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론
서언
신약성경을 개요함에 있어서 먼저 신약성경 전체를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이는 마치 우리들이 어떤 지역의 구석구석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기 전에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 지역의 전체 지형을 살핌으로써 대략적인 지식을 확보하는 것과 같다.
제 1 장 신약에 비추어 본 구약
신약과 구약의 관계의 중요성은 여기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구약 없이는 신약을, 신약없이는 구약을 올바로 이해할수 없다. 구약과 신약은 한 권의 책과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 신약이 구약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간단 명료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신약은 구약 성경을 영감된 것으로 취급한다.
구약성경을 쓴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벧후 1:21)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다(히1:1). 그들의 기록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딤후3:16) 것이었다. 다윗은 시편을 쓸 때 성령의 감동함을 받아 썼으며(마22:43; 행1:16; 4:25), 성령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다(행28:25).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인간 저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성령이 저자인 것처럼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구약이 성령의 감동을 입어 기록된 것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히3:7; 9:8; 10:15). 이처럼 신약은 구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증거한다.
(2) 신약은 구약 성경을 권위있는 책으로 취급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사단의 시험에 대해 구약을 인용하여 물리침으로써 구약성경에 최종 권위를 부여하셨다.
(마4:4,7,10).
또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도 구약에 최종 권위를 부여하여 그들이 구약 말씀의 참뜻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셨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예언을 권위 있는 것으로 인용하며(행2:16-19,25-28; 롬11:26-27), 구약의 교리를 권위 있는 것으로 인용(롬3:10-18; 9:25-33; 10:18-21), 구약의 말씀이 실패됨 없이 응하였다고 증거한다(행1:16,20; 15:14-18; 딤전5:18; 딤후2:19). 신약은 직접, 간접적으로 구약이 권위 있는 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3) 신약은 구약 성경을 역사적인 책으로 취급한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신약에 인용하면서, 그 인물들과 사건들의 역사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인용하셨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사건(마19:4), 대홍수(마24:37-38), 소돔의 멸망(눅17:28-30), 할례의 관습 (요7:22-23), 율법을 주신 사건(요7:19), 놋뱀의 사건(요3:14), 요나와 큰 물고기 사건(마12:38-40), 니느웨 성의 회개(마12:4), 스바 여왕의 방문(마12:42)등 구약의 사건을 전혀 의심치 않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정, 이를
인용하고 있다. 또한 신약의 저자들은 멜기세덱(히7:1-9), 욥(약5:11), 엘리야(약5:17), 바로(롬9:17), 기생 라합(약2:25) 등의 인물들과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고전10:1)등의 사건들을 역사적인 것으로 믿고 그대로 인용한다.
(4) 신약은 구약 성경을 메시야 예언적인 책으로 취급한다.
그리스도는 확증하기를 "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다"(요5:45-47)라고 하셨으며, 또 그의 제자들에게 "모든 성경(구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셨다(눅24:27,44-47).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구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마1:23; 2:5; 3:3; 4:14-16; 11:10; 12:18-21; 13:14-15,35; 21:4-5,42).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옷을 제비 뽑은 사건도 구약의 성취이며(요19:24,28), 구약 예언에 나타난 대로 군병들은 그리스도의 뼈를 꺾지 않았다(요19:33-37).
(5) 신약은 구약 성경을 은혜시대에 관해 예언한 책으로 취급한다.
신약은 구약이 은혜 시대에 관해 예언한 것으로 설명한다.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르켜 말하였느니라"(행3:24)의 "이 때"는 은혜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행26:22)만 증거했다고 확언한다.
이는 바울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구약이 예언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
신약 시대가 은혜 시대요 구원의 날이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사야의 예언(49:8)의 성취를 선포하면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참조. 히3:13)라고 했다.
구약의 예언이 현재 은혜 시대에 큰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신약에 나타난 명백한 교훈이다.
(6) 신약은 구약 성경을 복음 진술의 책으로 취급한다.
복음은 아브라함에게 전해졌으며(갈3:8),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전해졌다(히4:2,6).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고, 다윗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롬4:5-9; 히11:17). 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았다(히11장).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과 함께 구원 받은 자의 수를 완전하게 채운다(히11:40). 구원의 본질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다.
구원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한 것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구약의 성도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 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받았다면, 오실 메시야인 그리스도를 선포한 구약은 복음을 진술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7) 신약은 구약 성경을 준비적인 책으로 취급한다.
신약은 구약을 은혜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책으로 본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이르러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사61:1-2)을 읽으신 후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눅4:17-21).
이는 이사야서의 내용대로 "주의 은혜의 해"가 임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구약은 신약의 은혜 시대에 대한 준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히브리서는 구약(율법)이 은혜 시대에 있을 "좋은 일의 그림자"(히10:1)요, 신약시대는 구약에서 약속된 "더 좋은 언약"이 성취된 시대라고 말한다(히8:6-13; 렘31:31-34).
(8) 신약은 구약 성경을 기독교인에게 영적으로 유익한 책으로 취급한다.
구약에 기록된 사건들이 우리들의 교훈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1,12). 아브라함이 의로 여김을 받았다는 사건은(창15:6; 롬4:3)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은 자니라"(롬4:23,24). 이처럼 신약은 구약이 기독교인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말한다. 구약의 권면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히12:5,6; 13:6)
(9) 신약은 구약 성경이 흔히 문자 이상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취급한다.
엘리야를 보낸다는 말라기의 예언은(말4:5,6) 신약에서 세례 요한을 통해 성취되었다(마17:10-13; 눅1:17). 하나님이 한 왕을 일으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겠다는 구약의 예언은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 것으로 설명한다(눅1:31-33; 행2:29-36; 렘23:5,6; 겔34:23,24).
이처럼 구약에 나타난 어떤 사건이나 인물들이 문자 이상의 뜻으로 신약에서 설명되곤 한다(갈4:21-31).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신약은 구약성경의 이해를 위한 최종적 인도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신약 없이 구약을 완전히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터득하는 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구약의 참다운 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신약 계시에 의해 밝아져야 하는 것이다(눅24:32,45).
제 2 장 내용에 따라 분류
신약성경 27권을 그 주요 내용과 강조에 따라 분류를 해 보는 것이 유익되리라 생각한다. 신약성경은 역사에 강조를 둔 책들, 교리에 강조를 둔 책들, 예언에 강조를 둔 책들 등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 분류는 그 내용에 있어서 서로 배타적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즉, 역사에 강조를 둔 책에는 교리가 없다거나 예언에 강조를 둔 책에는 역사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1) 역사에 강조를 둔 책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책은 4복음서들이다. 4복음서에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족보, 탄생, 생애, 교훈, 이적,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등의 역사적인 사실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이런 사건들을 기술함에 있어서 각 복음서는 각각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확증하는 공동의 큰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역사를 강조하는 또 다른 책은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누가에 의해 기록된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으로 기록되었는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시작하신 때부터 승천하신 날까지가 기록되어 있다(행1:1-3).
이 사도행전에는 교회의 기원에 대해, 교회와 유대인들의 충돌에 대해, 베드로와 바울에 의한 천국의 확장에 대하여, 그리고 세번에 걸친 바울의 위대한 선교 여행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 서신의 보충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행한 사람이었고 바울과 가장 가까운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2) 교리에 강조를 둔 책
신약 27권 가운데서 서신들이 이에 속한다. 바울의 13서신과 공동서신 그리고 히브리서가 있다. 바울의 13서신을 분류하면 교회에 보내는 일반적인 서신과 특별한 대상에게 보내는 서신들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서신들로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등이 있으며, 이 중 제일 먼저 씌어진 서신이 데살로니가전후서이다.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으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및 빌레몬서가 있는데, 흔히 이 서신들을 가리켜 옥중서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울 서신 중 특별한 대상에게 보낸 서신들 가운데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는 일반적으로 목회서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서신들은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요 개인에게 보내진 서신이다.
그리고 바울 서신 중에서 개인에게 보낸 또 하나의 서신으로서 빌레몬서가 있는데, 빌레몬이라는 개인에게 보내졌다는 점에서 목회서신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의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따로 취급한다.
공동서신들도 이 분류에 속하는데,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를 말한다.
공동서신이라 할 때의 "공동"(catholic)이라는 말은, 이들 서신들의 범위가 어떤 한 교회나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교회에 보내졌기 때문에 사용된 것이다. 이들 서신을 "일반서신"이라고도 부른다.
히브리서도 교리에 강조를 둔 책으로 분류되는데, 히브리서의 저자나 수신자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의견이 각각 다르다.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의 어느 책보다도 더 탁월하게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라는 교리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3) 예언에 강조를 둔 책
신약에서 예언에 강조를 둔 책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이다.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계1:1), 하나님 계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사도가 밧모라는 섬에서 받은 계시로, 학자들간에 그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현재의 은혜 시대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완성에 대한 예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해석자들이, 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이 재림 이후의 영원한 세상에 관해 설명한 것이라는 해석에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제 3 장 신약시대의 종교, 정치, 역사적 배경
신약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신약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은 역사 안에서 기록되었고 역사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인 형편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신약의 메시지와 직결되어 있는 몇 가지의 요소를 중점적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종교적 배경
신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이 기록될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적 형편을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당파나 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은 신약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1) 유대인의 종교적 당파
1) 바리새인(The Pharisees)
예수님의 지상 사역 시에 많은 질책과 비난을 받은 유대인의 종교적 당파가 바리새파이다. 바리새인들은 신약 시대에 가장 큰 세력을 소유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당파로서, 그들의 이름은 "Pharash"(분리하다)라는 동사에서부터 기인됐다. 그들은 분리자였는데 좋은 말로 표현한다면 유대주의를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한 열심분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카비 시대 (The Maccabees:167-63B.C) 직후에 분리주의의 한 당파로 시작을 했으며, 주전 135년경에는 유대주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린 단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 전체를 정경으로 받았고 풍유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구약을 해석했다. 그들은 외적인 관습을 철저하게 지켰는데(마23:23;눅18:11), 규정된 대로 철저하게 금식을 지켰으며(눅5:33;18:12), 기도를 하는 데도 철저하게 금식을 지켰으며(눅5:33;18:12), 기도를 하는 데도 내면적 충실보다 외적인 전시 효과를 더 노렸다 (눅18:9-14).
그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행26:5;빌3:5), 유전과 전통을 철저히 지켰고(막7:3,5-8), 탐욕이 많았으며
(눅16:14), 잔인한 핍박자들이었다(행9:1-2;빌3:5-6). 그들은 외적인 관습을 철저하게 지킨 나머지, 안식일
준수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거나(요5:9,14;9:13,16), 이삭을 잘라 길가에서 먹는 것까지 안식일을 범하는 죄로 규정하게 되었다(마12:1,2;눅6:1-1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사실을 안식일을 범하는 네 가지 죄로 생각했다.
첫째, 밀 이삭을 자르는 것을 추수하는 죄요,
둘째, 이삭을 손으로 비빈 것은 타작하는 죄요,
세째, 껍질을 불어 날린 것은 키질하는 죄요,
네째, 먹기 위한 이 모든 행위는 음식을 장만하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천사와 영들의 존재를 믿었고 영혼의 불멸과 죽은 몸의 부활을 믿었다(행23:6-10).
