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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및 요한신학

예수를 소개하다

by 은총가득 2020. 6. 23.

예수에 대한 소개(1:19-51)

1. 세례요한

요한복음 서시 이후의 나머지 1장 부분은 2장에서부터 시작되는 표적을 통한 예수의 자기 계시에 앞서 세례 요한과 예수 자신에 의해서 예수가 소개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 세례 요한의 증언 1: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1:19-28절)

요한복음에서 서시 이후의 첫 기사는 세례 요한에 대한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세례 요한에 대한 내용이 저자가 임의로 판단한 내용이 아니라 첫 문장을 “그리고 이것이 요한의 증언이다”라는 말로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세례 요한 자신의 증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19a절). 세례 요한의 증언이 강조되어 있는 것은 이 문맥의 끝에서도 이 내용이 다시 한번 나오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34절).

 

 

 

세례 요한의 증언은 이런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그들의 대표자들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서 세례 요한의 정체에 대해서 그에게 직접 질문을 한다. “네가 누구냐?”(19절) 이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주저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않고, 곧바로 명확하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21절) 예루살렘 대표자들이 불명확하게 질문한 것을 요한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대답한 것은 당시에 요한을 그리스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질문이 무엇인지를 요한은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요한의 답변 이후에 이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요한의 정체에 대해서 질문하고 요한은 대답한다(21절).

 

구약 성서에서 엘리아와 “그 선지자”는 모두 종말론적 인물을 가리킨다. 말라기 4:5에서 엘리아는 메시아가 도래하기 전 그의 도래를 준비할 사자를 말한다(cf. 3:12). 여기서 “그 선지자”는 신명기 18:15-22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종말에 일으키기로 약속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메시아 일뿐만 아니라 그 선지자이기도 하기 때문에(6:14, 7:40) 세례 요한이 자신이 “그 선지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공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엘리아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는데 반해(막 1:2l; 마 17:11-13) 요한복음에서 이것이 부정된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구약의 종말론적 예언이 모두 예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요한 신학에서 이러한 내용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공관복음에서도 세례 요한이 예수께 복종하는 인물이라는 내용이 나오지만(마 3:11; 막 1:7-8; 눅 3:16)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이 더 강조되어 있다. 요한복음 서시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세례 요한 기사에서 요한은 예수와 독립적으로 어떤 종말론적 사역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 예수에 대해서 증언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의 사역은 예수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으로 국한된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대표자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온 모든 질문 사항들을 소진하자 이제 요한에게 스스로 어떤 인물생각하는지를 묻게 된다. 자기들을 파송한 사람들에게 가지고 갈 말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22절). 이에 대해 세례 요한은 이사야 40:3을 인용하면서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23절)고 대답한다. 본래 이 구절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천사가 할 역할에 대해서 묘사한 것이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의 할 일은 그리스도가 와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이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 밭을 갈아 놓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말씀이라면 자신은 그것을 전달하는 소리인 것이다.

 

여기에서 갑자기 요한복음 저자는 대표자들을 보낸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확인 한다(24절). 여기서 저자가 이 내용을 왜 포함시켰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이후에 전개되는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을 예고하는 것일 것이다. 대표자들은 이제 세례 요한의 본질에 관한 질문에서 그의 사역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찐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25절) 물론 이 세 인물 중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 사역이 있다는 것이 기대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질문자들은 그것에 관한 대답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이 질문 자체에 대해서 대답하기 보다는 자신의 세례 사역을 예수와의 연관성 속에서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위치에 대한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26-27절) 요한은 노예에게 부여된 역할을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시켜주는 것뿐이지 독립적인 어떤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러한 모든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난 곳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28절)이라고 말함으로써 증언의 확실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 세례 요한의 증언 2: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다.”(1: 29-34절)

이제 예수의 본질에 대한 세례 요한의 직접 증언이 이어진다(34절). 예수가 자기에게 나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친다(29절). 유대인들에게 양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기도 했지만 종교적 희생 제사에 쓰이는 제물이기도 했다. 특히 유월절 어린양은 그 자체가 희생 제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양을 희생시킨 피를 집 문 설주에 발라 장자의 죽음을 면하는데 사용되었다. 바울 서신과 공관복음서 공히 예수가 바로 이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를 진 것이라는 내용을 기록한다(고전 5:7; 롬 3:25; 막 14:22-25; 막 22:24-23; 26:26-30).

 

요한도 여기에서 예수를 유월절 희생양이라고 말하고 있다(cf. 요 19:14; 19:29).

 

이어서 세례 요한은 서시에서 이미 말한 것을 반복적으로 말하면서(15절) 예수를 자기보다 앞서 존재한 분으로 자기보다 뛰어난 분이라고 소개한다(30절).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뛰어난 이유는 기본적으로 예수의 선재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늦게 출생했지만 그의 선재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창조의 동참자로서의 신성을 가진 예수를 인정한 것이 된다. 세례 요한은 본래부터 자기도 예수를 안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세례를 통해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라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은 분명하다고 한다(31절). 이어서 세례 요한은 자기가 어떻게 예수를 알게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내려와 예수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 주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32-33절).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다면 예수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는 내용은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요한복음 기사에서 성령으로 세례 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요한의 물세례는 본질이기 보다는 예표라고 할 수 있고, 예수의 성령 세례에 대한 안내의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예수만이 본질이고 예수만이 이 세례를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다(34절).

