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벨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제1장 용기 _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보통 용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누군가 아주 영웅적인 행동을 해서 언론 매체의 관심을 끌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갈수록, 용기는 인생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맞닥뜨리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영화 록키는 ‘용기’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해상 재해에 관한 책에는 항상 침몰하는 배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 내 걸 받으시오.” 겁먹을 자리에서 용기를 보인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려움에 약해지거나 걱정, 근심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사람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신념을 굽히지 않고, 어려운 문제라도 포기하지 않는, 겁쟁이가 아닌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딤후1,7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이니”라고 말합니다.
평상시의 용기 - 영웅적인 행동을 해서 언론 매체의 관심을 끌 때(불 속이나 물에서 누군가를 구하거나 총탄을 무릎 쓰고 부상당한 전우를 구하는 행동) ‘용기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평범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맞닥뜨리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 우리는 날마다 겁쟁이인가 용기 있는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선택을 합니다. 옳은 일과 편리한 일, 신념을 지키는 것과 안락, 탐욕, 인정 때문에 신념을 굽히는 것, 위험부담을 무릅쓸 것인지와 몸을 웅크려 평온무사, 방관으로 숨을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믿고 신뢰할 것인지와 회의와 두려움에 맡겨버릴지 선택합니다. 선택을 잊어버리거나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용기 - 기독교는 나약한 사람이나 겁쟁이, 소심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종교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전통적인 의미의) 용기가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최선의 것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해야 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과제 제출일이 넘었을 때 핑계와 거짓말을 해서 모면하기보다 정직하게 잘못을 고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행동을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열어 약점을 내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 고백은 불편하고 발가벗은 느낌 때문에 고통스럽고 창피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꼼꼼히 따질 필요 없이 물 흐르듯이 따라가는 것이라고 자족할 수도 있습니다. 사소한 실수야 있겠지만 죄인이 아니라고 회피하며 변명합니다. 이것은 배짱이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들어서는(become) 데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리스도인이 되는(be)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시를 따르는 용기 - 눈을 감고 옆 친구가 말해주는 대로 숲이나 길을 통과하는 놀이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눈가리개를 한 아이와 같습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데, 우리 길을 지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후5,7:잠3,6) 예수님의 지시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반문화적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 소심한 사람은 영적 순례에서 점점 움츠러들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허락하신 시험은 극한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모험은 커다란 두려움과 회의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관계속의 용기 - 오늘날 사라질 위기의 용기 중의 하나가 ‘관계 속의 용기’입니다. 의미 있는 결혼 생활에는 친밀감과 함께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혼 생활의 문제를 만났을 때 뒤로 미루고 제 갈 길만 가는데, 문제를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고, 겹겹이 둘러쓴 가면과 은폐막, 방어 기제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갈 수 있고, 결혼 생활을 바로잡으려 계속 애쓸 수 있습니다.
- 관계 속의 용기는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데도 필요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해야 할 훈육을 하징 낳고 물러서거나, 토라져서 ‘미워!’하면 부모는 뒤로 물러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이를 키우려면 “네가 그래 봤자 난 안 무섭다. 이게 옳은 거니까 꼭 해야 돼”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친구와 관계에서 서로 도전을 주고 영적인 성장과 관계의 성장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도덕적인 용기 - 직업상의 용기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는 용기, 도덕적 용기도 필요합니다. 고객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 싶어 선적 일자를 거짓말해야 하는 상황이나, 부정직한 소득 신고, 섹스가 가득찬 문화 속에서 성적 순결을 지키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기르는 법 - 우리를 얽어매는 두려움에 맞닥뜨릴 때 용기를 기르게 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서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저자가 두려워하는 트레일러 운전을 시키시면서 용기를 기르게 했습니다. 높은 파도 구간에서 돛단배의 키를 맡기시면서 용기를 기르게 합니다. 비행기술을 익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면으로 맞닥뜨려 극복한 두려움은 모두 성장의 도약대가 됩니다.
- 또한 주위에 훌륭한 본이 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성장할 수 있습니다.(고전15,33) 용기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야 합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용기에 관한 글을 익거나,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 마음이 변화되도록 자신을 내어 놓음으로써 용기를 기를 수 있습니다. 용기가 있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수 있고, 그분을 신뢰하여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딤후1,7)
빌 하이벨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제2장 자기통제력 _ 즐거움을 유보하고 성공을 달성하는 것
자기 통제력은 삶의 모든 영역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자기 통제력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격적 자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 어떤 사람은 마음먹은 일마다 성공을 거두는 것 같은데, 자기 통제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계속 좌절과 재난, 실패를 겪는 사람은 게으름 때문에 미루고 한눈 팔고, 방심하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자기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통제력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발휘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선 고생부터 - 자기 통제력은 ‘즐거움의 유보’(delayed gratification)입니다.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은 삶의 고통과 기쁨을 적절히 배열하는 과정인데, 삶의 고통을 먼저 접하고 극복함으로써 나중에 기쁨이 배가됩니다. 바닐라를 먼저 먹고, 딸기, 초콜릿을 먹어야 그 맛을 잘 알 수 있습니다.(두리안...망고를 먼저 먹어야 한다. 배를 먹기 전에 사과를 먹어야 한다)
- 부모는 어린아이에게 이런 원리를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숙제나 개 목욕, 집안일을 먼저 해야 저녁 식사 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첫 취직 후 오랜 근무 시간이나 짧은 휴가, 반복되는 업무, 빈약한 봉급을 기꺼이 감수하고 견딘다면 결국 더욱 신축성 있는 근무 시간과 높은 봉급, 긴 휴가, 더 큰 책임감이 따르는 위치, 더 흥미로운 업무라는 대가가 주어집니다. 훨씬 만족스러운 단계가 뒤따를 것을 믿고 어려운 일을 먼저 겪음으로써 즐거움을 유보합니다.
- 즐거움의 유보는 영적 생활에서도 중요한데, 이른 아침 10-15분의 묵상기도 시간으로 삶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게 되고 훨씬 더 만족스런 하루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즐거움을 유보하기 - 자기 통제력은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관련이 있습니다. “만족스런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합시다” 마음이 편치 않거나 괴로울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 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신혼 초 문제를 피해버리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런 자기 통제력이 결핍된 결과 괴로움이 점점 더 커지고 더 이상 배겨낼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 아이를 훈육할 때도 즐거움의 유보는 중요합니다. 자식을 위해 꼭 필요한 희생을 해야 합니다. 승진이나 TV 시청, 휴일에 낮잠이 자녀와 노는 것보다 더 마음이 끌립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시절에 쏟은 많은 관심으로 굳건한 인격이 형성되고, 부모와의 관계도 굳건해 집니다.
- 자기 통제력과 즐거움의 유보를 해야 몸도 건강해집니다. 맛있는 음식을 포기해야 새 운동복이 간지납니다. 한 시간 가량의 힘든 운동으로 뿌듯한 기분과 가뿐한 몸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돈을 사용할 때도 즐거움의 유보를 연습해야 하는데,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않고 저축을 해야 ‘그렇게 하길 잘했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전 의사 결정 - 자기 통제력을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것인데, 자기 통제력을 실천하는 열쇠는 사전 의사 결정입니다. 삶의 여러 부분에서 어떻게 자기 통제력을 기를 것인지 미리 의사를 결정해야 합니다. 건강과 만족감을 위해서는 달리기와 근육 운동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 건강이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아는 것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3시30분에 교회 사무실을 떠나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겠다고 ‘사전에’ 결정을 내리고 자기 통제력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3시15분 정도 되면 운동을 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미리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적당한 핑계를 무시하고 헬스클럽에 갑니다.
돈을 다스리기 - ‘사전 의사 결정’의 효과는 금전 관리에도 잘 나타납니다. 매해 초 가계 예산을 아내와 함께 자는데, 기도하고 합의를 한 다음 그 내용을 적습니다. 월급날이 되면 통장에서 돈이 스쳐지나가기 바쁩니다. 사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것은 사지 않습니다. 계획대로 행할 뿐입니다.
인격적인 관계 -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 영역은 사전 의사 결정이 매우 중요하지만 유감스럽게 거의 적용이 안 되는 영역입니다. 친밀한 부부 관계를 위해서 일주일에 하루는 ‘연애하는 밤’이 필요한데, 꼭 지켜야 합니다.
- 사전 의사 결정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구원과 영적 생명은 노력이나 계획, 자기 통제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이나 잠, 운동에 대해 자기 통제력을 발휘해야 육체의 발전이 있듯이 자기 통제력을 발휘해야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 첫째 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둘째 매일 주님과 따로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셋째 봉사 활동을 한다든지 해서 다른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이런 자기 통제력에 따른 사전 의사 결정이 필요합니다.
- ‘자기 통제력을 발휘해서 내가 꼭 해야 할 일만큼은 해내도록 힘써야지’라는 말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즉 불편함이나 고통이라도 기꺼이 감수해야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왕성하게 자라가는 복을 누려야지’라는 뜻입니다.
- 자기 통제력의 핵심은 즐거움의 유보이며, 자기 통제력을 실천하는 열쇠는 사전 의사 결정입니다. 그러나 굳게 결심하지만 뜨거운 유혹이나 게으름 앞에 녹아내리고 맙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경주할 형제 자매가 필요함을 알고 계십니다.(공동체를 주셨다) 결심을 지키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책임감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데, 친구 두세 명에게 결정 내용을 알리고 책임감을 일깨워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어떤 보상이 있는가? - 시카고 베어스 미식 축구단의 수비수 마이크 싱글터는 하루 종일 연습하고 나서도 집의 지하실에 내려가 계속 운동을 합니다. 그는 직업 미식 축구 선수로 뛰는 것, 수퍼볼에 참가하는 것, 전미 대표 선수로 세 번이나 선발되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 자기 통제력은 이를 적용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 보상을 줍니다. 영적 자기 통제력은 성숙함과 유용성, 즐거움, 자족감을 갖는 흔들림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보상을 주고, 인간 관계에서 자기 통제력은 결혼과 윤택한 가정 생활이라는 보상을 줍니다. 육체적 자기 통제력은 건강한 신체와 강화도니 힘, 질병에 대한 저항력, 높은 집중력, 높아진 자신감을 보상으로 줍니다. 금전적인 자기 통제력은 빚지고 살지 않는 것과 저축이 점점 늘어나는 즐거움이라는 보상이 따릅니다. 자기 통제력의 보상은 크지만 즉시(당장) 보상이 오지는 않습니다.
- 자기 통제력은 즐거움의 유보와 사전 의사 결정, 책임감입니다
빌 하이벨스,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Ⅰ. 이 세상 최고의 선물, 전도
1장 사랑하면 전도한다
“매일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오는 길을 알려 줘라. 내가 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죄책감이나 두려움이나 의무감으로 하지 말고, 순종하는 마음과 열정으로 하라”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은 하루에 만보, 평생 18만 5천 킬로미터를 걷는데, 우리는 발걸음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루 평균 걸음의 1/1000에 지나지 않는 열 걸음이 영원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걷는 습관을 올바른 쪽으로 바꿔야 합니다.
한 오찬 자리에서 덩치 좋은 흑인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슬람교를 믿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슬람교 인으로 살기 쉽지 않은 남부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임에서는 한 쪽에 쳐박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걸었고, 그와 계속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대화 주제에서 믿음이란 주제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이슬람교의 근본 원리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진심어린 그의 부탁에 의도에 대한 의심까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한번은 그에게 신앙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생겼으며, 그의 신앙 여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그렇게 서로의 신앙 여정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고 결국 그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저쪽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평생 열정의 불꽃을 일으키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간단한 행동이 한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바꿔 놓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 “이 이야기를 열심히 고민하면, 네 평생 열정으로 불꽃을 일으킬 모습을 보여 주마”는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은 ‘편한 대화 자리’로 들어간 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편한 자리를 벗어나 방 저편으로 몸을 돌려 ‘미지의 세계’로 걸어간 것은 성령님이 그의 내면에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저편으로 건너가는 단순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이끌린 단 몇 걸음이 정말 놀라운 열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해법은 절묘하다
“내 아들이 한 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라” 전도의 처음은 아주 큰 ‘방’을 건너간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궁극적인’ 편한 자리(천국)에서 시공을 건너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죄 많은 자들에게 포용과 사랑과 용서로 이 세상 최악의 고난을 감내하셨고, 죽으심으로 ‘만민’을 향해 놀라운 사면령을 선포하셨습니다.(롬5,8) “나는 잃은 자를 찾고 구원하러 왔노라”고 하심으로 사람을 예수님의 최우선 사항으로 삼으셨습니다.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낙심과 절망 속을 헤매는 사람, 지긋지긋한 습관과 틀어진 관계 속에 사로잡힌 사람.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사람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인도하고, 고집불통인 사람을 변화시키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키고, 영적 잠재력의 극한까지 이르도록 밀어 주는 일-바로 사람을 사랑해 주는 일이 이 당에서 우리의 최대 상명입니다.
