서려고 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세겜 여인과의 결혼하였다는 사실과,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기드온이 더이상 하나님을 주인 삼아 살지 않게 되었다는 그의 민낯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는 사사가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국내외 관계에서 안전을 보장 받으려는 정치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기드온이 세겜의 여인으로부터 낳은 아들, 아비멜렉이 기드온 집안의 역사 뿐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의 큰 재앙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 아비멜렉의 연설
아비멜렉은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 세겜으로 갑니다. 그곳은 외가 친척들이 있는 곳이예요. 그 곳에 가서는 친족들을 선동합니다.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 주십시오.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이 모두 다스리는 것 하고,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 하고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물어 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들과 한 혈육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시오!”(삿 9:2).
이 구절에서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라는 우리말 번역은 히브리어 ‘콜 바알레 쉐켐’ כָל־בַּעֲלֵי שְׁכֶם 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또 익숙한 단어가 여기에 등장하지요? ‘바알’ 말입니다. ‘콜 바알레 쉐켐’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세겜에서 힘 좀 쓰는 모든 사람들’ 또는 ‘세겜의 유력자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세겜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만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불러다 모아 놓고서는 아버지 기드온의 자리를 차지하려니 내 편에 서서 나를 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사사기의 기드온 이야기에서는 유독 ‘바알’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면서, 그 이름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경 구절 한 절에는 두가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 줍니다.
첫번째는 여룹바알의 아들 70명과 아비멜렉이 가족 안에서 신분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이 모두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에 아비멜렉 자신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12 지파가 연합해서 하나가 된 공동체 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형제인 셈이지요. 그런데 아비멜렉은 자기가 세겜에 사는 가나안 여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위 세습 서열에 들어가지 않았나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뒤에 말하는 것처럼 혈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세겜을 찾아와서 자기 어머니와 결혼을 할 때에는 다 정치적인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혼으로 기드온은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는 합법적인 결혼이 아니었기에 아비멜렉의 어머니와 아비멜렉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첩’과 ‘첩이 낳은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세겜 지역의 대단한 유력자의 딸이고, 기드온도 무시하지 못하는 힘을 가진 여자인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로 기드온이 죽은 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권위를 계승하는 후보조차 들지 못했습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버지 기드온을 포함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로지 필요를 위해서 어머니를 이용했구나. 힘이 필요할 때는 세겜으로 찾아와서 어머니와 결혼하고, 세겜 사람들을 마치 가족 대하듯이 친절하게 굴더니만,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서는 내가 세겜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하는구나.” 그래서 아비멜렉이 세겜으로 간 것입니다. 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거지요.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두번째는 말만 사사였지, 기드온은 스스로 왕처럼 행세했다는 것입니다. 사사는 세습이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웃 나라의 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이 부르는 그 이가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의 최고 자리에서 사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옷니엘이라고 그 아들이 사사가 되지 않았고, 어머니가 드보라 였다고 그 아들이 사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고 난 다음에는 그 아들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선출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의 선택’으로 말이지요. 이것은 이미 기드온의 시대에 기드온이 왕으로 불리지 않았을 뿐, 모두가 그를 왕처럼 생각했고, 또 기드온도 스스로 왕처럼 굴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모든 징조가 기드온의 시대에 싹을 틔웠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없습니다.
