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8:2 "내 몸은 엘람 도(道) 수산 성(城)에 있었고......"
엘람은 다니엘서 8장 다니엘의 환상과 관련있는 장소이다. 역사적으로 벨사살 3년 당시 '엘람도'는 고레스의 침공으로 메대와 바사의 영토로 복속된 상태였다고 한다.
다니엘의 몸이 엘람도(道) 수산성에 있었다는 말이 실제로 그가 수산성에 있었는지 아니면 몸은 다른 곳에 있고 환상으로 그 곳에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 수산성은 엘람의 수도이기도 하고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엘람은 바벨론 동방에 있던 산지인데 서는 티그리스강, 북은 앗시리아와 메대, 동은 페르시아, 남은 페르시아만에 접한 지방으로 바벨론 사람들은 이 곳을 엘람투(Elamtu)라고 불렀다.
고대부터 엘람의 수도는 수산(Shushan)이었다.
아브라함 때 그돌라오멜이 엘람 왕이었고 그 세력은 바벨론과 요르단까지 미쳐 있었다(창 14:1-11).
앗시리아가 서아시아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주전 8∼7세기경에는 엘람이 상당히 강했으나 앗시리아의 사르곤 왕들과의 긴 전쟁 후에 수도 수산은 앗슈르바니팔(Assurbanipal)에 의해 BC 645년에 멸망되고 그 백성은 사마리아로 이주되었다(스 4:9-10). 앗시리아가 유다를 침략한 때는 엘람이 군대로서 도왔다(사 22:6). 앗시리아가 바벨론에게 망하자 엘람도 그 멍에에서 벗어났다. 바벨론이 망한 후에는 엘람이 페르시아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수산성이 페르시아의 수도가 된다. 이사야 21:2에는 엘람이 페르시아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오순절 당시에는 엘람인도 예루살렘에 있었다(행 2:9)
1. 엘람 제국
엘람 문명은 현대 이란의 남서부를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랜 문명들 중 하나이다. 엘람 제국은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539년까지 존재했으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에 멸망하기 전에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였다.
엘람 제국
서양의 고전 문헌에서 엘람은 종종 수시아나(Susiana)라고 언급되는데, 이 명칭은 후대의 엘람의 수도인 수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이란의 행정 구역 가운데 하나인 ‘일람’이라는 이름이 엘람과 관련 있으며, 이란에서는 엘람 제국을 이란 역사의 출발점으로 파악한다. 이 엘람 제국 이전은 원시 엘람 시대로 불리는데, 원시 엘람 문자가 바로 기원전 3200년경부터 2900년까지 존재했던 원시 엘람 시대에 사용되던 문자이다.
엘람의 역사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엘람이라는 이름은 노아의 아들 중 셈의 맏아들로 처음 등장한다(창세기 10장 22절, 역대기 1장 17절). 엘람인들은 그들이 살던 지역에 따라 ‘수사 사람’이라고도 불렸으며(에즈라 4장 9절, 다니엘 8장 2절 등), 활을 잘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다(이사야서 22장 6절, 예레미아서 49장 35절).
엘람 지역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한 후 유배를 간 페르시아에 속한 곳이었기에(이사야서 11장 11절), 성경에 엘람인들은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예레미아서 25장 25절, 49장 34절~39절, 에제키엘 32장 24~25절 등). 신약시대에는 페르시아에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을 엘람인이라고 불렀다(사도행전 2장 9절).
원시 엘람
원시 엘람(原始-, Proto-Elamite) 시대 또는 문명은 이란의 역사에서 기원전 3200년경부터 기원전 2700년경 사이의 기간 또는 문명으로, 이 시대는 엘람 제국(2700?~539 BC)의 후대의 수도가 된 수사가 이란 고원의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때이다. 고고학적 용어로는 이 시대는 후기 바네시 시대(Late Banesh period)에 해당한다. 원시 엘람 문명은 이란의 가장 오랜 문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으로 기원전 3400년경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 문명과 대체로 동시대의 문명인데, 수메르 문명은 원시 엘람 문명의 서쪽에 이웃하고 있었다.
원(原) 엘람 문자(Proto-Elamite script) 또는 원시 엘람 문자는 고대의 엘람어를 기록하는데 사용된 청동기 시대 초기의 문자로, 후대에 엘람 쐐기문자가 도입되기 전에 사용된 문자이다. 원 엘람 문자는 아직까지 해독되지 못한 상태이다.
