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인역 성서[Septuagint]
70인역 성서[Septuagint]
약자로는 LXX.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헬라]어역(語譯) <구약성서> 번역본으로, 히브리어 성서 원문을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가 국제 공용어일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들의 요구에 따라, 처음에는 BC 3세기 중엽에 ‘모세 5경(율법서)’이 번역되었고, 그뒤 약 100년 사이에 현재의 정경(正經) 거의 전부가 번역되어 나왔다.
'70'을 뜻하는 라틴어 septuaginta에서 유래한 '70인'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6명씩 뽑은 72명의 번역자들이 각각 독방에 들어가 〈구약성서〉 전체를 번역했는데, 그들의 번역이 모두 동일했다는 후대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70인역 성서는 히브리어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지만, 지금의 히브리어 마소라본문 성서와는 분량이나 책 편집이 다르다.
히브리어 정경은 토라[율법서]·느비임[예언서]·케투빔[성문서]의 3부분으로 나뉘는 데 비해, 70인역은 율법서·역사서·시가서·예언서의 4부분으로 나뉘며, 외경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오늘날 서방세계 대부분의 성서 역본들은 계속 이런 식으로 구분되었으나, 개신교 역본들의 경우에만 외경을 빼거나 따로 묶는다.
70인역구약성서의 배열과 편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오경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가 들어가고,
역사서에는
‘여호수아기’
‘사사기(또는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상’
‘사무엘기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지상’
‘역대지하’
‘에스라기 1(외경)’
‘에스라기 2(에스라기와 느헤미야기)’
‘에스더기’
‘유딧기’
‘토비트기’
‘마카베오기 1’
‘마카베오기 2’
‘마카베오기 3’
‘마카베오기 4’
를 편집하였고,
문학서에는
‘시편’
‘송시’
‘잠언’
‘전도서’
‘아가’
‘욥기’
‘지혜서’
‘집회서’
‘솔로몬의 시’
를 편집해 넣었으며,
예언서에는
‘호세아서’
‘아모스서’
‘요엘서’
‘오바댜서’
‘요나서’
‘나훔서’
‘하박국서’
‘스바냐서’
‘말라기서’
‘이사야서’
‘예레미아서’
‘바룩서’
‘애가’
‘예레미아의 편지’
‘에스겔서’
‘수산나’
‘다니엘서’
‘벨과 뱀’
등을 편집해 넣었다.
위에서 보듯이 배열과 분책(分冊)방법이 히브리어 경전과 다르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사용한 언어는 주로 그리스어였으며, 그리스도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성취했다는 예언들을 70인역 본문에서 인용했다. 유대인들은 이것은 성서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70인역 사용을 중단했다.
3세기에 오리게네스는 70인역에 끼어든 필사자의 오류들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했는데, 당시 사본에 따라 여러 가지 많은 오류가 있었다. 다른 학자들도 70인역을 좀더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히브리어 본문을 참조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대한 고대 라틴어역[불타역]·콥트어역·에티오피아어역·아르메니아어역·그루지야어역·슬라브어역, 그리고 아랍어역 일부의 주요 근거가 된 것은, 히브리어 성서가 아니라 바로 70인역이었다.
그리스 정교회는 70인역을 〈구약성서〉 표준역본으로 인정해왔으며, 히에로니무스[영어명:제롬]는 이 역본을 가지고 불가타 〈구약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70인역 인쇄본은 '콤플루툼 학파 대역성서(對譯聖書)'(1514~22)에 실려 있다.
출처:대한성서공회, 네이버 &엠파스 백과사전 종합
신구약 성경 사본 2 (70인역)
70인역(Septuaginta, Greek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LXX)1)은 유다교 랍비들에 의해,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오경을 처음으로 번역하기 시작하여 약 100여년에 걸쳐, 팔레스티나 外域 디아스포라 지역(diaspora는 '흩어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인 공동체를 위하여 구약성경을 처음으로 당시 공용어 그리스어로 옮긴 최초의 번역본이다. 기원전 2세기 중엽의 아리스테아스Pseudo-Aristea 편지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열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차출한 72명)의 유다인 율법학자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 필라델푸스(BC 285-247)의 통치기간인 BC 3세기 중엽부터 BC 2세기 말엽까지 번역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번역의 필요성은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 히브리어보다도 그리스어가 더 익숙한 구어口語였기 때문이다.2) 한편 이방인들에게 선교하기 위해 번역되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러한 필요성은 부차적이었을 것이다.
1) 셉튜아진타Septuaginta라는 단어는 70의 숫자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전통적으로는 현존하는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본 중 가장 오래된 번역본을 가리킨다.
2) 참고로 BC 6세기 바빌론 유배 이후에 히브리어는 이미 구어로서의 자리를 상실하여 BC 20세기부터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사용되어온 아람어가 일상어로서의 구어가 되었으며,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 이후엔 그리스어가 공용어로서 구어가 되었다.