❖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다-바알을 위해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말에 마음이 기울어졌습니다. 어차피 기드온의 70명의 아들들이 서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머리가 되고자 치고박고 싸우는데, 이 틈새에 자기들과 피를 섞은 아비멜렉을 후원해서 그가 왕위에 오르면, 가나안 땅에서 세겜 사람들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섬기던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70냥을 꺼내서 아비멜렉에게 주었습니다. 이 행동에 깔려있는 숨은 뜻은 아마도,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우리는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잖아. 그들와 우리들은 달라. 그런 입장에서 너(아비멜렉)는 우리와 형제인 것이 분명하지. 너의 어머니를 우리가 알고 있고, 그 집안이 이 곳에서 우리와 함께 바알을 섬기고 있는걸? 그러니 우리는 형제야. 바알이 우리의 관계를 확증하지. 우리는 ‘바알 앞에서 언약을 맺은 관계'(바알브릿)이니까. 우리가 싸울 적은 여호와를 섬기는 저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두자.” 는 것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바알을 따랐습니다. 아버지 여룹바알이 보여준 그 가정의 모습은 이미 하나님의 눈에서 너무나 멀찍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 여룹바알은 권력을 즐겼고, 소유에 집착하였고, 하나님마저 이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정체적인 계산으로 아비멜렉이 태어났습니다. 그런 아비멜렉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바울과의 싸움(여룹바알)이 아니라, 바알과의 타협이었고, 스스로 바알이 되는 것이 성경이 말해주는 아이러니한 기드온 집안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의 집안을 대표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싸움은 너무 싱겁게 아비멜렉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아비멜렉은 은 70으로 건달과 불량배를 고용해서 기드온의 아들들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습니다. 70냥으로 70명의 아들들을 죽였다고 하니, 아마 암살자나 살인을 부탁한 사람들에게 기드온의 아들 한 명당 은 1냥을 지불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행히도 막내 아들 요담은 숨어서 목숨을 건졌으니, 살인청부업자 중 한 명은 실패한 셈이지만, 누가 뭐라해도 아비멜렉의 일방적인 승리입니다.
이 승리의 장소가 ‘바위’라는 것이 매우 마음을 껄끄럽게 합니다. 아비멜렉과 그가 고용한 이들이 기드온의 집이 있는 오브라에 가서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는데,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바위라든가, 큰 나무라든가 아니면 뭔가 세워진 기둥이라든가. 이게 전부다 신의 임재의 상징이거나,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장소, 내지는 신과 연결될 수 있는 제의 장소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바위 에서 죽였다는 표현은 마치 아비멜렉이 섬기는 바알 신에게 사람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희생제물로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요 사람이 희생제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바위에서 기드온의 아들들 69명이 죽었다고 보도하는 이 이야기에는 아들들을 죽였다는 객관적인 사실 전달 이외에, 그냥 죽인게 아니라 마치 바알에게 제사 드리듯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들을 죽였다라고 이해할 여지가 있는 거예요. 아비멜렉의 입장에서 바알을 따르는 세겜 사람들과 더 확고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서 이런 종교적인 상징이 내포된 살인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겠구요. 또 한편으로는 아비멜렉이 숭상하는 바알(정치권력)을 위해 그들을 한 바위에서 죽였다고도 말할 수도 있겠네요.
❖ 약속을 잊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다
세겜 성읍의 사람들이 세겜에 있는 돌기둥 곁의 상수리 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습니다(삿 9:6).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부분을 기가 막히게 극적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단 한절 안에 정말 많은 역설적인 역사 이야기들을 심어 놓았거든요.
비록 아비멜렉이 세겜의 토박이 가나안 여인의 아들이라고 해서 세겜 사람들이 모두다 토박이 가나안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세겜은 정복 전쟁 직후,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성읍이었고, 또 도피성으로 사용된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분명히 이스라엘 사람들, 그 중에서 레위인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겜 사람들과 뜻을 같이해서 그들처럼 살았던 모양입니다. 조금 지나친 상상을 해본다면, 그들을 위해서 살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레위인들의 성읍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의를 드리기 위해서 가까운 레위인들의 성읍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겜에 또 다른 제단, 바알브릿을 위한 제단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럼, 세겜에 제단이 두 개가 있었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서 바알에게도 제사를 드렸다는 말일까요? 고고학자들이 세겜(Tel Balata)에서 동시대에 만들어진 제단을 하나 밖에 찾지 못했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서 바알에게도 제사를 드렸었고, 그 제사에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방조했거나, 동조했거나, 또는 앞장섰다는 막장 상상이 가능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이고, 레위인이라고 말하지만, 세겜에 살면서 토박이 가나안 사람들과 별다름 없이, 그리고 바알을 섬기던 이들과 별다름 없이 문명이 주는 풍요에 안주하며 누리고 살았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황망할 따름입니다.