원시 엘람 문명과 엘람 문명의 도시들 및 엘람 문명과 관련된 지금의 이란의 주들: 일람 주 (주황), 로레스탄 주 (파랑), 후제스탄 주 (노랑), 파르스 주 (녹색), 케르만 주 (빨강)
기원전 제3천년기(3000~2001 BC)의 고대 근동: 원시 엘람 문명(지도의 "ELAM")과 수메르 문명(지도의 "SUMER")이 나타나 있다
The Proto-Elamite period, also known as Susa III, is the time from ca. 3400 BC to 2500 BC in the area of Elam.[3] In archaeological terms this corresponds to the late Banesh period, and it is recognized as the oldest civilization in Iran.
The Proto-Elamite script is an Early Bronze Age writing system briefly in use before the introduction of Elamite cuneiform. 수사 3세라고도 알려진 프로토-엘라마이트 시대는 ca에서 온 시대다. 기원전 3400년부터 기원전 2500년까지 엘람 지역에서. [3] 고고학 용어로 이것은 바네쉬 후기에 해당하며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프로토 - 엘라마이트 스크립트는 엘라마이트 설형 문자가 도입되기 전에 잠깐 사용되는 초기 청동기 시대 글쓰기 시스템입니다.
Susa III/ Proto-Elamite cylinder seal with bulls and lion, 3100-2900 BC
수사 III / 황소와 사자가 있는 프로토 - 엘라마이트 실린더 물개, 기원전 3100-2900
Location of Susa, central location of the Susa III/ Prote-Elamite period, in West Asia.
Mesopotamian (3000-2800 BC)
Kneeling Bull with Vessel. Kneeling bull holding a spouted vessel, Proto-Elamite period (3100-2900 BC). Metropolitan Museum of Art배에 탄 황소를 무릎 꿇어라. 뿜어져 나오는 선박을 들고 있는 무릎 꿇는 황소, 프로토-엘라마이트 시대(3100-2900 BC).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Proto-Elamite Guennol Lioness, c.3000-2800 BC, 3.5 inches high프로토-엘라미트 게놀 리오네스, 기원전 3000-2800, 높이 3.5인치
Clay tokens; circa 3500 BC (Uruk period); terracotta; from Susa; Louvre (Paris)클레이 토큰; 기원전 3500년경 (우루크 기간); 테라코타; 수사에서; 루브르 (파리)
원시엘림문자
출저:위키사전
엘람 문자 - 또 하나의 고대 문명을 기록한 문자
시기 | 기원전 3300년경 ~ 기원전 500년경 |
지역 | 메소포타미아 동부(오늘날 이란 남서부) |
특징 | 원시 엘람 문자: 표의문자-단어문자 엘람 선문자: 표음문자-음절문자 엘람 설형문자: 표음문자-음절문자 |
언어 | 엘람어 |
1. 원시 엘람 문자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100년경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설형문자이다. 하지만, 이 설형문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동쪽에서 사용되던 문자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원시 엘람 문자(Proto-Elamite script)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문자이다. 이 문자는 초기 단계의 설형문자에서 이른 시기에 차용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설형문자와 공통된 기원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엘람인들은 산악 민족으로 수메르를 침공하기도 하고 공격을 받기도 하여 문화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문자에 있어서도 상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양한 원시 엘람 문자 점토판 사본
원시 엘람 문자의 대부분은 엘람 제국의 수도였던 수사(Susa; 오늘날 이란의 슈시)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점토판은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3:2의 비율로 된 직사각형이며, 양면에 모두 문자가 쓰여 있다. 이 점토판들은 비슷한 시기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과 모양이나 크기 및 제작 방식에 있어서 비슷하다. 다만, 원시 엘람 문자의 점토판들이 대부분 곡식이나 가축을 거래하거나, 노동인력들의 이동 등을 기록한 회계 장부로서 경제활동과 관련된 것인 데 반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점토판은 문학 텍스트나 문자 수업 등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 차이가 난다.
