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을 마치고 베다니로 가셨다.
(막11: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 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1. 문둥이 시몬의 집.
예루살렘을 둘러보시고 베다니로 돌아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유숙하였다. 문둥이 시몬으로 나타나는데 현재 나명환자인 시몬이 아니고 전에 나병환자였는데 고침을 받은 사람이다. 왜냐 하면 당시 나병이 걸리면 마을이나 가족과 함께 살수 없고 식사는 더욱이나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전에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고침을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자기 집으로 모신 것이다.
시몬은 전에 은혜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린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도 베다니 마을에 있었다. 그런데 시몬이 자신의 집으로 모신 것은 자신이 제자이기 때문이며 자신도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을 모실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2. 향유를 부은 마리아.
(요 12:3-8)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시몬의 집에 식사 자리에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 그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
이 향유는 나드(דְרְגָ ναδος) 기름이다. 나드 기름은 히말리아 산맥에 자생하는 나드로도 식물에서 짜낸 것으로 수입품이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 그러기에 가룟 유다는 그 귀하고 비싼 기름을 머리에 부어서 허비하는가 생각하고 분노가지 했던 것이다. 아마 유다는 돈을 관리하는 제자로서 그 돈이 매우 아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왜 허비하는가 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번 기회가 마지막 헌신으로 생각 했다. 말씀으로 가르침 받은 은혜, 죽은 나사로 오라비 살린 은혜감사, 특히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알고 죽은 후에 시체에 바른 기름을 죽으실 그리스도 몸에 바른다는 마음에서 드렸기에 그에게는 허비하는 것이 아니고 또 여성으로서 향유는 최고의 가치 있는 것이고 또 300데나리온의 가치는 마리아의 가정 형편으로서는 대단히 큰 돈이다.
옥합을 깨뜨렸다고 했는데 옥합은 알매바스트론(αλμαβαστρον)옥합인데 흰색 석회석으로 된 광석 병이다. 역시 옥합도 귀한 병이고 가치 있는 고급 병이다. 그리고 봉해 둔 것으로 보아 장차 자신에게 소중한 것으로 혹 결혼 때에 쓰려고 봉해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병은 주둥이가 좁은 것으로 깨뜨리면 다시 쓸 수 없다 그러기에 옥합을 깨뜨렸다고 기록한 것이다. 깨뜨린 옥합의 나드는 현 가치로서도 값진 것이며 마리아 여자에게는 소중한 것으로 의미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낌없이 부어 드린 것은 대대에 기억되어야 할 일이기에 주님이 기뻐 받으신 것이다. 옥함을 깨뜨렸다는 말은 자신이 받은 대속의 은혜와 또한 자난 날에 받은 은혜가 가장 값지고 귀하고 소중한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주님의 대속의 죽음의 장사(葬禮)를 위해 드린 예물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속의 은혜가 크고 소중한 것임을 믿는 이 신앙이 천하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전해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마 26:12-13)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3. 분노한 가룟 유다.
(요 12:4-6)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개역](요 12: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어라
가룟 유다는 제자 중에 주님의 돈을 관리하는 제자이다. 주님의 복음 사역에 쓰이는 돈을 관하는 제자이다. 그런데 그는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리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고 했다. 비난의 차원을 넘어서 분노했다고 했다. 비난 하는 것은 마리아의 행위가 합당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분노는 그 이상의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자기의 것으로 주님께 드렸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분노할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자기에 어떤 이권이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것을 재정을 담당한 자신에게 주었으면 더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300데나리온은 노동자 300일 품값이므로 큰돈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자신이 맘먹으면 상당히 유용할 수 있는 돈인 것이다. 이는 헌금궤에 돈도 훔쳐 간자라고 했다. 제자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300데나리온이 자기에게 들어오면 큰 이익을 보기 때문에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어 버리니 아가운 차원을 넘어서 분노하기 까지 한 것이다. 그는 주님을 따라다는 것이 믿음으로가 아니라 이 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속셈은 주님을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긴 행동애서 잘 드러났다. 주님이 죽으시면 회계의 직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돈의 최후의 수단으로 그리스도를 팔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도노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유다의 마음을 아셨던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 것인가. 그 유다의 행위를 보면서도 그를 쫓아 내지 아니하고 두신 이유는 그를 악한 도구로 쓰임 받도록 버려둔 것이다.
교회 안에도 진정한 신앙이 없이 교의 다니는 사람이 있을 수 잇다. 그리고 교회 중직 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주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 있지만 소수의 직분 자들은 자기 이익인 명예 존재감 이권 때문에 일하는 자들도 많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결론
주님은 고난주 첫날에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했다. 그 첫날에 겪으신 일이 백성들로 하여금 환영을 받으신 일이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아픔을 겪으셨고 시몬과 마리아로 하여금 위로의 대접을 받으셨지만 가룟유다의 악행을 엮으셔야 했었다. 첫날은 이렇게 희비(喜悲)의 교차의 날이었다. <가져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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