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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비아돌로로사 : 심문 -사형언도

by 은총가득 2020. 11. 18.

빌라도와 헤롯 앞에 서신 그리스도(누가복음 23:1-12)

 

예수님의 이동 경로 ; 대제사장 집(22:54) -> 산헤드린 공회(22:66) -> 빌라도(23:1) -> 헤롯(23:8) -> 빌라도(23:11)

예수님을 대하는 자들의 행태가 다양하다.

/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은 자신들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잡아들였다.

/ 빌라도는 자신이 총독으로서 직임을 수행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오래 전부터 예수를 보고자 하였으나 보질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가 일으키는 어떤 표적을 보고 싶어하였기 때문에 기뻐하였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 버린다.

/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당일 아침,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빌라도에게로, 이어서 헤롯에게로 끌려 다니시며 온갖 조롱을 받으십니다.

[ 질문 1 ] 산헤드린 공회가 빌라도에게 고발한 예수님의 세 가지 죄목은 무엇인가?(2절)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 세 가지 죄이다.

왕의 선언(1-7) 산혜드린 공회는 사형 집행권이 없습니다. 로마 총독에게 그 권한이 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끌고 총독 빌라도에게로 갑니다(1).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죽여야하는 세 가지 이유를 빌라도에게 고합니다. 백성을 미혹했다는 것,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 자칭 왕 즉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것 등입니다. 백성들이 미혹되어 민란을 일으킨다면, 로마에 대한 세금 납부 반대 데모가 일어난다면, 로마 황제의 왕권을 부정하고 다른 왕을 섬기자는 운동이 일어난다면, 로마 총독인 빌라도 입장에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공회는 그런 점을 노리고 예수님의 죄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이 모든 것이 유대인들끼리의 종교적 문제라고 판단하고 단 한 가지 질문만 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진짜 왕이신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3) 빌라도는 정치적 왕이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왕권을 가진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당신의 왕이십니까?"

[ 질문 2 ] 헤롯은 예수님이 자기 앞에 끌려 왔을 때 왜 기뻐하였는가?(8절)

왕의 침묵(8-12) 빌라도가 보기에는 예수님께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고소를 종교적 갈등의 결과쯤으로 생각했습니다(4). 하지만 무리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지라 갈릴리 사람인 예수님을 당시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혜롯에게로 보냅니다. "너희들의 문제이니 너희들끼리 문제를 해결해 보라"는 뜻입니다. 헤롯은 말로만 듣던 예수님을 만나니 기뻤습니다. 자기의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기적이라도 하나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8). 그래서 예수님께 여러 가지 질문을 해대지만 우리의 왕은 침묵하십니다(9),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며 떠들어대도우리의 왕은 침묵하십니다(10), 군인들이 예수님을 희롱해도 묵묵히 당하기만 하십니다(11). "내가 그리스도다"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왕이 우리를 대신하여 묵묵히 고난을 당하시고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시는 왕,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나를 위해 왕이 고난을 당하고 죽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심정을 갖고 있습니까?

[ 본문 개요 ]

산헤드린 공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사형 집행을 위해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빌라도는 심문해 보았지만 뚜렷한 죄목을 찾지 못했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헤롯 왕에게 보내 버린다.

억지로 죽이려고 하는 무리들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빌라도도 문제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23:1-25까지의 세 문단에서는 예수께 대한 심문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먼저 23:1-7의 문단은 빌라도가 예수를 1차로 심문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먼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정죄했던 것과는 달리 정치적 범죄 곧 반란죄로 고소한다(1,2절).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였으나 죄를 발견치 못하자 난감해한다. 그러던 중 예수께서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마침 그 때 예루살렘에 와 었던 갈릴리 분봉왕 헤롯에게로 예수를 이송한다.

