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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시편에 나타난 창조신학/ 시편 묵상 136-150편

by 은총가득 2021. 4. 17.

시편에 나타난 창조신학

 

-시편 24, 74, 136편을 중심으로- 이경숙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

1. 머리말

전쟁, 거짓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는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마저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다. 또 인간의 편의와 물질문화의 일방적 추구로 말미암아 자연과학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인류 전체는 물론 지구전체가 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지구의 생태계를 보존하고 인간과 지구전체가 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지구의 생태계를 보전하고 인간과 자연의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환경 만들어 가기 위하여 모든 학문과 종교, 지역과 민족들이 지혜를 모으고 심사숙고할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는 지금 모두 죽음을 향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WCC는 이 문제들은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이라는 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국적 입장에서 이 문제들을 논의하고 나름대로 문제 해결을 모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정의와 평화 창조의 보전이 상호간에 서로 구별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말하는 정의, 이것이 없는 참 평화는 있을 수 없다. 또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창조의 보전, 이것이 없이도 참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참 평화가 없는 창조세계는 바로 죽음의 세계일 뿐이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정의와 평화는 자주 외쳐왔지만 창조의 보전 문제에 관해서는 소리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니 일부에서는 기독교가 자연파괴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너무나 초자연적 존재여서 자연과의 접촉이 용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화의 관계로 보지 않고 대립의 관계로 진술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파멸의 위기로 몰아가는 계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으며, 시편 8편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영광스런 존재로 고백하고 있는데 이런 진술들이 모두 결과적으로 인간들이 자연파괴를 정당화시켜 주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러한 지적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든 아니든 간에 여하간 기독교 국가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국가들보다 좀 더 손쉽게 자연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지적은 옳다. 근대에는 기독교적 영향 이외에도 자연과학이 싹틀 수 있는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이 자연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서는 이러한 자연파손, 대량살상, 지구파멸의 위기까지도 몰고 오는 사태에 관해 어떠한 진술들을 하고 있는가? 과연 창세기1장과 시편 8편에 나타난 하나님, 자연, 인간에 관한 진술의 본래적 의도가 자연파괴 허용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이제 성서의 진술들을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많은 학자들이 창1장과 시8편 등 성서의 관련 구절들을 재검토하여 이들 보도들이 자연을 마구 정복하고 파괴하고 훼손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말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지닌 자연보전의 의무와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그 밖에 다른 성서구절들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가? 창조, 인간, 자연세계를 언급하고 있는 그밖에 다른 성서구절들의 신학적 의도와 진술은 무엇인가? 이제 창조주로서의 야훼가 자주 찬양되고 있는 시편을 몇 편 골라 그 구조와 내용을 검토하고 그 특징을 종합해 봄으로써 구약성서에 나타난 창조의 보전에 관한 신학적 메세지를 찾아 보기로 하겠다.


2. 시편 24, 74, 136편의 내용과 특징

1) 시편 24편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야훼의 것,
이 땅을 그 물 위에 든든히 세우셨다.
어떤 사람이 야훼의 산에 오르랴?
어떤 사람이 그 성소에 들어서랴?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야훼께 복을 받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며
야곱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야훼이시다.
싸움터에서 그 용맹 떨치신 야훼이시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영광의 왕은 만군의 여호와 그분이시다.

이 시는 성소에서 사용되던 제의시에 속하며 세단락으로 나누어지는 짤막한 시이다.

1-2절은 피조세계는 모두 야훼에 속한다고 선언한다(비교; 시74:16, 89:11, 95:4f, 22:28, 삼상 2:8 등등). 시편 저자는 땅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데도 흔들거리지 않고 고정되었다고 크게 감탄하며 그러한 야훼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비교; 시136:6, 창7:11 등).

3-6절은 제사장의 물음과 평신도의 대답 혹은 평신도의 물음과 제사장의 대답이 교차되는 "성전허입-예전문"이다. Tora-liturgie라고도 불리우는(Gunkel) 이 단락은 성소에 온 순례자들에게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거행되었던 의식이 반영되고 있고 시15편과 50편의 내용이 비슷하다. 야훼가 원하는 바 그의 백성이 행하여야 할 윤리적 계명들이 짧게 축약되어 성소입구에서 반복하여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7-10절은 영광의 왕, 야훼와 성소로 입장하는 의식을 반영하는 구절이다. 이제 전쟁의 승리자, 용사, 야훼가 들어가시니 문들은 고개를 들라는 것이다. 여기서 야훼는 전쟁의 용사 즉 영광의 왕으로 찬양되고 또 반복되는 문들의 물음과 대답으로 야훼의 영광과 승리가 한층 강하게 묘사되고 있다. 아마도 법궤가 시온성에 올라가는 그런 성전의식이 여기에 반영된 듯 하다.

이 시 24편에는 (1) 창조주로서의 야훼찬양 (2) 야훼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규정이 (3) 영광의 왕, 전쟁의 승리자로서의 야훼 찬양 등 세 가지 모티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인 야훼에게 속하며 야훼는 이 땅을 든든히 붙잡고 고정시키셨다. 그리고 야훼께 속하는 사람이 되는 규정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순수하고, 그 영혼이 허무한 것을 좇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것이다. 이렇게 윤리적으로 정의로운 사람만이 참다운 야훼의 사람이며 구원받고 복을 얻는다.

그런데 이 야훼는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승리와 영광의 왕이시다. 문들도 머리를 들어 축하하는 야훼의 영광은 곧 전쟁에서의 승리자의 영광이다. 이 배후에 들어 잇는 표상인 바 야훼는 만군의 하나님으로 전쟁에서 이기시는 용사로 고백된다. 그런데 야훼전쟁의 특징은 야훼는 전쟁의 무기로 자연현상을 쓰신다는 점이다. 해, 달, 별, 바람, 구름 등을 동반하신 야훼는 애굽을 바다에 처넣어 승리하시되(출15) 이스라엘 진지와 애굽진지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누어지게 하시고 한쪽에서는 광명을 다슨 한쪽에게는 어둠을 주셔서 애굽군 스스로가 혼비백산하게 하셨고(출14:24) 또 해와 달을 멈추도록 명령하여(수10:12)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승리의 하나님은 곧 자연의 주인이신 창조자 하나님이다.

시24편에 나타난 사고를 요약하면 야훼는 세계만물의 주인이시며 공의를 원하시며 자연을 움직이심으로 역사 속에서 늘 승리하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사다. 시24편은 창조, 정의, 승리의 모티브가 섞여 있는 예루살렘 성전의식을 반영하는 제의 찬양 시라고 볼 수 있다.

2)
하나님, 어찌하여 끝까지 우리를 버리시며
어찌하여 당신 목장의 양떼에게 진노하십니까?
기억하소서,
한 옛날부터 당신께서 얻으신 이 백성을,
당신 차지로 속량하신 이 지파를,
당신의 처소로 정하신 시온산을,
이 끝없는 폐허에게 발길을 옮기소서.
원수들이 성소 안을 휩쓸었습니다.


원수들은
당신의 백성이 모이는 곳에서 고함을 치며
승리의 표로 저희 기를 여기저기 꽂았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찍는 나무꾼처럼
모든 문들을 도끼와 망치로 짓부수며,
당신의 성소에 불을 지르고
당신의 이름을 모신 성막을 뒤엎고 더럽혔습니다.


우리를 단번에 멸종시키리라 작정하고는
나라 안의 거룩한 예배소를 모두
불질러 버렸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표적과 없고 예언자 또한 없어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언제가지 적군의 목욕을 참으시렵니까?
언제까지 원수들이 당신의 이름을 모독하리이까?
어찌하여 당신 손을 사라시옵니까?
어찌하여 오른손을 품안에 품고만 계시옵니까?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의 임금님,
땅 위 모든 곳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옵니다.
당신은 그 크신 힘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바다 위에 솟은 괴물들의 머리를 짓부수신 분,
레비아단, 그 머리를 깨뜨리시고
그 고기로 사막의 짐승들을 먹이신 분,
샘을 터뜨려 물길을 트시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도 말리셨습니다.
낮이 당신의 것이니 밤 또한 당신의 것,
해와 달을 제자리에 놓으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야훼여, 기억하소서
원수들이 당신에게 악담을 퍼붓고
미련한 백성이 당신의 이름을 모독합니다.
산비둘기 같은 당신의 이 백성을
저 들짐승들에게 넘겨 주시 마소서.
땅의 구석구석에 폭력의 도가니이오니
당신께서 맺어주신 계약을 기억하소서.
억눌린 자, 부끄러워 물러가지 않고
가난하고 불행한 자,
당신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일어나소서, 하나님 옳으심을 밝히소서.
날마다 당신을 모독하는 미련한 자를 기억하소서.
아우성치는 당신 원수들을 잊지 마소서.
당신의 적대자들
그 우짖는 소리가 높아만 갑니다.

