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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중을 움직인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by 은총가득 2020. 6. 25.

청중을 움직인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저명한 목회자 가문에서 출생한 찰스 스펄전은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장막교회를 세워

6천 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고, 38년간의 목회 시간에 1만 4천명 이상의

성도를 등록시켰다. 그의 청명한 목소리와 장엄한 언어 구사, 확고한 성경 이해와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사랑 등은 모두 조화를 이루어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뛰어난

설교를 만들어냇다. 비록 그의 노년기는 쓰라린 논쟁과 질병으로 암울했지만 그는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위대한 설교자였다.

 

 

 

1. 옛 속담에 "마음이 신학자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찰스 해든 스펄전의 신학 또한

그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펄전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

다는 사실과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스펄전의 이러한 믿음을 평생 동안 읽어버리지 않았다.

 

2. 그의 아버지인 존은 독립교회파의 목사로 톨레스버리에 있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역하는 교회에서 충분한 생활비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부수입을 얻기 위해 켈베돈에 있는 석탄 상인의 회계 업무를 맡아보았다.

할아버지인 제임스 또한 독립교회의 목사로 시무하면서 온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3. 스펄전의 조상들은 네덜란드 개신교의 피난자들이었다. 그들은 1568년 로마 카톡릭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에식스에 정착했다.

 

4. 어린 스펄전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가족의 청교도적인

전통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부모와 엔고모의 사랑스런 보살핌이었다.

 

5. 어린 스펄전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간에

항상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이었다.

 

6. 열 살 때 그는 스탬보른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경험햇다. 바로 리처드 닐과의

만남이었는데, 인도와 러시아 선교사였던 그는 런던 선교 협회를 돕기 위해 에식스

지역을 방문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목회자 숙소에 머물다가 목사관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던 어린 스펄전을 알게 되었다. 그느 스펄전을 불러내어 정원으로 데리고

가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어릴 때 그 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 이 아이는 커서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회중 앞에서 설교를

할 것입니다."

 

7. 전염성 열병이 퍼지는 바람에 스펄전은 뉴마텟에서의 첫 학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는 전염병을 피해 긴 겨울 방학을 보내려고 콜체스터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는

구원의 길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서로 다른 교파의 교회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1850년 1월 주일에 감리교파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목사님이

설교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스펄전을 향해 '청년이여, 당신은 매우 비통해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항상 비통할 것입니다. 살 때도 비통하고, 죽을 때도 비통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순간 스펄전은 아미 어둠이 걷히고 태양을 본 것 같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

으며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 스펄전은 리딩의 학교로 옮기면서 독립교회를 떠나 침례교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9. 그는 16살 때 처음으로 오두막에서 농사꾼 부부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후 매주 설교를 하게 되었다.

 

10. 1851년 가을(17살때), 스펄전은 워터비치에 있는 침례교회의 목사로 청빙되었다.

그는 워터비치를 변화시켰다. 워터비치의 사람들은 곧잘 술에 취해 다녔고, 그에

뒤따른 빈곤과 방탕과 폭력의 악습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교회는 빠르게 부흥되었고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11. 1852년 앵거스 박사는 스펄전에게 다가오는 가을 학기에 침례교 대학에 지원할 것을

권유하였다. 스펄전은 그 문제에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 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너는 자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추구하는가? 그것을 구하지 말라"

그는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삶의

갈림길에 서 계셨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가 지금까지 목사가 되고자 한 것이 자신의

야망과 자기 중심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으을 깨닫게 해주셨다. 그 후부터 그는

오로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일만 할 것을 결심했다. 그는 워터비치에 남아

있기로 했다.

 

12. 1854년 그는 뉴파크 스트리트교회에서 설교를 전하게 되었고, 그는 6개월 동안

목회자로 청빙받게 되었다. 1854년 4월 스펄전은 정식으로 담임 목사 청빙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는 죽을 때까지 38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13. 뉴파크 스트리리교회의 확장으로 엑세터 회관을 임대하여 말씀을 전하였다.

 

 

14. 1856년 교회 이름을 메트로폴리탄 장막교회로 바꾸고, 교회 건축을 위해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1861년 마침내 장막교회가 완성되었다. 첫 예배는 약 1천 명

이상이 모인 아침 기도회였다.

 

15. 그는 <신앙 은행의 수표장>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스펄전의 주해가

곁들어진 336개의 약속의 말씀을 매일 하나씩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었다.

 

16. 1867년 10월 무렵, 장막교회는 3만 5천 명의 성도가 모였다.

 

17. 그는 꾸준히 책을 모아 죽을 때 1만 2천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 그리고 목회자 대학의

도서관과 학생 개개인들에게 더 많은 책을 주었다.

 

18. 그는 1891년 1월 31일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