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으로 보는 세계의 불가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도서관은 진정한 미덕으로 가득한 고대 현인의 모든 유물이,
그리고 현혹과 기만이 없는 모든것이 보존되어 안식하는 신전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 경 -
이름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위치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건설시기 : 기원전 323년경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도시로 갈 수 있는 천연적인 항구와
나일강과도 가까웠기 때문에, 다른 도시들과의 문화적 교류, 교역, 식량생산, 군사적인 위치까지 모든것이 완벽했던 천혜의 도시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
교육과 학문의 중요성을 잘 알고있는 왕이였는데요.
이 지리적으로 좋은 알렉산드리아를 세계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했고,
그 중심에는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건설계획이 있었습니다.
옛 문화재 복원에도 관심이 많아, 아르테미스 사원 등의 복원을 시작했었죠.
땅 정복과 문화, 교육의 발전에 힘을썼던 군주, 알렉산드로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끝까지 보지못하고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죠.
알렉산드로스의 사망 이후, 이 넓은 땅들은
대왕의 부하 4명이 나눠 가지게 되었고, 헬레니즘의 시대가 시작이됩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에 속하게 되었는데요.
다행히도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대왕의 의지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이 도서관의 건설을 계속해서 진행시키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태까지 유래가 없는 거대한 지식의 보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탄생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도 알렉산드로스 대왕만큼 교육과 문학의 중요성을 아는 왕이였습니다.
이 도서관의 모토는 "전 세계의 모든 책과 문헌들을 수집하자" 였는데요.
당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도시들 중 하나였던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이런 특징을 잘 파악해 책이나 문서가 있는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주고
도서관에 없는 책이 있다면 돈을 주고 사들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필사본을 만들어 책끼리 물물교환을 하고, 필사본을 보관하는 등의
방법을 선보여 대략 50만권이상의 책들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매일 수많은 책들이 들어오니 사서들은 책들을 찾기 쉽게 분류하고 배치하였으며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세계적인 학자들이 지식을 나누고 연구하던
최고의 연구소가 되었습니다.
해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필로스가 도서관 내부에 의학교를 세우고
해부학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리스에선 해부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미라를 만들던 이집트는 고대서부터 해부를 해왔기 때문이였죠.
또한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도 이 도서관에서 연구하며
많은 저서를 써내게되었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
지구의 원주를 측정해낸 최초의 인물
에라토스테네스
그리고 유레카로 유명한 천재학자
아르키메데스 모두 이 도서관에서 연구하고 저서를 집필했답니다.
이 도서관이 파괴된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4가지 가설들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1. 카이사르 내전 중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의도치 않은 방화
2. 3세기경 아우렐리우스의 침략 중 파괴
3. 콥트교황 테오빌로의 칙령으로 인해 분서
4. 서기 642년, 무슬림의 지배하에 분서
4가지 중 한 가지 사건으로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이 사건들을 거치며 천천히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여튼, 이 도서관의 파괴로 인해 더 빨리 과학적 진보를 이룰 기회를 놓치버렸다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 학자들의 평입니다.
200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이 고대의 도서관 이름을 이어받은 현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입니다. 겉부분에 세계 모든 언어로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게 특징입니다.
한글로 '세월' , '여름', '강' 이라고 새겨져 있다고 하네요. blog.daum.net/qkrclgus300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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