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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히 6:13-20)-영혼의 닻과 같아서

by 은총가득 2020. 9. 14.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히 6:13-20)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성경: [히6:13]
ꃨ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할실 때에 -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할때 대부분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으며(행3:25;7:17;롬4:13;갈3:8,14,16,18) 본서에서도 아브라함을 예로 제시하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13-15절;2:16;7:4-5;11:8-19). 13-15절의 아브라함에 관한 서술은 믿음의 모범으로서 12절의 '본받으라'는 권면에 대한 내용이다.
ꃨ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 본절은 창22:16의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를 저자가 논리적인 부연 설명을 덧붙여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맹세'에는 약속에 대한 지연(遲延)이 암시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약속을 이행하신다면 맹세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West-cott). 하나님은 자신을 세워 스스로 맹세하셨다(출32:13;사45:23;렘22:5;49:13).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에 대한 확실한 이행을 보증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약속의 확실성에 대한 가장 큰 보증이 되신다(Lane).

성 경: [히6:14]

ꃨ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 본절은 70인역의 창22:17을 다소 변형시킨 인용구이다.
+------------------+-------------------------------------------------+
| 창 22:17 | |
| (LXX) | 에 멘 율로곤 율로게소 세 카이 플레뒤논 플레뒤노 토 |
| | 스페르마 수 |
|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
+------------------+-------------------------------------------------+
| 본문 | 에이 멘 율로곤 율로게소 세 카이 플레뒤논 플레뒤노 세 |
| |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
| | 번성케 하리라' |
+------------------+-------------------------------------------------+

70인역에는 '플레뒤노 토 스페르마 수'(내가 너의 씨를 번성케 하리라')로 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플레뒤노 세'(*, '내가 너를 번성케 하고')로 되어 있다. 두 구절의 의미는 동일한 것이나, 이렇게 저자가 '너의 씨'를 '너'로 변경시켜 인용한 것은 이야기의 초점을 아브라함에게 집중시키기 위함이다(Schroger). 또한 창22:17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자손의 번성뿐만 아니라 땅에 대한 소유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자손에 대한 약속만을 언급한다. 이는 11:17-19의 내용 즉 약속을 성취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이삭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까지 인내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Swetnam).

성 경: [히6:15]
ꃨ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믿음과 인내에 대해 엄격한 시험을 거친 후에 약속에 대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창22:1,15-18). 약속의 성취는 이삭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마저도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이것은 어떠한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으며, 그와 같은 믿음은 약속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였다(Lane). '약속을 받았느니라'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에서와 야곱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약속의 완전한 성취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고 말씀하셨기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보다 깊은 의미를 내다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Morris).

성 경: [히6:16]
ꃨ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 저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17절) 당시 일반 사람들이 하던 맹세와 비교하여 설명한다(Cicero, Philo). 일반적으로 맹세는 발언한 것에 대한 결정적이고도 구속력이 있는 확증이었다. 구약성경에서 맹세는 맹세하는 사람보다 더 크고 위대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되어졌으며(신6:13;10:20) 만일 맹세를 하고서 이를 어기면 그것은 십계명 중 제3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었다(출20:7;신5:11;슥5:3,4). 실제로 맹세는 약속한 것의 명백한 진실성을 비준해 달라고 하나님을 엄숙히 부르는 행위를 수반하였다(Philo). 저자는 아마도 아브라함이 이방인들과 다툼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요구한 사실과 이러한 맹세는 최후 결정으로 더이상 변개(變改)할 수 없음을(창14:22;21:23-24;24:3) 염두에 두고 본절을 기록하였을 것이다(Lane).

