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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행복을 주는 생각』조용기 지음

by 은총가득 2020. 4. 21.

 

 

행복을 주는 생각

          조용기 지음

 

 

    프롤로그

 

4차원의 영성으로 인생의 기준을 세우라

시편 8110절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4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핵심구절입니다.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채우시는데 입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배고픈 아이가 자신의 배고픔을 울음이라는 신호를 통해 엄마에게 전달하면 엄마가 그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늘의 은혜가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부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 이해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을 우리는 바로 4차원의 세계 또는 영적세계라고 부릅니다. 4차원의 영적 세계에 대한 단서를 포착할 수 있는 곳이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입니다. 3차원의 세계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1:2) 땅과 물과 공허는 다 보이는 3차원의 세계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다 일대 혼돈에 처해 있을 때 눈에 안 보이는 성령이 그 3차원의 세계에 운행해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빛이 생기고 하늘이 생기고 물질이 생기고 해와 달과 별들이 생기고 모든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4차원에 포함되고, 4차원에 의해서 다스려집니다.

 

3차원과 4차원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이중국적자, 인간

그런데 사람은 희한하게 3차원과 4차원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는 이중국적자입니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시간과 물질과 공간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또 물질을 초월하는 4차원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러므로 사람은 물질 속에 속해 있어서 물질을 대변할 수 있고, 영적인 세계에도 속해 있어서 영적인 것을 대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각을 품고 역전의 인생을 살라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인생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에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그 순서에 주목해봐야 합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생각창문

생각은 정신의 필터와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외부로부터 아무런 여과 없이 유입되는 정보를 그 필터로 여과한 뒤 세상을 경함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의식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은 인생을 바라보는 창과도 같습니다. 생각의 창으로 인생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창문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열려 있느냐 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생각에는 육신적인 생각과 영적인 생각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육신적인 생각보다는 영적인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85절에서 7절에 따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생의 생과 사를 결정짓는 것이 다름 아닌 생각에 달려 있다는 엄청난 말씀입니다.

 

끊임없는 죄악의 쓴물

출애굽기 1522-25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생각 속에 가득 찬 3차원적 생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창일한 홍해수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넌 후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영광의 행진을 막 시작하려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이 영광의 행진이 계속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광야에서의 여정은 영광스럽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흘 길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물 조차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살을 에는 밤의 추위와 40도를 넘나드는 낮의 기온은 가히 살인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이틀이 아닌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마셔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흘 전에 홍해를 건너며 느꼈던 감격은 사라지고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 생각은 오직 원망과 좌절, 절망, 탄식뿐이었습니다. “모세요! 우리에게 물을 달라!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와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 그들의 탄식에는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멀리서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여기 물이 있다! 물이 있어!” 소리가 난 곳에 가보니 그곳엔 작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먼저 온 사람부터 첨벙첨벙 뛰어들어 허겁지겁 물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얼마나 지나지 않아 물을 마신 사람들은 저마다 배를 잡고 땅에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독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물이 쓴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신 사람들마다 토하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상황을 호로 감당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물가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전에 이 사실을 아시고, 그 쓴 연못 곁에 나무가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 나무는 쓴물을 달게 하는 놀라운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물이 해독이 된 것입니다. 물이 해독이 되어 달라지자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다시 생기가 오르고 삶에 대한 용기가 솟아나고 소망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큽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는 죄악의 쓴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1. 행복의 자화상을 그려라

어떤 회사에 근무하는 20대 여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좋은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지 교양 있고, 얌전하며, 마음도 착했으며, 외모도 결코 밉지 않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그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점차 말이 없어지더니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늘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한 달 휴가를 다녀온 후 회사에 출근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려왔던 것입니다. 외적인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성품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명랑하고 자신감이 가득하고 친구들이나 이웃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하고 친구들이나 이웃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얼굴에도 수심이 사라져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녀에게 그런 변화가 왔는지 알고 싶어 했으나 거기에 대해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해 많은 이들은 그 이유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 이유인즉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코가 못생겼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혔었답니다.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볼 때 마다 못생긴 자신의 코를 보며 자기에게 저주를 퍼부을 만큼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러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서 언제나 자신을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모습 역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포장하기 위한 안타까운 시도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져 대인기피 증세까지 보이는 듯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휴가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성형수술이었습니다. 그녀는 성형외과에 달려가서 코 수술을 받았습니다. 코가 예뻐졌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자화상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녀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녀가 수술을 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만큼 성공스런 수술은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마음의 자화상이 그녀를 울게도 만들고 웃게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모든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어떤 자화상이 그려져 있느냐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인생 전체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새사람 자화상

