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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쉴만한 물가

게으름과 인내의 차이/ 예화 30편

by 은총가득 2020. 9. 4.

 

게으름과 인내의 차이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헨리 워드 피처가

설교 중에 다름과 같은 예화를 들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높은 바위에 메말라 가는 바닷가재가 있습니다.

그 바닷가재에게는 바다로 되돌아가기에 충분한 힘은 있지만 지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만일 바닷물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 바닷가재는 그곳에서 말라죽고 맙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한다면 바닷가재는 자신의 1미터 앞에 넘실대는

파도에 도달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도 사람들을 ‘곤란한 지점’으로 몰아가는 파도가 있습니다.

그 파도는 바닷가재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처럼 사람들을 그곳에 그냥 남겨 둡니다.

 

만일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친 지점에 누워서 어떤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싣고 부드러운 물속으로 다시 인도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이 바라는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종종 인내로 오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듭니다.

 

한편 인내는,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계속 일하는 것입니다. <그대와의 시간 Time With You>

 

 

게으름 예화 30편

 

1.마틴 루터는 게으름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했습니다.
“전설에 어떤 큰 배라도 단숨에 삼켜버릴 수 있는 ‘레모라’라는 고래가 있었는데, 게으름이란 바로 인간의 내부에 있는 레모나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욕과 정열과 의지를 단숨에 삼켜버리곤 합니다.”

 

이렇듯 게으름이란 무서운 힘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틈만 나면 우리 마음을 차지하려 듭니다.

결코 게으름과 타협해서는 안되는데, 이에 대해서 칼 힐티는 이런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태만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은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습관적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한 시간에 책을 읽고, 시간에 맞추어 노동을 하노라면 게으름이 우리 안에 자리잡지 못할 것입니다.”
게으른 자를 향해 성경은 권고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야지, 조금 더 누워 있어야지, 잠시만 일손을 쉬어야지 하는 자에게는 빈곤이 강도처럼 달려들 것이라고.

 

게으름으로 부질없이 핑계가 많은 까닭에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 6: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잠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 6: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잠 6: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잠 6: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언 6:6-11

게으른자의 변명

 

제가 어렸을 때에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왕세자비가 될 자부(子婦)를 얻기 위하여 온 나라 곳곳에 방을 붙이고, 귀한 집안의 규수들을 모아서 일일이 심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이제 마지막 후보로 열 처녀가 발탁되었습니다. 시아버지가 될 임금님은 이 열 처녀들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쌀을 담은 밥그릇을 제각기 하나씩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열흘 동안 먹고 지내다 오너라’했습니다. 어떤 처녀는 이것을 가지고 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또 어떤 처녀는 열 등분으로 나누어서 조금씩 조금씩 열흘 동안 아껴 먹었습니다. 열흘 후, 처녀들은 다시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 비실비실합니다. 아예 어떤처녀는 쓰러져서 업혀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유독히 한 처녀는 아주 얼굴이 환하고 예뻐졌을 뿐아니라, 떡을 한 시루 머리에 이고 궁전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임금님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너는 그 한 그릇의 적은 쌀로 열흘 동안 먹고, 또 떡까지 해가지고 왔느냐?” 그랬더니 이 처녀가 말하기를 “그 쌀로 떡을 만들어가지고 나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남은 이윤으로 쌀을 사고 또 떡을 만들어 팔고 해서 저도 먹고 집안사람들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임금님을 위해서 떡을 만들어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처녀가 왕세자비로 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많다 적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게으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좀더 생산적인 부지런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지런’이라고 하면 그저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줄로만 아는데, 사실은 공부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연구를 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인간으로 삽니다마는 그 삶을 엄격히 철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동물적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이 동물적 시간이라는 것은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또 피곤하니까 쉬는 시간입니다. ‘부지런’에도 동물적 부지런이 있습니다. 괜히 쏘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하나, 인간적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부하는 시간이요, 사색하는 시간이요,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동물적인 시간이 아닌 인간적 시간이요, 인간적 부지런입니다. 조용히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이것은 인간적 부지런에 속하는 것입니다. 한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멍청하게 쏘다니는 것은 제아무리 돌아다녀봐야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이것은 동물적인 것입니다. 또한 크리스챤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 시간이 아니요, 은혜로 주어진 시간이요, 구속받은 시간이요, 은혜 안에 자유하는 시간이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으로 일하는,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직행하는 그런 의미의 시간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그리스도인의 부지런입니다. 다른 시간들과는 차원적으로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요새 ‘한계에 도전한다’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 ‘한계’라는 말에 의미가 있습니다.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한계는 있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뜁니다. 아무리 뛰어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뛸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흔히들 ‘기록’이라는 말을 합니다마는 그것도 한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한계를 넘어선 것은 아닙니다. 그런고로 한계를 넓히려고 한다든가, 넘어서려고 하는 망상,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계에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어진 한계를 똑바로 알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의미의 생을 사는 것이 바로 ‘부지런’입니다.