세겜은 여호수아의 숨결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그 우두머리들, 재판관들을 불러내서는 아브라함 이래로 이스라엘의 역사의 이야기를 쭉 읊고, 출애굽의 역사를 다시 되새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들이 주님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그는 당신들에게 대항하여 돌아서서, 재앙을 내리시고, 당신들에게 좋게 대하신 뒤에라도 당신들을 멸망시키시고 말 것입니다.”(수 24:19-20)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수 24:21,24)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예수님 앞에서 절대로 예수님을 모른척하지 않겠노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베드로가 생각이 납니다. 하여간에, 그리고 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이 지킬 율례를 법도를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주님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 두고서는
“보십시오,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때에, 이 돌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못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수24:27)
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을 왕처럼 섬기겠다고 맹세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결탁한 세겜 사람들과 함께 그 돌기둥과 그 상수리 나무로 가서는 바알을 섬기는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눈에는 단지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다는 건조한 기록 뒤에,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를 숨겨 놓고서는 사사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깊고 큰 한숨을 내뱉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 요담의 연설, 나무의 비유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외쳤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렇게 재미있고, 찰진 비유도 흔하지 않습니다. 감람(올리브)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에게 찾아가서 나무들이 왕으로 세우려는 이야기입니다. 감람나무는 풍성한 기름을 내는 자기 본연의 일이 있다고 사양했고요. 무화과 나무도 달고 맛난 과일을 맺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고 거절합니다. 포도나무도 마찬가지예요. 포도주를 내는 일이 자기 일입니다. 어떻게 내가 다른 나무 위에 날뛸 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덥석 나무들의 제안을 받아요. 가시나무가 무슨 그늘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모든 나무들은 반드시 자기 그늘 아래로 와서 피해야한다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 명령을 어기면, 가시나무와는 견주어 감히 그 가치를 셈할 수도 없는 백향목 마저도 불 살라라 버리겠다고 겁박을 하는 거예요. 중세의 랍비인 라쉬(רש”י)는 이 네 개의 나무의 비유를 참 재미있게 해석했습니다. 라쉬는 감람나무가 첫번째 사사인 옷니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렘 11:16에 보면, 예레미야가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많이 달린 감람 나무’였던 유다의 암울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감람나무를 유다에 비유하고, 유다 지파 출신의 사사가 옷니엘이기 때문에 감람나무를 옷니엘을 가리키는 비유로 이해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사사 드보라를 비유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화과 나무 열매는 종려나무 열매와 함께 고대에 꿀 대용으로 사용되던 과일입니다. 두 나무의 열매가 매우 달고, 말려서 보관하기가 좋아서 두고 두고 당을 섭취하기에 좋은 열매들이거든요. 라쉬는 무화과가 ‘나의 단것’ 이야기 하는데(삿 9:11), 이것을 무화과 나무의 ‘꿀’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꿀은 곧 꿀벌을 연상시키지요. 꿀벌이 달달한 꿀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기도 하려니와, 또 그 꿀벌이 꿀을 만들어 내니까요. 드보라라는 이름의 뜻이 ‘꿀벌’입니다. 그래서 라쉬는 무화과 나무가 사사 드보라를 비유한다고 설명합니다. 포도나무는 사사 기드온을 가리킨다고 해석했습니다. 창 49:22에서는 요셉을 이야기하면서 샘곁에서 담장을 넘어 뻗은 무성한 나뭇가지와 그 열매를 노래하는데요. 창세기 탈굼 옹켈로스(Targum Onqelos)에서는 이 나무가 포도나무라고 해석하여 번역해 놓았습니다. 요셉의 아들들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인데요. 므낫세 지파 출신의 사사가 기드온입니다.
