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5절에서 7절을 중심으로, 제목은 “실족하게 하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실족시키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본문에서 “실족”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실족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삶이기 때문에, 화를 자초하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실족하게 한다는 의미는,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시험 들었다. 상대방을 시험 들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실족하다'는 동사 헬라어 '스칸달리조'는, ‘덫, 함정, 걸림돌’이라는 의미의 스칸달론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실족이라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의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1. 실족이라는 단어가 상대방에게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상대방에게 사용될 때는,덫, 함정, 걸림돌을 통해, 사람들에게 죄를 짓도록 끌어들이고, 범죄하게 하여 넘어지게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생명을 죽이는 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7절).
2. 실족이라는 단어가 자기 자신에게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사용될 때는, 믿음을 위태롭게 하는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절의 경우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리스도인들이 실족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일이든지, 자신에게 대한 일이든지, 모든 일들을 “주께 하듯”하지 않고, “사람에게 하듯”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입니다.
교회 일을 할 때에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주께 하듯”해야 합니다. 그럼에도“사람에게 하듯”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실족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이 실족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실족하게 됩니다.
실족은 상대방에게 사용이 되던, 내 자신에게 사용이 되던 모두 생명을 죽이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수고하는 만큼, 노력하는 만큼, 투자하는 만큼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 살리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는 모든 일들은 생명 살리는 일에 쓰임받기위해서입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사업을 하는 것도,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건강해야 하는 것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도,
모두 생명 살리는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에 쓰임 받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0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자신이 실족되던, 상대방을 실족시키던, 이런 삶은 변질된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7절)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 등장하는 인물이 소개되었습니다. - 어린아이입니다.
5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5절에 “어린아이”를 6절에서는 “작은 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네 번이나 등장하는 실족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핵심이 오직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오직 생명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라고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되면 차라리 어떻게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는지 6절을 보시겠습니다.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한국문화에서는 연자 맷돌에 대하여 조금 생소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연자 맷돌입니다. 연자 맷돌은 올리브기름을 짜는데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연자 맷돌은 주로 나귀가 돌렸습니다.
연자 맷돌은 위아래가 부딪쳐 돌아가면서 안에 있는 올리브가 눌려서 기름이 짜지는 기구입니다. 연자 맷돌이 목에 달린다는 예수님의 표현은, 연자 맷돌 윗부분을 말합니다. 생명을 실족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5절에 “어린아이”라는 표현과, 6절에서는 “작은 자”라는 표현은, 실제로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말하지만, 교회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연수가 적은 사람과, 초신자도 “어린아이”로, “작은 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은 일에도 쉽게 실족될 수 있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의 삶이 본이 되지 아니한다면 나중 믿는 사람은 쉽게 실족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 죄를 짓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실족시키는 도구가 소개되었습니다. - 손, 발, 눈 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의 신체 구조에 손, 발, 눈은 두 개씩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손, 발, 눈이 누구와 짝을 이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지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진다면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진다면 사람을 실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것입니다.
사람의 신체구조 중에 손, 발, 눈 세 가지는 삼중구조로 표현되었습니다. 세 가지만 소개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모든 지체 중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을 대표하는 의미로 표현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느 것은 귀하고, 어느 것은 귀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첫째, 내 손
내 손은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이웃의 유익을 위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을 위해, 생명살리는 일을 위해 쓰임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제자들을 섬기는 손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요13:4-7). 그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내 손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람을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지면 됩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요?
신앙생활의 연륜이 적은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나는 구경하는 상황이 되면 안됩니다. 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받은 사람이, 교회 출석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에게 주방이나 청소 등등 사소한 일이라도 시키면 내 손은 사람을 실족시키는 손이 됩니다.
내가 먼저 섬김의 모범을 보여드리는 삶이, 믿음이 나약한 성도들을 살리는 손이 됩니다.
사회생활 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자발적으로 이웃을 섬기는 손이 되면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을 살리는 손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내 손으로 생명을 죽이는 곳에는 절대로 쓰임 받으면 안됩니다. 창조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 발
발이 짝이 되어서 움직일 때 제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내 발이 생명을 죽이는데 쓰임 받으면 안됩니다. 내 발이 생명 살리는 곳에만 가야 합니다. 죽이는 곳에는 움직이면 안됩니다.
전도지를 들고 전도하러 나갈 때도 교회 오래 다닌 사람이 앞장서서 가야 합니다. 교회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전도지를 주면서 전도하러 가라고 하면 내 발은 사람을 실족시키는 발이 됩니다.
내 손과 내 발이 사람들을 실족시키데 사용되었다면 실족시키는데 사용된 손과 발을 찍어 내버리라(8절)고 했습니다. 비록 한 손과 한 발로 이 땅에서의 삶이 불편하더라도 불못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습니다.
셋째, 내 눈
눈은 짝이 되어 움직일 때 사물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구별하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내 눈은 오직 생명을 살리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눈이 생명을 죽이는데 쓰임 받으면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주의 일은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하면 됩니다. 이 일은 누가 하는 것이고, 저 일은 누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저분한 것이 내 눈에 보이면 내가 치우면 됩니다. 그럼에도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시킨다면, 내 눈이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본문 9절입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3. 실족하게 하는 자들의 결과 - 화
본문 7절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이 말씀은, 실족하는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항상 우리 앞에는 선과 악이 함께 놓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선택하느냐! 악을 선택하느냐!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태초의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는 선악이 놓였을 때 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악을 알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 말씀보다,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뱀의 말을 더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기억나지 않으면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세상의 것에 더 관심을 가지면 실족하게 됩니다.
네 손이, 네 발이, 네 눈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마지막 가는 곳이 달라진다고 언급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생명을 죽이는데 쓰임 받았다면 영원한 불, 즉 불못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에베소 6장 7절 말씀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 3장 23절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작은 자, 즉 어린아이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10절)는 말씀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뜻입니다.
나의 사소한 부주의로 어린아이 하나에게도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삶의 기준이 아닌 사람들은,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자들 앞에는 쉽게 엎드립니다. 하지만, 세상의 것을 많이 소유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진 자든, 못가진 자든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해야 합니다. 소유가 그 사람을 판단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지만 소유는 인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 발, 눈이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트려지는 것이 낫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 죽이는 일이 아님을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비그리스도인이 아님을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생명은 살리는 일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이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한주간도 생명 살리는 일에 우리의 손, 발, 눈이 사용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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