바리새인들의 결점은 지나치게 외적인 의를 강조한 반면(눅7:36-50), 영적인 실재를 깨닫지 못했다(요3:1-10)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의식적으로 지키는 데 강조를 두었고(마15:1-9), 구약의 본 뜻을 왜곡하여 적용했다 (마15:1,9).
또한,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잘못을 범했고(요9:16,22),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 된 메시야로 영접지 아니했다(마12:24-33).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 당시에 예수님을 괴롭히고 핍박한 중심 인물들로서, 결국은 그들의 핍박과 연결되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자신을 의롭다 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은 위선자들이 많았지만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추종했으며(요3:1-8; 7:50-52; 19:39-40), 바리새인으로서 회개 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복음 전도자가 된 바울의 예(例)도 있다(행 9장; 빌3장).
또한 바리새인들이 도덕적, 영적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 의롭다 함으로써 많은 위선자를 낳았지만, 그들의 도덕적 수준이 당시의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던 점은 사실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유대 주의의 모든 분파 중 바리새인주의만 계속 명맥을 유지하게 되어 오늘날의 정통 유대주의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콜러(Kaufmann Kohler, "Pharishees", Jewish Encyclopedia, IX, pp.661-666)는 바리새인들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1.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기 위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니는 바리새인("shouder" pharisee)
2. 자신이 선한 일을 행할 동안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바리새인 ("wait-a- little" pharisee)
3. 여자를 보면 음욕을 품을까 하여 눈을 감고 다니다 벽에 부딪쳐 자신을 상하게 하는 바리새인("blind" pharisee)
4. 유혹물들을 보지 않기 위해 머리를 위로 치켜들고 다니는 바리새인("pestle" pharisee)
5. 항상 자신의 선행을 계산하고 있는 바리새인("ever-reckoning" pharisee)
6.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바리새인("God-fearing" pharisee)
7.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바리새인("God-loving" pharisee)
2) 사두개인(The Saducess)
사두개파는 부자들의 당파로, 특히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주들의 당파였다. 전통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의 기원은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대에 대제사장이었던 "사독"(Zadok)으로부터라고 전해진다. 사독의 아들들은 포로 시대에도 제사장 직분을 맡았다(왕상 1:32ff; 대하31:10; 겔40:46; 44:15; 48:11).
사두개인들은 그리스도 당시에도 성전을 중심한 하나의 당파로 활약했다. 바리새인들보다는 수자적으로 열세였으나, 그들은 정치적으로 기회를 작 포착한 기회주의자들로서 언제나 집권층의 편에 서서 그들의 정치적 이권과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 당시에 부와 권력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회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의 신학은 합리주의적인 신학이었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격하는 입장을 취했다. 오늘날의 양상으로 표현한다면 그들은 자유주의적인 신학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천사들이나 영들의 존재를 믿지 못했고 육체의 부활도 믿지 못했다(행23:8). 그들은 또한 영혼 불멸을 믿지 못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파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행23:6-9), 때로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하기도 했다(마16;1,6,12; 22:23).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반대에 비하면 대단치 않은 것이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충돌한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몸의 부활에 관한 예수님과의 논쟁이었다(눅20:27-33).
그들은 모세 오경(Torah)에만 최종 권위를 부여했고 구약의 다른 부분의 책들은 모세 오경보다 권위가 낮은 것으로 부여했고 구약의 다른 부분의 책들은 모세 오경보다 권위가 낮은 것으로 취급하였으며 메시야 대망 사상에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두개인들은 헬라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바리새파와는 달리 예루살렘 멸망 이후 살아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제사장 제도의 종식과 로마의 적대심 때문에 사두개파는 단체로서의 존재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 살아날 수 없게 되었다.
3) 서기관(The Scribes)
서기관의 기원은 제사장 겸 학사(서기관)였던 에스라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느8:9). 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공회의 일원들이었다(마16:21;26:3). 그들은 기록된 율법을 보존하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법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구전으로 전해 오는 법을 기록된 율법보다 더 우월하게 생각했다(막7:5-13).
그들은 교사로서 성전에서 가르쳤으며(눅 2:46; 참고. 요18:20), 율법사로 알려졌다(마22:35).
서기관들은 그 당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합세하여 예수님을 처형하게 했다(막14:43, 53; 눅22:66).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마7:28-19).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서기관들에게도 진노를 퍼부으셨다(마23:2,13-15, 23,25,27,29).
그들은 사회 계층의 높은 위치를 좋아했고(마23:6f. 막12:38f; 눅11:43; 20:46),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그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입고 다녔던 통으로 짠 옷을 걸치고 다녔다. 서기관들 중 어떤이는 그리스도를 신뢰했지만(마8:19)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다(마21:15).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는 것과(행4:5)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동참하였다(행6:12).
비록 서기관들이 율법을 맡은 율법사들로서 율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문자적인 율법에만 급급한 나머지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알고자 원하게 된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4) 에세네파(The Essenes)
신약성경에 에세네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1947년 쿰란에서 사해 사본이 발굴된 이래 쿰란 공동체와 에세네파를 동일시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더 나아가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의 일원이었고, 예수님까지도 에세네파에 의해 수련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에세네파에 대해 잠시 다루고자 한다.
요세부스(Josepnus)와 플리니(Pliny)는 약4,000명으로 추산되는 에세네파가 사해 서쪽 지역에 거주했다고 증거한다(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Chap.I,vs.5). 에세네파는 영혼 불멸의 교리를 가르쳤고 감정적 표현을 자제했으며, 향락 자체를 위한 향락을 금했으며 모든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사용했다
(Josephus, Antiquities, BK. 18, Chap.I, vs. 5).
이 종파는 독신 생활을 생활 원리로 삼았다. 그들은 하인들을 두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독신 생활을 권한 것을 집안 싸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요. 하인들을 두지 않은 것은 불의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Josephus, Antiquities, BK. 18, Chap I, sv.5). 이 종파는 일상적인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흰옷을 입고 다녔으며(Bo Reicke, The New Testament Era, p.169), 식사 전에는 손을 씻었다. 그런데 에세네파는 유대인의 명절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았던 듯하다. 그 이유는 그들 스스로의 결례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이 에세네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광야와 같은 장소에서 수도원적인 은둔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제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세네파는 예수님 당시의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것이다. 신학적으로 에세네파는 사두개파보다 바리새파에 더 가깝다. 그 이유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데 있어서 에세네파와 바리새파가 더 유사하기 때문이다. 에세네파는 사람의 영혼이란 멸망될 몸에 갇혀 있는 불멸 존재로, 그 몸이 죽을때 선한 사람들의 영혼은 밝고 시원한 장소로 옮겨지나 악한 사람들의 영혼은 어둠과 폭풍우가 많은 장소로 옮겨져 계속 고통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Merrill C. Tenney, New Testament Survey, p.113).
에세네파의 수도원적인 은둔 생활이 쿰란 공동체의 생활과 유사하며, 쿰란 공동체의 정착지였던 사해 서쪽 지역에 에세네파가 거주했다는 요세부스와 플리니의 증거 때문에, 두 공동체를 동일시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밀러 버로우스(Millar Burrows, The Dead Sea Scroll, pp.279-298)는 조심스럽게 두 공동체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에세네파와 쿰란 공동체의 정착지가 사해 서쪽으로 비슷하며, 재산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도덕적인 수준이 높고 공동체가 함게 예배를 드렸다는 점은 같지만, 두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상이하다.
쿰란 공동체는 여자들을 포함했으나 에세네파는 여자를 포함하지 않았다. 에세네파의 어떤 그룹은 자녀 생산을 위해 결혼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세부스는 에세네파가 결혼을 금한 것으로 전한다. 이 사실은 에세네파의 여러 그룹이 떨어져 살았으며 어떤 그룹은 더 철저한 독신 생활을 하고 다른 그룹은 그렇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도한 쿰란 공동체는 짐승으로 드리는 희생 제사를 금하지 않은 반면, 에세네파는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바치지 않았다. 이처럼 쿰란 공동체와 에세네파 사이에 유사점도 있지만 두 공동체간의 차이가 명백하기 때문에, 두 공동체를 전적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가능한 결론은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의 여러 그룹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록 세례 요한의 외모나 생활상이 에세네파의 생활 습관과 비슷하긴 했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예수님이 에세네파에 의해 수련을 받았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것도, 예수님의 적들이 예수님을 공격한 말로써 알 수 있다 :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눅7:33-34).
이제 쿰란에서 발굴된 문서들의 내용을 간략이 언급함으써 쿰란 공동체의 생활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① 공동체의 규율서(The Manual of Discipline)
② 다메섹 문서(The Damascus or Zadokite Document)
③ 하박국 주석(The Commentary on Habakkuk)
④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간의 전쟁(The War of the Sons of Light and the Sons of Darkness)
⑤ 감사의 시편(The Thanksgiving Psalms)
5) 열심당(The Zealots)
열심당을 영어의 음을 따라 셀롯당이라고도 한다. 신약성경에 열심당에 관한 언급은 예수님의 제자 중 "셀롯이라는 시몬"(눅6:15;행1:13)이 있었기 대문에 나타난다. 열심당은 바래사파나 사두개파와 같은 종교적 당파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열심당은 열성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열심당은 마카비(Maccabees)의 진정한 정신적 후예들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기원은 사실상 로마 이전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이퍼(Pfeiffer)는 "바리새인들이 하시딤(Hasidim)의 후예들인 것처럼 셀롯당은 마카비의 후예들이다"(R.H.Pfeiffer, 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with an Intorduction to the Apocrypha, p.36)라고 말했다. 이처럼 열심당의 기원을 마카비 시대로 잡을 수 있지만, 신약 내에서는 주후 6년에 이스라엘이 이방 황제에게 세금을 낼 수 없다고 항거한 갈릴리 유다의 사건이 열심당과 연루된 최초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참고. 행5:37).
요세부스(Josephus)는 열심당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열심당을 "강도들", 혹은 "산적"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열심당이 "맹렬한 반 로마주의자들이면서도 그들은 거의 다 로마인에게와 마찬가지로 유대 체계에 대해서, 즉 성직자 계급 제도와 부유한 귀족 계급들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었기"(F.F.burce, 신약사, 나용화역, P.128) 때문이다. 브루스는 셀롯당에 대한 그의 (요세부스)원한이 매우 날카로운 이유는 그들의 정책과 활동이 그와 그의 동료 귀족들이 중히 여기는 모든 특권들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것임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었다"(Bruce, 상게서, p.128)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열심당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강도들이 될 수도 있고 애국자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열심당들은 아무에게나 "주"라고 부르지 않고 외국 왕에게 세금내는 것을 거절했다. 그들은 토라(Torah)에 대해 열렬한 헌신을 했으며 토라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 바쳐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친척의 고통이나 친구의 고난도 문제시하지 않을 만큼 열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명칭 "열심당"이 그 집단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2)유대인의 회당(Synagogue)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자주 가르치셨다
(마4:23; 9:35; 13:54; 막1:21; 3:1; 눅4:15,16; 6:6; 13:10).
바울 사도 역시 전도 여행중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했다(행14:1; 17:1-3,17; 18:4,19,26; 24:12).
회당은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각 도시에 설립하여 유지하고 운영하였다. 예수님 당시엔 예수살렘과 갈릴리 지방에 많은 회당이 있었다고 전한다(I마카비5:21-23). 회당은 그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의 사교 장소였으며 율법을 가르치고 조상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시키는 교육적인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회당은 성전의 대행 역할을 했는데 특히 성전과의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회당을 지어 성전을 대신하여 이용한 것이다. 회당에서는 희생 제물 대신 율법을 연구했고 제사장 대신 율법학자(Rabbi)가 봉사했다.