이어 23:8-12은 마태와 마가는 생략한 누가만의 고유한 기록으로서, 헤롯이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과 빌라도에게로 재이송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8-12절까지는 헤롯 왕 앞에 서신 예수님의 재판을 기록하는 부분으로서 누가만이 기록하고 있다. 헤롯 왕은 혜롯 대왕의 아들이며 갈렬리 지역의 분봉왕으로서 세례 요한을 죽인 자였다. 그는 일찍이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예수의 재판보다는 그의 기적에 더 관심을 보였다(8절).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한 기적도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여겨 희롱한 후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헤롯이 어떠한 판결도 없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죄함이 헤롯에 의해 다시 한 번 입증된 사건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이어 23:13-25은 빌라도의 2차 예수 심문 과정을 보도하고 있는데,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면서도 광분한 무리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예수께 사형을 언도한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 복있는사람, 2018년 3,4월호 ]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그들 온 무리가 일어나서, 예수를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본래 총독의 근무처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나 그 때는 유월절이라 예루살렘에 있었다. 예수님은 새벽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 받으신 후, 빌라도 앞으로 끌려가셨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형을 결정할 권한이 없으므로 빌라도의 힘을 빌어 사형 집행을 하기 위함이었다. 로마에 반역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집행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그들은 예수를 고소하기 시작했는데, 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이 우리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2절의 내용은 누가만이 기록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산헤드린의 고소 내용을 보여 준다.

그들의 고소 내용은 원문을 볼 때 3개의 동사로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혹하다’는 뜻의 ‘디아스트레폰타’, ‘금하다’는 뜻의 ‘콜뤼온타’, 그리고 ‘~하더이다’라는 뜻의 ‘레곤타’이다. 이 단어들은 모두 현재 분사로 이루어져 이러한 행동이 이 말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갖게 한다.

이 단어들을 합쳐서 한 문장으로 그들의 고소 내용을 정리하면 ‘이 사람은 백성을 미혹하여 세금을 내지 않게 하고 자기 자신이 왕이라고 말하여 왔다’는 것으로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미혹하고’로 번역된 ‘디아스트레폰타’는 ‘유혹하다’, ‘잘못된 길로 인도하다’의 뜻을 지닌 ‘디아스트레포’의 현재 분사형이다. 참 진리를 볼 수 없도록 영적인 눈이 가리워진 그들에게 예수는 백성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자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두번째는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본서 20:25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세금을 납부했었음을 볼 수 있다(마 17:27).

마지막은 자칭 왕이라고 했다는 죄목이었는데, 그동안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추앙하려던 군중들을 피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자신의 신적 사역에 대해 가르쳐 주셨던 예수의 행적과는 전혀 관계없는 항목이었다.

결국 산헤드린 회원들이 고소한 죄목들은 예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누가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산헤드린 회원들의 완악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와 대조되는 예수님의 무죄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로마를 대적하여 민란을 일으킨 정치범으로 매도하고 있으나 이러한 고소 내용은 그를 사형시키기 위해서 산헤드린 의회에서 고민 끝에 고안된 고소문일 뿐 사실은 아니었다.

실제로 산헤드린 자체에서는 예수를 종교적 범죄인 신성 모독죄로 정죄하였으나(눅 22:70.71) 총독 빌라도에게 있어서 이것은 죄가 되지 않으므로 산헤드린 회원들은 로마인들이 가장 싫어하며 빌라도도 방관할 수 없는 국가 반란이란 얼토당토 않는 조작된 죄목을 들어 예수님을 고소하였던 것이다.

실로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정치 지도자들이었으나 자신들이 원했던 목표를 이루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예수께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하고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도다"는 2인칭 단수 대명사 ‘쉬’와 ‘말하다’(요 8:25)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의 2인칭 단수 현재형 ‘레게이스’가 사용되어 직역하면 ‘네가 말하고 있다’이다. 곧 원어 성경의 표현을 달리 표현하면 ‘네가 말하고 있는 그대로이다’로 의역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어 성경의 표현은 예수께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을 직접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강하게 시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이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면서 그를 고소했던 내용인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란 사실을 그대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면서 자신을 메시야로 주장했다는 종교적 죄목이 아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반체제적인 발언을 했다는 죄목으로 고소했던 것이다(요 18:34,35),

