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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초대교회의 성경해석연구

by 은총가득 2021. 1. 14.

초대교회의 성경해석연구- 오우성 교수

 

초대교회의 시기 문제 premitive chruch 라고 쓰기도 한다. 원시적인 교회라고 한다. 현재 이 교회의 시기를 정확하게 정한 학자들은 없고 대충 교회가 제도를 갖추기 이전의 형태를 초대교회라 한다.

 

하나의 제도가 되기위해서는 세가지 구성요소가 있어야 한다. 먼저 성직계급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경전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공동체를 결속해 가는 의식, 예식, 신조 등이 공동체 결속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사도신경, 주기도 세례식, 성만찬 등의 의식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온전하게 갖추어지기 이전의 공동체를 premitive chruch 라 한다.

신약성서중에 성직 계급을 규정하기위한 문서가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의 기록시기가 언제냐? 여기서 역사적으로 이견이 많다. 보통 교회에서 가르칠때에는 디모데 전후서는 바울이 썼다고 한다. 내용의 구분들을 보게 되면 바울이 디모데, 디도에게 썼다는 것은 확실하나 글로 남겨진 것은 바울 후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이야기하기도 한다. 바울이 목회서신으로 썼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바울의 사후에 썼거나 아니면 대필자가 썼거나 하는 논란이 있다.

 

오늘날 우리 기준으로 보면 바울의 것을 표절한다라고 말하지만 옛날에는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써오는 관습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바울이 정확한 모습으로 구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바울 당시의 그만큼 교회가 제도화 조직화 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한창 선교의 와중이기 때문에 지금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상당히 틀이 잡혀진 것이기 때문에 그 연대를 바울 후대로 잡는 것이다.

초대교회때 보면 1세기에서 교회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기원후 70년에 일어난, 66년에 시작해서 70년에 끝이 나는 유대 로마전쟁 1차전쟁이다. 교회 역사나 유대교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다. 66년 네로 왕 시대때 시작되어 하나의 폭동과 같이 시작된 것이 예루살렘에서 전훈 소동이 일어나면서 유대전역으로 퍼져나가서 나중에는 로마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란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63년경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아왔다. 63년이전에는 거의 3세기동안 헬라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이렇게 외세의 핍박을 받아온 유대인들이었다. 그 외세침략을 받아오면서 수차례 걸쳐서 독립을 쟁취하기를 원했다. 재미있는 것은 헬라제국때 마카베 전쟁이라는 전쟁을 일으켜서 잠시 승리를 한 후에 한 100년동안 독립을 유지했다. 결국 나중에는 로마 제국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서 함락되었다. 그 다음에 예수님 시대, 그 다음에 2-3세기로 이어진다. 계속 로마 지배하에 있게 된다. 이런 와중에 우리 민족도 일제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알겠지만 식민지가 된다는 것은 아이덴터티가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볼수 있다. 로마의 지배를 100년이상을 받아왔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메시야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등장하는 메시야가 가짜 메시야가 등장한다. 그가 유다라는 인물이다. 그가 로마의 전쟁을 주도한다. 그런데 기원후 70년까지 전쟁을 로마가 끈 이유가 로마가 정치적으로 엄청 혼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로마로서는 패배를 거듭하다가 결국 로마가 승리를 해 나가서 70년 5월경에 예루살렘이 계속 포위당하다가 결국 함락당하고 만다. 이 사건은 그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 결정적인 사건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던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때 파괴된 성전, 다시 지었으나 헤롯이 성전을 지었지만 다시 파괴되었다. 이후로는 성전이 세워지지 못한다.

 

그 이전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베드로라는 예수의 제자들은 제 삼시가 되면 기도하는 등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행동을 했다. 그런데 이 성전이 파괴 된 이후부터는 로마인들의 핍박이 심해지고 그 다음에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기독교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30-70년 기간이 초대교회라고 보면 된다. 그 이후부터는 제도적으로 교회가 성립되기 시작한다. 오늘 여기서 그 시기를 구별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교회 역사에서 초대교회하면 고 시기부터 6세기까지 잡기도 합니다. 7세기부터 중세로 잡는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가 근대로 잡는다.