각 회당마다 회당장이 있어(막5:22) 회당의 모든 순서를 진행시키며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회당장이 지도자 역할을 하고(눅13:13), 회당에 새로온 사람을 소개하는 일도 회당장이 맡았다(행13:15). 회당에서 건물과 기물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있었는데, 그의 임무 중의 하나는 안식일의 시작과 종료를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 당시 산재해 있었던 회당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복음 전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바울 사도 역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유대인들과 토론도 하였던 것이다(행13:5,15-43; 19:8).
이런 긴밀한 접촉으로 말미암아 회당에서 행해진 의식이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 자연히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독교의 예배가 처음에는 회당에서 행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야고보 서신은 기독교회를 위해서 기록된 서신이다. 그런데 약 2:1-2은 기독교회가 회당에서 모인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회당과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설교를 한다는 점에서 서로 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유대인들이 기독교회의 복음을 계속적으로 용납지 않았기 대문에 교회와 회당은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서로 다른 궤도를 걷게 된 것이다.
결국 회당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교회의 시작을 도운 것뿐이다.
(3)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
그들은 구약의 예언대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갈릴리로부터 오시지 않고 베들레헴으로부터 오실 것을 알고 있었다(마2:5-12;요7:41-42). 그들은 메시야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며(마2:2), 그가 이적을 행할 것도 알고 있었다(요7:31). 유대인들은 오실 메시야가 예언자일 것과 (요4:29) 그가 신비스럽게 나타나실 것도 알고 있었다(요7:27). 그리고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다윗의 계통에서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마9:27).
유대인들이 이처럼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근본적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은 왜곡되어 있었다. 유대9인들의 왜곡된 메시야 대망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시간적인 왕을 대망 함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수난의 종 대신에 일시적인 왕을 대망했다. 바울의 초기 생애 가운데서 읽을 수 있듯이(빌3장),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죄에 대해 무감각했고 그들이 죄에서부터 구속함을 2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들의 거침돌이 되었다(고전1:23; 벧전2:8). 그들은 메시야가 수난의 종으로 오실 것을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일시적인 왕으로 오실 것을 대망하고 있었다. 수제자 베드로까지도 왜 그리스도가 죽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마16:21-25).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기까지는 삼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요2:22). 따라서 그 당시 유대주의를 배운 대중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요12:32-34). 오늘 날도 그리스도와 유대인들을 분리시키고 있는 큰 원인은 십자가이며, 바로 이 십자가가 복음적 기독교와 현대 자유주의를 갈라 놓은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2) 초월적인 능력의 사람을 대망함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실 것을 대망하지 못하고 초월적인 능력의 소유자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유일신 개념 때문에(참조. 신6:4), 그리스도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이같은 주장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중한 죄라고 생각했다
(마26:63; 막14:62-64; 요5:17-18; 10:32-36).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구속을 위해 지상으로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점에서, 현대 유대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사이에 비슷한 주장을 찾아 볼수 있다.
3) 국가적인 소망을 성취할 자를 대망함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심판을 선포할 사람을 대망하기보다 그들의 나라에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대같은 번영을 회복시킬 자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은 물론 부활 이후에도 이같은 생각이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기까지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올바른 뜻을 제자들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라고 질문한 제자들의 마음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스데반 그리고 바울 사도를 비난하면서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이 유대 백성과 유대인의 율법과 유대인의 성전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마26:61; 행6:13-14;21:28;25:8). 이와 같은 잘못된 견해는 유대인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글을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성전만이 타당한 예배의 처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요4:20-24; 마27:51).
그리고 성전이 파괴될 것을 가르치셨다(마24:1-2). 예수님은 유대 백성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므로 다른 백성이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마21:43;참조.롬11:1-12), 유대인들이 율법의 의식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명확하게 가르치셨다(막7:19;눅11:41).
4) 로마의 통치에서 해방시킬자를 대망함
유대인들은 영적인 구속주를 기다리기보다 그들을 로마의 통치에서부터 해방시킬 정치적 혁명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였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다(요6:15). 예수님이 그들의 육체적인 필요을 채워 주시기 위해 이적을 행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들이 대망하고 있는 메시야가 바로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가졌던 잘못된 왕국 개념을 철저하게 배격 했으며(참조.행1:6),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올바른 왕국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고(요3:1-12, 빌라도에게도 그의 왕국의 참다운 본질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요18:36).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예수님이 지상에 오신 목적이 지상에서 그의 왕국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지 않다(참조. 롬14:17). 이스라엘을 로마의 통치에서부터 해방시켜서 지역적인 왕국을 세우리라는 유대인들의 메시야관과 진정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가르친 메시야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5) 유대인만을 위한 왕국 설립자를 대망함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설립할 왕국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사상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서 찾아볼 수 있다. 세례 요한이 그가 세례 베푸는 곳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꾸짖어 가로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7-9)고 했다. 세례요한이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동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자기들이 참다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하셨다(요8:44). 예수님은 사역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유대인들이 그를 배척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 대신에 이방인을 부르실 것이라고 천명하셨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요 주님이신 예수님을 배척했을 때, 복음은 땅 위의 모든 백성들에게 전파되었다. 예수님께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은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1-12)하신 것은 바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될것을 뜻한다.
같은 뜻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하셨다.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은 그를 영접지 아니하였고,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1-12). 예수님의 오심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요3:16).
그는 우리속의 양뿐만 아니라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요10:16) 소유하고 계신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된다(마24:14). 그리스도는 승천하시기 전, 바로 이 사명을 교회에 주신 것이다(마28:18-20; 눅24:44-49;행1:8). 이처럼 그리스도는 유대인만을 위해 메시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구주로 오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구속 역사 가운데서 그들의 몫을 오해했기 때문에 메시야의 사명 역시 오해하게 되었다.
메시야는 유대인들이 상상한 것처럼 지상 왕국을 설립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구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4) 신약에 언급된 헤롯
신약성경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헤롯이라는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헤롯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사역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헤롯 왕이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헤롯이 어느 기사와 연관되었는지를 세부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1) 헤롯대왕( Herod the Great, 37-4 B.C.)
신약성경에 헤롯 대왕을 언급한 곳은 마2장과 눅1장뿐이다. 이 헤롯 대왕은 "유대인의 왕"이 나심을 조사하기 위해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과 관련되는데(마2:1-3),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로부터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시리란 예언을 들은 그는, 그 지경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인 잔인한 왕이다 (마2:13-18) . 헤롯 대왕은 B.C. 4년에 죽었다(마2:19). 이 사실은 예수님의 탄생 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헤롯 대왕이 사망한 해는 B.C.4년이요, 헤롯의 사망 시기와 헤롯이 어린아이들을 학살한 사건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이 경과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참조.마2:14-15).
결국 예수님의 탄생 연대를 B.C.5년, 혹은 B.C.4년으로 정하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 연대는 로마의 통치자들의 연대를 기준으로 추정한 연대와 일치한다(참조. 눅2:1-7)
이상의 자료들은 예수님이 헤롯 대왕의 통치 시대에 탄생하신 것을 증거해 주는 것들이다.
헤롯 대왕이 죽은 후 그의 통치는 그의 아들들에 의해 분할 되었다.
2)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a, 4 B.C. - A.D. 6)
헤롯 아켈라오는 헤롯 대왕과 사마리아 여자 말다스(Malthace)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로서, 헤롯 대왕이 죽자 유대 지방의 분봉왕(ethnarch of Judaea) 으로 통치케 되었다. 신약성경에 그에 대해 언급된 곳은 예수님이 헤롯 대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올 때였다.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니라"(마2:21-22).
마태의 언급으로 미루어보아, 아켈라오 역시 그의 부친 헤롯 대왕처럼 성격이 포악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3) 헤롯 빌립(Herod Philip, 4 B.C. - A.D.34)
헤롯 빌립은 헤롯 대왕과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나, 헤롯 대왕이 사망한 후 팔레스틴 동북쪽에 있는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통치했다. 헤롯 빌립은 다른 헤롯과는 달리 의롭고 위엄이 있는 사람이었다. 신약성경에 그의 이름에 직접 언급된 곳은 없지만, 마16:13의 "가이사랴 빌립보"를 헤롯 빌립이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헤롯 빌립은 막6:17에 기술된 헤로디아의 전 남편 빌립과는 다른 사람이다(참조. 마14:3). 헤로디아의 남편이었던 빌립은 헤롯 대왕과 마리암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4)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B.C. 4 - A.D. 39)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헤롯이 바로 헤롯 안디바이다. 이 안디바는 헤롯 대왕과 사마리아 여자 말다스(Malthace)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헤롯 아켈라오의 동생이다. 이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레아(Perea) 지방의 분봉왕으로, 예수님의 사역중 많은 충돌을 일으켰던 헤롯이다(눅3:1).
헤롯 안디바는 미신적인 사람이었고(마14:1-2), 여우처럼 간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저 여우에게 이르라"고 말씀하셨다(눅13:32). 이 헤롯이 자기의 이복 형제 빌립(마14:3)의 아내 헤로디아를 가로챈 사람으로서, 이러한 부도덕을 세례 요한이 책망하자 그를 옥에 가두고 결국은 목베어 죽인 사람이다(마14:3-12). 요세부스(Josephys)는 "이제 유대인 중에 어떤 사람들은 헤롯 군대의 멸망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인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세례자(The Baptist)로 불리는 요한에게 행한 악한 일에 대한 심판으로 아주 타당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서로 의를 행하고, 하나님께 경건을 나타내는 덕을 행하며, 나와서 세례를 받도록 하라'고 명령한, 좋은 사람인 요한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AntiquitiesoftheJews, Bk.18,c.5,sec.2)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심문하는 데 관여한 헤롯이 바로 안디바였다.
그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인 줄 착각하여 헤롯의 소관으로 여겨 예수님을 그에게 보냈다.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했다. 누가는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이 일로써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기술한다(눅23:1-12).
A.D.37년 로마 황제 가리굴라(Caesar Caligula)가 즉위하여 안디바의 원수인 헤롯 아그립바 Ⅰ세를 왕으로 세움으로써, 안디바는 그의 통치 시대의 막을 내렸다(참조.P.Eusebius, EcclesiasticalHistory, Book 2, chap. 4.)
5) 헤롯 아그립바Ⅰ세(Herod Agrippa I, A.D. 37-44)
헤롯 아그립바 Ⅰ세는 아리스토부러스와 버니스(Bernice)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로마에서 그라우디오(행11:28)와 같이 교육을 받았으며 또한 갈리굴라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한때, 차기 로마 황제는 갈리굴라가 되어야한다는 말을 한 까닭에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베료에 의해 옥에 갇히었다. 그러나 디베료가 곧 죽고 갈리굴라가 황제위에 오르자, 그는 풀려나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받았다.
갈리굴라가 A.D.41년에 살해되자 아그립바Ⅰ세는 글라우디오의 황제 옹립을 적극 지원했고, 위(位)에 오른 글라우디오는 아그립바Ⅰ세에게 이미 통치하고 있던 지역외에 유대와 사라리아를 그의 관할로 줌으로써, 헤롯 대왕이 통치했던 모든 영역이 아그립바Ⅰ세 때에 다시 통합되었다.