성 경: [히6:17]
ꃨ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 본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창22:16-17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는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특히 '보증하셨나니'의 헬라어 '에메시튜센'(*)은 '중재자'란 뜻의 '메시테스'(*)에서 유래한 말로서 '중재자가 되다', '보증인이 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맹세가 필요없으나 자신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 한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의 후손들을 시사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후손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후손 즉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Lane, Mo-rris).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을 고무(鼓舞)시켜 주는 말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Michel, Spicq, Foerster).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맹세는 자신의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증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성 경: [히6:18]
본절은 '히나'(*, '위하여')로 시작하는 목적절로 하나님께 맹세하신 목적을나타낸다.
ꃨ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 '이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13절과 17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가리킨다(Bruce, Michel, Kuss). '약속'은 모든 날 마지막에 나타난 말씀인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1:2),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보증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통해 성취되었다(20절;히5:6,10; 7:17,21,28;시110:4, Lane). 한편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뒤오 프라그마톤 아메타데톤 엔 호이스 아뒤나톤 프슈사스다이 데온'(*)은 '이 두 가지 변할 수없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므로'(by two unchangeable things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 NIV)라는 의미로 이 두 가지 사실 즉 '약속'과 '맹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성경의 단편적인 한 두 구절에서 유추한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에 뿌리를 둔 것이다(민23:19;삼상15:29;시89:35;사31:2).


ꃨ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소망'은 본서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이룩되었으며 앞으로 완성되어질 구원을 나타낸다(Michel, Grasser,Glaube, Mora). 저자는 '앞에 있는 소망' 즉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 구속의 소망이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약속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으로 인해 이중의 보장을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Lane, Schierse). 이러한 소망을 바라보고 삶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죄악을 피해가야 한다(Morris). 한편 '큰 안위'는 앞서 언급한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오는 '용기' 혹은 '위로'를 가리킨다(Robertson). 하나님은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 즉 자신이 행하신 약속과 맹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현재 구원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인해 종말론적 구원의 성취를 소망하고 현재 지상의 삶 가운데서 위로를 받게 된다.

성 경: [히6:19]
ꃨ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 본절에서 닻의 비유가 사용되는 것과 같이 '삶'을 '항해'에 비유하는 것은 고대 문학에 있어서 흔히볼 수 있는 표현이었다(Hilgert).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와같은 비유는 오직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이 '닻'의 비유는 헬라문학에서도 그러했듯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Lane). 저자는 소망이 '영혼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소망하는 종말론적 구원의 성취가 확고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의 '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케스'(*)는 인간을 '육'과 '영혼'으로 분리하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本質的)인 생명을 나타낸다(Morris).


ꃨ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 '휘장'은 구약 시대의 성막 안에 있던 두 개의 방 즉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천을 가리킨다. 이 휘장 너머 즉 안쪽은 지성소를 의미한다(출26:31-35;레16:2,12,15;21:23;24:3).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레16: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들어가심으로(20절) 휘장은 찢어졌고(마27:51;막15:38)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자들이 자유롭게 지성소 즉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종말론적구원의 성취를 통해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 '들어가나니'의 헬라어 '에이세르코메넨'(*)은 '에이세르코마이'(*, '들어가다')의 현재분사로서 '닻'(*, 앙퀴란)을 수식한다. 따라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닻'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닻'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한다(Windisch,Kasemann, Grasser, Koster, Schroger). 그러나 이 '닻'은 다시 소망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결국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소망'이다(Lane, Kuss, Michel, Spicq).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망'이라는 사실은 7:19의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는 말씀으로 더욱 확증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소망은 닻과 같이 튼튼하고 안전하여 세상의 어떠한 시련이나 유혹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Morris).

성 경: [히6:20]
ꃨ 그리고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 '앞서 가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드로모스'(*)는 본절에서와 같이 단수로 사용된 용례가 고전에서나 헬라 문헌에는 거의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어의 복수 형태인 '프로드로모이'(*)는 주력 부대 앞에 나가있는 '첨병'이나(Herodotus, Polybius), '주력 함대를 앞서 인도하는 배들'(Alciphron), '처음 익은 열매'(민13:20;사28:4), 혹은 '전령'(Herodotus)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용례에 비추어 볼 때 본절의 '프로드로모스'는 '선구자', 혹은 '선두주자'라는 의미를 지니며 동시에 누군가가 '프로드로모스'의 뒤를 따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선구자(先驅者)로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직 수행을 위해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5:7-10). 즉 예수께서는 자신의 대속적인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셨으며 그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씻어 백성들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10:14, Lane).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구속을 힘입어 뒤따라 하나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확증이 된다(Hewitt).