동로마 제국은 계속 존속하게 된다. 동로마 제국이 약하되다가 나중에 멸망한다. 6세기는 서구 기독교인들에 의해 연구되었기 때문에 6세기까지 잡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해석상에 다루는 부분은 보통 4-5세기까지만 다룬다. 이것이 초대교회라는 기간에 해당된다.

 

초대교회성격 : 초대교인들이 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들을 보면 아마 교회의 발전, 기원은 사도행전에 나와 있다. 기독교인들이 초대교회 어떻게 교회를 형성하고 어떻게 그들의 신앙과 삶을 유지해 왔는가? 어려움은 무엇이었나가 궁금한 부분이다. 현재 우리가 사도행전이라는 신약 자료를 근거로 보면 바울이 어디에 도착하는 기간인가? 로마에 도착하는 기간이다. 그 시기를 보통 60년대 중반으로 본다.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기간을 63-64년으로 보면 현대 성서가 자료로서 초대교회의 모습들을 증거해 주는 것은 60년대 중반까지로 볼수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잘 나와 있다. 그 이후에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나? 학자들간의 이견은 있지만 바울 후기 서신들(디모데후서,디도서 포함)이 70-80년대 기록되었다고 본다. 사도행전 이후에 교회가 형성되어간 일정한 방향을 짐작할수 있다. 교회의 성직제도가 들어오면서 그 다음에 베드로 전후서에 보면 경전에 대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성경에 대한 문제, 성경이 어떤 것인가 야기되고 있다. 제도권으로서 종교권으로서 발생하는 과정에서 경전과 직제가 중요하고 교회의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잘 보아야 한다. 그래서 후기 서신을 보면 베드로후서, 디모데후서를 보면 경전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성경해석사에서 보면 중요한 것이 성경의 문제인데 그 부분은 교재 ‘신약 정경론’ 부분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초대교회에서 경전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것은 믿음의 정체성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때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있어야 했다. 경전이나 제도조직에서 초기 기독교가 어려웠던 부분들은 유대교와의 관계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어떻게 구분하느냐... 유대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학문적으로 발전해 오는가가 중요하다.

 

기독교 형성을 여러 관점에서 볼수 있다. 그러나 주로 성경중심으로 이 과목에서 배우고 있다. 켈 리가 지은 책을 보면 기독교인이라는 집단을 외부세계에서 봤을때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 기독교는 로마라는 제국속에서 조그마한 소집단에 불과했다. 그래서 큰 거대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바라봤느냐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내에서 다루니까? 기독교 관점속에서 다루니까? 기독교인들의 이미지는 성경관점으로만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기독교인이 되었기에 로마의 시민 입장에서 보는 거시적 관점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로마시민들이 어떻게 이해했는가하는것도 알아야 한다. 켈리는 로마 시민으로서 유대인들로 일상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기독교인들 중에서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는 유대교와의 분리이다. 로마인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구분이 없었다. 로마인은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증거가 로마의 역사가들 타키투스등에 의해서 기독교에 대한 자료가 짧게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 부분에서 보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집단으로 보고 있다.

 

유명한 성경사건과의 관련된 부분에서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때 브리스가 아길라 부부를 만났다.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 하면 로마에서 고린도로 왔다. 로마에서 추방을 당해서 이들이 왔다. 타키두스 기록을 보면 40년대 중반 즈음에 로마 자체내에 지금 우리가 미국에 가면 항상 거대한 제국속에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들이 자기네들끼리 뭉쳐서 살고 있듯이, 동일하게 로마에 유대인들이 뭉쳐서 살고 있다가 추방당한 것이다.

유대인들도 헬라사람, 로마사람 핍박으로 인해 자기나라에서 살지 못해서 계속해서 이방지역으로 이민을 갔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러지역속에서 각 나라에 섞여져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어느 지역으로 들어가더라도 유대인들 집단에 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우리 나라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보내야 한다. 미국으로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다.

