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할 수 없는 죄(히 6:4-6)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 6:4-6)
이 본문은 신앙을 부인하지 않으나 실제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못하는 신자에게 고민스런 구절이다. 회개를 할 수 없는 자도 있는가? 성령의 은사를 맛보아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한 사람도 타락하고 구원을 잃게 되는가? 이 말씀은 또 칼빈주의의 교리와 모순 되게 보인다.
먼저 이 구절과 유사한 다른 성경 구절을 살펴보고 이 본문의 뜻을 설명하고 문제를 풀기로 한다.
이 구절은 유일한 신약의 구절이 아니다. 마가복음 3:28-29에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결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사역을 마귀의 역사라 하였다. 요한일서 5:16 죽음에 이르는 죄가 있다 하였다. 이런 죄에 대해서는 기도가 무익하다 하였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할 수 없다는 불가능에 대해 6:18에서는 하나님을 거짓되다고 증명할 수 없다고 했고 10:4에서는 동물의 피로서는 죄를 옮길 수 없다 하였다. 또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였다. 위의 경우는 모두 타협이 불가능한 아주 절대적인 의미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네 개의 동사. 비췸을 받고, 맛보고, 참여하고 선하심을 맛보다는 말은 모두 불가능의 주제를 설명하는데 쓰였다.1)
이제 그 네 가지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1. 비췸을 얻고란 말은 자주 세례를 가리켰으나 하나님의 대한 정확한 가르침을 받은 것을 가리킬 것이다.
2.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는 자주 성찬 참여를 가리켰으나 아마 구원이나 성령 받음 또는 성령의 나눔을 가리킬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예언적 말씀과 새로운 시대에 완전히 실현된 현재의 체험에서 나타난
치유나 유사한 사건들에 대한 기적들을 가리킬 것이다(갈 3:1-5). 만일 이런 체험을 다한 사람이라면 온전한 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
그러면 정말 이런 신자도 타락하고 배교하는가? 그리고 다시 회개할 수 없이 망하고 마는가?
이 문제는 정말 난제다. 성경은 진정한 중생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주 타락하지 않는다 하였다(눅 22:3; 요 6:39, 40; 10:28, 29; 17:2, 6, 11, 12; 롬 8:30; 11:29; 빌 1:6; 살전 5:23; 살후 3:3; 벧전 1:4, 5; 요일 3:9).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먼저 여기서 타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알아보자.
여기 타락한 자는 곁으로 떨어진다는 다시 말해서 수납한 표준이나 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기 타락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배교의 회복할 수 없는 특성을 드러낸다. 이런 경우가 초대 교회에는 흔히 있었다. 누구든지 기독교에서 유대주의로 되돌아오는 자는 그 자신을 유대인의 불신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이끈 악의와 동일시하는 것이었다.3) 초대 교회에서 배교는 기독교의 신앙을 거절한 것보다 더 악했다. 그리스도의 배척은 무지의 소치일수 있었다(눅 23:34). 그러나 배교는 한 번 그가 알았던 분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4)
이렇게 배교의 맥락에서 본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는 본문은 그렇게 어려운 뜻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배교는 갑자기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진적인 과정이요 불신에서 불순종으로 그리고 마침내 배교로 귀착되는 이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때 그것은 마음의 강퍅함과 회개의 불가능으로 귀착되고 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회개의 가능성이 없다는 말씀이기 보다 그 당사자가 회개가 불가능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중생한 성도도 타락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멸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하기로 한다.
1. 요한 칼빈은 하나님께서 택한 성도는 끝까지 붙들어 주신다. 그러나 여기서 영적 은혜를 받은 자는 본래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가 아닐 것이라 하였다.5)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배교자를 교회 안에 두시는가? 그것은 한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런 사람들을 보고 참 신자가 스스로 넘어질까 두려워하며 더욱 힘쓰게 될 것이라 하였다.
2. 이 본문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정으로서 경고로 주신 것이라 한다.
3. 이 본문에 다시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은 처음 예수를 믿고 개종할 때 다시 말해서 중생할 때의 회개 그것은 한 번뿐 다시 그런
회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라 한다.
위의 세 가지 해석 중에 첫 번째 설이 가장 적합한 해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고 거듭나 죄에 대해 죽은 자는(롬 6:2) 영원히 멸망할 수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요 6:37, 39; 19:27, 28; 15:16; 요일 2:19; 5:18; 롬 8:29, 30; 마 15:13).6)
결국 이 본문은 가정적인 경고이든지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했거나 택함받지 못한 자를 가리켰을 것이다.
주
1. Donald Guthrie, Hebrews, p.141
2.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99-100
3. Donald Guthrie, Opcit., pp.144-45
4. Hugh Montefiore, The Epistle to the Hebrews(Peabody Hendriksen, 1987), p.107
5. John Calvin, Mark 4:17 (박윤선, 히브리서, 공동서신), p.60
6. 이상근, 갈라디아서, 히브리,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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