 

 

시간 괸리에 있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첫째로, 시간 파괴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시간만 파괴하는 게 아니라 남의 시간까지 파괴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 술에 취하는 사람들, 시기, 질투, 증오, 원한..... 이런 것들이 시간을 파괴합니다. 또한 그 파급결과는 물론 후속결과까지 따르기에 결국은 많은 파괴를 초래합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그 아까운 시간을, 그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남의 시간까지 말입니다.

 

둘째로, 시간 소비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일한답시고 시간표를 만들고, 계획표를 만들고, 소위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짭니다. 준비하는 게 많습니다. 뭘 한다 해놓고는 정작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저 생각만 하고 말만 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말을 하고 있지만 실천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용같이 계획하고 뱀꼬리같이 실천하는 용두사미(龍頭蛇尾)입니다. 바로 이런 시간 소비형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생각만 어벙벙해가지고 말만 많습니다.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한 시간 창조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뜻을 알고, 약속된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대하여 사명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부름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사명적으로 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사역에 내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간 창조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게으른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말로 ‘아첼’이라고 하는 이 말은 구약 성경의 잠언에서만 14번이 나옵니다. 게으른 자---의미가 아주 깊습니다. 우리는 이 말이 일반적인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마세요. 게으름도 병입니다. 일단 한번 이 병에 걸려서 치유받지 못하면 계속적으로 더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잠언 26장 14절에 아주 재미있는 표현의 말씀이 있습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르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일어나지 못합니다. 오늘의 본문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9절)”---참 한심합니다. 도대체 잠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푹 잘 텐데 너무 많이 잡니다. 잠을 많이 자는 것,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병들어서 잠을 많이 자기도 하지만,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병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건강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부지런해야 됩니다. 실컷 자려면 24시간 다 자도 모자랍니다.

여러분도 알지 않습니까? 너무나 바삐 지내다가 어쩌다 휴가를 맞게 되면 ‘오늘은 좀 실컷 자야지’하며 낮부터 잡니다. 눈 뜨면 또 졸리고, 또 자고....24시간 다 자도 모자랍니다.

밤에는 밤대로 낮에는 낮대로, 끝도 없습니다.

 

잠언 26장 15절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참 기가막힌 얘기입니다. 요새 가끔 텔레비젼에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잘사는 모양이라고 보여주는가 본데 그런 것은 좀 안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옛날 왕이나 귀족들이 침상에서 식사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갖다 바쳐놓은 음식을 먹습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 사람은 틀림없이 오래 못살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게으른 자는 그릇에 손을 넣고 음식을 입으로 올리는 것까지도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끝도 없다는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으르기 시작하면 이것도 병입니다. 병은 점점 깊어지고 깊어져서 이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죽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또한 게으름이라는 것은 육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 게으름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꼭 변명과 핑계가 많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생깁니다. 나는 안하면서 남이 안하는 것을 헐뜯는 것입니다. 나는 게으르면서 남이 부지런한 것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런 못된 성격이 생깁니다. 대개 보면, 게으른 자는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가 못따라가겠으니까, 뒤에 앉아서 비꼬고, 비난 비방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것은 병리적 체질로 화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게으른 것이고 하나는 무책임한 것입니다. 내가 부지런함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남이 잘사는 것을 빼앗아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소위 혁명입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립니다. 내가 못하는 것은 저 사람 때문이고, 무엇 때문이고.... 책임을 전부 남에게 돌리고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가난이 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는 다 용서받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그것 때문에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무서운 철학입니다. 가난하면 위인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데, 아닙니다. 성경적 진리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가난하고 보니 그렇고, 게으르고 보니 그렇고...... 게으른 자는 말이 많습니다. 그래, 근심도 번민도 많습니다. 성경을 다시 한번 찬찬히 실펴 보면, 잠언 22장 13절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게 찢기겠다 하느니라” --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사자가 밖에 있다. 그래서 내가 못나간다 이 말입니다. 안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못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험없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공부 안하는 아이들이 꼭 변명을 합니다. “공부를 왜 안하느냐?”라고 물어보면 “해봐야 별 볼일 없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까지 되어봤자 보아하니 취직도 못하고 고급 실업자가 되던데, 굳이 할 것이 뭐 있습니까?”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기오아 시작한 공부니까 마저 끝내거라. 공부 다 마친 후에는 지게를 져도 좋으니까 일단 끝내고보자.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느니 안되느니는 말하지 말아라. 그것은 네 변명이야. 네가 공부를 못하니까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꼭 안하면서 못한다고 합니다. 해도 소용없다고 합니다. 밖에 나가면 밖에서 할 일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 다음 얘기요, 내일 염려는 내일 일입니다. 오늘은 내가 충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게으른 자는 기회를 놓칩니다. 잠언 12장 27절에 보면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입니다. 기회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은혜의 기회, 축복의 기회를 다 놓쳐버립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많은 발명을 하여 발명왕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또한 2,000여 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에디슨에게 부탁했습니다. “자네가 일평생을 살고 느끼면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되는 것 한 가지를 내 아들에게 이야기해주게. 내 아들은 지금 사회를 향해서 첫 출발을 하려 하네.” 그랬더니 에디슨은 담담하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일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말게”--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그저 열심히 일을 하고, 시계를 보지 말아라, 또한 보수라든가, 일함으로써 생기는 그 다음 결과라든가, 칭찬이라든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아라, 일하는 동안에는 오직 그 일만 열심히 하라.라고 가르쳐준 것입니다. 또, 팔순이 넘은 그의 생일 축하파티에 친구들이 다 모였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생활이 어떠한가?” 에디슨은 대답합니다. “나는 매일 다섯 시간 쉬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실에서 일하네. 나는 장례식 3일 전까지 이렇게 일할걸세.”

