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복음서 연구

누가복음- 마태복음 족보 비교

by 은총가득 2020. 11. 9.

누가복음족보 마태복음족보 비교

 

(1:1-16; 3:23-38)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베레스→헤스론→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다윗

→솔로몬→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요람→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아비훗→엘리아김→아소르→사독→아킴→엘리웃→엘르아살→맛단→야곱→요셉’으로 총40명

 

 

같아야 할 족보가 왜 사람 숫자도 틀리고, 순서도 틀릴까?

 

마태복음의 첫14명은 누가복음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두 족보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러나 차이점은 족보의 이름들이 서로 다르고, 마태는 생략을 많이 했습니다.

마태의 족보는 한 문단에 14(2x7)인씩 3개의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하향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상향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그 대상이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기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그 대상이 전 세계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비롯해서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메시야인 예수님은 인류에게 중요한 분이시고 인류는 바로 하나님자신에게서 유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록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일 것이라고 볼수 있다.

마태는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누가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나타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수는 메시야이고, 그래서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예수를 인간의 대표로서 다윗/아브라함/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 예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인류의 소망자로 부각시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족보와 누가복음 족보 시대별 정리

신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두 번에 걸쳐 기록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족보가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해 기록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일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각각의 족보를 살피다 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족보에 기록된 인물들의 이름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한 사람(마태복음 1:3의 ‘람’, 누가복음 3:33의 ‘아니’)만 제외하고는 동일하나, 다윗 다음부터 예수의 부친 요셉 이전까지의 이름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에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총 41명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누가복음 족보에서는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그 기원을 하나님에게까지 두며 총 77명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부터 그 이름이 달라지는 이유는 마태복음 족보에서는

다윗 이후 족보의 맥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어가고 있고(1:6),

 

누가복음 족보에서는 다윗 이후 족보의 맥을 솔로몬의 동복 형인

나단(삼하 5:14, 대상 3:5, 14:4)을 통해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3:31).

 

 

이렇듯 서로 같은 듯하면서도 결코 같지 않은 마태복음 족보와 누가복음 족보에 감추어두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은 과연 무엇일까요?

 

 

​1. 마태복음 1장 족보의 특징

 

마태복음 족보는 마태복음을 시작하는 서두에 기록되어 있으며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총 41명을 하향식(자손으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 약 2천 년간의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족보의 시작은 아브라함이요, 끝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전체 세대를 연속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중간에 많은 세대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가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의도된 뜻을 담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렷한 증거입니다.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마태복음 1:17)

 

▶ 마태복음 1장 족보를 해석하는 열쇠인 마태복음 1:17을 볼 때,

마태는 이스라엘 역사를 큰 사건들을 기점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고,

‘14’라는 대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4’는 ‘7’의 두 배수인데, 성경에서 ‘7’은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는 하늘의 상징수인 ‘3’과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땅의 상징수인 ‘4’를 합한 수로, ‘어떠한 뜻이 완성되는 성취의 기간, 가득 채워진 충만, 전체’를 뜻하는 상징수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이면 완전하여 부족함이 없고, 일곱이면 그 자체로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셈족 사람들은 ‘7’의 두 배인 ‘14’를 더욱 무게 있는 수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시대를 14대씩 세 시기로 나누어 42대로 기록한 것은, 각 시기 속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시대적 경륜이 있었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온갖 흥망성쇠의 사건들의 배후에는,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뜻을 정하신 때에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엡 1:4, 3:11, 딤후 1:9). 이처럼 마태복음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의 경륜 속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합 2:3, 막 1:15, 갈 4:2)에 오셨다는 놀라운 진리의 선포입니다.

 

 

2. 누가복음 3장 족보의 특징​

누가복음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는 사건(눅 3:21-22)과 마귀의 세 가지 시험(눅 4:1-13)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브라함 이후 약 2천 년간의 인물들을 다룬 마태복음 족보와 달리 구약 전체 약 4천 년간에 걸친 인물 총 77명(하나님, 예수 포함)을 상향식(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상향(上向)식 구조는 누가복음 족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구조를 취한 이유는 아래와 같은 구속사적 경륜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이 첫 사람 아담까지 올라간 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존재할 모든 인간과 깊은 연대를 맺고 계신 분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아담의 후예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인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마친 것은,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神的起源)’을 증거하는 것입니다(눅 3:23, 38).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첫 사람 아담으로 끝나버렸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여전히 멀리 떨어진 존재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仲保者)로서(요 14:6, 갈 3:19-20, 딤전 2:5, 히 8:6, 9:15) 전 인류를 끌어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엡 2:15-16, 골 1:21-22). 전에 멀리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입니다(엡 2:13).

 

셋째, 예수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인류 구원의 언약을 완전히 성취시키기 위하여 오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누가복음 3:23에서는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요셉의 아들, 목수의 아들로 알려졌으나(마 13:55, 눅 4:22, 요 1:45, 6:42) 사실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으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 족보의 위대한 구속사적 가치는, 언약을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라는 사실을 입증한 데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된 마태복음 족보와 누가복음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맺으신 언약을 따라 모든 시대를 섭리하사,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를 언약의 최종 성취자로 이 땅에 보내셨음과(갈 4:4), 죄악된 인간을 구원 하시고자(롬 3:22, 24, 행 2:21, 10:43, 16:31)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눅 3:22, 4:3, 9, 롬 1:2-4, 눅 1:35, 2:49)이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난제해석) 예수의 두 계보

 

두 가지 계보 모두 예수님의 출생의 배경과 기원을 알기 위한 것

 

성경의 신적 기원과 성경의 무오성을 반박하는 사람들이 공격하기 좋아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 이해되지 않는 난제가 되고 있다. 성경에는 분명히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계보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서로 다른 두 가지 계보가 모두 동일한 한 사람의 계보로 인정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고도 분명한 것이다.

 

요셉 혈통 부각된 마태복음 계보와 마리아 혈통과 위치 부각한 누가복음 계보

 

먼저 마태복음에 기록된 계보는 법적으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는 요셉의 가계(家系)를 나타낸다. 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계보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된 복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요셉의 혈통과 위치가 부각되는 반면, 마리아의 비중이 약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누가복음에서는 인류의 구세주를 뱃속에 잉태하고 출산하는 마리아의 혈통과 위치가 뚜렷이 부각되는 반면,

요셉은 단지 마리아의 남편으로서만 소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만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인 동시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형제요 인자(사람의 아들)로서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요셉과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에 대한 모든 약속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이는 두번째 아담이 되신 예수님과 첫 아담과의 관계성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요셉의 계보는 다윗으로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다윗 왕가의 정통 계보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계보는 다윗의 가문이긴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윗의 아들 중 하나인 나단의 계보를 통한 계보를 보여 주고 있다.

 

 

구약의 예언들을 보면 메시야는 다윗의 혈통에게 태어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삼하 7:12-19, 시 89:3, 4, 34-37; 132:11; 행 2:30; 13:22, 23; 롬 1:3; 딤후 2:8).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이러한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윗 왕가의 정통계보는 아니었으며,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육적인 아버지가 되지 못하였다.

