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에 대한 이해
1. 언약의 의미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축복의 정점인 구원은 항상 언약의 형태로 표현되어 왔다. 이처럼 구원을 언약의 형태, 곧 공식적 문구 형태로 표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이 결코 변개될 수 없으며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확증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언약’이란 문자적으로는 두 주체가 쌍방간에 맺은 약속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약과 언약의 체결은 성경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며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에서 널리 행해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고대 근동의 관습에 의하면 사람들이 언약을 맺을 때에는 짐승을 잡아 반으로 쪼개고 언약 당사자들이 그 쪼개진 짐승 사이를 통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자신들이 맺은 언약을 쌍방 어느 누구라도 어길 경우, 언약 체결 당시 도살한 짐숭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맹세의 의미가 담지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혹자는 언약을 ‘피로 맺은 약정’이라고 재규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언약의 당사자 모두 언약에 신실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 근동의 언약의 특징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으로, 즉 은혜로써 주신 구원에 대한 약속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한편 성경에 표현된 언약은 각 시대마다 그 성격과 내용이 다른 다양한 언약이 개별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 성경이 다루는 모든 언약들은 구원에 대한 약속이란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의 모든 언약은 일방적 ·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한 성도의 구원 약속을 각 시대에 따라 부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서 상호 간 내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즉 성경의 모든 언약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며 하나의 본질적 내용을 면면히 반영하는 통일체인 것이다.
2. 새 언약이 주어진 이유
기독교회는 성경 전체를 가리켜 ‘옛 언약’과 ‘새 언약’이란 의미의 ‘구약’과 ‘신약’이라 부르는데 이는 교회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언약의 집성체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 내에는 보다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언약 문구들이 주어져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들 언약 문구들은 각각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며 구속사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집약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 안에 많은 언약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성경을 종종 언약의 책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언약들 중 중요한 위치를 점하며 앞선 모든 언약들과 하나의 분기점을 형성하는 언약이 있다. 그것은 과거의 것과 다르거나 전혀 새롭다는 의미를 함의하는 ‘새 언약’이다. 이러한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성도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며, 그들의 죄가 모두 씻김 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31:31-34).
한편 하나님께서 옛 언약을 주신 후 또 다시 새 언약을 주시며 언약을 갱신한다는 것은 과거 언약 자체가 불완전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시는 이유는 옛 언약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옛 언약을 지키는 사람에게 허물과 결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신 것은 사람의 불완전함을 긍휼하게 여기시며 온전한 구원을 선사하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이 옛 언약을 이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옛 언약을 수여받은 선민의 역사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선민은 하나님께서 회복을 위해 끊임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언약의 새로운 갱신 등을 통하여 그들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각성케 하셨음에도 반역과 불순종으로 일관하며 더 큰 범죄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만의 실정이 아니며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과 죄성을 물려받은 온인류가 처한 보편적 현실이다. 실로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전적으로 주도하사 구원을 베푸시는 새로운 언약을 선사하신 것이다. 곧 사람이 충족시켜야 할 옛 언약의 요구를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로 하여금 대신 이루게 하셨고 이를 믿는 언약 백성들 모두를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이다
3. 옛 언약에 대한 새 언약의 우월성
앞서 다룬 것처럼 ‘새 언약’은 옛 언약이 지닌 한계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즉 그것은 새로울 뿐 아니라 우월하며 완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새 언약에는 옛 언약과 충분히 변별되는 차이점이 있다 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언약과 새 언약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면 더욱 선명하게 그 차이를 규명해 낼 수 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죄사함의 은총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다(31:34).
이는 옛 언약 백성들의 실패, 특히 이 언약이 주어진 예레미야 당시 상황에서 특징적으로 잘 드러난다. 옛 언약에 속한 당시 유다의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당시 백성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는 패역과 불순종으로 파멸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 안에서 새로운 희망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설령 그들을 회복시켜 나라를 다시 재건하게 하고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이 강성하게 만들어준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죄악에 찌들어 부패한 본성대로만 사는 그들에게 더 크고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그들의 죄문제를 해결해야 함이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죄는 일시적이거나 불완전한 속죄가 아닌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여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 가운데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31:34)는 말씀을 힘주어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둘째는 언약 당사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언약에 대한 실천 내지 순종과 관련한 차이점이다.
