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 4: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12 Ζῶν γὰρ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καὶ ἐνεργὴς καὶ τομώτερος ὑπὲρ πᾶσαν μάχαιραν δίστομον καὶ διϊκνούμενος ἄχρι μερισμοῦ ψυχῆ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ρμῶν τε καὶ μυελῶν, καὶ κριτικὸς ἐνθυμήσεων καὶ ἐννοιῶν καρδίας·
13 καὶ οὐκ ἔστιν κτίσις ἀφανὴς ἐνώπιον αὐτοῦ, πάντα δὲ γυμνὰ καὶ τετραχηλισμένα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αὐτοῦ, πρὸς ὃν ἡμῖν ὁ λόγος.
* 본문해설
1. 놀라운 말씀의 능력(12~13절)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힘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선(양쪽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합니다(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숨은 의도)을 밝혀냅니다(드러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 '하나님의 말씀'은 앞에서 인용된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키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 말씀 전체를 가리킨다.
- 혼과 영(12절) :
‘혼’은 우리의 육신의 목숨이나 생명을 말하고, ‘영’은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곳, 하나님과 접촉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경우처럼 ‘혼과 영’이라고 말할 때에는, ‘혼’은 정신이나 감정의 자리를 말하고, ‘영’은 신앙의 자리를 말합니다.
- 좌우에 날선 검(12절) :
양쪽에 날이 선 검으로 로마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길이 60~65cm, 폭 5cm의 검입니다. 이 검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불과 5cm만 찔러도 상대방에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에 힘 들이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병법(兵法)으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여 대 제국을 이룹니다.
-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12절) :
여기에서 ‘쪼갠다’는 것은 ‘관통한다’, ‘둘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은 불과 5cm정도만 찌를 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예 사람의 몸을 관통하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스펀치에 물이 스며들 듯,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사람의 세포에까지 스며드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엡 6: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is living and powerful'라는 표현은 그 '말씀'이 '인격성'과 '역동성'을 지녀서 행위를 동반함을 암사한다. 즉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이들에게는 경고와 심판을 행하게 되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약속된 말씀을 성취케 하는 말씀이다.
*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 세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수신자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을 지닌 말씀으로서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안식과 진노를 행한다.
그 말씀은 '검'과 같아서 하나님의 음성에 계속 불순종할 때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살의 말씀에 거역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아말렉과 가나안인들의 “검 mavcairan 마카이란, sword”에 패배(敗北)하여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민 14:43-45).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심성에 내재하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악독(롬 1:29) 등의 온갖 죄악을 예리하게 심판하는 '검'이 된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혼과 영 ψυχῆς καὶ πνεύματο" 프쉬케스 카이 프뉴마토스, soul and spirit”, “관절과 골수 "ἁρμῶν τε καὶ μυελῶν" 하르몬 테 카이 뮈엘론, the joints and marrow”는 인간의 구조로 명명되는 '삼분법'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인간 정신의 전체적인 본성을 말하는 수사학적(修辭學的)인 표현이다.(전인적)
한편 “찔러 - '꿰뚫다'라는 의미로 인간의 영혼과 육을 분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꿰뚫어 잠재된 의식까지 들춰내는 능력이 있음을 시사한다.<전인적>
또한 “감찰하나, κριτικὸς" 크리티코스, is a discerner ”는 법정용어로서 '판단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찰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에 따라 안식과 진노를 행함을 시사한다(시 95:11).
<Gladius 로마시대의 검>
양쪽에 날이 선 검은 로마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검. 폼페이에서 발견된 글라디우스 검은 길이 60~65cm, 폭 5cm, 무게 700그람 정도로, 그 끝이 짧은 삼각형이다.
로마의 군병들은 방패의 뒤에서 상대의 가슴이나 복부를 이 검으로 찔렀다. 상대의 갑옷과 뼈를 끊으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이 검은 불과 5cm만 찔러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힘 들이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는 이 병법으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여 대 제국을 이루었고 로마의 이 검은 로마제국의 힘을 상징한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보다도 강력하시다.
*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 된 말씀들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 '지으신 것'이란 '창조 행위' 혹은 '물질적인 우주'와 '영적인 존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고후 5:17; 갈 6:15)가리킨다.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ἀφανὴς" 아파네스, that is not manifest'는 본문에만 사용된 형용사로서 부정 접두어 'a'아 와 '보이다 φiνoς 파이노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동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마음과 뜻을 감찰하시는 능력이 있어(12절) 그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남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모든 창조물들이 벗어날 수 없다는 이러한 사상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상식적인 사실이었다.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 πρὸς ὃν ἡμῖν " 프로스 혼 헤민 호 로고스, to whom we must give account”는 동사가 없는 구문으로 해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에게'라는 의미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시사한다.
한편 “드러나느니라 τετραχηλισμενα , 테트라켈리스메나, opened”는 “목을 뒤로 젖히다τραχηλὸς " 트라켈로스”라는 의미로 레슬링 선수가 상대방의 목을 감아 뒤로 젖히는 행위나 짐승을 잡기 위해 뒷덜미를 젖혀서 목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된 표현이다.
-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낸다(13절) :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낸다’의 원어의 뜻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레슬링 선수가 상대의 목과 머리를 조여 꼼짝 못하게 하는 것.
2) 죄수를 처형할 때 창피함에 얼굴을 숙이지 못하도록 턱 밑을 치켜 올릴 때 쓰는 말
여기에서는 2)번의 뜻으로,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어떤 것도 은폐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저자는 12절과 본절의 문맥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 드러난다는 것은(12절) 하나님 자신 앞에 드러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4:13)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중에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판단하실(심판하실) 이의 눈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 있다.
<결론>
3장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
4.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 “힘쓸지니 σπουδασωμεν, 스푸다소, Let us labour”는 '재촉하다', '열심히 노력하다'라는 의미로 의지를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의지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믿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 "두려워할지니 φοβηθωμεν, 포베도멘, fear"는 헬라어 본문에서 첫머리에 위치하여 그 의미가 강조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방심하지 않고 끝까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11절; 3:12).
“약속 επαγγελιας" 에팡겔리아스, a promise”이라 함은 '안식'에 대한 약속을 말한다. 출애굽한 제1세대는 죽었으나 제2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측면에서 안식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저자는 지역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약속의 성취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안식은 그들의 불순종으로 이행되지 않았으나 그 약속은 변치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에게 계속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되었다(1:14; 6:12,17; 9:15).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4: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
예화 : 사형수의 생명을 살린 성경
도모다까 시모지는 사형수였습니다. 그는 북해도 탄광에서 일을 했습니다.
일하는 일수만큼 생명이 연장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하루는 3,000리나 떨어진 곳에 계시는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면회를 오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늙으신 어머니에게 왜 오셨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어머니는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보자기를 놓아두고 가셨습니다.
보자기를 풀어 보니 성경책이 나왔습니다.
감옥에 있던 다른 죄수들은 그것을 담배 말이로 사용하려고 한 장씩 찢어 갔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도모다까 시모지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죽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에 감동이 오자 아예 손에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탄광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소란스런 동료들을
피해 성경책을 읽으러 나갔습니다.
그 순간, 갱도가 무너졌습니다.
도모다까 시모지를 제외한 모든 동료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살렸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모범수로 출옥한 후 그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중 고등학교와 고아원 여섯 개를 설립하고 일본 교육자
대상을 받으며 사회사업가로서 일생 동안 사역했습니다.
사형수인 아들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의 눈물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예화 글: 「내면세계의 치유」/ 정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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