원시 엘람 문자 점토판 '스물 네 마리의 양'이란 뜻의 엘람 문자
원시 엘람 문자는 약 1,500개 이상의 단어문자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위에 제시한 원시 엘람 문자 점토판에서 왼쪽 위에 있는 표식을 보자. 이 그림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스물 네 마리의 양이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서 당시에도 십진법이 사용된 것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원시 엘람 문자로 기록된 점토판의 수는 1,600개 정도이지만, 소유자, 소유물, 소유물의 수효 등과 같이 다소 단순한 내용만이 기록되어 있어서 아직 해독이 잘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3. 엘람 선문자
기원전 2200년경부터년경부터 약 200년간 엘람 제국에서 사용된 문자를 엘람 선문자(Linear Elamite script)라고 한다. 비록 800년의 격차는 있지만 같은 지역에서 사용된 문자이므로, 엘람 선문자는 원시 엘람 문자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엘람 선문자보다 앞선 원시 엘람 문자에 ‘원시’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 이러한 입장을 반영한 것이며, 엘람 선문자를 ‘후기’ 원시 엘람 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문자의 상호 관계는 아직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다. 원시 엘람 문자에서 엘람 선문자가 발달한 것이 아니라 두 문자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는 학자들은 원시 엘람 문자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엘람어와 아카드어 문장이 새겨지고 사자의 머리가 장식된 판©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엘람 선문자 부분 확대
엘람 선문자로 기록된 유물은 22개에 불과하므로 절대적으로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다만 엘람 선문자의 경우, 아카드 설형문자와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된 비문이 발견되어 고대 엘람어에 대해서는 원시 엘람 문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비문은 엘람 왕국의 아완 왕조의 마지막 왕 푸주르-인슈시나크에게 봉헌한 비문으로, 그는 아카드어 설형문자 대신에 간결한 엘람 선문자를 사용하도록 장려하였다고 한다.
4. 엘람 설형문자
엘람 제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된 문자는 아카드 설형문자를 차용하여 변형한 엘람 설형문자(Elamite cuneiform)이다. 당시 우세를 떨치던 메소포타미아의 언어와 문자가 막대하게 들어오게 되는 과정에 문자가 차용된다. 엘람 설형문자는 기원전 2500년에서 기원전 331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엘람 설형문자는 145개의 기호(113개는 음절문자, 25개는 단어문자, 7개는 의미표시자)로 이루어져 있다.
엘람 설형문자 사본
엘람 설형문자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만든 베히스툰 비문에 보인다. 페르시아는 원래 엘람인의 세력 아래 있었기에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 후에도 엘람어는 중요한 공용어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엘람 설형문자가 베히스툰 비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베히스툰 비문 중 엘람 설형문자로 기록된 부분
5. 엘람어
엘람 문명의 여러 문자들이 기록하고 있는 엘람어는 현재 아무런 후손을 남기지 않고 소멸하였다. 게다가 엘람어는 고립어로서, 인도유럽어족의 이란어파에 속하는 어떤 언어와는 물론, 인접한 지역의 셈어족의 언어들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 다만, 원시 엘람어가 인도의 드라비다어족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언어학자들은 엘람-드라비다어족 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이란과 인도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원시 엘람 문자에 사용된 기호들이 인도 문자와 비슷한 형태가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 등이 근거가 되기도 한다.
원시 엘람 문자와 인도 문자의 비교
어쨌든 우리가 이 언어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상황은 현재 남아 있는 문자 자료가 전부이다. 언어는 사라지고 문자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제한된 수의 문자를 가지고 문자의 소릿값이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기에 원시 엘람 문자 및 엘람 선문자가 완벽하게 해독되지 않는 것이다.
옥스퍼드대학 CDLI 프로젝트 페이지
원시 엘람 문자의 점토판을 모두 컬러이미지로 만들어서 공개하고 있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원시 엘람 문자의 점토판을 모두 컬러 이미지로 만들어서 인터넷에 공개하였다.1) 자료를 개방함으로써 전 세계의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또 하나의 숨겨진 문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게 될 것이다.
6. 문자의 해독의 일례
앞서 우리는 설형문자 및 성각문자의 해독을 통해서 사라진 역사를 다시 살려냈음을 본 적이 있다.2) 그렇다면 고대 문자는 어떻게 해독되는 것일까. 엘람 선문자 비문을 통해서 고대 문자의 해독 과정을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다.
1) 문자 사본 만들기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자의 전체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베끼는 작업이 필요하다. 설형문자를 해독한 롤린슨이 까마득한 높이의 가파른 절벽에 수년간 매달려 1천 1백행 이상이 되는 내용을 한 글자씩 옮긴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기초 작업이 제일 힘들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엘람 선문자 사진에 나타난 선문자들을 일일이 하나씩 그려 노트에 옮긴 것이 다음 사본이다.
