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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마태복음 7장 원어 강해

by 은총가득 2020. 9. 18.

 

마태복음 7장 원어 강해

 

마 7:1~6 비판과 정죄에 대한 경고

올바른 대인 관계의 지침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대인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지적하신다.

1. 비판하지 말라(1,2절)

사람의 판단이 항상 옳고 무오한 것은 아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의 판단이라 해도 오판의 여지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오판에 대한 책임을지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W.Barclay) 비판은 신중을 기해야 하며, 절제가 따라야 한다. 누가의 기록에는 정죄하는 행위도 함께 금지되고 있다(눅6:37,38).

1) 비판하지 말라
(Mh; krivnete, i{na mh; kriqh'te메크리네테 히나 메 크리데테, 1절)
메(Mh아니)는 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로, 의지, 소원, 의심에 대해 부정한다. 이는 또다른 부정사인 우(ou;아니)가 사실을 부정하는데 반해 그 개념을 부정하며, 신약성서에서 직설법 이외의 법들과 함께 사용된다(Arndt-Gingrich), 크리네테(krivnete비판하지)는 직설법과 명령법 양자(兩者)에 해당되나 부정사가 메(mh)이므로 명령법이다. 이 단어는 '나누다'라는 뜻에서부터 고르다, 판단하다, 법률적인 판단을 하다 등의 의미로, 해설하다라는 뜻에서부터 믿다, 결심하다 등의 의미로 발전되었다(F.Brschel). 70인역(LXX)에서는 눌린 자들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시72:2), 대부분 법률 용어로 쓰인다. 구약의 상당어는 어근인 샤파트(fpv심판하다)와 미쉬파트(fpvm)이다(V.Herntrich). '샤파트'는 다스리다와 판단 하다의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판단하다'라고 할 때에 관심사는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창16:5). 하나님께서 심판관이라는 것은 고대 구약 사상이다(V.Herntrich). 신약에서는 하나님뿐 아니라 예수 자신에 의해서 이것이 집행되는 것(22,23절)으로 나타난다.

2) 비판을 받게 됨
(ejn w|/ ga;r krivmati krivnete kriqhvsesqe엔 호 가르 크리마티 크리네테 크리데세스데, 2a절)
엔 호(ejn w|/으로)는 관계대명사가 전치사와 결합되어 사용된 예이다. 그 의미는 '이런 처지에 있어서, 이런 환경하에서'가 된다(Arndt, Gingrich). 엔(ejn안에)은 여격을 지배하는 전치사로서 장소 및 시간, 인과 관계 등을 나타낼 때 쓰인다. 신약에서는 주로 70인역(LXX)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히브리어 베(B안에)와 유사한 점이 있다. 크리마(krivma비판)는 재판관의 '결정'을 의미한다. 보통은 판결문으로서의 결정을 나타내며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포함한다(F.Buschel). 크리데세스데(kriqhvsesqe비판을 받을 것이요)는 하나님에 의한 심판이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영적으로 높은 곳에 이른 자의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은 영적 교만이다(黑崎). 하나님께서 교만을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잠15:25), 우리는 습관적인 비판, 신랄하고 불공정한 비판 행위(A.T.Robertson)를 버리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도 남을 판단할 만큼 선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입법자요, 재판관이시기 때문이다(약4:11,12).

3) 헤아림을 받게 됨
(kai; ejn w|/ mevtrw/ metrei'te metrhqhvsetai uJmi'n카이 엔 호 메트로 메트레이테 메트레데 세타이 휘민, 2b절)
메트론(mevtro/n헤아린)은 측량하는 도구, 즉 양을 재는 것을 가리키며, 본문의 전반부를 직역하면 '말로 된다'가 된다(Arndt, Gingrich). 70인역(LXX)에서는 제의적 측량에서나 무게와 길이를 가리킬 때, 세상의 척도를 가리킬 때에 이 용어를 사용한다(K.Deissner). 메트레데세타이(metrhqhvsetai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메트레오(metrevw재다, 측량하다)의 미래 수동형으로 필연성이 전제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경고이다.

2. 자아를 먼저 성찰하라(3-5절)

자기를 돌아보는 노력이 없이는 잘못된 길로 들어설지라도 깨닫게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흠에 관심을 갖기 전에 먼저 자기를 살피는 지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전10:12).

