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
(엡5:15-18)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한 생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출생과 죽음 사이의 주어진 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생애에 있어 우리의 출생과 죽음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의 출생은 온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순간이 결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그 두 순간의 사이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출생과 죽음 사이의 주어진 한 생애, 그 한정된 세월과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내 생애의 남아있는 그 한정된 시간의 양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내일의 긴 세월의 양을 내세워 게으름 속에 오늘의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짧은 세월의 양을 탓하면서 방종 속에 오늘의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포기해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애에 있어 항상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시간이며, 우리의 한 생애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우리가 사는 시간의 양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간의 질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실 유한 한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양적 시간을 사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기보다는 질적 시간을 살아야 하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바로 이러한 두 종류의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자연적 시간으로써 분량에 따라 규정되는 양적 시간을 말하며,
“카이로스”는 목적이 이끄는 의식적 시간으로써 내용에 따라 규정되는 질적 시간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시간 사용과 관련하여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을 때에 그 “세월”을 바로 목적이 이끄는 질적 시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끼라”(엑사고라조)는 말은 “값을 주고 사라”(redeem) 또는 “최상의 것으로 만들라”(make the most)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풀이하여 말하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과 시간을 값을 주고 사서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처럼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한 생애, 그 시간과 기회를 그처럼 최상의 질적 가치를 가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엡5:15-18]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첫째, “자세히 주의하라”(15절)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 “자세히 주의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아크리보스”라는 단어에서 영어의 “acrobat” 즉 “곡예사”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세히 주의하라”는 말은 곡예사가 공중에 높이 달려있는 외줄을 타면서 두 팔을 벌리고 아슬아슬하게 몸의 균형을 조절해 가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처럼 자세히 주의하여할 그 이유로 16절에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 우리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혼란 속에 몰아넣으며,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지배하려는 이 시대의 악한 것들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악한 것들이 때로는 지극히 선한 모습으로, 화려한 모습으로, 너무도 매력적인 모습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모습으로 다가와서는 마침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습니다. 결국은 우리를 무절제 속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너무 많이 자고, 너무 많이 놀고,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 있는 자들로서 그 모든 것들을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평가하여서 자를 것은 자르고, 버릴 것은 버리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면서 자세히 주의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세월을 아낄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7절)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시간 사용에 대해 말하면서 “그러므로...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한 것은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그러면 여기서 바울이 이해하라고 한 주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실 그가 에베소 교회를 향해 그토록 강조하려고 하였던 주의 뜻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뜻을 이해하라고 말하면서 계속 사랑하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도 지상에서의 바울 자신의 남은 생애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타인을 위한 사랑의 봉사(21-26절)에서 찾았습니다. 그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 바울의 생애와 시간들을 항상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의 모든 세월과 시간을 목적이 이끄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이 땀과 눈물의 값을 지불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그 시간을 최상의 질적 가치를 가진 시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실 학생들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세월을 아껴 힘써 공부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한 생애, 그 모든 세월과 시간을 참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그리고 영원한 가치를 가진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치유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며, 새로운 소망 중에 항상 은혜의 새날을 열어갈 수 있게 합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죽음을 극복하고, 우리의 생애를 완성하며, 우리의 영원한 승리와 영광을 참으로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 사랑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자가 진정 세월을 아낄 수 있는 자입니다.
셋째,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절)고 합니다.
주의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자세히 주의하여 행할지라도 내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항상 내 안에 거하시는 영화로우신 주 성령께서 나를 친히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성령님께서 내 안에, 내가 성령님 안에 살아가는 그 비밀스러운 능력을 덧입어 참으로 사랑하며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고는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참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섬기는 것이 곧 피곤하고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한 생애 동안 우리도 그처럼 주안에서 오직 사랑으로 섬기는 것만으로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마침내 그 어느 날에는 이 땅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 생애가 마감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그 세월, 그 은혜의 순간과 기회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였는가를 질문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으실 것입니다. 때마다 주시는 그 은혜의 시간을 우리의 땀과 눈물로 값을 주고 사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였는지를 질문하실 것입니다.
정해진 나의 한 생애 동안 이 사랑 이루기에 너무도 짧아 너무도 소중한 이 시간들을 영원한 질적 가치를 가진 최상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이 악한 시대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자세히 주의하여 모든 일에 절제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열심히 사랑함으로 배우고 준비하며, 힘써 사랑함으로 자신을 드리며 온전히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항상 능력 가운데 역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환봉 교수(고신대)
성령 충만 받은 성도의 특징(엡 5:8-21)
에베소서는 교회의 모습과 신자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도 바울의 서신입니다. 1장에서부터 4장 16절까지는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4장17절부터 6장까지는 신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고 성도가 성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시대에 이 땅에 청교도를 허락하셔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한국교회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변화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엡5:8-21절까지의 말씀이 성도의 모습 즉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간 엡5:8-21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 할 때에 큰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그 존재가 변화된 사람입니다.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어두움의 존재에서 빛의 존재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 존재의 질이 바뀌어 진 사람입니다. 그 존재에 물리적인 변화와 화학적인 변화와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 사람입니다. 어두움이던 존재가 빛이란 존재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장소에서 설던 존재가 빛과 생명의 장소로 그 현주소가 옮겨진 사람입니다. 그 모든 것이 ‘주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주 안에서 빛이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의 특징이 ‘주님 안에서’ 인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과 특징이 바로 ‘주님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봉사하고,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살기도 하고, 주님 안에서 죽기도 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서’ 존재의 질이 변화되고 존재의 현주소가 바뀌어 진 사람입니다.
