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
히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말씀을 청종해야 하는 이유(12-13)
*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요 1:1-3).
또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성과 생명력과 역동성이 있다.
그 말씀은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말씀이기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수행한다.
*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어떤 칼보다 예리한 양날가진 검과 같아서 인간의 영혼 뿐만아니라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까지도 가장 효과적으로 역사하신다.
*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혼과 영', '관절과 골수'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모든 것 즉 전인적인 것을 말하며, '찌른다’(디이이크누메노스')-'꿰뚫는다', 쪼갠다- 관통한다는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외적인 모든 뿐만아니라 잠재하고 있는 내면까지 들어가서 꿰뚫고 관통하시셔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고 회개하게 하고, 영적인 모든 질병들을 수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 '감찰한다'('크리티코스')는 말은 법정 용어로서 ' 판단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판단하며, 그 행위의 깊숙한 동기까지도 판단하여 공의를 시행한다.
하나님은 매순간 순간 인간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고 판단하신다.(렘 17:9-10). 하나님의 저울....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검과 같은 역동성이 있으며, 마음과 뜻을 감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무도 피할 수 아무 것도 없다(필연성). 그분이 창조한 모든것, 물질적인 것 뿐만아니라 심적인 것과 영적인 것, 나아가 전 우주적인 모든 것이 ‘그분 앞에, 말씀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필연적으로 아주 명백하고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아멘으로" 화합해야 한다.
2. 예수는 큰 대제사장
히 4: 14-16<본문>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참고: 대제사장의 역할 레위기 16장 >
대제사장은 1년에 1번 욤 키푸르(Yom Kippur), 즉 속죄일에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서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향을 피우고 희생 제물인 짐승의 피를 뿌리며 속죄하는 것었다.
속죄란 "덮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소를 시은좌라고 한다. 모든 죄를 피로 덮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최초의 대제사장은 모세의 형 아론이었으며 대제사장직은 그의 후손들에게 세습되었다.
- 대속죄일(레 16장 1~34절) :
16장은 대제사장이 7월 10일(이스라엘력으로 신년 10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온 백성이 부지중에 저지른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하는 속죄제사를 드린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역할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받게 하는 일을 한다.
-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레 16: 2절) :
그러나 아무리 대제사장일지라도 속죄소(지성소) 안에는 대속죄일 하루만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또한 죄인이므로 먼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난후 백성들을 위해 제사드릴수 있다.
그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는 죄없으신 분으로 자신이 친히 속죄제물이 되셨다.
구약의 불완전한 제물과 달리 단번에 드리셨으나 그 효력은 영원하시다(히 9장).
*히브리서 5장에서 본격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해 아론과 비교하여 진술하고 있다.
*대제사장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5장에서..다루게 될것이다.
▣ 큰 대제사장 그리스도 4: 14-16
본문은 그리스도의 신적 사역(4:14-10:)에 대한 도입부로서 그리스도가 구약의 레위 제사장들과는 구별되는 ‘큰 대제사장’ 임을 강조하고 있다. 2:17-3:1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분은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다 체험하셨으므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을 다 아신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와 요새가 되실 수 있다.
성 경: [히4:14]
ꃨ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를 '큰 대제사장'(*, 아르키에레아 메간)으로 지칭하고 있다. '큰 대제사장'은 '대제사장'에 '큰'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으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우월함을 나타낸다(Lane).
ꃨ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 예수의 우월성은 '승천하신 자'라는 초월적인 표현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승천하신 자'의 헬라어 '디엘렐뤼도타 투스 우라누스'(*)에서 '디엘렐뤼도타'는 '...통하여 지나가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디에르코마이'(*)의 완료 능동태 분사로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뜻보다는 하늘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지고(至高)한곳으로 가셨음을 뜻한다(Morris).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은 이 땅의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존재에서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시므로 그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사역의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다(Hewitt). 한편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는 예수께서 인간이시며 동시에 신성을 소유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유한성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행하신 모든 행위와 약속이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것임을 시사한다(Hewitt).
ꃨ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 앞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초월성, 더 나아가 그의 하나님의 아들되신 신성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근거가 된다. 여기서 '믿는 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기아스'(*)는 '고백'을 뜻하는 말인데 이 고백의 내용은 당시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익히 알고있는 공식화된 고백으로 본절 상반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가리킨다(Lane, Neufeld, Bornkamm). 한편 '굳게 잡을지어다'의 헬라어 '크라토멘'(*)은 '단단히 쥐다' 혹은 '들러붙다'의 뜻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끝까지 지키라는 권고이다.
성 경: [히4:15]
ꃨ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 '연약함'은 죄의 유혹에 대한 인간의 연약성뿐만 이니라 인간이 지닌 모든 한계성을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Hewitt). 한편 '체휼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파데사이'(*)는 '함께 수난당하다'라는 의미의 '쉼파스코'(*)에서 파생된 말로서 '동정하다'(to sympathize, NIV)라는 의미이다. '쉼파데사이'는 단순히 감정을 공유한다는 의미로서의 '동정'(同情)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의 행위를 내포한다(10:34;13:23;4Macc 4:25, Lane).
저자는 '아니하는...아니요'(*, 우...메)라는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예수님 자신이 인간과 동일하게 연약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체휼하시는 예수'에 대한 강조는 예수께서 인간과 동일하게 공감하시는 분으로서 능히 인간을 도우실 수 있음을 나타낸다(Schenk). 예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인간성에 참여하셨기 때문이다(2:17,18).
