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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 십자가를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

by 은총가득 2020. 4. 19.


 

      『 십자가를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 지음


 

차례

 

머리글 :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PART onE 십자가와 하나님

1. 십자가의 필연성

2. 하나님의 구원 사역

3. 피의 언약

PART TOW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

4. 그리스도의 복종

5. 그리스도의 죽음

6. 죄인이 되신 그리스도

7. 십자가와 부활

PART THREE 십자가와 우리

8.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다

9. 십자가와 생명

10. 만복의 근원

11. 원수에 대한 승리

12. 십자가를 지는 삶

13. 죄란 무엇인가

14. 우리의 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5. 죄에서 해방된 삶

16. 복종의 긺

17. 제자의 길

18. 증인의 길



머리글 :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10:38)고 말씀하셨다. 또한 그분은 군중에게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9:23)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7)고 잘라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데 필요한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십자가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십자가는 신자의 경험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근본 요소, 즉 우리의 믿음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PART onE 십자가와 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좀더 폭 넓게 이해한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즉 나무 위에 그분의 손과 발이 못 박힌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십자가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반적인 구원 계획안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구원 사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1. 십자가의 필연성 - 꼭 십자가여야 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2:8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십자가의 필연성을 분명하게 언급하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고 다른 길은 없었다. 만일 다른 길이 있었더라면 분명 하나님이 그 길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여러 종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와 생명의 길이며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가 영생을 얻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이유다. 십자가가 인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밖에 없다.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때문이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내어 주시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모두 불가능하다. 이처럼 멸망이라는 용어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의 관점에서 우리의 죄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의 심각성을 상기시켜 주는 증거들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죄의 심각성,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반목, 값비싼 구원의 대가를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5:10)이라는 말씀이 믿기 어려운 복음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즉 그분과의 반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십자가뿐이다. 하나님이 직접 그와 같은 궁극적인 희생을 치르셨다.

 

2. 하나님의 구원 사역 - 하나님은 독생자의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성부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즉 하나님의 심중에 존재했던 구원의 목적과 계획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수하셔야 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죄 없으신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을 때 성부 하나님이 느끼셨을 심정을 한번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으시는 순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시는역사를 진행하셨다. 다시 말해, 성자 하나님이 복종을 통해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사역이 이루어졌다. 구원 사역은 이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던 성부 하나님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부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 이루어졌다.

 

3. 피의 언약 - 우리의 죄 때문에 그분의 모든 것이 필요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17:11)


히브리서 저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고 말 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매우 중요하다.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부 하나님은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진지하게 죄를 뉘우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많은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다고 해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의 피와 죽음을 요구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죄 사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17:11) "피는 그 생명인즉“(12:23)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우리로 죄사함을 얻어 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 그 생명을 바치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피를 요구하신 이유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을 원하셨다. 무엇이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는가? 바로 성자 하나님의 보혈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예수님이 보혈을 흘리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희망도, 의지할 것도 없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전의 계획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는 성자 하나님의 희생을 가리키는 예표였다. 매일, 일년 내내 이루어졌던 희생제사는 죄의 삯이 죽음이라는 것과,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아울러 구약 시대의 희생제사는 하나님이 죄의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하심으로써 선택하신 백성이 죄의 속박에서 영원히 풀려나 그분과 영원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될 것을 예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희생제사를 통해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 할 수 있었으며, 제사를 드릴 때마다 자신들의 죄와 속죄의 필요성을 의식했을 뿐 아니라,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내야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분의 위대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PART TOW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

 

4. 그리스도의 복종 - 십자가의 긴 그림자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5:30)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처음 언급하시기 전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아마 여러분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예수님이 어떤 기도를 하셨을지 궁금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

내 생각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홀로 대화를 나누실 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으셨을 것 같다. “아들아, 네가 기적을 행할 때마다 나는 네 제자들의 마음에 네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나는 네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르칠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 역사했다. 그들은 나의 역사를 통해 네가 그리스도,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아들아. 이제 때가 되었다. 십자가의 고난을 그들에게 서서히 밝히려무나.” 만일 예수님이 아버지여, 그들이 제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라고 기도하셨다면 지금 그들의 네게로 나아오고 있으니 직접 물어보거라.”는 대답을 들으셨을 것이 틀림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열두 제자가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다.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과 이해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확신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증거였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본격적으로 언급하셨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즉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6-17)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이렇듯 제자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그 점을 잘 알고 계셨다

 

권리 포기

기독교인의 삶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가고가 권리에 대한 집착이다. 하지만 기도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권리를 내세우기보다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해야 한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받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권리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성부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 전에 계획하신 구원을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시도록 기꺼이 헌신하셨다.

