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사본들

사해사본

by 은총가득 2020. 4. 2.

사해사본

 

▶사해두루마리 일부분

 

▶사해사본이 들어있던 항아리

 

▶마다바 지도

 

▶ 시대의 동전

 

 

 

 

 

 

 

 

사해사본의 가치

 

사해사본은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스러운 유물로서, 예루살렘에 방문한다 해도

사해사본의 진본을 보기는 쉽지 않다

이는 사해사본을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박물관과 록펠러박물관에서

진본을 잘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박물관의 '책의전당' 에서 적은 수의 사본을 진본으로 관람할 수 있을 뿐,

전시되어 잇는 대부분은 레플리카(복제품)나 사진으로 대체되어 있다.

https://blog.naver.com/sangdamee/10175172667

 

 

성경에 대한 의혹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필사를 통해 '성경사본'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 정확성에 대

한 의심을 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은 엄중하고 그 정확성을 지켜왔지만 후대에 와서는 성경사본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앞서 포스팅에서 70인역과 마소라 사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표적인 성경사본으로 전해지는 성경사본들도 그 정확성, '과연 모세 때부터 전해진 성경인가? 필사과정에서 오류는 없었을까?'등과 같은 의문을 잠재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의혹은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정리가 되게 됩니다. 20세기에 들어서 발견된 사해사본이 성경의 진실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이 넘게 질그릇 항아리 속에서 보관된 사해사본은 성경중에서도 구약성경의 사본이었습니다.

 

 

사해 사본의 발견

 

1947년 봄, 사해 북방에 있는 쿰란 공동체의 동굴에서 굉장한 고고학적 보물이 발견되었다. 아랍계 유목민인 베두인족의 ‘무하마드 아디브’라는 소년이 여리고 남쪽 사해의 서북쪽 2km 지점에 있는 황무지인 ‘와디 쿰란’ 지역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고 있었다. 그는 가파른 암벽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하고 잃어버린 양이 그 동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 안에 돌을 던졌는데, 안에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는 아마포(亞麻布)에 잘 싸인 가죽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있었던 것이다. 몇 개의 항아리 안에 양피지, 그리고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이 기름칠한 헝겊에 싸인 채 들어 있었다. 그는 이것들이 골동품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돌아갔다.

 


얼마 후 그 두루마리들은 여러 골동품 상인들의 손을 거쳐서 4개는 시리아의 예루살렘정교회 대주교인 마르아타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3개는 베들레헴의 아랍 상인을 통해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수케닉(Sukenik) 교수가 구입했다. 1953년 수케닉 교수가 사망한 후,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을 지낸 그의 아들 야딘(Yadin)이 교수이자 고고학자가 되어 1954년에 사무엘 대주교에게서 두루마리 4개를 사들였다. 그리고 1967년에 두루마리 1개를 추가로 구입하여 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모두 8개 보유했다.

 

현재 그 두루마리들은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성서의 전당에 보존되어 있다.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조사 결과, 사해 두루마리들은 BC 168년에서 AD 233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본들 중 이사야서 두루마리의 일부분을 35mm 필름에 복사하여 유명한 히브리 고고학자이며 고대 셈어의 최고 권위자인 존홉킨스대학교의 윌리암 알브라이트(Willim F. Albright) 박사에게 보냈는데, 알브라이트 박사는 연구 결과 이 사본이 BC 150년경에 기록된 구약 성경의 사본이라고 밝혔다.

 


알브라이트 박사는 사해 사본의 발견에 지대한 공을 세운 존 트래버(John Traver)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가장 위대한 사본을 발견하신 일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사본들이 나쉬(Nash) 파피루스(BC 2세기에서 AD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약 성경의 일부분)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시기는 BC 100년경으로 짐작됩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발견입니다. 더욱이 사본의 순수성에 관하여는 추호도 의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 ‘사해 사본’, 혹은 ‘쿰란 사본’이라는 고문서다. 이 사본이 질그릇 항아리 속에서 약 2000년 이상 보관되었음에도 썩거나 많이 훼손되지 않은 것은 사해 주변의 건조한 기후의 영향이었다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마다바 지도>

 

 

 

가로 16, 세로 6m의 마다바 지도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지난 26∼28일 실제 그대로 복원됐다.
지도 복원은 이탈리아 모자이크 전문가가 담당했으며,
지도가 설치될 동안에는 주변이 통제될 정도로 엄격한 보안조치가 이루어졌다

 

마다바 지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로마-비잔틴 시대의 가장 오래된 지도로
요르단 암만에서 30㎞ 떨어진 마다바의 성 조지 교회 바닥에 설치돼 있다.
560년에 만들어진 지도는 2만개 이상의 작은 돌조각으로 모자이크돼 있다.

