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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팀켈러의 내가 만든신, 그외의 글

by 은총가득 2020. 12. 15.

야곱의 우상 _ 라헬을 향한 끈질긴 사랑

 

에서의 장자권을 뺏은 야곱은 목숨의 위험을 느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처 온다. 거기서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7년을 일하면 라헬과 혼인을 시켜준단다. 그당시 결혼 지참금에 비하면 4배나 많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열심히 7년을 일하고 첫날밤을 치른후 눈을 떠보니, 라헬의 언니 레아가 누워 있엇다. 상의 모든것들은 아침에 눈을 떠보면 레아 이다. 발리의 아침도 며칠지나면 시쿤둥해지고, 46평 넓디넓은 아파트도 몇년 살아보면 지겹고, 몇백만원짜리 명품가방도 하루 지나고 보면 후회하는것들이다.... 야곱의 돌쇠같은 라헬을 향한 사랑은 7년을 더 일하게 한다.
야곱과 라헬의 희생자인 레아는 아들을 계속 낳아줌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호와를 찬송하고, 하나님을 뵈며, 희망을 하나님께 옮기는 영적성장을 이루게 된다. 보너스로 유다를 낳아, 오실 메시아의 계보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삭개오의 우상 _ 돈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난 이책을 읽기전 삭개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냥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뽕나무에 올라가고, 약간의 즉흥적인 이벤트로 자기가 가진 돈을 기부하는......

삭개오는 어떤사람인지 알아보자, 유대인의 배신자, 쓰레기, 조선민족을 괴롭히는 일제시대의 앞잡이 정도....
그런데 그런 쓰레기들의 우두머리 인것이다. 그런 우두머리가 체통과 지위와 사람들의 조롱거리를 감수하고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뵙고자 했다. 그런열성을 예수님이 알아보시고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 영광을 삭개오는 누리게 된다
(유대인의 식사는 친구정도의 친밀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 도덕적 성취나 행위와 거리가 먼 삭개오에게 내민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은 절대자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 라는것을 삭개오는 깨닫게 된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후 삭개오와 예수님의 사이의 방해거리는 돈이라는것을 불현듯 알게 한것이다.
그래서 과도한 기부를 서슴치 않은것이다.... 돈은 그저 사람을 섬기고 선을 행하는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간것이다.

군대장관 나아만의 우상 _ 성취

ⓒ QuinceMedia, 출처 Pixabay

나아만은 지금으로 말하면 , 국방부 장관 이나 국무 총리 급의 세상의 성취를 이룬사람이다.
하지만 나병을 앓고 있었다. 개인의 성공과 성취는 어느 우상보다 자신이 신이라는 느낌을 주게 한다 .
하지만 성취로 보면 인사이더 이지만 , 몹쓸 질병 때문에 아웃사이더가 된것이다.
유대인 여종의 말한마디에 모든 희망을 품고, 나아만식 사고방식으로 재물과 은금과 추천서로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한다.
이스라엘왕은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괜한 모함일까봐 옷을 찟는다.
이스라엘 선지자는 요단강물에 7번 씻으라는 심플한 명령을 한다.
나아만 사고방식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치료 방법이었을것이다. 너무 쉬워서 행동하기가 어려웠을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구원을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는 사람은 그분앞에 나아가 자신의 결핍을 내보이면 되는것이다.
나아만의 여종은 나아만 보다 훨씬 나은사람이다. 가만있기만 해도 적국의 수장은 질병으로 스러져갈것이다.
소녀이자, 여자이자, 적국의 포로로 끌려간 그녀는 상대를 기꺼이 용서하고 치유와 구원의 통로가 되어 준것이다.
하나님이 기꺼이 우리를 용서하고 , 당신의 자녀를 삼아 주신것처럼.........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왕의 우상 _ 권력

ⓒ Skitterphoto, 출처 Pixabay


느브갓네살왕 바벨론의 왕 권력욕이 강한사람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고, 자신이 경쟁자의 과녁임을 알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의외로 자신의 삶을 지배할힘은 거의 전무하다
출생시기,장소, 부모,가족, 유년기의 환경, 유전적 재능, 상황등…. 우리는 유한하고 의존적인 피조물이다. 왕이 꾼꿈은 겸손을 명하는 경종의 메시지다.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알리고자 하셨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세월을 통해 이상한 것들을 배워 하나님을 착각하기 시작한다.