* 우리의 확실한 보증이 되어주신 예수님(히브리서 6:13~20)

 

* 본문요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주시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실 때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결국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으로 약속이나 맹세를 하실 수 없고,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은 결코 취소되지 않으리라는 변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사실은, 주께 소망을 두고 있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보다 앞서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으니, 우리도 이 소망을 가지고 튼튼하고 견고한 휘장 안으로 들어갑시다.

 

* 본문해설

 

1.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13~16절)

 

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며

14) 이르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줄 것이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창 22: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오래 참고 견딘 끝에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16)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더 큰 자를 두고 맹세합니다.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입니다(모든 다툼과 논쟁을 그치게 하는 최후의 보증이 됩니다).

 

- 아브라함이 오래 참고 견딘 끝에 약속을 받았다(15절)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25년 만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그 후 약 15년 후에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의 확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리를 떠난 지 약 40년이 지난 후입니다.

 

- 맹세는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다(16절) :

지금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의 다툼은 그 상태로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보다 큰 자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여 그 다툼을 끝낸다는 것이므로,

맹세는 모든 다툼을 끝내게 하는 최후의 보증이 된다는 뜻입니다.

 

2. 우리의 확실한 보증이 되어 주신 예수님(17~20절)

 

17) 하나님께서도 그 약속을 상속받은(그 약속을 이어받은) 자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명확하게)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18)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변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사실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을 줍니다.

19)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견고하고 튼튼한 영혼의 닻과 같아서,

우리를 휘장 안으로(성전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20) 예수께서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서 우리를 위하여 그곳에 들어가셔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18절) :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은

① 하나님은 결코 거짓으로 약속과 맹세를 하지 않으셨다는 것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맹세는 결코 취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18절)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이 약속은 결코 취소되지 않으리라는 이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

 

- 우리보다 먼저 달려가서 그 곳에 들어가셔서(20절) :

예수께서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보다 먼저 부활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보다 먼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부활하게 되는지를 친히 먼저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버리고 담력을 가지고

그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20절, 견고한 소망이 있는 이유

 

이 앞 절에서, 우리가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자손들이기 때문에, 믿음과 인내로 부지런한 자세를 가질 것을 당부한 바 있습니다.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약속된 것을 얻기 위해 오래 참음, 즉 인내할 필요를 말씀합니다. 기다리고, 참고, 어려움 가운데에서 버텨내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신자들에게 허락하신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오랜 기간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살아보니 쉽게 쉽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세상에 눈을 고정하고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참된 소망, 저 천국의 소망, 구원받음에 대한 본질적인 기쁨,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말하고 섬기는 과정들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아브라함을 먼저 거론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잖아요. 그런데 그 약속의 대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렸습니다. 삶이 처한 형편과 곤란함, 고통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잘못되었고 실제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부분을 알기 때문입니다. 17절과 18절에서 하나님의 속성이 두 가지가 등장하고 있네요. 17절에서는,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자녀들, 즉 지금의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이기에 복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이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18절에서,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확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성상 하실 수 없는 것이 바로 중간에 약속을 파기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못하시고요, 거짓말을 하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사탄이 주로 쓰죠.

 

이런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가려는 자들을 모르실리 없겠죠. 그리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격려를 우리가 거부하는 교만한 경우도 있었죠.

 

주님은 우리의 앞에 가십니다. 인도하십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다루십니다.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죄로부터 오는 사슬 같은 얽매임을 끊어주셨죠.

 

소망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소망이 없다면 닻을 내리지 못한 배와 같습니다. 이 소망은 그냥 인간이 가진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약속들에 대한 소망입니다. 주님의 고난으로 완성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휘장 안으로, 즉 주님의 보좌 앞에 즐거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휘장 안’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에서만 나오고, 구약에서도 레위기 16장 2절에만 나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갈 그 귀하고 소중한 소망이 없는 인생은 부유물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의 파도가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붙잡고 있지 못할 때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것은 주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의 소망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겨운 삶을 인내하며 살아갈 때 소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소망의 확실성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신자의 삶을 위한 닻입니다. 이 닻은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이 소망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20절에서 앞서 가신 예수의 표현은  선구자라는 뜻입니다. 프로드로모스 라는 헬라어단어입니다. 이미 2장 10절과 12장 2절에서 하르케곤이라는 단어로 창시자로 언급이 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늘 앞서 가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힘겨움도 다 먼저 겪으셨고, 우리에게 구원과 믿음을 주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이제 소망을 주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고 앞서 가신 주님의 뒤를 따르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길을 중단 없이 가기 위해 필요한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약속에서 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에게 주님은 그 약속을 영원토록 지켜 가시죠. 그것이 위로가 되는 이유입니다. 소망을 견고하고 튼튼하게 붙잡고 가야겠습니다. <산을 넘는 발>

 

 

우리가 이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히6:19a)

We have this hope as an anchor for the soul, firm and secure.