1)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
(th;n de; ejn tw'/ sw'/ ojfqalmw'/ doko;n ouj katanoei'"텐 데 엔 토 소 옵달모 도콘 우 카타노에이스, 3절)
옵달모스(ojfqalmov"눈)는 시력의 기관뿐 아니라 심적, 영적 이해를 가리키는 용어로 신약에서 나타난다(Arndt, Gingrich). 70인역(LXX)은 이 단어를 70여회 사용하는데, 종종 인간의 지각이나 판단 혹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W.Michaelis). 도코스(dokov"들보)는 통나무에서 그 위에 판재를 놓는 것(Papyrus), 마루청을 받치는 서까래, 판재(Moffat), 기괴하게 툭 튀어나온 기둥 등을 의미한다(A.T.Robertson). 카타노에오(katanoew깨닫지)는 단순한 노에오(noew지각하다, 통찰하다)의 의미를 강화시키며 '~에 몰두하다'를 의미한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시각을 통한 인식을 뜻하는데, 예를 들면 한 대상을 자세히 보는 것(약1:23,24), 사실이나 과정등을 관찰하는 것 등이 있다(J.Behm).

2)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
(#Afe" ejkbavlw to; kavrfo" ejk tou' ojfqalmou' sou아페스 에크발로 토 카르포스 에크투 옵달무, 4절)
아페스([afe"하라)는 아피에미(avfivhmi보내버리다, 버리다)의 제2단순과거 명령형이다. 제1단순과거와 제2단순과거의 차이는 변화의 형식에 있을 뿐 시상으로서의 작용이나 기능에는 차이가 없다(J.G.Machem). 따라서 제1단순과거와 마찬가지로 계속되거나 반복되지 아니하는 과거 어떤 동작에 대한 명령을 나타낸다. 에크발로(ejkbavlw빼게)는 에크발로(ejkbavllw쫓아내다, 빼내다)의 제2단순과거 가정법인데, 단순히 일회적으로 혹은 점적으로 발생하는 동작을 나타낸다. 눈에서 티를 빼내는 것은 계속적인 동작이 아니라 일회적인 것이다. 카르포스(kavrfo"티)는 티끌이 아니라 마른 나무 조각 혹은 왕겨가시(Moffat), 작은 알갱이(Good Speed), 눈을 자극할 수 있는 작은 입자(A.T.Robertson), 아주 무의미한 것(Arndt, Gingrich) 등을 가리킨다. 티는 도덕적인 결점이나 교리상의 결점이다.

3) 자신을 먼저 고쳐야 함
(uJpokritav, e[kbale prw'ton ejk tou' ojfqalmou' sou' th;n dokovn, kai; tovte diablevyei"히포크리타, 에크발레 프로톤 에크 투 옵달무 수텐 도콘, 카이 토테 디아블렙세이스, 5절)
휘포크리테스(uJpokrithv"외식하는 자여)는 '배우'라는 뜻을 나타내며, '위선자, 사칭자'로 번역된다. 유대교에서는 이 단어문을 대부분 나쁜 뜻으로만 사용하였고, 위선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배신으로 악한 성격을 띠는 속임수라는 의미로 더 많이 썼다. 70인역(LXX)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관복음에서도 나쁜 의미로 나온다. 예수도 대적자들을 이 단어로 지칭하셨다(U.Wilckens). 프로톤(prw'ton먼저0은 첫째를 의미한다. 시간적으로 먼저나 차례를 가리킬 때 또는 첫째로, 무엇보다도 먼저라는 뜻이다(Arndt, Cingrich).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디아블렙세이스(diablevyei"밝히보고)는 디아블레포(diablevpw눈여겨 보다, 똑똑히 보다)의 미래형이다. 자신을 치료한 후에라야 똑똑하고 분명하게 상대방을 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오직 세구절, 본문과 막8:25,눅6:42에서만 쓰이고 있다(A.T.Robertson).

3. 거룩한 것을 욕되게 말라(6절)

주님은 본문에서 지나치게 무차별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고 있다(黑崎). 교회는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주위를 둘러싼 이교주의와 비기독교 사상에 흡수되지 않으려면 이것이 필수적이다(W.Barclay).