천국의 신호를 들으라
비행 도중 관제탑과 연결된 무선 장치를 끄고 홀로 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천국과 연결된 무선 장치를 끈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담대하게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믿으면 가능합니다. 누구에게도 신앙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남자는 “하나님이라는 짐으로 누구도 괴롭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대답합니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하나님이 ‘남도 알 가치’가 있는 분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삶을 받았다면, ‘용기 지수’를 끌어올려 하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최고의 선물을 안겨 주라
나는 무엇에 삶을 쏟고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내가 말처럼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지, 가면 뒤에 이기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평생 무엇에 사로잡혀 왔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업상 이익이나 돈, 명예에 쏠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영원한 관심은 오직 하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과 변화의 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 옛날 내가 우주를 건너왔으니 이제는 너희가 건너갈 차례다.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게로 오는 길을 알려 줘라. 너희 부모와 동료와 이웃이 내 아버지를 알고 그분의 조언과 지혜와 명령을 받으면 더 좋은 삶을 살지 않겠느냐? 그걸 믿는다면 믿음대로 살아라. 나와 같이 건너가는 자가 돼라. 내가 주는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돼라. 죄책감이나 두려움이나 의무감으로 하지 말고, 나를 위해 순종하는 마음과 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하라.”
주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
3년간 아들의 축구 코치를 담당했던 브라이언은 사업가로 사업가이면서 아이들에게 단숨에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는 좋은 리더였습니다. 연습이 끝난 후 뒷정리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 가보지 않겠냐고 초대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아들은 축구팀을 그만두고, 그와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 사이 몇 차례의 만남을 가졌지만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어느 세례 교육모임에 앉아 있는 브라이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세례를 받고 이제는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주의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나눠 주라고 명하셨고 그에 필요한 능력도 주셨으니 오늘부터 당장 주위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2장 불가능한 전도는 없다
성령님의 이끄심을 처음 느꼈을 때 수만 볼트의 전기가 등줄기를 통과하는 것 같았다. 내 곁에선느 비록 열 발자국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에게서는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사는 사람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길 때 가슴이 벅차오른다.
전도의 열풍이 왔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소책자 시대, 텔레비전 전도 시대, 버스 전도 시대. 전도 대상으로 따지면 직장인 전도, 여성 전도, 남성 전도, 부자 전도, 빈민층 전도, 주부 전도, 영화 스타 전도 등등. 모두 하루살이처럼 금방 왔다가 금방 떠나갑니다. 앞으로도 ‘새롭고 탁월한’ 전도법이 계속해서 나타날 게 뻔합니다. 그러나 거친 세파를 이겨 낼 수 있는 패러다임은 성령님께 파장을 맞추고 협력하는 게 전도의 최우선 조건입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에 협력하라
성령님의 이끄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지만 실재합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언제나 함께 해 왔습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권능’,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는데, 이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소명을 이루려 해도 학문적 지식이나 세상 물정에 대한 식견, 외모나 재능 내지는 언변이 부족하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산을 움직이고 인생을 변화시키며 죽음을 몰아내는 권능이 우리 편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2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으로 행하라”고 촉구합니다. 내가 예수님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나의’ 영은 ‘그분의’ 영의 이끄심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성령님과 통한다 함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고도로 민감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를 전할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권능 안에서 입을 열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께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고자 한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성령님이 걸으라 하시면 걷고, 말하라 하시면 말하고, 말조심해야 할 때는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가만히 있으라 하시면 가만히 있는 것이 내 임무입니다. 성령님의 일용할 이끄심에 잘 협력할 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목격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라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마음을 열어 놓았지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란느 이끄심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는 완전히 다르게, 예상치 않은 때와 곳에서 성령의 생생한 음성을 듣고 주님을 소개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때로 활짝 열림 문도 있고, 굳게 닫힌 문도 있습니다. 성령님께 이끌리는 사람은 가라고 하실 때 가고, 가지 말라고 하실 때 가지 않습니다. 그분의 음성에 따를 때 우리는 신비스럽고 예측 불가능하고 흥미진진한 하나님의 모험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런 모험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세상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실댑니다.
성령님은 전도 공식을 깨뜨리신다
로마서의 구원 이야기나 사영리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하지 않은 전도는 영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실 때마다 상대방을 자신의 교회로 초대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전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몇 시간에 달하는 자기 간증을 늘어놓기만 하면서 스스로 합격이라고 단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만든 멋들어진 전도 공식을 언제나 깨뜨리십니다.
성령님은 나를 출발점으로 사용하여 씨앗을 뿌리게 하는 경우도 있으며, 중간 단계로 이끌어서 물뿌리개를 들고 영혼의 갈증을 식혀 주도록 하시기도 하며, 익을 대로 익은 포도 열매를 수확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결과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어떤 역할을 맡기실지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합니다.
씨앗을 뿌리는 바보가 되라
예수님의 씨앗 비유에는 엉뚱한 곳에 떨어진 씨앗들도 있지만, 좋은 땅에 떨어져 상상도 못할 열매를 맺는 씨앗도 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 맺는 이야기는 전도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용기를 줍니다. 씨앗을 뿌리다 보면 냉소주의에 빠지기 쉽고 상실감을 맛보기 쉽습니다. 전도 타율은 형편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씨앗을 뿌리면 어마어마한 열매가 나타날 것이고,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보다 영원한 나라에서 살 날이 훨씬 많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시카고랜드의 지역의 지도자와의 만남, 요트 경주 팀의 토미 기슬러의 이야기>
사람들은 기독교를 저울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저울이 선한 쪽으로 기울도록 저울에 최대한 많은 선행을 올리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울이 선한 쪽으로 기울기만 하면 다음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줄 압니다. 그것도 ‘다음 세상’을 믿는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저울이 선한 쪽으로 아무리 많이 기울어도 그분의 합격점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 용납하시고는 영원히 곁에 두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
씨 뿌리기를 멈추지 말라
우릭 교회에서는 강당 바로 앞 로비의 벤치를 ‘바보들의 벤치’라고 부릅니다. 매주 그곳에선느 누군가를 기다리는 성도들이 꼭 있습니다. 상사, 친구, 가족 등 기다리는 대상은 달라도 모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저편으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의 삶에 조그만 영적 영향이라도 마치고픈 갈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보통은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바보들이 서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를 ‘수고’라고 했습니다. 결과야 어쨌든 소중한 모든 이들에게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고 땅이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질 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보가 전도 열매를 거둔다
지혜롭게 뿌린 씨앗과 옥토가 만나는 신비로운 현장이 있습니다. 정교하게 짠 계획 덕분도, 예로부터 검증된 최고의 전도 공식 덕분도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맡은 바 역할을 충싱히 감당한 덕분입니다. 우리의 전도 타율이 바닥을 드러낼 때,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자비로운 손길로 개입하시는 순간입니다. 과연 싹이 틀까 하는 의심이 일더라도 우직하게 씨앗을 뿌리고 또 뿌리면 어느 순간 갑자기 비옥한 옥토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남은 전도의 시작
초보자를 위한 쉬운 3단계
1단계(좋은 인상을 심어 주는 법)
이웃을 못 본 체하지 말라
슈퍼, 세탁소, 약국 등에 가면 4초간 미소를 짓는다. 그곳만의 장점을 칭찬해 준다. 집배원을 만나면 덕분에 좋은 소식을 받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다.
복음의 진공상태 – 복음을 접하고 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접촉 햇수가 현저히 떨어지고 임종이 될 때에는 거의 주변에 비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님 면전에 설 때가 되었지만 손에 전도 열매들이 거의 없다.
아낌없이 은혜를 나눠 주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누구 하면 곧바로 ‘은혜’를 떠 올리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전화하고 싶고, 실수를 하면 정죄하고 욕하는 대신 등을 토닥여 주고, 곤경에 처하면 반드시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
초보자를 위한 쉬운 3단계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랑이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동행, 신앙 성숙, 예수님을 닮는 삶 같은 영역에서 성장할수록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우정의 손길을 뻗고픈 마음이 정비례로 강해진다고 말한다.
용두사미로 끝난 라이프 사이클과 극단적인 포용력을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내는 라이프 사이클 중에서 어떤 것이 당신의 신앙 여정과 일치하는가?
2. ‘흥정’얘기가 꼭 당신 얘기 같은가? 전도의 책임을 남몰래 흥정해본 적이 있는가? 어떤 두려움이나 제약 때문에 그랬는가?
- 전도에 대해 사람들은 하나님과 타협을 시도한다. 내가 ~~을 할 테니 제발 전도는 하지 않게 해달라...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구속이 절실한 사람에게 건너가기는커녕 그들과의 작은 연결고리마저 끊어 버린다. 그리스도께서 비신자들을 구속하러 이 세상에 오셨건만, 자칭 제자라는 사람이 비신자들을 혐오하고 접촉을 피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한 삶을 원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을 접촉할하거나 그들에게 다가가서 전도하려는 일체의 행동을 회피함으로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방식과 정반대이다. 예수님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심정으로 제자들을 보내셨다.
3. 예수님은 눈앞의 결점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모습을 꿰뚫어 보는 불가사의한 혜안을 지니셨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당신에겐 어떤 결점 혹은 ‘마른 부분’이 있었는가?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의 관심과 연민으로 품으려면 때로는 과감한 행동을 취할 중 알아야 한다. 세상 어디에나 마른 부분을 가진 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상처나 죄악 된 생각이나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마른 정신, 오늘의 목적의식도 내일의 희망고 없는 마른 마음, 종일 세상사에 얽매여 있는 마른 몸,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사 구원의 실을 마련해 놓으신 하나님 영혼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와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면 성령님이 우리를 통해 우리의 작은 세상 안에 있는 마른 손들을 치유하신 다는 것이다.
4. 사랑, 인내, 이해심, 연민, 믿음, 자비, 겸손, 낙관, 기쁨, 자기 통제, 착한, 친절, 지혜 중 어떤 특성이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의 잠재력을 보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두 가지만 골라 보라, 그리고 이 특성들을 더 키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2단계(먼저 들어 주는 법)
질문으로 대화의 타이밍을 잡으라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는다. 그들이 잘 아는 것을 스스로 이야기 하도록 유도한다. 경청한 후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칭찬해 주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내가 구원 계획을 나눌 틈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우리 교회로 초대하지도, 명함이 없어서 교환하지도 못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다시 볼 확률도 거의 없다. 아무래도 그날 밤이 그들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을까
예수님은 그들의 과거가 아니라 그들이 향하는 미래에 시선을 두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와 자주 어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연민의 귀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시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자신을 그분의 도구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과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전해 줄 격려와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불신자들과 관계를 맺을 째 당신은 다음 중 어떤 영역에서 뛰어난가?
접근- 구도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스타일에 맞게 – 하나님이 타고난 재능을 사용하시리라 믿는다.
공통 관심사 발견 – 벽이 아닌 다리를 놓을 방법을 찾는다.
조심성- 불신자들은 그리 거룩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2. 대립, 지성, 편안함, 초대, 섬김, 증명 들 어떤 전도 스타일이 당신에게 가장 맞는가?
-하이벨스의 스타일: 다소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림
바울의 스타일: 직선적, 대립적 스타일, 조직적, 분석적, 이성적인 전도 방식을 택했는데 그는 주로 편지를 통해서 주장과 반론으로 진리를 증명했다.
예수의 스타일: 누구나 아는 일상의 비유로 영적 문제를 다루셨다. 그분의 ‘편한’ 스타일은 배경이나 나이, 경험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우물가의 여인 스타일: 초대하는 스타일,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 모든 과거를 아시는 이분을 보러 오라고 열렬하게 외친다.
마더 테레사의 스타일: 섬기는 스타일, 말보다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었다.
리 스트로벨: 간증 스타일, 그는 적재적인 무신론자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극적으로 거듭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런 변화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성령님이 편한 자리를 떠나 미지의 저편으로 건너가 이야기를 발견하라고 이끄실 때는 우리를 ‘옳은’ 모습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부르시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3. 이번 주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위해 취할 만한 구체적인 행동 하나는 무엇인가? 물론 당신의 전도 스타일에 맞는 행동이어야 한다.