ꃨ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이것은 예수께서도 인간과 똑같이 유혹을 받아 범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Lane, Cullmann) 예수께서 인간과 같이 되셔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경험하셨음을 나타낸다(Bruce,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인간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한편 '죄가 없으시니라'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두가지 견해가 나타난다
. (1)혹자는 본문의 내용 즉 예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점을 부인한다(Buchanan, Williamson). 이들은 '예수께서 본장에서 대제사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속죄제를 드리는 것처럼(5:3), 예수도 대제사장으로서 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통해서 순종해야 함을 알고 모델이 되셨다'(5:8)고 주장한다.
(2)혹자는 본문의 표현 그대로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범죄하시지 않았다고 주장한다(Hewitt, Lane, Morris, Bruce).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앞에서 언급된 '모든 일에 한결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드 호모이오테타'(*)는 '같은 방식으로'라는 뜻으로 동일성 보다는 유사성 내지는 구별성을 나타낸다(Lane). 예수께서는 인간이셨으나 인간과는 달리 흠이 없으시며(9:14) 지상의 성막에서 제사드리는 대제사장과 같이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는 분이었다(7:27). 따라서 본절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인간들처럼 시험에 넘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극복하심으로 범죄하지 않으셨으며 시험을 인간과 동일하게 받으심으로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시험의 어려움을 낱낱이 아심을 나타낸다.
성 경: [히4:16]
ꃨ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 '때를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이론'(*)은 '좋은' 혹은 '옳게'를 뜻하는'유'(*)와 '시기'를 뜻하는 '카이로스'(*)가 합쳐진 합성어로서 '적절한 시기'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불완전하여 수시로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때를 아실 뿐만 아니라 시기 적절하게 베풀어주심을 나타낸다.
ꃨ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보좌'의 헬라어 '드로노'(*)는 '왕의 보좌'를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나 '그리스도의 보좌'(1:3,8)를 나타낸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로 사용되었다. 이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이 현존해 계시는 장소로서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 장소인 성막 안의 속죄소와 연관된다(9:5;출25:21,Bruce).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안에 있는 속죄소에 나아갈 수 있었으며 속죄의 행위가 받아들여졌을 때 지성소 안에 있는 그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소(施恩所)가 되었다(9:5;레16:2-34). 그러나 본절에서 저자가 말하는 '은혜의 보좌'는 더이상 모세가 전해준 율법적인 속죄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우편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대제사장으로 좌정해 계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있다.
▣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14-16)
우리는 창조주 그리스도와 그 말씀 앞에 설 때에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실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다고 외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가리켜 주는 말이다.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이나 멜기세덱은 대제사장이라고 불리웠지만, “큰 대제사장”이라고 불리운 적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그가 인류의 모든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구약의 모든 대제사장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모형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탁월하신 대제사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또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을 “승천하신 자”라고 소개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나타내고 있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은 이 땅의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
또한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하나님 아들 예수”시이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자기 몸으로 인류의 대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 성소에서
인류를 위해 중보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자기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초월성, 그리고 신성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할“ 근거가 된다.
'굳게 잡으라'('크라토멘')는 말은 '단단히 쥐다' 혹은 '들러붙다'의 말로 서
이 말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끝까지 지키라는 것을 권고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 하지 않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탁월하시고, 초월하여 계시며, 신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유혹에 넘어질 수 있는 연약성과, 인간이 지닌 모든 한계성을 체휼하셨다.
'체휼하다'('쉼파데사이')는 말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아니하는...아니요'라는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예수님 자신이 인간과 동일하게 연약함을 느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인간성에 참여하셨기 때문이다(2:17,18). 주님께서는 죄에서 떠나 계신 분이시지만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이 말은 예수께서도 인간이 되셔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경험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인간들을 돕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연약성을 이해해야만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인간과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셨기 때문에,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시험의 어려움을 알고 또 능히 도울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16).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하여 자기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 긍휼의 뜻: 헬라어 ‘엘레에이’ 자비, 사랑’이라는 뜻,
히브리어 ‘헤세드’와 ‘동정’이라는 뜻으로 주인과 종, 친척들간의 관계 또는
하나님의 인간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가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즉 ‘헤세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과 사역을 가리킨다(요 3:16).
또한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야만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은혜(카리스) 의 뜻 : 값없이 주는 선물이란 뜻으로 두가지가 있다.
일반적인 은혜-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 햇빛, 물 공기 등 주시는 것.
특별은혜 - 일반은혜 뿐아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신 은혜이다.
* '때를 따라'라는 말은 '적절한 시기'를 의미한다- 가장 좋을때에 가장 좋은것을 베푸시는 은혜이다.
예수님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신다(요 10:10). 이것은 영적인 것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요 1:12).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불완전하여 수시로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때를 따라 적절한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롬 7:15-25) .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때를 아시며,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위해 시기 적절한 도움을 베풀어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이며 성막 안에 있는 속죄소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곳에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이곳은 ”시은소“(은혜를 베푸는 장소)라고 불리워졌다.
그러나 본절에서 저자가 말하는 '은혜의 보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킨다.
땅에 있는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이요, 그림자요, 예표이다.
"히브리서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 8: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구약의 성도들은 이 성소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때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1차 속죄소, 시은소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언제든지 때를 따라 도움을 얻기 위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우리에게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성을 가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 갈수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큰 대제사장은 큰 위로와 힘을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하시고 탁월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히 2:17-18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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