자화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뉴욕에서 케네디 전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오나시스의 유품 경매가 있었습니다. 시가 50만 달러짜리 약혼 반지가 259만 달러에 팔렸고, 종이 몇 장에 불과한 케네디의 취임사 원고도 무려 13s45달러에 팔렸습니다. 또한 얼마 전에는 피카소가 연필로 5분간 데생한 그림이 피카소가 살았을 당시의 집 한 채 값으로 팔린 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인 롱펠로우도 재질이 나쁜 종이에 시를 한 편 적었는데, 이 종이 역시 그의 생전에 6천 달러에 팔렸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물건에 불과한 것도 그 물건이 누구와 관계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는 멸시받고 천대받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가 우리를 변화시켰는가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신분으로 살아라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신분을 확실하게 붙잡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마음 판에 자기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 모습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만일 그 자화상이 부정적이고 열등하며 패배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대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화상이 소망차고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모습이면 도한 그렇게 삶을 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가 우리의 외면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적인 자화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값을 지불하시고 그린 자화상을 우리가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화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자아상이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저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시각을 소유하는 것, 여기에서부터 우리가 찾는 행복은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2. 악한 생각을 수술하라

마음의 불안

왜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아래에서 두 가지로 살피고자 합니다. 첫째는 환경으로 인한 불안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배가 떠날 때는 호수가 잔잔하였으므로 배가 물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배가 호수 한가운데쯤 왔을 때입니다. 갑자기 헬몬산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물결이 춤추기 시작하면서 집채만한 파도가 일어나 배위를 덮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배안에는 물이 가득 고여 제자들이 열심히 물을 퍼내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제 배가 갈아 앉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그때까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고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잠을 깬 예수님이 파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물결이 잔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는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으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환경에 두었습니다. 믿음을 느낌에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람이 잔잔할 땐 믿음이 있었으나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칠 땐 믿음이 의심으로 변모하여 마음에 불안이 가득하고 말았습니다.

 

4차원의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3차원의 환경이나 느낌에서 나오는 생각을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변함이 없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둘 때, 환경적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마음속에 불안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는 죄로 인한 불안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나갈 자신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람과 하나님을 분리시키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되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 310절을 보면, 아담이 말하길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름 아닌 죄가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두려워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좋아야 마음속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고,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 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 위에 믿음을 두십시오. 그리고 주께 죄를 회개하면 인생을 패배케 하는 불안은 자연히 해소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생각을 이식하라

천국을 내 마음에 누리고 살려면

회개란 원어로 메타노이아로 원래의 뜻은 마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때 천국은 곧 나의 생활과 가정에 이미 내려와서 우리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과 절망적인 것, 뒤로 물러가는 것, 이제는 끝장이 났다는 이런 인간적인 모든 생각들을 회개하고 마음의 감정과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주님의 말씀에 접붙이면 천국은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어린 아이들이, 흙탕물을 맑게 하려고 물을 퍼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광경을 살펴보니 물 위쪽에서 돼지가 물을 휘저으며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물을 펴냈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그 물이 맑아지려면 저 위에 있는 돼지를 잡아내면 된다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환경 가운데 있는 흙탕물을 퍼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4:23)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마음 자체를 회개하고 부정적인 것과 죄악과, 파괴적인 생각과, 감정의 방향을 바꿔 마음의 근원을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에 접붙이면 마음의 근원이 벌써 하나님의 생각으로 점령되고 밖으로 넘쳐 나와 모두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4. 시각 차이를 줄이라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면,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75세라면 할동을 끝내고 조용히 인생을 관조할 나이요, 인생을 마무리 할 시기입니다. 75세의 나이는 결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이에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새로운 출발을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운명과 환경을 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출발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인간의 시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출발할 때 믿음이 생성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배 한 척이 항구에 정박한 채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장은 난간에 올라서 안개가 걷히기를 턱을 고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생긴 한 신사다 오더니 나는 영국에서 온 사람인데 캐나다의 퀘벡에 가서 토요일 부흥회를 인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배가 오늘 떠나야만 됩니다. 선장님 지금 출발 시키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장이 가만히 보면서 이 사람 돌았나? 보기에 외모는 아주 훌륭한 사람 같은데 말하는 것을 보니까 완전히 이상한 사람 같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 눈에는 이 안개가 안 보입니까? 이렇게 안개가 짙게 끼었는데 어디에 배를 출항시킨단 말이오?”라고 하니까 그 신사는 , 안개가 보여요. 그러나 나는 안개 저 건너편에 안개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도 보입니다. 당신은 그 하나님의 손이 안보입니까?” 선장이 허허웃으면서 이 사람 미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신사가 선장을 강제로 팔을 글면서 선실로 데리고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나는 57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매일 기도하며 만나온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내가 기도하면 안개가 걷히니까 선장님도 함께 기도하러 가십시다.”