 

 

마리아의 친 아버지는 다윗의 후손 헬리였는데 누가복음 3:23에 보면 요셉 또한 헬리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마리아가 여자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계보 관습상 그녀의 이름이 계보에 직접 나타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 대신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헬리의 아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헬리는 요셉의 장인이었고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이었던 것이다(마 1:16).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가 법적이고 공식적인 계보였다면,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계보는 실제적이고 보다 사실적인 계보였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두 가지의 계보는 우리가 예수님의 출생의 배경과 기원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예레미야 22:30에 보면 고니야의 자손은 다윗의 보좌에 앉을 수 없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요셉이 바로 이 고니야의 자손인데 비록 요셉이 다윗 왕가의 정통계보에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메시야로 나신 예수님이 요셉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으심으로써 이 예언은 아주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계보상에 나타나는 차이점의 문제를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써 난점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의 무오성과 정확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성경의 무오성과 확실성을 깨닫게 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의 두 가지 상이한 계보 때문에 실족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달아 마음에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마태복음 1장 1절 ~17절][누가복음 3장 23절 ~38절] [역대상 3장 ]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내림차순으로, 누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윗에서 예수까지의 족보인데,

 

마태는 다윗이 예수의 27대조라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42대조라고 했다.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의 족보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1장1-17절과 누가복음 3장23-38절에 전해온다.

 

누가는 예수부터 아담까지 77(7*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42(14*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에 수록된 조상의 이름을 비교해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왕조이전의 조상들은 대체로 일치하나 한 곳이 다르다. 마태 1장3절의 ‘람’ 대신에 누가 3장33절에서는 ‘아니’를 기록하였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 직전까지 왕조시대에는 ‘다윗’ 하나만 같고 나머지 조상은 모두 다 다르다.

 

바빌론 유배부터 예수까지 왕조 이후 시대에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그리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만 같고 나머지 조상은 모두 다 다르다.

 

누가는 예수가 아담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마태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임을 강조한다.

 

 

2. 예수의 족보에는 마리아 말고도 4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이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을 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고(창세기 38장), 라합은 조국인 여리고를 배신한 비천한 창녀였으며, 룻은 말룐의 아내이지만 말룐이 죽자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후원으로 보아스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지만 말룐의 게보가 아닌 보아스의 계보를 잇는다. 밧세바는 다윗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이지만 다윗왕을 유혹하고 남편 우리야를 교살한 다윗과 결혼하여 4명의 아들을 낳는다.(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4명중의 셋째,넷째인 나단과 솔로몬, 본문의 내용과 관련됨)

 

모두가 비정상적인 관계이며 지탄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선이다, 창세전 언약과 작정하심으로 섭리하심 속에 이런 인간들을 도구로 쓰신 것이다!

곧 성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 것으로 믿어진다면 그것이 곧 믿음이다.

 

3. 마태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왕의 계보를 잇는 왕으로,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윗-솔로몬으로 요셉까지 기록하였고, 누가는 이방인을 향하여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아담-하나님까지 헬리의 계보인 마리아의 가계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예수의 부친인 요셉이 야곱의 아들이냐? 헬리의 아들이냐? 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 모세의 법을 이해하여야 하고, 둘째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해야 한다,

 

- 첫째, 모세의 법(율법) / 민27:1~11, 36:1~12, 막12:18~

유대인 남자에게 후사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인척의 남자가 죽은 남자의 대를 잇게 한다.

 

- 둘째, 렘22:3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당시 유대왕인 고니야(여고니야, 여고냐, 여호야긴=동명)의 악행으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어 예언하신 것이다, 곧 왕의 계보를 고니야를 통하여는 종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예수는 솔로몬의 가계를 이었다기보다는 나단의 계보를 이었다고 볼 수 있고,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기 보다는 헬리의 아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함으로 헬리의 기업을 잇는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는 마리아, 곧 여자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모세의 법을 생각하고 읽어볼 것)

 

다윗의 셋째아들 나단과 넷째 솔로몬은 가장 가까운 친형제임을 기억하고, 그의 후손들 중에 계보를 이을 아들이 없다면 나단과 솔로몬의 후손들이 서로 모세의 법을 이행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름이 겹치고 다른 것이 그런 연유에서이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마태가 기록한 맛단은 야곱을 낳고 죽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레위는 맛단의 아내에게서 헬리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야곱과 헬리는 아버지가 다른 이복형제이다,

 

그런데 헬리는 두딸(마리아와 세베대의 부인, 마27:56,요19:25)을 낳고 아들없이 죽자 가장 가까운 친척인 야곱이 헬리의 아내에게서 요셉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며 헬리의 법적인 아들인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역시 이복형제이며 마리아는 어려서 성전에 바쳐졌다가 혼인할 시기가 되어 성전에서 나오게 되고, 가장 가까운 친척인 요셉과 정혼하게 된다, (위경, 요셉의 분노에서 발췌)

 

 

 

4. 마태는 의도적으로 14대씩 나누었다.

 

요람이 바로 웃시야를 낳은 것이 아니다. 웃시야의 아버지는 아마샤이다. 마태는 3대 정도를 빠트렸다. 또 요시야가 여고냐를 낳은 것이 아니라 요시야가 여호야김을 낳고 여호야김이 여고냐를 낳았으니 여고냐는 요시아의 손자이다. 여고냐는 유다 19대왕으로 기원전 597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정복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그 때부터 이스라엘백성은 60년동안 바벨론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로 이어지는 계보도 있지만(에스라3장 및 5장, 느헤미야12장1절, 누가3장27절) 여고냐—브다야—스룹바벨로 이어지는 계보도 있다(역대상3장 17-19절). 기원전 538년 바사왕 고레스가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유다인들을 석방하자 스룹바벨은 이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스룹바벨의 자손목록(역대상3장19-20절)에는 아비훗이 없다.

 

누가복음 3장27절에는 스룹바벨의 아들을 레사라 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기원전 1750년-1000년경), 다윗부터 바벨론 유배초기까지가 14대(기원전1000-597년), 바벨론 유배기간부터 예수까지가 14대(기원전597-6년경) 이렇게 마태는 의도적으로 14대씩 나누었다. 그것도 억지로 짜 맞춘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는 당시의 사람들은 다윗의 후손에게서 메시아가 나온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강조하려면 족보에서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가계에 넣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가 여자의 후손에게서 오셔야 했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한 누가의 계보기록이 신빙성이 있고, 또 예레미야의 예언을 상고 하여도 누가의 기록이 더 무게가 실린다. , 마태의 기록은 사실적인 족보가 아니고 메시아임을 강조하려는 족보이다

 

 

 

마태

 

누가

야훼- 아담- -에노스- 가이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레멕- 노아- 셈아박삿- 가이난 - 살라 - 헤버 - 벨렉 - 르우- 스룩 - 나홀 - 데라 -

마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 - 아미나답- 나손- 살몬-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

누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유다 - 베레스 - 헤스론 -아니 - 아미나답 - 나손 - 살몬 -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마태

다윗 -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 아사 - 여호사밧 - 요람 -웃시야 - 요담 - 아하스 - 히스기야- 므낫세-

누가

다윗 - 나단 - 맛다다 - 멘나 - 멜레아 - 엘리아김 - 요남 - 요셉 - 유다 - 시므온 - 레위 - 맛닷 - 요림 - 엘리에서 - 예수 -