 

Hope(1886)

George Frederick Watts(1817~1904),

Tate Gallery,London, England

 

영국 화가 조지프레데릭왓츠의 소망(hope)라는 작품은 일견 보기에는 제목과 달리 절망적 입니다. 둥근 돌 위에 걸터 앉은 앞도 볼 수 없는 누더기 차림의 여인, 다 끊어진 비파를 부여잡고 연주하는 것 같지만 아름다음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 입니다.

 

조금 상황을 확대해 보면 둥근 바위는 절망 속의 무기력한 여인이 깔고 앉은 더 절망적인 지구의 모습, 우리의 현실이 그려지며, 한치 앞도 못보며 고개숙인 채 끊어진 비파를 움켜잡은 가련한 여인이 바로 연약한 우리네 모습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비파에 주목해서 살펴보면 한줄 현이 남아있고 그것을 켜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됩니다. 프레데릭 왓츠는 이것을 소망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내 앞에 남아있는 한줄 소망... 그것을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있는 힘을 다해 움켜쥐고 연주하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소망, 인류의 소망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라는 약속처럼 우리에게도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소망 입니다. 이 소망은 내 영혼의 닻 같아서 세상의 그 어떤 명예나 부 보다도 튼튼하고 안전한 위로와 소망을 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앞에 남아있는 한 줄 소망. 바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영혼이 견고하게 닻을 내리며 인생의 여정을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약속 성도의 오래 참음

♤성경 : 히 6:13-20

하나님 약속 오래 참음으로 기다리십시오.
하나님 약속은 성숙되면 실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실상이 되 줄 믿습니다)

 

1. 하나님의 맹세는 스스에게 하십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13 [자기보다 더 큰 이 없어 자기로 맹세하여]

2. 아브라함에게 약속은 복과 번성입니다.
14 [복 주고 복 주며 번성하고 번성케 하리라]

3.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약속 실상되었습니다.
15 [그가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맹세하심 무슨 의미입니까?
1. 그 약속을 변개치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17 [약속 변치 않음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2. 약속 받은 우리로 안위도 받게 함입니다.
18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소망을 위해 약속에 따라 나아가게 함입니다.
19 [이 소망을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4.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으로 들어 가심입니다.
20 [예수께서 멜기세덱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약속은 변개함이 없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맹세는 안위와 행하심을 믿습니다)


히6:13~20

제목: 반드시 복주고 번성케 하리라.

 

번성이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번성입니다. 둘째는 경제적 번성입니다. 셋째는 영적번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번성의 복은 세 가지를 겸한 번성이었음을 창세기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손이 번성했고, 경제가 번성했고, 믿음도 번성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라는 번성의 약속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라보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고, 바다의 모래알을 바라보며 자손의 번성을 꿈꿨습니다. 또한 동서남북 땅을 바라보면서 경제의 번성을 꿈꿨습니다.

야곱은 신풍나무 살구나무 버드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그곳에서 교배하는 양들은 모두 얼룩이가 나올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대로 경제의 거부가 되어져 한 떼 두 떼를 세 떼를 이끌고 고향을 찾을 만큼 거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어려움을 당할 때 단을 쌓는 신앙과 하나님을 찾아 벧엘로(하나님의 집) 올라가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복주시고 번성케 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 참아 약속하심의 축복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14절에 보면 “반드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약속의 확실성을 뜻합니다.

