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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 마음 비움 』웨인맥 지음

by 은총가득 2020. 4. 19.


               『 마음 비움

                                           웨인맥 지음


  자아로 마음을 채우는 것은 교만이다. 자아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겸손이다.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워라. 하나님이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내가 차지하지 말라. 겸손하라.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1장 마음 비웠는가?

2장 하나님 앞에서 마음 비움

3장 사람 앞에서 마음 비움

4장 교만함으로 가득 채운 어리석은 마음

5장 어떻게 마음을 비워 진정한 겸손에 이를 것인가?

6장 마음 비움의 풍요한 삶

 


 

1장 마음 비웠는가?

겸손의 골짜기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교만이라는 죄를 무너뜨리시고 경건한 겸손의 성품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로 보내셔서 우리 마음을 비우게 하시는 사건과 상황들을 말한다.

 

겸손의 중요성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 성경이 자주 우리에게 스스로 낮추어 겸손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둘째, 성경이 교만을 제해버리도록 명하면서, 교만에 대해서 정말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해주기 때문이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16:5). 셋째,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리라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겸손의 골짜기로 내려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겸손의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성경이 겸손의 성품을 너무나 중요하게 가르치신다는 사실이 바로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겸손한 성품을 아주 높이 평가하시며, 교만한 마음은 멸시하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둘째, 인간은 교만으로 흐르는 성향이 대단히 강해서 겸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가 낮아지도록 그런 환경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자라게 하시기 위해서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그 시련들을 통해서 우리 안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1:4)인내의 성품을 만들기 원하신다.

 

다섯째, 겸손의 골짜기야말로 모든 상황에서 충분한 하나님의 족한 은혜만을 더욱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고후 12:7-10).

 

겸손의 정의

첫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과 비교할 때 자신이 천성적으로 너무나 부족하며, 아무런 가치도 없는 미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의식하는 사람이다.


둘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과 비교할 때 자신이 도덕적으로 너무나 보잘

것없는 존재이며 죄로 가득 찬 죄인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하는 사람이다.


셋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넷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최고의 존귀와 찬양과 권한과 특권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이란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자신의 아주 큰 특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나는 내 자신이 교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교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절반도 모른다. -로버트 맥체인-

 

2장 하나님 앞에서 마음 비움


마음 비움의 10가지 모습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11)


 그렇다면 마음 비움의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첫째, 참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미천한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죄가 많은지 진지하게 고백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둘째, 참된 겸손은 자신의 마음을 부인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모든 일에 대한 지혜와 가르침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의지하고 나아가서 구한다. 사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믿지 않는다.


셋째, 참된 겸손은 우리 자신의 선한 성품이나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영광도 그것을 우리가 취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일의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넷째,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응답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섯째, 참된 겸손은 비록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 뜻에 전적으로 굴복하고 내어드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섯째, 참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곱째, 참된 겸손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기뻐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덟째, 참된 겸손은 언제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홉째, 겸손한 사람은 자기에게는 아무 자격이 없지만 어떤 입장에서라도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을 특권으로 여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열째, 참된 겸손은 하나님께서 무한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위대한 지혜에 따라서 우리에게 알리기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미 우리에게 정확히 다 말씀해주셨으며, 그 외에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만일 우리에게 진정으로 겸손한 모습이 나타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우리보다 무한히 더 뛰어나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겸손한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만 한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는 찾아내고 해결해야만 하는 교만의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한 부분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만에서 돌이켜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나라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는 분이시다(48:11)그런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일에 교만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기 바란다.

 

 

3장 사람 앞에서 마음 비움


자부심, 자랑, 교만이라는 죄악

세상 사람들은 자부심(pride, 즉 교만)을 칭찬받을 만한 성품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많은 경건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교만이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제거해야 할 악하고 끔찍한 죄임을 분명히 말한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의 인생에 교만이 차지하는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믿게 된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이라는 죄를 지적하시며 깨닫게 해주실 때에는 즉각 모든 일을 멈추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회개하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우리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님께 우리의 인생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마음을 비운 겸손한 사람의 모습

첫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이기적인 야망을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로부터 혹은 그 사람들보다 뛰어난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을 품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요한복음 1장의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보라. 세례 요한은 이기적인 야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명예나 영광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요한의 인생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리는 인생이었다. 우리도 바로 이것을 우리의 인생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화려하게 꾸며서 무언가 과시하는 듯 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고린도전서 134,5절을 강해한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일시적인 일이든 영적인 문제이든 간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 해도 그것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또한 겸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앞장서서 그 재능을 사람들에게 보이거나 나타내려고 하거나 자신에게 이런 점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사람들에게 그런 체험을 알리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겸손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는 마음으로 자신이 뛰어난 성인이라거나 특별히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가장하지 않을 것이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한 겸손한 사람은 만일 자기가 어떤 일을 특별히 잘하거나 어떤 점에서 아주 어렵거나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힘든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일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외식적인 일을 하지는 않는다.