1. 착하고 점잖게 살려는 이들에게 복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한다 (도덕주의적 신념)
2. 삶의 핵심 목표는 희생이나 자기 부인이 아닌 나의행복과 좋은 자아상( 치유와 신념)
3. 하나님의 최소 개입 (이신론)

위의 것들이 잘못되었는데 우리는 잘 인지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 인간은 신처럼 되려 하면 인간이하로 추락한다. 가장 짐승같고 잔인한 행동이 뒤를 잇는다
교만한 사람은 인격체가 아니라 약탈자가 된다. 왜 나는 이대목에서 대한항공 일가가 생각나지. 나원참.....
겸손해지면 교만이 죽으면서 부활이 찾아올수 있다.
예수님처럼 내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면 그때 성장하고, 변화하고 부활 할수 있다.

요나 의 우상 _ 문화와 종교

ⓒ sasint, 출처 Pixabay

요나는 내가 생각한 선입견은 그저 하나님 명령을 잘 안듣는 이상한 선지자 정도로만 생각했다
요나의 머리속에 애국심이 가득차고 ,자기민족만을 사랑한 외곬수인지는 몰랐다.
하나님이 가라 명하신 니느웨는 앗수르제국의 본산이다. 거기서 복음 전해봐야 이스라엘 에 이로울께 없는 나라이다. 요나는 기겁을 한다. 애국심이 투철한 유대인 선지자는 철천지 원수 나라에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하나도 달갑지 않은것이다.

또한 실패가 두렵고, 사역의 성공을 원했기 떄문에 가기 싫어 했다
악한 이도교인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과 그들이 구원 받는 것이 싫엇을것이다.
요나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 모두는 대등하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다. 인종적 우월감과 문화적 편협성은 결코 은혜의 복음과 공존 할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견고하지 못한 이들은 인종,소속, 교회 및 사회생활 문화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 하려 애쓰고, 자기확신을 떠받칠 영적 구명대를 찾아 다닌다.
요나처럼 복음을 머리로 믿은것과 마음깊이 소화해 모든사고와 감정과 행동이 변하는 것은 다른문제 인것이다.

아브라함 의 우상 _ 내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귀한아들 이삭

 

ⓒ mario0107, 출처 Pixabay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셨다. 삶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에서 이삭으로 넘어 가려고 하는 그 시기에 내린 명령이다. 책은 리얼하게 표현한다. 그 사랑이 자녀를 숨막히게 하고 목을 조른다.. 요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다. 내가 그아이를 끔찍히 사랑하지 않으면 12시 넘어서 다니는것도 개의치 않아 하고, 초미니 치마에 연예인 싸구려 콘텍츠 렌즈에 가부끼 화장을 하고 다녀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껏이다. 남자친구를 사귀던 말던.. 정말 끝이 없다탐탁치 않은 면들이…. 네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표현하시면서 명령을 내리신다. 난 이 에피소드를 아이가 낳고 기르면서 젤 싫어 하였다. 얼마나 잔인한 명령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산을 오르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분임을 안다. 어떻게 하실지 모르지만 분명히 이번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를 보이실것이라고 신뢰하는것이다.
나도 아브라함만큼 오래 기다린 자식은 아니지만 10년을 기다려 얻은 혜승이를 제단에 올려놓고 , 삶의 구심점을 하나님꼐 내어 드려야 한다. 내가 과잉통제하여, 자녀의 삶과 하나님의 계획에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책대로 난 한글자 도 틀리지않게 딸을 대했다. 응석받이 로 키우면서, 실망시킬떄면, 지나치게 화내고, 매정하며, 심지어 폭력까지 휘둘렀다. 내가 이렇게 다 늙어서 뼈빠지게 고생하는데 감히 .. 아 쫌 무섭다. 나를 본듯한 묘사 문구가 너무 많다.
딸이 순종을 보이지 않는것에 대해 지나친 분노와 불안과 우울에도 빠졌다.
딸은 내성에 차지 않았다 공부, 도덕성, 생활습관, 성격등…..
내 기대치가 높아(?) 나를 피해 떠나거나 심령이 뒤틀리고 망가져 갈수도 있다.
난 이삭의 재단이 잔인한 명령이라 생각 한 나의 기존관념을 깨뜨린 책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내어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돌아가신 것은 잔인하다 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던 내가 놀라왔다.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너무 감사해서 눈물 약간 이었던적은 있었다.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때는 자신의 우상이 위협받거나 제거 될때다. 나를 버리신 것 같고 힘들떄 알고 보면 삶의 해로운 우상을 다루고 계실때이다. 예수님 만으로 충분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밖에 남은 것이 없어야 한다.
이미 해주신일에 즐거워 하고 하나님만 따르라,