이 시는 민족탄식시에 속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약탈과 황폐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1-3절에서 시인은 야훼 하나님께 탄식과 기원으로 관심을 요청하고 있고, 4-9절에서는 폐허가 된 성소의 암담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며, 특히 아무런 희망의 표적도 없고 예언자도 없는 안타까운 현재의 상태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10-11절에서 또 한번 야훼께 탄식한 수 12-17절에서 시인은 창조에 나타난 야훼의 구원의 시작을 기억하고 피조세계의 주인되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어서 시인은 18-23절에서 자신들의 희망, 즉 야훼가 그의 백성을 위협하는 폭력을 꺾으시어 억눌린 자,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이 모두 야훼 이름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원을 한다. 야훼가 일어나시어 시비를 잘 분별하시어 적들을 물리쳐 주실 것을 시인은 희망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들의 상황을 "우리에게는 표적도 없고 예언자도 없고 또한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를 아는 자도 없습니다"(9절)라고 묘사하고 있다. 상황은 매우 참담하고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따라서 시인의 희망은 오로지 야훼에게만 있다. 야훼는 처음부터 왕이시며 "땅 위 모든 곳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는 창조에서 부터 출애굽과 요단강 도강사건에서(13절, 15절) 광야에서의 인도에서(15절, 비교 시 104:10, 줄 17:6) 또 자연의 질서 있는 운영에서 그의 구원을 이룩하신 분이시다. 시인은 적들이 야훼의 이름을 더럽히고 성소에 불지르고 여러 가지 파괴행위를 한 것에 대해 야훼가 더 이상 인내하시지 않고 시시비비를 따져서 원수들을 처벌하실 것을 바란다. 그리고 그는 야훼의 능력에 때해 확신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지금의 이스라엘의 상황은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진노의 결과로 지금까지는 야훼가 적들의 악한 행위를 묵인하시기 때문에 현재의 암담한 상황이 지속된 것이고, 원하기만 하면 야훼는 이 상황을 급변시킬 수 있다.

『이 시편의 내용을 가난안에서 거행되었던 죽어 가는 神=王 신화의 반복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Willesen)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편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소파괴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단지 연대설정은 9절의 표현 대문에 마카비 시대로 보는 사람들과 성소의 모욕이 이방신의 숭배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B.C. 587∼520년 경으로 보는 학자들로 나뉜다. 13∼18절의 표현은 매우 동화적으로 되어 있는데 바빌론 창조신화나 Ras Schamra의 묘사와 매우 흡사함이 눈에 뜨인다.』

이 시에서 시인은 고통과 회의 속에서도 창조와 역사를 통한 하나님 구원행위에 완전히 의지하고 있다. "땅 한가운데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 그의 구원은 창조에서 시작되었고 역사 안에서 지속된다. 이러한 내용은 제2 이사야의 선포와 일치하며 창조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시인의 유일한 희망이다. 야훼의 명예회복은 곧 야훼를 따르는 자들의 구원일 것인 바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진노가 그치는 날 이루어질 것이다.



3) 시136편

이 시는 성소에 쓰이던 감사시로 제사장과 평신도들이 번갈아가면서 화답하던, "그의 사랑은 영원하시다"가 반복되는 제의 감사시이다. 이 시에게서도 창조주로서의 야훼는 역사의 주인으로 찬양된다.

4∼9절은 창조자 야훼의 찬양이고 10∼24절은 역사의 인도자 야훼에 대한 찬양이다. 역사적 사건으로는 출애굽 사건(10∼15절),광야사건(16∼20절),가나안 정착사건(21절) 그리고 사사시대의 사건(23∼24절)이 열거되고 감사의 대상이 된다. 이 시에서 특징적인 구절은 2∼3절의 다신론사 등이라고 볼 수 있다. 2∼4절의 표현은 신 10, 17과도 일치하는데 아마도 다신론적 세계에서 빌려온 표현일 것이다.『바빌론의 마르둑 신의 칭호도 이와 비슷한 것이 많다. 25절의 양식을 주시는 창조자라는 표현은 시 104:27, 145:15, 147:9 등에도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H. Schmidt는 이 구절을 이 시의 핵심으로 보아 포로 이후에 거행되었던 추수감사절 축제와 이 시를 연결시킨다. 5절의 지혜와 창조와의 연결은 시편연구에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여겨진다. 지혜로 하늘을 만드셨다는 표상은 피조세계에 대한 감탄과 경의에서 나오는 바 이러한 하나님 창조와 지혜와의 연결은 곧 야훼를 경외하는 인간의 지혜를 요구한다.』

시 135편은 창조, 역사 지혜가 결합되어 있는 감사시로서 예루살렘 성소에서 사용되던 제의 감사시이다.



3. 시편에 나타난 창조신학

1) 창조와 역사

시편에는 창조주로서의 야훼 찬양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따라서 창조주 야훼 찬양은 시편 전편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창조주로서만 야훼가 찬양된 시편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 우선 눈에 뜨인다. 야훼가 단지 창조주로만 묘사된 시편은 시104편과 148편 뿐이다.

시 19편은 상반부만 창조주 찬양이고 하반부는 토라에 관해 언급한다. 시104편은 널리 알려진 데로 애굽의 태양신 찬양과 아주 비슷하며 시 148편도 가나안의 바알신 묘사와 매우 흡사하다. 이렇게 이방의 창조시를 그대로 모방한 시편 이외에는 거의 모든 창조주 야훼 찬양시는 다른 형식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앞에서 검토한 대로 시 24편은 창조, 토라, 정의,승리 등의 모티브와 결합되어 있고,시 74편은 창조와 역사, 탄식이 결합되어 있고 또 시 136편도 출애굽, 광야 가나안 정착 등의 역사적 사건과 함께 등장한다. 이 밖에 46, 48편 등도 시온, 언약,토라 등의 모티브 등과 결합되어 창조주 야훼 찬양이 등장한다. 이렇게 창조주 찬양이 특히 민족의 역사와 결부되어 나오는 것은 이스라엘 시편들의 특징이다.

가령 애굽의 창조시에는 창조주의 작품이 한때 일어난 완결된 사실로 보고 이를 객관적으로 찬양하도록 부른다고 보고 있다. 창조가 애굽에서는 신들의 세계와 신들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증거하기 위한 큰 신의 행위였다면,이스라엘에서는 창조는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야훼의 구원 사건의 출발점이다. 창조의 사건은 객관적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 관계 속에서 확인되고 일어나는 하나님 구원사건의 일부인 것이다.

시편의 창조주 찬양의 내용은 그 내용이 길든 짧든 모든 근동의 다른 신들의 묘사를 대체로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시편에는 다신론적 신화적 표상이나 자연묘사 방법들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가량 빛의 야훼의 외투이고, 구름은 그가 타고 다니는 마차이고, 바람과 불꽃은 그의 사자이다(시104:4, 암 9:5, 4:13, 렘 10:10). 자연은 그러나 다른 종교 등에서처럼 하나님이 사는 곳은 아니다. 또 자연은 신적인 존재들도 아니며 단지 야훼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다. 해와 달은 신적 존재가 아니고 야훼의 피조물로서 야훼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다

야훼는 창조주로서 자연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자연을 주관하시고 보존해 나가신다. 그는 지금도 밤과 낮을 주관하시고, 눈과 얼음도 있게 하시고, 땅을 흔들기도 하시고 고정시키기도 하시며, 땅에 물을 쏟기도 하시고, 장마를 말리기도 하신다(시 148, 암 5:8).또 야훼는 인간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며, 가난하게 하실 수도, 부자로 만들 수도 있으시다(삼상2:6f, 시75:8, 146:9, 욥 5:11ff, 12:17ff, 36:5ff등).