또 자기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도록 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모든 일을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위해 한다는 책망을 듣던 바리새인들처럼(23:5)행동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진지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했다면 은밀히 보시는 위대하신 분께서 자기가 하는 일을 보시며, 앞으로 칭찬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셋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만하지 않으며 주제 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9)라고 말하는 바울 같은 사람이다. 이뿐 아니라 바울은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3:8)로 보고 있다. 바울은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만하거나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넷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논쟁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겸손한 사람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시며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으려고 한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베드로의 말을 그대로 이루셨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벧전 3:8,9)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욕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겸손한 사람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요, 또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람이다.

 

다섯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집이 세거나 완고하게 굴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자기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심지어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에 교만을 품고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즉시 벌떡 일어나 변호하려고 하든지 보복하게 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기꺼이 남이 주는 상처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필요하다면 더 받으려는 마음도 가진다.

 

여섯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이 겸손의 개념은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권위자나 지도자들로 세우신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들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권위자들의 권위를 훼손하거나 불신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에게 복종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곱째,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성경으로부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건설적인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다윗은 시편 141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141:5) 참된 겸손의 지표는 우리가 잘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책망과 교정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배우기 원하는 마음이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책망하고 지적하여 바른 길을 가도록 해주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교만 대() 겸손

첫째, 교만과 겸손은 각각 우리 자신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평가한다. 둘째, 교만과 겸손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평가한다. 셋째, 교만과 겸손은 그 결과가 각각 엄청나게 다르다.

 

첫째/ 자신에 대한 평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있어서도 교만은 평가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맞춰진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필요, 자신의 욕구, 자신의 명예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기대하지만 자신의 결점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교만한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낸다.


둘째/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혹 실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결코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지적받거나 바로잡는 일, 새롭게 배우기를 거부하며 그런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러나 겸손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경건한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들으려고 한다. 겸손한 사람들은 누군가 바로잡아주기를 구하며, 배우고 싶어 하고, 잘못했을 때는 곧바로 시인한다.


셋째/ 교만과 겸손의 결과= 교만의 여러 결과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절제하지 못하고 쏘아붙이고 채찍질 하듯 휘두르며 공격하는 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4장 교만함으로 가득 채운 어리석은 마음


존 뉴턴은 교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당신에게 겸손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 당신이 그 충고가 얼마나 함당한 충고인지를 인정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품이 변하지 않고 언제나 이런 상태로 있다면, 인기와 교만 사이에는 마치 불과 화약 같은 관계가 있다. 화약이란 최소한 물에 젖어 있지 않으면 불에 닿기만 해도 반드시 폭발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만에 대해 일러주시는 말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서 이 교만이라는 덫에 절대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

 

교만의 어리석음 : 하나님의 관점

첫째, 우리가 교만한 생각을 갖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는 교만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때문이다. 토마스 왓슨은 이렇게 말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쏘시는 화살의 과녁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쏘시는 화살은 빗나가는 경우가 없다.”

   

둘째,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갖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종종 교만해진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권력과 권세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언제든지 그 권력과 권세를 가져가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느부갓네살 왕의 인생으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우리가 어떤 높은 지위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의 장중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한순간에 도로 다 가져가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은사와 재능에 대해서 종종 교만해진다.

 