제자리를 찾아 가자


담장을 넘는 그리스도인

ⓒ TreptowerAlex, 출처 Pixabay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의 지혜보다 자기지혜를,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갈망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평판을 더 중요시 한다. 마치 의례상의 인정인 장자권을 위해 , 바깥 의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확인받기 위해 모든 노력을 귀울이는 야곱이 우리의 실상이다.
야곱이 천사와 싸워 복을 얻어냈다고 믿는 그 에피소드가 실제로는 몸으로 하는 간증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나는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구하되, 아버지의 인정과 라헬과의 사랑만 찾았습니다.
복은 하나님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내게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면서 독백처럼 말했을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겸손하지만 대담하게 하나님의 복을 얻어 낸것이다.

 

우리의 심연에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가..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라는 말씀이 기쁨과 힘의무엇을 심는 것은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몇배로 불어 돌아 올줄 믿고 당장 필요한것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하지만 심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수확은 불가능하다 수확에 대한 통제권과 욕구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
수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보내는 능력을 예수님이 주목하신다.
바울이 복음에 빚진자라고 말하고 , 예수님이 영혼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44번이란 피력하셨듯이
결심은 쉽다. 하지만 소중한것에 작별을 고하고 행동하는 것 즉 잃음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방식에 젖어들긴 어렵다.

 

 

Part 1. 이대로 교회 안에만 숨어 있으면 공멸한다
1.
이 시대, 여전히 교회는 희망일 수 있는가

크리스챤의 90%가 가족외에는 복음을 전한적이 없다고 연구결과가 나왔다.
교회는 사탄의 영역을 진격하기는커녕, 방어도 힘들어한다. 음부의 권세를 이긴다는 것은 방어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를 정복하는것이다.
A.유람선인지,(음악?프로그램?성경공부?) 전함인지(프로그램과 예배사역중심) , 항공모함인지 확인하라 ?음부의 권세를 이기려면 항공 모함이어야 한다.
B.교회 전도의 초점이 비신자가 아니라 탕자에 초점이 맞춰짐하지만 비신자나 탕자들은 개인이나 국가적 고난이 와도 교회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교회모임이나 상품을 개선하는 따위로 그들을 전도 할수 없다.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여 한다.
C.출석수 성장과 제자파송중에 선택이 아니다.. 모두 하되 장기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제자파송이 우선되어야 한다.
D.하나님은 보내신자와 함께 하신다. 성경적예) 아브라함 ? 땅의 모든족속에 축복을 주시고자 부르심 & 성경에는 선교사란 단어가 없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모든백성이 보냄받은 자이고 명령을 받은자이다.
E.예수님의 첫제자들 120명이 성령을 받자 불과 두세대 만에 세상을 뒤엎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큰일을 해낸다. 전도의 사명을 망각한 교회는 불순종 집단일 뿐이다.
2. 몰래 키워온 ‘내’ 왕국을 흔드시다
성경상의 다비다와 빌립처럼 사역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동네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자.
저자의고백처럼 내 교회의 양적성장에 눈멀어요한의 말처럼 그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고백이 아닌

내나라의 큰일에 눈멀어서선 안된다. 요한의 예수님의 사역에 철저한 들러리이다.
물밀듯이 교회에 찾아온 청년들은 헌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졸업하는 해에는
거의 모두 직장 선교할수 있는 직장 자원들을 거의 하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다른이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라고 주시는 복이다.

우리는 복음의 저수지가 아니라 복음의 흐르는 강물이 되어야 한다.


Part 2. 예수 복음을 품고 교회 밖으로, 세상 속으로


‘보내는 교회’와 ‘보냄 받은 성도’를 위한 10가지 다림줄
1.
죄책감과 탐욕의 시동은 쉬이 꺼진다
다림줄 1. “복음은 단지 풀(pool)에 들어가기 위한 다이빙대가 아니라 풀 그 자체다”
사람들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하려면 조선 매뉴얼, 작업팀, 나무를 주지말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_ 쎙뗵쥐베리.
바울이 같은민족인 유대인에 대한 영혼구원의 연민과 열망이 있어서 누구보다 열심이고, 복음의 깊고도 개인적인 경험과 구원의 감격에
대한 은혜로 자원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희생의 동기이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이 희생의 정도이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 회생을 통한 사명인것이다.
죄책감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복으로 되갚아 주실것이라는 기대감 이 아닌 우리에게 이미 해주신 일에 대한 감사가 그 열쇠 이다.


