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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바벨론 멸망- 예루살렘 재건까지/느헤미야 성벽 재건

by 은총가득 2021. 2. 12.

 

 

바벨론 멸망부터 페르시아에 의한 예루살렘 재건까지 

 

바벨론의 왕들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느브갓네살의 아들 마르둑이 2년간 다스렸지만 마르둑을 살해한 마르둑의 매부 네리글리살과 네리 글리살의 아들 라바시 마르둑이 나라를 다스리다가 신하들에게 암살당하는데
그때 느부갓네살의 집안이 아닌 나보니두스가 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나보니두스=하란 출신 귀족의 아들이자 느부갓네살 이후 가장 유능한 통치자로 평가받음]

하지만 여기서 신관[종교]이 문제가 되는데
느브갓네살과 그의 집안 그리고 바벨론 백성은 ‘마르둑’이라는 신을 섬기지만
나보니두스는 ‘신(sin)’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느브갓네살이 섬긴 신 = 마르둑[태양신] 나보니두스가 섬긴 신= sin[달의 신]

바벨론의 멸망

느브갓네살집안과 바벨론 사람들이 나보니두스와 그의 아들 벨사살보다 오히려 페르시아의 고레스 쪽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이 당시 벨사살은 이미 바벨론 국민들에게 부적당한 통치자로 낙인이 찍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외의 바벨론 통치 하에 있던 나라들에게도 실망을 안겨주었었는데
바벨론은 포로를 자기 나라로 잡아가서 나라를 건설하는 노동을 시켰고
정복지에 남겨둔 사람들로부터는 세금을 받아 바벨론 성 건축에 충당했는데
바벨론 정부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페르시아인들을 환영했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바벨론을 흡수 할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2세)는 바벨론을 침략해 오면서 티그리스 강의 오피스에서 이미 승기를 잡고 바벨론 성으로 전투도 없이 무혈입성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바벨론의 백성은 벨사살을 미워하고 오히려 고레스에게 희망을 두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설명했던 손가락환상이 보였던 날 다니엘이 해석을 해 준 그 날 저녁 벨사살이 죽음으로 인해 바벨론은 끝
이 납니다
단 5:30 그날 밤 칼데아인들의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5:31 메디아인 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니 약 육십이 세였더라.

참고로 ‘유대인’이란 말은 바벨론이 여러 나라에서 끌어온 각 나라 사람들을 구분하며 남유다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면서 시작된 말입니다 아브라함때는 히브리인 야곱때부터 이스라엘 유대인은 바벨론의 끌려온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유대인이라 명칭이 불려지게 됬습니다.

3 [다니엘의 예언데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멸망]......하게 되는데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했을때 4개의 나라가 공존하게 되는데 오리엔트에 이집트 소아시아의 리디아 이란 고원의 메디아(메데) 메소포타미아의 신바빌로니아(바벨론)이 있었습니다
[오리엔트=이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및 아라비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지방을 가리킨다]


유럽계의 메데와 인도계의 바사(페르시아)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2세(고레스)왕에 의해 bc550년 하나의 페르시아로 통합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이 밤에 바벨론에 쳐들어 가는데
바벨론은 포로를 자기 나라로 잡아가서 나라를 건설하는 노동을 시켰고
정복지에 남겨둔 사람들로부터는 세금을 받아 바벨론 성 건축에 충당했는데
바벨론 정부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페르시아인들을 환영했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바벨론을 흡수 할 수 있었습니다 [위에 바벨론 멸망과 같은 이야기]
다니엘서 7장에서 곰이 갈빗대 3개를 문다는 것과 그 3개의 갈빗뼈가 페르시아의 서쪽과 북쪽과 남쪽이라는 다니엘서8장에 말씀처럼 페르시아는 북bc546/리디아 서bc539년/바벨론 남bc525년/이집트를 정복하면서 bc525년 오리엔트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2세는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솔로몬성전을 재건축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고레스 칙령’입니다

에스라에 설명되어 있는 고레스 칙령
1:2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이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내게 주시고 내게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전을 그를 위하여 건축하라 하셨도다.
1:3 그의 모든 백성 중에 너희 가운데 있는 자가 누구냐?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를 바라노니, 그는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에 계신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지니라. (그는 하나님이시니라.)