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죄가 없다’는 말은 예수님이 산헤드린이 작성한 고소문과 같은 결과를 일으킬 만한 원인적 범죄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빌라도는 산헤드린의 고소가 종교적 문제에서 야기되었음을 깨달았고 그들의 법으로 재판할 것을 명령하였다(요 18:31). 그리고 빌라도는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본절의 선언이 재판장으로서 확신에 찬 선언은 아니었다. 단순히 민감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피지배 민족의 종교적 논쟁에 참견하지 않으려는 당시의 로마 관리들의 일반적 처신 방법 때문이었다(행 23:28,29).

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그러자 그들은 강경하게 "그 사람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며 가르치면서, 백성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6.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서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이오?" 하고 물었다.

빌라도가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라고 말한 것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의 감정이 가득찬 어투이다. 사실 5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발견하고 무고한 예수를 재판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러던 차에 무리의 고소 내용 중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5절)라는 말을 듣자 빌라도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1차적 재판권은 그 지역의 분봉왕에게 있었다. 빌라도는 껄끄럽게 여기던 예수의 재판을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분봉왕 헤롯에게 맡길 만한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빌라도의 책임 회피적 마음과 헤롯의 호기심이 일치함으로 전에는 적이었던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예수님을 재판하게 되었다(12절).

여기서 갈렬리 사람에서 ‘사람’으로 번역된 ‘안드로포스’는 호칭으로 사용될 때는 매우 경멸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이는 남자를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녀석, ‘놈'이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절은 ‘저가 갈릴리 촌놈이냐’라는 뜻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비상구를 발견한 빌라도의 기쁨이 담긴 탄성과 아울러 예수님과 갈릴리 지역을 비하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그는 예수가 헤롯의 관할에 속한 것을 알고서, 그를 헤롯에게 보냈는데, 마침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었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갈릴리의 영주인 헤롯 안디바도 예루살렘을 순회하러 왔다가 예수님의 재판에 관여했다. 빌라도가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낸 이유는 그 사건을 헤롯에게 떠 맡기려 했기 때문이다.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헤롯은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오래 전부터 예수를 보고자 하였고, 또 예수가 일으키는 일에서 어떤 표적을 보고 싶어하였다.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B.C.20-A.D.39)이며, 세례 요한을 죽인 인물로서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다. 당시 분봉왕이란 로마 황제가 식민지 백성의 반발을 우려해 식민지의 왕족 중에서 일정 구역을 관할하도록 임명한 왕으로 실제 통치 권한은 그 지역의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

헤롯이 기뻐한 이유 ; 이적 행함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에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그래서 그는 예수께 여러 말로 물어 보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곁에 서 있다가, 예수를 맹렬하게 고발하였다.

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은 자기 호위병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였다. 그런 다음에,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

‘빛난 옷‘으로 번역된 ‘에스데타 랍프란’은 당시 유대의 왕이나 로마의 귀족들이 특별한 행사를 축하할 때 입었던 망토로서 은실로 짠 옷이었다. 혜롯은 예수가 왕이라는 주장에 따라 왕이 입었던 옷과 같이 빛이 나는 옷을 입히고 왕이라고 부르면서 예수를 희롱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에 나오는 왕자의 경우와 홉사하다. 단지 왕자가 거지 옷을 입었다고 무시하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희롱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은 로마의 군병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막 15:17).

헤롯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다시 돌려보낸 사건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여기서 ‘보내니’로 번역된 ‘아네햄프센’은 빌라도가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낼 때도 사용한 단어로서(7절)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된 단어이다. 즉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사형에 해당할 만한 죄가 없는 고로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냈고 헤롯 또한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특별한 죄목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냈던 것이다.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한 것은 예수님에 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자신이 가졌던 기대와 호기심에 부응하지 않는 예수님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헤롯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무죄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원수였으나, 바로 그 날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이것은 세상 왕들과 통치자들이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이에 대해 음모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는 시편 2:1-2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행 4:25-28).