2. 자기 생업의 자리부터 출발하라
다림줄 2.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부름 받았다”

예수님은 보답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파티를 베풀라고 명하신다. 그렇게 하면 부활시에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받을수 없는 보상을 바라봐야 한다.직업또한 마찬가지이다. 마틴루터는 세속적인 직업은 하나님이 세상을 돌보실 때 쓰시는 가면이라고 말했고
종교개혁또한 성직자와 일반 그리스도인의 담을 허문것이다.
일터에서 예수님을 섬기는것이란 하나님의 영광과 피조 세계의 유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나서 적절한 기회가 생길때마다 예수님을 전도 하는 것이다.
빌립도 평신도, 안디옥 교회는 어떤 형제들이 세운교회, 로마교회는 무명의 형제들이 세운 교회다. 첫선교사들의 익명성이 특이하다.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교회를 정비했지만 세우지는 않았다.


3. 고개를 돌리라, 거기 예수 만나야 살 사람들이 있다
다림줄 3. “주일만큼 주중의 삶도 중요하다”

주중에도 당신은 크리스천인가? 주일모임은 주중을 위한 작전 회의이다
흡인적 접근법( 구약의 스바의 여왕 과 선교적 접근법이 있다.
살아가는 모습과 예배하는 모습으로 끌여들여 관찰하며, 관찰은 회심으로 이루어진다.
성전앞마당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공간을 이스라엘 자신만의 편의구역으로 오염시켜서는 안된다.
외부의 구경꾼을 배려하여 앞마당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은 심리치료사, 자기계발 서적 떄문에 의미를 찾거나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교회를 찾아오진 않는다.
깊이와 넓이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죄인들을 꾸짖지 않으면 영혼 구원을 할수 없으며, 그저 다른 교회에서 온 회심자들로만 가득찰것이다. ) 천국은 회중이 아니라 제자인지 아닌지를 따진다.


4. 교회, 군중으로 들어와 군대가 되어 나가는 곳
다림줄 4. “교회는 리더십 양성소다”
예수님의 기적은 구원을 예시하신것이고 우리는 설교와 증언으로 비신자를 구원으로 이끌어야 한다.
예수님보다 더 멀리 뻗어 나가기 떄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영이 우리안에 거하기 떄문에 예수님이 계실떄보다 더 많은곳에서 역사 할수있다.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서 하신일과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한일은하나이다.
열두제자가 처음부터 리더가 아니었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사를 끄집어 내는 리더십 공장이어야 한다.
A.책임지는 사역 _ 목회팀 구상, 자금을 대고 실행 _ 소그룹 개발, 장로 및 리더 훈련, 주일예배
B.축복하는 사역_ 응원과 기도 _음지에서 지원
C.촉진하는 사역 _ 외부프로젝트 지원
리더를 보내면 더많은 리더들이 채워진다.끌림의 순환 _단 리더가 A급 플레이어야 한다.
초자연적인 이유 _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


5. 서로 사랑하는 삶만 한 변증이 없다
다림줄 5. “교회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이게 한다”

지역사회의 섬김이 복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 복음을 떠난 친절한 행위는 지옥으로 가는길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뿐이다.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히 능력 자체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능력의 구속적인 목적을 드러내셨다
그분의 기적을 보고 그분의 메시지를 믿었다.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를 통해 정부,고용주, 배우자를 향해 철저한 사랑과 은혜로 살라 당부했다. 그래야 교회느 회복된 세상의 표징이 된다. 심령술 흔한 도시에는 귀신을 쫒아내고,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에는 배려와 기쁨을가난자들에게는 필요를, 인종끼리 싸우는곳에는 연합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 처럼……성경의 예 _ 리디아, 노예소녀 , 빌립보의 간수 복음은 은헤로 뒤덮인 진리이다. 은혜없는 진리는 근본주의 이고, 진리 없는 은혜는 감상주의 이다.