욥의 표현대로 그의 위대한 일은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고 또 셀 수도 없다9욥12). 하나님의 능력은 초자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로 보존되어 가는 이 세상은 좋고 아름답다. 이스라엘 시편들은 이러한 야훼의 능력이 자연창조와 보전에서 뿐 아니라 역사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노래한다. 창조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좋고 선한 구원의 의지는 출애굽, 광야, 가나안 정착, 그리고 지금까지 역사 안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창조는 하나님 구원의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2) 창조와 지혜

시편은 하나님이 자연을 지혜로써 창조하였다고 고백한다. 잠 8장에는 이 사고가 발전되어 있는데(비교: 욥12, 28, 시 104:24, 136:5 등) 이에 의하면 야훼는 만물을 지으시기 이전에 이미 지혜를 지으셨다. 깊은 바다, 샘, 물도 솟기 전에 지혜는 이미 있었다.

그래서 야훼가 하늘과 땅과 구름을 지으실 때 지혜는 있었고 땅의 터전을 잡으실 때에는 지혜가 조수 노릇을 하였다. 이러한 표상은 어떤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든 간에 이 세계의 질서가 기막히게 좋고 그 오묘함이 하나님의 지혜를 증거한다는 점을 잘 말해준다.(비교: 시19A)

이런 의미에서 W.Zimmerli는 지혜문학의 신학은 곧 창조신학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자연을 주관하시고 운영하시는 야훼의 지혜를 깨달아 인간이 올바른 삶의 영위를 도모하는 것이 지혜문학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곧 창조신앙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주가 선물로 스스로 이 우주를 만드셨음을 깨닫고 이 자연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이며,지혜의 근본인 창조주의 권능을 믿고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야훼경외"라는 것이다. 시편에 들어 있는 지혜시에 의하면 율법과 교훈도 이러한 지혜의 실천을 위한 지침 외에 다름 것이 아니다. 지혜문학에서 인간의 세상에 대한 관리 책임과 능력이 요청되고 강조된다면,시편에서는 창조와 지혜가 결합된 자연,즉 피조세계 자체가 야훼에 대한 찬양과 경탄, 그리고 신회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찬양과 경탄과 신뢰는 또 다시 피조물로 하여금 올바른 의로운 행실을 하게 한다.(가령 시 1, 37, 49, 73 등)

3) 창조와 심판과 구원

야훼의 위대한 권능은 창조와 승리의 역사에서 나타날 뿐 아니라 야훼의 적대자 처벌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러한 표상은 시 74편과 같은 탄식시에 잘 나타나 있고 예언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호 4:1∼3에 보면 "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나님을 알아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고리를 물고 가는 데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여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간다"고 되어 있다.

또 예레미야는 4:23∼26에서 "땅을 내려다보니 끝없이 거칠고 하늘을 쳐다보니 깜깜합니다. 산을 바라보니 사뭇 뒤흔들리고 모든 언덕은 떨고 있습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사람 하나 없고 하늘에 나는 새도 모두 날아 갔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옥토는 사막이 되었고 모든 성읍은 허물어져 야훼의 노여움에 불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고 그 당시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의 죄 때문에 야훼가 분노하신 것이다. 야훼는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심한하시고 자연의 황폐화로 나타내 보여 주신다.

한편 야훼는 그의 성소를 더럽히고 모욕한 이방민족들도 벌하신다. 시편 기자는 야훼의 승리를 확신하며, 그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라고 말하고(시 24, 72, 89, 93, 96,99) 그 자신의 확신을 창조주이면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야훼의 권능에서 얻는다.

이렇게 악의 세력의 심판은 천지창조의 능력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시편 기자나

예언자들에 의하면 야훼의 심판도 창조에서 시작된 야훼의 구원행위요 다른 것이 아니다. 야훼의 심판은 그의 권능의 표시이며 구원의지의 표시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훼의 모든 행위는 그의 백성을 살리시기 위함이라는 예언자들의 선포는 옳다

(암 5:9, 겔 18:23∼32, 233:10∼20, 호 6:2, 신 3:19 등).

신약에서는 야훼의 창조, 역사, 구원의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완성되었음을 증언한다.

4. 맺는말

이상 위에서 검토해 본 시편의 창조신학은 야훼가 우주의 창조자시며 보존자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늘 승리하는 분이라고 말해주고 있다.그리고 야훼의 창조행위는 그 자체로 독립되지 않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되는 구속사의 시작이며 정의와 지혜가 결부되어 있다고 증언한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이러한 창조에서 시작된 구원의 완성이라고 증언한다. 다시 말하면 야훼는 창조에서 출애굽 사건에서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하여 그의 백성을 살리시고 보전하시려고 역사(役事)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야훼가 죽음을 원치 않으신다면 그것은 우리 세대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후손들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쫓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불의로, 편견으로, 폭력으로, 공해로, 핵무기로, 인류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을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다."살인하지 말라"라는 금령은 직접 살인 뿐 아니라 이웃을,다음 세대를 서서히 죽이는 일 그리고 정신적 심리적 살인까지도 모두 포함된다.우리는 야훼의 살리시는 계획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이러한 우리의 노력 없이는 창조세계는 또 다시 혼돈과 무질서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창조세계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장이 아닌가?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그 분을 위해 있습니다."

(롬 11:36, 고전 8:6)라는 바울의 말은 우리 신앙의 기본정신을 잘 말해주고 있다.

생명, 지혜, 치유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모든 죽음의 요소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 땅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고대해야 할 것이다.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장]

[내용개요]
이 시편의 저자는 앞 시와 유사한 내용으로 여호와께 사람들이 감사해야 될 것을 말한다. 특히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기 때문이다(1절).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신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그의 인자하신 일이다(2-3절). 그가 만물을 창조하신 사실과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행적은 모두 다 사랑에 속한다(4-24절).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복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 것이며 또한 그의 구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류에게도 나타난다(25-26절). 그 사랑은 일반 은총에 속하는 것으로 먹여 주시는 사랑이다.


[강 해]
외형상 독특한 통일성을 지닌 작자 미상의 이 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를 주제로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구절이 '감사하라'로 시작하여 '그 인자하심은 영원함이로다'로 끝맺고 있는 이 시는 유월절과 신년절에 주로 낭송 되어졌습니다. 성가대가 '감사하라'라고 부르면 회중들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답송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

1) 위대하신 하나님
시인은 찬양을 권고하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이유로 그분의 위대하심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며 인자하신 성품과 신중의 신이시며 주중의 주인이신 그분의 높으심을 찬양하되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그분의 거룩하심과 높으심을 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와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위대한 사역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말씀과 지혜로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 특히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큰 기사에 우리는 다만 감사의 찬미를 올릴 뿐 입니다.
a. 말씀으로 하신 창조 사역(요1:3)
b. 천지의 주재(행17:24-25)

 

2) 창조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사역에 나타난 그의 능력은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으로는 도저히 규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인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과학을 비롯한 각종 학문이 발달하자 인간들은 끊임없이 이 신비를 벗기기 위하여 노력해 왔으며 지금도 수많은 도전적 노력들이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역사하심은 인간의 사고 범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만 믿고 감사의 찬양을 올리는 것을 최선의 도리로 삼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역을 영원토록 수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기사 속에서 그분만이 찬양과 감사를 받으실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a. 영원한 하나님의 행사(전3:14)
b. 온 땅에 아름다운 주의 이름(시8:9)

 

3) 천체를 만드신 하나님
주께서는 빛과 해, 달, 별의 천체를 만드시고 그것으로 주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자연 생태의 보존과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빛처럼 중요한 것도 드묾니다. 주께서는 이 빛으로 인류의 삶을 주관하시듯이 그리스도의 빛을 농하여 영적 암혹에 던져진 인생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된 이 세계를 볼 때에 그저 평범하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신 섭리와 은총을 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a. 빛이신 그리스도(요1:4)
b. 때를 따라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전3:11)

 

2.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인도하신 여호와

1) 가나안으로 인도된 이스라엘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출애굽 여정은 단순한 이스라엘 역사에 그치지 않고 성도들이 앞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걸어가야 할 험난한 삶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다사 다난한 성도의 영적 노정에서 연단을 받을 때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됩니다. 홍해나 바로의 군대가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이 사랑을 막을 수 없었듯이 오늘날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도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끊을 수 없습니다.
a. 새 힘을 공급하시는주(사40:31)
b.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롬8:35)

 