 

5. 그리스도의 죽음 - 깊고 끔찍한 어둠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22:44)


죽음의 의미

예수님이 육체의 죽음을 언급하실 때는 잠을 잔다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의 일이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군중에게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5:3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11:11)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육체의 죽음을 잠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죽음이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육체의 죽음은 죽음의 2차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진정한 죽음, 즉 궁극적인 죽음은 그것보다 훨씬 더 두렵고 끔찍한 차원의 죽음이다. 그러한 죽음과 비교하면 육체의 죽음은 단지 잠을 자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진정한 죽음을 당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8:51)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궁극적인 죽음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도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6)라고 말씀하셨다.

 

6. 죄인이 되신 그리스도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에게 하신 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6:10)


우리는 십자가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응징하셨다. 하나님은 십자가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게 하심으로써 죄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멀리하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를 바라봐야 하고, 그리스도처럼 죄를 미워해야 하며,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듯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7. 십자가와 부활 - 하나님의 완전한 약속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10:17-1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체포된 상태로 겟세마네를 떠나셨다. 그분은 부당한 고소와 심문을 거쳐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저항하지 않으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심문을 당하시는 동안 일체 침묵을 지키셨다고 기록한다.


침묵의 이유

우리는 대개 부당하게 고소당하면 결백을 주장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침묵을 지키셨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오직 한분,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시는 것으로 만족했다. 예수님은 구차하게 사람들 앞에서 결백을 주장하려 들지 않으셨다. 괜히 입만 아프게 그들의 놀음에 함께 놀아날 필요는 없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것만으로 족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친밀하고 자신 있는 관계를 맺고 계셨기 때문에 입을 굳게 다무셨다. 예수님은 성경의 메시지와 약속을 이해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셨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즉 두려운 고통의 순간이 지나간 후에는 약속된 부활의 영광이 뒤따를 것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우리가 희생을 감수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다. 십자가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다. 십자가 뒤에는 승리, 즉 부활의 능력을 통한 승리가 찾아온다. 이 짧은 인생이 끝나면 영원한 기쁨이 우리를 기다린다.


필연적인 결과

부활은 십자가 사건의 필연적인 결과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선고는 죽음이 아닌 생명이다.

 


 

     PART THREE 십자가와 우리


기독교인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던 갈보리 언덕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깨달음을 허락하시는 순간 우리는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를 알게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목적이자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한다. 이전에 머리로만 알았던 진리를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8.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다 - 우리의 십자가 체험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6:3).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우리의 삶에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 오직 살아 계신 주님만이 우리를 그 단계로 이끄실 수 있다. 십자가의 의미와 그것이 지닌 변화의 능력은 경험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리를 아는 것과 진리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십자가는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9. 십자가와 생명 - 새로운 피조물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14:19)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믿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십자가의 능력을 깨달았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고 말했다. 바울은 교리를 말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도는 신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경험이다.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함으로써 고린도 신자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고전 2:5)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십자가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0. 만복의 근원 - 십자가에서 비롯된 것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2-23)


십자가의 진리와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자 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십자가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원 전에 계획되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준다.


값없이 주신 은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라는 구절 안에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는 바울의 또 다른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즉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어린양이시요, 성부 하나님이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졌다. 십자가는 모든 신자에게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가리키며 내가 너를 위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십자가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너를 위해 내어 주었다. 다시 말해, 내가 네 죄를 위해 값없이 그리스도까지 내어 주었다면 그 안에서 다른 모든 것을 네게 베풀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이미 주어진 복

신약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소유가 된다고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서의 서두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라고 했다. 다시 한번 바울이 즐겨 사용하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대할 수 있다. 바울의 어법에 유의하자. 그는 완료시제를 사용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 안에는 모든 신령한 복이 포함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의 것이 되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라는 바울의 말이 암시하는 대로 이 놀라운 축복에는 십자가의 축복이 포함된다.


우리를 기다리는 복

나의 맏아들 리처드가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나는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사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자전거를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차고에 감추어 놓은 채, 아들에게 물었다 리처드, 가장 갖고 싶은 생일선물이 뭐지?” “아빠, 자전거가 갖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자전거를 선물로 주마.” 마음이 몹시 흡족했다. 내가 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바로 아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도 이와 같다. 성령은 하나님이 그리스고의 십자가를 통해 예비하신 축복을 구할 수 있게 역사하신다.


성령은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8:26)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창고에는 이미 예비해 두신 축복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마음과 간구할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돕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16:23)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그분의 뜻과 이름으로 구하는 축복이 이미 예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함으로써 예비된 축복을 받을 수 있다.

 

 

11. 원수에 대한 승리 사탄의 완전한 패배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1:20-21)


마귀의 사역인가, 하나님의 징계인가?

하나님의 징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또 왜 그렇게 하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징계가 주어졌을 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를 징계하실 때는 사탄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다. 사탄은 허용된 한계 내에서만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때는 먼저 허락을 구해야 한다. 원수 마귀는 신자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하나님의 징계를 사탄의 역사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불행한 일이나 고통스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귀의 역사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징계하셔서 선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시는 사역을 놓칠 수밖에 없다.