6. 제자 삼기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다
다림줄 6. “언제나 모든 일의 초점은 제자 삼기다”
링컨의 오른팔인 맥클레런은 병사를 모집하고 조직하는 능력이 뛰어난자이다. 단 그것뿐이었다.
싸울줄 모르는 그를 해고하고 그랜트를 영입했다.
군인의 자산은 싸우는 능력이다. 이것이 없으면 다른 것은 무용지물이다.
제자들을 키워낼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켜내고 있는지 점검 해야 한다. .
제자를 삼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삶의 문제이다.당신처럼 성경읽고, 기도하고 예수님에 대해 알리도록 가르치는것이다.
당신 삶속에 다른이가 따라 할수 있는 신앙습관이 있다면 당신도 제자 삼는 사람이 될수 있다.
A.주일학교 부모들이 각자의 자녀에게 제자를 삼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B.소그룹안에 새로운 소그룹을 만든 리더를 키우고 있는가
C.사회프로그램이 단순 봉사인가?
D.설교가 지식 전달인가?
우리는 모두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어야 한다. .
우리는 성격이나 영적은사와 상과 없이 모든그리스도인은 번식하기 위해 태어 났다.
예수님이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을 싫어하신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섬김, 나눔, 믿음, 전도는 신자의 의무이다.


7. 다른 건 몰라도 ‘선교’는 좀 부담스럽다?
다림줄 7. “모든 목사가 선교 목사, 모든 성도가 선교사”

신자들을 소독하는 것은 그들을 고립시킨체 선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것이고 신자들을 제자로 가르치는 것은 세상속으로 내보는것이다. 교회 건물 밖으로…….
자녀또한 선교 마인드를 심어주어야 한다.
설교, 교회 비품에 선교 명시, 교회 미니멀화, 선교성과를 자주 온라인사이트에 게시, 헌금도 선교 사용 내역 밝히기
세례식때 선교 파송식, 해외선교사소식 방영등, 선교는 예수클럽의 프리미엄회원들, 성숙한 성도들을 위한 고급과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8. 완전하지 못한 연합이라도, 다양성을 껴안으라
다림줄 8. “반짝 다문화 행사를 여는 게 아니라, 다문화적인 삶을 산다”

세상이 이룰수 없는 것을 복음이 해낸다면 그것보다 강력한 증언은 없다. 연합된 모습은 다가올 시대의 표징이다.
단순히 인종주의자가 되지 않는것으로 부족하고연합이 그리도인의 세번째 인종이 되어야 한다.
다문화적 노력과 주변지역의 문화에 맞추려는 노력도 병행 되어야 한다. 취향또한 내려 놓아야 한다.
복음의 본질은 예수님과의 수직적 화해 뿐 아니라 인종간의 수평적 화해 이다.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성장도 다문화적 연합이다.


9. 할지 말지가 아니라, 내가 할 모험이 무엇인지 물으라


다림줄 9. “모험은 언제나 옳다”
성경속의 달란트 비유처럼. 주인(하나님)은 모험한 것을 칭찬하셧다. 하지 않은 것이 악만큼 나쁜것이다.
모세시대의 첫번쨰 가나안 정탐군이 정확한 보고 였지만, 모험하지 않은 대가로 다음세대가 가나안에 들어 간다.
요나단과 세친구, 에스더 처럼 확실하게 알수 없는것이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10. 세상 속으로 함께, 끝까지, 계속 가자
다림줄 10. “비전을 입이 닳도록 말한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겨우 들려진다”

지식격차의 저주 처럼 리더는 잘알지만 따르는 무리에게 현상태의 문제점을 리더만큼 확실히 느껴야 한다.
무릎꿇고 기도 할떄 위대한 일이 일어난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첫 공식 선교사 임명도 집중적 기도 시간에 이루어졌다.
미국의 19세기 교회부흥과, 영적 대각성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약간의 토론이 곁들어진 기도회가 있어야 한다.
비젼이 입과 입으로 전해져야 변화가 일어난다. 연민에 자신이 있다면 연민을 아무것도 없다면 탁자를 내려쳐라
사람들은 무엇보다 열정을 따른다.
믿음과 순종과, 내왕국이 아닌 하나님나라에 대한 사랑, 모험할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자.