대상

다윗 - 솔로몬 - 르호보암 - 아비야 - 아사 - 여호사밧 - 요람 -아하시야 - 요아스 - 아마샤 - 아시랴 - 요담 - 아하스 - 히스기야 - 므낫세 -

마태

아몬- 요시야 - 여고냐 -스알디엘 - 스룹바벨 - 아비훗 - 엘리아김 - 아소르 -사독 -아킴 - 엘리웃 -

누가

에르 - 엘마담 - 고삼 - 앗디 - 멜 기 - 네리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레 사 - 요아난 - 요다 - 요섹 - 서머인 - 맛다디아 - 마앗 - 낙개 -

대상

아몬 - 요시야 -살룸 - 여호야김 - 여고냐 -시드기야 - 스알디엘 - 므술람 - 하나냐 - 블라댜 - 여사야 - 르비야 - 오바댜 - 스가냐 - 느아라 -

마태

엘르아살 - 맛단- 야곱- 요셉- 예수

누가

에슬리 - 나훔 - 아모스 - 맛다디 - 요셉 - 얀나 - 멜기 - 레위 - 맛닷 - 헬리 - 요셉 - 예수

대상

에로에네(역대기의 기록 끝)

 

 

 

눅 3:23~38 예수의 혈통

 

예수의 족보에 관한 구체적 설명

 

본문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족보는 마1장에 제시된 족보와 체제와 인명과 그 숫자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주어져야 할 것이며, 동시에 이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 의미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도 차별적으로 설명되어야만 할 것이다.

 

1. 요셉의 아들 예수(23,24절)

 

본문엔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나이가 기록시되어 있다. 물론 삼십 세쯤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기록은 삼십세 이전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거나 예수께서 아직 축복과 성령을 받지 못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W.Hendriksen)

 

1) 삼십 세쯤에 사역을 시작하심

(Kai; aujto;" hn jIhsou'" ajrcovmeno" wJsei; ejtw'n triavkonta,... ; 카이 아우토스 엔 예수스 아르코메노스 호세이 에톤 트리아콘타 ;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23a절)

아우토스 예수스(aujto;" jIhsou'"예수께서)라는 본문을 개역성경은 아우토스의 해석없이 처리했다. 그러나 원문에선 아우토스라는 단어를 통해 '예수 자신께서'라고 예수를 강조한다. 족보에 있어서 가장 끝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에 대해서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에 대한 강조는 두 가지를 알게 한다. 하나는 족보 기록의 목적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강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는 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족보상의 인물들이 실제로는 예수로 말미암았다는 점이다. 족보에 있어서 처음 시작은 예수로 시작하며 마지막은 하나님으로 끝난다. 결국 모든 인류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과 그 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구조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개역성경에는 '가르치심을'이 작은 글씨로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원어성경에는 그 단어가 없이 단순히 아르코메노스(ajrcovmeno")라는 현재분사 중간태로 '(스스로, 스스로를 위해) 시작하실 때'라는 뜻을 나타낸다. 개역성경은 원활한 의미 소통을 위해 '가르치심을'이라는 단어를 삽입하였다. 아르코메노스(ajrcovmeno'시작할 때에)는 메시야적 사역의 시작을 표현한다(A.T.Robertson).

엔 호세이 에톤 트리아콘타(hn wJsei; ejtw'n triavkonta,약 삼십세쯤 되시니라)라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나이가 삼십세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이 표현을 삼십대로 간주하고 예수께서 고난받으신 나이를 38세라고까지 가정하기도 하지만 적절치 못하다. 본문에서 '30세쯤'이라고 표현한 것도 한두달 내지는 30세보다 조금 많거나 적은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A.Plummer).

 

2) 요셉의 아들

(w]n uiJov", wJ" ejnomivzeto, jIwsh;f tou' jHli; ; 온 휘오스 호스 에노미제토 요셉 투 헬리 ;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23b절)

에노미제토(ejnomivzeto사람들의 아는)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사물의 원인을 규명하는 지식으로써 안다는 뜻이다. 즉 겉으로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생각할 때에 사람들은 ' 게'알고 있다는 뜻이다(W.Bauer). 요셉의 위로 올라가는 모든 조상들이 이름 앞에는 투(tou 의)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요셉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할 때에 요셉 앞에서만 투(tou 의)라는 단어가 없다. 위의 두 가지 점을 같이 생각한다면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었지만, 사실은 헬리의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혹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라는 표현은 족보 전체가 정확한 법적 계통성을 따져 나간 것이 아니라 추정에 의한 것임을 내포한다. 본문의 구조는 '요셉의 아들' 뒤에 '그 이상은...'으로 계속된다.

 

'그 이상'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요셉의 이상은, 헬리의 이상은'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W.Hendriksen). 또한 대부분의 성경은 위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R.S.V.와 대부분의 번역판들). 이런 구조는 처음에 '요셉의 아들'이라는 구문의 연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요셉의 아들은 예수이며, 헬리의 아들은 요셉이며...'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는 요셉의 아버지로서 헬리를 기록하고 있으나 마태복음에서는 야곱이 요셉을 낳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마1:16)

 

3) 요셉의 조상들

(tou' Maqqa;t tou' Leui; tou' Melci tou' jIannai; tou' jIwsh;f ; 투 맏다트 투 레위 투 멜키 투 얀나이 투 요셉 : 그 이상은 맏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24절)

헬라어에서의 휘오스(uiJo;"아들)라는 단어는 직계 아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손자와 그 이상의 자손들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뜻하는 헬라어의 파테르(pathvr아버지)도 직접적인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조상들을 의미한다(Liddle & Scott).

 

헬라어가 가지는 이러한 기본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기본적인 뜻을 알 때만이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인물들의 이름은 물론 그 숫자가 다른 것을 단순히 성경기자의 오류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요셉의 조상들의 수효가 틀린 이유는(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마태는 41명, 누가는 57명을 기록하고 있다. I.H.Marshall). 둘이 기록하고자 했던 목적에 따라서 생략하는 사람을 임의로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기자들이 사용했던 족보가 서로 달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2. 예수의 조상들(25-33절)

 

마태복음의 기록과 본문에서의 족보상의 차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어떻게 할 수 있으며 과연 어떤 점이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성경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음을 족보를 통해서 주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1) 족보에 대한 연구

(tou' Mattaqivo...tou' Nhri; ; 투 맛타디우...투 네리 ;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그 이상은 네리요, 25-27절)

본문의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차이점과 함께 유사점이 존재한다. 차이점은 누가복음의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 사이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대부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몇 명 나오지만 누가복음에는 전혀 여자들의 이름이 없고 마리아조차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에서부터 기록해서 자손으로 내려오는 순서를 취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에서부터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며, 그 끝도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과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고 있다.