과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옛 언약은 시내산 율법 언약으로 대변되는데 이는 선민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깨어진 언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새 언약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시내산 언약의 원래 의도를 실현한다는 의미, 곧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원리로 삼으며 자발적으로 순종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언약이 될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에게 부여된 옛 언약은 마치 언약궤 속에 들어가면 다시 볼 수 없는 십계명 돌판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망각된 것, 그들 삶과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 율법의 말씀은 돌판이 아닌 인간 존재의 내적 중심인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새 언약의 백성들은 인격적으로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새 언약’이 성취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삶 속에서 실제 역사하며 실천되어질 것이다(31:32, 33a).
셋째 ‘새 언약’은 예레미야 당시 멸망을 자초한 이스라엘과 다른 여호와의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를 태동시킬 것이다(31:33b).
물론 새롭게 형성된 백성의 공동체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있다는 면에서 연속성을 띠고 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곧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 사역과 성령의 인치심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아울러 과거 이스라엘은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만 하였지만 ‘새 언약’에 기초해 세워진 새로운 공동체는 아무 공로 없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 구원을 확증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 확립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될 것이다. 이 면에서 그들은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라 불리는 것이다. 참으로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더욱 자발적으로 헌신하게 될 것이다.
넷째 ‘새 언약’은 영원히 폐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과거 옛 언약은 언약의 한편 대상인 선민의 범죄와 타락으로 언약적 요구를 이행할 수 없었기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었다. 또 옛 언약 안에 포함된 희생제와 속죄제 등 동물 제사 규례들은 새 언약에 이루어질 범죄한 인류를 온전히 구원해 내신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완전한 속죄 제사의 그림자로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불완전함을 내포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림자와 같은 것, 실체의 도래를 기다리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옛 언약과 관련해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 게 할 수 없느니라”(히 10:1)고 지적한 것이다. 과거의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는데 성취된 현실에 주목하지 않고 과거 약속만을 붙드는 자는 없다. 그림자가 아무리 선명해도 그 사물의 실체가 육안에 들어오면 누구도 그림자를 주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옛 언약 역시 실체인 새 언약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유효했으나 새 언약이 주어진 이후 폐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새 언약’은 결코 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 세운 새 언약은 영원히 폐할 수 없다(히 9:11,12). 그렇기에 그분의 대속과 구원은 영원하며 완전한 것이 된다. 그 언약에 기초해 성도는 영원한 구원을 얻었고 그 언약에 기초해 세워졌으며 완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도들이 장차 영원히 거할 새 예루살렘 역시도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한편 새 언약이 옛 언약과 구별되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 언약이 옛 언약과 전적으로 다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옛 언약이든 새 언약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위한 언약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분명한 차이점도 지니고 있지만 ‘옛 언약’과의 연속성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새 언약’은 다음과 같은 측면들에서 ‘옛 언약’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새 언약’ 역시 ‘옛 언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도하에 주어진 것이다. 언약의 체결과 언약의 성취는 하나님과 언약 당사자인 인간과의 관계 하에서 구현되지만 결코 언약을 맺은 쌍방간의 대등한 관계, 또는 행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것이다.
둘째 ‘새 언약’ 역시 ‘옛 언약’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와 그의 백성 사이에 존재한다. 즉 ‘새 언약’ 역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전제로 주어진 것이다.
셋째 ‘새 언약’ 역시 ‘옛 언약’과 마찬가지로 은혜와 약속의 성취 과정 중에 있는 것이며 이전 언약의 모든 약속들, 곧 죄사함, 화해. 회복 등을 포함한다.
넷째 ‘새 언약’ 역시 언약 당사자들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
4. 새 언약에 포함된 구체적인 약속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한 자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은 렘 31:31-34에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 언약은 옛 언약을 완전히 이루실 능력을 지니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새 언약에 함의된 약속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면서 주신 죄씻음의 약속이 있다(마 26:27-29 ; 막 14:24,25 ; 눅 22:20 ; 히 8:10-13 ; 13:20).
이는 하나님은 성도의 하나님이 되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성도들이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다 주를 알며, 그들의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모두 씻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히 8:10-13).