1:4 그가 기거하는 어느 곳에라도 남아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고장의 사람들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자원하는 예물 외에도 은과 금과 물건들과 짐승들로 그를 돕게 할지니라." 하였더라.이미 자신이 통치하기 100년도 훨씬 전인 bc756년에 쓰여진 이사야서에서에 먼저 이 일이 예언되었었습니다.
이사야
44:28 코레스에게 말하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내가 나의 모든 기쁨을 이행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게도 말하기를 "너는 재건되리라." 하고 성전에게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이라.
45:1 주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코레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의 오른손을 잡았으니, 민족들로 그 앞에 항복케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겠으며 두 짝 성문들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고레스 왕은 자신을 세워준 하나님[고레스는 하나님의 참지식은 없었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하늘의 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란 견해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참 지식은 없더라도 아래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고 이야기를 하였다는 견해들이다]

에스라1:2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이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내게 주시고 내게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전을 그를 위하여 건축하라 하셨도다.

고레스의 명령에도 유대인들은 불모지와 같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그랬던 것처럼 귀환도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크게 세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제1차 예루살렘 귀환은 bc538년 스룹바벨을 선두로 4만명이 4개월에 걸쳐 유대로 돌아오게 되어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물을 올렸으며 성전을 재건하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적대감 때문에 성전 재건공사가 중단됩니다 [스룹바벨은 고레스 왕때 1차로 갔었고 성전짓는 것이 중단되었다가 결국 그 성전은 다리오에 왕때 완성된다 스룹바벨은 다리오의 호위직을 맡았으며 어릴 때부터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1차 포로 귀환자들[스룹바벨 포함]이 안타깝게도 성전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다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을 중단하게 되었던 것은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 귀환 공동체가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성벽을 짓는다는 거짓 보고를 페르시아 왕에게로 보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중단된 성전 건축은 다리오(다레이오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되고 나서야 재건되고 성전의 재건에 필요한 모든 경비까지 페르시아 왕궁에서 감당한다고도 합니다
이유는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키루스2세) 왕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약속이 담긴 문서까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오의 명령이 내려지자 그토록 성전 방해하던 자들이 달려와 오히려 성전 건축을 도왔으며
마침내 불타 없어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솔로몬 때와 비교해서는 초라하지만 그래도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예루살렘성전이고 헤롯이 지은건 이 성전의 증축입니다
어쨌든 고레스왕의 뜻을 이어받은 새로운 왕 다리오 덕분에 정책과 자금 원조를 계속해서 bc515년에 성전을 완공할 수 있게 해주어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 후 다리오는 그리스를 점령하러 갔다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오게 되고
그가 통치하던 말년에 캄비세스[고레스와 다리오 중간에 있던 왕]에 의해 정복당한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키가 다리오는 이집트에 대한 응징을 준비했던 중에 bc486년 36년간의 재위를 끝으로 죽고 맙니다 그 뒤를 이어 다리오의 아들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영화 300에 나오는 왕) 왕이 페르시아의 4번째 왕이 됩니다

 

 


이때 300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페르시아는 가장 강력했던 나라이고 페르시아의 전성기때입니다
우리는 이때 에스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에1:10절-12절]에서 왕후 와스디를 불러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자랑하려 했었는데
갈대아 주석가들에 의하면 이때 아하수에로는 왕후의 나체를 보여주려 했다고 기록하고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에스더왕비가 출현하게 되는데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했다가 왕비 에스더에 의해서 역전당하는 일인데 이걸 지금도 기념하여 지키고 있는 것이 부림절입니다 [7절기는 아니지만 10절기에 속합니다]
부림절은 12월 14일과 15일이고 이틀에 걸쳐 잔치를 베풀고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날로 기념합니다