 

2) 멜기에서 다윗까지

(tou' Melci;...tou' Daui;d ; 투 멜기...투 다위드 ; 그 이상은 멜기요...그 이상은 다웃이요, 28-31절)

마태복음은 누가복음보다 생략한 면이 더 많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14명씩 3문단을 형성하여 기록하였으나 누가복음은 예수에서부터 아담까지 모두 76명의 이름이 그룹을 짓지 않고 기록되어있으며 하나님까지 모두 77명의이름이 나온다(W.Hendriksen). 그렇다면 두 복음서에 나오는 족보상의 일치점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두 족보에 모두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이 기록되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마1:12 눅3:27). 둘째,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의 기록은 두 복음서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마1:6 눅3:31)

 

3) 이새에서 유다까지

(tou' jIessai;...tou' jIouvda ; 투 예사이...투 유다 ; 그 이상은 이새요...그 이상은 유다요, 32,33절)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서였으므로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으로서 가장 중요시 여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이스라엘 역사를 크게 등분하여 족보를 배열하고 있는 점도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누가복음은 유대인들이 아니고 헬라인(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였으므로 굳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할 필요도 없었고 아브라함으로 끝을 맺을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그 이상까지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아들 예수(34-38절)

 

본문의 족보가 가지는 독특한 점은 마태복음과는 달리 아브라함에서 끝나지 않고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본문의 족보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고 있다.

 

1) 셋에게까지

(tou' jIakw;b tou' jIsaa;k...tou' Kai>na;m tou' jEnw;" tou' Sh;q ; 투 야곱 투 이삭...투 가이남 투 에노스 투 세드 ;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그 이상은 가이난이요...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34-38a절)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다윗은 물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보다 더 먼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무언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더 크고 비밀스런 근원과 조상에게서 예수가 태어났음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본문을 통해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아벨을 대신해서 주신 약속의 자녀인 셋에게까지 기원이 올라가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가 약속과 축복의 자손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약속과 축복의 자손을 통해 출현한 완전한 약속 성취와 축복의 실현을 가져오는 자손임을 알 수 있다.

 

2) 아담에게까지

(tou' jAda;m ; 투 아담 ; 그 이상은 아담이요, 38b절)

예수의 기원은 결국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까지 올라간다. 드디어 예수는 인간 역사가 시작된 원점에까지 도달한다. 예수는 아담에게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안의 씨로서 이미 그와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아담 이래로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과 예수는 관련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누가의 기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가는 더욱 더 놀라운 일을 다음에 덧붙여서 기록하고 있다.

 

3) 하나님의 아들 예수

(tou' qeou' ; 투 데우 ;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38c절)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라는 이 구절은 족보를 좇아 올라오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다. 예수는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의 단순한 자손만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는 그들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예수라는 한 인간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에게까지 도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처럼 우리는 느낄 수 있다(A.T.Robertson). 만약 예수의 족보가 아담에게서 끝나 버렸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에게까지 이어진 인간이었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시금 하나님과 가까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축복받았다.

본문의 족보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 한 구절에 담겨져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바로 이 점을 말해주고자 한 것이다. 이 점을 말함으로써 단번에 예수는 모든 사람들의 아들과 자손의 위치에서 벗어나 그들의 창조주가 되신다. 인간으로는 그들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창조주라는 이 파라독스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에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그 절정에 도달한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계보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계보가 다른 이유

.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긴 하지만,
참고로 여기서 '하나님의 영감'에서 '영감'이란 원어로 '데오프뉴스토스'를 뜻하는데,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입김에 의한'이란 의미로
저자가 성경을 쓸 때 하나님의 격려, 고무, 감화, 감동, 계시 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적극적 감화에 따라 이끌려 쓰여지기도 하고(예언서 같은..),
고무되어 어떤 상황을 기록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기록될 때의 저자의 의도와 저자가 가지고 있던 자료들 그리고 인식과 지적 수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에서의 야곱의 식구수와, 실제 창세기의 야곱식구수는 다르죠.
그것은 스데반이 기초로한 자료가 셉투아젠트라고 불리는 70인경이었고, 70인경에 75명이라는 명수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스데반이 참고한 70인경에서 75명과, 히브리본문 창세기의 70명의 차이를 알고 있음에도 75명이라고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라도 그 말을 한 스데반의 설교를 정확히 보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75명이라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저자의 의도와 자료, 그리고 저자의 지적 수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시고,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의 계보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사실 예수의 족보에 대한 자료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전 그 훨씬 이전의 기록들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매우 힘든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족보에 관한 자료들 또한 달랐을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마태와 누가복음서의 성격에 따라
(복음서마다의 저자의 의도가 다 다른 것,
예를 들어 마태복음서는 구원자로서 예수를 강조, 누가복음서는 가난한 이와 이방인 모두의 예수를 강조)
저자들은 이 정확지 않은 족보들을 매우 신학적으로 다룬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마태복음의 예수의 계보에 관해.


마태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계보는 숫자상징법을 밑바탕에 깔고서 작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각 자모에는 수 값이 있는데, '다윗'이란 이름을 나타내는 히브리자모들이 지닌 수 값을 다 합하면 14가 됩니다.히브리어 자모의 수 값이라든지 이런 것은 히브리인들에게 매우 흔한 것으로 시편의 시 내용중에도 이런 식의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9-10편, 119편의 경우 히브리알파벳에 순서에 따라 절의 단어나열이 순서대로 이죠..
아무튼 히브리 자모의 수 값에 따라 예수님의 계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이 열네 대로 이루어지게 함으로서(마1:17),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에서 의도하고 선포하려고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을 강조한 것이죠.

 

숫자 상징법을 살리려 하다보니, 8절에서 요람과 웃시야(아사랴) 사이에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 세 임금이 빠트려지기도 하죠. 하지만,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계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거나(라합, 룻), 죄인으로 통했던(다말, 우리야의 아내)  이렇게 여자 네 사람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계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죄인들도 들어있음으로,
이스라엘 아닌 사람들과 죄인들도 처음부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마28:19; 9:1-3 참조).
즉, 유대의 참 구원자로서 예수님은 죄인이나 이스라엘 밖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낸 것이죠.

 

2. 누가복음의 예수의 계보에 관해.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눅3:21-22에서 예수님의 인격에 담긴 하나님의 비밀을 밝힌 뒤에 3:23-38의 계보를 통해,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인류의 역사에서 차지하시는 위치를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이 계보의 밑바닥에도 숫자 상징법이 깔려있는데, 마태복음과는 달리 완전수인 숫자 7과 숫자 12를 사용했습니다.
곧 이스라엘 및 인류의 역사를 모두 77(7세대씩 11부분)세대로 만들어서 그 근원이신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 것이죠.이렇게해서 예수님을 새로운 부분, 곧 열두 번째 부분의 첫머리에 둠으로써 예수님에게서 인류역사가 완성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태복음이 유대의 구원자, 참 왕으로서 예수를 중요시해서,
예수 계보에는 다윗 계보의 왕들의 이름이 이어지는 반면,
누가복음의 계보는 유대인 뿐 아니라 가난한 자, 이방인들의 구원자로써 예수를 중요시하다보니 다윗이외에는 왕의 계보가 없죠.


