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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 - 감옥과 얼굴

by 은총가득 2020. 8. 4.

 

산상수훈 - 용서 : 감옥과 얼굴

 

본문 : 마태복음 5:21-21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 중 마태복음 5장 후반부에 나타난 “원수에 대한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일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1918년 7월18일 출생하여 2013년 12월5일에 생을 마감한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용서에 대한 귀한 가르침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만델라는 남 아프리카의 흑인 인종차별 폐지 운동으로 인해 1962년 잡혀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강제 노역인 채석(採石)장에서 매일 고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27년 만에 감옥 석방 되어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흑인 인종차별을 없애며 노벨 평화 상을 받았습니다.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교도소에서 자신을 수십년간 괴롭힌 간수들을 내빈으로 초청했습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의 취임식에 참석하여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대화한 내용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자서전에 기록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감옥에서 다 빼앗고 당신을 힘들게 한 교도수 간수들 밉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미웠습니다. 나는 저들로 말미암아 매일 매일 채석장에서 돌을 깎는 강제 노역을 했고 저들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단 한가지 빼고요. 나의 마음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내 마음만은 저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저들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다시 클린턴 대통령이 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때는 어땠습니까? 이제 나오게 되니, 그들이 밉지 않았습니까?”

그가 대답하시를 “그때 나는 저들을 향한 증오와 미움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자유인이 되었는데 내가 저들을 미워하고 증오 한다면 내 몸은 비록 감옥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감옥에 있게 되는 것을 알기에 나는 또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내려놨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의 대답의 핵심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나를 내 마음의 미움과 증오의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내 마음까지 잃어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산상수훈 원수에 대한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마태복음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율법은 실제로 사람을 죽여야 살인자로 인정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육신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마음으로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살인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계명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모르는 그 말씀의 근본적인 뿌리를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온전히 해석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사랑해라, 용서해라, 특별히 원수도 사랑하라 말씀하셨을까요?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또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였다고 가정할 때 이에 대한 부모의 반응은 대략 세 가지 일 것입니다.

 

첫 번째, 그 부모가 아무 죄 없는 아들을 죽인 범인이 너무 미워서 범인을 총으로 죽입니다. 이 경우 법정에서 어느 정도 정상 참작(參酌)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아들 죽인을 범인을 직접 죽이지 않고 경찰에 넘겨서 재판을 통해 범인으로 하여금 살인 죄에 대한 벌을 받게 합니다.

세 번째 경우는 그 범인을 용서하고 사랑하여 그를 자신의 양자로 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 상황을 맞이한다면 1-3번 중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까?

어떤 분들은 일 번이라고 할 것입니다. “내 아들을 죽인 그 범인을 나는 결코 용서 못합니다. 그도 똑같이 당해야 합니다.” 이 분들은 마태복음 5: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에 해당합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21:23-25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근원은 저 사람이 나 한테 한대로 똑같이 복수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수를 막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율례로서 받은 만큼만, 더 이상의 복수를 멈추라는 말씀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2번 처럼 반응할 것입니다. 내 아들 죽인 범인을 죽이지 않고 살려 법정에 세워 정의로운 법을 통해 죄의 댓가를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 2번을 선택 할 것입니다. 그리고 3번의 반응을 선택하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더 나아가 양자로 삼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인간적으로는 이해하고 공감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을 요구하실까요? 그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용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죄로 인해 하나님의 원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독생자 예수님께 전가(轉嫁)시켜 참혹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그 사랑하는 독생자를 우리의 죄로 인해 잃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받았기에 너희도 그렇게 살며 내가 너희의 생명을 구한 것처럼 너희도 생명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들을 대할 때, 그것으로 인해 내 안에 미움과 증오와 악한 마음을 품는 것은 철저히 나의 선택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내가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책임을 나에게 물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원수에 대해 미움과 증오의 악한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요? 만델라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몸은 비록 자유하지만 내 마음은 미움과 증오의 악한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나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도 막히게 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아서, 혹은 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내 옆에 아무리 악을 행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향해 화를 내고 ‘라가’라고 욕하는 것입니다. ‘라가’는 '텅빈‘, ’무가치한’, '우둔한', '어리석은', '멍청한'이라는 의미로 상대의 인격을 매우 경멸할 때 사용하던 일종의 욕입니다. 이처럼 욕하고 비판하면 단지 그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그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영적으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원수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미움과 증오의 감옥에 갇혀 미움과 증오의 죄의 사슬에 꽁꽁 묶여 원수가 아니라 내 영혼이 죽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용서의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안에는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힘,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용서와 사랑은 내 안에 역사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능력이 나오기 위해 내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어떤 누구도, 내가 이렇게 상처 받고, 손해를 입었고 이렇게 억울함을 당했는데 용서하지 못합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반드시 문제를 상대하고 내가 받은 상처를 상대하기에 어떤 누구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한 단계 더 깊어지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의 믿음이 어디까지 고백 되어져야 할까요? 나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때 그 믿음의 고백대로 나는 죽어 반응하지 않고 내 안에 예수님만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이 흘러나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고백해 봅시다.

“예수님!!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오직 내 안에 예수님만 살아 역사하십니다”

인생의 많은 상처를 받은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마음은 미움과 증오와 상처의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시편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사울 왕을 시작으로 항상 악한 사람들이 있을 때 누구를 내 앞에 하나님을 모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상대했던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그의 자서전에서 미움과 증오의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길고 긴 감옥생활 중에 나는 하나님께 늘 감사했고, 하늘 보고 감사했고, 땅을 보고 감사했고, 물을 마시며 감사했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감사했고, 강제 노역을 했을 때도 감사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고백처럼 항상 주님을 앞에 모시고 문제와 원수를 상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했다는 것입니다. 정연희 시인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시를 읽어 봅시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무슨 말씀입니까? 주여.

내 하나님이여, 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게는 그리도 엄격하시면서

어찌 원수에게는 그리 관대하십니까?

 

어찌하여 극악함을 버려 두시어

그로 하여금 포도즘틀을 밟듯 나를 밟아,

내게서 진액을 짜내게 하시나이까.

 

아버지.

보아라, 나와 함께 하는 것아.

네가 원수와 똑 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나는 참을 수가 없구나.

 

 

<결론>하나님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고 억울하여 눈물 짖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까?

 혹시 스스로 만든 미움과 증오의 감옥에 나의 마음을 가두고 그 어두운 감옥 속에서 신음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하고 용서한 것처럼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약 용서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내 아름다운 얼굴이 빛을 잃어 버리게 되고 그 원수와 똑 같은 얼굴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보혈의 능력은 생명을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저주, 멸시, 천대, 미움, 시기, 증오 등 모든 저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을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원수와 내 자신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주님께 반응하여 주님의 사랑와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 그동안 용서 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 할 수 없던 사랑을 사랑하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얼굴에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 가는 곳곳 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치유와 회복과 하나 됨의 통로가 되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