 

실제로 에디슨은 그가 미리 얘기한 그대로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자, 에디슨이 팔순이 넘도록 일할 때, 무슨 다른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보수를 생각한 것도 아니고, 칭찬을 생각한 것도 아니고, 성공이나 명예를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일한 것 뿐이요, 일을 즐겼을 뿐이요, 일에 도취된 것 뿐입니다. 이것이 부지런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성공한 사람들에 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통사람에 비해 일찍 일어납니다. 그런데 한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 3시간 정도 일찍 일어납니다. 남보다 3시간 일찍 일어났다, 이것이 그들의 공통점입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게으른 자는 일만 만듭니다. 디모데전서 5장 13절에 보면 게으른 자는 일을 만들어 다닌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으른 자의 개념은 더 높은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달란트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기에서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게으르다---게으르다는 말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악하다는 말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왜요? 본전은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까? 본전은 잘라먹지 않았습니다. 그냥 본전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 왜 악하냐, 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게으름의 개념입니다. 게으름은 악함과 동일한 것입니다. 악한 마음에서 게으름이 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내가 게으른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환경에 돌리고, 세상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불신앙적입니다. 그런고로 그 사람은 악한 것입니다. 게으름은 악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기회, 내게 주어진 능력, 내게 주어진 현실 이대로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입니다.

소중한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아직도 내가 밝은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아직도 내가 멀쩡한 두발로 걸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귀중합니까? 극단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파사디나에서 피아노 독주회에 한번 가본 일이 있습니다. 그 때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피아니스트가 왼손 하나만으로 피아노 독주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피아니스트였는데 전쟁에 나가서 오른손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는 낙심하였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오른쪽 의수로 피아노를 짚고, 왼손으로 독주회를 합니다. 오른손도 아닌 왼손 하나로 한 시간 반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훌륭한 음악을 연주해내는 그를 보고 저는 ‘두 손을 다 가진 사란들은 대체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에 부지런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원성입니다. 이것은 즐기는 것입니다.

감사 감격함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6절)”---개미에게 배우라, 그는 예비하지 않느냐 하심입니다. 창조적인 신앙 관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더는 아무도 탓하지 마세요. 원망하지도 마세요. 내게 주어진 여건과 시간 안에서 내가 얼마나 충성되느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 얼마나 질적으로 양적으로 가득한 생을 사느냐---거기에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고, 농부가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내 본문은 오늘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생을 살아가십시오. 착하고 충성된 자로 나타나야 할 것입

 

2.속삭임

"오늘은 그만 쉬어라. 놀아라. 오늘만 날이냐. 다음에 하면 되지 뭐,
천천히 해. 못하ㄷ니지뭐!"
이렇게 귀에 속삭이는 사탄에게 속아서
마냥 게으름뱅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해?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해야지!
좀 더 해봐, 좀 더 잘 해봐! 맘에 안 들어.."
이렇게 귀에 속삭이는 사탄에게 속아서
끔찍한 완벽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탄의 속삭임에 속지 마세요.
게르음뱅이나 완벽주의의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힘들게 합니다. ⓒ최용우

3.롬벨의 용병술

세계2차대전 독일 나치군의 롬벨작군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배치하여 쓴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룸벨은 사람의 속성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a속성-현명하고 똑똑함
b속성-부지런하고 열심히 있음
c속성 어리석고 멍청함
d속성-느리고 게으름
사람은 누구나 네 가지 속성 중 두 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두개씩 조합하여 다음 네 가지 형태의 사람으로 구분하였습니다.
ab형 사람- 현명하고 똑똑하며 부지런하고 열심인 사람
ad형 사람- 현명하고 똑똑하나 느리고 게으른 사람
cb형-어리석고 멍청하기는 하지만 부지런하고 열심인 사람
cd형-어리석고 멍청한데다가 느리고 게으른 사람
자! 만약 내가 룸벨 장군이라면 나는 어떤 사람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1.장군감이라고 생각되는 유형은?
2.참모감이라고 생각되는 유형은?
3.졸병이나 해야 할 유형은?
4.군인으로서 부적당한 유형은? ⓒ최용우