사실, 마태복음의 예수계보와, 누가복음의 예수계보는 세부적으로 엄청나게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이 다른 점은 신학적 의도에 따라 다른 것이고(사실 세부적 계보를 당시에 알 수 있을 확률은 없죠.),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계보의 내용 중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전통, 아브라함 후손이란 것, 스룹바벨 후손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인 것이 동일한 것은,그것은 왕이요, 선택된 자의 약속된 자손(갈3장 참조), 제사장의 후손,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비교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 족보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 족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비교

 

마태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베레스→헤스론→람→아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다윗→솔로몬→르호보암→아비야→아사→여호사밧→요람→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아비훗→엘리아김→아소르→사독→아킴→엘리웃→엘르아살→맛단→야곱→요셉
누가 예수→요셉→헬리→맛닷→레위→멜기→얀나→요셉→맛다디아→아모스→나훔→에슬리→낙개→마앗→맛다디아→서머인→요섹→요다→요아난→레사→스룹바벨→스알디엘→네리→멜기→앗디→고삼→엘마담→에르→예수→엘리에서→요림→맛닷→레위→시므온→유다→요셉→요남→엘리아김→멜레아→멘나→맛다다→나단→다윗→이새→오벳→보아스→살몬→나손→아미나답→아니→헤스론→베레스→유다→야곱→이삭→아브라함→데라→나홀→스룩→르우→벨렉→헤버→살라→가이난→아박삿→셈→노아→레멕→므두셀라→에녹→야렛→마할랄렐→가이난→에노스→셋→아담→하나님
마태 ①아브라함- ②이삭- ③야곱- ④유다- ⑤베레스- ⑥헤스론 - ⑦람 - ⑧아미나답- ⑨나손- ⑩살몬- ⑪보아스- ⑫오벳- ⑬이새- ⑭다윗
누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유다 - 베레스 - 헤스론 - 아니 - 아미나답 - 나손 - 살몬 -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마태 다윗 - ⑴솔로몬- ⑵르호보암- ⑶아비야 - ⑷아사 - ⑸여호사밧 - ⑹요람 - ⑺웃시야 - ⑻요담 - ⑼아하스 - ⑽히스기야- ⑾므낫세-
누가 다윗 - 나단 - 맛다다 - 멘나 - 멜레아 - 엘리아김 - 요남 - 요셉 - 유다 - 시므온 - 레위 - 맛닷 - 요림 - 엘리에서 - 예수 -
대상 다윗 - 솔로몬 - 르호보암 - 아비야 - 아사 - 여호사밧 - 요람 - 아하시야 - 요아스 - 아마샤 - 아시랴 - 요담 - 아하스 - 히스기야 - 므낫세 -
마태 ⑿아몬- ⒀요시야 - ⒁여고냐 - ①스알디엘 - ②스룹바벨 - ③아비훗 - ④엘리아김 - ⑤아소르 -⑥사독 - ⑦아킴 - ⑧엘리웃 -
누가 에르 - 엘마담 - 고삼 - 앗디 - 멜 기 - 네리 - 스알디엘 - 스룹바벨 - 레 사 - 요아난 - 요다 - 요섹 - 서머인 - 맛다디아 - 마앗 - 낙개 -
대상 아몬 - 요시야 - 살룸 - 여호야김 - 여고냐 - 시드기야 - 스알디엘 - 므술람 - 하나냐 - 블라댜 - 여사야 - 르비야 - 오바댜 - 스가냐 - 느아라 -
마태 ⑨엘르아살 - ⑩맛단- ⑪야곱- ⑫요셉- ⑬예수
누가 에슬리 - 나훔 - 아모스 - 맛다디 - 요셉 - 얀나 - 멜기 - 레위 - 맛닷 - 헬리 - 요셉 - 예수
대상 에로에네(역대기의 기록 끝)

 

 

[마태복음 1장 1절 ~17절][누가복음 3장 23절 ~38절] [역대상 3장 ]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내림차순으로, 누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윗에서 예수까지의 족보인데, 마태는 다윗이 예수의27대조라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42대조라고 했다.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의 족보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1장1-17절과 누가복음 3장23-38절에 전해온다.

누가는 예수부터 아담까지 77(7*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42(14*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에 수록된 조상의 이름을 비교해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왕조이전의 조상들은 대체로 일치하나 한 곳이 다르다. 마태 1장3절의 ‘람’ 대신에 누가 3장33절에서는 ‘아니’를 기록하였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 직전까지 왕조시대에는 ‘다윗’ 하나만 같고 나머지 조상은 모두 다 다르다.

바빌론 유배부터 예수까지 왕조 이후 시대에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그리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만 같고 나머지 조상은 모두 다 다르다.

누가는 예수가 아담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마태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임을 강조한다.

 

2. 예수의 족보에는 마리아 말고도 4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이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을 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고(창세기 38장), 라합은 조국인 여리고를 배신한 비천한 창녀였으며, 룻은 말룐의 아내이지만 말룐이 죽자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후원으로 보아스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지만 말룐의 게보가 아닌 보아스의 계보를 잇는다. 밧세바는 다윗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이지만 다윗왕을 유혹하고 남편 우리야를 교살한 다윗과 결혼하여 4명의 아들을 낳는다.(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4명중의 셋째,넷째인 나단과 솔로몬, 본문의 내용과 관련됨)

모두가 비정상적인 관계이며 지탄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선이다,

창세전 언약과 작정하심으로 섭리하심 속에 이런 인간들을 도구로 쓰신 것이다!

곧 성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 것으로 믿어진다면 그것이 곧 믿음이다.

 

3. 마태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왕의 계보를 잇는 왕으로,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윗-솔로몬으로 요셉까지 기록하였고, 누가는 이방인을 향하여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아담-하나님까지 헬리의 계보인 마리아의 가계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예수의 부친인 요셉이 야곱의 아들이냐? 헬리의 아들이냐? 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 모세의 법을 이해하여야 하고, 둘째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해야 한다.

 

- 첫째, 모세의 법(율법) / 27:1~11, 36:1~12, 12:18~

유대인 남자에게 후사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인척의 남자가 죽은 남자의 대를 잇게 한다.

- 둘째, 렘22:3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당시 유대왕인 고니야(여고니야, 여고냐, 여호야긴=동명)의 악행으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어 예언하신 것이다, 곧 왕의 계보를 고니야를 통하여는 종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예수는 솔로몬의 가계를 이었다기보다는 나단의 계보를 이었다고 볼 수 있고,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기 보다는 헬리의 아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함으로 헬리의 기업을 잇는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는 마리아, 곧 여자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모세의 법을 생각하고 읽어볼 것)

다윗의 셋째아들 나단과 넷째 솔로몬은 가장 가까운 친형제임을 기억하고, 그의 후손들 중에 계보를 이을 아들이 없다면 나단과 솔로몬의 후손들이 서로 모세의 법을 이행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름이 겹치고 다른 것이 그런 연유에서이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마태가 기록한 맛단은 야곱을 낳고 죽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레위는 맛단의 아내에게서 헬리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야곱과 헬리는 아버지가 다른 이복형제이다,

그런데 헬리는 두딸(마리아와 세베대의 부인, 마27:56,요19:25)을 낳고 아들없이 죽자 가장 가까운 친척인 야곱이 헬리의 아내에게서 요셉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며 헬리의 법적인 아들인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역시 이복형제이며 마리아는 어려서 성전에 바쳐졌다가 혼인할 시기가 되어 성전에서 나오게 되고, 가장 가까운 친척인 요셉과 정혼하게 된다, (위경, 요셉의 분노에서 발췌)

 

4. 마태는 의도적으로 14대씩 나누었다.

