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과 신학 1

초대교회의 성서해석 요약

by 은총가득 2021. 1. 14.

초대교회의 성서해석 요약

 

성서을 읽다보면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생긴다. 시대와 읽는 대상이 바뀐 상태에서 그것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독자가 바뀔때마다 성서는 재해석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져 왔다. 이렇게 재해석되는 이유는 성서의 문구가 기록당시의 상황과 정황에 맞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언어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바 재해석해서 쉽게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성서해석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성서해석에 있어서 초대교회는 과연 성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1.예수의 성서해석

기독교 성서해석은 예수와 함께 시작한다. 예수의 메시지의 대부분이 구약신학을 토대로 구성되었음을 보면 알수 있다. 정통 유대교도 성서의 모든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를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의문을 달면 이스라엘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영원한 결혼의 띠로 결합하실 때 주신 말씀과 모세가 백성의 완고한 마음에 타협하여 이혼을 허락한(마10:2이하) 말과의 사이에 뚜렷한 격차가 있음을 아시었다. 이 견해는 정통적인 유대교가 용인할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한 유대인이며 본래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사명이 저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표현되기는 했어도 유대교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더욱 확실한 계시의 말씀과 그렇지 않은 말씀사이를 구별해 놓으시기를 추호도 주저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성서해석 이론의 기독교적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차이점이 있지만 또한 유사성도 있다. 당시 유대교도처럼 예수님도 성서는 권위있는 것,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것으로 아시었다. 그래서 성서를 인용하여 “... 기록된 바...”(막11:17;마4:4;눅4:4)라고 하셨고 반문하여 “너희는 ... 한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막2:25)고 하셨다. 또한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막12:36)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임을 강조하실수 있었다.

 

예수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처럼 5경의 저자는 모세, 시편의 저자는 다윗으로 보았다. 예수는 구약시대 사건들은 모두다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보았다.

그러면서 차이점은 다윗이 굶었을 때에 제단에 놓인 떡을 먹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설정되었다(막2:25)는 주장을 통해서 제의는 사람의 필요에 순종해야할 것을 이야기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종교적 내용에 호소함으로 단순한 자의적 율법적 형식에 반대하고 누적된 전통의 먼지를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예수의 성서관은 가치가 적은 제의적 규정보다 종교적 생명이 약동하는 부분의 중요성에 강조를 두었던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예수 자신의 성경해석원리였던 것이다. 예수는 구약전체의 핵심사상을 ‘쉐마 이스라엘’(막12:29)이라는 신명기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거기다 하나의 ‘사랑의 율법’을 묶어 놓았는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는 레위기 성결법전을 인용해서 덧붙여놓았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라고 이야기하셨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예수의 독창성이다. 율법적인 것에 예수의 태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율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깊이를 더하셨고 보강하였고 율법을 최고의 수준으로 높여놓았다. 예를 들면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의 형식이 바로 예수의 독자적인 권위로 가르치신 표현으로 보면 된다.

예수는 성서해석에 있어서 구약성서의 예언들에 대해서 유대교를 초월해서 자신의 활동과 자신을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셨다. 마11:5과 눅 7:22에서는 이사야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셨다는 구절과 막 14:24절에서는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로서 제자들에게 새 계약을 확언시키셨다.

그러나 예수의 성서해석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분히 유대적이었다.(마5:33; 막12:26) 예수는 하가다라고 불리는 석의법에 의해 출 3:6의 내용을 이야기하시면서 막12:26에서 그 예로 해석한 것을 볼수 있다.

그래서 예수의 성서해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형식이나 내용은 철저하게 유대적이지만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으로 해석하셨다는 것이다.

 

2. 바울의 성서해석

바울의 사상은 예수의 가르침과 흡사한데 한마디로 요약하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기독교적 이해를 예수로부터 배웠다. 구약성서는 바울과 예수에게 있어서 희망의 책이다. 그러나 예수와 바울의 해석사상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단 예수는 신학자가 아니었지만 바울은 신학자였다. 그것도 예루살렘 가말리엘 문하에서 훈련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해석방법을 알레고리적으로 말할수도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고린도 전서 9:9이하에 보면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물론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바울은 다분히 유대교적 범주안에서 표현을 행하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그러나 그 알레고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는 구약성서 역사의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다분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는 약속된 메시야이다. 성서 전체가 예수에 관한 말씀으로 충만해 있다.고 보았다. 바울의 그리스도를 단순하게 한 개인으로 고려하지는 않는 듯 하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의인이 한 몸을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홀로 그리스도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온다고 본다. 이런 해석이 바로 랍비적이며 자의적이며 축어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바울의 성경해석을 본다면 내용은 그리스도적이며 형식은 랍비적인 해석이다. 그러면서 약간은 알레고리적인 논리가 들어가 있어서 모든 원뜻을 그리스도와 관련시킴으로 최종의 해결을 보기 원했다. 그래서 그가 문장의 원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도 보게 된다.(골1:15)

 

3. 사도들의 성서해석(주후 약 30-100년)

유대인의 성서 해석에서 초기 그리스도인의 해석으로 바뀌는 전환기의 특징이 연속성과 단절성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인 최초의 그리스도인 해석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야로 간주했으며 예수께서 남겨놓으신 작은 믿음의 공동체를 유대교의 옛 소망들의 참된 성취로 생각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다른 유대인들의 종교그룹과 동일한 원리에 따라서 해석했다.