빌라도 앞의 예수 그리스도 / 미하이 문카치(Mihaly Munkacsy) / 헝가리 / 1844~1900년

빌라도와 헤롯 앞에 서신 그리스도 ( 23:1-12 )

종교적인 법정에서 주 예수에게 신성모독 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으나 사형에 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방도를 취했다.

1. 빌라도에게 고소함(1-5)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 그리고는 예수를 처벌해 달라고 하였다. 그때 그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하지 않고(왜냐하면 빌라도는 그런 것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죄로 고발했다. 그들은 속으로는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죄는 전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 예수에 대한 고소 내용:그들은 예수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다. ①백성들로 하여금 가이사를 반역하게 했다. 로마 통치 하에 있는 백성들에게 불만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며 빌라도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빌라도로 하여금 이 예수가 백성들의 불만을 조장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2절).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백성들에게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지금 그를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했다고 거짓 고발한 것이다. 깨끗한 양심은 중상모략에 대항하지 않는다. ②가이사에게 대적했다. 그들이 예수를 배척한 이유는 바로 그가 가이사에게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예수가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사실을 고발한 것이다.

2) 고소 내용에 대한 변호:빌라도는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다(3절). 그 질문에 대해 "네 말이 옳다"고 답변하셨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가이사의 통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예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가이사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유대인의 왕 노릇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3) 빌라도의 무죄 선언: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4절).

4) 고발한 사람들의 계속되는 소란:빌라도가 무죄를 선언하자 그들은 누구러지지 않고 더욱 흥분해서 굳세게 말했다. 그들에게는 내세울 만한 특별한 근거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소란을 피우고 계속 우김으로써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5절). 그는 백성을 소동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칭찬할 만한 일을 위한 것뿐이었다. 그는 백성을 가르쳤다. 그러나 공공 질서를 해치는 교훈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그를 고발할 수는 없었다.

2. 헤롯에게 고소함(6-12)

1) 빌라도는 예수와 그의 소송을 헤롯에게 넘겼다.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지방 사람이냐?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고 빌라도가 물었다(6절).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헤롯 관할이니 헤롯에게로 보내자"고 빌라도가 말했다. 빌라도는 그 사건 때문에 골치가 아팠으며 그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싶어했다.

2) 헤롯은 기꺼이 예수를 심문했다(8절). 헤롯은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했다. 그는 갈릴리에서 예수의 소문을 들었으며 예수를 보고 싶어한지 오해였다. 그러나 그것은 호기심 때문이었으며 또한 이적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으며 또한 이적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여러 말로 물었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셨다. 그뿐 아니라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헤롯을 만족시키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고난에서 건짐받기 위해 이적을 바랐던 자는 아무리 하찮은 거지라도 결코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거만한 왕은 거절당한 것이다. 그는 갈릴리에서 그리스도와 그가 베푸시는 이적들을 볼 수도 있었다. 이제 이적들을 보려고 하지만 보여 주시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헤롯은 자기가 청함받은 날을 몰랐기 때문이다. 주님은 값싸게 기적을 행하시지는 않으며, 아무리 위대한 군주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예수를 고소한 자들이 헤롯 앞에 등장했다. 그들은 서서 예수를 힘써 고소했다(10절). 그 말에는 뻔뻔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4) 헤롯은 예수에게 심한 모욕을 주었다. 그는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겼다. 그 말은 예수를 멸시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를 힘을 다 잃고 이제는 보통 사람과 똑 같이 무력해진 사람처럼 취급하며 비웃었다. 헤롯은 빌라도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를 모욕했다. 헤롯은 왕이라고 조롱하려고 빛난 옷을 예수에게 입혔으며 나중에 빌라도의 군사들도 같은 모욕을 주도록 가르쳤다.