요람이 바로 웃시야를 낳은 것이 아니다. 웃시야의 아버지는 아마샤이다. 마태는 3대 정도를 빠트렸다. 또 요시야가 여고냐를 낳은 것이 아니라 요시야가 여호야김을 낳고 여호야김이 여고냐를 낳았으니 여고냐는 요시아의 손자이다. 여고냐는 유다 19대왕으로 기원전 597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정복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그 때부터 이스라엘백성은 60년동안 바벨론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로 이어지는 계보도 있지만(에스라3장 및 5장, 느헤미야12장1절, 누가3장27절) 여고냐—브다야—스룹바벨로 이어지는 계보도 있다(역대상3장 17-19절). 기원전 538년 바사왕 고레스가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유다인들을 석방하자 스룹바벨은 이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스룹바벨의 자손목록(역대상3장19-20절)에는 아비훗이 없다. 누가복음 3장27절에는 스룹바벨의 아들을 레사라 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기원전 1750년-1000년경), 다윗부터 바벨론 유배초기까지가 14대(기원전1000-597년), 바벨론 유배기간부터 예수까지가 14대(기원전597-6년경) 이렇게 마태는 의도적으로 14대씩 나누었다. 그것도 억지로 짜 맞춘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는 당시의 사람들은 다윗의 후손에게서 메시아가 나온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강조하려면 족보에서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가계에 넣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가 여자의 후손에게서 오셔야 했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한 누가의 계보기록이 신빙성이 있고, 또 예레미야의 예언을 상고 하여도 누가의 기록이 더 무게가 실린다. 즉, 마태의 기록은 사실적인 족보가 아니고 메시아임을 강조하려는 족보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족보차이에 관한 문제


1. 문제제기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근원부터 의심스러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여기에 맞서서 진리를 수호해야 할 교회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성경이 오류가 없는 진리임이 다시한번 명백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다음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족보에서 차이가 나고 있는 부분들이다.

(1) 마태복음은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마1:16)으로, 누가복음은 '헬리'(눅3:23)로 제시하고 있다.

(2) 마태복음에도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다윗 이후의 왕들의 족보가운데서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 등과 뒤의 여호야김등 4인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즉, 대상 3장 112절에서는 요람의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 아들은 요아스요 그 아들은 아마샤요 그 아들은 아사랴(웃시야)"를 낳았다고 했으나 마태는 요람과 아사랴사이의 3인을 빼고 "요람이 웃시야를 낳"(마1:8)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역대상 3장 15절에서 "요시야의 아들들은… 엘리야김과…"라고 기록하면서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는 엘리야김을 빼고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마1:11)았다고 말하고 있다.

(3) 마태와 누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차이점이 없이 족보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데 다윗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족보를 쓰고있다. 마태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으로부터 남방 유다 왕들의 족보 13명(다윗부터 여고냐전까지 14대)을 쓰고 있는 반면 누가는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으로부터 넬리까지 유다왕의 족보가 아닌 나단의 후손 19명의 전혀 다른 족보를 쓰고 있다.

(4) 이렇게 마태는 솔로몬, 누가는 나단을 선택하여 서로 다른 족보를 쓰다가 갑자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육신적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위로 거슬러 11대, 누가복음에서는 요셉으로부터 위로 거슬러 20대에서 같은 인물들인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쓰고 있다. 누가는 무엇 때문에 마태복음의 왕들의 후손인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나단의 족보에 넣었을까?

(5)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후 마태와 누가의 족보는 또다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태는 스룹바벨의 아들인 아비훗으로부터 엘르아살까지 8명을 기록하고, 누가는 레사부터 레위까지 16명을 적고 있다.

2. 문제 해결의 실마리

(1) 도덕적 문제

- 족보에 등장한 네 여인 -
당시의 족보에는 여인들이 들어갈수 없었는데 마태의 기록에는 여자들이 4명이 기록되고 있다. 라합과 룻과 같은 이방의 여자들이 기록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차별이 없으며 나그네나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서 더욱 생각하게 하는 것은 부도덕한 기록을 가진 다말의 기록이며 그가 예수님의 족보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천국은 침노하는 믿음 가진 자들이 얻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즉, 예수님의 족보에는 사실 전개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마태와 누가의 족보 차이를 족보를 맞추어서 풀려고 한다면 불가능할 뿐이다. 그것이 말하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2) 의도된 족보 차이

누가 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당시 의사로서 박식하였으며 구약-역대상 3장-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저자 누가는 족보를 몰라서가 어떤 영적 섭리 가운데서 의도적인 동기를 가지고 기록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도된 족보 차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영적 기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3. 족보 차이에 관한 고찰

(1)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헬리

이 문제는 이미 각 교회들에서 신명기 25장 5,6절에 나오는 형사 취수법을 살펴 봄으로써 간단히 해결되었다. 형사취수법이란 한 사람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죽은 형의 아내를 취하여 후사를 이어주는 이스라엘의 제도를 말한다. 이때 대신 낳은 바된 그 아이는 죽은 사람의 자녀로 법적으로 인정되게 된다.
요셉의 출생도 이와같은 과정속에서 이루어졌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있으므로 혈통적인 것보다는 법적인 것을 더욱 중요시하는데 비하여 누가는 예수님을 인자로 묘사함으로 혈통적인 족보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는 혈통적인 아버지가 아닌 법적인 아버지인 후사없이 죽은 '야곱'의 이름을 족보에 기록하였으며 누가는 요셉의 혈통적 아버지인 실제로 요셉을 낳은 '헬리'를 쓰고 있는 것이다.

 

(2) 의도적으로 빠진 마태복음 족보의 왕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마1:1)로 시작된 이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의 족보를 열거하면서 14대씩 세번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 포로다음부터 예수님까지 14대(마1:17)로 나누어서 저자 나름대로의 의도적인 계산을 넣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를 맞추기 위해 역대상 3장에 나타나 있는 왕의 족보의 세왕, 즉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등을 빼버렸다. 또한 마태복음 1장 11절에서도 여호야김을 빼놓고도 마태는 모든 대수가 14대씩 세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족보를 세어보면 모두 41대 밖에 안되는데 마태는 42대로 계산하여 말하고 있다. 계산의 밝은 세리 출신인 마태가 산수 계산을 못해서였을까? 그러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요"(마1:17)라고 설명하여 다윗의 이름을 두번씩 계산하여 42대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매우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마태는 다윗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다윗이라는 히브리어 자모의 수치를 세어보면 14가 되어 다윗의 자손으로 14대를 맞추기 위하여 왕들의 이름을 뺀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태가 강조한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영원한 왕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시89:3,4)고 하였다.