2) 광야를 통과한 이스라엘
광야는 불가능한 절망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 곳은 먹을 것도 안주할 처소도 보장되지 않았으나 주께서는 놀라우신 섭리와 기사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능히 그 곳을 통과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택한 백성과 이방인에 대한 주의 관심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택한 자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모든 불가능을 극복하고 늘 승리하여 그 분의 영광스런 나라로 입성할 것입니다. 죄로 얼룩진 광야 같은 세상에 고아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택하사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a. 택하신 자를 향한 주의 관심(출9:6)
b. 그리스도를 인한 승리(고전15:57)

 

3)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가로막은 자들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갈 때 그들의 길목을 가로막았던 자들로, 주의 진노를 받아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패하게 되었고 그들의 땅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에 분배되었습니다. 이같이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가로막는 자들도 장차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성도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태한 신앙을 버리고 담대하고 인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온전히 구비된 신앙(약1:2-4)

 

3. 여호와의 영원하신 인자함

1)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
'비천한 데'는 이스라엘의 포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후에도 범죄하여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고 노예 생활을 하는 비참한 현실을 맞았습니다. 오늘날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며 악에 대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는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워하신 그리스도를 암시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신앙자들로 자라 가야 합니다.
a. 깨어 근신하라(살전5:6)
b. 구원자 그리스도(골1:13-14)

 

2)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에서 식물을 준비하셨고 심지어 공중의 새 한 마리에게까지도 떡을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믿는 우리가 의식주에 얽매여 주께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보잘것없는 미물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 때 필요한 모든 것은 자연히 채워집니다. 더욱이 당신의 자녀로 삼은 성도들에게는 보다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며 나아가서는 영혼의 양식과 생명수를 주심으로써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름이 없을 구원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한평생 찬양하여도 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여호와의 영원하신 안자함 앞에서 우리는 늘 감사하는 자들로 자라 가야 합니다.
a. 먹을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마6:26)
b. 먼저 구해야 할 것(마6:31-33)
c.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골1:12)

 

결론
유대 문헌에는 본시를 큰 찬송이라고 불렀는데,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찬양하는 후렴구를 가지고 감사에 대한 교훈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임을 알게 되니 그분의 크신 경륜과 은혜에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 우리를 구원으로 던지시고 영육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니 그 영원하신 인자함에 만만이 감사를 올려 드림이 합당합니다.


[단어해설]
1절. 인자하심이. 원어는 주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에 대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3절. 모든 주.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자들과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5절. 지으신. 원어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7절. 큰 빛들. 해나 달, 별과 같이 빛을 내는 물체를 말한다.

10절. 장자를 치신. 출애굽 사건 때 하나님깨서 애굽의 모든 초태생들을 죽이신 사건을 가리킨다.

12절. 강한 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미한다.
펴신 팔로. 심판이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을 묘사한 표현이다.

15절. 엎드러뜨리신. 원어는 '나무를 흔들어 잎사귀를 떨어뜨리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전능 앞에서 무능하고 연약한 애굽 군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18절. 유명한 왕들. 이스라엘에게 정복된 가나안 왕들을 가리킨다.

23절. 비천한 데서. 힘이 없어 외부로부터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25절. 육체에서. 원어는 '살'을 뜻하며, 여기서는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
이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결국 에는 구속적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제일 먼저 그 창조 행위에 있다. 흑암과 혼돈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질서와 빛을 허락하시고, 온 우주의 신비로움을 인간이 알 수 없는 경지에서 창조하시고 그것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감사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시고 그 모든 만물을 주관케 하시며, 그 속에서 영광을 받으시려 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과 불순종으로 긴 구속의 역사를 펼치신다. 아담의 후손은 죄악과 부패 속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원의 길을 얻는데, 바로 그것이 피흘림의 속죄 제사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이미 피 흘림의 제사를 예표하신 하나님은 애굽 땅 유월절의 제사를 통해 장자를 죽이시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음을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은 이제 모든 죄 속함을 어린 양의 희생 제물을 통해 이루었고, 그 완전한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 동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모든 인도하심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히 드릴 희생 제사를 예표하는 도구들이었다. 즉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며,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마땅히 찬송받으셔야 하는데 이는 구속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구속의 사랑은 이스라엘의 불평과 원망을 참으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기까지 하셨고,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이방 민족에게 구속을 확대하시기까지 하셨다. 우리의 모든 삶은 바로 인자하신 구속의 하나님에게서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영적교훈]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피 흘림의 대가를 지불하기까지 한 사랑이다. 이는 곧 무한한 사랑임을 의미한다. 온 이스라엘의 교만과 불평을 인내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내어 준 사랑은 그 어느 종교사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기독교만의 특징이다. 신이 직접 인간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희생과 사랑은 다른 종교가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 준다. 이 사랑에 인간은 그저 혜택을 볼 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구속받은 우리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 사랑이,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될 최고의 이유인 것이다.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시 138장]

[내용개요]
다윗은 여러 이방 신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1-2절). 하나님은 다윗에게 있어서 심령에 은혜를 주시는 구주이시며(3절), 열왕들까지도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시는 분이다(4절). 또한 겸손한 자를 특별히 돌보아 주시며 은혜 주시는 구주이시고(5-6절), 환난 중에 있는 자도 구원하시며(7절)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구주이시다.


[강 해]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시며 강건케 하심을 인하여 감사하며 찬양하였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세상에 임하셔서 그 크신 영광을 드러내시고 선악간에 공의로 판단하여 주심에 대하여 찬양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영원함을 근거로 구원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찬양

1) 신들 앞에서 하나님께 찬양
시인은 온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는 찬양을 신들 앞에서 드리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앙과 확신 가운데서 다른 이방 신들을 조롱하듯 하나님께 온전히 찬양을 올리겠다는 뜻입니다. 이방 열국들이 많은 신들 앞에서 찬양하며 경배하지만 시인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a. 모든 신 위에 크신 여호와(시95:3)
b. 헛된 모든 신(시96:5)

 

2) 주의 성전을 향한 경배
시인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인의 찬양과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히 지키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시고 그 말씀의 권위와 영광을 높이셨다는 뜻입니다. 인자와 성실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a. 인자를 힘입어 주를 경외함(시5:7)
b. 성전을 향한 경배(왕상8:29)

 

3) 간구하는 날에 응답하신 하나님
시인은 자신이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강하게 하셨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써 구워 역자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a. 간구에 응답하심(시91:15)
b.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9)

 

2. 열왕의 감사와 찬양

1) 땅의 열왕의 주께 대한 감사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한다는 시인의 진술은 하나님의 권능과 크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열왕이 가진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으므로 열왕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열왕의 주께 대한 감사 이유를 저희가 주의 입의 말씀을 듣기 때문이라고 증거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구원의 은총과 능력을 밝히 증거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입어 구원에 참예하게 된 자는 자연스럽게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a. 옅방이 주를 경외함(시102:15)
b.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딤전6:15)

 

2) 여호와의 도를 노래함
여호와의 도는 죄에 빠져 죽을 영혼에게 구원의 길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은 자는 여호와의 도를 인파여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밝히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시고 구원의 도를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a. 완전한 도(시18:30)
b. 사람의 길과 다름(사55:8-9)

 

3) 낮은 자를 하감하시는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께서 높이 계시지만 낮은 자를 굽어보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돌아보시고 교만한 자를 징벌하시어 낮추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의인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는 역사에서 보여집니다.
a. 비천한 자를 돌보심(눅1:48)
b.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심(시113:5-6)

 

3. 구원하시며 완전케 하시는 주

1) 환난 중에 소성케 하심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자신을 소성케 하신다는 시인의 진술은 험악한 인생 길을 걸을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해 주신 체험을 고백한 것입니다. 시인인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누구 못지 않은 고난의 인생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젊었을 때의 사울의 칼에 쫓겨 다녔고 노년에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의 날에 쫓겨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그를 위험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a. 환난 중에 함께하심(시23:4)
b. 주께서 다시 살리심(시71:20)

 

2) 원수의 노를 막으사 구원하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자신을 구원하신다고 찬양했습니다. 오른손은 권능을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원수가 아무리 강한 힘으로 시인을 살해하려 해도 하나님께서 강한 힘으로 보호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주의 백성을 해하려 하나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심을 의미합니다.
a. 사단을 제어하심(욥1:12)
b.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구원하심(벧후1:10-11)

 

3)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시인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근거로 자신을 끝까지 버리지 마시고 구원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자신과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해 달라는 시인의 간구는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져 원수가 멸망당하고 자신이 승리하기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언약을 맺으신 자들에 대하여는 주권적으로 그 언약을 성취시키심으로써 부원을 완성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믿는 자의 구원 확신의 근거가 됩니다.
a. 모든 것을 이루심(시57:2)
b. 예수의 날까지 이루심(빌1:6)

 

결론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구원하여 주시며 승리케 하실 것임을 주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인하여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확신 있는 신앙이 성도에게 있어야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실망과 좌절하지 않고 원수와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구하며 담대하게 믿음의 길로 행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신들.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가리킨다.