4. 주차장의 남자 얘기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 경험으로 볼 때, 전도의 문이 열릴 때마다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시키고 그 죄책감에 주차장에서 통곡하던 남자를 빌 하이벨스가 만난 일) 그 때 그 남자에게 대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이해심을 드러내고, 유죄 선고는 성령님께 맡기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한정 시켰다. 그러자 그는 여자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노라고 약속한다. 황량한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한 살한 심령이 하나님께 다시 마음을 열었고, 회복으로 향하는 길고 험난한 여행을 다시 출발했다.(죄로 상처 입은 한 영혼이 교회 주차장에서 죄를 똑바로 쳐다보고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를 찾는 거룩한 순간이었다,)
3단계(부족한 것을 태워 주는 법)
멀리서 꾸준히 지켜보라
최대한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상대방의 필요를 채원 주려면 형편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기 알아냈다면 한 번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내주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라.
꼭 재능이 뛰어나거나 돈이 많거나 인상이 좋아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과 협력하는 태도다. 언제하도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내놓을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자원제공자: 주위 사람들의 필요를 꾸준히 살폈다가 최대한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으로 그 필요를 채워 주는 봉사자이다. (어떤 특별한 전도자, 귀감자, 성경박사가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도록 작은 도움의 손길을 보태는 겸손한 봉사자를 말한다.
영적인 질문을 던져라: 인생길을 걷다 보면 주위의 나그네들이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이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결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나그네를 만나는 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는 자가 바로 자원 제공자이다.
2.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집중했다가 태워 줄 만한 필요를 알아내야 한다.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필요에 관심을 집중한다는 말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사람들이 보내는 무의식적인 구조 신호를 잡아내야 한다. 그 신호 속에는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머리가 비상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와 함께 성령님의 이끄심을 수시로 확인하는 레이더만 있으면 된다. 작은 사랑의 행위 하나 어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시시해 보이는 일상적인 것이라도 사랑 많은 그리스도인 손에 들리면 인생 변화의 거룩한 도구로 변할 수 있다.
일단 가벼운 대화로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깨지면 나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서 그에게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가 알아내는데 관심을 집중한다.(자신이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통해서 설교테이프, CD, 책 등을 통해 제공) 이러한 상호 작용이후 하나님은 간혹 특정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희망의 신호를 보내신다.
3. 전도 대상의 삶이 바닥을 드러낼 때마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관계 속에 꾸준히 머무른 끝에 열매를 거둔 적이 있는가?
함께함: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분의 삶 속으로 초대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의 인생 최대 변화는 바로 주님과 함께한 ‘일상’속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의 인생 최대 변화는 바로 주님과 함께한 ‘일상’속에서 일어났다.
함께함은 성경의 믿음 공동체를 이해할 뿐 아니라 불신자의 다음 단계를 알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다. 상대방에세 어떤 자원을 제공할지 알려면 일단 그와 함께해야 한다. 누군가의 삶 주위에 오랫동안 머물면 그의 영적 성장에 필요한 어떤 자원이라도 자연스레 제시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삶, 곧 사람들과 깊이, 진심으로, 온저ㅤㅗㄴ히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ㄴ다. 그리고 이런 끈끈한 관계는 언제나 첫 대화에서 시작한다. 첫 대화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발견하며 자원을 제공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4. 데이브의 경우, 이웃을 공동체로 묶는 일은 단순한 발야구 모임에서 출발했다. 성령님이 당신에게 어떤 단순한 일로 이웃의 필요를 채우라고 말씀하실까? 어떤 방법으로 주위 세상에 뛰어들 것인가?
-데이브는 전도의 열정은 있지만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는 이웃과도 도무지 어울릴 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발야구 모임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가족이 함께하는 발야구 모임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교제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 그리고 영적인 교제로 확대되었다.
Ⅲ. 이야기는 전도의 완성
6.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라
신앙 여정을 압축하라. 당신의 믿음 이야기 속에서 믿지 않는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만한 한 가지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알맹이 하나를 뽑아내라.
좋은 이야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주인공, 세상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는 이야기 구조, 겪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 우리가 믿는 바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흥미로운 질문과 같은 요소로 꾸며진 이야기로, 이런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오한 지혜와 교훈, 중요한 신학적 가르침을 간단한 이야기로 압축하셨습니다. 좋은 이야기의 힘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예수님의 이야기는 결국은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가 하나님의 이야기와 하나 될 때 행복하게 됩니다.
당신의 이웃과 관계가 가까워졌을 때, 그 이웃이 당신에게 하나님께 열광하는 이유는 묻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하나님께 죽고 못 살죠?” 이런 질문 후에 이어지는 짧은 순간을 어찌 때우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평생이 좌우됩니다. 이런 진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벌벌 떨어서도 안 되지만, 쓸모없는 설교를 늘어놓아서도 안 됩니다. 전도의 씨앗이 뿌리는 내렸지만 열매를 거두려면 효과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 합니다. 먼저는 ‘극단적 포용’의 자세를 갖춘 후에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술을 터득하라
그리스도인이 대체로 이야기를 효과적이고도 간결하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만나서 수천 가지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솔직히 듣기 좋은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이야기가 없어서도 아니었고, 상대방이 속내를 꺼내지 않아서도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대부분 엉망이었습니다. 보통은 자신의 신앙 여정을 지겹도록 빙빙 돌며 거슬러 올라가곤 했습니다. 믿음에 약간 관심 있던 사람조차 세상으로 더 깊이 돌아가 버릴 지경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르는 우리는 믿음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술을 다듬어야 합니다.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똑바로 전하지 않으면 결과는 너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기묘한 하나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나자마자 불가사의한 간증부터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꺼내야 합니다.
비판1> 길고 지루한 이야기 : 대부분 너무 길었습니다.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몸짓을 눈여겨 보면, 내 이야기에 문제가 있는지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짧게 하고, 상대방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약간 아쉬운 듯하게 끝내고, 믿음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대화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비판2> 복잡한 이야기 : 긴 이야기보다 더 나쁜 이야기는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한 16명쯤 등장하고 줄거리가 열댓 개 이루어진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습니다. 읽은 책이나 경험한 초자연적인 사건들, 12년 전에 참석한 세미나, 침실에 나타난 천사, 한밤중에 대화를 나눈 죽은 친척까지. 이야기는 단순하게 해야 하고, 신앙 여정의 알맹이를 명확히 전달할 만한 하나의 줄거리로 압축해야 합니다.
비판3> 종교색이 너무 짙은 이야기 ‘구원’, ‘거듭남’, ‘예수님 영접’, ‘나의 구주’ 같은 단어는 믿지 않는 이에게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종교적 암호를 완전히 걸러 내야 합니다.
비판4> 교만한 이야기 : 그들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일을 끝내는 것입니다. 자기는 거룩한 사람이고, 나는 딱한 잃은 양이요 한참 수준 낮은 중생입니다. 믿지 않는 이를 쫓아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고고한 척하는 것이며, 조금만 잘난 체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몰아붙였던 기억, 전도의 문을 실수로 닫아 버렸던 기억, 하나님은 중간 역할만 하기를 바라셨는데 억지로 끌고 믿음의 선을 넘으려 했던 기억들, 그리스도를 전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면 당사자에게 찾아가 그저 사과 한마디만 합시다. 사과하면 그 즉시 마음이 녹아내리고, 은혜가 돌아오는 법입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이야기하라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면 옛 자아가 떠나고 새 자아가 온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야기를 전할 때는 꼭 이 두 자아를 비교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삶 속에 어떤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는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과 그분을 영접한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다이어트의 효과를 보았다, 상담의 효과를 보았다, 전-후를 비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최대한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요9장의 치료받은 눈먼 남자나 요8장의 간음하다 붙잡혔지만 은혜로 새롭게 변화한 여인, 눅19장의 회개한 삭개오,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은 영원한 변화를 주신 예수님의 단순하고도 진실한 이야기를 입이 닳도록 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리스로 인한 삶의 변화 이야기는 복잡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신앙 여정을 압축하십시오. 당신의 믿음 이야기 속에서 믿지 않는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만한 한 가지 핵심은 무엇입니까? 마음과 영혼 속을 뒤져 이야기 삼각형을 완성하십시오. 첫 번째 꼭짓점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자기 모습을 묘사하는 핵심 단어나 개념, 두 번째 꼭짓점은 그러다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 세 번째 꼭짓점은 한동안 그리스도와 동행한 후의 자기 모습을 묘사하는 핵심 단어나 개념.
이야기를 정리하고 다듬어라
저자의 신앙 여행기는 정확히 77자이며, 말했을 때 약 45초쯤 걸립니다. 이 이야기를 천 번도 넘게 전한 것 같습니다. 전도 세미나 때 교인들에게 똑같은 숙제를 냈는데, 모두 평범한 삶을 살면서 최대한 하나님의 길을 따르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신과 나처럼 고통과 좌절, 소외, 절망을 겪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개입을 인정하며 그것을 강력하고도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 여정을 압축하십시오. 간결하고 일관성 있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여 겸손하고 솔직한 태도로 주위에 전하십시오. 더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평범한 이야기에 불꽃을 일으켜 누군가의 삶 속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자기 삶에 대한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설명하는 간단하고 솔직담백한 전후 이야기는 의외로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경험자를 위한 강력한 1단계 – 자기 체험을 고백하는 법
신앙생활을 압축한 핵심만 전하라 – 최대한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길고 지루한 이야기, 복잡하고 종교색이 짙은 이야기, 교만한 이야기는 피한다. 자신의 믿음 체험을 진심으로 전달하라. 하나님은 그때 초자연적인 불꽃을 일으키신다.
7. 복된 소식을 전해 주라
천국은 풍성한 관계와 아름다움, 기쁨과 평화, 쉼이 있는 완벽한 곳이다.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이 하나님의 다리 위로 첫걸음을 떼는 순간은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 노래를 부르는게 얼마나 황송한 영광인가
사람들은 틈을 이으려는 갈망이 크기 때문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다리를 놓습니다. 태초부터 벌어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거대한 틈을 건너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종교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문제가 있으니 다리를 놓는 공사가 늘 인간 쪽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직하게 살고, 좀 더 열심히 기도하고, 좀 더 거룩하게 행동하고, 좀 더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좀 더 선행을 베풀어야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게 모든 종교의 핵심입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공사를 해야 하나님 근처라도 갈 자격이 생긴다는 것인데, 죽기 전에 공사를 완성한다는 보장도,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을 다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야말로 궁극의 다리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듣는 이의 반응입니다. 이제는 안전모를 벗고 삽을 내려 놔도 됩니다. 부질없는 공사는 이미 끝났으며 완성된 하나님의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됩니다. 인간의 다리는 기껏해야 행동 변화로 이어지나, 하나님의 다리는 속부터 완전히 뒤집히는 변화로 이어집니다. 습관이 바뀌고 관계가 꽃을 피웁니다.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관심을 드러낼 때마다 ‘다리 그림’을 주로 활용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틈은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자신의 길로 가려는 사람들의 고집 때문에 생겼습니다. 성경은 이 틈을 ‘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다리로서 세상에 오셨으니 누구든지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살게 됩니다.(요5,24) 다리 예화를 통하여 저자는, 인간이 매일 안전모를 쓰고 삽을 든 채 열심히 자기 나름의 공사를 하다가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하나님의 다리를 건넌 후에야 안전모를 벗고 삽을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놓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리를 건너 창조주의 얼굴을 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오직 믿음뿐입니다.
하라 vs 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하라’와 ‘했다’의 차이입니다. 일반 종교는 ‘하라’입니다. 신의 은혜를 입으려면 최대한 많은 선행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했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만으로 충분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은혜’ 안에 놓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이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 덕분에 당장이라도 우리는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눈에 들 숭 ㅤㅣㅆ습니다.