 

4.곰과 구렁이

두사람의 사냥꾼이 깊은 숲속으로 사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만 집채만 한 곰을 만나게 되어 총을 내동댕이치고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났습니다. 한사람은 나무위로 기어올라갔고, 한사람은 마침 눈에 띄는 조그마한 동굴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어슬렁거리며 다가온 곰은 동굴 입구에 엉거주춤 앉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굴 안으로 숨었던 사람이 뛰어 나왔습니다. 곰의 얼굴과 정면으로 충돌할 뻔한 상황을 가까스로 피한 그는 다시 또 동굴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또 뛰쳐나왔습니다. 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아, 이사람아!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곰이 사라질 때까지 동굴속에서 나오지 말고 숨어있게나!"
그러자 다른 한사람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습니다.
"헥 헥!.. 굴.. 굴속에는 곰보다 더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다구!"
우리의 습관 가운데 곰같은 것은 '미룸'이요, 구렁이같은 것은 '게으름'입니다. 그것들은 당장에 우리에게 달려들어 해를 주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삼켜 버립니다. 그것들은 무척이나 무서운 것들입니다.ⓒ최용우

5.게으른 자의 소원

큰 빚을 지고서도 게으름만 피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채권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돈을 갚을 생각이 있긴 한 거요?” “있고 말고요. 당신의 돈을 갚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세 가지가 다 쉽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던 참입니다.”
채권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대체 그 세 가지가 뭐요?” “저…하나는 당신이 갑자기 죽어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좋겠고, 둘째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차용증서가 분실되든가 불에 타든가 했으면 하는 것이고, 셋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많은 돈을 주웠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이 없는지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군요.”
게을러지기 쉬운 때입니다.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게으름이 낳는 모든 결과와 생각은 허망한 것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6. 게으름뱅이가 쌓은 돌탑

옛날 어느 곳에 날마다 하는 일없이 먹고 놀기만 하는 청년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 보려고 멀리 여행을 떠났다. 여러 날만에 어느 산 계곡에 이르렀는 데, 길은 거기서 끝나고, 주위엔 인가도 없었다. "이거 야단 났구나!"
겁이 난 청년이 오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데 저쪽 개울가에 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구나!" 싶어 청년이 여인에게다가 가려다가, 여인이 빨래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청년은 그냥 앉아 있기가 지루해서 앞에다, 돌을 주워다 돌탑을 쌓았다. 이윽고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청년은 여인의 뒤를 따라 언덕 너머에 있는 낡은 기와집으로 인도되었다. 청년은 여인이 친절하게 차려주는 저녁을 잘 들고는 이내 깊은 잠에 푹 빠졌다. 얼마나 잤을까. 청년이 가슴이 답답하여 깨어났는데, 아니, 글세 커다란 구렁이가 자기를 칭칭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을 힘을 다하여 빠져 나온 청년이 아까 그 개울까지 도망 나왔다. 그러자 구렁이도 계속 따라 왔다. 청년은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어서 아까 자기가 쌓아 올린 돌탑의 둘레를 빙빙 돌면서 숨차게 뛰었다. 구렁이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구렁이가 먼저 지쳐서 뻗었다. 게으름뱅이 청년이 "하찮은 돌탑으로 생명을 구했으니,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7. 게으름의 정체

우리는 흔히 게으른 사람은 힘든 일을 전혀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분주하게 살고 있으므로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합니다. 온종일 빈둥대며 텔레비전만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 날 그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텔레비전이 고장 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할까요?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수리를 위해 신속히 움직일 것입니다. 상황이 다급하면 무거운 텔레비전을 들고 수리점으로 뛰어갈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그의 게으름이 고쳐진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고장난 텔레비전이 그를 각성시켜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고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순간에도 그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잠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 게으름의 궁극적인 정체는 빗나간 자기 사랑입니다. 이것이 게으름의 기초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움직이고 있다면 그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 게으른 사람입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8. 게으른 자

성경: 잠15:19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
권태에 죄의 유혹성을 지적한 명언을 생각해 봅니다.
빌리 그래함은 "미국은 이 세상 어디에서보다도 권태를 많이 느끼는 곳이라 한다. 즉, 미국은 어떤 나라보다도 인공 오락이 많기 때문이다."
말콤 머거리지는 "물질주의에 관한 한 가장 무서운 것은 횡포가 아니라 권태이다. 이것 때문에 섹스, 술, 마약 문제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된다."
키에르케고르는 "권태는 모든 악의 뿌리 -- 즉, 자기 자신답게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든 죄악은 게으름과 권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권태와 나태를 이겨 나아가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 악마의 무기