 
 
 
지도는 길이 16m, 폭 6m로 현재는 3분의 1 정도만 남아 있다.
이 지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중세 수도사들이 이 지도에 나오는 지역 순례를 평생의 꿈으로 여겼을 만큼
지도상에 주요 성지가 망라돼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 지역의 문화유산을 표기한 마다바 지도는
북쪽으로는 레바논의 시돈과 두로, 남쪽으론 이집트의 델타 지역까지 연결돼 있다.
 지도상에는 특히 예루살렘 지역의 교회들이 소상히 드러나 있다.

마다바는 350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리스 정교회 교회들과 오스만제국 때 만들어진 석조 가옥까지
아랍스러움과 유럽스러움이 공존하는 도시다.
마다바 인근에는 기독교 성지인 느보산과 사해도 있어 순례자들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성경사본 중 가장 오래된 '사해사본'의 의미

성경사본들이 지금까지 발견되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사해사본'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성경의 진실과 의심을 정리 한 것이 바로 '사해사본'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 이번 포스팅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성경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해사본'이 어떤점에서 중요성을 갖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경 연구가들은 2000년전에 만들어진 사해사본과 사해사본이 만들어진지 1000년이 지나서 필사된 성경사본인 '마소라사본'과의 비교를 통해 그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포스팅을 통하여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속에 담긴 진리가  

그 옛적 선지자들을 지나서 온전히 도달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해 사본의 가치와 중요성 


지금까지 발견된 성경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이다. 사해 사본은 BC 2세기~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사해 사본의 중요성은 발견된 후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 남아 있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사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AD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AD 10세기에 필사된 이 사본들이 예수님 당시에 사용되었던 성경과 같은 것이라고 증명하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사해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 성경이 예수님 당시의 성경과 같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사해 사본은 말라기가 기록되고 불과 30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필사된 것이다. ‘마소라 사본은 말라기 기록 후 1300여 년이나 지나서 필사되었다’며 그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에게 사해 사본의 발견은 그 공백기를 1000여 년이나 줄여놓은 것이다. 

 


사해 사본과 1000여 년 후에 만들어진 마소라 사본, 이 두 사본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본 결과 놀랍게도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소라 사본은 사해 사본과 똑같은 성경이고, 그 이전 성경의 원본과도 똑같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해 사본으로 인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용하시던 성경이 동일하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성경과 똑같은 성경인 것이다.  

 

 엄격한 규칙을 좇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필사했기 때문에 사해 사본이나 마소라 사본의 내용이 똑같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구약 성경을 지켜왔고, 신약 시대에도 왈도파(派)나 틴데일 등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전해주기 위해 많은 고난과 희생을 감내했다

 

성경은 사본으로 전해져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사본이 정확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우선 대표적인 성경사본으로는 70인역(LXX)과 마소라 사본이 있습니다. 외경이 포함되며 마소라 사본과는 내용의 차이가 있는 70인역은 정확한 사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훗날 70인역은 가톨릭 성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신교의 경우는 마소라 본문내용과 70인역의 책 배열순서를 따랐습니다. 성경사본에 대한 의견들은 훗날 그 유명한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정확성이 입증되게 됩니다.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에 대표적인 성경사본으로 알려진 70인역(LXX)과 마소라 사본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70인역(LXX)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BC 250년경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 2세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소위 ‘70인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 불리는 서신이 이 70인역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증거물인데, BC 250년 전후로 구약 성경 전체를 번역한 그리스어 필사본은 현재 확실하게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역사에도 그런 일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고 한다.

 


70인역의 번역 작업에 참여한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별되었다고 전해지나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다. 유대인 중 성경 기록을 담당한 책임자는 신명기 17장 18절, 31장 24~26절과 말라기 2장 7절에서 증거하듯이 레위 지파였기 때문이다. 70인역은 보통 영어로는 LXX로 표기하는데, 로마 사람들의 숫자 개념에 L은 50, X는 10을 뜻하므로 이를 합하면 70이기 때문이다.

 


70인역 구약 성경에는 450년 이후에 정착된 히브리 성서인 마소라 본문(Massoretic Texts)에 없는 경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개신교에서는 이를 외경(apocrypha)이라고 부른다. 또 70인역에는 마소라 본문보다 내용이 적은 책도 포함되어 있는데, 70인역의 예레미야서는 마소라 본문의 예레미야서보다 1/8이 적다.

 


70인역은 카톨릭 성경에 큰 영향을 주었고, 개신교에서는 정경의 범위에서는 마소라 본문을, 책 배열 방식에서는 70인역을 따르고 있다.

 

마소라 사본

고대 유대인들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글을 썼으며, 구약 성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여 그것을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대신 아람어가 통용되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낭독했는데, 히브리어가 점차 사어(死語)가 되어가자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와 예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7세기부터 자음만 있던 히브리어에 모음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유대인 학자들을 ‘마소라’라 불렀고, 그들에 의해서 모음이 붙여진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마소라 사본’이라 부른다. 마소라는 ‘전통’ 혹은 ‘말을 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마사르(masar)에서 나왔다.