5) 헤롯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으며 이로써 그들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헤롯은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낸 것이다(11절). 그렇게 함으로써 빌라도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같이 서로 좋게 생각하게 되었다(12절). 전에 그들은 서로 원수였다.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는 자들이 예수를 대적하는 데는 하나가 되는 방법을 잘 살펴 보라.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시다. 빌라도와 헤롯은 둘 다 예수의 무죄를 인정했다. 여기서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다른 곳에서 가졌던 불화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주석

 

 

빌라도의 사형 언도-여론 재판(누가복음 23:13-25)

 

우리나라 진보세력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정치인들의 목적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다. 이것이 그들의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그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들은 목적을 이루기까지 묻어두고 넘어가자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그래서 그들이 저지러는 입시 부조리, 금융 사기 사건, 부정 선거 등 모든 문제는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공정하지 못해도, 부정직해도, 정의롭지 못해도 괜찮다고 하면 미화 시킨다.

더 큰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발생하는 조그마한 문제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이 선하기에 방법은 정의롭지 않아도 된다고 상각한다.

이스라엘 군중들도 이러하였다.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인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그마한 부당함은 묻어 넘어가자는 것이 그 당시 지도자들의 의도였다. 예수를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나바를 살려주는 것도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들의 소리, 여론이 빌라도를 이긴지라(43절)"는 말씀이 오늘 새벽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 교회에 바쁘게 가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가는 도중에 교통규칙을 조금 어기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유혹들이 우리를 넘어뜨린다. 이것이 마귀들의 전략임을 알고 올바르개 대처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을 갖도록 하자.

[ 성경묵상 ]

23:1-25까지의 세 문단에서는 예수께 대한 심문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먼저 23:1-7의 문단은 빌라도가 예수를 1차로 심문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먼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정죄했던 것과는 달리 정치적 범죄 곧 반란죄로 고소한다(1,2절).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였으나 죄를 발견치 못하자 난감해한다. 그러던 중 예수께서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마침 그 때 예루살렘에 와 었던 갈릴리 분봉왕 헤롯에게로 예수를 이송한다.

이어 23:8-12은 마태와 마가는 생략한 누가만의 고유한 기록으로서, 헤롯이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과 빌라도에게로 재이송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이어 23:13-25은 빌라도의 2차 예수 심문 과정을 보도하고 있는데,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면서도 광분한 무리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예수께 사형을 언도한다.

13-25절까지는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마지막 재판이 기록된 부분으로서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 님의 무죄성을 공적으로 선언했으나 차라리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는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13-19절).

두 번째는 다시 예수를 석방하고자 하는 빌라도의 두 번째 시도가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무리의 강한 요구에 의해 좌절된다(20,21절).

세번째 역시 사형에 해당하는 예수의 죄를 찾지 못함으로 때려서 놓겠다는 빌라도의 의사가 무리의 큰 반발(여론)로 꺾이게 되고(22,23절) / 여론(23절, 그들의 소리)이 빌라도를 이기다.

결국 마지막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24,25절).

누가는 이러한 내용의 전개 가운데 빌라도의 심정 변화를 잘 묘사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재판이 무죄한 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한 잘못된 재판임을 매우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누가는 빌라도가 공정한 재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해 사형을 선고한 것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언뜻 그에게는 이 재판 결과에 대한 책임이 없어 보일 수 있는 오해를 막고 있다. /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여론을 형성한 후 여론 재판을 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묵상결과 정리) -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23절).

[ 질문 1 ] 군중들이 예수님 대신에 유월절 특사로 풀어 달라고 한 사람은 누구인가?(18절)

[ 질문 2 ]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사람은 누구인가?(26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모아 놓고서,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이 사람이 백성을 오도한다고 하여 내게로 끌어 왔으나, 보다시피, 내가 당신들 앞에서 친히 신문해 보았지만, 당신들이 고소한 것과 같은 죄목은 아무것도 이 사람에게서 찾지 못하였소.