도덕의 사다리
‘도덕의 사다리’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필요함을 보여 줍니다. 마더 테레사는 위로 3/4쯤 되는 단 위에 서고, 빌리 그레이엄은 그 밑, 빌 하이벨스는 그 밑에 둔 후 자신의 이름을 적습니다. 그리고 난 후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를 어떻게 좁히렵니까? 마더 테레사도 빌리 그레이엄도 도덕의 틈을 건널 다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택했습니다. 혹시 자기계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수준으로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철저한 오산입니다.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받아들이면 진정한 자유가 찾아옵니다. 누구나 용서를 받고 풍성한 삶을 누립니다. 도덕의 틈을 단번에, 영원히 메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회피하지 말라
복음을 나눌 마음과 사람에 대한 사랑만 있다면 전도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궁극의 전도자이신 예수님도 우리에게 그저 복음의 힘을 믿고 나서 무조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빌리 그레이험의 전도 집회에는 의자 천 개 놓을 정도의 공간을 비워둡니다. 결단의 자리인데, 전도 집회 때 비었던 공간을 수 천 명이 채우는 모습을 보고 나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빌리 그레이엄 팀의 자신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정말로 삶을 뒤바꿀 수 있다고 분명히 믿습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복음이 인생을 구원하고 새롭게 변화시킨다고 말로는 떠들지만 실생활 속에서는 더없이 소심한 모습을 보입니다. ‘전도할 상황에서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전도할 상황에서 회피하는 사람도 저편으로 건너가지만, 문을 여시면 이상하게 꿀 먹은 벙어리로 돌변합니다. 전도할 상황에서 회피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기회를 날려 버리는데 선수입니다. (진 아펠이 요트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적절하게 대답한 예,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진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전도할 상황에서 회피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지만, ‘전도할 때 쉽게 흥분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사업에 방해가 됩니다. 그들은 동기가 순수하긴 하지만 대개 복음을 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무 감사한 나머지 밖으로 쏟아 내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받아들일 거라는 못 말리는 낙관론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편으로 건너간 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음을 쑤셔 넣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영적 탄알을 하나씩 장전합니다. 꾸지람의 탄알, 경건의 탄알 등, 탄알을 다 장전했는지 하나씩 확인합니다. 눈앞의 상대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장엄한 피조물이란 사실을 잊은 채, 진실한 관계맺음을 건너뜁니다. 대신 무의미한 잡담은 몇 초간 참아 주다가 숨겨 둔 영적 무기를 꺼내 연달아 발사합니다. 가끔 기다릴 줄도 알지만 기회다 싶으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쏟아냅니다. 전도할 때 쉽게 흥분하는 사람은 대화 안에 사랑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전도의 상황을 만드신 하나님께 주도권을 넘기고, 대화의 흐름과 내용을 성령님이 이끄시도록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회피와 흥분,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복음을 전할 기회 앞에서 돌처럼 굳고, 대화가 영적으로 흐를라치면 곧 입을 다무는 그리스도인, 또는 영원한 죽음으로 향하는 친구를 보고 침묵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인, 둘 다 좋지 않습니다. 영적 대화 속에서는 느긋하고 자신감 넘치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복음의 힘을 믿고, 몇 가지 그림 설명법을 배워 하나님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이를 전하는 걸 게을리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른 속도로 죽어갑니다.
세상의 짐을 내려놓으라
인생은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비슷합니다. 위로와 평안이 찾아오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죽음 앞에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 찾아와도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는 찾아오지 않으리란 일종의 자기 부인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 저편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자기 부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자신이 없기에 죽음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나 죽음에 직면한다고 말합니다. 선택하기에 따라 죽음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연합으로 가는 관문에 불과합니다.(요3,16) 불확실한 이 세상보다 천국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완벽한 곳입니다.
경험자를 위한 강력한 2단계 – 복된 소식을 전하는 법
회피하지도 말고 흥분하지도 말라 : 전도할 상황에서 회피하는 사람은 결코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될 기회를 날려 버린 사람입니다. 전도할 때 쉽게 흥분하는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이 대화를 이끄시도록 주도권을 넘겨 드려야 합니다.
[출처] 빌 하이벨스, <사랑하며 전도합니다>
빌 하이벨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들어가는 글 하나님은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방금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 정말 멋있는 가스 충돌이야’라고 말하는 산모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1. 1.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시는가’, 배심원들이 평결을 내립니다. 배심원들은 자신들의 평결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지 않으며, 판사도 배심원에게 확실한 평결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한 점 의혹 없이 모든 배심원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증거를 기대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려 왔습니다.
가능성의 끝을 붙잡고 살아간다
2. 2. 일상의 삶의 영역에서 결정적인 증거보다는 높은 가능성에 의존하여 결정을 내립니다. 아무리 안전한 비행기 여행이라도 절대적인 안전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수학과 형식 논리 분야를 제외한 인생의 모든 일이 가능성에 기초를 두고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확실성의 잣대를 가지고 생활하며 증거를 비교 검토하고, 데이터를 살펴 본 다음 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결정을 내립니다.
내게 이것을 증명해 보이시오!
3. 3.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 없이 의혹과 질문만 하면 되는 검사는 ‘보통 사람이 당하는 불행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면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지’,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주장을 하는 본인을 죽이지 않음’이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변론
4. 4. 하나님을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누구나 마음 속에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변호사는 변론합니다. 세상의 이유를 묻는 우주론 논쟁의 세 가지 근본 원리 중 첫 번째가 ‘충분한 이유의 원칙’입니다.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가정에서 시작하는데, 시카고에 기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왜 존재하는가’를 묻습니다.
5. 5. 두 번째 원리는 ‘우연성의 원리’로, 만물은 다른 것을 필요로 합니다. 나무가 공기를, 풀은 물을, 풋볼 팀은 팬을 필요로 하듯이 다른 어떤 것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독립적이거나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만물은 서서히 붕괴하며 점차 에너지와 복잡성을 상실합니다. ‘모든 사물은 다른 사물에 의존하며 그 모든 것은 쇠퇴해 갑니다.’
6. 6. 다른 사물에 의존하며 쇠퇴해 가는 모든 사물은 우주라는 원 안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무엇이 이 모든 우연한 요소를 생겨나게 하였는가’, ‘무엇이 그것을 쇠퇴하게 하였는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원 안쪽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한 원인은 당연히 원 바깥쪽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원 밖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연히 생겨난 것도, 어떤 원인에 의해서 야기된 것도 아니며 자립적이면서 전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전능해야만 합니다.
유전자 설계자
7. 7. ‘누가 모든 것을 거기에 배치했을까?’라는 우주론과 ‘왜 모든 것들이 그렇게 질서 정연하면서도 복잡할까?’라는 목적론적 논쟁의 질문을 합니다. 사람들은 우연한 반복이 계속될 수 없는데도 복잡하면서도 잘 움직이는 우주를 보면서 뛰어난 설계자가 존재한다고 추측했습니다. 제철소가 폭발하면서 자동차가 만들어질 수 없으며, 광합성과 같은 복잡한 과정이나 독수리가 활공하는 동작들이 우연히 일어날 수 없으며, 대기 중에 떠도는 가스 덩어리들이 우연히 충돌해 단 하나의 미생물을 만들어낼 확률이 제로(0)에 가깝습니다. ‘디자이너가 없는 디자인은 있을 수 없으며, 고안자가 없다면 고안품은 있을 수 없으며, 선택 없이 주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윈조차 우연히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시인합니다. 사랑스런 아기가 자연의 우연한 ‘사고’로 인해 탄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섬유 창고가 갑자기 폭발하는 와중에 유명 디자이너의 상표가 붙은 청바지가 갑자기 만들어 지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누가 말하는가?
8. 8. 세 번째 논증으로, 세계 도처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공통적인 도덕 규범을 터득하고 있을까요? 인간이 가스 덩어리의 진화된 존재이고, 성장한 세균류이거나 두발로 걸어 다니는 영장류 동물의 진보된 형태라면 거의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도덕적 가치(진실과 친절, 충절 등)를 높이 평가하고 일관된 가치 규범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주입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나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알고 있다
9. 9. 신에 대한 주장이 ‘신앙 체험론’과 결합하면 반박하기 힘든 설득력을 가지게 됩니다. ‘신앙 체험론’이란 수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으며, 삶 속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느끼고 어떤 일을 할 때 예비하시는 그분의 힘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입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실재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10. 10.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어떤 설명이 틀림없이 우주 밖에 있으리라는 것, 이렇게 주도 면밀하게 고안된 세상의 이면에는 틀림없이 어떤 설계자가 있다는 것, 명백하게 일관적인 도덕 규범 뒤에는 어떤 입안자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하나님
11. 11. 많은 사람들이 가끔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는 시간에 하나님의 방문을 받습니다.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부드럽게 초대하시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맥스 루카도, 『예수님처럼』, 복있는 사람
제1장 예수님의 마음
딱 하루만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당신의 삶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주변 사람들은 변화를 알까요? 내 안에서 감정과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요? 삶의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24시간 동안 하려고 계획했던 일을 여전히 하게 될까요? 나의 삶을 주도하시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기”(빌2,5) 원하십니다. 당신을 향해서 하나님은 새롭게 마음을 변화시키기를 계획하십니다.(엡4,23-24)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을 한 두 문장으로 만든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예수님처럼 되기 원하십니다.” 잘할 때는 후해졌다 실수하면 줄어드는 것이 사람의 사랑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상대하지 않아도, 무시해도, 퇴짜를 놓아도, 멸시해도, 불순종해도, 그분은 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악이 그분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이 그분의 사랑을 더 커지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매하다고 잃는 것도 아니요 믿음으로 얻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한다고 덜 사랑하시고 성공한다고 더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그대로 두시지는 않습니다. 딸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려는데, 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합니다. 맛있는 것을 주려는 곳에 딸아이는 흙을 잔뜩 넣었습니다. 이런 딸을 사랑하지 않거나 자격 미달이라고 미워할까요?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입을 씻겨 주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오물을 씻겨 주시는데, 부도덕, 부정직, 편견, 원한, 탐욕을 씻겨 주십니다. 우리는 씻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만 흙을 먹으면 우리만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들고 계시며,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 원하십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삽니다. “걱정 많은 건 내 천성이야.” “난 평생 비관만 하며 살거야. 그게 나야.” “나는 성질이 못됐어. 그런 행동은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것은 마치 “부러진 다리는 내 본연의 모습이야.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몸에 고장이 생기면 도움을 구합니다. 마음도 고장나면 똑같이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비뚫어진 태도에 대해서도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언사에도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바꿔 주실 수 있으며, 그분의 마음을 품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순결했습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1,19)이시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하셨습니다. 불안해하시거나 낙심하시거나 얼굴에 불을 뿜어내시거나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으시고 언제나 평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위로부터 주어진 소명에 이끌림 받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이 사명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고 사셨기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요2,4)고 말할 때와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할 때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러나 목표에만 찌들어 사시지 않으시고, 주님은 항상 즐거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신령했습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친밀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사셨습니다.
인간의 마음
우리의 마음은 그분의 마음과는 사뭇 거리가 멉니다. 그분은 순결하시되 우리는 탐심이 가득합니다. 그분은 평안하시되 우리는 복잡합니다. 그분은 목적이 분명하시되 우리는 산만합니다. 그분은 즐거우시되 우리는 군말이 많습니다. 그분은 신령하시되 우리는 이 땅에 매여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그분이 마음의 거리는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그분의 집으로 삼으셨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데 왜 아직도 내 자아가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일까요? 아일랜드의 한 부잣집 여인의 집에 전기가 처음 연결되었습니다. 전기를 가설한 지 몇 주 지나도 계량기는 거의 제자리였습니다. “저녁마다 해가 지면 촛불 붙이는데 필요한 시간만큼만 전깃불을 켜지요. 그리고는 꺼버려요.” 전기는 들어오지만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자의 집은 전기는 연결되어 있지만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마음은 변화되지 않은- 연결돼 있지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믿지만 변화는 저항합니다. 어쩌다 스위치를 올릴 때도 있으나 대개는 그냥 어둠 속에 갇혀 지냅니다.
불을 계속 켜두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의 광채 안에 거하는 작업을 시작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재창조하기 원하십니다.(롬8,29;골3,10)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바꿔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살펴 볼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초점이 분명한 삶, 그분의 인내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분은 어떻게 용서하셨나? 언제 기도하셨나? 무엇이 그분을 그토록 즐겁게 하셨나? 그분은 왜 포기하지 않으셨나?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그분의 모습 속에 우리가 이루어갈 형상을 들어 있습니다.
제2장 꼼짝없이 매인 사람들 사랑하기 / 골3,13
첫 애완동물로 강아지, 리즈를 키웠습니다. 부모님은 리즈를 돌보는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고,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못가 리즈는 내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리즈는 여전히 내 개였고 나는 여전히 리즈의 친구였으나 이제 그 짖는 소리가 지겨워졌습니다. 식구들에게 말 듣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리즈 좀 잘 봐, 네 개잖아.” 이 말이 싫었습니다. “같이 놀 때만 네 개”라든지 “네가 원할 때만 네 개”라든지 “말을 잘 들을 때만 네 개”라면 싫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즈는 네 개야”라는 말은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진자리나 마른자리나 “내 개”라는 말입니다. 그 때 든 생각이 있었는데, ‘나는 리즈에게 꼼짝없이 매였구나’
사람마다 “리즈는 네 개잖아” 대신 듣는 말이 달라집니다. ‘그 사람은 네 남편이야’, ‘네 아내야’, ‘네 자식, 부모, 직원, 상사, 룸메이트야’ 그 밖에도 생존에 충성이 필요한 관계라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영속성에 사람을 겁에 질리게 할 수 있습니다.