부록
모든 종족이 어린 양을 알기 전 까지 인류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시에 도착해야 복된 소식이다.
구체적인 은사와 재능에 따라 프로그램을 짜야 자원자가 나온다.
단기 선교여행은 준비과정또한 제자훈련교육이어서 시간 낭비가 아니다.
선교현장을 보고 온 이들은 선교헌금을 많이 낸다.
순차주의 또한 경계해야 한다.
보냄의 문화가 특별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인 일과가되어야 한다.
교회개척이 새로운사람들을 전도하는데에 더 효과적이다.
새로운 교회는 그지역의 복음온도를 높이며, 다른교회를 먹여살리고,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교회개척전략의 다섯가지 핵심.
비젼_ 분명하고 미력적인 비젼을 제시하라
평가_ 최고를 보낸다.
모집_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부른다
개발_ 추수한 곡식중에 교회 개척자를 기른다.
지원_ 보내는일을 계속해라. 잘보낼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라. 원천이어야 한다.그것만이 모든 우상숭배를 퇴치하는 묘약이다.


신약세계를 형성한 7가지 사건_ 워렌카터 지음

 

 

1.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년)
기원전 336년부터 323년까지 단지 13년동안 마케도니아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왕
페르시아, 그리스,인도,파키스탄등 많은 나라를 정복했던왕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영토만을 정복한것이 아니라, 정복당한 상위계층의 현지 젊은이에게 그리스
언어와 생활방식을 가르쳤다.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는 촉발제가 되며,
바울의 전도여행에도 헬레니즘의 다신교를 향하여
복음을 전파한다.

2.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기원전 250년대경*)
프롤레마이오스2세 필라델푸스 왕의 명령으로 세상의 모든책을 수집하게된다
히브리인의 성서도 거기에 포함되어 각 지파중 6명씩 선정되어 (72인)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영하는 작업을 하게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성서 번역이 유대인의 정체성이 헬레니즘
문화에 잠식되거나 지배당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지지대가 되었다.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주는 구약의 정리를 타국의 언어인 그리스어를 통해
정리하게 되는 셈이 된것이다
.
3. 예루살렘 성전 재봉헌(기원전 164년)
시리아(기원전 175년-기원전 164년) 왕이었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악한왕이었다
왕은 유대인들의 자치적이고 모세의 율법아래 순종하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못마땅해 했다
군사력을 동원해 성전을 약탈하고, 각종 유대법과 반하는 칙령을 내린다.
유다스 마카베오스는 군사적 반란을 일으켜 (안티코오스의 질병도 한몫을함)기원전 164년에 성전을 재봉현하고 독자적 왕조를 세운다.
에피파네스는 신정국가인 유대인들의 구심점인 제사장,성전, 예루살렘을 파괴해야 했으므로 본의아니게 종교 박해를 하게된것이다.
신구약 사이에 유대민족에게는 이런 사건들이 존재하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유대교와의 부정확한 인식과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신약성서에는 이런 모습들이 간간이 비춰지게 된다.
또한 바울은 이미 선택받았다고 확신하고, 선한 행위로 하나님의 은총을 얻으려는 유대인들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 했다.

4. 로마의 유대 점령(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63년에 예루살렘을 장악했다.
로마의 3두정치의 승리자(폼페이우스, 카이사르,마르쿠스 크라수스) 인 카이사르는 유대인의 분봉왕을
그유명한 헤롯 으로 임명한다. 그후 그의 지나친 핍정으로 인해 그의 세아들에게 잠깐 통치당하다
유대는 시리아에 병합되고 로마총독이 직접통치하는 로마 제국의 지방이 되었다.
유대의 로마총독이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 이다.
세례요한은 세아들중의 한명인 안티파스(갈릴리통치) 에 처형당했다.
로마제국으로 인해 예수를 믿는자들도 로마권력에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예수님은 이런 폭풍의 한가운데로 임하셔서, 포로된자, 눌린자를 위로 하시고, 귀신을 내쫒으시며,
굶주린자를 먹이시고, 소외된자와 함께 식사하시는 모습을 몸소 보이신다.
이런 모든행위들이 하나님의 통치와 그나라의 도래를 알리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십가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시고,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들 구원에 이끄신다.
바울도 로마와 같은 세상제국을 넘어 하나님의 통치가 분명하고도 필연적으로 승리할것이란 비젼을 갖고 일생을 살아내었다.