악마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실족시키느냐”란 주제로 회의를 했다. 한 젊은 악마는 “간단합니다. 그들을 전부 죽이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늙은 악마는 “옛날에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한 사람을 죽이면 순교의 피가 씨가 되어 기독교인들이 수천 수만으로 늘어났다”고 대답했다. 다른 젊은 악마는 “죽이지 말고 감옥에 가두면 전도하러 돌아다니지 못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늙은 악마는 감옥에서 모두 기도하기 때문에 그것도 역시 쓸데없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간교한 늙은 마귀가 꾀를 하나 냈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게 하고, 기도를 하게 하고, 성경을 읽게 하고, 전도를 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등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불편하니까 내일부터 하자”는 게으른 마음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게으름은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악마의 계교는 힘을 잃는다./장학일 목사 (예수마을교회)

10. 어떤 시험 공부

어느 신학교에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교수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타일러도 그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10)라는 말씀을 외우며 기도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시험시간이 되었습니다. 문제의 답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그는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는 단 한 문장만 써놓고 유유히 교실을 빠져 나갔습니다. 담당 교수는 채점란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 학생은 다 모르니 0점.”
세상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명분 아래 자기 편리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세상에 초연하기 때문이거나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귀찮고 피곤한 일을 슬쩍 뒤로 미뤄두는 것도,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도,육신을 핑계로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도…. /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11. 게으름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에는 특이한 그림이 한 점 전시돼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몸을 뉘는 관 뚜껑의 형태를 그린 그림이다. 앞에는 손잡이 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문 모양의 그림, 한쪽에는 시들어 버린 장례식 화환이 그려져 있고 많은 상처와 칼자국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특이한 제목이 붙여져 있다.
"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네!"
하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것, 될 수 없었던 것... 이 모든 것들은 우리들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그 때 내가 그걸 했어야 하는데...." 후회해도 때는 늦습니다. 지금 바로 하십시오.

12. 악하고 게으른 종

성경에도 주인에게서 맡은 돈을 잘 굴려 이득을 올린 자는 “충실한 종아, 너는 작은 일에 충실했으므로 큰 일을 맡겨야겠다”라고 칭찬을 받고,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고스란히 도로 주인에게 내놓은 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고 밖의 어둠으로 쫓아내었다고 씌어 있다.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일도 충실히 하는 것이 더욱 큰 일을 맡게 되는 비결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열 처녀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게으름이었다. 그녀들은 단지 주를 맞을 등불의 기름 장만을 게을리한 것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었다. 신랑이 왔을 때 만남의 문이 굳게 닫히고, 하나님의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는 심판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지런히 일하여 노후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은 내세를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다.
/김장환 목사

13. 평안의 위험

캐나다에 서식하는 수십만 마리의 야생오리들은 겨울철이 되면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한다. 오리들이 쉬어가는 곳은 나이아가라 강. 오리들은 호수처럼 평온한 강에서 재잘거리기도 하고, 먹이를 찾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러나 그 평온함 속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강 하류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데 그곳의 급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다. 폭포는 거대한 입을 벌린 채 오리들을 노리고 있다. 오리들이 그것을 간파하고 날아오르려 할 때는 이미 늦는다. 급류는 오리의 비상(飛翔)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수많은 오리가 폭포에 휩쓸려 50여m의 낭떠러지로 추락해버린다. 방심한 오리들은 어김없이 거센 폭포의 제물이 된다. 사탄의 유혹도 마찬가지다. 사탄은 평화롭고 한가한 기회를 노린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임한창기자 (국민일보)

14. 게으름

성경: 잠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프랭크린은 말하기를 "일하는 농부는 앉아있는 신사보다 존귀하다."고 하였고, 케네디 대통령은 말하기를 "최대의 행운은 자신의 전 능력을 들여서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근면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도 근면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5. 나태한 자

성경: 잠11:29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한 상인에게 늦잠꾸러기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태에 대한 아버지의 거듭되는 훈계에도 불구하고 그 게으른 아들은 여전히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는 좀처럼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 상인은 아들을 일찍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익 동기를 이용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 좀 벌고 싶지 않니?"라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사람이 잃어버린 금 단지를 줍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니!"
이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금 단지를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일찍 일어났을 것이 틀림없어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는 집안 일을 게을리 하고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며 고통을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가정은 평화가 없고 항상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으며 황폐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가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허랑 방탕하게 낭비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 묵상: 당신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나태하지 않았습니까?

16. 황소와 노새

어느 부잣집의 황소 한 마리와 노새 한 마리가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쉬는 것도 같이 쉬며 늘 함께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황소는 꾀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인이 노새보다 나에게 더 힘든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게다가 일도 더 많이 시키는 것 같단 말야” 황소는 앞으로 일을 안 하겠다고 결심,주인이 일을 하라고 끌어내도 외양간에서 꼼짝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황소에게 슬슬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돌아온 노새에게 물었다.
“노새야 내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에 대해 주인이 아무 말도 안 하더냐?”
“아니, 아무 말도 없었어”
“정말 아무 말도 없었어?”
“응, 그런데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이 소를 잡는 백정하고 오랫동안 얘기하더라”
/김우영 목사(만나교회)

17. 게으른 목동

한 낯선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저만치서 한 목동이 자기 양은 초장에서 풀을 뜯게 하고, 길가에 벌떡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소년에게 다가서면서 낯선 이는 길을 물었다. 이 목동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저쪽이요” 하고 아무렇게나 팔을 들어 대답하였다. 이에 이 사람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덧붙이기를 “얘야, 방금 그것보다 더 게으른 솜씨를 내게 보여주면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주지” 하였다.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이 목동은 “그거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시죠”하고 대답하였다.