(3) 마태와 누가 족보의 제반적 이해

여기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3)-(5)의 문제를 한 내용으로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누가는 무엇 때문에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임에도 불구하고 나단을 언급하고 있는가? 사무엘하 5장 14절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여 얻은 소생들은… 나단, 솔로몬,… 엘리벨렛"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역대상 3장 5절에도 밧수아(밧세바)의 소생을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예언되고 표상된 메시아임을 확인한 누가가 구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솔로몬의 대를 언급하지 않고 나단의 족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태와 누가의 족보에는 계시적 의미가 있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의 혈통을 기록하고 있으며 누가는 예수님을 인자(사람)로 나타내기 때문에 다윗 다음에 왕통을 이어받은 솔로몬이 아닌 평범한 사람인 다윗의 아들 나단의 혈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 빌라도가 네가 왕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요18:3)고 답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빌2:8)다. 즉, 예수님은 사람이신 왕으로 오신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남녀의 결합으로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탄생하셨다. 즉 마리아와 요셉 중 어느 누구의 혈통과도 관계가 없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은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롬1:3)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과도 무관하게 태어나셨지만 성경에 예언된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흉내내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구약의 메시아의 왕통 족보와 혈통의 족보를 상세하게 예언하셨고 밝혀놓으신 것이다. 요컨대 마태가 솔로몬의 왕통을 적은데 비하여 누가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제외하고 나단의 족보를 적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의도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족보에 나타난 하늘의 섭리 -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

역대상 3장 10절부터의 다윗 왕조 족보를 살펴보면 스알디엘의 아버지는 여고냐이다. … 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 이것이 우리가 언듯 알고 있는 족보이나 역대상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여고냐는 일곱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스알디엘, 말기람, 브다야, 세낫살, 여가먀, 호사륵, 느다뱌이다. 여기서 장남은 스알디엘인데 놀라게도 스룹바벨은 장남의 아들이 아니라 셋째인 브다야의 아들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대상3:19).
스룹바벨은 브다야의 아들인데 마태의 족보에는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분명히 스룹바벨은 브다야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을 비롯한 성경의 곳곳에서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스3:2),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학1:12,14)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메시야의 혈통을 잇지 못할 여고냐의 장남 스알디엘이 어떻게 메시야의 족보 병부체 올라가 있는가를 아는 것이 족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형사취수법(수혼제)를 통해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 스알디엘은 아들이 없었는데 장남이기 때문에 법을 따라 그 장남의 법통을 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동생 브다야가 아들이 없이 죽은 스알디엘의 아내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스룹바벨이며 마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법적인 관계를 중시하여 호적상의 법적 아버지인 스알디엘을 스룹바벨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적 족보 보다는 혈통적인 족보를 중요시한 누가도 이 부분에서는 역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의 법적 족보를 쓰고 있다. 더욱이 나단의 족보와는 관계도 없는 유다 왕족의 족보에 있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탄생 양태에 대한 비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는 말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사실상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없었던 스룹바벨은 힘으로나 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의 도우심으로 그 혈통을 법적으로 잇게 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계시적 표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마1:18)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령(하나님의 신)에 의한 탄생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신 새생명으로 이 땅에 오신 것과 자격이 없었던 스룹바벨이 형사취수법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혈통을 잇는 조상이 된 것은 영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5) '의미있는 표현 그 이상'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마태복음은 왕족의 족보들을 언급하여 예수님이 다윗의 가계를 통하여 오실 것을 말하고 있고 누가의 족보는 왕의 족보가 아닌 사람의 족보를 취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누가의 족보 가운데 왕의 족보에 속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의 족보가 끼어들고 있음을 앞에서 보았다. 물론 마태복음에서 보았다. 물론 바태복음에서 언급한 스알디엘의 아버지인 「여고냐」, 스룹바벨의 아들인 「아비훗」과 누가복음에서 언급한 스알디엘의 아버지인 「네리」, 스룹바벨의 아들인 「레사」와는 어떤 족보상의 연계성도 혈통적인 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들어간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나심은 인간의 혈통을 통한 것이 아니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한 것도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직계 족보가 아닌 맞추어진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곧 의미의 전달 목적으로 계산되어진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낳고'의 표현을 쓰고 있으나 누가는 '그 이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곧 스알디엘의 아버지는 「네리」가 아니라 족보상의 상위일 뿐이라는 것이며 스알디엘은 네리와 어떤 연관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누가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스알디엘과 그 이상인 네리, 레사와 그 이상인 스룹바벨,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2대위인 맛닷과 그 이상인 얀나등의 관계도 족보상 전혀 관련이 없는 사이인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의 출생, 특별히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성령의 잉태하심으로 나타났음을 강조한 것이다.

 

4. 이글의 결론

마태는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족복를 다윗왕의 법적 혈통을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누가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평범한 사람이었던 다윗의 아들 나단의 족보를 통해 예수님의 인간적 혈통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 누가가 그러한 혈통 중간에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언급한 것은 결국 왕으로 오신 예수,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나타내며 동시에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 메시야의 조상이 된 방법을 밝히면서 오늘날 죄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메시야의 영적 혈통을 잇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음을 교훈해 주고 있는 놀라운 복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 누가의 족보 차이는 성경이 오류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놀랍게 조화시키면서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는 사람에게만 하늘의 아름다운 빛이 비추일 수 있음을 보여준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의 기록인 것이다.

 


예수님의 할아버지는 누구인가?(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각각 서로 다른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다음 두 절을 비교해보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6) "사람들이 알기에는 그(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요,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며"(눅3:23) 마태에 따르면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인데, 누가에 따르면 요셉의 아버지가 엘리(헬리)이다. 그렇다면 요셉을 아들로 가진 사람이 둘이라는 것인데 이는 얼핏 이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경 자체에서 족보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선 구약과 이스라엘에서 '아들'이란 아버지 유산의 합법적 상속자를 의미한다. 단적으로 예수님께서 공공연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예수님께 "그럼 당신의 어머니는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 왕국의 계승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현실에서도 '아들'을 '유산의 합법적 계승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근거가 있는가?그렇다. 우리는 룻기에서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룻4:16~17) 여기서 오벳은 명백히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나은 아들인데도 조모인 나오미가 양육자가 되고심지어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오벳이라는 이름도 보아스의 뜻대로 지은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즉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과 그 아들들이 모두 죽고 자신과 며느리만 남은 상태에서 보아스를 통한 계대결혼으로 태어난 아들은 우선적으로 엘리멜렉의 상속자가 되어야 하는데,그런 의미에서 마을 공동체 전체가 오벳을 '나오미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계보에서 오벳은 보아스의 아들로 등장한다.

 

이와같이 보아스도 다른 아들이 없었으므로 결국 오벳의 아버지는 세 명(엘리멜렉, 말룐/기룐, 보아스)이 된 것이다. 율법은 친아들이 아닌 자가 상속자가 되는 경위 즉, 어떤 사람이 아버지가 둘 이상이 될만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남자가 사망시에 아들이 없고 딸만 있을 경우에는 딸이 기업을 잇게 되는데(민27:8), 그 딸은 같은 지파의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고(민36:8), 결국 죽은 사람의 사위가 상속자가 된다. 2. 남자가 사망시에 자식이 없고 아내만 있을 경우에는 죽은 사람의 형제가 그 과부와 결혼을 하여 상속자를 낳아 주어야 하는데(신25:5~6) 이 경우 죽은 사람의 조카가 상속자가 된다. 3. 남자가 사망시에 처자식이 없으면 죽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적이 기업을 잇는다.(민27:10~11) 이 경우 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이 사망자의 상속자가 된다.