5. 예수의 십자가 죽음(서기 30년경)
예수님은 성전이 파괴되고, 그럼으로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권력기반이 사라지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함을 알렸지만, 이런모든것들이 오히려 지도자의 두려움을 만들게 되어 십자가 죽음이 촉발되는 기폭제가 된다.

6. 신약 성서 본문 저술(서기 50-130년경)
마가복음이 최초로 씌여진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바탕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씌여졌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이신칭의와 (로마서,갈라디아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창조된 공동체, 이런 신분변화로 인한 도덕적인 삶을 서신서에 썼다.


7. 신약 정경 ‘확정’ 과정(서기 397년)
397년 북아프리카 지역교회 공의회인,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하였다.


존파이퍼의 돈, 성 그리고 권력 _ 존파이퍼 지음

 

나는 회심이후 성화의 삶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물론 행동의 변화들은 많았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내면의 죄들과 습관적으로 고착된 죄들은 나를 힘들게 했다.

여러 책을 전전한후 나의 고민은 너무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지만, 24시간의 임재(빛)가운데 삶이라면, 덜 힘들고 자연스러울꺼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책에서는 안목의 정욕,육신의정욕,이생의 자랑인 돈과 권력과 성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여서 읽게 되었다.

나는 권력의 욕망이 없는줄 알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경우의 권력의 의미는 내가 좀더 나은 인간이다.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인간이다.를 상상하고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를 애쓰며, 교회안에서 이정도면 리더가 될수 있는 자질이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과 여러 불순한 교회안에서의 영향력을 꿈꾸게 했다.심지어 블로그를 쓰는 이유도 나의 경우에는 약간 불순한 의도가 섞여있다. 익명의 누군가에게 잘난체 하는 것이다

또한 돈에 대해 왜 이리 집착하고 있을까.. 심지어 누구나 그렇듯이 난 돈때문에 약간 고통스럽기 조차 한 내자신이 싫기까지 했다.

늙고 쇠약해져감에도 불구하고 왜 일을 해야하며, 일을 하는데 왜 이리 돈에대해 자유롭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이책을 하루만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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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돈,성,권력은 원래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은혜의 선물을 죄의 도구로 바꾸고, 교만의 성전의 제단과 향으로 변질시킨 그무언가가 우리안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의 사용을 음식,선물,복권, 성을 사는데에 쓰일수도 있고, 비밀을 유지나 승진을 위한 뇌물을 위해 쓰일수도 있고, 선교여행을 가기위해 쓰일수 도 있다. 다만, 돈을 우리가 어떻게 추구하느냐가 관건이다.

돈의 사용은 예배행위이다.

을 덕이 되게 하거나, 혹은 악이 되게 하는것은 쾌락여부나 추구여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의 복종과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는 근본적이 이슈가 존재한다.

권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세가지의 공통점은 뿌리가 같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과 내가 가장소중히 여기는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게 한다.

권력은 가치있게 여기는것을 추구할수 있는 능력이다.

돈은 가치있게 여기는것을 추구하는과정에서 교환할수 있는 문화적 상징이다.

성은 그것을 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세가지것들을 예배의수단으로 ,찬미의 수단으로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사용하지 않는가?

로마서 1장18-23절이 답이다.

경건하지 않고 의롭지 않음이 하나님의 진리를 막고 , 우리의 죄된본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혐오한다. 우리는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하며, 진리의 빛가운데 걷기를 원치 않는다. 당연한 결과로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어둠을 선택한다.

경건치 않은 상황에서 , 우리가 하는 모든일은 경건하지 않은일이 된다.

또한 우리는 마음의 진공상태를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그자리에 더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채우게 된다. 죄는 그저 하나님을 다른 어떤것보가 더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느낌이나 행동이다.

아!!!! 그럼 난 죄를 하루에 100번은 지을거 같다. 인터넷쇼핑, 드라마 탐닉, 아이돌사랑, 자식에의 집착

정말 헤아릴수 없다.

 

ⓒ steinart, 출처 Unsplash

하나님보다 더 상대를 아름답게 보고 매력적으로 보고, 더 갈망한다면, 우리는 어둠가운데 있는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성적인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맹목과 어둠의 토양 그리고 모든것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무지의 토양에서 자란다.

바울은 고전 6.15-20절을 통해, 요한은 계시록 22.14-15절을 통해, 예수님은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마 5-27-30절을 통해 경고하신다.

하지만 솔로몬의 아가서 같이 부부간의 성적 쾌락을 문제 삼지 않으신다.