말씀을 낭독하고 기뻐하며 부림전 절에는 에스더가 금식한 것을 생각하며 금식하고 부림절때는 에스더서를 읽고 기뻐하는데

제2차 예루살렘 귀환은 bc458년 율법에 통달한 제사장이자 율법학자인 에스라가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재판을 하라는 왕의 아닥사스다 왕(bc465-423)의 위임장을 가지고 여러 가족을 이끌며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신약의 포인트= 산헤드린 공회[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 전 심문했던 공회]가 갖는 권한 가운데 하나가 ‘재판권’인데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이 유대 출신 페르시아 총독들과 장로들과 제사장들이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권은 아마도 에스라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된다
산헤드린 공회의 주체는 유대출신 페르시아 총독들[스룹바벨총독과 느혜미야총독] 과 제사장 가문과 제사장 가문은 아니지만 평민
귀족들이 동맹을 맺음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고
그들은 페르시아에서 유대로 귀환한 후에 공식적으로 산헤드린 공회를 출범했는데 7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고위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대제사장을 통해 주도권을 행사하며 유대의 지도부로 존속했다
산헤드린 공회는 ad6년 유대의 하스몬 왕조가 끝나고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부터 유대의 최고 댚기구로 인정받았다
더 나아가 산헤드린공회는 유대의 최고 재판국으로까지 승격되었고
이러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의 최고 재판국으로까지 승격되었고 중요성이 강화되면서 전 세계의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모두 산헤드린과 관계를 맺었다 유대 내에서는 산헤드린과 직무상 연결이 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26:59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 대한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재판권은 산헤드린 공회에 있었고 예수님께 유죄 및 사형 판결을 내리고 그를 처형하기 위해 빌라도에게 끌고갑니다.

그리고 bc445년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술맡은 관원장이자 총독이였던[굉장한 고위급] 유대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성벽을 재건하러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게 됩니다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혜미야는 우선 실태 조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성벽 재건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주변 지방의 지도자들은 성벽 재건에 반대하고,비웃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무력을 동원해 성벽 재건을 방해합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것이다”라고 격려하며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냈고 성벽 재건 공사와 방위 모든 면에서 빈틈이 없도록 백성을 조직하여 모든 방해공작에 대처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벽은 52일 만에 완성됩니다 그러나 황폐한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이 없자 유대의 각 지역에 사는 가족들은 제비를 뽑아 열 가족 당 한 가족이 예루살렘에 와서 살기로 결정해 예루살렘은 다시 사람 사는 도시와 같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예루살렘 재건과 함께 종교의 부흥이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포로기 동안 많은 학대와 무시를 받으면서 우리가 율법을 버려서 그렇게 되었다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움직임에 부흥을 준 인물이 바로 에스라와 느혜미야이고
또다시 이방인의 영향력을 근절시키고 모세 5경에 대한 지식을 다시 살려내 삶에 적용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에스라는 연단 위에 서서 해뜰 때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백성들 앞에서 엄숙하게 토라를 읽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느8:1 온 백성이 물 문 앞에 있는 거리로 한 사람처럼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전에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니
8:2 제사장 에스라가 일곱째 달 일일에 율법책을 남녀 회중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자들 앞으로 가져가서
8:3 물 문 앞에 있는 거리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들 앞에서 읽으니, 모든 백성의 귀가 율법책을 경청하더라.