1)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는 일
(Mh; dw'te to; a{gion toi'" kusivn메 도테토 하기온 토이스 퀴신, 6a절)
도테(dw'te주지)는 디도미(didwmi주다, 내주다, 넘겨 주다)의 제2단순과거 가정법이다. 반복하지 아니하는 동작, 즉 단순히 일회적 혹은 점적으로 발생하는 동작을 나타낸다(J.G.Machen). 토 하기온(to; a{gion거룩한 것)은 '거룩한 것'을 뜻하며, 본문에서 제사에 쓰는 고기를 가리킨다(Arndt, Gingrich). 거룩한 것이 귀고리 또는 목에 거는 부적을 가리키는지, 또 다른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것은 개의 관심을 전혀 끌 수가 없는 것이다(A.T.Robertson). 개가 고기를 싫어하는 법은 없다. 개들은 그것을 기뻐하며 환영할 것이다. 문제는 개에게 그것을 주고 그것을 쓰레기로 만든다는 것이 신성 모독의 행위가 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Trench). 퀴온(kuvwn개)은 신약성서에서 축어적,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개는 추하게 사는 동물이며 늑대와 유사하다. 성도는 추하게 사는 자들과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멀리해야 하겠다(빌3:2).

2)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불신자
(mhde; bavlhte tou;" margarivta" uJmw'n e[mprosqen tw'n coivrwn메데 칼레테 투스 마르가리타스 휘몬 엠프로스덴 톤 코이론, 6b절)
메데(mhde말라)는 부정적, 선언(選言)적인 불변사로서 앞서 나온 부정을 계속하는 역할을 하며, 의미는 '그리고~아니, 그러나~아니'이다(Arndt, Gingrich). 마르가리타스(margarivta"진주)는 완두 또는 도토리를 닮았드므로 멧돼지들이 속은 것을 알게 될 때까지 그것들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A.T.Robertson). 진주는 고대부터 보석으로 간주되어 왔다. 진주의 산출지는 홍해, 페르시아만, 인도양이 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통해 서양에 전파되었다. 이 단어가 70인역(LXX)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유대교는 값진 말씀을 가리킬 때 부유적으로 진주를 사용한다. 본문에서는 천국의 구원 은혜를 의미하고 있다(F.Hauck). 돼지는 사납고, 더러운 데서도 거리낌없이 살고 있는 불신자이다(黑崎). 거룩한 것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한 자를 가리킨다.

3) 씻기고 상하게 될 위험성
(mhvpote katapathvsousin aujtou;" ejn toi'" posi;n aujtw'n kai; strafevnte" rJhvxwsin uJma'"메포테 카타파테수신 아우투스 엔 토이스 포신 아우톤 카이 스트라펜테스 렉소신 휘마스, 6c절)
메포테(mhvpote~할까)는 mhj의 강조형으로 접속사로 사용된다. 본문에서는 미래 직설법과 함께 쓰여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 카타파테오(katapatevw짓밟다)는 거룩한 것에 대하여 무감각한 자들이 복음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대해 모독하고 복음의 사자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진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위협적인 장애물들이다(W.Barclay). 스트라펜테스(strafevnte"돌이켜)는 스트레포(strevfw뒤로 돌아서다)의 제2단순과거 분사 수동형이다. 주동사가 나타내는 동작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낸다(J.G.Machen). 전도자는 뱀처럼 지혜로와야 한다(10:16).


마 7:7~14 기도의 헌장과 율법의 정신. 좁은 문

위대한 약속과 거룩한 의무

주께서는 본문을 통해 기도의 헌장이라 할 위대한 약속과 율법이 지닌 본래의 정신 그리고 성도가 추구하고 나아가야 할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신다.

1. 기도의 대헌장(7-11절)

기도와 관련한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이 절망과 좌절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 합당한가를 잘 가르쳐 준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게 마련인데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 바로 그 해답이다.

1) 구하고 찾는 자에게 주심
(Aijtei'te kai; doqhvsetai uJmi'n, zhtei'te kai; euJrhvsete ... pa'" ga;r oJ aijtw'n lambavnei아이테이테 카이 도데세타이 위민, 제테이테 카이 휴레세데…파스 가르 호 아이톤 람바네이, 7a,8a절)
아이테이테(Aijtei'te구하다)는 aijtevw(아이테오)의 현재 명령형인데, 이는 현재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반복되는 어떤 동작을 명령할 때 사용된다(J.G.Machen). 기도는 일회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구하는 것을 얻기까지 끊임없이 계속 기도해야 한다. 아이테오(Aijtew강요하다)는 '강요하다'와 '요청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며, 신약에서 요구들을 종종 종교적으로 사용된다(G.Stahlin). 도데세타이(doqhvsetai주실 것이요)는 디도미(didwmi주다, 내주다, 넘겨 주다)의 미래수동형이다. 성도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됨을 알게 해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나 그 방법은 그분이 자유롭게 선택하신다(W.Barclay). 파스 호 아이톤(pa'" oJ aijrwn구하는 이마다)은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구하는 자마다'라는 뜻이다. 헬라어에서 현재분사는 계속하거나 반복 혹은 진행하는 동작을 나타낸다(J.G.Machen). 기도하는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야곱이 얍복나루에서 보여준 끈질긴 기도의 자세가 필요하다(창32:25,26).