예수님의 무죄성은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구약 제사에서 홈없는 어린양만이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있었듯이 죄없는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생 제물인 홈없는 어린 양의 예표이신 죄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자신의 모든 죄를 단번에 용서받게 되고 한없는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무죄성은 십자가의 죽음에 있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무죄함을 빌라도, 헤롯, 빌라도의 아내, 가룟 유다, 십자가상의 한편 강도, 십자가 처형을 주도했던 백부장의 입을 통해 거듭 우리에게 증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음의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은 홈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대속 제물이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정작 예수의 대속의 죽음의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무죄함에 대해 보고 들은 사람들 가운데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의 사건이 아무런 생명이나 능력이 될 수 없다(고전 1:18). 구원의 주님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목격했지만 마음에 모시지 못한 그들의 어리석음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반복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헤롯도 또한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를 우리에게 도로 돌려보낸 것이오. 이 사람은 사형을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소.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했다. 그렇다면 때리겠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했다. 선동적인 군중의 힘에 타협하는 모습이, 자신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그러므로 나는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 주겠소."

17. (없음)

(17절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그러나 그들은 일제히 소리 질러 말하기를 "이 자를 없애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시오" 하였다.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바라바는, 성 안에서 일어난 폭동과 살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이다.-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주고자,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그러나 그들은 "그 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빌라도가 세 번째 그들에게 말하였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나는 그에게서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그를 매질이나 해서 놓아 줄까 하오."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그러나 그들은 마구 우기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큰소리로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소리가 이겼다.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는 말은 '여론 재판'을 했다는 의미이다.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빌라도는 마침내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그래서 그는 폭동과 살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놓아 주고, 예수는 그들의 뜻대로 하게 넘겨 주었다.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한 구레네 사람을 붙들어서,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 복있는사람, 2018년 3,4월호 ]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 / 얀 베게르트(Jan Baegert) / 독일 / 1465~1535년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 23:13-25 )

여기서 복되신 예수는 군중들의 소요에 휘말려 십자가에 달리게 된다.

(1) 빌라도는 예수가 사형을 받거나 구속당할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가 그렇게 믿었다면 그는 곧 예수를 석방해야만 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악인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이 화가날까봐 염려했다. 그러므로 완전을 기하려고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듣고자 하였다(14절). "너희가 이 사람을 내게 끌어 왔도다.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 심문하였으며 너희 모두 이 사람에 대해서 주장하는 바를 들었으나 나는 도저히 그것을 납득할 수가 없다. 즉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2) 빌라도는 헤롯도 같은 생각임을 백성들에게 호소한다(16절).

"내가 너희를 헤롯에게로 보냈으며 헤롯은 예수를 도로 보냈다. 헤롯은 예수가 사형받을 만한 죄는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헤롯은 예수를 무력한 자라고 비웃었으나 위험 인물이라는 낙인을 찍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사형장보다 정신병원이 더 어울린다고 빌라도는 생각했다.

(3) 빌라도는 백성들이 찬성하기만 하면 예수를 놓아 주려고 했다.

백성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이 일을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 올무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소란이 생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의를 행하려고 한다.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빌라도는 첫째로 죄수 한 명을 부득이 놓아 주어야 하므로 죄수라는 명목으로 예수를 놓아 주려고 했다(17절). 둘째로 빌라도는 예수를 때려서 놓으려고 했다.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다면서 왜 그를 때려야만 하는가?

(4) 백성들은 차라리 바리바를 놓아 달라고 한다.

바라바는 성 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 때문에 옥에 갇힌 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보다 이 범죄자에게 우선권을 준 것이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조서(18,19절).

(5) 빌라도가 두 번째 그리스도를 놓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소리쳤다.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20,21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저를 십자가게 못 박게 하소서."

(6)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자 그들은 더욱 포악해졌다(22절).

"무엇때문인가?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는가? 그의 죄목을 대라. 나는 그를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큰 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들에게 죄인을 놓아 주고 결백한 자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7) 빌라도는 마침내 포기한다.

백성과 대제사장들의 소리가 이긴 것이다. 빌라도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언도했다(24절). 바라바를 놓아주는 악한 상황과 함께 이 내용이 다시 한번 나온다. 민란과 살인을 위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 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25절). 저희 뜻대로 하게 예수를 넘겨준 것 보다 더 잔인하게 예수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출처 ; 메튜헨리주석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