매임병
매임병은 누군가에게 꼼짝없이 매였다고 느껴질 때 나타나는 흔한 질병입니다. 매임병은 숨쉬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발병하는 것으로, 특히 출생과 죽음 사이에 찾아옵니다. 매임병의 증세는 짜증이 늘고 화를 잘 내며 속에 쌓이는 것이 많아집니다. 매임병 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은 누구, 무슨, 왜 따위가 들어가는 질문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지? 내가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왜 어머니 말을 듣지 않았을까?
매임병의 처방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용서하는 것입니다. 도망가는 길은 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만 똑같은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싸우는 이들은 가정이 전쟁터가 되고 사무실은 복싱 링이 되고 긴장은 생활방식이 됩니다. 또 하나의 처방은 용서를 찾는 이들이 가끔 있는데, 성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똑같은 무리에게 꼼짝없이 매이셨는데, 어떻게 끝까지 헌신적인 태도로 대하셨을까요? 그들에게서 나타난 꼴불견과 결점,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심, 모든 실수, 그들이 품은 모든 생각과 모든 짜증, 모든 혐오와 모든 배반을 아셨을 텐데, 어떻게 한결같이 사랑하고 믿어주셨을까요? 요한복음 13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수건과 대야로
유월절 만찬을 위해 둘러앉아 있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종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인데, 지금 우주의 왕이 하고 계십니다.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있는 그분의 관심은 오직 하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이 알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을 씻기는 발은 얼마 후면 로마의 검 앞에서 숨을 곳을 찾아 줄행랑을 칠 발이며,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의 발까지 씻기고 있습니다. 자신을 배반할 자의 발을 말없이 씻기신 예수님, 얼마나 진한 사랑의 순간입니까? 비록 배반할 그 때 수치심가ㅗ 자괴감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들지 못할 그 때, 그들의 발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무릎 꿇고 그 발을 씻어 주신 것을 기억하고 깨닫기 원하셨습니다.(요13,7) 예수님은 제자들이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하셨습니다. 구하기도 전에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은혜의 대야에서
“아, 나는 절대 못해.” “상처가 너무 깊어. 상처받은 일도 너무 많고,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져.” 당신의 가장 큰 문제는 상처 준 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상처 입힌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구원하신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의 비밀은 예수를 “바라보는”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모든 죄를 씻어 주고 계십니다.(요1,7) 우리는 언제나 씻겨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셨으며,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풀었으니 우리도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잘못보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선행된 것처럼 우리의 자비도 다른 사람의 잘못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꿇어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꿇어앉아, 꼼짝없이 매인 사람들의 더러운 부분을 만져 주고 사랑 없는 그들을 사랑으로 씻어 주는 것입니다.(엡4,32)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용서해야 하나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당신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 방에 있던 모든 이들 중 다른 사람으로부터 발씻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섬김받아야 할 분이 오히려 다른 이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의 진수는, 화해의 가교를 잇는 짐이 약자의 몫이 아니라 강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잘못 없는 사람이 손 내미는 자입ㄴ디ㅏ. 옳은 쪽에서 먼저 나서 잘못된 쪽의 발을 씻기면 양쪽 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가 성공하는 것은 죄 있는 쪽이 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죄 없는 쪽에서 베푸는 긍휼 때문입니다.
용서의 위력
10년도 더 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아내는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이들은 기도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 문구의 카드를 보냈습니다. “당신 없이 무엇을 하기보다는 당신과 함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리.” “당신을 용서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계속 함께 걸어요.” 카드는 대야였고 펜은 물을 담는 바가지였습니다. 거기서 순결한 자비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 자비로 아내는 남편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어떤 갈증은 이렇게 대야의 물로만 풀 수 있습니다.
9장 마음의 온실 – 순결한 마음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온실에 어떤 씨앗을 심습니까? 싸고 쉬운 잡초 씨앗을 심는 것보다 더 비싸지만 화초 씨나 과일 씨를 심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음의 온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진리입니다(갈6,7).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완벽한 재배 환경인 또 하나의 온실입니다. 마음에 희망의 씽사을 뿌리면 난관의 결실을 누리게 되고, 회의의 씨앗을 뿌리면 불안의 열매를 맺습니다. 잡초와 가시덤불의 온실에서는 우울한 모습으로 죽을상으로 살게 되지만, 불굴의 힘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이겨 내며 늘 인내와 낙관과 용서를 잃지 않는 사람들은 선의 씨앗을 뿌려 수확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온실이요 생각이 씨앗이라면 온실에 들여놓을 씨앗을 잘 골라야 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이 인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반응이 다릅니다. 교통체증에 걸렸을 때, 똑같이 사업에 성공을 했을 때, 두 남편이 똑같은 실수를 범했을 때 서로의 반응이 다릅니다. 마음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합니다.
마음 지키기
우리 마음의 일부에는 이미 쓰레기가 널려 있습니다. 하찮은 오물에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젖힙ㄴ디ㅏ. 분노와 복수, 연민, 정욕에 거절할 줄을 모릅니다. 시간 관리, 체중 관리, 인사 관리, 심지어 피부 관리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생각 관리는 모르거나 쉽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성문을 지키는 노련한 병사처럼 자신의 마음 문을 살피셨으며, 단단히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을 때에도 교만하지 않으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요6,15) 십자가의 고통을 막으려는 베드로의 유혹에 예수님께서는 마음 문을 지키셔서 이단적인 생각의 입안자와 전달자를 동시에 줄달음쳐 달아나게 만드셨습니다.(마16,23) 병든 소녀를 고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집에 가보았으나 그 소녀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모욕받기를 거절하시며 단호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막5,39-40). 조롱은 소녀의 집에도 주님의 마음에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풍성한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하셨기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품기”(빌2,5)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를 결단하면 되는데, ‘내 생각을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시키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그 어떤 권위-세상의 그 어떤 권위나 부모의 권위보다-보다 높으십니다.(마28,18)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의 생각에도 미칩니다. 은행 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합시다. 예수님은 도둑질이 잘못임을 분명히 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둔다면 절도계획은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순결한 마음을 지니려면 우리의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문간을 지키라
우리 생각의 문턱에 함께 서 계시는 성령은 안으로 들어오려는 생각들의 관리와 여과작업을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수상한 생각이 접근해 온다면 문을 활짝 열어 들여보내겠습니까?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고후10,5)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생각이 들어오려고 할 때 보통 사람은 문을 열고 그 생각을 들여보냅니다. 그러면 그 생각은 잡초 씨앗처럼 옥토를 찾아 뿌리를 내려 열등감의 가시를 맺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생각을 들여보내지 않고 포로로 사로잡아 그리스도의 재판석 앞에 내놓습니다. “예수님, 이 생각이 말하기를 저는 폐품이요 패배자이며 평생 아무 것도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찬성인지 반대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2장10절과 로마서8장1절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났다거나 하잖은 존재라고 말하는 깡패 같은 생각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며 허용되지 않습니다.
열성 팬과 같이 우리가 잘난 존재라고 아첨하는 생각은 전형적으로 환영받지만, 성령의 검을 뽑아 보니 교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롬12,3;갈6,14) 달콤한 생각을 온실에 키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허용하시는 것만 허용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혹의 생각이 우리 문을 넘으려고 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있지 않다면 문을 활짝 열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면 뒤로 물러서 예수님은 찬성인지 반대인지 물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6-7장은 예수님의 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뜻과 성령의 검으로 무장한 우리는 이제 유혹자가 나의 배우자가 아니라면 문을 걸 것입니다. 초청이 배우자에게서 온 것이라면 그야말로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씨앗을 잘 고를수록 수확의 기쁨도 커집니다.
[출처] 맥스 루케이도, <예수님처럼>,
존 맥스웰, 인재경영의 법칙
가장 좋은 재목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었는가?
훌륭한 리더는 능력 있는 리더 재목을 알아보고 선발해 냅니다. 데일 카네기는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알아보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는데, 백만장자를 43명이나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백만장자들을 고용한 적인 없습니다. 그들은 회사에 와서 백만장자가 되었지요.” “인재들을 개발하는 것은 금을 캐는 것과 같습니다. 금광에서 1온스의 금 덩어리를 캐기 위해 트럭 몇 대 분의 흙을 파내야 합니다. 흙만 파내기 위해 금광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제가 금광에 들어갈 때는 금을 캐러 갑니다” 흙덩어리를 찾지 말고 금 덩어리를 찾으라. 나쁜 재목을 찾지 말고 좋은 재목을 찾으라. 적극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을 찾으면 찾을수록 보다 훌륭한 인재를 발견할 것이다.
좋은 목수는 좋은 재목을 알아본다.
3-1. 좋은 선수 선발하기
프로 스포츠 구단 관계자들은 좋은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스카우트 팀은 가능한 모든 시합들을 관전하기 위해 전국을 누빕니다. 좋은 선수를 선발하여 확보하는 것에 팀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사업에도 이 원리는 적용됩니다. 회사의 장래를 위해서는 좋은 선수를 선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원리를 모르고 함부로 사람을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손이 딸리니까, 시간이 없어서, 사람을 선발하는 방법을 몰라서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급하게 쓰고 나서야 이제부터는 잘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쓰는 일에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단 사람을 쓰기로 결정하고 나면 사용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아주 좁아집니다. 스카이다이빙에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다음에는 낙하산에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른 선택을 위해서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한데,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과 선수 선발 과정에서 가능성 있는 선수를 볼 수 있는 안목입니다. 다음의 5대 평가 지침으로 평가합니다.
1) 필요조건 : 무엇이 필요한가? 2) 내부 인물 : 기관 내에서 가장 잘 준비된 인물은 누구인가? 3) 후보 능력 : 누가 가장 능력이 뛰어난가? 4) 후보 자세 : 누가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가? 5) 후보 경력 : 누가 경력이 가장 확실한가?
평가 지침의 첫 번째는 회사 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합니다. 리더는 선수를 평가할 때 그가 가진 큰 그림을 기초로 필요 여부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을 선택합니다. 간혹 아주 탁월한 선수들, 즉 슈퍼스타, 초중량급 대어를 받아들여야 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선수들은 팀 전체의 모습을 일신시켜 팀 전력 강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탁월한 인물을 위해 새로운 자리 하나쯤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슈퍼스타를 평가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어려워합니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내기 위한 평가 도구가 있는데, ‘25가지의 특성을 잘 정리한 자질 평가서’를 소개합니다. 예비 리더를 평가할 때, 점수만 계산하지 말고 특별한 성격이나 인격에 관한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마틴 잭니스는 인력 시장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경향인 “전문가 감소의 법칙”을 소개합니다. 리더들은 사람을 고용할 때 자기보다 능력이나 전문 지식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씁니다. 그 결과 회사가 커지고 고용인의 수가 늘어나게 되면, 점차로 전문성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전문성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훨씬 많아지게 됩니다. 95점의 리더가 쓸만한 85점의 직원 네 명과 함께 일을 합니다. 기업이 성장하여 네 명의 부장들 밑에는 각각 두 명의 차장이 있으며, 그 두 명의 차장 밑에는 각각 20여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네 명의 부장은 75점 정도의 차장들을 뽑습니다. 전문가 감소의 법칙에 의해 차장들은 20여 명의 직원들을 뽑을 때 65점짜리들을 뽑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리더십 평균 점수가 87점이던 회사가 이제는 리더십 평균 점수 67점으로 자질이 뚝 떨어져 버립니다.