농구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농구를 잘한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은 뽐내며 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자동차 정비사라면 자신이 자동차 수리를 잘할 줄 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며, 탁월한 요리사라면 주방에서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은사나 재능을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 사실을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졸 수 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연명해가는 사람이 자기가 얼마나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자랑하는 모습을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겠는가?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군요. 당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긴 합니다. 그러나 이게 보이시나요? 당신은 단지 이 기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숨이 붙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 심지어 우리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4장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고전 4:7)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일이 아닌 어떤 것을 마치 우리가 무엇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다면 그 역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존 번연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울리는 소리를 내는 심벌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숙련된 심벌즈 연주자가 심벌즈를 연주하며 듣는 이들이 모두 흥에 겨워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훌륭한 연주자는 심벌지로 그렇게 아름답고 가슴에 열정이 피어나게 하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심벌즈에는 생명이 없다. 음악은 악기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악기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잘 훈련된 연주자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교만하게 영적인 은사들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교만이 얼마나 음흉하고 방심할 수 없는 죄인지 깨닫게 되어 더 놀랄 수밖에 없다. 목사도 자신이 방금 마친 겸손에 대한 설교를 자랑스러워하며 교만해질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드리는 헌금 액수에 대해서도 교만한 마음을 품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만도 싫어하신다. 우리는 그런 무수한 교만과 싸워야만 한다.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가 계속 겸손한 성품을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정말 가증스러운 자기기만입니다. 그러나 똥으로 만든 거름더미 위에서 잡풀이 무성해지듯이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죄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스스로 우리 자신이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는 망상이나 품고 있으면서, 우리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나 터가 되기라도 하는 듯이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주님은 그런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사실은 우리가 어떤 일에서 제외되자마자 불안해하며 '나를 빼놓고 그 일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한번 보자라고 되뇌는 우리 자신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마차 바퀴에 파리 한 마리기 앉아서 내가 없으면 어떻게 편지가 배달되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주님의 일을 방해하다가 그 일이 중단되도록 하지 말고 조용히 무덤에 누워 있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잠시나마 병으로 고통스럽게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화를 내고 불안해하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병약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우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가장 쓸모 있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상항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없어도 쉽게 일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실제적인 교훈임을 깨닫는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어려운 훈련의 과정도 쉽게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연하건대, 우리가 낮은 자리로 내려가고 오직 주님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수 되었던 우리의 망상

바울은 로마서 510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전에는 우리가 어떤 상태였으며 그리고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신다면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대단히 핵심적인 단어로 설명해준다. 바울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다고 말한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반대하는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3:18) 다시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구원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다. 우리 눈에 하나님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했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친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반대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을 반대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전에 우리는 행동으로하나님을 반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반대하여 다른 것을 예배하며살았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도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때에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았고 사랑하지도 않았다. 가장 선하다는 우리의 행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온갖 죄로 더러워진 낡은 걸레일 뿐이다. 그리스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우리가 교만한 생각을 품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누리는 모든 축복은 전부 하나님께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죄뿐이다.

 

교만의 어리석음 : 교만의 결과

셋째, 우리가 교만한 생각을 갖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는 교만이 만들어내는 결과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만에 따르는 부작용, 혹은 결과는 무엇인가?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교만은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악한 행동을 하게 된다. 교만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리도록 만든다. 교만은 말로 범죄하게 만든다. 교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우리 자신의 생각만을 의지하게 만든다. 교만이 일으키는 나쁜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계시해주는 사실들을 보면 교만한 생각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넷째, 우리가 교만한 생각을 갖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는 교만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경의 내용들 때문이다. 우리가 아주 험한 산행을 계호기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길이 우리에게 초행이라면 우리는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상세한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 여행이다. 우리는 전혀 오차가 없는 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 지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섯째, 우리가 교만한 생각을 갖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는 교만이란 악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교만의 어리석음 :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

여섯째, 우리가 교만한 생각을 갖는 것이 어리석은 이유는 예수님도 친히 자신을 겸손히 낮춘 분이셨기 때문이다. 교만을 그토록 위험하다고 하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 안에 교만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더 낫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만한 사람들이 보통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을 내서 우리 마음에 교만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성찰해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경건한 성품을 방해하는 이 끔찍한 원수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상과 사탄과 심지어 우리 자신의 마음의 흐름이라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결심을 해야만 한다.

 

5장 어떻게 마음을 비워 진정한 겸손에 이를 것인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해야 교만을 줄이고 겸손한 성품을 개발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 마음에 교만을 줄여나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해주지 않으시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능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둘째, 동시에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가 교만해 지려는 마음의 성향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가상적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잘 말해준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상으로 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그 사람은 모든 교인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각인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이 받은 겸손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자랑스럽게 교회에 나왔다. 그는 자신이 겸손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공개적으로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그에게 수여했던 훈장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무엇인가? 겸손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겸손한 성품을 가졌다고 생각하자마자 그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순간 마음을 비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경건한 성품을 일구어 나갈 목적으로 일정한 연습과 훈련을 계속해나가야만 한다. 이번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겸손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에서 사용하시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참된 겸손의 성품을 함양하라 : 기초 작업

첫째, 참된 겸손에 이르는 길은 거듭남과 함께 시작된다.

 진정한 겸손은 먼저 성령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사역을 시작해나가시는 가운데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시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8:13)라고 기도하던 세리의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진정한 겸손의 성품을 개발하시기 위해 기본적으로 사용하시는 방편은 성령님이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겸손의 성품을 만들어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우리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다가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와 그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실 때마다 언제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며 바로잡아야 한다.