 

유대인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다. 미국에 가면 유대인들은 회당중심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회위주로 뭉쳐져 있다. 특히 유대인들이 실력을 행사하는 곳이 뉴욕인데 갈등이 좀 있다.

당시에도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과 분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유대인들과 처음에는 같이 회당에 다니다가 기독교인들이 회당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한다.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한다. 2차 로마 전쟁이 일어나서 132년인데 완전히 박살나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된다. 어떤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면 사형감으로 되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기원후 70년 성전이 함락되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져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이 결과로 인해 스스로의 모습을 정리하게 되었다. 시련을 당하면 자기 점검하듯이 동일하게 유대인들 스스로 점검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점검하게 된 것이 자기들 사이에 자기들이 거짓 메시야로 정죄한 그들을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라고 해서 그들을 색출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아침, 점심, 저녁에 3번째 외우는 축도문이 있는데 이 속에 나사렛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찌어다라는 구절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구절을 암송할수 있겠는가? 여기서 살아남을수 없기 때문에 나가든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든지하는 위기에 처했었다.

유대인들은 자기가 믿은 종교를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회교인들을 보면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그 가문에서 이름을 파버린다. 죽었다고 생각한다. 극심한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아들 중 기독교인이 된 자에 대해서 장례식을 거행하기까지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도네시아 인 목사가 인도네시아인 선교를 한국에서 하면서 계대 일반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보니까 70-80명 모인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고국에 못돌아간다. 엄청난 시련을 당한다.

신약성경속에 기독교인으로 왔다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이 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이다. 유대교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려고 하는 자들에게 쓴 글이다.

유대교는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다. 그런 문제가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자기 점검을 유대교가 하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유대인 기독교인을 색출하는 점검을 70년대부터 시작했다.

 

두 번째 문제는 이때부터 경전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이 만들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여러 책을 신성한 책으로 인정해 왔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외경, 위경, 소선지서등이 유대인들 사이에 읽히고 있었다. 외경은 공동번역에 있는 것이다. 재미가 있다. 이런 책을 비롯한 여러 책들이 읽히고 있다. 그런데 70년대 대 심판을 겪고 나서 경전을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리작업이 유대인들이 먼저 시작했다. 39권에 대해서 외경 정경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70-80년대 이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유대 지도부들이(산헤드린 공회) 얌니아라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어서 여기서 정경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기서 정경, 외경, 위경을 정리하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동기가 된 사건이 되었다. 우리도 이런 경전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경전작업을 하게 된다. 이 기간은 그런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 결국 동방교회, 시리아 교회, 서방교회등에서 이야기되었다. 서방교회에서 4세기말에 현재 순서로 끝이 났다. 시리아 교회에서는 더 오랫동안 끝이 안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대 시련이 기독교와 유대교를 분리하고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정립하게된 시기가 된다.

유대교내에서 서서히 분리되는 작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기간에서 유대교에서 아이덴티티가 형성되면서 정경이 만들어지고 놀라운 사실은 유대인들이 주류가 되어 시작한 운동이 서서히 이방인들의 세력이 커지게 되어 처음에는 중심에 예루살렘(유대인중심)이었지만 다음에는 안디옥(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가게 되고 그 다음에는 로마(이방중심)로 가게 되었다. 이 흐름속에서 크게 떠오른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이다. 이방교회가 성립하고 이방인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성서적으로 신학화 체계화한 사람이 바울이다.

 

여기서 조금더 나중에 이야기해야할 부분은 유대인들은 자기네들 정경이라고 부르는 구약을 기독교인들이 경전으로 받아들여야하는가의 여부에 대해서 많은 고민하게 된다. 교회내에서 유대인들이 많았을때에는 구약을 넣을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방인들이 많아지다보니 이런 질문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구분되어지게 되었다. 초대교회에서 큰 이단인 영지주의는 구약을 기독교인들은 받지 말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정통은 구약속에 우리 기독교 뿌리가 있고 하나님 계시의 연속적인 흐름이 있으므로 받자고 했다.