18. 오스트레일리아의 벌

오스트레일리아는 날씨가 온화하여 연중 꽃이 피어 있다. 한데 꽃에 따르게 마련인 꿀벌이 없다. 그 버려진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유럽에서 가장 양질의 꿀벌을 방사(放飼)했다. 벌들은 신이 나 꽃밭을 누비며 훌륭한 꿀을 따 모았다. 한데 그 벌들의 노동은 겨우 1년 이상 계속되질 않았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벌들은 벌집속에서 편안히 졸고만 있어 꽃을 찾아다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꽃이 연중 어느 한 시기에만 핀다면 꽃이 피지 않는 때를 위해 꿀을 모아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연중 꽃이 피어 있다면 힘들여 꿀을 모아둘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들은 게을러빠져 꿀을 따지 않게 된다. 먹고 입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이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꿀벌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19. 일하기 싫거든

성경: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옛날에 어떤 새가 살았는데 별명이 "날만 새면"이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낮에 마음껏 놀다가 새가 밤이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새들이 아버지 새를 원망하였습니다.
"아버지 우리들도 남들처럼 낮에 집을 지었다가 밤이면 편하게 지내요"
"오냐 잘못 했다. 날만 새면 집을 지으마"
이렇게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정작 날이 새자 그만 집을 짓기로 한 각오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는데 다음이야 못 참겠느냐? 우선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멋지게 지내야지"
그래서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초조한 아들 새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후가 되었어요. 집을 지어야지요"
"괜찮다. 해질녘에 지어도 늦지 않다."
정작 해질녘이 되자 오늘 저녁은 어떻게 지내고 내일 날이 새면 집을 짓자고 하였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추웠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 '날만 새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 집을 짓겠다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날만 새면 다 잊어버리고 핑게를 대며 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밤만 되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을 연발할 뿐 날이 새어도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위가 닥친 어느 날 이 새들 가족은 전부다 얼어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새를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도 열심을 다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20. 게으른 것이 눈

어렸을 적에 농사일을 도우면서 짜증내고 싫어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늘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것이 눈이란다”며 나를 타이르셨다. 한 번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보릿단을 탈곡해야 하는데 그것을 올려다보며 막막해 하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또 그 말씀 “눈이 게으른 것이여. 내일 비가 온다는데 하는 데까지 해봐야제…” 하시면서 보릿단을 헐어 탈곡기에 넣기 시작하셨다. 그날 어머니와 나는 꼬박 날을 새워서야 그 높은 보릿단을 다 탈곡해낼 수 있었다. 하고 보니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사람에게 제일 게으른 것이 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도 실제로 부딪쳐보면 쉬운 일과 어려운 일, 그리고 불가능한 일의 차이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차이뿐이라고 에디슨은 말하였다. 미얀마에 윈게트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부하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정글을 꿰뚫고 지나간 뒤가 아니면 어떠한 정글도 돌파 불능이라는 보고를 하지 말라.” 이 말은 모순 같지만 부딪쳐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뿐이다. 사실 상식과 현실이 항상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상식으로 보면 안될 일도 부딪쳐보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있어도 웃으면서 맞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삶의 용기이고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21. 변화의 적, 게으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되어야지!’라고 굳게 결심해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변화되지 못합니까? 그것은 게으름 때문입니다. 미루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좋아하는 스포츠는 낚시. 게으른 사람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 좋아하는 미술품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행동하지 못하고 생각만 합니다.
● 좋아하는 식품은 라면, 특별히 컵라면입니다. 쉽게 빨리 할 수 있는 것만 찾습니다. 그래야 게으름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좋아하는 노래는 ‘Yesterday’. 과거의 추억에만 매여 있습니다. 내일을 위한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 즐겨하는 말은 “하면 되잖아.”
● 좋아하는 책은 주간지. 나에게 자극을 주고 비전을 주는 책보다는 가십이나 소문을 들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합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매일 그 모습으로, 아니 점점 더 후퇴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 내가 지금부터 변화되겠습니다’ 하는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일은 변화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의 챔피언이 되십시오.
/유관재(잃어버린 단어들)

22. 편한 것만 찾으면 퇴보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제자를 둔 스승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제자는 정진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 맴돌았으며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퇴보했다. 이를 보다 못한 스승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제자로 하여금 외우게 했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이, 걷는 것보다 서는 것이 편하다. 서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앉아 있는 것보다 누워 있는 것이 편하며 누워 있는 것보다 잠자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그 이상 편하려면 죽어야 한다."