전문가 감소의 법칙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발 정도가 높은 리더에게 사람을 선택하게 하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우수한 리더를 선택하고, 리더십의 모델을 보여주며, 주위의 사람들을 개발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러시아 인형을 선물하며) “만일 우리가 우리보다 작은 사람들만 쓰게 되면, 우리 회사는 난쟁이 왕국이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보다 조금 큰 사람을 쓰면, ‘오길비 앤 매더’는 거인들의 회사가 될 것이다”
3-2. 리더의 필수 자질 10가지
3.2.1. 성격 : 어느 분야의 리더든 리더에게서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좋은 성격입니다. 성격 장애와 약점을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약점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격 장애는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이 한 사람이 기관을 망칠 수 있습니다. 정직성, 통전성, 자기 훈련, 온순함, 신뢰성, 인내, 바른 양심, 일에 대한 바른 윤리와 같은 자질이 좋은 성격에 포함됩니다. 성격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을 때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자기가 맡은 일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때, 2. 책임을 다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3.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을 때. 이와 같이 리더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상사들을, 동료들을, 부하 직원들을 -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3.2.2. 영향력 : 리더는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으며, 자기가 가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같이 가게 합니다. 이 때 영향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어떤 자질을 가진 영향력인가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리더가 지닌 영향력의 수준은 어떤가? 직위, 허용(동기부여), 생산성, 인물 개발, 인간성 중 어떤 이유로 팀원들이 리더를 따르는가 살펴보라. 2. 누가 예비 리더에게 영향을 주는가? 어떤 모델을 따르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3. 누가 예비 리더의 영향을 받는가? 팀원들의 자질을 보면 리더의 자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는가?
전쟁 참전 용사의 장례식에서 퇴역군인들이 전우의 관 앞에서 경의를 표한 다음 옆문으로 나가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젊은 목회자가 그들을 인도하며 절도 있게 행군하는데, 옆문으로 나가던 전우들이 와당탕 넘어졌습니다. 옆문은 나가는 문이 아니라 청소 도구 보관 창고였으며, 문을 열자 쓰레기통과 걸레, 빗자루 등이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을 앞서서 인도하는 리더는 사람들을 어디로 인도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3.2.3. 긍정적인 자세 :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의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생의 일반적인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며, 실패했을지라도 잠재된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개발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월요일 아침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안내원을 향해 짜증을 내어 쏘아붙입니다.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제가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새날이거든요.” 바른 태도의 사람은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도 기쁘게 살아갑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태도에는 우리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태도의 뿌리는 안으로 뻗어 가지만 열매는 밖으로 뻗어 나갑니다, 태도는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거나 가장 나쁜 원수입니다, 태도는 우리의 말보다 더 진실하고 일관성이 있습니다, 태도는 과거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밖으로 드러납니다. 태도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합니다, 태도는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뎌합니다, 태도는 우리의 과거라는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태도는 우리 현실의 대변인입니다, 태도는 우리 미래의 예언자입니다.
3.2.4. 뛰어난 대인 관계 : 대인 관계에 뛰어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여 긍정적으로 대화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재능과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 줄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3.2.5. 분명한 재능 : 리더는 천부적인 재능을 파악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리더는 네 부류로 나뉩니다. 1) 재능이 맞지 않는 리더, 능력이나 재능에 맞지 않는 일을 하도록 시키면 그는 좌절감만 느끼게 됩니다. 그는 책임을 전가하며 결국 탈진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에게 맞는 다른 일을 시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 재능 개발이 가능한 리더는 아직 자기 훈련이 덜된 이를 말합니다. 재능은 있지만 재능을 발휘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3) 재능을 개발해야만 할 리더는 정제되지 않은 상태의 재능은 있으나 기술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재능을 개발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4) 재능을 꼭 발휘해야만 할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데,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이는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는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3.2.6. 좋은 과거의 경력 : “경험을 통해 배우는 아픔보다 더 진한 아픔이 있다. 바로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아픔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리더는 시간을 두고 좋은 경력을 쌓아 갑니다. 과거 경력이 썩 대단치 않은 사람은 자기가 한 실수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아니면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본 적인 없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원이 부족했으나 처음부터 탁월한 통찰력으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일을 추진하여 지금은 일류 리더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최고는 아니었지만 리더의 지도로 훌륭한 리더로 성장하고 좋은 경력도 쌓아 손꼽히는 리더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리더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알아보는 비결이 있습니다. 대부분 보통 수준의 그저 그런 사람들이지만, 리더라는 사람들은 무언가 특출난 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곧 알아볼 수 있습니다.” 리더를 선발할 때는 항상 그의 과거 경력을 참고하십시오. 좋은 리더는 항상 좋은 경력이 있습니다.
3.2.7. 자신감 : 사람들은 자신감 있는 리더를 따릅니다. 옐친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탱크를 상대로, 옐친은 탱크 위에 올라갔습니다. 이런 옐친의 자신감을 보고 군인들이 옐친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긍정적인 자세에서 자신감이 나오고, 자신감은 힘과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위대한 리더는 멤버 스스로 자신감을 지니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3.2.8. 자기훈련 : 즉흥적인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현대에서도 리더는 예외 없이 자기 훈련을 합니다. 희생을 통한 성장에서 오는 자기 훈련의 아픔과 쉽게 살다가 기회를 놓치고 나서 느끼는 통한의 아픔 중에서 하나를 선택합니다. “자기 훈련의 아픔은 가볍다. 하지만 후회의 아픔은 천만금처럼 우리를 짓누른다” 예비 리더는 감정을 다스리는 자기 훈련과 같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시간관리를 훈련해야 합니다. 잘 훈련된 리더에게는 구체적인 장, 단기 목표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 계속 노력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3.2.9. 훌륭한 대화의 기술 : 미국인들의 일하는 시간 중 70%가 말로 의사를 전달하는데 쓰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대화를 잘 해야만 자신의 비전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고, 그 비전에 따르라는 동기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상호관계에서 대화가 가능합니다. 대화하는 사람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대화 상대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 온갖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능력, 대화 상대의 눈 마주보기,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는가를 살피며 대화해야 합니다. 리더로 세울 때는 대화를 잘 이끌어 가며 의사 전달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3.2.10. 비전을 향한 도전의식 : 리더는 비전을 지니고 보기 때문에 현재보다 더 발전되고 진보된 상태를 봅니다. 그래서 리더들은 현재 상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리더는 현재의 성취 수준에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더 높고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리더는 변화와 성장을 위해 모험을 합니다. “직무를 수행하는데 안전한 길만을 택해 순탄하게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당장 목이 잘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본인의 경력이나 회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멍청이들이 아니다. 그런 안일한 직원들은 언제라도, 그것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리더는 그리 흔치 않다. 그리고 비전이 있는 리더는 순금덩어리이다.” 옛날 방식을 유지하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삶에 접근하는 자세나 태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4장 당신은 예비 리더를 양육하고 있는가?
월급만 주는 기관이 있는 반면 월급뿐만 아니라 양육을 하는 기관도 있습니다. 양육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한데, 그들을 믿고 격려하고 그들과 나누고, 그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양육을 받게 되면 생산성이 높아지며, 잠재된 리더십을 지닌 사람들의 감정과 전문적 기초를 다질 수 있습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에 하나가 모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모델, 엄격한 노동관, 책임감, 인격, 열린 마음, 일관성 있는 태도, 의사 전달,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 등의 모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바르게 일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자기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리더십을 유지하라
4-1. 리더십 모델을 선정하라 : 리더십 모델을 선정할 때는 곰곰히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본보기 모델의 선정 기준은 다음의 6가지입니다. 1) 이 모델은 내가 과연 본받을 만한 모델인가? 이 사람을 닮아갈 것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어떤 사람들이 이 모델을 따르고 있는가? 진실성을 묻는 질문인데, 따르는 자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이 모델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이 모델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강점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4) 이 모델은 다른 리더들을 키워 주고 있는가? 5) 이 모델의 강점을 나의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가장 적절한 모델(예, 키가 작으면서 샤킬 오닐을 닮겠다?)을 찾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부분 노력하면 배울 수 있습니다. 6) 이 모델을 본받는다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4-2. 멘토링 관계를 효과적으로 맺으라 : 1) 적절한 질문을 하라. 멘토와 만나서 할 질문을 생각하고 자신의 성장 전략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2) 당신이 기대하는 수준을 분명히 하라. 일반적으로 멘토링의 목표는 완전이 아니라 발전입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특별한 수준으로 올라갑니다. 3) 배우는 자의 위치로 낮아지라. 자존심을 세우지 말며, 아는 체 잘난 체 해서 환심을 사려는 태도는 배움의 걸림돌이 됩니다. 4) 멘토를 존경하되 우상화하지 마라. 멘토를 존경할 때 그의 지식과 경험이 주는 강점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5) 배운 것은 즉시 실천하라. 배우라, 실천하라, 내 것으로 만들라. 6) 멘토에게 행동을 주의하라. 어떤 것을 배울 것인지 정하고 미리 준비하라. 7) 성장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멘토에게 보답하라. 말로는 감사하다고 하면서 전혀 나아지는게 없다면 멘토는 실망합니다. 성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8) 그만두겠다는 말을 조심하라. 멘토에게 꼭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인내하면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4-3. 신뢰감을 쌓으라 : 신뢰감은 “리더와 팀원이 하나가 되게 하는 접착제”입니다. 신뢰감은 책임감, 충성심, 정확성과 통합니다. 팀원이 리더십을 따르기 전에 먼저 리더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는 하루하루 시간을 통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쌓입니다. 리더가 신뢰를 상실하는 경우는 약속 어기기, 험담하기, 정보 독점하기, 위선적인 행동하기 등입니다. 리더가 한 번 신뢰를 상실하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두 배 이상의 힘이 듭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어떤 부분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신뢰라는 기초 위에서만 리더십은 그 능력을 발휘합니다.
신뢰를 얻는 방법은 1) 시간 - 시간을 투자하여 조언해 주고, 2) 존경 - 예비 리더를 존경해 주며, 3) 긍정적 태도 - 그대로 받아주며, 4) 민감성 - 감정이나 필요들을 잘 알아서 대처하며, 5) 접촉 - 스킨십과 칭찬으로 격려합니다.
4-4. 솔직하라 : 성공하는 리더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즉 실수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자기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감수합니다.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솔직한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4-5. 시간을 투자하라 : 지나가는 길에 잠깐 나누는 짧은 말이 아니라 계획을 세워 시간을 투자해야 사람을 양육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성공 요소 중의 하나가 철저한 시간관리인데, 예비 리더에게 시간을 들이는 것은 투자입니다.
4-6. 사람을 믿으라 :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 줄 때 능력을 발휘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리더가 기대한 만큼 성장합니다. 리더와 함께 일하도록 하려면 먼저 그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믿어주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4-7. 격려하라 :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성장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격려를 통해 성장합니다. 격려는 ‘영혼의 산소’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할 때 실수하고 실망할 때가 많으나, 이럴때일수록 격려하면 새로운 리더가 지닌 잠재력이 개발될 것입니다. 칭찬할 때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칭찬합니다.
4-8. 일관성을 보여 주라 : 언행 일치의 일관성을 보여 주면, 리더를 신뢰하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런 상황에서 우리 리더는 어떻게 조치를 취할까?”라는 질문에 팀원들은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리더가 그들을 돕고 격려해 줄 것을 알기에 자신감을 갖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팀원들은 아주 오랫동안 도와 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격려하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4-9. 희망을 크게 가지라 : 리더는 희망을 나누어 줍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합니다. 대화재로 가게가 불탔으나, “저의 아내와 아이들, 희망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에 탔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정상 영업합니다.”
4-10. 일에 가치를 부여하라 : 모든 사람은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리더는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해야 하고, 사람들을 가치 있는 일에 동참하도록 권할 수 있습니다. 가치 있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안락하게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리더는 보람 있는 인생을 살기 원하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습니다. 질문해 보십시오. “만일 내게 이 있다면, 나는 을 할 것이다” 이 질문은 “만일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다면 즉 무제한의 시간, 무제한의 돈, 무제한의 정보, 무제한의 직원 등을 다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당신의 꿈입니다.
꿈을 개인적으로 이룰 수 있고, 측정할 수 있고, 눈에 보이고, 발전해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팀원들에게 큰 그림을 보게 하고, 큰 그림을 따라 그들이 어떤 공험들을 하고 있는지 알려 줄 때 삶의 의미가 부여됩니다.
4-11. 안정감을 주라 : 리더는 팀원들이 성장하고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도록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예비 리더들은 자신 있게 큰 일에 도전하고, 탁월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새로운 일을 개척하며, 성공하게 됩니다.