 

 

영지주의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는 유대교는 70년 성전 함락후에 유대교의 정화작업이 일어나게 된다.

1세기는 기독교 정체성 문제를 형성헤 가면서 유대교의 문제가 다루어졌다.

2세기로 넘어가면서 이방인들과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앞으로 기독교인들이 된 이방인들 눈에 자기들이 옛날에 가지고 있던 믿음 즉 조상숭배라든가 우상숭배사상의 여러 가지 옛날 종교에서 가지고 있던 것들이 기독교 안에 들어오게 되므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오늘 초대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이방문화권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세기에 예수님과 12제자, 이방인 선교를 맞았던 바울과 바나바는 다 유대인이다. 이 사람들의 뒤를 이었던 초대교부들은 이레니우스, 폴리갑, 터툴리안등은 이방인들이다. 이것이 놀라운 변화이다. 시작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지만 그 사람들 뒤를 이은 사람들은 속 사도는 대부분이 비 유대인이었다. 이것이 교회 성격에 대해 심각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읽었던 물질적인 세계관은 유대인들도 그 중에 작은 집단에 불과했던 시대의 물질관과 우주관이다. 그 당시의 물질관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유대인들에게 왔던 것과 연결시켜 나갈때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방인들 관점에서 구약을 바라보다가 보니까?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는 관점과 다른 관점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크게 말해서 영지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에게는 자연스런 배경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물질세계는 그레코 로만이라는 큰 세계 가운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방기독교인들의 사상과 혼합이 된 것이다.

 

과거 영지주의라든지 성경해석의 오류를 지금 오늘날도 적용되어서 해석되어지고 있나?

얼마전에 다빈치 코드가 인기가 있었다. 다빈치 코드의 내용가운데 자료의 대부분이 외경에서 근거한 것이다. 초대교회 외경적인 문서들이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많이 담고 있다. 특히 진리 복음서, 도마복음서등이 영지주의적인 색채를 많이 띠고 있어서 정경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런 사고들이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에서 많이 응용되었다고 볼수 있다.

대중적으로 그런 사고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재미있는 것은 도올이라는 것은 요한복음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구약폐기론을 이야기했다. 구약은 성황당의 믿음하고 같다고 말했다. 구약 폐기가 영지주의 사상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영지주의가 구약 폐지를 주장한 이유는 말시온이 구약은 신약과 연결될수 없다고 말했다. 구약을 보면 구약에 나타난 신과 신약에 나타난 신과 같을수 없다. 구약신은 좋게 이야기하면 정의롭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무섭고 잔인한 신이다. 따지고 보면 구약을 봐도 조금은 무서운 부분이 있다. 노아 홍수나 여러 부분에서 발견할수 있다. 이것을 부각시키고 확대해석하면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같을수 없다고 본다.

구약의 신은 수많은 이방의 신들중에서 가장 격이 낮은 신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방 기독교인들이 휘말리게 된 현실적인 이유는 있다. 고대 세계에서는 민족들간의 전쟁은 신들과의 전쟁으로 본다. 그런데 70년에 유대인 민족이 로마에 의해서 비참하게 패배합니다. 성전이 박살난 것이다. 심지어는 성전을 돼지 우리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방세계와 당시세계에서 이것보다 정확한 심판이 무엇인가?

 

이것은 기독교와 유대인들에게는 심판으로 받지만 이방인들이 봤을때 유대신은 로마 신을 대적할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구약의 신은 유대민족의 신일 뿐이다. 그러면 구약의 신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은 같아지면 곤란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구약의 하나님과 연결하면 설명할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런 문제가 1세기 이방 기독교인들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을 부인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면밀하게 연구해 보면 구약을 바탕으로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신약 구약을 역사적 배경 때문에 구약을 부인하면 결국에는 신약자체도 근거가 약해지는 것이다. 뗄수 없는 관련성이 있다.