2)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림
(krouvete kai; ajnoighvsetai uJmi'n ... kai; tw'/ krouvonti ajnoighvsetai크루에테 카이 아노이 게세타이 휘민…카이 토 크루온티 아노이게세타이, 7b,8b절)
크루에테(krouvete문을 두드리라)는 '쿠루오'(krouvw두드리다, 때리다)의 현재 명령형이다.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힘써야 함을 나타낸다(J.G.Machen). 두드린다는 것은 요구의 실제적인 내용을 강조한다(G.Bertram). 아노이게세타이(ajnoighvsetai열릴 것이니)는 아노이고(ajnoigw열다, 열리다)의 미래 수동형이다. 이 문은 스스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열어주어야 가능하며, 계속적으로 열심히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주실 것이다. 그분의 요구는 기도하기를 계속하라는 것이며, 그 안에 우리의 성실성의 시험이 있다(W.Barclay).

3)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심
(povsw/ ma'llon oJ path;r uJmw'n oJ ejn toi'" oujranoi'" dwvsei ajgaqa; toi'" aijtou'sin aujtovn포소 말론 호 파테르 휘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도세이 아가다 토이스 아이투신 아우톤, 11절)
포소 말론(povsw/ ma'llon하물며)은 예수께서 즐겨 사용하신 보다 강력한 논증이다(A.T.Robertson). 도세이(dwvsei주시지)는 미래형으로 구하는 자가 반드시 받게 될 것을 암시한다. 아가돈(ajgaqon좋은 것)은 '좋은 것, 옳은 것, 유익한 것'을 뜻하며, 본문에서와 같은 복수형은 '소유, 보화'를 가리킨다(Arndt. Gingrich). 인본주의적인 헬레니즘은 이 단어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했는데, 구약과 유대교에서의 접근도 헬레니즘처럼 종교적이며, 신약의 기본적 접근 또한 마찬가지이다(W.Grundmann).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지혜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므로 실망하지 말고 기도 생활을 게속해야 한다(W.Barclay).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사람은 인생을 실패하는 법이 없다(왕상22:25).

2. 율법의 정신(12절)

주님의 교훈 가운데는 새로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많은데 본문도 예외가 아니다. 이것은 전에는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새 교훈이고 인생과 그 삶의 책임에 대한 새로운 견해이다(W.Barclay).

1)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
(Pavnta ouo{sa eja;n qevlhte i{na poiw'sin uJmi'n oiJ a[nqrwpoi판타 운 호사 예안 델레테히나 포이오신 휘민 호이 안드로포이, 12a절)
'판타'(Havnta무엇이든지)는 '모든 것, 무엇이든지 다'라는 뜻이다(Arndt, Gingrich). 자기 자신에게 싫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도 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Hillel). 델레테(qevlhte하는 대로)는 델로(qevlw원하다)의 현재 가정법으로 반복하거나 계속하는 동작, 즉 진행적, 선(線)적인 동작을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바라다, 가지고 싶어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포이에오(poievw행하다, 행동하다)는 인간의 활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 행동에 대해서도 사용한다. 히나(i{na)는 목적의 뜻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거나 아주 없어진 경우에 동사를 보태 주는 부정사 또는 대격 부정사를 대신하여 쓰인다(Arndt, Gingrich). 본문에서처럼 원하다, 힘쓰다라는 의미 외에도 조심하다, 부끄러워하는(벧후3:17), 청구하다(눅9:40), 호출하다(28:10), 야기하다(27:20)등의 뜻으로도 쓰인다.