라쉬의 비유 해석을 근거로 이 책의 맥락을 따라가면, 요담의 연설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 너 이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구원자들을 보아라! 옷니엘이 왕이 되려고 했던가? 그는 갈렙의 사위이면서 유다를 넘어 이스라엘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문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할 일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지 스스로 영화로운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로지 하나님 만이 이스라엘의 힘이고 왕이 아니었던가? 드보라를 보라! 드보라는 통념을 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여자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었고, 남자이면서 용사였던 바락도 두려워하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자 장군이기도 했다. 꿀벌처럼 작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 놀랍고 위대한 일을 해냈던 드보라는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에 그 녀가 우쭐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 기드온을 보아라! 그는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바알의 제단을 허물고 찍어버렸다. 비록 그의 말년은 너무나 많이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이 왕되심을 잊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전통의 텃밭 때문에 차마 스스로 ‘왕’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너는 스스로 왕이 되어서 너보다다 더 찬란한 백향목같은 이스라엘을 불로 살라 없애려고 하느냐?”
요담의 외침 속에서 그 불이 겉잡을 수 없게 되어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세겜과 밀로의 집안(세겜 주변에 든든한 망대와 요새에 거주하며 살던 가문들), 그리고 아비멜렉 자신을 모두를 태워버릴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는 겁니다. 아쉽게도 그 후 요담이 브엘로 몸을 피하였는데요.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요담이 그 다음에 기드온을 이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의 자리에 서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관심 사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사의 자리는 내가 차지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요담의 예언자적인 비유가 아비멜렉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역사를 다시 기억나게 해주는 장한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요담이 사사가 되는것도, 선지자나 재판관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요담은 이 비장한 연설을 한 다음에 아비멜렉의 이야기에서 쏙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 요담의 연설의 실현-‘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구’라는 괴물
‘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구’라는 괴물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무시 무시한 녀석입니다. 그리고 이 괴물에게는 도덕적인 감수성이라든가 자비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를 먹고 나면, 점점 더 큰 것을 먹고 싶어하는 괴물이기도 하지요. 거대한 욕망의 괴물이요. 아비멜렉을 도와서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인 세겜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권력을 얻고 힘을 가지게 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정치의 제일 가운데 자리에 앉게 되니, 이제는 자기들이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자기들이 선택한 아비멜렉이 왕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세울 수도 있고, 자기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 가운데 똬리를 틀고 있는 ‘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구’라는 괴물입니다.
그런데, 세겜에 세겜 사람들이 딱 마음에 들어하는 인물이 흘러 들어 왔습니다. 가알이라는 사람인데요. 이 가알이 누군지에 대해서 성경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을 지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사사기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것은 이 가알이 무역상일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무역상들을 그냥 장사하는 사람들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닐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약탈 당할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무장도 하고 다니던 사람들입니다. 또 조금더 가치있는 것들을 운반할 때에는 고용한 군인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무리를 지어서 다니며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인거지요. 그래서 이런 무역상들을 ‘대상(隊商)’이라고도 부르는 겁니다. 물물교환을 통한 장사나, 값어치 있는 물건을 받으며 거래하면서 이윤을 냅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하다보면, 도시의 상태를 파악할 수가 있어요. “아 이 도시는 아주 잘 갖춰진 도시구나.” “이 도시는 참 허술 하구나.” “이 도시 사람들은 지금 이 도시의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구나”. “이 도시 사람들은 자기네 지도자들에 불만이 많구나.” 이런 것들 알수가 있거든요. 이렇게 이 도시 저도시를 다니면서, 한 도시, (예전에는 한 개의 도시가 한 개의 나라일 수도 있으니)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상황을 꿰뚫고 다녔던 사람들이 무역상들입니다. 이런 첩보들을 쌓아가고, 군사적인 힘을 키워가다가 도시 자체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그 도시의 주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광야의 바이킹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런 대표적인 민족들이 미디안 사람들이나, 아말렉 사람들입니다.
그런 가알이 세겜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우리 세겜 성읍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여기에서 ‘우리’라는 표현은 가알이 세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슬쩍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가 토박이였다가 대상 일로 이곳 저곳을 유랑하던 끝에 다시 세겜으로 돌아와서 정착한 것인지, 아니면 미디안이나 아말렉의 대상들이 그러하듯이 세겜을 점령하기 위해서 동질감 있는 단어인 ‘우리’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득의 방법은 놀랍게도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남인가?” 하는 지역색과 혈연, 그리고 잔치를 베풀며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환심을 사고는 뇌물입니다(삿 9:27).