그리고 이 시기에 회당이 생겨나게 되는데 회당은 성전처럼 제사를 드리는 곳은 아니지만
학교에 기능과 율법을 가르치는 곳이였습니다

신약 성경을 볼때의 포인트=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페르시아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함께 율법의 중요성을 깨닿게 되어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페르시아 풍경

 

간편요약

1.바벨론의 부정부패와 다른 종교로 인해 분열이 생기고 이때 메데의 다리오가 바벨론을 멸망시킴
2.메데와 바사[페르시아]를 고레스왕이 하나의 페르시아로 합침
3.페르시아의 고레스는 자신이 통치하기 200년전인 이사야서의 예언을 보고하나님이 자신을 세우신 것을 알게 됨
4.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명령인고레스 칙령을 내림

5.고레스 왕때 제1차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스룹바벨이 선발로 나서지만
사마리아인들의 거짓말로 성전 재건이 중단됨
6.다리오 왕때 다시 고레스 왕이 한 말을 보여주면서 성전재건이 재게되고 성전이 재건이 됨
7.다리오 다음왕인 아하수에로때 에스라 사건이 발생하고 거기서 부림절이 유례된다

8.아하수에로 왕 다음왕이 아닥사스다 왕이며 이때 2차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에스라가 ‘재판권’에 권한을 갖게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큰 말씀의 회복이 이루어지며 또 ‘재판권’을 갖는 ‘공회’가 생기고 이것이 예수님을
심문했던 산헤드린 공회의 유레가 되며 또 말씀을 전하는 ‘회당’이 생기게 된다

9.같은 왕인 아닥사스다 왕때 술따르는 관원장 느혜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을 오게 되어 52일만에
성벽을 짓는다.< 이천수>


느헤미야 성벽 재건

 

 

 

 

 

느헤미야시대 재건된 예루살렘성

느헤미야는 바사(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아닥사스다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술 관원은 단순히 술을 담당하는 관리가 아니라 왕의 신임을 받는 상당히 높은 지위의 관리 였습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타고 백성들은 멸시당하고 많은 고생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슬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느헤미야는 몇 달 동안 기도를 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아닥사스다왕이 얼굴 빛이 좋지 않은 느헤미야에게 연유를 물어 보고 느헤미야는 왕에게 사정을 말하고 유다지역 총독으로 부임을 명받아 그리하여 이스라엘 포로 3차 귀환이 이뤄지게 됩니다.( 1차귀환 스룹바벨, 2차귀환 에스라) 총독으로 부임한 것 뿐만 아니라 예수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받고 재건에 필요한 재목들도 지원을 받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빠르게 성전재건에 힘을 씁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백성들도 느헤미야의 뜻을 따라 성벽재건에 힘을 씁니다. 느헤미야 3장에는 성벽어디를 누가 중수 하였는지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3장에 보면 높고 낮은 지위, 어떤 직업을 막론하고 성벽재건에 힘써 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성이 없었고, 바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이여서 주변 지역에서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을 필두로 예루살렘을 공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느헤미야를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겁을 먹지 않고 절반은 갑옷 입은 병사로 지키고 절반은 성벽 쌓는 일을 했고 짐나르는 사람은 한손은 짐을 들고 다른 한손으론 무기를 들었습니다.

드디어 성벽을 쌓기 시작한지 52일 만에 성벽재건이 완료 됩니다. (느6:15) 성벽이 재건 되자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이뤄어 짐을 보고 크게 두려워 떨었습니다. (느6:16) 느헤미야 7장 4절에 보면 그 성읍은 광대하다고 기록합니다. 절대 작은 성이 아닙니다. 그 성을 52일만에 완공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밖에 말 할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쳐들어 오려고 해고 52일만에 군대를 모집하고 전쟁 계획을 세우고 군인들이 이동 할 시간도 모자랄 시간이라고 생각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로 놀랍고 대단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기도의 힘으로 이뤄 집니다. 느헤미야가 수산궁에서 예루살렘의 현실을 들었을 때 기도를 하였고 예루살렘에 와서도 느헤미야는 기도를 하였고 주변의 적들이 위협을 할 때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하는자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느헤미야를 보면 알 수 있다. 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를 느헤미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시기별 성벽 크기 비교

 

3차에 걸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 귀환

 

 

​포로생활 70년 예언 성취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하여 포로생활 70년이 될것이라는 것을 말씀(렘25:11-12, ...

blog.naver.com, 작성자: 꿈꾸는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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