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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막 15:16-32 ​조롱받는 왕

by 은총가득 2020. 10. 29.

막 15:16-32

조롱받는 왕

예수님은 군인과 지나가는 행인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에게까지 조롱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브라이도리온에서

(16-20절)

군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의 재판정(베마)에서 브라이도리온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브라이도리온은 성전 북서쪽의 모퉁이에 있는 안토니요새라 여겼었는데 헤롯의 궁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빌라도의 집무처이고 관정이라 번역한 곳입니다. 가이사랴의 헤롯궁도 벨릭스의 관저 곧 브라이도리온이라 하였습니다(행23:35).

로마 군인들의 숙소가 브라이도리온에 있습니다. 빌라도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크게 겁을 먹었습니다. 군중들의 상태가 이미 통제불능으로 흥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벌일까봐 브라이도리온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 전체를 무장하여 호위하게 한 것입니다.

그곳에 주둔한 군인들 전체를 무장시키기 위해 브라이도리온까지 간 것입니다(16절). 빌라도의 판단으로 군중들은 상당히 흥분한 상태이고 통제권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을 집행하는 군인들이 브라이도리온 뜰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폭행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자신들의 신분과 힘을 과시할 때 걸치는 붉은 색 군복입니다(2,8,12절). 그리고는 왕이라는 칭호를 조롱하기 위해 가시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강하게 씌웠습니다.

그리고는 경례를 하면서 조롱의 말을 늘어놓았습니다(17-18절).

" 왕이여 평안할지어다(18절)"

그리고는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갈대는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침을 뱉았습니다. 또 꿇어 절하는 시늉을 하며 놀려 대었습니다(19절). 그리고는 예수님께 극심한 폭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이 휘두른 몽둥이와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셨습니다.

 

희롱을 실컫하고 나더니 자색 옷을 도로 벗기고 예수님의 옷을 다시 입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브라이도리온에서 끌고 나갔습니다(20절).

이보다 더한 수치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왕이라 주장하는 이가 힘없이 결박당하여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니 원수들에게는 희극의 한 장면처럼 통쾌한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늘의 하나님과 주님을 따르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치와 조롱을 받으시면서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사 53:7).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끝까지 참고 순종하신 것입니다(사 53:3-5).


억지로 지게된 십자가

(21-23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 진채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몸이 상할대로 상한지라 전진 속도는 계속 늦어졌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올라 와서 그 길을 지나가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행진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군병들이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시몬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후에 그리스도 공동체에 중요한 인물들이 됩니다. 구레네 시몬은 롬16:13에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3)’

시몬과 그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바울을 도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고, 시몬의 아내는 바울에게 ‘내 어머니’라 표현할 정도로 유익한 일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영적으로 큰 일들을 해내었던 신앙의 거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십자가는 억지로든 자원함으로 하든 짊어지기만 하면 본인과 가족, 자녀들에게 복이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는 축복의 십자가입니다. 시몬의 가정은 모든 가족들이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성장하였고 환난과 박해기의 성도들을 믿음으로 이끌었던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짊어지라 하십니다.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의 행렬이 골고다에 도착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병사들은 잔인했습니다. 쓸개를 탄 포도주가 마취제이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인도적이거나 자비로운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시편에서 이 장면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로마 병사의 행동은 악의적인 계략이며 저주가 섞인 조롱하는 짓거리들이었습니다. 사형집행자들이 저주 받은 자의 옷을 나눠 갖는 관례 역시 놀리고 조롱하는 의미로 행하는 관례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로마병사 뿐 아니라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려 있는 두 죄인까지 예수님께 아주 적대적입니다. 마태에게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연약성을 보도하여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자기의 두 아들이 예수님의 양 편에 설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었는데 이제 주님의 양편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죄인을 보며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양편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사 53:4)셨습니다.

CRUCIO

(24-28절)

사형집행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제삼시, 곧 오전 9시가 되었을 때(막15:24-28)입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영하시는 계획에 따라 시간을 정하여 단계 단계 이루어 가고 있으십니다.

(단7:12) "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사형집행관들이 겉옷을 찢어 나누고 속옷은 제비를 뽑아 가져갔습니다(시22:18).

십자가의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써 죄패를 달았고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못 박았습니다. 이 강도들은 열심당원으로 바라바의 부하일 것입니다.


더러운 웃음들

(29-32절)

이들의 극악무도함은 처절한 고통에 생명이 꺼져가시는 주님을 향하여 식을 줄을 모릅니다.

(시22:7-9)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애2:15-16)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지혜2:13,16-20) "의인은 자기가 하느님을 안다고 큰소리치고 주님의 아들로 자처한다, (16) 그의 눈에는 우리가 가짜로만 보인다. 그는 우리가 걷는 길이 더럽다고 멀찍이 피해 간다. 의인들의 최후가 행복스럽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가 한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인생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기다려 보자 (18) 의인이 과연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이 그를 도와서 원수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폭력과 고문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의 온유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입만 열면, 주님이 자기를 도와 주신다고 말해 왔으니 그에게 아주 수치스러운 죽음을 한번 안겨 보자"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들을 여기 주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처음으로 있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도성이 이렇게 무도한 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죽임을 당해온 일이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악에 종지부를 찍으시기 위해 골고다에서 이같은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고문과 죽임을 당하셨기에 모든 불의에 고통을 당한 자들을 감싸 안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백성에 대한 사면과 보호의 전권을 주님께서 소유하시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과 율법을 전부 새롭게 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습니다.

(막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주님의 전권은 믿는 자들에게 생명과 용서로 발휘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벌과 심판으로 작용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면 믿을 것처럼 끝없이 볼거리가 될만한 표적을 보여달라 시험하였습니다. 그들이 본만큼, 그들이 아는만큼 심판의 긍휼도 자비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막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함께 못박힌 두 사람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함께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복음에서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 아주 짧은 순간에 종착점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순간에 한 사람은 영벌에 한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됩니다.

(눅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기 도

저희를 구원하시려고 온갖 조롱을 견디신 주님의 큰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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