 

 그래서 선장은 강제로 선실로 끌려 내려갔는데 하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믿음 없는 말만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하지 마세요. 안개가 자욱한데 보이는 것도 안개뿐인데 어디에 하나님이 보입니까?” 선장은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사 죠지 뮬러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제가 영구에서 퀘벡으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왔는데 배가 움직이지 아니하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안개가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줄 것을 믿습니다하고 일어나더니만 선장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배에 엔진을 걸어서 가십시다.” “기도한다고 안개가 걷히기나 한다는 소리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선장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죠지 뮬러는 선장에게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창문을 열어 보세요.” 놀랍게도 선장이 창문을 열어 보니까 기도하는 그 짧은 시간에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고 햇빛이 쨍쨍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선장의 눈에는 안개 밖에 안 보였지만 죠지 뮬러 목사님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가나안 땅은 요단의 비옥한 들판에 비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관점을 버린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을 모두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눈으로 운명과 환경을 볼 것을 결정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면, 약속의 성취를 끝까지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비록 극도로 노쇠한 사라이지만 그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은 환경적으로 보아 도저히 자손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과거 인간의 관점을 택했다가 낭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표면화된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만 인간의 관점을 가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갈을 첩으로 취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만일 이때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유대 민족과 아랍 민족이 극열하게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브라함은 인간의 관점을 가져 큰 실패를 낳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끊임없이 믿음의 시각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고집과 욕심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면, 초월을 믿게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2). 아브라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큰 복을 내리시고 장수시켜 주실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인간의 관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관점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후사라고 하셨으니 반드시 위대한 섭리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단지 이 믿음을 갖기까지 뼈아픈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관점을 택하려면 인간의 듯과 고집, 탐욕, 방법, 힘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택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인간의 뜻과 고집과 탐욕과 방법과 힘을 그대로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택하는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께 항복하고 헌신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택한 후 결단하는 항복과 헌신과 순종, 이것은 잃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헌신을 상실로 생각하는데 이는 큰 오산입니다. 상실이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얻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관점을 택하고 인간적인 것을 포기하는 사람을 책임지고 돌봐주십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이란, 인간의 관점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관점을 갖고 수단과 방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택해 성경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고 돌봐주십니다.

 

5. 행복을 가져오는 생각의 4원리를 개발하라

첫째로,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과저, 현재, 미래의 죄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며 희망찬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신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불행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보혜사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건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으며(8:17),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을 청산하셨습니다(벧전 2:24). 뿐만 아니라 우리는 축복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영원한 삶을 보증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로마서 828절을 믿는 성도라면 어떻게 부정적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둘째로, 우리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적극적인 생각은 할 수 있다라는 생각입니다. 범사에 소극적이 되어 나는 할 수 없어” , “나는 안 돼” , “나는 절망이야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광야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갖가지 시련을 겪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녀야 할 생각은 적극적인 생각입니다. 비록 손수레를 끌고 행상을 하더라도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창조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적인 생각은 아이디어를 찾는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제의 심각성만 생각하고 문제 속에 해답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조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패망합니다. 우리는 문제 속에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해답을 찾기 위한 창조적인 생각을 개발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바로 창조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우리는 생산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수많은 시간, 물질, 에너지 등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비생산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오늘날 사람들은 바보상자인 텔레비전 앞에서 저녁 시간 내내 입을 딱 버리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립니다. 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일입니까? 텔레비전 시청시간을 제한하고 저녁 시간을 잘 활용해서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생활에 있어서 아주 비생산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한 그릇에 수십 가지 반찬을 만듭니다. 저는 오래 전에 미국 목사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진수성찬을 대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제가 미국에 갔을 때 그 목사님 댁에서 식사대접을 받았는데, 닭 요리 한 가지 뿐이어서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미국인들이 식생활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의 식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밥 한 가지에 몇 가지 소량의 반찬뿐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비생산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낭패를 당했던 과거에 집착해서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비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서 사람들에게 악평하는 사람도 비생산적인 삶을 사는 사라입니다. 성경은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8)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말을 즐겨하는 사람은 비생산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생각은 눈에 안 보이는 재산이요, 자원입니다. 이 자원을 그리스도 안에서 잘 개발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원을 마귀의 지배하에 놓아두는 사람은 패망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자원의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생각, 창조적인 생각, 생산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을 잘 개발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