영지주의자들의 생각이 기독교내에서도 가식적인 모양으로 숨어들어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까지도 학계에서 있어왔다.

 

영지주의 사상중의 중요한 사상중의 하나는 육체를 죄악시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세계를 죄악으로 본다. 이것이 이원론의 사고다. 그래서 사실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영지주의 사고 자체는 초대교회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들이다. 이 부분들은 4장에서 잘 다루고 있다.

 

다른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 아웃사이더, 구원의 방주에 들어있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사실 초대교인들처럼 민족, 종교 관습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을때 화합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융화가 될수 있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처럼 민족, 언어 등이 서로 다를때,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분리할수 있는 유혹이 강한 것은 틀림없다.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모습이 다르면 이질감을 느낀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미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느낌이 잘 안오는 것과 같다. 일본 사람들중에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저들과 친교할때에 느낌이 오겠나? 아마 이런 부분들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분류속에 넣고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파했을까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건들이다.

마술을 하는 사람, 점성술을 믿는 사람, 철학을 믿는 사람, 신탁을 믿는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수 있었을까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가 처음 교회가 신앙을 전파하고 선교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한국 민족에게 선교하는 것 하고는 다르다.

오늘날 이단 문제는 예민한 문제인데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켈 리가 제시하는 것은 서양사람들의 이단에 대한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 기준의 이단성, 사람 기준의 이단성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서구교회는 이단성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스럽다. 서구인들이 이단에 대해서 알르레기를 받는 것이 중세의 종교재판이다. 또한 칼빈의 교리의 편협한 문제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가지고 있다.

서양사람들의 2000년경의 경험으로 봤을때 이단 판별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단에 대해서 입장을 취하는 것이 1)너무 성급하게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가말리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께로부터 일어난 일이라면 너희들이 반대해도 일어날 것이고 아니라면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엄청난 신중론이다.

 

3세기경에 들어가면 신중론이 상당히 후퇴한 것을 보게 된다. 소위 말하는 다른 파에 속한 사람에 대해서 엄격하게 대처하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이것은 성경이 씌여질 당시의 기독교의 입장은 이방인들이 들어오면서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위협할수 있는 일이 생길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본다.

영지주의나 말시온 같은 사람들의 사고가 팽배해지게 되자 교회는 엄청난 위기 의식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엄격하게 대처할 것이 강조되었다. 2세기에 있어서 구약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부인하고 모든 육신적인 것을 죄악된 것으로 보는 관점 자체는 상당히 엄격하게 대처가 되어야 한다.

 

성경과 신학

 

초대 기독교의 성경

기독교에 있어서 독특한 점이 신학이다. 신학은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철학과 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기독교 신학은 비블리컬 세미나가 되어야 하는데 왜 데오로지컬 세미나로 부르는가? 기독교가 이성이라는 것을 신앙 가운데 받아드리기 시작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 있어서 신학은 차이가 있다. 구약적인 믿음과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유대교, 이슬람의 특징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과 신학, 신학과 이성의 결합요소가 나타나게 된다.

유대교와 이슬람은 무신론적인 신학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무신론적인 것을 용납하므로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성만을 가지고 하는 신학이 생겼다. 원래 신학은 신앙의 기본 바탕위에 이성,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원래 모습이다. 그런데 신앙이 빠진 채로 이성과 학문을 하는 것은 원래 신학이 아니다. 긍정적인 면은 기독교 신학의 이성적인 면이 강조되고 여러 문화를 수용해 가는 것이 장점이다. 기독교 자체가 신앙적인 측면, 이성적인 측면이 고묘하게 융합되어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다.

 

예술/신학

시각 예술은 우상시비가 있다. 유대교는 조각을 만들지 않는다. 단지 무늬나 선으로 장식할 뿐이다. 모세, 이사야의 형상이 없어서 알기 어렵다.

정경의 형성과정에서 신학 발전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이유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신을 찾다보니 기독교가 발전하게 되었다. <작성자 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