헤롯 아그립바Ⅰ세에 대해 신약성경에 나타난 기록은 행 12장에서 찾아볼수 있다. 그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으며(행12:2),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으나, 주의 사자가 막으셨으므로 그 일을 성취하지 못했다(행12:3-17). 이 사건으로 인해 옥졸들이 헤롯 아그립바Ⅰ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아그립바는 이 처럼 기독교를 심히 핍박한 왕이었으나, 그의 종말의 비참함은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행12:23)라는 누가의 기록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6) 헤롯 아그립바Ⅱ세 (Herod Agrippa Ⅱ, A.D. 48-100)
헤롯 아그립바Ⅱ세는 헤롯 아그립바Ⅰ세와 키프로스(Cypros)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Ⅰ세가 죽을 당시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는 즉시 왕위을 그에게 계승시키지 않고 그의 삼촌으로 대리 통치하게 하다가 그의 삼촌(King of Chalcis)이 죽자 헤롯 아그립바Ⅱ세를 왕으로 임명했다.
헤롯 아그립바Ⅱ세에 대해 성경에 나타난 기록은 행25-26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 사도는 그를 "왕"라고 불렀으며 그가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안다고 말했다(행26:2-3). 이에 대해 헤롯 아그립바 Ⅱ세 앞에서, 자신이 전한 죽은 자의 부활은 너무도 명백한 것인데 그 이유는 자기가 핍박한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자기에게 직접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증거했다(행26:4-23). 이에 대해 헤롯 아그립바 Ⅱ세는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26:28)하면서, 바울이 무죄라는 사실을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다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행26:32)라는 말로 증거했다.
이상 여섯 사람의 헤롯 왕 중 헤롯 대왕(마2:1-3;눅1:5), 헤롯 아켈라오(마2:21-22), 헤롯 안디바 (눅3:1; 13:32; 23:1-12; 마14:1-2,3-12), 헤롯 아그립바Ⅰ세(행12:2,3-17,23), 헤롯 아그립바Ⅱ세(행25장,26:2-3,4-23,28)등은 신약성경에 직접 언급되어 있으나, 헤롯 빌립만은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이들의 통치중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헤롯 대왕 당시 예수님이 탄생하셨으며, 갓난 어린이들의 학살이 있었으며(마2:13-18), 헤롯 안디바 통치하에서는 세례 요한이 목베임을 당했고 예수님이 심판 받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Ⅰ세의 통치하에서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당했으며(행12:2), 베드로가 옥에 갇힘을 당했다(행12:3-17). 헤롯 아그립바Ⅱ세의 통치하에서는 바울 사도가 심문을 받고(행26:2-23) 비록 로마에서 순교하긴 했지만 헤롯 아그립바 통치 기간이 A.D.100년까지인 것으로 보아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도 헤롯 아그립바Ⅱ세가 권좌에 있을 때 일어난 것이다.
<< 복음서를 읽을때 유의해야 할 사항 >>
첫째, 각 복음서의 특징에 유의해야 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복음서에는 서로 공통되는 특징과 다른 특징들이 있다. 네 복음서중 가장 현저한 특징을 나타내는 복음서가 요한복음이다. 나머지 세복음서들은 사건들이 거의 같은 전망에서 보았다고 생각하여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
둘째, 각 복음서의 기록 목적에 유의해야 한다.
어떤 복음서는 기록 목적을 분명히 기술하는 반면, 다른 복음서는 함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나사렛 예수임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것으로, 그 기록 목적이 복음서 안에 함축적으로 나타난다. 누가는 그의 저술 목적을 눅1:1-4에 명백하게 기록했고, 요한은 요20:31에 기록하였다.
세째, 각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전기(傳記)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저자들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자신들의 앞에 있는 모든 자료를 선별적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성육신부터 공생애에 이르는 동안까지의 기록은 전혀 없다. 이 기간 동안에 있었던 사건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기록은 오직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 뿐이다. (눅2:41-50)
네째, 복음서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각 복음서들은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요한복음은 12장-21장까지,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여 예수님의 수난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다섯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누차 말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공생애 시작부터 십자가를 향한 사역임을 분명히 아셨다. 공생애 초기에 사단이 예수님을 방문한 사실 역시 예수님의 사역이 어떠한 사역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다(마16:21-23; 17:22-23; 20:17-19).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때에 관해 자주 언급하셨는데, 바로 십자가 사건을 예견(豫見)하신 말씀이다.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음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여섯째, 각 복음서에 나타난 차이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점을 조화시키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더 명백히 알 수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지상의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셨는데, 마11:28-29에 가서 그의 목적을 변경시켜 새로운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개념은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가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와 다르다는 전제하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하늘나라와 하나님나라를 교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두 단어에는 의미상의 차이가 전혀 없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의식하고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보다는 "하늘나라"를 더 많이 사용하였는데, 다른 복음서는 개념이 더 명백한 "하나님나라"를 더 많이 사용하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태가 "하나님나라"대신 "하늘나라"를 더 많이 사용한 이유는,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킬 때 "야웨"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이름을 감히 사용할 수 없어 "아도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각 복음서의 치이점을 서로 조화시키면 예수님의 생애는 물론, 예수님의 교훈의 깊은 의미를 더 명백히 알 수 있다.
일곱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전과 이후의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
(1)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전에는 모세의 의식적인 율법이 준수되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후에는 모세의 의식적인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 더 이상 그것을 준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세례 요한은 할례를 받았으며(눅1:59), 예수님도 할례를 받았다(눅2:21-24). 그리스도는 백성들이 특정한 모세의 의식을 지킬 수 있도록 그들을 제사장에게 보냈었다(눅5:14;17:14). 이는 그리스도가 율법 아래 태어났기 때문이었다(갈4:4).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후에는 의식적인 율법을 포함한 구약의 모든 율법이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사건이 이를 증명한다(마27:51).
(2)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그가 받을 십자가 고난과 그후에 있을 부활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마16:21). 그래서 베드로는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2)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약속처럼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가르친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요15:26; 16:13).
<< 4복음서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지침 >>
1. 마태복음
1. 예언 성취에 대한 강조
마태복음에는 구약 인용 구절이 130여 가량 수록되었다. 이렇게 마태복음에 구약의 인용이 많은 것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리스도 당시 사건을 통해 특별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와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등의 표현은, 구약의 예언이 신약시대에 성취된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동정녀에 의해 탄생한 사실이나, 애굽으로 피난한 일이나, 나사렛에서 거하신 일, 갈릴리에서 전도하신 일, 고난당하신 일, 십자가에 달리신 일등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의 생애에서 성취된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나사렛 예수가 오래 전부터 약속된 메시야 인것을 천명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강조
(1) 그리스도의 오심은 구약 예언의 성취로 인한 것이다(마1:23; 2:6).
(2) 그리스도의 오심이 특별한 때에 이루어졌다(마2:1; 3:1).
(3) 다윗의 위(位)에 오를 수 있는 바른 계보(系譜)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마1:1-7; 참조.눅1:32-33).
(4)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다윗의 주가 되신다(마22:41-46).
(5) 마태복음에는 팔레스틴의 지리에 관한 설명이 없다.
왜냐하면, 마태는 독자들이 팔레스틴 지역의 지리를 잘 알고 있을 것을 전제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마15:1,2).
같은 공관복음이라도 마가는 팔레스틴의 지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막7:3,4).
이같은 사실도 마태복음이 유대인을 의식하고 기록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6)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내심을 받으셨다(마15:24).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는 구절은 마태복음에서만 찾을 수 있는 내용이다.
(7) 그리스도가 다읫의 자손(the Son of David)임을 강조함.
(8)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의식하고 기록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태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 대신 "천국"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3. 교회에 대한 강조
네 복음서중 특별히 마태복음에서만 '교회'라는 명칭이 언급된다. 교회라는 명칭이 이스라엘을 강조한 마태복음에 유일하게 언급되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있지만, 마태복음엔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리라는 전망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복음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보편적으로 전파될 것이 명백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될 교회의 명칭이 유대인을 강조한 마태복음에 언급되었어도 하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설립하실 의도를 가지고 제자들을 모으고 사역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귀중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4. 복음의 보편성에 대한 강조
(1)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함
(2) 이방인을 부르심
5. 마태복음 기록의 조직적인 면
(1) 메시야로서 예수님께서 오심(마1-2장)
(2) 메시야의 사역(마3-25장)
1> 서술체 : 갈릴리에서 사역의 시작(3:1-4:25)
담화체 : 산상보훈(5:1-7:29)
2> 서술체 : 예수님의 사역의 권위(8:1-9:35)
담화체 : 열 두 제자를 파송함(9:36-10:42)
3> 서술체 : 왕국과 왕국의 오심(11:1-12:50)
담화체 : 왕국의 비유(13:1-52)
4> 서술체 : 새로운 공동체의 생활(13:53-17:27)
담화체 : 큰자와 책임감(18:1-35)
5> 서술체 : 충돌과 완성(19:1-24:3)
담화체 : 마지막 때의 계시(24:4-25:46)
(3) 메시야의 수난과 승귀(마26-28장)
2.마가복음
1. 마가복음의 특징
(1) 베드로의 성급한 성격이 언급된다. 이것은 베드로와 마가의 사이가 친밀하였으므로 가능한 결과이다.
(2) 사건이 급하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급하게 전환된다. "즉시로"라는 단어가 43회 나타난다. 이 수자는 마가복음을 제외한 신약전체에서 사용된 수자보다 많은 것이다.
(3) 마가복음은 세부적인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더 자세하게 장면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오병이어의 이적에 대해 기술할때, 마태는 "무리를 명하여 잔디위에 앉히시고"(마14:29)라고 그 정황을 설명했지만, 마가는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막6:39)라고 잔디의 푸르름을 더 상세히 묘사한다. 잔디가 어떤 잔디였는지는 마가복음을 읽을 때에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세 번 부인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도 마태복음에는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26:34,75; 눅22:34참조)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에는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막14:30)고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는 태도도 다른 복음서들보다 마가복음이 더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당돌히"라는 말이 없으나, 마가복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막15:43)라고 기술하고 있다.
(4)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그것을 기술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행동들에 주의를 집중시켜 묘사한다. 이와는 달리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다룬다.
2. 마가복음에서 강조된 신학적 요소
(1) 예수님의 인성이 강조되어 있다.
(2) 제자가 되는 길의 희생이 강조되어 있다.
(3) 예수님의 메시야직이 감추어져 있다.
3. 마가복음 내용 개관
(1) 첫째부분(막1:2-13)은 서론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의 준비적인 기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마가는 예수님의 이 기간의 생애를 마태나 누가보다 훨씬 더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세례요한의 선포나 예수님의 시험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 부분에서는 예수님의 신분이 강조되어 있다.
(2) 둘째 부분(막1:14-5:43)은 예수님의 권위에 강조를 두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3) 세째 부분(막6:1-8:26)에서는 예수님의 교훈과 이적 행하심이 계속되고, 예수님의 무리들에 대한 연민,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어려운 질문들에 지혜롭게 대답하시는 일 등이 무리들의 무분별하고 탐욕스런 태도와 잘 대조를 이루고 있다.
(4) 네째 부분(막8:27-10:31)은 예수님의 가이사랴 빌립보 사역으로 시작된다. 마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 마찬가지로(마16:13이하), 이 시점을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취급한다.