 


마소라인들의 목적은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도 구약 성경의 순결성을 보호, 보존, 전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는 표준화된 히브리어 사본을 갖게 되었다.

 


10세기 말에 마소라 학자들이 사용한 본문의 기원은 AD 1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들이 만든 사본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900년경에 표준이 정해졌다. 마소라 사본 중 11세기(AD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은 히브리어로 구약성서의 본문을 모두 담고 있는 사본으로, 1세기 말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 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사본은 완전한 히브리어 성서의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현재 레닌그라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사해 사본이 생겨난 지 1,100년이나 지난 시기에 필사된 것이지만, 원문에 훨씬 더 가깝게 베껴졌다는 것이 사본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구약 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AD 900년경의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이었으므로, 구약 성경의 정확도에 대해 의혹을 가지는 학자들이 있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BC 400년 경에 기록되었고, 마소라 사본은 그로부터 1300년이나 지난 후에 쓰여진 사본이므로 사본의 정확도를 의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친히 지키신다고 말씀하셨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

그리고 1947년 쿰란 동굴에서 사해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이러한 의혹은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성경, 성경사본은 어떻게 보존되었을까요?

구텐베르크활자가 발명되기 전, 성경은 필사자에 의하여 필사되어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성경이 사본이라는 사실을 두고 성경의 진실과 허구에 대해 논하는 것은 우문이 되겠지요.

세상에 제일 먼저 기록된 성경은 모세가 쓴 성경, 즉 우리가 모세오경으로 알고 있는 성경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된 성경.

그리고 필사와 번역을 통해 우리가 보고있는 성경.

활자의 문서보다 성경이 담고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받는 것이 성경을 대하는 올바른 눈이겠지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성경의 원본과 성경사본, 그리고 그 성경들이 어떻게 보존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의 원본과 사본

 


성경의 자필 원본은 유실되고 현재는 필사한 사본만 남아 있지만, 수많은 필사본들이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하늘로부터 계시된 성경의 원본이 확실히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초대교회에서는 자필 원본의 문서 자체보다 정확하게 전해진 말씀 자체에 더 가치를 두었다.

 


성경의 원본들은 오토그래프(Autograph)라고 부르고 사본들을 애퍼그래프(Apograph)라고 부른다. 성경을 복사하여 사본을 만들 때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했다. 처음에는 제사장들이 이 일에 종사하게 되어 있었으나(신 17:18) 후에는 서기관들이 이 일을 맡았다(렘 8:8). 그들은 오로지 성경만을 그대로 필사하는 전문 필사자들이었다. 사본 성경의 수요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서기관들의 수도 많아지고, 또 성경의 필사가 전문화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일도 서기관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은 19가지의 엄격한 규정을 따랐다. 양피지는 유대인이 만든 정결한 동물의 가죽만 사용할 것, 각 가죽종이는 같은 수의 단(段)으로 구분할 것, 한 단에는 48~60의 줄을 가질 것, 먹[墨]은 특별하게 제조한 검은 먹만 사용할 것, 글자나 단어를 기억으로 기록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인증된 사본을 보고 기록할 것 등이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야훼’나 ‘엘로힘’을 기록할 때에는 매번 펜을 경건하게 닦고 기록해야 했으며, 실수가 하나 생긴 경우에는 그 장(章)을 폐기해야 했다. 또 성경을 필사하는 중에는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아야 하며, 왕이 들어와도 쳐다보지 말아야 했다. 그들의 필사 규정과 방법은 치밀했고, 필사자에 대한 감독도 엄격했다.


다음은 어느 랍비가 성경 필사자에게 엄중히 경고한 내용이다.


“너는 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주의하라. 네 일은 하늘의 일이다. 사본에서 철자 하나를 빼거나 더하면 너는 세상의 파괴자가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철저한 규칙 속에서 복사했기 때문에 사해 사본이나 마소라 사본의 기록이 똑같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성경의 보존

 


성경의 원본은 가장 조심스럽게 보관되었다. 모세가 기록한 오경은 제사장들에 의해 지성소의 법궤 옆에 안치되었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신 31:24~26)

 


여호수아나(수 24:26) 사무엘 시대에도 그러했다(삼상 10:25). 성막이 없어지고 성전이 세워졌을 때에는 성경의 원본들이 성전으로 옮겨졌다. 열왕기하 22장 8절을 보면 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경 원본들을 법궤 옆에 보관한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는 기록된 두루마리 책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고, 세상의 다른 책들과 거룩히 분리시켜 놓음을 의미했다

[출처] 성경사본 중 가장 오래된 '사해사본'의 의미

 

 

'성경 사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리아 5경  (0) 2021.03.05
성경사본이야기  (0) 2020.11.17
사해사본  (0) 2020.04.02
70인역 성서[Septuagint] -사본  (0) 2020.04.02
사해 사본들  (0)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