둘째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시기 전과 숭천 직전에 주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이란 약속이 있다(눅 24:49 ; 요 14:16,17,26 ; 15:26 ; 16:13-16 ; 행 1:4,5,8).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숭천하신 후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심령에 내주하게 하시고 그들을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할 능력을 공급하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셋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 역사를 완수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말, 곧 심판의 날 다시 오시리란 재림의 약속이 있다(마 16:27 ; 23:31 ; 26:64 ; 요 14:2,3 ; 계 22:12).
이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 숭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히 1:3)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재림하시어 사탄을 멸하시고 성도들을 온전히 구원하시고 다스린다는 내용이다(마 25:41 ; 히 9:28 ; 계 19:11-16).
5. 성도와 새 언약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모든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어 복을 주기 위하여 맺어 주신 것이다. 최초로 맺어진 선악과 언약(창 2:16,17) 이후 모든 옛 언약도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가 융해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된 본성과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 육신의 한계로 인하여 이러한 모든 언약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새 언약이다. 옛 언약 역시 구원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새 언약의 예표라는 점에서 옛 언약의 당사자였던 구약 선민들도 복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의 토대 위에 세워진 새 언약은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완전한 인격적 연합을 이루며 절대 실패없는 구원으로 이끄는 영광스러운 언약이다.
우리 신약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새 언약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 앞에는 과거 이스라엘이 걸을 수밖에 없었던 실패의 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두셨으며 성령의 은혜로운 인도와 능하신 도움이 함께하는 새 언약의 길이 놓여져 있다. 과거 옛 언약의 시대에 사람들은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축복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언약적 요구를 도무지 이룰 수 없었으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 스도께서 성육신하사 언약적 요구를 온전히 이루심으로 새 언약의 시대를 여신 것이다. 참으로 새 언약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을 허락하시고 성령의 인치심과 권능으로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며 자발적으로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이다.
이 진리를 바울 사도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처럼 온전한 언약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그 언약이 지금도 능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의 삶의 현장에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죄의 권세와 사망의 질곡을 이기시고 불순종의 영을 굴복시키시며 이미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진 새 언약의 은혜에 감사하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새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출처 ; 옥스퍼드 주석. pp. 190-194.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할 새 언약(예레미야 31:31-34)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입니까?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고 지금은 무엇을 하십니까?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깁니까? 이런 질문은 생명 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나의 겉과 속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모습입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 집을 위해 맺겠다고 하신 새 언약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 속으로
1. 하나님은 언젠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새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언약을 맺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1-32절)
31-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옛 언약이 있을 것입니다. 옛 언약은 무엇일까요?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이라는 것으로 보아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이 옛 언약 곧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새 언약을 맺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씀이 보여주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옛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남편”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봅시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를 부부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호세아서를 들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호세아의 아내인 고멜로 비유합니다.
결혼 예식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무엇일까요? 바로 서약입니다. 서약 후에 결혼을 공표하는 것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신랑 신부가 주례자 앞에 서약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서약하는 것입니다. 서약의 내용도 중요한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상황이든 서로 간에 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옛 언약인 율법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고 순종해야 할 도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도리를 깨뜨렸습니다. 마치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음란한 자처럼 말입니다.
언약의 당사자 모두가 신실해야 언약이 유지되는데, 한 쪽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에 신실하지 않으니 옛 언약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과 새 언약을 맺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새 언약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간절한 바람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남편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아내입니까?
2. 하나님이 이스라엘 집과 맺으실 새 언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33절)
3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집과 맺으실 새 언약의 내용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입니다.
새 언약의 내용과 관련해서 특이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새 언약의 내용이 너무 간단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옛 언약인 율법의 내용은 얼마나 많습니까? 출애굽기부터 시작해서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조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은 왜 이렇게 간단할까요?
그 이유는 새 언약의 강조점이 옛 언약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엣 언약에서는 율법 조항 하나하나를 강조했다면 새 언약은 마음 자세를 강조합니다. 사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무관한 언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말씀하신 ‘나의 법’은 바로 율법을 가리킵니다. 새 언약에는 율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 ‘나의 법’ 곧 율법을 마음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옛 언약에서는 율법이 돌판(십계명)에 기록되었거나 두루마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에서는 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언약의 초점이 언약의 당사자이자 언약에 따라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자세에 맞추어져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순종하던 그들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셨고 중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충실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어 두 번째 특이점으로는 새 언약의 내용이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시면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시고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관계가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깊고 인격적인 관계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많은 부부가 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얼마나 될까요? 뜨겁던 감정은 식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마저 사라진 채 껍데기만 걸치고 살아가는 부부가 적지 않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아니 사실 훨씬 더 안 좋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전 제사도 드리고 절기도 지켰지만 삶 속에서 율법을 준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정말 형식적인,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관계로 지내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더 열렬히 사랑하고 아끼는 그런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고 예배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형식적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예배해야 합니다. 과연 지금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나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습니까?
