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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막 16:9-20​ 지상명령

by 은총가득 2020. 10. 29.

막16:9-20

마가복음의 추가본문

(막16:9-20)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마가복음의 추가본문

(막16:9-20)

부활후에 세번의 나타나심과 승천과 세계선교 명령

9-11절 막달라마리아에게 나타나심(요20:14-18)

12-13절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에게 나타나심(눅24:13-35)

14-18절 14절. 함께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눅24:36-38)

15-18절. 세계선교명령(마28:19)

19-20절 승천

한글개역성경 마가복음 16:9-20에 괄호가 쳐 있고 본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가장 고대의 것으로 인정되는 마가복음 사본에 16장 8절에서 끝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 본문이 정경에 해당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8절과 9절 사이에 난외주를 기록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비록 마지막 9-20절이 8절 이전의 본문과 이질적이지만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후의 행적을 정리한 점에서 이 본문은 틀림없이 마가복을 위한 것임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상응하는 결말을 제공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전통은 이 본문을 정경으로 인정하는데 이의가 없었고 이 본문이 포함된 사본에 난외주를 달기 시작한 것은 9-10세기의 에브라임 수도사와 밤빌루스의 유세비우스 때부터로 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9-11절)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곧 주일 이른 아침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는 잠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죽으셨고 분명히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는데 예전의 모습이 아닌 달라진 모습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새로운 몸은 신비했습니다. 얼굴 빛이 달랐고 얼굴에 매맞은 상처들도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모습이 아닌 그 이상의 몸을 입고 계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전에 일곱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의 몸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마리아는 곧 슬퍼하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알렸습니다(10절). 그러나 슬퍼하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이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들도 마리아 처럼 정신을 놓고 미쳐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엠마오 두제자의 증거

(12-13절)

얼마 후 제자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내려가려는 중에 예수님을 뵙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들은 엠마오로 가려 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이름이 글로바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모양'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전에 보여 주셨던 모습과 다른 모습입니다. 부활전의 모습은 매를 맞아 멍들고, 찢어지고, 가시관에 의해 뼈가 보이도록 벗겨진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새모습에는 얼굴의 상처가 사라지고 이땅에서 볼수 없는 사람의 신비한 얼굴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변하신 모습 때문에 두 제자는 예수님을 몰라보았습니다. 길에서 예수님은 한참을 이야기 하셨고 날이 저물어 한 곳에 유하러 들어가셔서 음식을 함께 잡수실 때가 되어서야 두 제자는 그가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하셨지만 틀림없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변형되셨지만 지척에서 보니 예수님이 분명하였습니다. 이들이 즉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만났음에 대하여 알렸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보고 목격한 사람이야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될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해서는 도저히 믿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여러차례 말씀하셨건만 속히 믿지를 못합니다. 제자들의 죽으심을 목격하고 실망이 깊었기에 더욱 믿지를 못합니다.

믿음의 회복과 복음전파의 명령

(14-18절)

그 후 열한 제자가 다 모여 음식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 없는 것,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만난 자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 여자가 천사를 만나 듣고 전해준 부활의 소식도, 빈 무덤의 증거도, 막달라 마리아의 증거도, 엠마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의 증거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 즉 예수님께서 끔찍한 모습으로 고문을 당하시고 죽으신 사실만을, 또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터득한 경험과 상식이 말하는 이성의 판단만을 붙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차례 예고하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주님이 자신들 앞에서 친히 물위를 걸으셨던 것과 변화산에서의 변모하신 것을 목격하거나 변하셨던 얼굴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으련만 제자들은 자기에게 보여주지 않으셨다는 것이 더 컸고, 직접 보지 못한 것이라면 그저 소문으로 여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이성주의로 인하여 주님의 말씀과 부활의 증언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를 책망하십니다.

두 증인이 증거하면 믿어 주라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믿으며 살것과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서로 마주하며 살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역사적 사실이 되었고 여러 제자가 증거하니 객관적 사실이 되어 있건만 아직도 믿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불신앙에 빠질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죽으신 사건, 하늘이 세시간 동안이나 어두워짐으로서 하늘로부터 외면을 당한 경험 같은 일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내가 그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부활하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은 나의 경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듣고 믿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보기 때문에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은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보고서라도 믿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보고 믿는 것을 귀하게 보시지 않고 보지 않고 듣고 믿는 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보지 못했다고 믿지 않는자 될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으니 듣고 믿는 자 되는 현명한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심판하시는 인자 되셨고 이를 위해 '만유의 주'로 임명되셨습니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사실을 온 피조물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전파는 제자들,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의무로 지워졌습니다. 주님께서 복음과 함께 영혼들을 십자가로 지워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주님께서 15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5)"

이 명령에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려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 복음은 천하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1:23)"

(엡3:8-10)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마태복음 끝부분에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를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바로 나에게 주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전도하라'입니다.

내 동네, 내 나라, 아시아, 유럽과 아프리카 어디든지 온천하입니다. 복음이 안들어간 어디든지가 온 천하입니다.

'만민에게 전도하라'하십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인종, 신분, 의인과 죄인, 나의 상대역에 관계없이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파하라'하셨습니다. 복음의 선포입니다.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것은 둘째 입니다. 전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논쟁이 우선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성과 논리로 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까닭을 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16절)"

복음을 전파해야 믿든 안 믿든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현장에서는 두가지의 경우로 심판이 일어나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믿는 자,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며, 복음이 전파됨을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롬10:9-17)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복음 전할 때 나타나는 표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7-18절)"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또한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입니다. 사도시대에, 대륙에 나라에 복음이 확장되고 교회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고 일시에 대대적으로 회심사건을 일으킬때마다 나타났던 표적들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에, 유럽과 미주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퍼져나갈 때 이런일이 선명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의 표적은 개인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표적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고 믿으려 하는가? 듣고 믿느냐? 의 주제는 9절에서 13절에서 다루었습니다.

승천하심

(19-20절)

마가복음 전체의 결미가 된 단락입니다.

마태복음에서 갈릴리의 한 산에서 하신 말씀(마28:19-20)과 누가복음에서 승천하신 장면(눅24:50-53)을 합쳐놓은 듯한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리우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주님의 지상사역을 마무리 짓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이후 40일간 이 땅에 계셨습니다. 주님이 오르신 후 주님이 남겨놓으신 제자들이 주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마가복음을 마치고 있습니다.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하는데 여기서 9절에서 시작한 괄호'['가 20절 끝에서 ']'닫힙니다. 추가된 본문임을 나타냈습니다. 표적들은 18-19절에 나열된 표적들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뱀을 집어 올리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표적입니다. 표적이 나타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기 도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제자의 사명을 잘 감당할 힘과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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