23. 게을러지는 신앙

K라는 집사는 늘 자신의 신앙이 점점 퇴보해간다는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신앙인들을 보면 기도원에 간다, 금식한다, 병이 낫는다, 방언을 한다는 등등 신앙의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가는 모습들 뿐인데 K집사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신앙에 있어서 문제가 무엇일까?”
그는 늘 자신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그 원인을 찾아 개선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계획을 세워 실천해 가노라면 얼마가지 않아 금방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가 결심을 하고 새로운 각오를 가져 본 것도 횟수로 따지면 수없이 많다. 혼자만의 고민으로 고투하고 있는 K집사를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핀잔하듯 이 말을 건넨다.
“당신의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게으른게 문제예요.”
게으르다는 한마디에 K집사는 충격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게으름만 피웠던 자신의 신앙생활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 나의 문제는 게으름이야.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 해 주기를 늘 바라면서 살아왔어”

24. 시간 낭비와 게으름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는 데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게으름'입니다. 우리는 계획 없는 시간 사용, 준비의 부족, 장시간의 전화 사용, 미루는 버릇, 사람을 기다리는 것, 정리 정돈 무시 등으로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많은 부분을 통해 게으른 사람들을 질책하고 계십니다. 당신 안에 있는 게으름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게으름은 당신을 소망 없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제 게으름의 요소들을 훌훌 털어 버리실 때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움직이십시오!
(김장환 목사)

* 기도: 사랑의 하나님, 게으름 때문에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시간들을 헛되게 사용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고, 제 안에 있는 게으름의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5. 게으름(나태)에 관한 성경 말씀

0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0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0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0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0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잠15: 19)
0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잠19:24)
0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20:4)
0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0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 22:13)
0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3:10)

 


26. 게으름(나태)에 관한 금언

0 태만은 온갖 고뇌를 가져온다.
0 게으름은 가난의 어머니이다.
0 게으름은 모든 일을 망친다.
0 인간의 최대의 악은 태만이다.(피히테)
0 살아있는 자의 무덤은 나태이다.(안셀무스)

 

27.잡아야 될 생쥐 세마리

첫째 나태입니다.
게으름은 나의 성장을 방해하고 성공의 길목에 서서 그 앞을 막는 무서운 적 입니다. 나태는 자라는 것 입니다. 아직 뽑아 버릴수 있을때 얼른 뽑아 내야 합니다.

 

둘째 자만심 입니다.
"그까짓것 별것 아니야." 하는 의식이 나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상 나는 그것에 눌려 더이상 성장 할 수 없습니다.자신감과 자만심은 얼핏 비슷하지만 잘 구별하여 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과욕 입니다.
과욕은 나 자신의 성장을 더디게 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고 자칫 일을 그르쳐 더욱 후퇴하게 하기도 합니다.
성장을 방해하는 `나태'`자만심'`과욕'의 세마리 생쥐를 잡아내야 하겠습니다.

28. 무엇을 보았는가?

젊은 재상이 왕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왕은 기름이 가득한 잔을 주면서 한 시간 안에 지시하는 거리를 돌아오라고 했다. 기름을 쏟거나 시간이 늦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하여 칼든 군인이 뒤따르게 했다. 젊은 재상은 땀을 흘리며 기름을 쏟지 않고 제 시간 안에 도착했다. 왕은 만족하다는 듯이 웃으며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는, "모퉁이의 구두가게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럼 쌀 가게는?" "못 보았습니다." "그럼 가구점은?" "죄송합니다.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정신파느라 아무 것도 못 보았습니다." 그렇다. 맡은 일에 충성하다 보면 시험에 들 겨를이 없다.
토마스 에디슨이 나이 많았을 때 한 젊은이가 "선생님, 살아 오시는 동안 시험에 든 적이 없으십니까?"라고 하자 "시험? 나는 평생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시험에 들 여가가 없었다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공격은 언제나 최선의 방비다"는 말이 있다. 미국 속담에 마귀는 빈둥거리는 자들을 찾아 다닌다고 했다. 미국 젊은이들이 사회악 속에 깊숙이 빠져들어 가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한가한 시간이 많다는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29 날만 새면

옛날에 어떤 새가 살았는데 별명이 "날만 새면"이었다고 한다.
따뜻한 낮에 마음껏 놀던 새가 밤이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새끼 새들이아버지 새를 원망하였다.
"아버지, 우리도 남들처럼 낮에 집을 지었다가 밤에 편하게 지내지요"
"오냐, 잘못했다, 날만 새면 집을 지으마."
이렇게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정작 날이 새자 그만 집을 짓기로 한 각오를 잊어버렸다.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는데 다음 밤이야 못 참겠느냐? 우선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멋지게 지내야지."
그래서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다.
초조한 아들 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후가 되었어요. 집을 지어야지요."
"괜찮다. 해질녘에 지어도 늦지 않다."
정작 해질녘이 되자 오늘 저녁은 이렇게 지내고 내일 날이 새면 집을 짓자고 하였다.
밤이 되었다. 추웠다. 오들오들 떨면서, "날이 새면, 날이 새면, 날이 새면...."집을 짓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날이 새면 다 잊어버리고 핑계만 대면서 놀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 ..."하고 후회하였다.
날이 차츰 추워져갔으나 "날만 새면, 날만 새면"을 연발할 뿐, 날이 새어도 집을 짓지 않았다. 그러다가 잡자기 추위가 닥친 어느날 이 새들 가족은 전부 얼어죽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새를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자료원 : 한국컴퓨터선교회