2절. 주의 말씀. 특별히 자기 백성을 향한 구원의 언약을 의미한다.

3절. 간구하는 날. 고통과 극심한 슬픔에 처한 때를 말한다.

6절. 높이 계셔도.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초월적 본질을 의미한다.

8절. 완전케. 모든 고통과 슬픔을 없게 하고 적극적으로 풍요한 삶을 이룰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주제]
구원자 하나님.
다윗은 이 시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구원자로서 태어나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대언하고 있다. 환난과 고통 중에서 다윗을 지켜 주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있어 구세주이시다. 심령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그 은혜를 다윗에게만 제한하지 않으시고 열왕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확대하셨다. 곧 주의 살아 계심과 위대하심을 온 인류에게 보이심으로, 하늘 아래 거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일에 전념케 하셨다. 다윗은 환난 중에도 주의 오른손으로 자신을 보호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이 시의 주제는 메시야로 오실 구세주를 예언적으로 찬양하고 있다고 봄이 옳다.


[영적교훈]
성도는 항상 하나님에 감사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서도 성도들은 완전케 하여 주시며 구원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구원은 바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다.

 

 

죄로부터 보호를 요청하는 기도[시 141장]

[내용개요]
다윗은 난관을 당했을 때에 기도로 일관하였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만을 바라보았다(1-2절). 난관을 당한 다윗의 처세 방침의 또한 가지는 말과 행동을 파수하는 데 있어서 평시보다 더욱 강력하게 함이다(3-5절). 다윗은 자기의 당한 비참한 처지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본다. 그는 핍박자들이 극도로 악하기 때문에 결국 남을 잡는 일이 자신을 잡는 일이 되고 말 것을 내다보았다(6-10절).


[강 해]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것을 구하며 가신의 입술과 마음과 행위를 죄로부터 지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악의 세력이 악랄하게 공격하는 가운데서 시인은 하나님께 피할 것이니 자기 영혼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을 악인의 올무와 함정에 구원하시고 대적을 멸하실 분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 . 기도 응답을 위한 간구

1)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속히 응답해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심은 곧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어 역사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실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한 하나님 백성에게는 승리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이 대적과 싸울 때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에서 그 곳에 임하시어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리쳐 주셨던 것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을 구했습니다.
a. 속히 응답하소서(시70:5)
b. 부르기 전에 응답하심(사65:24)

 

2) 기도가 제사같이 되기를 구함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제사같이 받아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이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를 받아 주시듯이 자신의 기도를 흠향하여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도의 기도를 향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5:8).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의 향을 기쁘게 흠향하시고 응답하여 축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한편 시인은 기도하는 것을 손드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실제적인 기도의 자세이기도 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부인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기도는 자신의 힘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폭적으로 의지함의 자세를 내포해야 바른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a. 성소를 향해 손을 듦(시28:2)
b. 저녁 제사의 향기(출29:41)

 

2. 입술과 마음을 지켜 주소서

1)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입술을 지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입술로 범죄에 빠질 것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성경은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13:3)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이유 없이 악인에게 고난을 당하면 입술로 범죄하기가 쉽습니다. 자칫 하나님께 대해 불평을 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입술을 제어하는 일이 강한 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께 자기 입술을 지켜 주실 것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a. 궤사한 말에서 금함(시34:13)
b. 입의 문을 지키라(미7:5)

 

2) 죄인과 함께하지 말게 하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지켜 주셔서 행악자와 함께 행치 말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또한 악인의 진수를 먹지 말게 해 달라고 했는데 이는 악인들과 교제하지 말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악인과 동행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음은 곧 멸망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그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 멸망의 길로 행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깨끗하게 지키는 일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a. 복 있는 사람의 행실(시1:1)
b. 부정한 것에서 성별되어야 함(고후6:17)

 

3) 책망을 거절치 아니할 것임
시인은 의인이 자신을 치고 책망함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의인의 책망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길로 가게 하여 복을 받게 하는 양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범죄할 때 징계의 채찍을 들어 치심으로써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도록 만드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에 대해 성도는 감사하며 속히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a. 책망을 달게 받는 지혜 있는 자(잠9:8)
b. 지식을 얻게 하는 견책(잠19:25)

 

3. 주께서 지켜 주소서

1) 영혼을 버려 두지 마옵소서
시인은 악인의 핍박을 받아 의인들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짐같이 되었음을 진술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피하니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말고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즉 악인들의 손에 자기 영혼을 맡겨 두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해 달라는 간구와 일맥 상통합니다. 악인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쳐 놓은 올무와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성도의 영혼을 빈궁한 자리로 타락시키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엔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a. 여호와께 피함(시11:1)
b. 여호와를 앙망하는 눈(시25:15)

 

2) 나를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시인은 악인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함정에 그들 자신이 빠지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악인들의 악한 죄를 그들 자신의 머리로 돌아가게 하심으로써 공의의 심판을 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은 그 올무와 함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케 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악인들이 의인을 해하려고 계획하나 이는 결국 자신들의 멸망과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a. 자기가 만든 웅덩이에 빠짐(시7:15)
b. 하나님이 그물을 치심(시11:6)

 

결론
인간은 연약하여서 스스로를 죄악의 세력으로부터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인간 본성이 이미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라 할지라도 죄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시인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지켜 주실 것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인간을 죄로부터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어해설]
1절. 속히. '열망하다, 서두르다'라는 뜻으로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서두르는 것을 의미한다.

4절. 진수. 육체적인 쾌락을 위해 즐기는 산해진미를 말함.

5절. 칠지라도.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책망하는 행위를 말한다.

7절. 음주. 일반적인 무덤을 말한다. 여기서는 육체의 완전한 멸망을 상징한다.


[신학주제]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이 죄악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악에 빠지는 요소를 미워하시고 그 인간까지도 벌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큰 심판을 통해 악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곧 노아의 홍수 심판, 아브라함 때의 소돔과 고모라 성 심판, 출애굽 당시의 장자를 죽이시는 심판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만 살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법도를 어길 때에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악쓸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악의 존재를 완전히 멸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영적교훈]
다윗처럼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기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기도가 강하면 강할 수록 원수는 주의 백성들에게 접근하지 못 할 것이다.

 

부르짖어 호소하는 기도[시 142장]

[내용개요]
다윗은 환난을 당하여 성공이 있을 기도를 올렸다. 소리를 내어 기도하였고(1절), 그의 아픈 사정을 하나님께 토할 정도로 문제를 맡겼으며(2절), 사람들이 다 그를 몰라 주어도 하나님 한 분만은 그를 알아주실 것을 믿었다(3-5절). 다윗은 성도의 소망이 높아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압제를 받아 비천해지는 데 있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6-7절).


[강 해]
시인은 하나님께 큰소리로 부르짖어 자신의 원통함을 아뢰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유일한 피난처요 자신의 분깃이 되심을 고백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대적에게 핍박을 받는 중에 구한 시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므로 반드시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는 소망과 확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1. 소리 내어 부르짖는 기도

1) 소리 내어 간구함
시인은 자신이 소리 높여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함을 진술했습니다. 기도를 조용히 소리 내어 하거나 묵상으로 할 수도 있지만 큰소리로 부르짖음은 기도 내용의 긴급성을 알려 줍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 생명을 걸고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여 주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는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a. 부르짖음에 귀기울이심(시77:1-2)
b. 주를 부름(시141:1)

 

2)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하는 기도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자신의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한 것이었음을 밝힙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원통함을 풀어 주시고 환난 중에서도 기쁨과 평강으로 그 마음을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억울하고 원통함을 당하였을 때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보복하여 그 원통함을 풀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마음을 토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a. 음부와 사망의 공포(시18:4-6)
b. 심만 통곡과 눈물의 간구(히5:7)

 

3) 하나님께 호소하는 성도의 기도
성도는 세상에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였을 때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어야 합니다. 사토 바울은 원수 같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갚으리라는 말씀과 함께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참조, 롬12:19)고 교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통함과 억울함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줄 믿고 모든 일을 주께 아뢰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a.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해야 함(빌4:6-7)
b. 성령의 도우심을 구함(롬8:26-27)