(5) 다섯째 부분(막10:32-13:37)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여정과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기술한다.
(6) 여섯째 부분(막14:1-15:47)은 예수님이 당하신 수난의 여정을 기록한다. 이 기간 동안의 기록은 다른 기간의 생애에 관한 기록보다 더 생생하고 더 순서적이다.
(7) 마지막 부분(막16:1-20)은 예수님의 부활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그리고 전도 명령을 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3. 누가복음
1. 누가복음의 특징
(1) 누가복음의 처음 네 절에 나타난 바 대로,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고자 하였다. 누가는 다른 사람의 글도 인정했지만, 자기 자신은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눅1:3)후에 기록한다고 말한다.
(2) 누가는 예수를 따르는 일이 사생 결단을 요하는 문제가 되는 시대에 자신이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3) 누가는 기독교 진리가 신빙성 있는 사건에 의존할 때에만 계속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서술하였다. 복음서의 기록은 시공간의 영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기록이다.
사실상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의 몸이 인간의 몸이 아니요 유령과 같았으며, 따라서 예수는 수난을 경험할 수 없었다는 거짓된 교훈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이었다. 누가복음 서두에 나타난 누가의 의도는 교회의 선포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음을 확실하게 규명하는 것이다(눅1:1-4).
(4) 누가는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탄생 기사를 상세히 다루며,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5)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능하고, 세상의 주권적인 구주이심을 묘사하고 있다.
2. 누가복음의 내용 개관
누가복음의 내용은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거의 비슷하므로 생략한다.
4. 요한복음
1. 사도 요한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후, 요한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그는 예수를 따르기 전에 세례 요한을 따랐다. 야고보의 동생이며, 감정이 속히 고조되는 사람들이어서 "우뢰의 아들들"이라고 불렸다.
초대 교회 문헌의 증거에 따르면, 요한은 에베소로 가서 몇 해를 살다가 도미티안 통치때(A.D.81-96), 밧모섬으로 추방되었으며, 네르바(Nerva)때에 에베소로 돌아오도록 허용되었다. 그리고 트랴얀(Trajan)통치때 나이 많아 사망한 것 같다.
2. 요한복음의 특징
(1)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과 말씀에 대한 기록이 많다. 전체 기록 중 약 90%가 다른 복음서엔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5,000명을 먹이신 일과 바다 위로 걸으신 사건(요6:1-21)을 제외하고는, 예수님의 심판, 십자가 처형, 부활(18-22장)에 이르기 까지 공통된 기록이 거의 없다.
나사로의 부활(요11장)은 요한복음에 의해서만 알려진 사건 기록의 대표적인 예이다.
(2) 요한복음은 예수님 생애의 연대를 공관복음보다 더 구체적으로 제공한다. 요한복음은 공생애 동안에 그리스도가 적어도 세 번의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참석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2:13; 6:4; 11:55)
요5:1의 "유대인의 명절"이 유월절인지, 혹은 다른 유대절기인지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고라도, 예{수님이 유월절 참석차 예루살렘에 세 번 올라가신 것이 확실하다.
유월절 참석을 위한 마지막 여행은 죽음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유월절만 기록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기간을 공관복음보다 더 길게 묘사하고 있다.
(3) 4복음서중 요한복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많이 강조한다. 요12장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한 이후, 요한복음은 계속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바로 이전의 사건들과 부활 후의 사건들을 기록한다(요12-22장). 요한복음의 약 절반 정도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계된 약3주간 동안의 일들을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4) 요한복음은 이적을 "표적"이라고 부른다. 이 사실은 이적에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3즉,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요6장)임을 가르친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바리새인이 영적인 소경임을 가르친다(요9:39-41).
나사로의 부활은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임을 가르친다(요11:25).
요한은 사람들에게(20:31)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게 하기 위해 이러한 표적들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5) 요한복음은 그리스도 사역의 예정론적인 면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특정한 시간을 향해서 행하셨다.
(6) 요한복음은 성령에 관한 그리스도의 교훈을 기록한다. 요14장-16장에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성령을 보내시는 사건을 직결시켜 설명한다.
(7) 요한복음은 특별한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빛(light), 생명(life), 어두움(darkness), 심판(judgment), 때(hour), 믿는다(believe)등이 계속 나타난다 공관복음서나 신약의 다른 곳에서 많이 나타나는 믿음(faith)이란 명사가 요한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믿는다(believe)라는 동사가 요한복음에 90회이상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복음에 깊은 영적, 신학적 배경이 있음을 알려 준다.
(8)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영적 속성을 묘사하는 표현을 쓴다.
[I am]구절, 그리스도는 [문(door)],[선한 목자(good shepherd)], [부활과 생명], [참 포도나무], [길, 진리, 생명], [생명의 떡] 이런 용어들이 그리스도의 영적 속성을 나타내 준다.
(9)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처음부터 인간 구원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10) 예수님의 탄생 기사, 세례, 시험, 변화산 기사., 비유 교훈, 성만찬 제정 등이 요한복음에 나타나지 않는다.
(11) 요한은 예수님의 유대 지방에서의 사역을 설명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해 공관복음서를 더 잘 이해 하게 된다. 예수님이 왜 갈릴리에 가셔서 사역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대답도 요한의 기록을 통해 나타나는데, 요한은 유대 사역중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한다.
3. 왕 자신을 강조한 요한복음
(1) 공관복음은 왕국에 관해 강조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왕 자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2) 요한복음은 서두에서부터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리스도가 유대 땅에서 일하신 것을 묘사한다. 요한복음은 또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의 영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3) 요한복음은 그리스도(말씀)의 선재의 영광을 묘사한다.(요1:1-14)
신약 총론 요약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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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종 교수(전 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제1장 신약 성경의 배경
1. 배경 연구의 필요성
성경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배경을 바로 이해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 본문을 바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정치적 사회적 배경
유대교가 체계화된 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 시대를 통해서이고 더욱이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는 유대교란 어머니가 낳은 아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바벨론-폐르샤-그리이스 시대, 그중에서도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이스라엘 통치를 위하여 서로 다투었던 프롤레미 왕조와 셀루커스 왕조, 그리고 그 후 100여 년 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마카비 시대, 끝으로 로마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측면을 개관할 것이다.
(1) 바벨론 시대(주전626-539)
바벨론이 이집트를 점령한 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유다를 정치적으로 통치했다(주전605). 이때 다니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다(단1:1-6). 이때 그 아름답던 솔로몬의 성전은 불타버리고 예루살렘 성의 벽은 파괴되었으며, 남은 국민들은 세 번째 포로로 잡혀갔다(주전586. 왕하25:1-25). 이리하여 사울에서 시작한 유다의 500년 왕국은 종막을 고하게 된 것이다.
(2) 페르시아 시대(주전520-332)
성전건축 및 이스라엘의 회복기이며 모세오경에 의한 종교개혁은 제사이며 학자인 에스라와 평신도이면서 총독인 느헤미야에 의해 성취되었다. 세례요한까지의 400년 동안 침묵의 시대가 된다.
(3) 알렉산드리아 시대(주전332-302)
(4) 애굽 시대(주전301-198)
독특한 민족으로 유대교의 모습을 나타낸 시기
(5) 수리아 시대(주전198-167)
셀류쿠스 왕조 이때부터 유대교의 헬라화를 시키려는 가운데 핍박이 시작됨,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신격화하여 약소민족을 헬라화 및 유대민족에 탄압 ⇒ 헬라화가 노골적으로 되면서 유대민족에 대한 탄압이 급격히 증가
(6) 마카비안 시대(주전167-63): 고난과 용기의 역사
(7) 로마 시대(주전63-주후400): 주후397년 정경 완결(제3차 칼리킥테지 회의)
제2장 신약의 정경
1. 새 계약의 기원
본래 신약이란 말은 고전11:25과 고후3:6의 “헤 카이네 디아데케”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그 뜻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성경, 두 번째는 언약이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두 번째의 계약이란 말이다. 즉 신약이란 새 계약으로 이것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중재자로 하나님과 맺은 옛 계약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성립된 새 계약이란 뜻이다. 이 새 계약에 대하여는 예레미야가 이미 예언한 것이었다(렘31:32-33). 이 예언은 장차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계약이 이루어질 것을 말한 것이다. 마침내 이 예언은 이루어졌다. 구약성경은 새 계약을 예언한 책이요, 신약은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신약 사이엔 계시가 점진성(progressiveness)을 가지고 나타나 있다.
2. 정경 결정의 원리
첫째 사도성
둘째 보편성: 당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았다는 점.
셋째 교리의 일관성; 1,600년 동안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서 기록되어진 성경이 서로 모순됨이 없이 일관성 있는 교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3. 신약 성경과 그 권위
그로마키는 신구약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은 구약에 포함되어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계시된다.” 신구약의 내용을 그로마키와 함께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 ⇒ 그리스도를 위한 준비
복 음 서 ⇒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사도행전 ⇒ 그리스도의 전파
서 신 ⇒ 그리스도의 설명
계 시 록 ⇒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
제3장 신약의 원본, 사본 및 역본
1. 그 종류(신약의 원본은 지금 단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1)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2) 바디칸 사본(Codex Vaticanus)
(3)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
(4) 에브라임 사본(Codex Ephraemi Rescriptus)
(5) 베자 사본(Codex Bezae)
2. 본문비평과 그 한계
(1) 외증; 사본의 종류를 비교 검토하여 될 수 있는 한 오래된 것, 권위 있는 것들끼리 합의되어진 것을 찾는다. 그러나 외증에 의해서만 되어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2) 내증
1) 필기상의 증거(Transcriptional Evidence)
2) 본래적 증거(Intrinsic Evidence)
제4장 복음서
1. 복음서의 문학적 형태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과 부활(Resurrection)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 행적 등은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을 설명하고 전파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먼저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이기 때문에 그 용어는 물론이거니와 강조점까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예수님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약의 인용이 많고(65회), 그리고 이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다음은 로마인을 위한 복음서인 마가복음인데 여기엔 마태복음과는 대조적으로 교훈보다는 대조적으로 교훈보다는 행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아주 간결하고 생생한 묘사, 그리고 많은 역사적 현재형이 사용되고 있다. 누가복음은 헬라인을 위한 복음서이다. 마태복음이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누가복음에는 인류의 구주(Saviour)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끝으로 교회를 위한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되고 있다. 문장은 간단하나 심오한 뜻을 가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2. 복음서의 연구 방법
복음서를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법인데, 칼빈은 이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복음서를 연대별로 서로 조화시켜 가며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단점은 각 복음서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두 번째는 각 복음서의 특징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방법인데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복음서의 통일성(Unity)이 무시되기 쉬우며 제1 저자인 성령보다 제2 저자인 기록자의 특성에만 몰두하기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다같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종합적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본다.
(1) 구약에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은 넷으로 구분됨.
① 왕(King)으로서(시2:6; 사32:1; 단9:25)
② 종(Servant)으로서(사42:1; 사52:13)
③ 인자(Son of Man)로서(사7:14, 9:6-7; 단7:13-14)
④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로서(사9:6-7, 40:3-9)
(2) 구약에 그리스도를 가지(the Branch)로서 묘사하고 있는데 그 이름은 욋가지이다.
