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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헤롯가문 및 유대사회

by 은총가득 2020. 10. 30.

헤롯가문





헤롯

예수님의 이야기인 사복음서를 읽어가면서

우리는 헤롯이라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헤롯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그 인근 지역을 B.C.1세기 중반부터 A.D.1세기 경까지 통치했던 왕조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헤롯과 그 가문을 이해하는 것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위키백과 출처

1. 대헤롯 (Herod Great)

안티파터의 아들로 헤롯 왕조의 창시자입니다.

탁월한 로비 실력으로 로마 제국으로부터 유대의 분봉 왕으로 임명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에돔사람이었기에 늘 유대인들의 인심을 염두에 두면서

로마와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했습니다.

카이사르를 위한 도시 "가이사랴"를 건설했는데,

가이사랴는 후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재판받으러 가기 전에 2년간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헤롯은 유대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힘을 쏟기도 했습니다.

B.C.20년경에 시작한 성전 건축은 예수님 당시에도 계속 진행 중이었고

A.D.64년경 헤롯 아그립바 2세 때에야 완성되었는데,

완성된 지 불과 6년 만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성전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가복음 13:2)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위키백과 출처

2.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

대헤롯이 죽은 후, 유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에돔 지역을 분할 받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대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가셨다가 돌아올 때,

이 아켈라오의 눈을 피하여 유대로 가지 않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마태복음 2:22)

그만큼 아켈라오는 매우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치를 했는데,

참다못한 유대와 사마리아의 귀족들이 로마 황제에게 대표단을 파견해서

그를 숙청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국 A.D.6년에 아켈라오는 왕위에서 쫓겨났고,

그때부터 유대 지역은 로마 총독에 의해 통치를 받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위키백과 출처

3. 헤롯 빌립 2세 (Herod Philip ii)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시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누가복음3:1)

이곳은 요단 강 상류지역의 상당 부분으로, 갈릴리 북동부 지역입니다.

빌립은 로마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파이네온이라는 지역을 재건립한 후

황제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 대헤롯이 세운 '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어셨던 곳이

바로 이 가이사랴 빌립보(마태복음 16:13)였습니다.

그는 헤롯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온순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지역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활동하실 수 있었습니다.

 

4. 헤롯 안티파스 (Herod Antipas)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의 분봉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기록할 때 나오는 헤롯 왕은 바로 이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나비티안 왕의 공주와 결혼했는데, 그의 형제 헤롯 빌립 1세(헤롯 빌립 1세는 헤로디아의 처음 남편이었고, 공직에 있지 않았다.)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기 위해 나비티안 공주와 이혼하였습니다.

침례요한이 이런 헤롯 안티파스의 부도덕함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다가 목 베임을 당해 죽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체포당하신 후, 갈릴리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누가복음 23:1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무 위키 출처 - 헤롯 아그립바

5.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대헤롯의 손자이며, 헤로디아와는 친남매간으로, 헤롯 안티파스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로마로 보내져서 로마 황실에서 자랐기 때문에 로마의 3대 황제가 된 칼리귤라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빌립 2세가 죽었을 때 그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롯 안티파스가 쫓겨났을 때, 그 땅까지 그의 영토로 편입됐습니다.

아그립바 1세가 바로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헤롯으로서,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인물입니다.

베드로를 옥에 가두기도 했고 초기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백성이 열렬히 환호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다가 결국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사도행전 12:21~23)

나무위키 출처- 아그립바 2세

헤롯 아그립바 2세 (Herod Agrippa ii)

헤롯 아그립바가 죽자, 그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2세가 17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때부터 유대는 거의 로마 총독의 관할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아그립바 2세는 이후에 가이사랴에 억류되어 있던 사도 바울로부터 베스도 총독과 함께

증언을 듣다가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라는 바울의 질문을 듣고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라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26:24~32)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으로서, A.D.70년경에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로마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로마에서 보낸 '총독'

옥타비아누스 -위키백과 출처

로마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

즉 가이사 아구스도는 뛰어난 정치력의 소유자로서

로마 통치 지역을 나누어 맡길 때, 매년 두 명씩 선출된 집정관들을

전직 집정관 자격으로 각 속주에 총독으로 파견하여 전체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특히 유대 나라는 독특한 종교문화적 배경을 가진 곳이었기에

신중하게 고려하여 탁월하고 유능한 총독을 파견하였는데요,

원래는 왕가의 사람들을 "분봉왕"으로 세워 다스렸지만

헤롯 아켈라오의 폭정이 그 수위를 넘어서자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유대 지역에 가장 유능한 정치인 중 한 명을

로마 총독으로 파견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로마 황제들

이름

사망년도 A.D.