 

2.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1) 심령이 상함을 주께서 아심
시인은 악인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올무를 숨기므로 자신의 심령이 상할 때에 주께서 자신의 처지를 아셨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진술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령까지 감찰하심을 믿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궤계를 아심은 곧 악인으로부터 의인을 보호하시며 구원하여 주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
a. 불안하여 심령이 상함(시77:3)
b. 위로하시는 하나님(시86:17)

 

2) 세상에 피할 곳이 없음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피할 곳이 없음을 아룁니다. 자신의 원통함을 당하였으나 세상에는 자신을 알아주고 영혼을 돌보아 줄 어떤 존재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됩니다. 성도가 사단에서 공격받을 때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줄 존재는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어떤 존재를 의지하여도 닥치는 환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a. 친구가 놀라고 사람이 피함(시31:11)
b. 안위할 자가 없음(시69:20)

 

3) 유일한 피난처이신 하나님
시인은 세상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음을 진술하면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요 생존 세계에서 자신의 분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분깃이란 자신의 구원이요 소망을 뜻합니다. 하나님에서는 성도의 영원한 분깃이 되시며 이 땅의 삶에서도 기쁨과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는 성도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간구하여야 하는 이유와 근거가 됩니다.
a. 피난처이신 여호아(시14:6)
b. 산업과 잔의 소득이신 여호와(시16:5)

 

3. 부르짖음의 응답을 구함

1)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비천하게 된 처지를 아뢰며 자신의 부르짖음을 듣고 응답 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대적에게 핍박을 받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은 대적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강한 자에게서라도 자신을 구하여 내실 것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원수 마귀를 능히 대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을 받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기 위하여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참조, 엡6:18).
a.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시17:1)
b. 죄악으로 비천하게 됨(시79:8)

 

2) 주의 이름들 감사케 하소서
시인은 주의 이름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구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뜻과 함께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면 주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겠다는 다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a. 흑암에서 건지심(사42:7)
b. 주의 이름과 의로 구원하심(시143:11-12)

 

3)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인에게서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면 의인이 자신을 두르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인간 관계에서도 형통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통해 고통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복도 인간을 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a.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함(사45:17)
b. 여호와의 구원(시27:1)

 

결론
성도의 삶 가운데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성도가 할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피난처 되심을 믿고 하나님께 원통함을 아뢸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악인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형통함의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단어해설]
2절. 원통함. 원어는 '불평, 간구'라는 뜻. 성도의 고통을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암시.

3절. 상할 때에도. 원어<#f'[;:아타프>는 '흑암으로, 덮다, 연약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고통으로 인해 완전히 낙심한 상태를 의미.

4절. 우편. 법정에서 변호할 증인이 서는 자리로 구원을 의미.


[신학주제]
비천한 자의 기도.
다윗의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였다. 사울의 추격에 몸을 피한 곳이 굴이었다. 이 굴 속에서 다윗은 아는 자도 없이 편안히 쉴 곳도 없는 상태에서 유일한 희망이요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간구할 뿐이다. 결국 다윗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비천한 자를 일키시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참조, 고전1:27-28)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비참한 자리에서도 낙심치 않고 도리어 소망 중에서 기도를 힘썼다. 하나님은 이미 작정해 놓으신 계획까지도 인간의 간구함에 바꾸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죄악에 심판을 경고하신 하나님은 모세의 뜨거운 눈물과 간구로 그 뜻을 돌이키셨다. 인간의 호소가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고 간절히 하나님의 돌보심을 간구할 때뿐이다. 다윗은 이 원리를 잘 알고 실천한 인물이다.


[영적교훈]
본문은 주의 자녀들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했을 때 그 해결책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호소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성도들의 참된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세상의 권세에 호소하는 자는 실패할 지라도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시 145장]

[내용개요]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이 구주이심을 생각하고 찬송한다. 그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하였고(1절), 그의 이름을 높였으며(2절) 그 하나님은 위대하시어 모든 구원하시는 기사들을 많이 행하신다(3-6절)고 찬송한다. 또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만물도, 하나님이 만유의 하나님이시고, 지으신 모든 만물에 긍휼 베푸심을 감사하고 있다(7-10절). 세상의 모든 만물은 주의 나라의 영광을 찬송하는데, 주의 나 라는 영원하고 대대에 이르도록 그 능력은 넘쳐날 것을 말한다(11-13절). 주의 나라는 특별히 낮아진 자를 일으켜 주시는 통치이다(14절). 다윗은 모든 생물에게 식물을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찬양하고 있으며(15-16절), 의로우시고 또 은혜로우시며 신자들의 진실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고 찬송한다(17-19절). 마지막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찬송한다(20-21절) .


[강 해]
시인은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가 통치하시는 영원한 나라를 송축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셔서 악인에게 징벌을 내리시고 의인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또한 다스리는 모든 생물에게 식물을 제공하시어 저희의 소원을 만족시키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통치하심은 모든 성도의 찬송의 주제가 됩니다.

1 . 광대하신 왕께 찬양

1)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함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왕 되심을 고백하며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송축하며 영원토록 찬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시인의 이러한 고백과 다짐은 하나님께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구속주로서 인간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함(시146:2)

 

2) 측량치 못할 하나님의 광대하심
시인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측량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그 지혜와 능력의 광대하심은 창조와 구속 사역을 통해 증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사역은 신비에 속한 것으로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에게 찬양의 대상일 뿐 측량하거나 판단하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심(욥5:9)

 

3)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기사를 묵상하겠다고 진술합니다. 또한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 역사을 체험한 성도는 그 은혜를 세상에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역사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기록한 말씀을 묵상하고 전하는 일이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 인 것입니다.
a. 대대로 알게 함(사38:19)
b. 후대에 전함(시78:4)

 

2. 하나님의 나라와 의

1) 주의 은혜를 노래함
시인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들을 말하며 찬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자비와 인자하심이 크셔서 그 지으신 모든 것에 대해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의 성품이 아니었더라면 세상 모든 만물은 벌써 오래 전에 멸망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죄에 오염되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때문에 죄인들도 멸망당하지 않고 회개의 기회를 얻어 구원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자하심이 영원함(시100:5)

 

2) 모든 피조물의 찬양
시인은 모든 피조물과 성도가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한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피조된 존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과 찬양을 돌려받으시기 위해 창조와 구속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과 구속받은 성도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하늘과 궁창의 찬양(시19:1)

 

3) 영원한 하나님 나라
시인은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의 다스리심은 영원 무궁함을 진술합니다. 또한 그 나라의 영광과 하나님의 권세를 세상에 증거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성도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켜 나가는 도구로서의 사명을 다하여야 함을 시인은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a. 주의 영광스러운 위엄(시145:5)
b.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함(시105:1)

 

3. 하나님의 통치

1) 약한 자를 돌보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심에 대해 찬양하였습니다. 주께서 때를 따라 모든 생물에게 손을 펴사 식물을 주시어 소원을 만족케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통치자로서 넘어지는 자와 비굴한 자를 붙드시며 일으키십니다. 비굴한 자는 억압으로 인해 영육간에 눌린 자를 가리킵니다. 세상 통치자들은 강하고 부한 자들과 하나가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a. 넘어지는 자를 붙드심(시37:24)
b. 비굴한 자를 일으키심(시146:8)

 

2) 공의로 통치하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의로우며 그 행사에 은혜로우십니다. 악한 자를 멸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심으로써 공의를 세우시는 하나님께서는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시고 응답하심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 아룀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행위(시116:5)

 

3) 모두에게 행하시는 구원과 심판
세상 통치자들이 하나님께 권세를 받아 악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만 모든 악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완전하여서 모든 의인에게 복을 내리시고 모든 악인에게 징벌을 내리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지 전능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와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가시화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 복을 누릴 자들입니다. 이를 인하여 여호와의 영예와 그 성호를 영영히 송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a. 의인의 소원을 들어주심(잠10:24)
b. 간구를 들으심(시31:22)

 

결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나라는 모든 의인의 소망이 됩니다. 이 땅에는 권세자들이 오히려 공의를 무너뜨리는 일이 많이 있어 경건한 자들의 심령을 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통치와 권세를 사모하며 복음 선포를 통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건설 사업에 힘써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왕.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영원히. 인간의 지상적 생명이 끝나는 시점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2절. 날마다. 당시 이스라엘을 성전에서 찬양을 맡은 레위인들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찬양으로 드렸다.