① 렘23:5: 가지 ⇒ 왕 ⇒ 사자
② 슥3:8: 순 ⇒ 내 종 ⇒ 송아지
③ 슥6:12: 순 ⇒ 사람 ⇒ 사람
④ 사4:2: 싹 ⇒ 여호와 ⇒ 독수리
(3) 구약에 그리스도는 “보라”(behold)는 말로 4번 소개되고 있다.
① 슥9:9: “보라 네 왕......”(왕으로서)
② 사42:1: “나의 종......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종으로서)
③ 슥6:12: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인자로서)
④ 사40:9: “너희 하나님을 보라”(하나님으로서)
(4) 위의 예언과 신약의 사복음서는 서로 짝을 이룬다.
① 마태복음(그리스도를 왕으로서 묘사) =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
② 마가복음(그리스도를 종으로서 묘사) = 로마인을 위한 복음서
③ 누가복음(그리스도를 인자로서 묘사) = 헬라인을 위한 복음서
④ 요한복음(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서 묘사) =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
4. 공관복음서의 일반적 고찰
공관복음이란 말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적용되는 말로서 요한복음과 구별해서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보는 관점이 셋(마태, 마가, 누가)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1) 공통점
① 배열, 즉 시간과 장소의 배열이 같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초기 유다전도에서 시작되고 있으나 공관복음은 다같이 본격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한 갈릴리 에서 시작하여 유다에서 끝난다.
(1) 공관복음서 문제
구전설(Oral Tradition)로서 쉽게 말해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로 전달된 구전들을 각 저자들이 헬더(Herder, 1796-97)와 기슬러(J.C.J. Giesler, 1818)가 있고, 웨스트코트(Westcott), 스미드(D. Smith), 롸잇(A. Wright)등을 통해 주창되어 왔다. 자료설(Document Hypothesis)로서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 처음 나온 것이 두 자료설(Two-Document Hypothesis)인데 1835년 Lachmann에 의해서 처음으로 주창되었다. 구전설과 자료설을 종합한 ‘양식사 비판’이다.
(2) 공관복음서 문제에 대한 복음적 해답
지금까지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 대답은 하나님께서 인간 속기자들에게 구두로 받아쓰게(Verbal Dictation)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축자영감론이 반드시 받아쓰기 방법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해답은 공관복음서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답도 못 준다. 사복음서들은 인간의 작품들이 아니라 인간의 필기자(penman)을 통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5. 공관복음서의 개론적 고찰
그러면 이제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개론적으로 살펴보자.
(1) 마태복음
(가) 기록자
마태복음 안에는 기록자가 누구였는지 분명한 대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초기부터 마태의 이름과 결부되어 왔다(마 9:9). 여기서 특별히 유의할 것은 파피아스(Papias)의 글이다. 이 글은 마태가 기록자였음을 증거한 최초의 증거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는 말하기를, “마태는 히브리어로 말씀들을 편집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해석했다.”고 하였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마태복음의 연대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후한 A.D. 7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록한 장소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안디옥(Antioch)으로 보인다.
(다) 마태복음의 목적과 특징
1) 목적
마태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약의 약속대로 오신 분임을 증명한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신 이스라엘의 왕임을 서술하기 위해서이다. 마태가 묘사하려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율법의 완성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2-1) 내용적 특징
① 산상보훈(7-5장) = 천국윤리
② 제자 파송과 명령(10장) = 선교
③ 비유(13장) = 천국의 본질
④ 겸손과 용서에 대한 교훈(18장) = 교회의 훈련
⑤ 묵시적 교훈(24-25장) = 종말론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기록들 -- 임신과 요셉의 꿈(1:18-25),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님께 대한 경배(2:1-12)
2-2) 성격적 특징
기록의 간결성, 메시야적 관심, 배타주의와 보편주의가 함께 강조, 교회적 관심, 종말론적 관심-가라지의 비유(13:36 이하)나 열 처녀의 비유(25:13), 달란트의 비유(25:30), 묵시적 교훈(24-25장).
(2) 마가복음
정복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능력복음?이라고 부른다.
(가) 기록자
복음서 중에 가장 일찍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이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마가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초대 교회부터 마가복음이 마가의 기록이란 점에 이의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더우기 2세기에 살았던 파피아스(Papias)의 글은 마가의 기록설을 강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마가복음의 기록자는 베드로의 통역관 마가였음에 틀림없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마가복음이 나오게 된 것이 베드로의 생존시가 거의 틀림없다면 마가복음은 주후60년 경에 로마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 마가복음의 목적과 특징
마가복음의 목적은 1:1에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다.” 마가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10장의 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전도를 중심으로 한 행적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고 10:45에서 그 목적을 분명히 해준다.
(3) 누가복음
누가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세번째 나오는 책으로서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 기록자
가장 오래된 증거는 무라토리의 정경(The Canon of Muratori)이다. 거기에 보면 “누가복음은 세번째 순서에 들어있고 바울의 의사요 반려자인 누가가 기록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내증으로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통일성으로 보아 같은 기록자의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호바르트(Hobart), 하르낙이 주장한 대로 의사가 아니고는 쓸 수 없는 정확한 의학적 용어와 병명등이다. 셋째로 기록자가 바울의 반려자라는 증거가 많이 있다.
6. 공관복음서의 메시지 = “하나님의 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란 말의 뜻부터 살펴보자. 사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개념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언급되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왕권이 두 가지로 강조되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왕권이 두 가지로 강조되었다. 첫째로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것(출15:18; 민23:21; 신33:5; 사43:15; 왕하19:15; 사6:5; 렘46:18; 시29:10, 99:1-4)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왕이 되어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실 것이라고 했다(사24:23, 33:22, 52:7; 습3:13, 14:9 이하). 이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두 가지 면(현재적 면과 미래적 면)은 나중에 신약의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간적 개념에 대해서 살펴보자. 예수님의 교훈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적인 면과 미래적인 면, 이 두 면에서 말하고 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또 예수님의 최초의 설교에도 잘 나타나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 첫째는 공의성 둘째는 평화성 셋째는 확고부동성 넷째는 보편성. 엄밀히 말해 주님이 요구하신 신앙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다. 그런데 왜 복음을 믿으라고 했을까? 그것은 신앙의 기초는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신 복음을 믿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복음에 대한 신앙 없이는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 신앙이 있을 수 없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시작이요, 표현이요, 결과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7. 요한복음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네번째, 그러니까 제일 끝에 나온다. 그래서 “제4복음서”(The Fourth Gospel)라고도 부른다.
(1) 기록자
요한복음의 진실성은 라이트후트(J.B.Lightfoot)가 지적한 대로 성경의 역사적 진리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요한복음만큼 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을 받는 책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영국에서는 요한복음에 관한한 보수적 입장을 오래도록 취해 왔고 반대로 독일 계통에서는 사도 요한의 기록을 인정치 않았다.
(2) 기록한 연대와 장소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요한이 주후98년 트라쟌(Trajan) 때까지 살았을 것으로 보고 그 이전 어느 때 쓰여졌을 것으로 결론짓는다. 여기서 우리에게 좋은 실마리를 주는 것은 유세비우스의 기록이다. 그는 요한이 공관복음서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공관복음이 역사적 사실에 중점을 둔 데 반하여 요한복음임이 역사적 사실을 신학적 면에서 설명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요한복음이 가장 늦게 기록되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또 역사적으로 보아도 A.D. 70년 이전에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왔다는 증거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공관복음서가 다 기록된 이후부터 에베소에서 죽기 이전, 그러니까 주후80-90년 경에 에베소에서 기록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3) 요한복음의 목적은 20:31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즉 요한복음의 주요 목적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자세히 기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마침내는 영생을 얻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되어 있으며 메시야의 표적인 이적을 통하여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8. 요한복음의 메시지 = “로고스(말씀)가 되신 그리스도”
제5장 사도행전
신약 성경 가운데 역사서는 사도행전뿐이다. 사복음서와 서신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1. 기록자
누가복음과 같은 의사 누가
2. 기록한 연대와 장소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이 요세푸스(Josephus)의 The Antiquities에 의존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연대를 주후90-130년 사이로 잡는다.
3. 사도행전의 목적과 특징
누가에게는 다음의 네 가지 목적 또는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첫째, 역사적 동기.
둘째, 변증적 동기 - 당시 기독교인들은 평화 문란 및 불충성의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이를 변호하려 했다.
셋째, 교리적 동기 - 사도행전에서 가장 강조되는 교리는 성령의 인격과 역서이다.
넷째, 전기적 동기 - 누가는 교회 초기의 주요 사건으로서 당시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베드로와 바울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사도행전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도행전은 최초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두 번째 특징은 성령이란 말이 신약 성경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려 50번 이상이나 나온다. 이것만 가지고도 사도행전이 성령행전이라고 불리워질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증거의 개념이 12설교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넷째로 사도행전에는 역사가로서의 누가의 필치가 잘 나타나 있다.
4. 사도행전의 내용
5. 사도행전의 메시지 = “그리스도의 천상선교”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두 권의 책을 썼다. 전편은 누가복음이고 후편은 사도행전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마치 바울이 쓴 데살로니가 전?후서나 고린도 전?후서 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즉 누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지상선교를 중심으로 기록했고,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천상선교를 중심으로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천상선교란 말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전도한 것을 말한다.
제6장 바울서신
바울 서신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기독교의 본질을 가르쳐 주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 무엇을 믿는가? 또 기독교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될 때 사람들은 사복음서와 함께 바울 서신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된다.
1. 최초의 서신들(데살로니가 전.후서)
데살로니가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로마와 에게해 북쪽 사이에 위치한 항구로서 고린도와 에베소에 필적한 곳이다. 그래서 상업술에 능한 유대인들이 중요한 상가들을 거의 점령하였고 회당도 가지고 있었다.
(1) 기록자
데살로니가 전서를 바울이 기록했다는 증거는 외증은 물론 내증도 많이 있다. 외증으로서는 말씨온의 바울 서신 수집(A.D. 180),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그리고 舊 라틴어역 및 수리아역에도 포함되어 있다. 내증으로서는 교회의 직분 맡은 자들을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살전5:12)이라고 말함으로써 장로나 집사 제도가 실천되기 이전임을 말해 준다. 첫째는, 데살로니가 전.후서 사이에 종말론에 대한 모순이 있으며, 더욱이 전서의 내용이 후서에서 되풀이된 것으로 보아 기록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후서를 바울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그 이유로서 두 서신의 말의 어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셋째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가 각각 그 보내어진 교회, 즉 독자가 다르다고 말한다.
(2) 기록한 연대와 장소
50년 봄에 전서가 그리고 2,3개월이 지난 50년 여름에 후서가 각각 기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3) 데살로니가서의 목적과 특징
첫째는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이 심한 핍박을 받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예수를 믿다가 주님의 재림 전에 죽게 되면 만나보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성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서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종말론적 교훈 가운데 특징은 살전 4:17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이 구절(4:13-18)은 마태복음의 종말론적 교훈(24-5장), 고전15장의 부활장 및 계시록과 함께 신약의 예언서에 해당된다. 많은 종말론적 교훈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초대 교회에서 새 교인들에게 가르친 기본 교리였음을 알 수 있다(행17:7; 살전5:1-2; 살후2:5).