아구스도(Augustus)

14

디베료(Tiberius)

37

가이오(Gaius, Caligula)

41

클라우디오(Claudius)

54

네로(Nero)

68

갈바(Galba)

69(1월)

오토(Otho)

69(4월 17일)

비텔리우스(Vitellius)

69(12월 20일)

베스파시안(Vespasian)

79

디도(Titus)

81

도미티안(Domitian)

96

네르바(Nerva)

98

트라얀(Trajan)

117

하드리안(Hadrian)

138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161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lius)

180

 

 

유대의 왕들과 행정관들(총독)

이름

즉위 년도

헤롯대왕(Herod the Great, King)

37 B.C.

아켈라오(Archelaus)

4 B.C.

코포니우스(Coponius), 총독

A.D. 6

M. 앰비뷸로스(Ambibulus)

A.D. 9

안니우스 루포(Annius Rufus),총독

A.D. 12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 총독

A.D. 15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총독

A.D. 26

마르셀루스(Marcellus Capito), 총독

A.D. 37

헤레니우스 카피토(Herennius Capito), 총독

A.D. 38

아그립바 I세(Agrippa I), 왕

A.D. 41

C. 쿠스피우스 파두스(C. Cuspius Fadus), 총독

A.D. 45

티베리우스 알렉산더(Tiberius Alexander), 총독

A.D. 46

벤티디우스 쿠마누스(Ventidius Cumanus), 총독

A.D. 48

안토니오 벨릭스(Antonius Felix), 총독

A.D. 52

폴시우스 베스도(Porcius Festus), 총독

A.D. 55

루쎄이우스 알비누스(Lucceins Albinus), 총독

A.D. 57

게씨우스 폴로루스(Gessius Florus), 총독

A.D. 60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에 유대 땅에는

분봉왕과 총독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나무위키 출처

본디오 빌라도는 5대 총독이었습니다.

A.D.26년부터 10년간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고집스럽고 잔인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서도, 예수님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비겁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약 7년 후인 A.D.36년에 로마에 소환당하여

해임된 빌라도는 실의에 빠진 날들을 보내다가 결국은 자살했다고 합니다.

제사장의 계급

고대 유대교의 제사장과 레위인들 -위키백과 출처

제사장의 계급으로는 대제사장, 성전의 두목, 수석 제사장들, 일반 제사장들

그리고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계급

하는 일

대제사장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로, 연 중 세 번의 절기(유월절, 오순절, 장막 절)의 행사를 총 관장했다.

성전의 두목

차기 대제사장 후보로, 대제사장에 이은 두 번째 서열.

대제사장을 돕는 산헤드린 회원이었다.

수석 제사장들

신약성경에는 "대제사장"이라는 단어가 자주 복수로 등장한다.

이는 대제사장과 혹은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특권층 가문에 속한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일반 제사장들

일반 제사장들의 수는 매우 많았는데, 예수님 시대에 제사장들의 수를 18,000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이들은 24반열로 나뉘어서 각 반열이 1년에 두 번,

일주일씩 성전에서 제사를 수행하였다.

레위인들

이들도 24반열로 나뉘었고, 선전의 음악 및 다양한 형태로

성전에서 봉사했다.

바벨론의 포로 기간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공동체에는

더 이상 왕이 세워지지 않았고, 그들은 제사장 국가로 유지되었습니다.

페르시아나 헬라 제국의 왕들은 대체적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민족 내부의 종교 문제나

문화적인 측면에는 크게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대제사장들은 백성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었습니다.


