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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5일 고난주일
말씀: 사53:4-6
제목: 그가, 우리는
오늘 전할 말씀은, 이사야 53장 4절부터 6절까지 말씀 중 5절 말씀을 중심으로,
“그가, 우리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함께 큰 목소리로 따라합니다.
“그가, 우리는”
“그가”예수님을 말합니다.
“우리는”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지구상의 모든 성도들을 말합니다.
오늘은 고난주일입니다. 고난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처음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가르쳐주어,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 머릿속에는 종려주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이라고 부른 것은, 이날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다하여 유래가 된 것 같습니다. 회수가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세뇌가 되어버렸습니다. 종려주일로 부르게 되면, 이 날은 사람중심이 됩니다. 사람 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퇴색됩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려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날입니다. 이 날을 중심으로 갈보리 언덕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부각되어야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천년전 고난 주일에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시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때 수많은 무리로 따랐습니다.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신 것은, 벳바게가 당시 예루살렘 동쪽 행정구역에 속한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선지자 스가랴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주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만찬 후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산 겟세마네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26:38)하셨습니다.
이천년전 십자가를 지시기전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잘 표현된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26:38)
이런 마음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가” (주님께서)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이런 고통스러운 경험을 면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주간에 죄를 멀리하기위해 노력하고, 우리 대신 고통당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잡히신 그날 밤 새벽에(금요일)가룟인 유다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이 파송한 무리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고, 곧 바로 체포되어, 새벽에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시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빌라도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금요일 오전 9시경에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오후 3시경에 숨을 거두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오후 6시경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무덤에 계시다가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과정이 고난주간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가”찔리고
“그가”상하고
“그가”징계를 받고
“그가”채찍에 맞았습니다.
“그가”이렇게 하심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다.
“우리는”나음을 받았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살길을 얻었습니다.
큰 죄인 복받아 살길을 얻었네 한 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왔으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아멘.
“그가”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짐을 감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나음을 받았고, 회복되었고, 살길을 얻었습니다.
“우리가”죄를 지었는데, “그가”대신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어떻게 지불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가”찔리고
“우리가”지은 죄로, “우리가”찔려야 마땅한데, 죄 없으신“그가”대신하여 머리에 가시로
”찔리고“(마27:29), 옆구리에는 창으로 ”찔렸습니다“(요19:34).
십자가 형벌은, 채찍질당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중에서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로마 총독의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웠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시는 휘어지기는 하지만, 잘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이런 가시줄기로 엮어 머리에 씌웠으니
여기저기에서 피가 흐르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태로 십자가에 매달아 두 손바닥에 못으로 찔러 박았습니다.
머리에서도, 이마에서도, 손에서도 피가 흘렸습니다.
찬송가 614장 1절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양손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하늘도 산과 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어두움으로 변했네
창조주 하나님께서 고통당하시는 것을 보고, 말 못하는 하늘, 산, 들, 초목들도 울고 심지어 해조차 빛을 잃어버리는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주일을 맞이하며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위 하여,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는데, 그냥 있어서 되겠습니까?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여러분!
둘째,“그가”상하고(고난)
“우리가”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가 상해야 할 마음과 육체를 대신하여,
“그가”대신 상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주님의 얼굴에 침 뱉었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겠습니까? 이뿐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야”하면서 조롱까지 했습니다(마26:68).
주님께서는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믿었던 제자 가룟인 유다는 은 삼십(마27:3)에 스승을 팔아넘겼고, 수제자 베드로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멀찍이 거리제한을 두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또한 헤롯에게 심문당하고, 빌라도에게 재판받기위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셨습니다. 모든 절차 무시당하고 새벽에 심문받고, 법정을 열어 재판받으실 때, 얼마나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습니까?
셋째,“그가”징계를 받고, “그가”채찍에 맞았습니다.
“우리가”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하는 징계, 우리가 받아야 하는 채찍을,
“그가”대신 받고, 대신 맞았습니다.
이 당시 매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대식 채찍질과, 로마식 채찍질입니다.
유대식 채찍질은, 악을 선택한 자들에게 가해지는 최고의 형벌입니다. 이는 죽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선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지는 않습니다.
로마식 채찍질은 다릅니다. 로마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최고의 형벌입니다. 이는 죽이려는데 목적이 있고,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한 광고효과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권위에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채찍질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용된 채찍(마27:26; 요19:1)은 단순한 매가 아닙니다.
막대기에 아홉 가닥의 가죽 끈이 달려 있는 채찍입니다. 세 가닥 끝에는 낚시 바늘이 달려 있고,
세 가닥 끝에는 납덩어리가 달려 있고, 세 가닥 끝에는 짐승의 뼈가 달려있습니다. 아홉 가닥의 가죽 끈이 달린 채찍으로 스물네 대를 치는 형벌입니다.
십자가형은 죄수에게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안겨줍니다. 기록에 의하면 채찍 한대 맞았는데 죽은 자가 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합니다. 이는 로마인에게 항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스물네 대를 때렸다고 보면 되겠지요! 가죽 끈의 길이는 사람 몸을 한 바퀴 반을 두를
정도로 길게 하여 칠 때마다 온 몸을 할퀴며 스쳐갑니다. 그러니 온몸에 상처자국을 남기고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찔리고
“그가”상하고
“그가”징계를 받고
“그가”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어떤 은혜를 누리게 되었을까요?
결과?
“우리는”나음을 받았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우리는”주님에게 생명의 빚을 졌습니다.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해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그 어떤 이보다 생명 살리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이 일에 우리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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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정리합니다.
“그가”찔리고
“그가”상하고
“그가”징계를 받고
“그가”채찍에 맞았습니다.
“그가”이렇게 하심으로,
“우리는”나음을 받았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이천년전 죄 지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주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찬송이 저절로 불립니다.
죄 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죽음의 죄 짐을 해결해주는 사람보다 더 좋은 친구는 이 땅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난주간에 주님의 행적은 모두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주님께서 받으셨던 고난은 모두 우리가 받아야 하는 고난들입니다.
오늘 고난 주일을 시작으로, 고난 주간이 됩니다. 한 주간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 럽지 아니한 품격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요일은 주님께서 이 천년 전 십자가 지시고 운명하셨던 날입니다. 이 날에 한 끼씩이라도 금식에 동참하여
주님의 고난을 마음으로, 피부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는 평상시보다 더 많이 성경 읽고, 더 많이 말씀을 기억하여
삶에 적용하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가를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다음 주 주님의 부활에도 동참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번 고난의 주일이 끝나면 이어서 부활의 주일을 맞이합니다. 이 날은 고난에
동참한 자만이 누리는 부활의 은혜입니다.
“고난없이 영광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 없다”는 진리를 잘 마음에 깊이 새기어 한 주간 승리하고
다시 기쁨으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글: 히브리적 사고 - 김주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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