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시작된 땅,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인류 최초로 국가가 등장한 곳은 메소포타미아였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은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모여든 사람들은 힘을 합쳐 강의 홍수를 조절하며 농사를 지었다. 권력과 도시가 생기고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면서 강력한 국가가 탄생하였다. 이런 오랜 이야기들은 신화가 되어 문자로 기록되었다.
■ 신화와 역사의 만남
옛날 옛적 지위가 낮은 작은 신들은 노동을 하고, 큰 신들은 그들의 일을 지켜보며 편히 쉬고 있었다. 홍수를 방지하고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작은 신들은 강과 수로 밑바닥에 쌓인 진흙을 파내야만 하였다. 노동이 점점 힘들어지자, 신들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마침내 작은 신들은 노동을 감당할 수 없다며 큰 신들에게 대항하였다. 지혜의 신 엔키는 지하수의 여신 남무에게 진흙에 신의 피를 섞어 신들의 노역을 대신할 사람을 만들라고 알려 주었다.
- 수메르의 인간 창조 신화 -
서기관(書記官)은 진흙으로 만든 넓적한 판에 신화를 기록한 후 허리를 폈다.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진흙판을 올려놓았다. 창 밖으로 신들을 대신해서 수로를 파고 댐을 쌓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들도 마다할 만큼 힘든 일이야."
서기관이 진흙판 위에 힘주어 쓰고 있는 글자는 쐐기 문자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기호에서 시작되었으나, 오랜 시간을 거쳐 복잡한 내용까지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 발전하였다. 서기관들은 신화나 법률에서 수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약 5,000년 전에 문자를 사용하는 역사 시대가 열렸다.
수메르 인의 도시
유프라테스 강이 수천 년간 범람을 거듭하며 만들어 놓은 비옥한 땅, 메소포타미아. 이 지역에 수메르 인이 들어와 산 것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이다. 이 곳의 흙은 농사짓는 데 적당하였고, 유프라테스 강은 사람과 가축이 마실 물을 제공하였다. 수메르 인들은 긴 수로를 파고 강물을 끌어들여 밭에 물을 댔다.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 살게 되면서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은 읍으로, 읍은 도시로 발전해 나갔다.
① 진흙판 - 이 지역에 흔한 진흙으로 판을 만들어 뾰족한 막대기로 글자를 새겼다. 사진은 니푸르의 도시 지도가 새겨진 기원전 1300년경의 진흙판. 수로를 그려 놓은 것이 보인다.
② 수로 흔적 - 현재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남아 있는 물길의 흔적. 수메르 인은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였고, 곳곳에 물길을 내어 도시와 주변의 농경지에 물을 댔다.
③ 지구라트 - 수메르 인들은 도시 한가운데에 인공 언덕을 조성하고 그 위에 신전을 쌓아 위엄 있게 보이도록 하였다. 신전 역시 일반 집들처럼 흙벽돌로 만들었는데, 그림에도 진흙에 짚과 물을 섞어 반죽한 뒤, 네모난 틀에 찍어 벽돌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벽돌을 햇볕에 말리면 시간이 지나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훌륭한 건축 재료가 되었다.
④ 흙벽돌집 - 수로를 관리하거나 농사를 짓는 데에는 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모여 살게 되었다. 사진은 현재 이란 코르데스탄 지역의 한 마을이다. 흙벽돌은 그 때나 지금이나 집짓는 재료로 중요하다.
■ 도시 국가의 탄생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의 땅)는 농사짓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것도 물과 먹을거리가 풍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는 끊임없이 수로와 운하를 관리하는 관개 사업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관개 사업을 게을리하면, 두 강은 넘쳐흘러 모든 도시를 삼켜 버릴 것이다.
하지만 관개 사업 덕분에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어 직접 농사짓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장사를 하거나 청동으로 무기를 만드는 사람, 전쟁을 담당하는 전사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는 도시의 신을 모시는 사제와 도시를 지배하는 왕도 나타났다. 사제나 전사, 왕은 경제력과 권력을 독차지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였다. 이렇게 도시는 점차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이것을 도시 국가라고 한다.
■ 전쟁으로 성장하는 나라들
기원전 3200년경부터 수메르에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성장하였다. 도시 국가의 통치자들은 관개 사업을 위해 서로 손을 잡기도 하였지만, 다른 도시의 재산을 탐내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수메르 인들이 귀하게 여기는 보석인 청금석을 탐낸 우루크와 아라타의 전쟁, 건축 재료인 진흙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우루크와 키시의 전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청동제 무기와 신의 뜻을 앞세운 전쟁을 통해, 작은 도시는 점점 큰 도시에 통합되어 갔다. 키시나 우루크, 라가시 등은 이웃 도시를 지배하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기원전 2350년경에는 아카드의 사르곤 1세가 수메르의 모든 도시 국가를 정복하여 제국을 형성하였다. 왕의 지배 영역이 하나 또는 몇 개의 도시를 넘어 넓은 지역에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카드 왕국의 지배는 오래 가지 못하였고, 수메르는 여러 도시 국가로 나뉘었다. 기원전 2112년경 우르가 이들을 다시 굴복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할 때까지, 이들은 각자의 신을 믿으며 서로 경쟁하였다.
우르의 스탠더드(깃발)우르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2500년경의 작품이다. 나무판 위에 유리와 조개 껍데기로 장식한 이 작품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바퀴 달린 전차를 모는 지휘관, 행진하는 병사들, 포로로 끌려오는 적 등이 보인다. 한쪽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가 벌어졌다. 왕과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축배를 들고 있다. 그 아래에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 들어오고 있다. 커다란 소와 숫양을 끌고 오는 사람, 양털을 등에 진 사람도 보인다.
통합으로 가는 메소포타미아두 강이 흘러드는 지역에 자리 잡은 우르 같은 도시는 기원전 3000년경에 이미 주변 도시를 통합한 도시 국가였다. 기원전 2350년경에 지역 전체를 통합한 아카드는 남쪽으로 페르시아 만에서 서쪽으로 지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였다. 아카드는 도량형을 정하고 중앙 집권화를 꾀하는 등 진정한 제국 통합을 시도하였다. 우르 제국과 바빌로니아 제국은 이러한 통합 노력을 넘겨받았다. 법전을 정비하고 공포한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 인류 최초의 법전
우르 제국의 왕 우르 남무(재위 기원전 2050~?)는 정복 사업을 끝낸 후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자나 저울 같은 도량형을 통일하고 경제 질서를 바로잡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여 부자에게 팔려 가지 않도록 하였다. 곳곳에 학교가 들어서고 문학이 발달하고 백과 사전이 편찬되는 등, 수메르 문명이 전성기를 이룬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특히 우르 남무가 만든 법전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 된 법전이다. 우르 남무의 법전은 훗날 수메르 문명의 뒤를 이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으로 계승되었다.
함무라비 왕(재위 기원전 1792~기원전 1750)은 수도 바빌론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정복지에 총독을 파견하는 등, 중앙 집권적인 정치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전의 법전을 집대성하여 함무라비 법전을 제정하고 공용어를 정하는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정치·문화적 통일을 꾀하였다.
함무라비 왕의 돌비석'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돌비석이다. 함무라비 왕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학대하는 일이 없고, 피붙이가 없는 여자 아이와 과부에게 정의를 가져다 주기 위해" 법을 정비하였다. 또한 돌비석을 왕국 곳곳에 세워 모든 사람이 법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쐐기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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