 

사도들도 예수를 새로운 모세로 경배했고, 예수의 권위를 모세의 율법의 권위보다 월등하게 존경했다. 이것이 유대적 뿌리로부터 결정적으로 분리된 계기이다. 즉 예수의 메시야 되심과 그의 오심을 통해 시작된 새 시대란 점에 비추어서 성서를 해석했다. 실제로 구약예언에 대한 예수의 문자적 성취가 사도들의 근본해석 원리였다. 사도들은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구약을 해석할때에 문자적인데 국한시키지 않고 3가지의 방법에 따라서 해석했다.

첫 번째로 모형론적 해석방법이다. 이것은 보다 후대 역사의 하나님의 행위를 예표하고 있는 영감된 모형들을 찾아내려는 해석으로 이 모형들은 구약의 사건과 대상들 그리고 사상 속에 나타나 있다고 믿는 해석이다. 이 해석의 요점은 기독교를 하나님에 대한 구약 경배의 진정한 절정으로 보여주려는 데 있다.

 

두 번째로 문자적-문맥적 해석방법이다. 이 해석방법은 구약성경을 그들의 정상적인 의미에 따라서 해석한다. 여기서 또다시 사도들은 예수의 본을 따랐다. 예수는 사탄이 영리하게 그러나 왜곡되게 구약 본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올바로 구약을 인용함으로써(시91:11-12에 대한 대답으로 신 6:16을 인용하심; 참고 마 4:4,7) 물리치셨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대한 자신들의 교훈을 뒷받침하기위해서 문자적으로 해석된 구약 본문을 인용했다. 로마서 12장에서 악을 행한 자들에 대해서 친히 복수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신명기 32:35(보스는 하나님 것이다)과 잠언 25:21-22(내 원수가 배고프면 먹이라)을 이들의 자연스런 의미에 따라서 인용하고 있다.

 

세 번째로 원리/적용방법이다. 구약본문을 문자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기초원리를 원래의 문맥 속의 상황과는 다르나 비교될 만한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구약본문을 해석했다.

사도들의 이런 해석은 당시 유대인들과의 해석과 비교됨과 동시에 차이를 두고 있다. 사도들은 주로 모형론을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4. 제 2세기의 성서해석

안디옥 감독인 이그나티우스는 필라델피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구약성서에 철저한 나머지 ‘만일 내가 헌장에서 찾을수 없다면 복음서도 믿지 않겠다’고 까지 말하는 신자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반대자들은 구약성서의 기독론적 해석의 문제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 그러나 이그나시우스 자신의 견해는 명료했는데 그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좇아 살았다(마그네시아8:2)라고 말한다.

 

바나바 서신을 보면 구약성서는 복음서의 관점에서 이해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성서해석방법은 완고한 예형론적 해석의 특징이 있다. 그러다보니 바나바의 예형론적 해석은 구약의 역사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기독교가 이해하는 구약역사의 의미까지도 부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빈디쉬는 바나바를 2세기의 이단적 노스틱주의에 가까운 감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나바는 구약성서없이는 신약성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폰도의 마르키온은 구약성서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바울의 사상을 이해하고 숭배했다. 구약성서에 대한 마르키온의 태도를 보면 그는 철저한 이원론에 근거했음을 본다. 하나님은 두분이라는 견해고 바울의 사상을 재해석하려고 했다. 구약성서는 기독교 문서가 될수 없다고 거절할 뿐만 아니라 조잡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구약의 자의적 해석을 고집했다. 마르키온의 문제는 기독교의 메시지와 이스라엘이 지닌 같은 메시지와의 사이에 있는 일관된 타당한 의미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순교자 저스틴은 마르키온을 반박한 최초의 저술가로서 기독교 교회의 변증적 운동의 지도자였다. 자기 이전의 통찰에 의존하면서 바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역사적인 구약성서 해석을 시작하였다. 구약성서에 대해서 ‘트리포와의 대화’라는 책에 나와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관계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초기의 계약 자체가 보다 우월한 새 계약으로 대치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많은 성서구절을 예형론적으로 이해한 대로 예증을 들면서 에수를 가디리던 메시야임을 증명한다. 저스틴은 구약성서를 기독교 교회를 위해 보존했다는 것이다.