Septuaginta, Greek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70인역 번역에 사용된 히브리어 사본은 쿰란사본이나 마소라본과는 다르며3) 오늘날 남아있지 않으나, 서기 245년경 그때까지 전해오던 구약사본들을 오리게네스가 수집하여 집대성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오리게네스는 당시 번역대본으로 삼았던 히브리어 본문, 그리스어로 된 히브리어 본문, 다른 그리스어 번역본 4개(아퀼라본 심마쿠스본 70인역 테오도시온본)를 종합하여 6단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분량의 육역대역본을 완성했는데, 이중 70인역 이외의 것들은 638년 마호메트 교도들의 카이사리아 침공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70인역에는 유대교 바리사이들이 서기 100년경 얌니아에서 결정한 구약 정전목록에는 없는 작품들이 실려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마소라 본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70인역과 마소라본의 원문이 서로 다른 계보의 자료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쿰란의 두루마리 문서들에서 70인역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으므로, 70인역은 사본들 간의 본문비평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70인역은 기원전 오랜 세월동안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교4) 히브리인 공동체의 공식 성경이었고(P.지로니), 이미 오래전부터 회당을 선교하는 책이었으며 그리스 헬레니즘 세계에서 매우 깊은 종교적 진리를 담고 있는 책으로 간주되었다(에른스트 다스만). 70인역엔 약 350여 개의 인용구가 신약성경에 인용되고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또한 이 70인역을 공식 성경으로 사용하였다(H.R.드롭너). 70인역에는 서기 70년 제1차 유다독립전쟁에서 예루살렘 함락 후 얌니아(야브네)로 옮겨간 바리사이 중심의 유대교에서 서기 100년경에 처음으로 유대교 경전목록을 정하며 '계시의 언어'인 히브리어 사본이 없다는 이유로 경전에서 제외시킨 7권의 책이 더 실려 있다. 종류는 9권이지만 다니엘서와 에스델서 추가 부분은 별책으로 보지 않는다. 한편 16세기 이후 교회에서 이탈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70인역에 실려 있는 7권에 대해 경전이 아니라며 임의로 제외시켰는바, 이에 대해서는 아래 5번 각주를 참고하라.
4) 유다교와 유대교의 용어 사용과 관련하여, 기원전 '유다교'는 민족국가로서 사두가이, 율사와 바리사이, 에세네파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었으나, 제1차 독립전쟁에서 패하고 얌니아(70-135년)로 옮겨 간 이후엔 사두가이 세력은 식민지의 필연적 결과로 약화되고 에세네파는 거주지를 잃고 사라져버려, 결국 율사와 바리사이로 구성된 랍비가 중심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랍비 중심의 '유대교'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 글에서 유다교와 유대교의 용어는 이러한 인식 하에 교회사 학자인 에른스트 다스만의 분류에 따라 양자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70인역은 오늘날 각기 다른 사본들 간의 본문비평에 있어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자료이고, 알렉산드리아 유다인들의 신학적 윤리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책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더욱 큰 가치가 있다. 이밖에도 70인역은 종교적 가치 외에도 문화사적 언어학적 자료로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5) 예수님 역시 70인역 성경을 인용하셨고(→이에 대해선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303&eid=4B+Z4KS1LFb1L43pG4neS56HHG4onO1s 참고)
사도들의 복음서나 서간들도 이 70인역 성서를 기준으로 쓰여졌다(특히 바울로 사도는 구약 본문을 전부 70인역에서 인용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70인역 성서는 당연히 성서인 것이다. 70인역 성서엔 당시 유대교 히브리어 성서에는 없는 7가지 성서가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공동번역에서 제2경전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있는 책들이다. 정경이란 성경 자체를 말한다. 이 성서에 들어가지 않은 성경 비슷한 것을 외경이라 하지만 서기 70년 이후 예수님을 죽이고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는 율사와 바리사이 중심의 유대교는 당시 계시의 언어인 히브리어 사본이 없고 그리스 사본에만 있는 7가지 성서를 외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70인역은 성서이지 성서와 비성서가 모아진 책이 아니다. 히브리어 사본이든 그리스어 사본이든 주님께서 직접 사용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당연히 성서, 즉 경전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글자로 기록한 것을 성서라 하는데 하느님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사용하시고 말씀하신 70인역 성서를 성서가 아니라 주장함은 구세주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주장과도 같다. 그런데 예루살렘 대성전이 파괴된 후 이를 재건하기 위하여 얌니아에 모인 유대교의 종교회의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단죄였으며 그리스도교에 흡수된 유대인들을 민족 배반자라고 낙인을 찍었다. 더욱이 안식일마다 열리는 유대교의 전례(예배)에서 하루 3번씩 고백하는 18개 축복문 중 13번째에는 "야훼여, 예수와 그 도당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라고 하는 저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70인역의 성서를 인용하며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며 선교를 하는 그리스도교를 원천상 막기 위하여 "히브리어로 된 성서만 정경이며 그 외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는 성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중세 종교혁명 때 루터 등이 일어나 분열을 일으켰는데 이후 교회이탈자들은 자기들의 말을 믿게 하기 위하여 주님과 사도들이 사용한 70인역 성서를 유대교 전통에 따라 성서가 아니라며 성서에서 임의로 삭제하였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도 이 70인역에 의한 성경이 1800년대 초까지 성경목록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 이후로 유대교 경전목록에 없는 7개의 성서들은 성서 밖으로 추방되었고 오늘에 이른다. 그러다가 공동번역 성서 안에 다시 제2경전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서 인정하지 않고 신성을 부정하는 유대교라든지, 그리스도 교회의 교리 일부를 부정하기 위하여 성경목록에서 일부를 삭제시킨 개신교는 유대교 경전을 성경이라 하고 70인역 사본에 있는 7권의 성서를 외경이라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눈으로 볼 때 가당치 않는 짓이다. 유대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개신교가 예수님이 사용하신 70인역 성서를 외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짓이다. 오늘날 개신교 학계에서도 70인역 성서에 대하여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더욱이 70인역 성서를 외경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버린 것에 대하여 대단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음이 작금의 상황이다.
Septuaginta, Greek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성막 황금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