2) 최선을 다하여 도우라
(ou{tw" kai; uJmei'" poiei'te aujtoi'"후토스 카이 휘메이스 포이에이테 아우토이스, 12b절)
후토스(ou{tw")는 '이렇게, 이와 같이' 등을 의미하는 부사인데, 본문에서처럼 앞에 나온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고, 또 뒤에 따르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Arndt, Gingrich). 남들이 자신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져 주기 원한다면 자신도 남들에 대해 그와 같아야 하고, 남들이 자신의 인권을 존중해 주기 원하거든 자신도 남들에 대해 그와 같아야 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한 단어이다. 자신이 당하기를 원치 않는 고통은 다른 사람에게도 주지 말아야 한다(Epictetus). 세베루스(A.Severus) 황제가 생의 황금률로서 지키기 위해 왕궁의 벽에 새겨 놓았던 금언은 '너에게 되어지기를 원치 않는 것은 다른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아라'하는 것이었다(W.Barclay). 포이에이테(poiei'te대접하다)는 현재 명령형이다.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그리해야 하겠다는 말이다(J.G.Machen). 성도는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것을 충분히 활용토록 힘써야 한다(딤전6:17-19).

3) 율법과 선지서의 기본 정신
(ou|to" gavr ejstin oJ novmo" kai; oiJ profh'tai후토스 가르 에스틴 호 노모스 카이 호이 프로페타이, 12c절)
'후토스'(ou|to"이것)는 '이, 이것'을 의미하는 지시대명사이다. 일반적으로 여기, 지금있는 것을 가리켜 거기에 주목을 하게 하며, 또 바로 앞에 나온 것을 가리킨다. 그 절 가운데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주어이기는 하지만, 논의하고 있는 주요 개념에 보다 가까운 것일 때 그 제목을 가리키는 수도 있다. 본문에서와 같이 주격으로 있을 때에는 지시대명사가 서술어의 성(性)을 취한다(Arndt, Gingrich). '노모스'(novmo"율법)는 기본적으로 올바른 것을 의미하며, 헬라와 헬레니즘 세계에서 규범, 규칙, 관습, 전통 등에 아주 폭넓게 적용되었다(H.Kleinknecht). 70인역(LXX)이 이 단어를 대체로 토라(hr;wT율법)에 대해 사용하며, 신약의 용법도 이와 유사하다. 즉 그것이 구약 전체를 의미할 수 있을지라도 통상 모세오경을 나타낸다(W.Gutbrod). 주께서 언급하신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황금률로 일컬어지는 이 교훈은 구약성서의 정신인 것이다. 황금률은 산상 설교에서 가르친바 있는 '완전케 함'(5:17)의 핵심이다*McNeile).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 중심이 새롭게 되는 변화가 따라야 한다(W.Barclay, 롬12:2)

3. 좁은 문(13,14절)

사람은 모든 행위에서 선택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선택 여하에 따라서 성패가 결정된다. 이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길이며 주님은 본문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신다.

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Eijsevlqate dia; th'" stenh'" puvlh"에이셀나테 디아 테스 스테네스 퓔레스, 13a절)
에이셀다테(Eijsevlqate들어가다)는 에이셀코마이(Eijsevlkomai들어가다, 들어오다)의 단순과거 명령형이다. 계속되거나 반복되지 아니하고 과거 발생한 동작에 대한 명령으로 선택이 지니는 의미와 비중을 알게 해준다(J.G.Machen). 디아(diav으로)는 속격을 지배하는 경우에는 장소에 대해 쓰일 때 그 의미는 통하여(through)가 된다. 시간에 대하여 사용된 때는 한도를 가리키는 경우와 시간의 간격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Arndt, Gingrich). 스테네(stenh좁은)는 '폭이 좁은, 얇은, 가난한' 것을 의미하며, 좁은 문이나 비좁게 다져진 길에 대한 개념이 철학에서 나타난다. 본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넓고 쉬운 길과 구별되는 힘든 길을 가리키고 있다(G.Bertram). 주님은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하도록 명령하신다. 노력의 길 이외에는 위대하게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결코 없다(W.Barclay).