4-12. 일한 만큼 보상하라 : 사람들은 기대하는 수준만큼 성장하며, 보상을 받은 만큼 일합니다. 금전적인 보상 뿐만 아니라 리더의 인정에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정을 받게 되면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합니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을 인정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에게 보상해 주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4-13. 후원 조직을 만들라 : 예비 리더들에게는 이와 같은 후원을 할 수 있습니다. 1) 심정적 후원 -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십시오. 심정적 후원은 많은 돈이 들지 않지만 그 결과는 실로 놀랍습니다. 2) 기술 훈련 3) 금전적 지원 - 인재에게 돈을 투자하는 것이 최고의 투자 효과를 냅니다. 4) 장비 지원 - 일에 필요한 적절한 장비를 지원하면 직원들의 능률과 사기, 작업 시간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5) 인력 지원 -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인력을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일을 잘 해내고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여기에도 ‘80/20 원리’가 적용됩니다. 상위 20%의 사람에게 80%의 지원을 해 주면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생산성도 향상됩니다. 후원 체계를 세워 이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4-14. 예비 리더의 여정을 살피고, 그에 맞게 개발하라 : “이 개는 싸움은 잘하지. 그런데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게 문제란 말이야!” 리더는 상대를 잘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식만 가르치지 말고 삶 자체를 훈련시켜라” 예비 리더를 후원할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을 고르라 2) 당신이 정말 신뢰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고르라 3)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결정하라 4) 그들의 발전을 계속 평가 분석하라 5) 당신이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쏟으라
김남준, 『개념없음』,
제2장 진취적 태도, 사랑의 열매 / 막2,1-4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함께 일하면 매우 힘듭니다. 이 세상에는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일방적으로 판단내리기 힘든 경우가 수없이 많으며,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좋게 해석할 수도 있고, 나쁘게 평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 많이 벌어집니다.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
네 친구들은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고치기 위해 지붕을 뚫고 내려서 예수님께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 지붕이 파손되고 예수님께 무례한 이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은 그 친구들에게서 아픈 친구를 향한 깊은 애정과 진취적인 기상, 창의적인 열정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라면 반드시 내 친구를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읽어내셨습니다. 자기 깨어짐의 태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살아가는 삶을 비관적인 태도의 인생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기쁨은 진정한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경험합니다.
진취적인 사람은 해석도 다릅니다
회사든 교회든, 크고 작은 모든 공동체는 목적을 가지고 이루기 위해 달려갑니다. 공동체를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도 필요하지만, 입체적이고 보수적이어서 예상되는 어려움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도록 자극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축구경기에서 공격수도 필요하고 수비수도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염려로 가득차서,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작도 못하는 사람은 공동체는 물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이바지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 미지와 두려움, 의외의 난관들과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의지한다면 예상되는 실패와 난관들은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자기를 의지하는 교만을 버리는 기회가 됩니다. 에디슨은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한 90번의 실패를 적합하지 않은 재료를 찾는 90번의 성공으로 해석합니다.
공동체의 발목을 잡는 사람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진취적인 기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시도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은 아무 의견도 내놓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쉽게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서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비관적이기만 한 후자의 사람들은 공동체의 진취적인 자세와 사기까지도 꺾어버립니다. 자동차의 브레이크나 배의 스크루를 역회전 하는 기능이 있는 것과 같이 부정직인 사람들의 의견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대안도 없이 부정적인 발언만 계속하는 것은 공동체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두려움 속에서 불안하게 하며 결국에는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그리고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게 됩니다.
진취적인 사람과 쉽게 뒤로 물러서는 사람
성실하고 유능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움츠러들고 작은 위험에도 쉽게 물러서며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좋게 평가받지 못하며 동료들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취적인 사람들은 ‘할 수 있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반면, 자신의 태만과 무관심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태만이 교회의 예산을 아끼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인 양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장은 자신을 괴롭히는 과업이 없어서 편안할지 모르지만, 한 목표를 향하는 공동체에서 한가로움은 소외감으로 마음을 찌르는 화살이 됩니다.
일과 일하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고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그 이상의 위로입니다. 일은 반죽과 같아서 우리의 헌신하기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반죽이 되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의해 빚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에서 늘 뒤처지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점심시간에 신우회 예배를 드리는데,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이들이 식사를 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목표를 향하여 진취적인 기상과 의지를 가진 구성원들이 인정을 받습니다. 직장에서 술을 먹지 않아서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이며 긍정적인 자세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자세 때문에 도태됩니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자세가 바로 자신이 신중하고 경건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태도와 경건한 신중함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신앙의 갈등으로 직장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그 회사가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싸워 이기고 그릇된 것을 고치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기 때문에 뭔가 다르다는 진취적인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청교도는 좋지만 청교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싫은 이유
청교도가 살던 16세기의 유럽은 누구나 예수를 믿고 있던 시대이지만, 영국 국교회와 가톨릭으로부터 심한 핍박 상황에서 누가 올바르게 믿는가가 주 관심이었습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온 세상이 기독교를 믿는 사회가 아닙니다. 종교개혁 시대나 청교도 시대가 아니라 주후 1세기 사도들이 활동하던 초대 교회 시대의 문맥입니다. 청교도 시대이건 초대교회 시대이건 자기 시대를 붙들고 씨름하였고 우리에게는 지금 우리의 시대가 있습니다. 제자 훈련이나 찬양 집회나 부흥회나 문화사역이나 그 시대를 분석하며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성경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자세가 더 좋은 자세입니다.
낙관적 태도의 유익
어떤 일이든 양면성이 있는데, 부정적인 사람은 안 되는 이유, 나쁜 점에 집착하는데 진취적인 사람은 매사에 좋은 점을 먼저 주목합니다. 죄인인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길 때, 제자들의 항의는 대단히 합리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제자들의 생각 저변에는 여인의 행동을 막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신 예수님의 처신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모은 돈으로 준비한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기 위해 바친 여인과 그 여인의 눈물겨운 섬김을 받으며 앞으로 닥쳐 올 수난을 고요히 준비하시는 예수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면입니다. 진취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낙관을 발견하며, 부정적인 사람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찾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합니다.
열정과 애정의 열매, 진취와 창조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뚫어 병자를 달아 내린 것은 중풍병자를 낫게 해야 한다는 강한 목표의식이 있었고, 그 열망은 창조적인 발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열망은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을 비난했던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향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향유가 쓸데없이 낭비되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여인보다 부족했습니다. 진취적인 태도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천재로 오해하고 연애인 시키겠다고 오해하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진취적인 사람이 되라
삶을 사랑하면 진취적인 태도를 갖습니다. 부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일에 애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능하고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능하고 재능 있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내는 것은 진취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애정은 진취적인 태도를 낳고, 진취적인 태도는 창조적인 발상을 끌어냅니다. 진취적인 사람은 날로 유능해지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됩니다. 역사는 진취적인 사람에 의해 진행되나 부정적이고 저항적인 사람은 주류에 들지 못합니다. 진취적인 사람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동안, 부정적인 사람들은 함께 모여 뒤에서 당을 짓고 비판만 할 뿐입니다.
제3장 사과, 관계의 지혜 / 잠15,1
신학교 교수 시절, 연구실의 옆 방 교수님이 하루 종일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계셨습니다. 그 소음 때문에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참다못해 조교에게 옆방에 가서 양해를 구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분쟁이 되었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겠다고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기도를 시작했는데, 일단 사과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교수님을 찾아가 사과를 했더니 그분의 얼굴도 확 펴지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갈등은 보다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차 시비, 쓰레기 무단 투기, 식당 사이의 호객 경쟁 등 별 것 아닌 일에서 시작된 갈등이 살인까지 이어집니다. “미안합니다”, 이 한마디의 부재가 끔찍한 결과를 만듭니다.
상황을 호전시키는 사과의 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일들을 떠올리는 것에는 익숙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들을 돌아보는 데는 서툽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괴롭힌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많이 괴롭혔는데도 말입니다. 상대방이 매우 화가 나서 따지고 있다면, 그 때 필요한 것은 유순한 대답입니다. 덩달아 과격하게 대응하면 커다란 다툼이 일어납니다. 진실한 한 마디의 사과는 상황을 호전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사과를 망설이는 이유
첫째는 자존심 때문인데, 올바른 자존심이 아닙니다. 정말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사과해야 할 상황을 대충 모면하지 않습니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진짜 자존심입니다.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독일 정부 지도자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피해자들과 피해 나라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잘못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사과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둘째로, 자기가 잘못한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성찰력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며, 성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사색이 필요합니다. 이 사색은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감시하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것들에도 생각을 집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칠 수 없을 때 제일 좋은 교정자는 부모입니다. 그 다음은 친구, 선생님, 배우자, 교회입니다.
닉슨의 교훈
1970년대 초반까지도 닉슨은 뛰어난 업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었지만, ‘최악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중국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한 대통력’으로 기억합니다. 분명한 것은 닉슨의 불명예스러운 사임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그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계속되는 거짓말이 결국에는 탄핵까지 이르게 됩니다.
실수 자체보다 실수 이후가 중요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과해야 할 상황에서 사과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망치는 행위입니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당신을 존중하지도 않습니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사과란 굴욕과 패배가 아니라 실수한 사람의 자기 존중이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실수 이후의 태도입니다. 사과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크고 중요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면 왠지 상대방이 자신을 깔보고 무시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도 좋습니다. ‘이 사람은 나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구나. 나도 이 사람을 믿어 주고 싶다. 이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메시지입니다.
용서가 어렵고 사과가 힘들다면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 보낸 서신서에서 서로 용서할 것을 강하게 권면합니다(엡4,32;골3,13). 사과 없이도 용서해 주는 것이 사랑이지만 이런 완전한 용서와 사랑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마음 안에 있는 자비와 사랑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사과하는 것이 힘들 때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사과는 너무나 쉬운 삶의 기술이 될 것입니다.
사과, 관계의 열쇠
사과는 닫힌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잘잘못이 누구에게 더 많은지, 누가 먼저 원인을 제공했는지 등은 따지지 않아도 나중에 다 알게 됩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가슴에 묻어 두고, 우선 진심으로 사과를 하십시오. 관계가 회복되면 갈등을 일으킨 문제 상황도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그만 외롭게 남겨집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변명하여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도 돌아보아 주지 않는 외로움뿐입니다.
사과의 기쁨을 배우라
사과를 받으면 기쁘고, 더 미안해져서 자신도 사과하게 됩니다. 이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과를 해 본 사람만이 사과의 기쁨을 압니다. 새가 추를 달고는 멀리 날 수 없듯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는 성도의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과는 한 사람의 인격의 깊이를 보여주는 행동이며, 보다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지혜입니다.