근래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충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3. 이스라엘 백성이 새 언약을 잘 지켜 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34절)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새 언약을 잘 지켜 행하면,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행하면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에게 “너는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몇 명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식적이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행하면, 나를 넘어서 내가 속한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소망하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언약에 신실했을 때 나타나는 첫째 결과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결과는 하나님이 그들의 악행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율법을 행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고 그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놀랍도록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죄 용서에 대해서 자주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잊고 지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늘 죄를 범하며 삽니다. 만일 우리가 그 모든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얼마나 큰 벌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도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러므로 형식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죄 용서의 은혜를 받고 약속된 복을 누리는 최고의 길입니다.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보십시오.
한 주간의 실천/ 찬송가 218장 가사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 쓰기
마무리하며
언약은 언약을 맺은 당사자 모두가 충실할 때 의미와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는 새 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출처 ; 설교자를 위한 복있는 사람(2020년 7,8월호. Vol. 22). pp. 214-217.
하나님의 새 언약
본문 이해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새 언약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를 통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새 언약을 선포하셨다. 새 언약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그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은 이스라엘의 악함으로 파기되고 말았다. 이에 비해 새 언약에는 이스라엘의 악함을 극복하는 약속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법을 돌 판이 아닌 백성들의 마음에 새기신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시며,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그 질서가 유지되는 한 새 언약도 파기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설교 방향
'하나님의 새 언약에 대해 설교할 수 있겠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 올 것과 그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울 것을 약속하셨다. 첫째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그 법을 백성들의 마음에 새길 것을 약속하셨다.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다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옛 언약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제한적이고 희미했지만, 새 언약 아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비밀이 온전하게 밝혀진다. 셋째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악행을 사하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언약의 피를 흘리심으로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
서론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었습니다. 우리도 이 새 언약 아래서 살고 있는데, 그렇다면 새 언약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새 언약은 마음에 새겨집니다.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는 돌 판에 하나님의 법을 새겼습니다. 이스라엘이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받았지만 그들의 악함으로 인해 그 법에 순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돌 판이 아닌 마음에 새겨집니다. 이는 백성들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우리도 돌 판을 받은 이스라엘처럼 악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소원으로 품게 하시고, 그 뜻에 순종하도록 도우십니다(빌 2:13). 이 은혜를 의지하여 적극적으로 주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둘째, 새 언약을 통해 모든 성도가 온전한 지식을 가집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입니다. 옛 언약과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렴풋하게 알려졌습니다. 몇몇 사람만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 시대에는 비밀로 감추어졌던 것들이 온전히 밝혀졌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비록 지극히 작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구약의 그 어떤 위대한 자보다 더 온전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계속해서 온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영광스럽고 기쁘게 되길 바랍니다.
셋째, 새 언약 아래서는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에 거치적거리는 것입니다. 그런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순종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언약의 피를 흘리셨습니다(마 26:27-28).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친히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붙들고 더욱 담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의의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결론
새 언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소망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약속의 성취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일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 죄 용서를 확신하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헌신하기 바랍니다. 이 현신들을 통해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출처: <청지기>
값싼 은혜는 없다.
[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상처 치유를 부르짖기 전에 자신의 죄를 먼저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는 자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재건하십니다.
질문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5)
값싼 은혜는 없다(12-17) 예루살렘과 유다는 치료할 수 없는 환자처럼 하나님의 혹독한 징계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원수가 당해야 할 고난과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왜 심판을 당하는지 생각하고 시인하며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값싼 용서는 값싼 은혜를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는 죄에 대한 분명한 시인과 회개가 있을 때 더 깊고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값싼 은혜가 당장에는 좋아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영혼을 망치게 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눈물은 죄로 얼룩진 상처에 새 살이 차 오르게 합니다.