“우리 세겜 성읍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도대체 아비멜렉이 누굽니까? 여룹바알의 아들입니다! 스불은 그가 임명한 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 여룹바알과 그의 심복 스불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나에게 이 백성을 통솔할 권한을 준다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나오라고 해서 싸움을 걸겠습니다.” (삿 9:28-29)
처음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선동할 때, 기드온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인데 비해서, 자신은 세겜 사람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심리적으로 자신이 세겜 사람들에게 더 가깝다는 것이지요. 세겜 사람들은 그 말에 끌렸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사용한 방법을 가알이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거예요. 아비멜렉은 혈통으로 따지면, 반만 세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스라엘 사람이지요. 그런데, 가알은 순수한 세겜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 여룹바알과 그의 심복 스불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라는 말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함부로 우리를 대하지 못하던 그 시대의 영광을 다시 되찾자라는 말과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반은 이스라엘 사람인 아비멜렉이 아니라, 순수한 세겜 사람인 자신, 또는 이스라엘에 물들지 않은 자신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인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계략으로 하나님의 힘을 자신들의 권력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지역의 산들에 곳곳에 숨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약탈하였습니다. 원래부터 하던 일이니 어렵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약탈을 하면서 점점 사람들 사이에 아비멜렉이 자기의 영토도 다스릴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민심의 불안과 불만을 불러일으킬 작정이었던 거예요. 지금 불안정한 치안의 뒷배에 가알이 있고, 가알이 가진 의도를 알게 된 스불은 아비멜렉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가알과 일전을 준비합니다. 매복 공격에 당한 가알과 세겜의 주민들은 세겜 망대로 들어가 방어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불을 놓아서 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세겜 망대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동족들이었고(물론 가알의 말대로 절반만이었지만), 친족들이었고, 같은 바알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완전히 진멸하다 시피합니다. 아비멜렉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가 왕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지요. 또,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치뤄야할 대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 ‘아비멜렉’의 위대한 이름을 이름 모를 여인이 지우다
아비멜렉은 자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는 무자비함이 통치의 원칙이었습니다. 공포 정치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아비멜렉은 데베스까지 쫓아가서 가알과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 뒤에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갔다. 그는 데베스에 진을 치고, 그 곳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 안에는 견고한 망대가 하나 있어서, 남녀 할 것 없이 온 성읍 사람들이 그 곳으로 도망하여, 성문을 걸어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비멜렉은 그 망대에 이르러 공격에 나섰고, 망대 문에 바짝 다가가서 불을 지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아비멜렉은 자기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병사를 급히 불러, 그에게 지시하였다. “네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인이 그를 죽였다는 말을 할까 두렵다.” 그 젊은 병사가 아비멜렉을 찌르니, 그가 죽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저마다 자기가 사는 곳으로 떠나갔다.”(삿 9:50-55)
세겜에서 이미 망대에 들어간 사람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를 터득한 아비멜렉은 세겜에서처럼 데베스의 망대에 불을 놓으려고 망대 문 바짝 다가섰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여인이 때마침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내리 던진거예요. 그리고 그 돌에 맞은 아비멜렉은 두개골이 부서져버렸습니다.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아비멜렉이, 이름도 모르는 여인의 돌에 맞이 좋은 것입니다. 청동이나 철로된 창, 화살, 이런 엄청난 무기가 아니라, 그냥 집에서 콩 갈고, 밀 갈고 하던 맷돌 윗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 보도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권력을 잡고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왕이 되려고 하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 이야기를 기드온 뒤에 소개하면서, 이제 사사 조차도 왕처럼 살려고 하던 유혹의 시대의 비극을 그려주었습니다. 마치 이름 높은 장군 시스라가 야엘의 장막에서 여인의 손에 죽었듯이, 마치 다볼산의 놀라운 전쟁 승리의 터에 ‘번개’라는 웅장한 이름의 바락이 앞장 서지 못하고, 드보라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처럼, 권력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서서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는 사람이 겪게될 미래를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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