30. 게으름의 댓가

어느 가정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얘야 목욕탕 하수도 구멍의 마개 체에 걸린 헝겊이나 머리카락 때문에 물이 잘 안빠지니까 치우도록 해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아들은 귀찮아서 하지도 않고 그냥 "네" 하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기 전에 양치질을 하러 목욕탕에 들어가다가 "이크!" 하고 놀랐다.
목욕탕에 물이 고인 것을 모르고 발을 내딛어 그만 새로 신은 양말을 다 적신 것이었다.
아들은 "누가 이렇게 목욕탕 바닥에 물을 담아 두었어요?"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머니가 와서 그것을 보고는 "아니 분명히 네가 하수도 구멍을 다 치웠다고 했는데 왜 물이 고였지?" 하였다
이래서 당장 거짓말이 드러났고 그 댓가로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된 것을 알았다.
자료원 : 한국컴퓨터선교회

 

 

시간 낭비와 게으름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는 데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게으름'입니다.

우리는 계획 없는 시간 사용, 준비의 부족, 장시간의 전화 사용, 미루는 버릇, 사람을 기다리는 것, 정리 정돈 무시 등으로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많은 부분을 통해 게으른 사람들을 질책하고 계십니다.

당신 안에 있는 게으름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게으름은 당신을 소망 없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제 게으름의 요소들을 훌훌 털어 버리실 때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움직이십시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 을 얻느니라"(잠13:4)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잠19:2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20:4)
"사랑의 하나님, 게으름 때문에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시간들을 헛되게 사용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고, 제 안에 있는 게으름의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할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슬픔의 나무


유대인 사이에 오랫동안 ‘슬픔의 나무’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다 보면 한 나무를 지나게 되는데, 그 나무가 바로 슬픔의 나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나무에 걸어둘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걸어둔 슬픔 중에서 가벼워 보이는 걸 선택할 수도 있지요.
자신의 슬픔을 나무에 걸어둔 뒤에는 신중하게 다른 이가 걸어둔 슬픔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런 끝에 마침내 선택하는데, 대부분은 같은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처음 걸어두었던 바로 그 슬픔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나만큼 슬픔을 겪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슬픔을 살펴보면 그래도 내가 겪은 슬픔이 가장 감내할 만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이치입니다.
힘들고 슬픈 일이 많아도 내게 주신 삶이 가장 고맙다는 걸 깨닫는 자리, 바로 그곳이 천국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십자가는 슬픔의 나무일지도 모릅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겨자씨/국민일보>

 

 

옹달샘 “게으름- 악마의 무기”

성경: 잠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악마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실족시키느냐”란 주제로 회의를 했다. 한 젊은 악마는 “간단합니다. 그들을 전부 죽이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늙은 악마는 “옛날에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한 사람을 죽이면 순교의 피가 씨가 되어 기독교인들이 수천 수만으로 늘어났다”고 대답했다.

 

다른 젊은 악마는 “죽이지 말고 감옥에 가두면 전도하러 돌아다니지 못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늙은 악마는 감옥에서 모두 기도하기 때문에 그것도 역시 쓸데없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간교한 늙은 마귀가 꾀를 하나 냈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게 하고, 기도를 하게 하고, 성경을 읽게 하고, 전도를 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등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불편하니까 내일부터 하자”는 게으른 마음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게으름은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악마의 계교는 힘을 잃는다.

 

전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발명으로 발명왕 에디슨은 조언을 구하는 젊은이를 향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일하는 동안은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말게” 이 말은 일하는 동안에는 그저 그 일에만 집중하여 열심히 하고 시계를 보지 말아라, 보수라든가, 어떤 칭찬이라든가 이런 것을 바라지 말고 오직 그 일만 열심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팔순이 넘은 에디슨은 그의 생일 파티에서 근황을 묻는 친구에게 “나는 매일 다섯 시간 쉬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실에서 일하네. 나는 장례식 3일 전까지 이렇게 일할 걸세.” 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자신이 말한 대로 열심히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여 평생을 그렇게 산 것입니다.

 

프랭크린은 “일하는 농부는 앉아있는 신사보다 존귀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최대의 행운은 자신의 전 능력을 들여서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근면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 곧 사명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바울처럼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근면함을 잃지 않으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