(4) 데살로니가서의 내용
주님의 재림과 부활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살전4:16-17에 그 해답이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군대를 호령하는 장군처럼 예수님의 호령과 천사장 미가엘의 소리를 신호로(고전15:52)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고 했다. 부활의 순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 성체로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나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거룩한 몸으로 변하여(고전15:52) 공적으로 주인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2. 복음서신(삼대서신)
이 서신들은 교리적인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죄, 율법, 행함, 구속, 신아, 칭의, 양자, 성화, 성령, 부활, 이스라엘 등 여러 중요한 교리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도 복음서 서신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 고린도 전.후서
당시 고린도는 교통과 상업의 십자로였다. 그 결과 고린도는 부와 쾌락의 도시가 되었으며,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향락을 누리기 위하여 이 곳에 오곤 했다. 고린도의 높은 지점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고 거기에는 이 신전에 속한 신도들과 시민들의 성적 만족을 충족시켜 주는 창녀들이 득실거렸다. 바로 이 고린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교회설립의 내용은 사도행전 18:1-8에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왔을 때엔 혼자였다. 친구와 돕는 교회들과 끊긴 바울은 경제적 수단으로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 이 무렵 바울은 디모데의 보고에 만족하여 데살로니가 전서를 썼던 것이다.
(가) 기록자
고린도 전서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내증이다. 고전1:1, 16:21(참고, 1:12-17, 3:4, 6, 22)에서 기록자는 자신의 이름을 여러번 바울이라고 부른다. 고린도 후서의 내증으로서는 고후1:1, 10:1에서 기록자는 자기 자신을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고 문체와 어휘 등도 인정된 다른 바울 서신과 일치된다.
(나) 기록 연대와 장소
역사적 배경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 가서 3년 동안(주후52-55) 전도활동을 했다(행19:1-10, 20:31). 많은 사람들은 이 무렵 고린도 교회의 음행 문제(고전 5:9)에 관해서 짧은 편지를 썼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무튼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 있는 동안 파당적 분쟁이 점점 심해져 그는 그 곳을 떠나 에베소로 돌아왔다(고전1:12, 16:12)고 했다.
(다) 고린도서의 목적과 특징
고린도 전서의 목적은 바울은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듣게 된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시정하려고 고린도 전서를 기록했다(고전1-6장). 특히 그는 교회의 분쟁에 대해서 책망했다(고전1:10-4:21). 고린도 후서를 기록한 목적은 먼저 바울이 아시아, 즉 에베소에서 고난을 당하는 목적이 무엇이며(고후1:3-11), 왜 그가 고린도 교회의 부흥에 대한 그의 기쁨을 표현하고(고후2:12-13), 거짓 교사들에게서 분리할 것(6:11-7:16), 구제 연보에 대한 교회의 의무를 감당할 것(고후8:1-9:15),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고후10:1-13:14)를 하려는 데 있다. 고린도 후서의 특징은 바울 서신 가운데서 가장 자서전적이라는데 있다. 또 고린도 후서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를 괴롭혔던 거짓 교사들의 성격과 계략에 대해서 자세히 보여준다. 고린도 후서에는 또한 사탄의 인격과 활동에 대해서 강조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2)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선언서라고 불리우는 책이다.
(가) 기록자
강한 외증과 내증을 가지고 있다. 먼저 로마의 클레멘트는 그의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편지(2장)에서 갈 3:1을 암시하고 잇고, 풀리갑은 그의 빌립보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갈6:7(5장), 4:26(3장), 4:18(4장)을 각각 인용하고 있다. 내증도 강하다. 기록자는 두번이나 자신을 바울이라고 했다.
(나) 갈라디아서의 목적과 특징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직접적 목적은 제1장과 2장에 나타난다. 즉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메시지에 대한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해 변호하려는 것이 그 중요한 목적이다. 갈라디아서의 특징은 무엇인가? 쉽게 발하면 갈라디아 “율법이냐, 아니면 복음이냐”하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선언문이기 때문에 바울의 열정이 가장 잘 표현되었고 가장 웅변적인 글로 되어 있다.
(3) 로마서
로마시와 로마 교회의 형편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본래 로마시의 기원은 주전753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자세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신화에 근거한 전설이 있을 뿐이다. 즉 전설에 의하면 군신의 아들이 로무루스가 악한 친척들에 의하여 쫓겨난 뒤 늑대와 목자의 아내에 의하여 그 생명을 건졌다고 한다. 그 후 그가 왕이 된 다음 그 도시를 그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 기록자
기록자는 자신을 바울이라고 했고(롬1:1), 바울을 뜻하는 “이방인의 사도”(11:13, 15:15-20)란 말로 자신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히브리 이름은 사울(행8:1, 9:1, 13:9)이며 본래 소아시아의 다소에서 태어난 베냐민 지파 사람(롬11:1; 빌3:5; 행9:11, 21:39, 22:3)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으로 교육을 받았으며(행22:3, 23:6, 26:4-5)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행16:37, 22:25-28). 바울은 본래 성도들의 핍박자(행7:58, 8:1, 9:1, 22:4; 갈1:13, 3:6; 딤전1:3)였으나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남 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복음의 사도가 된 사람이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로마서는 주후57년 겨울 바울이 그의 제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 즉 고린도에 3개월간 체류하는 마지막 때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다) 로마서의 목적과 특징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직접적 목적은 스페인 전도를 위해 로마 교인들의 협력을 얻으려는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기독교 교리의 진수를 설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로마서의 특징은 먼저 서신이라기보다는 논문 같은 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구약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인용되고 있으며 많은 구약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특징은 로마서의 용어들은 많은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라) 바울의 복음서신의 메시지=“이신득의”
복음서신 중에서 특별히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칭의란 말이다.
3. 옥중서신
바울의 옥중에서 기록한 책은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레몬서, 빌립보서와 그리고 디모데 후서가 있다.
(1) 골로새서
그러면 누가 골로새 교회를 세웠을가?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바울의 동역자 중 한 사람인 디모데가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르는 라오디게아, 골로새로 다니면서 교회를 세웠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두 번째는 라오디게아나 골로새의 주민 가운데 어떤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설립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가) 기록자
골로새서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첫째로 반영지주의적 교리가 골로새서에 기록되어 있다. 둘째로 골로새서에 나타난 기독론이 다른 바울서신에 나타난 것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단어와 문체가 다른 인정된 바울 서신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로 에베소서와의 공통점이다. 그러면 영지주의 어떤 사상인가? 쉽게 말해서 영적인 것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이교 사상에 근거를 둔 사상적 체계이다. 이제 외증과 내증을 통하여 골로새서의 기록자를 찾아보기로 하자. 먼저 익나티우스의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10장’에 보면 골1:23절을 암시하고 있고‘바나바 서신 12장’에도 골1:16을 암시하고 있다. 다음은 내증인데 골로새서에 세번이나 자신을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다(골1:1, 23, 4:18). 또 디이센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인겨과 사역을 일반적으로 용납한 일이며 이 서신에 기초한 실제적인 권고는 순전히 바울적이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요컨대 주후62년 골로새서는 로마 옥중에서 기록되었다.
(다) 골로새서의 목적과 특징
첫째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이다. 둘째로 금욕주의적 사상을 주입했다. 셋째로 영지주의적 철학을 가르쳤다. 골로새서의 특징은 에베소서와 쌍둥이 서신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영지주의적 사상과 페르샤의 점성학 및 혼합주의적이란 사상에 대한 강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일어난 이단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묘사해 준다.
(2) 에베소서
(가) 기록자
외증과 내증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먼저 외증으로는 로마의 클레멘트의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36장’에서 엡1:18절과 유사한 말을 쓰고 있고, 46장에서는 엡 4:4-6과 유사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익나티우스는 그의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서신 12장’에서는 엡5:25의 구절을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니우스, 히폴립투스, 무라토리우스의 정경 등에도 에베소가 인용 또는 인정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증인데 엡1:1과 3:1에 기록자는 자신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주후62년에 고마 옥중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 에베소서의 목적과 특징
이 서신은 골로새서와 쌍둥이 서신으로서 에베소서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침투하려는 이단들을 사전에 막고, 에베소 일대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생화를 하도록 권고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에베소서의 특징은 첫째 순회서신이란 데 있다. 두 번째 내용상의 특징은 성령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령의 인격에 대해서는, 그는 거룩하며, 지혜를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계시하실 수 있다. 그는 슬퍼하기도 한다. 약속의 성령이라고 불리고, 한 성령, 그의 성령,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3) 빌레몬서
25절 밖에 안 되는 가장 짧은 서신이다. 빌레몬서는 바울의 친서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저축 노예제도)에 대한 신앙적 해결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서 “빌레몬”이란 교회 이름이 아니라 골로새에 살고 있는 사람 이름이다.
(가) 기록자
바울이 빌레몬서를 기록했다는 것은 바우어를 중심한 튜빙겐 학파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학자들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다. 외증으로선 익나티우스의 편지 가운데 몬 20절을 시사하고 있고, 터툴리안, 오리겐, 유세비우스, 무라토리의 정경 및 구 라틴어역, 구 수리아역에서 인정되고 있다. 내증으로서는 세 번이나 기록자는 자신을 바울이라고 불렀고, 사상이나 감정, 표현 등 철저하게 바울적이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주후62년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되었다.
(다) 빌레몬서의 목적과 특징
빌레몬서의 주목적은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에 화해를 성립시키는 데 있었다. 빌레몬서의 특징은 노예제도 같은 사회 윤리에 대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신앙적 태도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장 반영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신 그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4) 빌립보서
빌립보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바울이 최고로 사랑을 던져 중 교회이다. 빌립보 교회에는 특별히 충성된 부인들이 많이 있었으며(빌4:2-3) 바울을 위하여 위문금도 보내준 교회이다(빌4:16).
(가) 기록자
빌립보서의 외증으로서는 익나티우스의 ‘서머나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4장’에서 빌4:13을 암시하고 있고, 로마의 클레멘트는 그의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 21장’에서 빌1:27을, 동서신 47장에서 빌4:15을 시사하고 있다. 내증도 확고하다. 기록자는 자신을 바울(1:1)이라고 했고 빌립보서의 역사적 형편이나 언어와 문체, 어조 모두가 다 바울이 기록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나) 연대와 장소
빌립보서는 주후62년 로마의 옥중에서 최후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다) 빌립보서의 목적과 특징
목적은 선한 신앙을 갖도록 권고하려는데 있었다. 그 밖의 목적은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바울의 옥중 생활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 것, 둘째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단합해야지 분열되어서는 안되며, 셋째는 디모데가 곧 그들을 방문할 것을 알리고 넷째로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낫게 된 사유의 설명, 다섯째는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 여섯째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영적 연합에 대한 권, 일곱째는 재정적 원조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특징은 바울서신 중 가장 개인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1인칭 단수로 된 대명사만 52번이나 되기 때문이다. 또 빌립보서에는 바울의 생의 목적이 아주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0)
(라) 옥중서신의 메시지
바울의 네 그룹의 서신들은 그 주제 면에서 통일성을 가진다. 즉 첫째 그룹이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종말론을 그 주제로 하고 있고, 둘째 그룹인 복음서신은 구원론을 그 주제로 하고 있고, 이제 살펴보려고 하는 옥중서신은 기독론을 그 주제로 하고 있고,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넷째 그룹인 목회서신은 교회론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옥중서신에 나타난 기독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적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 옥중서신에서 되풀이해서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될 뿐 아닐(엡4:15, 5:23; 골1:18, 2:19), 또한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골2:10)라고 하는 것이다. 옥중서신에 나타난 두 번째 기독론은 그리스도께서 영화로우신 장차 오실 주님이란 점이다. 그런데 이 주님은“영적 주님”이시다.