 

 

참된 겸손의 성품을 함양하라 : 정련하는 불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렵고 힘든 고난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킨 것처럼 그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토록 오랜 기간 내내 힘겨운 생활을 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때때로 우리를 광야에 거하게 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어려운 상황과 시간들을 보내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일어나도록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여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3) ,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달려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영적으로 더 성숙하고, 더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사역도 더 잘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책망하고 비판하는 방법으로 우리 속에 겸손의 성품을 다듬어가기도 하신다. 우리 속에 있는 교만은 우리가 부당하게 비판을 받을 때 더 확연히 드러난다.


 겸손한 마음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교만한 마음은 곧바로 자기를 변호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마땅히 받아야만 하는 솔직한 비판뿐 아니라 부당한 비판도 받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의 성품이 자라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심각한 낭패를 당하는 것도 허락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안에서 겸손의 성품이 자라기 원한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오해하여 잘못 전하는 일을 허락하실 때도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한 어떤 일들에 대해서 옳지 않은 동기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허락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문제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마음에 있는 교만의 깊이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겸손의 성품이 자라게 하신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실패 등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신다.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히 만들기 위해서 사탄의 방해와 공격도 사용하신다.

 

   ♣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점검하라

겸손한 성품을 개발하고 교만을 무너뜨리는 일은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일평생 지속해야 하는 일이다.


6장 마음 비움의 풍요한 삶


겸손의 길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겸손해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겸손의 마음으로 옷 입을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고 거룩한 분이시며, 그에 비한다면 우리는 본성적으로 성품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너무나 타락하여 미천하고 유한하며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해보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교만한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서 교만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깊이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낮추어야만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교만을 얼마나 미워하시며, 자신의 자녀들이 겸손한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셋째,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교만한 마음을 줄여나가기 원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어떻게 자신을 낮추셨는지 묵상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자신을 겸손히 낮추셨다. 예수님은 핍박과 학대를 받으시고 잔인하고 끔찍하게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일들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지 않으셨고, 그 끔찍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이토록 낮아지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어떤 것이라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어느 것 하나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우리 안에 겸손한 성품이 점점 더 많아지기 원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넷째, 교만을 줄이고 겸손의 성품이 자라게 하기 이해서는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다간 뛰어난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준 겸손한 성품과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섯째, 우리 안에서 겸손한 성품이 자라기 원한다면 우리는 거룩한 천사들이 보여준 겸손의 모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지금 천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겸손을 신중하게 묵상해보아야 한다. 천국에는 교만한 사람들이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요한계시록 4장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보여주는 진정한 겸손의 모습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우리도 그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우리가 좀 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기 원한다면 우리의 믿음과 성품과 행동과 또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섬김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미천하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심각하게 죄를 범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날마다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좀 더 겸손해지는 일에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이 번째, 우리가 그런 시간을 갖는 다면 남의 눈에서 티를 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우리 눈에 있는 들보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7:3).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는 자세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는 태도가 바로 교만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우리가 죄에 대해서 날마다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리 죄에 대해 변명하는 일을 중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한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환경이나 동료 탓, 상급 감독자나 재정 탓 그 밖에 다른 문제들을 탓하거나 변명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해야만 한다.

 

여덟째, 좀 더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홉째, 우리의 삶 가운데 교만을 줄이고 겸손을 늘여가기 위해서는 심판 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열째, 우리의 마음에 겸손한 성품이 자라게 하려면 사탕과 더러운 악령들의 교만함에 대해서 묵상해보아야 한다.


열한째, 우리가 마음에 교만한 성품을 줄이고 겸손한 성품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소유나 이루어낸 업적들이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열두째, 우리의 인생 가운데 교만을 줄이기 이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겪는 교만이라는 죄의 결과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열셋째, 우리는 겸손한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고, 거만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열넷째,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교만한 모습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생각해보라. 성령님이 당신 안에 겸손의 성품을 만들어주시고, 유지시켜주시기를 날마다 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살아가면서 경건한 성품을 추구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교만을 고백하고, 더 큰 겸손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진정한 겸손이라는 성품을 쉽게 혹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내고, 지속적으로 그 성품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점점 더 겸손한 성품으로 자라가는 것은 경건을 훈련해가는 과정이며 따라서 겸손의 성품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훈련하는 일에 전념해야만 한다.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한다. 그 길이 오래고 힘이 들더라도 바울이 했던 것처럼 다음과 같이 당신을 격려하고 싶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결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는 당신이 이것- 하나님의 진리-을 마음에 새겨서 당신의 마음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망하기 원하는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존귀해지기 원하는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15:33).



    

    < 겸손!  겸손!  겸손! >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주여!! 항상 겸손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