 

 

12. 십자가를 지는 삶 - 죄의 대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종종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0:38, 16:24; 8:34, 10:21; 9:23, 14:27)


우리는 그런 말씀을 죄를 처리하는 문제와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을 단지 그분을 따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발생하는 희생의 대가를 뜻하는 의미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보기에 주님의 말씀은 죄를 극복하는 데서 비롯하는 희생을 의미하는 듯하다.


십자가와 죄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다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곧 의도적으로 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방해한다. 삶에서 죄를 경계하며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십자가 없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7)


 여타의 핑계를 허용하지 않는 말씀이다. 중도의 길은 없다. 십자가를 지거나, 아니면 제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제자직의 조건을 솔직히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조건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절대적이다. 신자의 삶에는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대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죄를 극복해야 한다. 죄를 버림으로써 주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그분을 진정으로 따를 수 없다.

 

 

13. 죄란 무엇인가 - 하나님은 왜 죄를 무시하실 수 없었는가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31:30)


죄는 불법이다.

성경은 죄를 불법이라고 일컫는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3:4)

 

 “불법을 해석하면 법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죄를 짓는 것은 법, 즉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삶을 뜻한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아마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연구해 일상생활에 적용하지 않으면 결국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결과다.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도 직접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대체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성경공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다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직접 성령을 스승으로 모시고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14. 우리의 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 놀라운 구원의 은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1:3-5)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은 친히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심으로써 그 사랑을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내셨다. 베드로는 너희가 전에 양과 같이 길을 잃었기”(벧전 2:25) 때문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셨다고 했다. 양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집을 찾아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양들은 방향을 몰라 헤맨다. 따라서 일단 길을 잃으면 집을 찾아오지 못한다. 개는 먼 곳에서도 집을 찾아올 수 있다. 소나 비둘기나 나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연어도 여러 달 동안 바다에서 지내다가 자신이 알에서 부화한 곳을 찾아온다. 하지만 양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잃어버린 양에 비유하셨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능력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친히 구원의 길을 제시하셔야 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그 일을 이루셨다.

 

15. 죄에서 해방된 삶 - 죄인에서 의인으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4:18)


처음 느끼는 기쁨

죄는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삶의 진정한 축복을 기뻐하지 못하게 만든다. 죄는 우리에게서 생명을 앗아간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 요소를 제거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위해 마련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은 전에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지 못한 일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의 씨

거듭난 사람이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한의 대답을 들어보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안에 그분의 씨앗, 즉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 관한 모든 것을 심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드러내신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인도해 죄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 안에 새 생명의 씨앗을 심어놓으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것은 죄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새로운 피조물

십자가로 인한 변화는 어떤 변화인가? 그것은 완전한 변화, 즉 삶을 혁신적으로, 철저하게 바꾸어 놓은 변화다. 바울은 이런 변화를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으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결코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는 타협이 불가능한 변화, 즉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는 필연적인 변화다. 신자라면 누구나 그와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고와 연합ㅎ해 세례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성경을 우리의 경험으로 해석하려 들지 말고 성경으로 우리의 경험을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하나님의 약속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 죄가 유혹할 때

우리의 육신은 의를 거부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했을 때 우리의 육신은 분노해도 괜찮아. 그래야 마땅해.”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분노는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분노는 육신의 열매다.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분노할 권리가 없어.”라고 말해야 한다.

 

16. 복종의 길 - 하나님의 목적을 선택하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


십자가는 선택이다.

육체적인 핸디캡을 언급하면 이것이 저의 십자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십자가는 할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상황이나 상태가 아니다. 십자가는 의지의 선택이다.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나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육체적인 핸디캡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결정하고 복종하는 삶을 말한다.


십자가와 하나님의 뜻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현실이었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길이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길을 계속 추구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며 그분이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복종하셨는지 알게 되면,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실지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통해 그분의 삶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6:3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항구적인 목적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계신다. 매 순간 우리를 예수님께 드리면, 그분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우리의 십자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림으로써 그분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뜻이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뜻,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십자가다.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복종하느냐에 따라 진정한 믿음을 가졌는지 아닌지, 또 그분의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믿음의 진실성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 곧 우리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는 순서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를 건너뛰고 곧장 오순절로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 고난을 겪지 않고 곧바로 영적인 능력과 권위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십자가가 먼저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많은 축복과 기적을 경험하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17. 제자의

- 멋지게 마무리하는 법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10:24)


믿음의 눈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세상이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세상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눈을 가지면 육체의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창조된 영원한 목적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인내하는 삶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다. 하지만 십자가는 기쁨을 앗아가지 않는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정일 뿐이다. 십자가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항상 그 뒤에는 부활이 있다. 부활을 통한 승리가 반드시 찾아온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는 삶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응답해 주지 않으셨어요.”라며 낙심하는 신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이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셨어요.”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명령이나 요구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신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란 하나님 앞에 나가 그분의 뜻을 묻고 겸손히 복종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18. 증인의 길 - 십자가를 당신의 세계로 가져오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


우리의 역할

십자가의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바로 우리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도움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구세주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지켜보며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한다면, 그분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이며,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