반드시 복주고 번성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만 하신 약속이 아니라 지금 아브라함의 후손 믿음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신 축복의 약속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는 약속을 내게 이행해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도 그가 기도하매 3년6개월 동안 하늘에 우로가 없었더라 하였고, 다시 기도하매 큰 비가 내렸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손바닥만한 구름조각의 떠오름을 보고 큰 비가 내릴 것을 준비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위대한 역사를 가능하게 합니다. “너희에게 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이 산을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우라 말하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되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믿을 때에 놀라운 역사 일어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 믿고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반드시 응답하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한 것은 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우리도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대하 26:4~5)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남 유다의 10대 왕 웃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을 통해서 나라를 축복하셔서 영토도 확장되었고, 무역과 목축과 농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요했습니다. 또 군사 정책도 잘 정비하여 강대국이 되어 주변 나라에서 조공도 받고, 애굽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형통하게 되자 그만 웃시야 왕의 마음속에 교만이 들어갔습니다. 성공하고 난 뒤에, 축복받고 난 뒤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그 말씀에 불순종해서 결국 그는 문둥병에 걸려서 별궁에서 지내다가 68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열왕의 무덤에도 묻히지 못하고, 근처 땅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에 잘했어도 지금 못하면 웃시야처럼 버림을 받게 됩니다. 웃시야 뿐입니까? 사울왕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겸손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교만이 들어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가문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 형통케 하시지만, 불순종할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이탈되어서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출 17:11)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왕상 3:11~12)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시 21:1~2) 자녀가 복을 받고(시 147:11,13), 귀신을 내어 쫓고(막 9:28~29), 교회를 부흥하게 하고(행 2:42,47), 병을 치료합니다.(약 5:16)

 

기도의 시작은 번영의 시작이지만 기도를 멈추는 것은 번영을 끝내는 것입니다.

기도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건강도, 축복도 함께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웃시야 왕이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형통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찾아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동안에는 형통케 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저버리고, 돈과 명예, 권세, 세상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욥기 8장 5~7절 말씀에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욥이 고난당할 때에 수아 사람 빌닷이 와서 욥에게 한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부지런히 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정직하고, 인정받으면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고난과 역경을 당해도 다시 복구하게 하시고, 낮아졌다 할지라도 다시 높여주시고 창대하게, 번창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믿음으로 드릴 때 놀라운 번성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하심은 변치 않습니다.

 

17절에 “그 뜻이 변치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라고 했고, 18절에는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역속의 불변성을 뜻합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고 , 다니엘서 6:26절에는“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라고 했습니다.

계1:8, 17절에 보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시작과 끝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끝까지 책임지고 인도하시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출발부터 종점까지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확실하고 안전하게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변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가 영원불변성 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십니다.

잠8:22-23절 사이에도 “여호와께서 그 조회의 시작 곧 태초에 일 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이미 났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집사가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꿈을 꾸었습니다. 잠시 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하게 살았느냐?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니 선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닙니다”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시 그러면 그대는 항상 의롭게 살았느냐? 떠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세 번째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항상 깨끗하게 살았느냐? “아닙니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 어떤 벌이 내려질 것인가 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자신을 감싸서 놀라서 위를 눈을 들어보았더니 예수님께서 자신을 감싸면서 하신 말씀이 “ 아버지 이 사람은 선하게도 의롭게도 깨끗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저의 편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사람의 편에 서겠습니다” 하신 것이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또한 너를 반드시 복주고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고 구한 것을 다 허락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비록 선하고 의롭고, 깨끗하게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금도 그런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약속하심을 오늘도 이루어 가십니다. 이 사랑의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19절을 보면 “튼튼하고 견고하여”라고 했습니다. “튼튼하고 견고하다”는 말 건축용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떤 것보다 견고하고 튼튼합니다. 그 어떤 힘도 예수 그리스도 넘어뜨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는 나의 반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시31:2~3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믿음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는 "확고한 발"(sure-footed)과 같다. 시 40:2 “그가 나를 무서운 구덩이와 진흙 수렁에서 끌어내셔서 내 발을 반석 위에 세우시고, 내 걸음을 견고히 세우셨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아무리 견고하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명예도 권력도 돈도, 건강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자성어에 보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습니다.