위와같이 경고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단순히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려고 하신것이 아니라 ,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의 광대하심을 보게 하고, 그리스도께 비상하는 지혜를 얻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우편에 있는 더 지고한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

죄된 정욕으로 부터의 해방은 다음과 같은것을 통해 가능하다.

 

a.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것

b. 그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아는것

c. 우리가 보는것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 되는것

d. 우리를 얽어매는 썩어짐을 피하는것

모든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태양이 우리의 인생 태양계의 중심이 될떄, 성은 아름답고 거룩하고 행복한 궤도를 찾게 될것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나를 온전히 갈망하라, 네가 나를 소유하면 만족을 얻을것이다.

마지막 십계명 탐내지 마라. 의 뜻은 정당하지 않은 욕망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돈이 위험한 이유는 기만의 힘이 있고, 돈은 탁월한 거짓말 쟁이이며, 돈을 다루는 일은 감전사 할수 있는 전선을 다루는일과 같다. 돈은 많은근심을 유발시켜 우리를 찌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부를 추구한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돈은 우리를 배반한다.

돈을 가져갈수 없기 때문이다. 부를 축척하는데 인생을 바치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우리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 아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저 우리는 인생 그자체, 그것의 영혼 그것의 의미를 즐길수 있을 뿐이다. 돈은 타인에게 무자비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기 쉽게 한다. 돈(물질)의 쾌락이 쥐어지는것이 생명을 주거나 권능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습관적 쇼핑, 심지어 책(경건책포함) 까지도 인생이 나아질것이라는 착각을 주고

책은 내 지식이 확장되고 영향력이 커지고, 유능한 사람이 될꺼라는 기대 때문에 한다.

혹은 옷으로, 연장으로, 최신기기로 말이다 .... 하지만 그런 도취감은 수명이 짧고 얄팍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주는것을 통해 휠씬 더한 기쁨을 경험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 즐거움을 통해 물질주의가 주는 열등한 쾌락으로 부턱 해방 될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또 주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누려야 한다.

돈은 속임수의 대가이다. 하나님보다 더 큰 만족을 준다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우리를 속인다 .

이는 첫째와 둘째 계명을 어기는것이 된다. 돈의 임재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더 우월하다는것을 피부로 느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탐욕을 줄여야 한다.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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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과 성욕은 분리가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제자들또한 십자가에 못박힐꺼라고 제자들에게 3번이나 예언을 햇음에도 권력욕에 사로잡혀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했다.

가장큰 권력은 겸손과 섬김에 있다.

자랑은 성공에 대한 교만의 반응이고 자기연민은 고통에 대한 교만의 반응이다.

자기연민은 약한자의 마음에 울리는 교만의 음성이며, 갈채 받지 못한 교만의 반응이다.

권력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저 쓰도록 빌려주신, 그것도 일부만 빌려주신것뿐이다. 우리가 권력 탐닉의 죄에서 돌이켜 겸손과 예수님의 종의 마음을 갖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인정을 얻기위해 사는 저주받은 사람으로서 싸우지는 않게 된다.

권력에 사로잡힌자가 되지 않는 처방은

첫째, 이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려지는것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의 만족이 됨을 보게 해주는것이다.

 

결론

우리는 다른 모든것들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치 있게 여기고, 그분의 영광에 전율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에 감복하고, 그분과 그분자신의 모든 완전하심을 만끽하고, 그안에서 만족하고, 그분과 충만한 교제안에서 깊고도 흔들림없는 자족을 찾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을수 있으며, 하나님의 눈앞에서 설수 있게 된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한다.

그분의 영광의 모습에 닮아가게 하는 중생의 과정속에 종종 환멸에 빠지기도 하고, 믿음의 위기에 빠지기도 할것이다. 하지만 식물에 물을 주고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과 같이 급진적으로 행할수 없다.

꾸준히 말씀의 젖을 먹고 사모하는 삶을 살다보면, 그분의 말씀에서 놀라운것을 보게 하신다.

그분과 함께 걷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닮고 싶은 열망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면, 우리가 돈을 쓰고

성적 갈망을 표현하고,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변한다.

빛가운데 사는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햇빛아래서 단지 일광욕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돈과 성과 권력을 포함하여 우리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이끄는 강력한 인력의 효과를 통해 통제 되는 것이다.<rkwudhsr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