2)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o{ti platei'a hJ puvlh kai; eujruvcwro" hJ oJdo;" hJ ajpavgousa eij" th;n ajpwvleian호티 플라테이아 헤 퓔레 카이 유뤼코로스 해 호도스 헤 아파구사 에이스 텐 아폴레이안, 13절)
플라테이아(platei'a크고)는 '넓은'을, 유뤼코로스(eujrouvcwro"넓어)는 '자리가 넉넉한'을 의미한다. 이러한 길은 어느 도시, 어느 읍, 어느 마을에나 있으며, 거기에는 멸망으로 유혹하는 백등(白燈)이 빛나고 있다(A.T.Robertson). 아파구사(ajpavgousa이조하는)는 아파고(ajpavgw데리고 가다)의 형재분사형으로 현재 진행하는 동작을 나타낸다(J.G.Machen). 본문에서는 멸망에 이르도록 진행한다는 의미가 있다(Arndt, Gingrich). 길을 잘못 선택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얼마나 큰가를 일깨워 준다. 쉬워 보이고 짧아 보인다고 선뜻 그 길로 나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노릇이다. 아폴레이아(ajpwvleia멸망)는 70인역(LXX)에서는 일반적으로 '소멸'의 의미로 사용되며, 여기서는 영원한 파괴를 가리킨다(A.Oerke),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 자는 영광을 받을 자격이 없다(롬8:17).

3)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kai; teqlimmevnh hJ oJdo;" ... kai; ojlivgoi eijsi;n oiJ euJrivskonte" aujthvn카이 테들림메네헤 호도스…카이 올리고이 에이신 호이 휴리스콘테스 아우텐, 14절)
테들림메네(teqlimmevnh협착하여)는 들리보(qlivbw에워싸다)의 완료 수동분사이며, '좁은, 답답한'을 의미한다(Arndt, Gingrich). 마치 바위 틈 사이에 있는 좁은 골짜기와 같이 아주 좁은 상태를 나타낸다(A.T.Robertson). 휴리스콘테스(euJrivskonte"찾는 이가)는 현재분사로서 그 동작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이며 진행중임을 시사한다(J.G.Machen). 좁은 길, 고난과 어려움이 따르는 길은, 비록 그 길이 옳고 생명의 길이라도 찾는 이들이 심히 적다. 우리는 언제든지 거룩함과 의만 쫓도록 힘써야 하겠다(딤후3:12).


마 7:15~23 거짓 선지자에 대한 예수의 교훈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경계해야 할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교훈과 심판의 메시지

본문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며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들을 삼가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생활 기준이 된다.

1.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는 교훈(15절)
양과 이리를 비교하여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비유한 교훈이다. 유사한 병행 구절이 누가복음에 수록되어 있다(눅6:43,4413:25-27).

1) 거짓 선지자
(Prosevcete ajpo; tw'n yeudoprofhtw'n프로세케테 아포 톤 스슈도프로페톤, 15a절)
마태는 종종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경고로 시작한다(6:1). 프로세케테(Prosevcete삼가라)라는 단어는 항상 전치사 아포(ajpo;~로부터)를 동반한다. 프로페테스(profhvth"선지자)는 '앞의'라는 뜻의 프로(pro;)와 '말하다'라는 뜻의 페미(fhmiv)가 결합된 단어로 '미리 아는 자' 혹은 '미리 말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이다. 광의적 의미로 볼 때는 교사가 된다. 거짓 선지자는 구약과 신약에 자주 등장하는데 하나님과 대립하고 복음을 거스르는 존재로 철저히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복음시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더불어 거짓 그리스도들도 경계하고 있다(24:11,24;막13:22).

2) 양의 옷을 입은 자
(ejn ejnduvmasin probavtwn엔 엔뒤마신 프로바톤, 15b절)
엔뒤마신(ejnduvmasin옷)이라는 단어는 본서에 일곱 번 나타나며 누가복음에 한 번 사용되었다(눅12:23). 프로바톤(probavtwn양)도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이다. 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양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21:22;13:24,25,38,39). 양은 희생 제물로 바쳐진다.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묘사되었다(요1:29).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예언자적 직무의 표식으로 털이 많은 외투를 입었다(3:4;왕하1:8슥13:4). 그러나 신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이러한 관행을 따르지는 않았다.

3) 거짓 선지자의 특성
(e[swqen dev eijsin luvkoi a{rpage"에소덴 데 에이신 뤼코이 하르파게스, 15c절)
예언자들의 허위성은 노략질하는 이리의 성품으로 나타난다. 마태는 23:27,28에서와 같이 에소덴(e[swqen속에는)을 삽입시켰고, 11:12;12:29;13:19에서 사용한 하르파게스(a{rpage"노략질하는)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였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의 노략질하는 성격이란,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희생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겔22:27습3:3요10:12행20:28-30). 한편 10:16에서는 양을 제자로, 이리를 제자 아닌 자로 묘사하였다. 이리로 비유된 거짓 선지자는 진리가 속에 없으므로 위장(僞裝)하는 자요(요일4:1-3) 이기적인 욕심을 위하여 남의 것을 탐하는 자이다.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성도들이 참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2. 열매로 구별하는 거짓 선지자(16-20절)