값싼 용서, 값싼 은혜, 값싼 복음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질문 ;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건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19, 21)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리라(18-22)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폐허가된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은 재건되어 예전 모습을 되찾을 것입니다(18). 예전 영화가 회복되어 많은 주민이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19). 예루살렘과 유다를 괴롭히던 자들은 여호와의 징계를 받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세우실 통치자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는 죄를 회개치 않고서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합니까?
너희가 깨달으리라(23-24)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이스라엘에게는 은혜가 내리지만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악인들에게는 진노가 쏟아집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을 이루기까지 이 진노를 결코 거두지 않으십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 백성의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회개치 않는 악인,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진정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악인에게 어떤 진노가 내려집니까?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하나님의 징계(12-15절) ;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잔인한 징계를 받았다.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나 주가 말한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가 맞은 곳은 치유되지 않는다.
13.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네 송사를 변호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네 종기에는 치료약이 없으며, 너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그래서 너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너를 잊고, 더 이상 너를 찾아오지 않는다. 네 죄악이 크고 허물이 많기 때문에, 내가 원수를 치듯이 너를 치고, 잔악한 자를 징계하듯이 너를 징계하였다.
15.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상처를 입었다고 부르짖고,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고 호소하느냐? 네 죄악이 크고 허물이 많아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15) 심판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왜 심판을 당하는지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회복(16-24절)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16.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그러나 이제는 너를 삼켰던 사람들도 모두 삼킴을 당하고, 네 원수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 갈 것이다. 이제는 너를 약탈한 사람들이 약탈을 당하며, 너를 탈취한 모든 사람이 탈취를 당하게 하겠다.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비록 사람들이 너를 보고 시온은 쫓겨난 여자요,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인이다! 할지라도, 진정 내가 너를 고쳐 주고, 네 상처를 치료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야곱의 장막들을 회복하여 놓고, 야곱의 거처를 불쌍하게 여겨, 폐허의 언덕에 다시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다시 제자리에 세우게 하겠다.
19.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그들로부터 감사의 노래가 터져 나오고, 기쁨의 목소리가 퍼져 나올 것이다. 내가 그들을 번창하게 할 것이니, 그들의 수가 줄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할 것이니, 그들이 멸시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20.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그 자손이 옛날과 같이 회복되고, 그 회중이 나의 앞에서 굳건해질 것이다. 그를 억압하는 모든 사람을 내가 벌하겠다.
21.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의 지도자가 같은 겨레 가운데서 나오고, 그들의 통치자가 같은 민족 가운데서 나올 것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그는 나에게 가까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에게 가까이 올 수가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23.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칠 것이라
주의 진노가 폭풍처럼 터져 나온다.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악인들의 머리를 후려친다.
24.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주께서는 마음 속에서 뜻하신 바를 시행하고 이루실 때까지, 그 맹렬한 진노를 그치지 않으신다. 마지막 날에야 너희가 이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
본문 ; 예레미야 30:12-24
찬송 ; 264장, 정결하는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본문 이해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겪었던 위기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하셨다. 이는 그들의 악행과 죄 때문이다(12-15).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바벨론 포로라는 끔찍한 고통을 주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 가운데 버려두지 않고 회복시키실 것이다(16-22).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예전과 같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20).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신 결과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은 즐거움을 얻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설교 방향 - 대지형 설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설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셨는가? 첫째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악으로부터 지키셨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악행을 저지르고 죄를 지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죄에서 지키기 위해 잔인한 징계를 내리셨다. 둘째 대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셨다. 대적자들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패망케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대적자들을 망하게 하셨다(16).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예전과 같이 굳게 설 것이다.
서론과 우산질문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보면 하나님께서 과연 이스라엘을 지키셨는가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에 빠졌습니다. 거룩함을 읽어버린 것입니다. 죄의 끝은 하나님께 심판 받는 것이고 완전히 필망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완전한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잔인한 징계 곧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었습니다. 잡혀가 있는 동안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자기 백성을 죄와 멸망으로부터 지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와 악을 고집한다면, 우리도 그런 상처와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 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며 심판과 징계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죄와 싸우면 됩니다.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하는 하루 되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대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악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예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대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지만 대적들은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20). 지금도 교회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상이나 문화, 제도 등으로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교회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확신하기 바랍니다.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더욱 순종하기 바랍니다.
결론과 도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고 마침내 회복시키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제목 ; 값싼 은혜, 값싼 복음이 아닌 참된 은혜와 복음 안에 머물게 하소서.
출처 :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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