하나님의 아들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대표적인 칭호로서 이곳에 처음 나오는데 여기서는 1:18에 나오는 하나님의 독자를 다른 표현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특별한 아들인 것이다.

 

 

 

2. 첫 제자들의 고백: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1:35-42절)

세례 요한은 이제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다시 한번 소개하고 이것을 듣고 있던 세례 요한의 두 제자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를 따라 나선다(35-37절). 이것을 보고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제자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구하느냐?”(38절) 즉 무엇을 얻으려고, 무슨 목적으로 자기의 제자가 되려하는가 하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두 제자는 “랍비여,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38절)하고 되묻는다. 이 질문 속에는 이미 예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이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삶을 배우려 하는 것이다. 이에 예수는 “와 보라”는 말로 이들을 초대하고 이들은 예수가 머물고 있는 곳을 방문하여 그곳에 유하여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39절).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 중 하나인 안드레는 이것을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에게 알린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40-41절) 여기서 일인칭 단수 동사를 쓰지 않고 복수 동사를 쓴 것은 아마도 익명의 다른 한 제자를 이 말 속에 포함시킨 것일 것이다. 그리고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한 것은 당시에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상황을 반영함과 아울러 이 두 사람도 평소에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많은 대화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안드레는 이 한 마디로 베드로를 곧 예수께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 베드로가 자기의 제자가 되기 위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예수는 곧바로 그에게 “시몬”이라는 이름에서 “게바”(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준다. 이름을 바꾸어 주는 부분은 공관복음관과는 다르다. 요한복음에서는 처음 베드로의 이름을 바꾸어 주지만 특별한사명을 주지 않는다. 

 

 

처음 두 제자와 베드로가 예수를 찾아왔다면, 빌립의 경우에는 예수가 그를 제자로 부른다.

아무 설명도 없이 예수는 위엄 있게 “나를 따르라”고 하고 빌립은 예수의 제자가 된다(43절).

저자는 빌립이 벳세다 사람으로서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도시 출신이라고 한다(44절). 그런데 안드레가 예수의 제자가 된 뒤 곧바로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했듯이, 빌립도 자신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가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한다. 그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로서 나사렛 출신이라는 말도 덧붙인다(45절). 안드레를 곧바로 따라 나섰던 베드로와는 다르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나사렛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신학적인 중요성이 있는 지명도 아니고, 시골 외딴 마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만났던 빌립은 예수가 처음 두 제자들에게 한 것처럼 “와 보라”는 말로 그를 초청한다(46절).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께 나아오는 나다나엘을 보고 예수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한다(47절).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된 야곱이 간사한 인물이었던 것에 착안하여(창 27:35), 나다나엘은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들은 나다나엘이지만 이러한 자신에 대한 칭찬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를 그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이에 예수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여 자신이 나다나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48절). 요한복음의 예수는 사람을 만나기 전 먼저 그 속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2:24-25).

 

빌립과 나다나엘 모두 메시아를 고대하던 사람이었던 것을 보면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의 도래를 고대하면서 기도했을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한 마디에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절) 라고 말함으로써 예수가 자신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임을 고백한다. 나다나엘의 고백은 당시 초대교회에서 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고의 신앙고백이 되었다.

 

 

3. 예수의 자기 계시: “나는 인자(人子)다.”(1: 43-51절)

이전에는 세례 요한의 소개와 제자들의 고백으로 예수가 소개되었다면 이제 절정에 이르러 예수는 스스로를 소개한다(51절).

 

이렇게 자신을 메시아로 고백한 나다나엘에게 예수는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는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0절)라고 말한다.

 

여기서 더 큰 일이란 예수가 앞으로 행할 표적을 말할 수 도 있고 예수의 신적 본질에 대한 것일 수 도 있다. 이것이 후자를 말한다면 다음 절에 있는 예수의 자기 계시가 더 큰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예수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인물이라는 것을 넘어 제자들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51절)는 것이다. 먼저, 여기서 예수는 나다나엘과 말하고 있지만 “보리라”는 동사는 이인칭 복수를 써 “너희가 보리라”고 한다. 이것은 이 말씀이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인칭 복수로 대별되는 신앙 공동체에 해당된다는 것을 말한다. 또 예수는 여기서 자신을 인자(人子)라고 소개하는데 문자적인 뜻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지만 구약성서의 전통과 요한복음의 용례로 볼 때 여기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보내신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cf. 단 7:1-14; 시 8:5; 요 9:35).

 

 

그런데 천사가 인자인 예수를 기점으로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베델에서 꿈을 꾸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꿈을 꾼 다음 야곱은 그 계시의 장소를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했다(창 28:17). 이제 야곱의 사다리는 예수로 대체된 것이다. 예수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사다리요 중보자인 것이다. 오직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cf. 요 14:6).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새 포도주요, 새 성전이요, 새 이스라엘로 나타나듯이 그는 새 야곱의 사닥다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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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예수에 대한 증언(증거)는  매우 중요하다. 세례요한으로 시작된 예수에 대한 증언은 제자들의 증언 , 특히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20장의 도마의 고백 "주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인지 말하고 있다. 그외도 보혜사 성령, 하나님 아버지, 성경, 그리스도  스스로 자신을 증거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