3절. 측량치 못하리로다.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고 있다.

5절. 묵상하리이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전심으로 찾고 구하는 상태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전하려고 애쓰는 상태를 의미한다.

6절. 두려운.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힘과 능력으로 인해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9절. 만유. 창조되어진 모든 피조물을 말한다.

10절. 성도 원어은 '매우 열성인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말한다.

12절. 인생. 원어은 일반적으로 신분이 낮고,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자를 가리킨다.

14절. 넘어지는 자. 힘이 없거나 압박에 의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15절. 중생. 피조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의미한다. 앙망하오니.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한 것을 기다림을 뜻한다.

19절. 경외하는 자. 진정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신학주제]
왕이신 하나님.
다윗은 이스라엘의 실질적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 없는 민족이었다. 조상 때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와는 구별된 방식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셨다 선지자는 민족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민족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실질적 주인은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교만하여진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요구하게 된다. 애굽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주인을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광야 40년 간 기사와 이적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먹이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다른 국가들처럼 자기들 스스로 자위하고 힘을 기를 수 있는 세상적 국가 체제를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던 선택된 민족이 이제는 핀간이 통치하는 세속적 국가로 가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시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통치가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에 국가의 분열과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으로 영화를 볼 수 없는 민족이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교만은 이방 국가에 포로로 잡혀가는 쓰라린 역사를 갖게 된다. 다윗은 이스라엘 국가의 참된 왕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함으로 잘못된 국가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적 과오를 빚고 있는 것이다. 잊혀진 하나님을 회복하고, 국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함으로, 다윗은 비록 그 당대에 그쳤을지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왕이 되었던 것이다.


[영적교훈]
신자들의 삶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내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일을 맡긴다고 생각만 할 뿐, 구체적이고 절박한 상황에 부딪힐 때는 인간적인 관계나 힘을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삶의 주인이요 결정자라는 생각은 머리 속에만 있을 뿐이다. 그 생각이 나의 행동으로 실천되기는 아직도 멀다. 다윗의 기도는 그 괴리된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처절한 기도였다. 생각 뿐만 아니라 실제로 나의 하나님이 왕이 되신다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으로 되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의 찬양[시 148장]

[내용개요]
시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늘 위에 있는 자들의 찬송을 독촉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만큼,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처지에 놓여 있다(1-6절). 또한 시인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한다(7-13절). 이 부분에 있어서 그는 산들과 주옥과 짐승들까지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은 당연히 찬송해야 될 것을 암시한다. 시인은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 대한 찬송의 중요성이 지극히 큰 사실을 역설한다(14절).


[강 해]
시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세상 끝날까지 주관하며 보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로서 하나님을 찬양할 의무가 있는데 특히 하나님께 구원받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는 찬양의 생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1 . 하늘 높은 곳에서의 찬양

1)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
시인은 하늘의 천사들과 모든 군대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여기서의 군대는 천사의 무리를 가리킵니나. 천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지으신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참조, 골1:16). 천사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날마다 뵈오며(참조, 마18:10) 하나님의 부리시는 영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참조, 히1:14). 이러한 이유로 해서 시인은 천사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했던 것입니다.
a. 천군이여 여호와를 찬송하라(시103:20-21)
b. 가장 높은 곳에서 찬양(마21:9)

 

2) 해와 달과 광명한 별들의 찬양
시인은 피조된 영물인 천사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한 후에 물질로 지음받은 천상에 있는 것들에게 찬양할 것을 명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 별, 하늘 위의 하늘, 하늘 위에 있는 물은 모두가 하늘에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데 고대 히브리인들이 하늘이 삼층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은 우주관에서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하늘 위의 물은 구름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a. 하나님께 속한 모든 하늘(신10:14)
b. 일월성신을 지으신 주(느9:6)

 

3) 말씀으로 지음받은 존재들
시인은 하늘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진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써 그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시어 보존하고 계십니다. 세상 모든 것의 존재 목적은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피조된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a. 하늘의 것을 만드심(창1:14-15)
b. 말씀으로 지음받은 세상
c. 주의 규례대로 만물이 있음(시119:90-91)

 

2. 지상 피조물들의 찬양

1) 용들과 바다의 찬양
시인은 용들과 바다에게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명합니다. 용들은 바다에 존재하는 큰 물고기와 고래, 악어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물을 한 곳으로 모으셔서 바다를 창조하셨고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고 명하심으로써 바다에 나는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참조, 창1:9;창1:20-21). 하나님께서는 바다와 그 속에 있는 생물들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 속에서 증거되어지며 예수에서도 바다를 다스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참조, 마8:26).
a. 종류대로 바다 생물을 창조하심(창1:21)
b. 용의 머리를 깨뜨리심(시74:13)

 

2)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의 찬양
시인은 불과 우박, 눈과 서리, 그분이 명하신 대로 따르는 세찬 바람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시인의 이러한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의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 현상들을 이용하셔서 악한 세력들에 대한 징벌 심판을 내리시어 이스라엘에게 승리와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박이 내리고 번개가 일어남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a. 우박과 숯불을 내리심(시18:12)
b. 눈과 서리를 내리심(시147:16)

 

3) 산과 들의 찬양
시인은 산과 들, 그 곳에 거하는 모든 동물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임무를 지니고 피조 되었습니다. 과목이 과실을 맺고 짐승들이 다니는 것 자체가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증거자는 것이 됩니다.
a. 산들의 찬양(사44:23)
b. 나무를 흡족케 하심(시104:16)

 

3. 모든 인간의 찬양

1) 모든 사람의 찬양
시인은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땅의 모든 사사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합니다. 권세 있는 자나 비천한 자나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모든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호흡이 있는 모든 자가 찬양 드림이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흘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십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요 구속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인정하고 찬양치 않는 자는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의 임무를 행치 않을 뿐 아니라 교만 히 행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은 전인류의 범죄가 바로 피조물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교만 때문에 생겼습니다.
a. 온 땅에 아름다운 주의 이름(시8:1)
b.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신 영광(시113:4)

 

2) 백성의 뿔을 높이신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대상임을 밝혔습니다. 백성의 뿔을 높였다는 말은 그 백성을 구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속받은 백성에게 구원주가 찬양받음은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심의 목적이 그들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인하여 의무적으로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a. 백성의 뿔을 높이시어(삼상2:1)
b. 찬송을 위해 지음받은 이스라엘(사43:21)
c. 하나님께서 가까이하신 나라(신4:7)

결론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하는 시인의 외침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명하신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심도 죄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 피조 세계를 회복시키시어 영광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입술의 찬양과 순종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단어해설]
2절. 사자. 하나님의 천사들을 가리킨다. 군대. 원어는 '무리, 별들'을 뜻한다. 여기서는 천사들을 의미한다.

6절. 패치 못할 명. 우주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법칙을 어떤 피조물도 거역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13절. 천지에 뛰어나심. 하늘과 땅을 초월하여 뛰어나신 분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대인들이 섬기던 천지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학주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이 지음받은 그때부터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운행하신다. 제일 마지막에 지음받은 인간은 만물과 함께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하는 일에 제일 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단의 유혹에 빠져 죄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인간을 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구속의 길을 준비하신다. 예수의 구속 사건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인간은 다시금 온 만물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하다.


[영적교훈]
시인은 본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대상을 통하며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선 반드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참 회개야말로 마나님께 대한 진정한 찬송의 고백인 것이다

 

보수와 심판하시는 하나님 찬양[시 149장]

[내용개요]
시인은 성도들이 그 구원으로 인하여 찬송해야 될 것을 강조한다 성도들이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창조자로서 성립시키셨고 왕으로 이루셨다(1-2절). 그들은 겸손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3-4절), 이 구원으로 기뻐하며 열방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5-9절).