제5장 약점을 들춤, 관계의 위기 / 잠언17,9
‘역린지화(逆鱗之禍)’는 ‘용이란 동물은 본성이 착해 잘 길들이기만 하면 그 등을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하지만, 목 부근의 거꾸로 자란 한 자 길이의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한비’라는 유세객은 떠돌아다니며 군주를 만나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소개하고 그 뜻을 펼칠 자리를 얻고자 했습니다. 때때로 군주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벼슬은커녕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용에게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이 있듯이 군주나 사람에게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 즉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역린과 순린
누구나 역린이 있는데,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살아가다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스케이트가 두 컬레 닳도록 연습을 했는데도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자, 그것이 역린이 되고 말았습니다. 키가 작은 것, 눈이 작은 것, 혼기가 지났는데도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 공부를 많이 못한 것, 노래를 못하는 것, 모든 것이 누군가의 역린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역린뿐만 아니라 순린도 있는데, 사람들은 순린보다는 역린을 건드리고 싶어합니다. 부정적인 것에 더 예민한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점의 정보는 6개월 동안 6명에게 전달되지만, 맛없는 음식점은 같은 기간에 26명에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장점보다는 단점을 말하기 좋아합니다. 특별히 누군가의 역린을 화제로 올리며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은 농담이라고 던진 말인데 듣는 사람에게는 비수로 박힙니다. 사람에게 점수를 따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은 것은 한 순간입니다. 호감 되기는 어렵지만, 비호감이 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호감을 사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장점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자기에 관해서는 약점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마음의 기울기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두 가지 잣대가 작용하는데, 지성의 작용인 인식과 정서의 작용인 마음의 기울기입니다. 마음의 기울기란 마음이 좋아하는 감정으로 치우치는가, 싫어하는 감정으로 치우치는가를 의미하는데, 객관적으로 인식된 정보는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됩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좋게 평가할 수도 있고, 나쁘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이 많은 사람을 발랄하다고 평가하게도 되고, 수다스럽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는데,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누구인가?’ 보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역린을 감싸줄 때 호감을 사게 됩니다. 오기 장군은 다리에 생긴 조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을 하는데, 오기 장군이 그의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해 주어서 전사할 때까지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오기 장군은 76번의 싸움에서 12번 비기고 64번 승리를 거두는 놀라운 전적을 남겼습니다. 뛰어난 전략과 전술과 함께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부하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대화법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을 유난히 잘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여러분이 공격 대상이 되면 어떨까요? 그때에도 그 사람의 말이 재기발랄한 농담으로 여겨질까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한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도 있고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의 위력과 약점을 건드리면 반발하는 인간의 성향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사울을 부르실 때 그를 무너지게 한 것은 예수님의 질책과 호통이 아니었습니다.(행9,1-5) 요한복음21장에서 낙심한 베드로를 다시 세우실 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잘못을 들추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잘못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지적하며 힐난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서 그들은 무너지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고,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사실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 아름다운 피조세계 전체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담을 부르시는데, “네가 어디 있는냐”,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십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
누군가에게 어떤 콤플렉스가 있다고 할 때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을 건드린다고 우리에게 특별한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남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짓’입니다. 상대방에게만 나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더 나쁜 행동입니다. 물론 적절한 지적과 충고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스스로 감춰 두려 한 것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을 감싸 주고 감추어 주면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지나간 죄를 지적하심으로 그들을 불러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회개하게 하셨습니다.(마9,10-13;눅19,1-10)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에는 그 부정한 여인의 역린을 건드리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공개하고 화재를 삼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고자 그러신 것이 아니라, 역린을 건드림으로 그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더 많은 경우에 허물을 덮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으심으로 당신의 거룩한 인격과 정직한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도 지키지 않는 율법을 냉혹하게 가르침으로 백성들의 마음에서 멀어졌지만,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친구가 되어 주셔서 율법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율법의 정신으로 돌아가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덮어라
버릇이 지속되면 인격이 됩니다. ‘남의 말’을 근절하십시오. 자신도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가 있뜻이 남들도 그렇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늘 기억합시다. 남의 약점을 화제 거리로 삼아 깔깔 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역림을 건드려 상처 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하십시오. “당신은 평생을 그것을 끌어안고 아파하는데, 나는 장난삼아 그것을 건드리며 즐거워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9장 배우려는 사람 / 잠언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성장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뉴먼, John Henry Newman)
인간은 발전 가능한 존재
맡겨진 자리에 걸맞는 역량을 보유한 잘 준비된 사람은 본인은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도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에 맞는 일뿐만 아니라 능력에 넘치는 일도 맡기셔서 그 일과 함께 발전해 나가도록 하십니다. 능력에 넘치는 일을 맡아 하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힘겨운 작업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자가갛게 하시기 위함이며, 하나님이 맡긴 일들을 얕잡아 볼 수 없도록 만드시기 위한 배려입니다. 또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 이미 갖추어진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워 나가면서 성장해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교제가 학습 촉진의 중요한 변수가 아니며, 학습자의 배우려는 마음이 학습의 성과를 좌우합니다. 책도 거의 없고 컴퓨터도 없어 정보 습득도 쉽지 않았으며,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아 경험의 폭도 얕았을 옛 시절의 선인들이 높은 학문적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발전 가능한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배우려는 사람이 사랑을 얻는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숙해 가기에 사람들이 배우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화초를 가꾸는 것이 수고로운 일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힘들 줄 모르고 정성스럽게 보살핍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조금씩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성장하며 발전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저자에게 영향을 준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모두 저자가 좋아하는 과목의 선생님이었습니다. 통금시간이 있던 시절에 밤10시까지 영어선생님 집 앞에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 위해 기다려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들이 저자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저자에게 열심히 배우려는 열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무엇을 척척 해내는 사람보다도 배우려는 사람이 사랑을 받습니다. 직장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사람은 별로 실력도 없으면서 자기 방식만 고집하며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 눈치도 안 봐. 나는 누구에게 굽히는 거 싫어. 나도 배울 만큼 배웠거든. 나도 알 만큼 알거든’ 하는 태도로 사는 사람을 기개 있게 봐 주는 회사는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자기 안에서가 아니라 자기 밖에서 찾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발전, 삶에 대한 예의
우리의 삶의 태도는 진리가 아닙니다. 융통성 있게 상황에 맞는 처신을 할 줄도 알아야 하고,잘못된 부분은 고쳐 나가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는 타고난 성격이 그래’ 하고 옳지 못한 태도를 올곧게 견지해 나갑니다. 이것은 쓸데 없는 오기 아니면 개선의 노력을 회피하고 싶은 게으름입니다. 이렇게 살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 부서를 이동할 때나 전근갈 때 송별회 자리에 메어질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람은 끊임없이 삶의 태도를 고쳐 가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쌓아 간 사람입니다. 아무도 처음부터 배려나 용납 등의 태도를 갖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지지자를 얻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우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빚어 낸 결과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소중히 여김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도, 삶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어,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일쑤라면, 은혜는 그 서러움을 덮는데 다 소진됩니다. 한탄만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상처 받고 하나님의 위로로 다시 일어나는 일만 반복하며 살다가 인생을 다 보내고 맙니다. 그래서 날마다 발전하려는 태도, 고치고 더 알아가는 삶, 배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사랑을 버는 사람
사소한 태도 하나, 삶의 태도가 매를 벌기도 하고, 사랑을 벌기도 합니다. 스스로 사랑을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8개월 정도 저자에게 공부를 시켜 준 자매를 한참 후에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자신이 누군지 기억나도록 설명해 주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부산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 자매의 남편이라고 하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결혼식 때의 사진과 감사 메모가 담긴 카드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찾아올 수 없자, 남편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찾아가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무심코 한 이야기도 흘려듣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대견스러웠고,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에도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태도가 사랑스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운 태도로 좋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독자들이 읽기 어려운 책들이 있는데, 이런 책은 읽은 후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탐구하게 만드는 독서이기 때문에 그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보고는 도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립니다.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 읽으라고 그 책을 쓴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책을 읽다가 잘 모르는 내용이 나왔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또 다른 태도로 반응하여 관계를 좋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려운 부분을 줄을 쳐 가져와 저자에게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성의 스트레칭
어려운 책을 읽었다기에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너무 게을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평소 꾸준히 지성의 스트레칭을 했다면 좀더 잘 이해가 되었을텐데, 갑자기 어려운 책을 이해하려니 머리에서 쥐가 나더라구요.” 우리의 지성과 삶의 태도도 끊임없는 스트레칭으로 연마해야 함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끝없는 배움의 길
“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이 찬송이 아름다운 것은, 끊임없이 온전해지고자 몸부림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 앞에 모자란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 사람들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끝없는 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 자체는 달갑지 않습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조금씩 발전해 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쁨을 누립니다. 배우려는 사람의 삶은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의 삶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느 것은 한 번 근사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열심히 꾸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꿈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 능력보다 큰일에 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 한, 항상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우리의 힘에 부칠 것입니다. “주님, 제게 맞는 옷이 아닙니다”라고 벗어 버린다면, 우리의 존재도 하나님의 역사도 항상 그 자리일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능력을 구하고, 그 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고치고 배우십시오. 어떤 순간에서도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되십시오. 미련한 자는 자기의 행위가 바르다고 생각하고 아무 것도 고치려 하지 않고 어느 것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권고를 들으며 배워 나갑니다.
제10장 베풀려는 사람 / 잠언19,6
너그러움이 주는 기쁨
구원 외에는 어떤 것도 거저 받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무턱대고 공짜를 바라다 보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선물을 받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선물하기 위해 선물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많은 정성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이 선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안에 그 사람을 향한 너그러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나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너그러움보다 선물 자체에 주목합니다. 어린 마음에는 세뱃돈의 크기가 준 사람의 인격의 크기입니다. 그런데 철이 들면서 손에 쥐어 주는 돈 자체보다도 그것을 주는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과시하려는 태도로 지갑을 여는 사람이 주는 돈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풍족하지 않은 가운데 나누어 준 돈은 오래도록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돈의 액면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건네는 사람의 마음의 너그러움임을 철이 들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을 끄는 힘, 너그러움
어디를 가나 사람을 몰려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과 있어도 섬처럼 홀로 뚝 떨어져 외롭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교역자가 홀로 외롭게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지도자는 외롭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도들이 저를 좀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역을 하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러나 지도자의 외로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사역자이든, 장로이든, 권사이든 따르는 사람이 있는 지도자가 건강한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사안에 따라서 다른 견해, 다른 입장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도자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신앙과 호감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소통하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유익하고 즐거워서, 어찌하든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지도자가 바른 지도자입니다.
사람을 끄는 매력은 외모나 화술이 아니라 너그러움입니다. 너그러움은 받는 자의 편에서는 여유로움이지만, 주는 자의 편에서는 희생입니다. 가지고 있으면 혼자 쓸 수 있는 것이지만, 너그러우려면 다른 사람에게 내줘야 합니다. 단순히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의 편안함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관포지교의 교훈
‘관포지교’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를 말합니다. 친한 친구 사이인 포숙은 자본을 대고, 관중은 경영을 맡아 동업을 했는데, 관중이 이익금을 독차지 합니다. 포숙은 관중의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합니다. 관중은 3번 벼슬에 나갔다가 3번 다 쫓겨 나는데, 포숙은 무능 때문이 아니라 시운을 못 만난 것이라고 관중을 감싸줍니다. 관중은 전쟁터에서 3번 도망치는데, 포숙은 관중을 비겁하다 하지 않고 늙은 어머니 때문이라고 변호합니다. 후에 관중은 포숙의 천거로 다시 벼슬에 나가 명재상으로 명성을 얻는데, 관중은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포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
관중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태산은 아무리 작은 돌이나 흙이라도 받아들임으로써 저처럼 높게 된다. 큰 인물이 되려면 도량을 넓게 하여 많은 인물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책임과 권한이 많아질수록 너그러워야 합니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이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비결입니다.
사고의 너그러움
진리에는 선명한 견해를 가져야 하나, 아디아포라(adiapora)의 문제, 즉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숙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모호한 것이 아니라 아량 있는 것입니다. 인쇄술과 미디어 산업의 발전, 인터넷의 보급으로 많은 정보와 다양한 의견에 노출되어 있지만,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는 오히려 더 많이 인색해져 있습니다. 지식의 크기는 커졌을지 몰라도 그 지식을 수용하는 사고의 깊이와 너그러움은 얄팍하기 그리 없습니다.
단순히 잘해 준다고 해서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견해에 맞장구 쳐준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태도의 너그러움, 넓은 아량의 성품을 소유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베풀고 희생할 뿐 아니라 남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꾸준히 키워 간 사람만이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태양을 직접 볼 수 없지만 수많은 효과로 태양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행하는 작은 행동 하나 하나를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 줍니다. 친구가 없고 외로운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돌린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먼저 편협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자기를 따돌리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보여주는 맛보기이며 증인인데,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푸는 삶, 너그러움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너그러움의 원천, 박애적 사랑
너그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목적적인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박애적 사랑은 그 대상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인데, 너그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은 바로 박애적 사랑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은혜를 구한다면, 끊임없이 용납하고, 기다려 주고, 믿어 주고, 이해해 주고, 돌보아 주십시오. 하나님이 선하고 좋은 것을 주셔도 우리 자신이 그것을 누리는 종착역이 되면 우리는 그것과 함께 부패하고 맙니다. 하지만 은혜의 통로가 되면 더 큰 은혜와 축복으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눅6,38)
인생의 참 기쁨
사람은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확인할 때 만족과 기쁨을 누립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진심으로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덕을 쌓은 사람만이 우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문제들에 대해서는 자기의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 아닌데도 공연히 자기 나름의 생각을 밝혀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의 미움을 사거나 배척을 받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굳이 언급하여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반감을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너그러운 태도의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어합니다.
선물의 효과
선물은 말 그대로 선물이지 뇌물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이해관계가 맞아서, 어떤 댓가나 보상을 기대하며 주는 것은 뇌물입니다. 선물은 그가 좋고 사랑스러워서, 또는 너무 고마워서, 그가 기뻐하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주는 것입니다. 뇌물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이해관계만 맞으면 할 수 있지만, 선물은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주셨듯이, 우리의 선물도 사랑을 기초로 합니다. 선물이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에 담긴 사랑이 친구가 되게 합니다.
도르가처럼
사도행전9장에 나오는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에 앞장서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를 청해 살려달라고 하는데, 수많은 과부들이 나아와 도르가가 만들어 주었던 겉옷과 속옷들을 보여주며 슬피 웁니다. 그녀는 욥바의 헐벗은 사람들 모두를 긍휼히 여기며 은혜를 베풀었고, 그런 착하고 너그러운 삶이 욥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있다는 표징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베푸는 너그러운 삶입니다. |작성자 forwill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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