4. 목회서신
바울 서신 중에서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를 흔히 목회서신이라고 부른다. 특징은 어떤 일정한 교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동역자요, 후계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개인 서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서신들의 이름도 개인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1) 목회 서신의 기록자 문제
첫째는 단어와 문체의 차이점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신학적 차이이다. 비평가들에 의하면 다른 바울 서신에서는 십자가가 중심이 되고 있으나 목회 서신에서는 선행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역사적인 문제점으로서 목회 서신에 나오는 장로, 감독, 집사 및 이 작부에 대한 자격 등은 바울 후대에 발전된 형태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행14:23에 보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제1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장로들을 임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지주의는 2세기에 성행한 것이 사실이나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알려진 사실은 1세기에도 영지주의와 유사한 사상이 유대교 안에 이미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목회서신의 외증과 내증을 살펴보자. 먼저 교부들의 강한 증거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익나티우스, 폴리갑, 순교자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이레니우스가 목회서신을 정경으로 받아들였고, 무라토리의 정경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내증인데 목회서신 모두가 바울을 기록자로 보고 있다. 또 기록자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사도행전과 일치된다.
(2) 디모데 전서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경건 생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 기록한 연대와 장소
주후65년에 마게도니아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즉 주후62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나) 디모데 전서의 목적과 특징
디모데 전서는 설립된 지 10여 년이나 되는 에베소 교회에 목회하고 있고 좀 수줍음이 있는 디모데를 격려하고, 또 그가 새로 시작하는 중대한 사업을 돕기 위하여 바울은 이 서신을 기록했다. 말하자면 경험이 많고 나이 많은 바울이 자기의 후계자요 제자인 디모데에게 규모로나 역사로나 큰 에베소 교회의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를 가르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디모데 전서의 특징은 교회에 관한 목회 원리를 가르쳐준 데 있다. 공중 예배시 기도의 성격과 목적, 장로의 자격, 집사의 자격, 영적 성장의 필요성. 늙은 과부의 재정적 후원, 장로의 안수와 치리법, 물질에 대한 청지기 정신 등 실제 목회에 필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3) 디도서
디모데와는 달리 디도는 순수한 헬라인이었다.
(가) 기록한 연대와 장소
바울의 두 번째 목회서신인 디도서를 어디서 기록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마게도니아, 에베소, 니고볼리, 고린도 등 여러 곳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디도서는 A.D.65년 마게도니아에서 기록되었다고 보여진다.
(다) 디도서의 목적과 특징
디도서를 기록한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디도를 바울이 있는 니고볼리로 빨리 오게 하여 그레데의 일을 맡기게 하고(딛3:12), 둘째는 율법학자인 세나와 전도자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레데인들로 하여금 영적 궁핍함이 없도록 하게 하고, 셋째는 그레데 교회의 목회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며 격려하려는데 있었다. 디도서의 특징은 디모데 전서와 여러 가지 점에서 유사점을 가진다. 장로의 자력 규정(딛1:6-8)이나 교회의 여러 그룹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2:1-10)등이다. 그뿐 아니라 디도서는 신앙과 행함, 바울과 야고보를 대조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됨을 보여준다. 디도서에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 교리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선택, 영생, 그리스도의 메시야성과 신성, 영감,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보편적 성격, 그리스도의 재림, 대속적 속죄, 전적 타락,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중생, 성령의 인격과 사역, 칭의, 상속권 등이 바로 그것이다.
(4) 디모데 후서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말하자면 그의 마지막 유훈이 기록된 서신이다.
(가) 기록자
기독교의 최대의 신학자인 사도바울이었다.
(나) 기록자 연대와 장소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두 번째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을 때 기록한 최후의 서신이다. 이때가 바울이 순교한 해인 주후68년으로 생각된다.
(다) 디모데 후서의 목적과 특징
바울이 디모데 후서를 기록한 목적은 디모데에게 자기 자신의 체험과 기대를 알리고 그를 격려하며 교시하려는데 있다. 특징은 많은 은유와 이상적인 기독교인 상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성도간의 가까움을 표시하는 “아들”, 영력을 신체적 건강에 비유한 강하고란 말, 그 밖에도 교사, 군사, 경기하는 자, 농부 등은 다 이상적인 기독교인 상을 말해 준다.
(라) 목회서신의 메시지=“교회론”
목회서신(디모데 전.후서 및 디도서)은 조직화된 교회를 중심으로 교훈하고 있다. 즉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단들에 대해 경고함과 동시에 성장된 교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져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인가? 보편적 교회, 즉 모든 성도의 집합체를 교회라고 불렀고, 두 번째는 지교회 즉 어떤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불렀다. 바울은 교회의 직분에 두 가지의 항존직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장로요, 다른 하나는 집사이다. 그러면 당시 이단의 성격은 어떠한가? 첫째로 이들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열중한다고 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다만 경견치 못한 것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당시 이단의 정체는 영지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상이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바울은 네 가지를 권면한다. 첫째는 신앙에 근거를 두고, 둘째는 사랑의 동기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고, 셋째는 때 묻지 않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끝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제7장 히브리서
히브리서는 바울 서신(13권)이나 공동서신(7권)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히브리서는 서신이 아니라 차라리 그리스도의 제사직이란 주제로 된 교리적 논문이나 설교라고 하는 것이 옳다. 신약 성경 가운데 민족의 이름으로 된 것은 히브리서 하나밖에 없다.
1. 기록자에 대한 문제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헬라 문학에 능통할 뿐 아니라 유대교의 풍속, 특히 유대교의 제사 제도에 대해서 잘 아는 유대인 계통의 사람일 것이다
2. 기록한 연대와 장소
주후70년 예루살렘성전이 함락되기 전에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3. 히브리서의 목적과 특징
믿는 유대인 가운데는 그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모세나 천사보다 우월하며 아론의 제사보다도 뛰어남을 비교적으로 설명함으로서 그들의 신앙을 굳게 하려는데 히브리서의 목적이 있다.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아주 유창한 헬라어로 되어 있으며 대단히 웅변적이다. 둘째로 구약의 암시, 또는 인용이 히브리서에 많이 있다. 셋째로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깊고 다양하다. 넷째로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양면이 다 기록되어 있다.
4. 히브리서의 메시지=“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왜 구약의 제사장들은 불완전한가?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온다고 했다. 첫째로 구약의 제사장들은 그들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남을 속량하는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둘째로 그 제물 자체가 일시적 효과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날마다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멜기세덱의 반차(질서)를 따라 되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증명한 사실이다. 끝으로 본서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시작이 되셨다는 점이다.
제8장 공동서신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1, 2, 3서와 유다서 등 일곱권을 공동서신, 또는 일반서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공동’이란 말은 “보편적” 또는 “일반적”이란 뜻이다. 즉 어떤 특정한 교회나 개인을 상대로 기록한 서신이 아니라 교회 알반에 보내어진 서신이다. 이 말은 바울 서신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된 말이다.
1. 야고보서
바울 서신은 이방 신자들에게, 그것도 믿음의 역사가 짧은 초신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반대로 야고보서는 구약을 잘 알고 믿은 지도 오래된 유대 신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야고보서는 신앙의 열매인 사랑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야고보서의 108절 가운데 그 절반인 54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가) 기록자
야고보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1:1)란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적어도 넷은 있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본서를 기록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먼저 외증부터 찾아보자. 로마의 클레멘트가 쓴 ‘고리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보면 야고보서를 시사하고 있다. 내증으로는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서 보여준 야고보와 본 서신이 잘 조화를 이룬다는 데 있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야고보서의 기록된 장소는 어디인가?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 여러 장소가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야고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예루살렘 밖에 나간 성경적 근거가 없으므로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다) 야고보서의 목적과 특징
주목적은 죽은 정통, 즉 입으로만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아무런 생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데 대한 잘못을 시정하려고 한데 있다. 즉 바울의 복음 서신과 그의 메시지에 다한 오해를 교정하려고 했다. 특징은 무엇보다도 50%에 달하는 명령문이 야고보의 질문, 대답 방법과 함께 실천적 교훈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주님이 직접적으로 두 번, 간접적으로 두 번 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신약 성경 가운데서 독특한 점이다. 셋째 특징은 야고보서가 히브리서, 베드로 전서와 함께 헬라어가 아주 유창하다는 점이다.
(라) 야고보서의 메시지=신앙의 열매로서의 “행함”
바울은 유대적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행함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부족한 점, 마땅히 강조해야 할 신앙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반대로 야고보는 유대인의 지성인들, 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신앙을 행함과는 별개의 죽은 정통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함에 대한 강조를 할 것은 당연하다.
2. 베드로 전.후서
전서는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것이고, 후서는 거짓 교사와 거짓 교훈에 대해 경고하기 위하여 기록된 서신이다.
(1) 베드로전서
(가) 기록자
본서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고난의 종”으로 묘사한 점이다. 이런 예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에서 잘 나타나 있다. 베드로 전서의 외증과 내증을 살펴보자. 먼저 외증으로는 ‘바나바 서신’, 클레멘트의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12족장들의 언약’에 베드로 전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내증으로서는 1:1에 자신을 베드로라고 부르고 있다. 또 기록자는 그리스도의 애와 교훈에 아주 익숙하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2) 기록한 연대와 장소
주후96년경 도미시안 황제 때 기록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본서가 주후63 -64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기록한 장소는 벧전5:13에 “바벨론”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계14:8, 16:;19, 17:5, 18:2, 10, 21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바벨론은 로마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 베드로 전서의 목적과 특징
핍박 중에 있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산 소망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고하려고 한 것이다. 특징을 말하면 첫째로, 본서의 주 단어인 “고난”이란 말이 16번 나온다. 둘째로 베드로 전서에는 34개의 명령문이 나온다. 셋째로 본 서신을 보면 베드로에 대한 자서전적인 성격을 가진 구절을 많이 발견한다.
(2) 베드로 후서
(가) 기록자
베드로 전서는 박해 속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데 반하여 베드로 서에는 이단 사상으로 인해 돈돈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유대 묵시 사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나) 기록한 연대와 장소
후서의 기록 연대는 주후64년(베드로의 순교를 주후67년으로 잡으면 기록 연대도 주후67년으로 바뀌어지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주후64년으로 보고 있다)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다) 베드로 후서의 목적과 특징
베드로 후서의 목적은 3:1-2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영지주의적 이단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경고함으로써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자는데 있다. 특징은 먼저 지식에 대한 장조를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이 지식,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바른 길(벧후2:15)을 아는 지식’, ‘의의 도(벧후2:21)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거짓된 이단 사상을 막은 최고의 방위 수단이라고 했다. 두 번째 특징은 영감에 대한 중요한 두 구절 중에 하나가 베드로 후서에 나온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은 성경이 기록될 때에 성령의 강한 바람에 의하여 모든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었으며, 따라서 성경 본문을 해석할 때에도 성령의 바람에 의해 방향과 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본서는 주님의 날에 천지가 뜨거운 불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라는 고전적 묘사를 하고 있다. 끝으로 베드로는 바울 서신에 대해 가치 있는 평을 하고 있다(벧후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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