[강 해]
시인은 이스라엘의 창조자시요 왕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기뻐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징벌하심은 의인을 구원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성도에게 영광이 됩니다. 성도는 그 영광을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1 .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함

1)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하라
시인은 새 노래로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원과 승리의 은혜를 베푸실 때 새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또한 새 노래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새로운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합니다. 마음속에 새로운 감흥이 없이 타성에 젖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 아닌 것입니다.
a. 새 노래로 노래함(시33:3)
b.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시89:5)

 

2)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지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사43: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어 그들을 먹이고 입히시며 대적으로부터 지켜 보호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왕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권세를 부여받은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a. 창조주로 인한 즐거움(욥35:10)
b. 왕이신 여호와(삼상12:12)

 

3) 춤추어 악기로 찬양하라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춤추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 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춤을 추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즉 하나님께 새 노래로 찬양 드림에 있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가 시온 산으로 들어을 때 왕의 체면도 불구하고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춤을 추며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a. 슬픔이 춤이 됨(시30:11)
b. 수금으로 찬양(시150:3)

 

2. 자기 백성을 기뻐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1) 겸손한 자를 구원하심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구원을 베푸심을 시인은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의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신다는 시인의 진술은 죄 사함으로 의롭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a. 하나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시35:27)
b.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147:11)

 

2) 영광 중에 즐거워하는 성도
시인은 성도들에게 영광 중에 크게 기뻐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기뻐하고 노래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를 얻게 된 자 입니다. 죄인으로서 사망 권세 아래 매인 수치와 고통의 상태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된 성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하라는 것은 성도의 기쁨의 정도가 매우 큼을 의미합니다.
a. 밤중에 노래하게 하심(욥35:10)
b. 침상에서 주를 묵상함(시63:6)

 

3) 하나님의 존영과 두 날 가진 칼
시인은 성도의 입에는 하나님께 드릴 찬양이 가득하고 그 손에는 두 날을 가진 칼이 들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임할 때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손에는 칼을 들고 나가 싸운 것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의 승리는 힘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며 승리의 보장이 되십니다.
a. 하니님의 말씀인 검(히4:12)
b. 성령의 검(엡6:17)

 

3. 보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1) 열방에 보수하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소유한 두 날 가진 칼로 열방에 보수하시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쇠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 고랑으로 결박하신다고 노래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민족들에 대해 징벌을 내리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구원하실 때 애굽을 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실 때 바벨론을 치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a.원수 갚는날(사63:4-6)
b. 하나님의 보수(신32:35)

 

2) 기록한 판단대로 심판하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자의 행위를 다 기억하시고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을 진술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사65:6)고 예언했습니다. 이러한 심판은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성취될 것입니다.
a. 기록된 대로 보응하심(사65:6)
b. 기록한 대로 시행하심(욥13:26)

 

3) 모든 성도에게 있는 영광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성도에게 영광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했듯이 악한 영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은 성도의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주의 재림으로 이 땅의 모든 악의 세력이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 복을 누리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주의 재림으로 임할 영광은 모든 성도가 고대하는 소망이요, 신앙 생활의 목적이 됩니다.
a. 성도의 뿔을 높이심(시148:14)
b.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요1:12)

 

결론
하나님의 보수하심과 심판하심은 성도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 한 자를 징벌하시고 겸손한 자를 미워하시는 공의로 심판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마지막에 얻게 될 영광을 바라보고 찬송과 말씀과 기도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영적 전투를 수행하여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하여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새 노래. 구원의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담은 노래를 뜻한다.

2절. 저희의 왕. 이스라엘의 실제적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6절. 두 날 가진 칼. 전쟁용 무기로 성경에서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9절. 기록한 판단대로.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신학주제]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미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한 민족을 택하여 구원의 모범을 삼고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릴 것을 작정하셨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자이심을 잊어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게 된다. 하나님은 이제, 택함받은 이스라엘 한 민족에게 제한을 두지 않으시고, 원래의 목적인 온 인류의 택함받은 자를 구원하실 계획을 실천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택함받은 원래의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고, 육적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로 그 선택의 범위가 바귀게 되는 것이다.


[영적교훈]
신자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성도가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삶이 보장된 영적 구원의 축복은 성도가 제일 먼저 감사의 제목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이것을 잊은 채 교회는 세속적 자본주의 원리에 물들어 세상에서의 평안과, 건강, 부유함이 제일 먼저 감사해야 할 부분으로 오도하고 있다. 구원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 하늘의 소망을 삼고 살아가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물질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감사이다. 시편의 저자는 이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시 150장]

[내용개요]
이 시의 저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에 대하여 말한다. 인간의 처소 뿐만 아니라 하늘의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께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1절), 하나님의 능력과 광대하심 때문이다(2절). 인간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때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구와 악기를 가지고 찬양해야 한다(3-5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렇게 찬양해야 할 자들은 호흡이 있는 인간 모두임을 강조한다(6절).


[강 해]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을 모든 호흡이 있는 자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 사역에서 보여 주신 지극히 광대하심 때문입니다. 시인은 여러 가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했는데 이는 성도의 최선을 다한 찬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성도의 의무요 존재 목적입니다.

1. 하나님을 찬양하라

1) 성소에서 찬양하라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임재하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 광야에서는 성막을 세우게 하셨고 예루살렘에는 성전을 건축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므로 성소에만 계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성소는 유한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체험케 해주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찬양하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곳에서 언제나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찬양(시29:2)

 

2)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주제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시고 피조물로부터 찬양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범죄 하여 모든 피조 세계가 타락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구속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인하여 찬양함은 존재 목적을 성취시키는 일인 것입니다.
·능치 못함이 없으심(렘32:17)

 

3) 하나님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찬양
시인은 하나님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하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세는 참으로 광대하시며(참조, 대하1:8) 그 영광과 능력 또한 광대하십니다 (참조, 시21:5;시147:5).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광대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a. 지혜가 광대하심(사28:29)
b. 주의 광대한 이름(왕상8:42)

 

2.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

1)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함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되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큰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라고 합니다. 즉 시인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은 열심과 정성이 깃든 찬양입니다. 아무리 많은 악기를 동원한 찬양일지라도 찬양자의 마음 중심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 찬양을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외형적으로 아무리 화려해도 그 중심이 없는 찬양은 무가치하게 여기십니다.
a. 나팔과 호각(시98:6)
b. 열 줄 비파(시33:2)

 

2) 기쁨으로 찬양하라
시인이 여러 악기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노래함이 진정한 기쁨이 넘치는 찬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할 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법궤가 시온 산으로 옮겨질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왕의 체면도 무시한 채 온몸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비록 다윗이 미갈에게는 그 일로 인해 핀잔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온몸으로 드리는 찬양을 기쁘게 받느셨습니다.
a. 춤추며 찬양(시149:3)
b. 즐거운 소리를 냄(대상15:16)

 

3. 호흡이 있는 자의 찬양

1) 창조주께 대한 찬양
모든 호홉 즉 생명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을 주신 분 즉 생명의 주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심으로써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부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음받은 자의 찬양(시103:22)

 

2) 영적 호흡 있는 자들의 찬양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는 육체의 호흡이 있는 많은 자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찬양 드리기를 거부합니다. 오직 영적인 호흡을 하는 자들 즉 영혼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시인이 명했지만 실제로는 영적 호흡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a. 주의 성도의 찬양(시145:10)
b.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시148:14)

 

3) 삶 속에서의 찬양
구약 시대에 외형적인 찬양은 주로 공식 예배를 위한 집회에서 불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찬양은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찬양 뿐 아니라 성도는 무형적인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는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이 있는 찬양을 받으십니다. 삶 속에서의 순종이 없는 입술만의 찬양은 하나님을 만흘히 여기는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a. 영적 예배(롬12:1-2)
b. 입술의 열매인 찬미의 제사(히13:15)

 

결론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성도의 최대 의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에 대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입술로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과 동시에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그 성소에서. '그의 성소에서'란 뜻으로 예루살렘 성전보다 온 천지를 가리킨다.

2절. 능하신 행동. 모든 피조물의 섭리와 구속을 포함한 하나님의 사역을 말한다.

4절. 소고. 춤출 때 사용하는 타악기.

5절. 제금. 한 쌍의 둥근 금속판을 부딪혀 소리를 내는 타악기로 오늘날의 심벌즈와 비슷하다.


[신학주제]
능력의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류의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성경 전체는 그 하나님의 능력과 광대하심을 찬양케 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구의 주인이 우주 만물을 운행하고 계신다. 생명의 죽고 사는 것, 우주 전체의 운행,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상에서 역사를 이루고 살게 하시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죄악으로 더 이상 지구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구원의 길을 준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온 인류는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구를 다스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선포하게 되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전능하심 때문이다.


[영적교훈]
사람이 죽고 사는 모든 문제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종말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 신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 신자의 온 삶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고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영광과 찬송을 드려야 하는 것을 당연하다. 그래서 시편의 저자는 호흡이 있는 자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한다 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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