'권세나 세도는 십년을 가지 못한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십일을 붉지 못하고 진다는 말로 아름다움(美)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美不十年(미불십년), 美無十年過(미무십년과) 아름다움도 십년을 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견고한 반석도 드릴로 뚫기 시작하면 뚫리고 부서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견고케 하시면 나는 반석보다 견고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그 시로 우리는 세상에서 밟히게 됩니다. 그 시로 무너지고 쓰러지게 됩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케 된 사람들의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등 모두가 다 하나님이 번성케 해 주신 사람들입니다.

 

이들 역시 선하게도 의롭게도 깨끗하게도 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실수투성이요, 죄와 허물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번성의 주체이심을 믿었고, 나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만큼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셨고 이들에게 약속하신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을 성취 시켜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택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랑하셔서 선택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약속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안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안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 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안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안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 하네.

 

지금 비록 어렵다고 실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책임져 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확실하고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을 보장해 주십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보응을 주시되 생명과 재물과 영광을 주신다고 잠언서에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복주시고 번성케 하시겠다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을 주셨으니 이 약속 믿고, 붙잡고 기도하셔서 주님의 은혜의 해를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 묵상 point

 

1. 우리에게 맹세로 보증하신 하나님(13~17절)

 

1) 맹세는  최종 확정이니라(16절)

지금 현재의 상태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때 하는 것이 맹세입니다.

“내가 지금은 할 수 없지만 다음에 여유가 되면 반드시 요구대로 하겠다”하고

이런 의미에서 맹세는 모든 다툼을 끝내게 하는 최후의 보증이 됩니다.

 

2) 맹세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신 하나님(17절)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그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이런 맹세하는 습관을 좇아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리라고 약속하고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말씀하신 것을 결코 바꾸시는 법이 없으시니 맹세가 필요 없으나

사람들로 확실히 믿도록 하기 위해 친히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맹세하신 것입니다.

 

3)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여(16절)

사람들은 맹세할 때 자기보다 큰 자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만일 자기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보다 큰 그 사람으로부터 벌을 받아도 좋다는 식으로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니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셔도 분명하고 확실한 맹세가 됩니다.

 

4) 아브라함도 오래 참고 견딘 끝에 약속을 받았다(15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래보다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받은 25년 후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무려 25년을 기다려 약속하신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시험에 통과하여

더 큰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때 이삭이 장작을 들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으니

약 16세쯤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최종적으로 약속을 확정 받은 때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처음 약속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40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 묵상 :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어 100세에 아들을 얻었고,

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들 이삭까지 바치려 했다가 더 큰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어서 약속하신 구원의 소망을 받는 자들이 됩시다.

 

2.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18절)

 

1)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17~18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맹세에 대하여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짓으로 우리에게 맹세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에게 주신 그 맹세는 결코 취소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이 약속은

이 천지가 다 변할지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리고 한 번 하신 약속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은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으리라는

이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자는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3) 견고하고 튼튼한 닻과 같은 소망(19절)

주께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니

주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소망은

마치 견고하고 튼튼한 닻과 같이 우리에게 참으로 믿을만한 소망이 됩니다.

 

견고하고 튼튼한 닻은 무서운 파도와 풍랑에도 배를 견디게 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약속 또한 우리에게 견고하고 튼튼한 소망이 됩니다.

 

3. 우리보다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19~20절)

 

1) 히브리서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 : 극심한 핍박의 때였으므로

히브리서가 기록된 때는 아주 극심한 핍박이 있던 때였습니다.

이들은 늘 죽음의 위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살기 위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한 마디만 할까?

아니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교를 당할까

이런 염려를 항상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첫째 독자들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예수께서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서 우리를 위하여 그곳에 들어가셔서(20절)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우리 앞에 달려가셔서

우리보다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소의 휘장 안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께서 들어가신 휘장 안은,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의 지성소인 하나님 나라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3) 그러므로 두려움을 버리고 믿음의 담력을 가지라는 것

예수께서 우리보다 먼저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예수께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친히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습을 보이신 것은,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두려움을 버리고 담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장차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리라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맹세로 인하여 생긴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을 끝까지 붙잡고 예수님을 믿는 삶을 끝까지 지킨다면

주께서 먼저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계신 저 아름다운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이 우리를 영적으로 나태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이 우리를 세상의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약속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지켜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하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주께서 명하신 믿음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십시오.<묵상: 가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