 

발렌티누스주의자 프톨레마이우스는 구약성서를 체계적으로 분석에서 ‘플로라에게 보낸 편지’를 썼다. 그는 ‘모세 오경에 수록된 율법 전체는 한 분이 준 것이 아니며 그 중의 어떤 교훈은 사람이 준 것으로서 구주의 말씀은 율법을 세부분으로 나누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적 계승에서 진리를 받았다고 강조하며 예수가 구약성서에 이미 예형되어 있는 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해석한 요한복음의 서론에 보면 고도로 상상력을 구사하는 저술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리용의 이레니우스는 교회 밖의 세계에 대하여 구약과 신약이 다 함께 정연하게 해석되도록 그 관계를 논하는 이론을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전통의 중요성을 확신했고 자신의 영적 계보는 서머나의 폴리캅을 통해 사도요한으로 소급된다고 했다. 그는 ‘오류로 소위 지식이라 부르는 것을 발견하는 일과 폐기하는 일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주로 발렌티누스파의 사람들과 마르키온주의자들을 반대하여 무엇을 단순한 기독교라고 할수 있는가를 설명했다. 이레니우스는 신약성서를 기초로 하나님이 신구약 동시에 자신을 계시하심을 논증했다. 그 결과 구약의 율법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진실하며 그 시대에는 가치있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약은 예형으로 충만하다고 말한다. 이레니우스의 성서해석원리는 문장의 순서와 문맥에 따라 해석한다. 또한 뚜렷한 것들을 어둡고 애매하게 하는 해석을 버리고 사실 그대로 해석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레니우스를 1)정통적 교회의 성서해석의 시초 2)신구약성서의 관계를 분석한 인물로서 성서 역사를 진지하게 취급하며 율법의 영원한 가치를 역설한 최초의 신학자로 본다. 성서해석방법은 1)문제해결이 어려우면 하나님께 맡기라 2) 성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교회의 장로들과 같이 읽으라는 것이다.

 

 

5. 알렉산드리아, 안디옥학파의 성서해석(주후 약 150-400년)

초기 교부들이 사라지면서 기독교 교육의 두 센터가 교회의 성서해석을 주도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학파는 오랫동안 유대인들과 신플라톤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풍유적 방법론을 증진시키는 센터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기에 풍유적 해석방법을 가지고 비그리스도인 동료들 가운데서 자기들의 해석에 대한 신뢰성을 얻고자 했다.

이 해석방법론은 두 명의 대변인이 성경을 풍유적으로 읽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대변인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드로서 190년에서 203년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쳤다. 성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문자적인 이면에 숨겨진 혼 의미뿐만 아니라 몸의미를 갖고 있기에 중요한 것은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둘째 대변인은 클레멘트의 후계자인 오리겐(주후185-254년)이다. 인간이 몸, 혼 그리고 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삼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클레멘트의 혼을 혼과 영혼으로 구분하고 제 삼의 의미인 도덕적인 의미를 첨가해서 클레멘트의 논리를 확장시키고 있다. 문자적인 의미와 도덕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찾는데 성서해석자들은 치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이 다른 초대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반발심을 일으켜서 주후 4세기에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에 두 번째의 기독교 교리 문답학교를 세운다. 안디옥학파는 알레고리 대신에 성경에 대한 역사적-문법적 이해를 가르쳤다. 선생으로는 데오도르와 데오도레트가 있다. 안디옥 학파는 그들의 지적인 동료들-안디옥에 있는 유대 공동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데오도레트는 그의 스승인 몹스에스티아의 데오도르를 비판하기까지 했는데 이유가 그가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유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안디옥 학파는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열쇠는 데오리아(통찰력)라고 말한다. 이것은 본문의 문자적인 역사적 사실들과 이 사시들이 지시하고 있는 영적인 실체 모두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알레고리를 철저히 배격했으며 또한 교회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진 몇몇 해석들도 수용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풍유적인 방법론을 배격한다고 했지만 그 알레고리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간혹 풍유적 해석과 접경에 서있는 일종의 모형론을 사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서 성경의 역사적인 의미를 중시하는 해석을 진지하게 다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대교회의 성서해석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느끼는 것은 성서해석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드러내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구약성서에서도 찾기위해 알레고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모형론을 많이 등장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면서도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일단 차별성을 찾고자 구약을 통해서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 역할을 감당했듯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구원자임을 드러내는데 역점을 두고 성서해석을 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기본적인 바탕이 바로 유대교적 분위기에서 생성된 기독교이다보니 기독교 성서해석에서 예수를 빼버리면 다분히 90%는 다 유대적 바탕이 그대로 드러남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기독론이 성서해석을 구분하는 큰 차이점이 된다. 이제 성서해석을 할때에도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이 기독론에 입각한 해석을 했듯이 지금 나도 기독론적인 입장에서 설교를 해야할까하는 생각으로 마칠까 한다.

 

참고문헌

로버트 M. 그랜트. 성서해석의 역사, 이상훈 역, 서울: 대한 기독교 서회, 2007

William W. Klein, CRaig L. Blomberg, Robert L. Hubbard, Jr, 편. 성경해석학 총론. 유호영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7

작성자 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