 

요셉은 위와 같은 이유로 모순 없이 서로 다른 두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이다. 사실 두 계보에 오류가 있다는 가정은 당시 이스라엘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위의 예와 같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족보는 율법과 상속에 관한 필수적인 자료였다. 또한 인구조사시에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므로 베들레헴 다윗의 동네로" 갔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는 요셉의 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족보를 따라 각각 모이는 것이 가능했음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두 계보를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요셉이 다윗의 직계자손임을 보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굳이 두 계보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질문은 마태와 누가는 각각 어떤 기준으로 족보를 선정하여 기록한 것인가?야곱과 헬리 중 누가 요셉의 친아버지인가? 인데,이것을 판단하기 위해 성경의 다른 계보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마침 역대상 3장에 있는 다윗부터 여호야긴까지의 계보가 마태복음과 대부분 일치한다. 역대상 3장은 다윗 왕조의 계보인데 마태복음과 대응시켜보면 아래와 같다.

 

 

여기서 회색 칸의 이름은 악한 왕을, 녹색 칸은 악한 일과 선한 일을 모두 했던 왕을 가리킨다.위 표로부터 눈에 띄는 것은 마태의 계보에는 몇몇 왕들이 의도적으로 누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로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왕들이다.이와같이 마태복음의 계보는 의도적인 누락을 포함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의 계보에서는 어느정도 육신을 초월한 선택이 가해졌으며, 아마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 특히 왕들의 경로를 통해 다윗과 요셉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가 예수님을 다윗의 27대손으로 기록한 것도 혈통적 대수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의 대수인 것이다.어떤 분들은 이것이 '14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한 편집'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이런 주장은 근거도 확실치 않고, 성경을 사람이 임의로 썼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창세기의 계보는 최초의 예배자이며 순교자인 아벨 대신, 하나님이 주신 셋으로부터 시작한다. 복잡하고 화려한 가인의 계보와는 대조적으로, 셋의 계보는 설명이 단순하고 대부분 오직 한 명의 아들만을 기록하면서 이어진다.

 

여러 아들들 중에 오직 한 아들을 통해서만 내려간 이 계보를 규정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그들이 단 한명의 자손에게만 물려주었던 '기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이라고 불리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이다.

 

결국 마태의 계보는 창세기부터 수록되었던 그 믿음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이 계보에서 누락된 왕들은 모두 하나님을 고의로 거부한 사람들이다. (2) 하나님께서 여호야김의 후손중에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렘36:30) 그 여호야김 이후로 역대상과 마태복음의 계보가 갈라지고 있다. 마태의 계보는, 하나님의 기업이 육신을 초월하여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신적 권위를 갖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누가복음의 계보에서 다윗과 요셉을 잇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누가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추적하다가 갑자기 다윗을 만나는듯한 계보를 수록하였다.누가에 따르면 예수님은 다윗의 42대손인데 이는 마태복음의 27대손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누가가 계보를 소개한 배경을 살펴보자.우선 누가복음 1장 2절에서 저작 의도를 밝히면서 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의 계보가 시작되는 부분의 서술을 보면,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눅3:22~23) 이므로, 이처럼 여기서 누가가 예수님의 계보를 소개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기 때문에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따라, 그 전까지 예수님의 아버지로 여겨졌던 요셉의 조상을 면밀히 추적해본 것이다. 이와같이 누가는 계보를 소개하면서 명백히 다음 세 가지를 얘기하고 있다.

1.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것.

2.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요셉으로 생각했다는 것.

3. 요셉은 다윗, 아브라함,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

이러한 누가의 서술 특성과 족보 소개의 계기를 고려하면 누가가 요셉의 아버지를 지목할 때 가능한 두 후보인 야곱과 헬리 중 친아버지를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누가는 이방인 데오빌로에게 '예수'라는 유대인을 소개하면서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의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 알려진 요셉의 족보를 수록한 것인데,이방인에게 소개하는 입장에서라도 당연히 혈통적인 계보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아담의 75대손임을 명확히 밝히면서 인류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지를 실감케 하기도 한다. 누가가 요셉의 혈통적 계보를 선택했다는 귀류법적 근거들도 있다.

 

 

1. 만약 누가가 요셉의 혈통적 조상을 추적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아담까지 기록할 이유가 없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따른 계보 또는 법적 계보였다면 다윗까지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메시야에 대한 대명사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는 조상을 아담까지 추적하면서 요셉이 다윗의 후손일 뿐 아니라 명백히 사람('아담')임을 밝히고 있다.2. 만약 누가가 헬리 대신 야곱을 지목하기로 결정했다면그 결과로 기록될 족보는 시간상 먼저 기록된 마태복음 뿐만 아니라 역대상 3장과도 일치하게 되고,예수님의 왕족으로서의 정통성 뿐 아니라 자신의 기록의 신빙성을 획득하는데도 더 유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굳이 요셉의 아버지를 헬리로 기록한 것은,전술한 바와 같이 누가가 '사건의 정확한 경위'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듯 누가는 사건의 배경을 침착하고 꼼꼼하게 소개하면서 기록하였기 때문에예수님의 역사적 사실성과 구약 예언의 현실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의 추론에 따르면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기업인 메시야에 대한 믿음의(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된) 계보를 기록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요셉의 순수 혈통적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요셉은 야곱의 상속자이면서 헬리의 친아들이고 다윗의 41대손이며 아담의 74대손이다. 사실 현재 대부분의 인류도 아담의 불과 150대손정도일 뿐이며, 인간은 이렇게도 빨리 하나님을 잊는 것이다. 마태와 마가의 두 계보가 나누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로 알려졌던 요셉을 만난다. 중요한 것은 두 계보의 상이함 때문에 당시 수많은 '다윗의 자손'들 중에서 '진정한 다윗의 자손'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만약 마태복음만 있다면 예수님이 다윗의 진짜(생물학적) 후손인지 공격받게되고,반대로 누가복음만 있다면 예수님의 왕권이 공격받게 된다. 이와같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두 계보가 있어야만 예수님이 확실한 다윗의 자손으로 인정될 수 있고, 따라서 성경이 이루어지기 위해 애초에 두 개의 계보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의 친아버지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무리 족보를 조사한다 하더라도 동정녀 탄생은 혈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누가복음을 마리아의 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임의적인 가정일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헛점이 있다.

설령 누가복음이 마리아의 계보라 하더라도, 어차피 그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계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인류가 근래에 알게된 바로도, 마리아에게는 남자로 기록된 예수님의Y 성염색체가 없는데,이는 아담의 XY 염색체로부터 하와의 XX 염색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즉 예수님의 육체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아담 뿐만 아니라 마리아와도 무관하다. 적어도 예수님의 Y염색체는 성령 잉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에 대한 다음 별명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 예수님은 영적일뿐 아니라 육적인 차원에서도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다. '두번째 아담' - 예수님의 탄생은 아담의 탄생에 필적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개입되었다. '여자의 후손' - 예수님은 남자인 요셉과 무관하며, 남자들로 이어지는 계보와 무관하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몸에는 아담으로부터 올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마태와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 족보 차이점에 대한 글들 모음>

'4복음서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배경 연구  (0) 2020.11.16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0) 2020.11.16
헤롯가문 및 유대사회  (0) 2020.10.30
막 16:9-20​ 지상명령  (0) 2020.10.29
막16:1-8​부활하신 예수님  (0) 202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