본문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이 나오며 거짓 선지자의 마지막 운명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1) 열매로 판단함
(ajpo; tw'n karpw'n aujtw'n ejpignwvsesqe aujtouv"아포 톤 카르폰 아우톤 에피그노세스데 아우투스, 16절)
카르폰(karpw'n열매)은 행실, 즉 실생활을 가리킨다. 외경(Didache)에는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를 그들의 행위로 판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Didache11:3) 병행 구절인 12:33의 후반부에 기록된 '열매로 나무를 안다'는 말은 성령을 거역하는 말을 함으로써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 바리새인들과 관련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교회 내의 거짓 선지자들에게 적용되었다. 마태는 12:33의 에크(ejk에 의하여)라는 전치사 대신 아포(ajpo;~로부터)를 사용하는데, 이같은 마태의 다양한 문체의 변화는 두병행 구절의 의미를 구분짓기 위함이다.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눅6:43,44)과도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누가는 카르폰(karpw'n열매)을 단수로, 마태는 복수로 기록하였다. 또한 마태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아우톤(aujtw'n그들을)을 추가하였다. '안다'(ejpignwvsesqe에피스노세스데)라는 동사는 누가의 현재형에서 미래형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마태는 예수 이후에 존재할 교회의 거짓 선지자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마태는 강한 어조의 에피스노세스데를 사용함으로써 신자들을 속이며 진리를 갉아먹는 거짓 선지자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들의 행실을 살펴 분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는 병행 구절(6:44b)에서 선언적인 진술, 즉 '~하느니라'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면에 마태는 부정형의 질문을 사용함으로써 제자들에게 부정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6:25,26,30). 그러므로 누가가 사용한 우데(oujde;not)는 메티(mhvtido not)로 대치되었다. 마가의 에크(ejk~에 의하여)도 아포(ajpo;~로부터)로 바뀜으로써 문장은 단단하게 구조를 이룬다. 아칸돈(ajkanqw'n가시나무)은 성경에서 나쁜 식물로 간주되고 있으며(창3:18), 스타퓌라스(stafula"포도)는 좋은 열매로 나타난다. 팔레스틴에는 포도와 비슷한 열매를 맺는 가시나무가 있다고 한다. 외형적으로는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하더라도 근본이 다른 나무는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없음과 같이 거짓 선지자들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누가는 엉겅퀴 대신 찔레를 지칭하는 단어로 바투(bavtou)를 사용하였으나 마태는 트리볼론(pribovlwn엉겅퀴)을 사용한다. 이것은 야칸동(akanqwn가시나무)와 동일한 어미를 사용하여 병행을 이루며, 구약의 기록과 일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창3:18호10:8). 누가와는 반대로 마태는 포도를 앞에 놓고 무화과를 나중에 놓고 있는데, 가시나무로 야생 포도나무를 생각했으며 엉겅퀴로는 질이 낮은 이름도 없는 야생나무들을 연상한 듯하다.

2) 아름다운 열매와 나쁜 열매
(ou{tw" pa'n devndron ajgaqo;n karpou;" kalou;" poiei아우토스 판 덴드론 아가돈 카르푸스 칼루스 포이에이, 17,18절)
덴드론 아가돈(devndron ajgaqo;n좋은 나무)은 위에서언급한 포도나 무화과와 같은 나무들이며 예수를 섬기는 제자들을 의미한다. 한편 카르푸스 칼루스(karpou;" kalou;"아름다운 열매)는 거짓 없는 선한 행위를 말한다. 샤프론 덴드론(sapro;n devdron못된 나무)은 가시나무나 엉겅퀴로 비유되는 거짓 선지자들이며 나쁜 열매(ponhrou;" karpou;"포네루스 카르푸스)는 그들의 위장되고 탐욕스러운 행위이다. 그들은 도덕률 폐기론자들이며 선을 행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자들임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팔레스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을 비유로 하여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비유를 베푸셨다. 이러한 방법은 당시 제자들에게 매우 설득력있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에게서 선한 행실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3) 거짓 선지자들의 운명
(ejkkovptetai kai; eij" pu'r bavlletai에콥테타이 카이 에이스 퓌르 발레타이, 19,20절)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는 경고의 말씀은 세례 요한의 설교에서 유래한다(3:10b). 마태는 이 경고를 통하여 도덕률 폐기론에 대항하고 있으며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예수의 메시지를 일치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여기에서 심판의 메시지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영원한 심판에 적용된다. 마태는 좋은 열매의 은유를 본래의 개별적인 형태로 뒤돌려 놓고 있는데, 이는 요한의 메시지와 예수의 메시지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3:10b의 운(ou그러므로)이 생략되었는데, 본문에서는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는 요한의 메시지의 앞부분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마태는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라는 반복적인 간략한 진술로 결론짓는다(16,20절). 아라게(a[rage그러므로)는 결론적인 반복으로 이끄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며(17:26), 반복의 용법은 요점을 강조할 뿐 아니라 거짓 선지자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는 주제를 계속 유지시킨다.