 

서기관(율법사, 랍비)

성경에서 등장하는 서기관들의 모델은 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제사장 겸 학자 에스라입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해석하고 쉽게 풀어 가르쳐주며,

때때로 송사를 해결하고 재판하는 것이 서기관의 주요 임무였습니다.

서기관은 랍비(선생), 혹은 율법사라고도 불리었고, 공회의 의원도 될 수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법률가와 도덕 선생으로서 율법을 해석하였고, 그렇게 해석된 율법을

실천하는 데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들 중에는 제사장 출신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수공업과 구제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에 대한 어떠한 품삯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던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이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는

더 이상 지도부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후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한 후,

유대인들을 귀한 시키면서 조직하게 만든 유대 지도부가 바로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 감리교교육마당 이미지 출처를 밝힙니다.

공회의 멤버는 유대 총독, 율법학자, 귀족들 등 7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은 가치 재판권까지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산헤드린 공회는 공의회, 장로들 단체, 의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때때로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등으로,

그 구성원들을 나열하는 방식을 띠기도 합니다.

유대의 각 분파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집단 중

가장 두드러지는 이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이들이 자주 예수님의 사역을 훼방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분파들

분파 이름

성격

바리새파

셀루커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알렉산더 죽은 뒤의 일) 유대인들을 헬라 문화로 개종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금지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극심하게 핍박하였을 때, 끝까지 정절을 지킨 사람들을 '하시딤'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하시딤'에서 '바리새파'가 나오게 됩니다.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A.D.1세기에 바리새파는 약 6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사두개인들이 몇몇 부유한 가문, 지도적 제사장 가문으로 이루어진 반면, 바리새파는 도시 상인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집단으로서, 사회적 언어와 종교적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나 사도 바울이 바로 이 바리새파 출신입니다.

사두개파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의 후손들 가운데 헬라 사상의 일부를 받아들여

종교권력을 유지했던 자들의 후손으로서 한마디로 최고 권력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솔로몬 시대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들이라고 하여 '사두개파'라고 불렸고, 그들은 성전 관리 일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 귀족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한쪽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척하고, 한 쪽으로는 현실과 권력을 타협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현세적이었으며, 율법을 어기면서까지도 당시 정치적 힘을 행사하는 로마 총독이나 헤롯 왕과 타협했습니다.

사두개파는 바리새파와 달리, 전통을 거절하고, 기록된 율법만 받아들였습니다. 또 육체의 부활이나 죽음 후의 심판,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쉽게 말해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내세가 아닌 현세가 더 중요했습니다.

바리새파에 비하면 율법이나 생활 전반에 있어서 융통성이 있었는데,

이는 사실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열심당(젤롯당)

이들은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게릴라 식으로 테러를 하거나, 신념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과격함을 그 특징으로 한 사람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유대교를수호하려 했다는 전제에서는 바리새파와 다를 바 없으나 바리새파가 이방인의 통치를 수용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것에 반해, 열심당은 마카비 혁명을 일으켰던 마타디아처럼, 이스라엘을 무력으로라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단순한 폭도도 아니며, 체계적인 종교 신념을 가지고 항거한 사람들도 아니지만, 애국적 유대인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에세네파가 철저한 분리주의자적 자세로 탈 세상적이었다면,

열심당은 현실 참여를 위해 세상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열심당이었던 사람이 있으며(누가복음 6:15)

혹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 '강도'나 '바라바'도

열심당원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에세네파

에세네파는 "침묵","경건"을 의미합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부터 자극을 받아 생겨난 새로운 종파입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바리새파와 비슷하게 엄격한 입장이었으나

현실도피적이고 은둔적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들은 물도 나무도 거의 없는 지역의 동굴에 모여 살았고,

그 동굴에서 사해 사본이라고 부르는 성경 사본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농업 같은 종류의 일에 종사하고, 성경 해석을 포함하여, 도덕적, 종교적 문제점들을 공동으로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재산을 공유하고, 노예를 두지 않았으며, 의식상 정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살았습니다. 침례요한이 이 에세네파 출신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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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분파들1. 바리새파&사두개파(출처:바른미디어)

[BY 조이앤톡] (편집 및 출처 : 바른미디어 카드뉴스 http://www.bamedi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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