엘람 선문자 사본
2) 문자 목록 및 빈도 작성
엘람 문자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혔으므로, 이를 현대의 읽는 방식으로 재배열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이 같은 베껴 쓰는 작업이 끝나면, 문자의 목록과 그 빈도를 작성한다. 이를테면
는 이 자료에서 1행에 두 번, 2, 3, 5행에 각 한 번씩 모두 다섯 번 등장한다. 참고로
가 모두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보자. 이렇게 만들어진 문자의 빈도를 중심으로 어떤 기호가 특정한 단어를 나타낸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소리를 나타내는 것인지를 판단해 나가는 것이다.
한 언어에 필요한 단어의 수는 적어도 수백 개가 넘으므로, 어떤 문자가 단어문자라면 문자의 수 역시 수백 개 이상 나타날 것이다. 반면 음절문자라면 그 수는 대폭 줄어들어 100개 전후에 이를 것이며, 자모문자라면 2~30개 남짓한 기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해당 문자 자료에 등장하는 모든 문자기호의 개수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하기에 충분한 양의 자료를 확보하는 일 또한 문자 해독의 전제가 된다. 현존하는 자료가 불충분하다면 문자기호의 수효를 세는 것만으로 문자의 종류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3) 동일한 문자 연쇄 찾기
다음에는 동일한 문자 연쇄를 찾아야 하는데, 이때에는 고유명사의 이름이 큰 기여를 한다. 즉, 해독 초기에는 반복되는 글자들의 연쇄를 당시 알려진 왕의 이름이나 지명으로 가정하고 글자 하나하나의 소리를 배당하는 식으로 해독의 단초를 찾는 것이다. 설형문자 해독에서도 당시 다리우스 1세의 이름을 찾아낸 것이 해독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집트 문자 해독에 있어서도 제일 먼저 했던 일도 반복되어 나오는 동일한 문자 연쇄를 당시의 지배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이름을 나타낸 것이라고 가정했던 것이다.
로제타석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외에도, 알렉산더, 알렉산드리아 등의 고유명사가 등장한다. 이처럼 고유명사를 많이 찾아낼수록 해독과정이 단축될 수 있다. 위에 제시한 엘람 선문자에서 첫 줄의 일부를 따로 보면
이다. 현재까지 해독된 바에 따르면, 이 문자의 연쇄는 인슈시나크 왕의 이름을 가리키는 문자이다.
4) 문자와 언어 대응하기
아울러 문자들을 이미 알려진 다른 언어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를 해독하는 연구자는 가능한 한 많은 언어를 알아야 한다. 설형문자를 해독한 롤린슨은 인도에 머물면서 힌디어, 아랍어, 현대 이란어를 배웠다고 한다. 샹폴리옹 역시 그리스어와 라틴어, 히브리어, 암하라어, 산스크리트어, 콥트어 및 페르시아어, 아베스타어, 아랍어 등 여러 언어들에 능통했으며, 중국어에 대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음에 살펴볼 선문자B를 해독한 벤트리스도 여섯 개의 유럽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어, 라틴어에 능숙했었다. 만약 해독이 필요한 문자가 전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언어를 기록한 것이라면 해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해독되지 못한 많은 문자들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다.
5) 문자 해독의 가치
문자 해독은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따라서 해독자에게는 다양한 언어 능력 외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인내력이 제일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 문자 해독은 이처럼 지난한 일이지만, 그 열매는 매우 달다. 설형문자와 이집트 문자가 해독됨으로써 신비에 싸여 있던 고대 문명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인류의 역사는 기원전 3천 년 이상으로 확대되었으며, 당시인들의 생활, 문화, 사고방식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로마의 역사책에 단편적으로 등장했던 클레오파트라를 고대 이집트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되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성경 역시 설형문자의 해독을 통해서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문자로 기록된 선인들의 삶과 사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앞선 지혜를 발판으로 인간의 지혜는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엘람 문자 - 또 하나의 고대 문명을 기록한 문자 (세계의 문자 사전,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구약의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기 이해 및 서론/ 역대기하 36장 (0) | 2021.08.01 |
---|---|
역대상.하 개요 (0) | 2021.08.01 |
이사야 35장 주석 (0) | 2021.07.27 |
신명기 10장 연구 (0) | 2021.07.23 |
신명기 8장 연구 (0) | 2021.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