철이 금으로 바뀌면 겉은 때가 뭍어도 속은 여전히 금입니다. 성도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질이 변하지 않고 도금한 성도 겉만 변한자들이 많습니다. 질이 변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다사랑 교회 성도들도 모두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주님 안에서 그 존재가 다 변화 되어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그 행동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8절 下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존재의 변화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 사람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2절“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여기서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인 동시에 행동의 종교인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인 동시에 행동의 종교입니다. 그 행동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산상 설교에서 주님 안에서 소금과 빛이 된 사람들이란 착한 행실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착함이란 이웃에게 좋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착함이란 이웃에게 누추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하지 않고 덕을 세우는 말과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하고, 이웃에게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며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 것을 말합니다.
엡5:4절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4:32절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28절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그 행동이 변화된 사람이고 선한 일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성도는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 만이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기쁨의 대상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10절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라.” 사람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로 자기를 즐겁게 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면서 사는 못 된 존재입니다.
눅12:19절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 말은 눅12장에 나오는 부자의 독백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의 소원이고 독백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기쁨의 대상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 기쁨의 대상이 돈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기쁘시게 하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롬15:3절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사도 바울도 자기를 기쁘게 하는 대신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살전2:4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기쁨의 대상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로 바뀌는 것입니다. 육적인 기쁨에서 영적인 기쁨으로 바뀝니다.
롬15:1-2절 “우리 강한 자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 찌니라”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기쁨이 자기에게서 이웃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고전10:33절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영혼구원 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누립니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기쁨의 대상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넷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시간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15-17절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여기 "세월" 이란 말은 "시간" 이란 말도 되고 "기회" 란 말도 됩니다. 헬라어는 ‘카이로스’입니다. "기회" 또는 "때"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시간과 기회와 때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여기 ‘아끼라’라는 말은 "사라" 라는 말도 되고 "붙잡으라" 는 말도 됩니다. 값을 치루면서 까지 기회를 붙잡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허송세월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기회,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꼭 붙잡는 사람입니다.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그 기회를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주님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선교사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어려운 사람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그 기회들을 재빨리 붙잡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다섯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자기 속을 채우는 내용물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술로 채우든지 욕심으로 채우든지 정욕으로 채우든지 지식으로 채우든지 무엇으로든지 채웁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술이나 욕심이나 정욕이나 지식으로 채우는 대신 성령으로 채우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자신의 일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몸을 하나님 자신의 일부로 채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생기와 기운으로 자기를 채우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자기를 채우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사모하므로 성령을 자기 몸에 채울 때 기도가 뜨거워지고 찬양이 뜨거워지고 봉사가 뜨거워지고 구제가 뜨거워지고 사랑이 뜨거워지고 기쁨이 뜨거워집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할 때 삶이 부드러워지고 삶이 따뜻해지고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내 속에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내속을 충만히 채우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섯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안에서 마음과 입술의 노래가 변화된 사람입니다.
19절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새들은 물론이고 사람도 처음 지음 받을 때부터 노래하는 자로 지음 받았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특히 우리한국 사람들은 노래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노래방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음과 입술의 노래가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세상 가수들의 노래 유행가를 좋아하던 사람이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찬송은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이고 심령으로 부르는 찬송인데 궁극적으로는 주께 노래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19-20절“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인은 마음과 입술의 노래가 변화된 사람이고 항상 주께 노래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일곱째로, 성령 충만 받은 성도는 주님 안에서 삶의 자세에 변화가 일어난 사람입니다.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 충만 받은 그리스도인은 지배하는 자세에서 복종하는 자세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 받은 그리스도인은 주인의 자세에서 종의 자세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피차 복종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상전에게 순종하고 종들에게 순종하게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복종하는 종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빌2:8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를 종이라고 부르면서 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빌1:1절 “예수의 종 바울과”
고후4:5“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사람은 본래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를 좋아하고 다스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그 존재와 행동과 가치관이 변화된 사람은 지배하려는 삶에서 복종하려는 삶을 삽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성령 충만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과 특징 일곱 가지에 대해서 두 주간에 걸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존재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와, 기쁨의 대상과, 시간 개념과, 자기 속을 채우는 내용물과, 마음과 입술의 노래와, 삶의 자세가, 변화된 사람이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변화된 삶을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보여주시고 사도 바울이 보여주시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주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분명히 변화된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날마다 변화를 받는 삶이라고 롬12:2에서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오직 변화를 받아." 변화를 경험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주위 사람들도 기뻐합니다.
어린 아기가 거름 마를 배울 때 자신도 기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기뻐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고 우리의 영적인 삶이 변화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성도들도 기뻐하고 우리 사회도 기뻐할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 첫째는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늘 사모하고 사랑하면서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늘 사모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구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을 늘 사모하고 사랑하면서 항상 주님 안에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님을 늘 사모하고 의지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변화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뻐하시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fe.daum.net/dongsim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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