3.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와 불법을 행하는 자(21-23절)

본문은 최후의 심판 때에 천국에 들어갈 자의 조건과 천국 공동체에서 추방당할 자의 구체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1)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oJ poiw'n to; qevlhma tou' patrov" mou호 포이온 토 델레마 투 파트로스 무, 21절)
마태는 누가가 병행구절(6:46)에서 사용한 칼레이테(kalei'te불러)를 레곤(le;gwn)으로 대치했는데, 이는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을 대조하기 위함이다. 이런 뚜렷한 대조는 23:3에 다시 나타난다. 5:19에는 가르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대조되어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퀴리에, 퀴리에(kuvrie, kuvrie주여, 주여)가 존경하는 선생의 의미로 사용된 데 비하여 본문에서는 최후 심판의 주라는 명확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누가의 것보다는 더 강한 부정을 암시한다. 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th;n basileivan tw'n oujranw'n천국)은 마태가 즐겨 사용한 용어이다(25:7). '천국에 들어갈 자'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5:20;18:3;23:13).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거니와 이는 마태의 기독론을 반영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율법과 예수의 가르침에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율법에 깃든 정신과 율법을 완성하는 예수의 교훈대로 사는 것이다.

2)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
(tw'/ sw'/ ojnovmati토 소 오노마티, 22절)
폴로이(polloi많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당시 마태 공동체 내에 거짓 선지자들의 문제가 심각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엔 에케이네 테 헤메라(ejn ejkeivnh/ th'/ hJmevra그 날에)는 종말론적인 메시지에 자주 등장하는 심판의 날을 말한다(3:12;4:19,36). 신약에서 이 말은 '그리스도의 날'(빌1:6,10), '주의 날'(고전5:5살전1:8), '그 날'(롬13:12살후1:10)로도 불리었다. '이름으로'도 마태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10:41;18:5;2:9;23:29;24:5;28:19). 단순한 여격으로 되어있는 오노마티(ojnovmati이름으로)는 구약에 나타난 거짓 선지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렘14:1427:15)을 마태가 여기에서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짓 선지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좇아내는 등 많은 권능을 행사하였으므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3) 불법을 행하는 자
(oiJ ejrgazovmenoi th;n ajnomivan호이 에르 가조메노이 텐 아노미안, 23절)
호몰로게서(oJmologhsw밝히 말하되)는 '고백하다'로 번역되기도 하는데(AV), 공적인 선언을 나타내며 권위를 내포한 말이다. 그들은 입으로 예수의 이름을 고백하고 사명을 다했노라고 하겠지만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도 그들이 위선과 탐욕에 가득 찬 거짓 선지자들이었다고 고백할 것이다. 우데포테(oudevpote도무지)는 그들 사역의 거짓성을 강조한다. 마태는 공동체의 일원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거짓 선지자들을 단호하게 거절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에그논(e[gnwn일지)이라는 동사는 부정과거로서 누구 누구의 것이라는 소유의 관계를 의미하는데(25:12;암3:2고전8:3갈4:9딤전2:19), 특히 본문에서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 우테포테(oujdevpote결코~하지 않다)와 함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은 그들이 예수께 속한 자들이 아니요 예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주의 법을 행하는 자마다 주께 속한 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아노미안(ajnomivan불법)은 본서에 네 번 등장하는 단어이다(7:23;13:41;23:28;24:12)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자들로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도덕을 폐기하려는 자들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말씀은 시편5:5의 인용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천국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이나,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의 법을 폐기하는 자들은 천국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게 될 것이다.  cafe.daum.net/correctth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