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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히브리서 제 1장 주석

by 은총가득 2020. 3. 8.

 

히브리서 제 1장 주석

1:1

옛적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라이'는 '지나간 시대' 즉 '구약시대'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음을 시사하는 표현으로 2절의'이 모든 날 마지막에'와 대조를 이룬다.

선지자들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 토이스 프로페타이스'다. 여기서 전치사 '엔'을 NIV에서는'...통하여'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것의 본래 의미는 '...안에'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선지자들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이것은 그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선지자들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공인된 선지자들만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전체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 '여러 부분'의 헬라어 '폴뤼메로스'는 '여러 시기', '여러 번'을 뜻하며 '여러 모양'으로의 헬라어 '폴뤼트로포스'는'다양한 방법으로'를 의미한다. 두 단어는 부사로서 모두 접두어 '폴뤼'를 사용하여 두운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법은 당시에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본절에서 그것은 관습적인 표현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서 저자가 구약의 계시에 대한 신빙성을 확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조상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2절의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 헬라어 '에프 에스카투 돈 헤메론 투톤'은 문자적으로 '이 날들의 마지막에'를 의미한다.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된 '팔라이'('옛적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옛적에'가 구약 시대를 가리킨다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구약 시대가 끝나고 메시야가 오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 곧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때가지 모든 날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마지막 때' 혹은 '말세'로 표현되고 있다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아들로'의 헬라어 '엔휘오'는 1절의 '선지자들로'와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 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적으로 말씀하심을 시사한다. 그러나 '엔 휘오'에는 '엔토이스 프로페타이스'와는 달리 관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사실은 '아들'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과 동급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지닌 자로서 아들 안에서 주어진 계시가 구약의 계시보다 탁월하며 완전함을 시사한다.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상속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모든 세계를 아들에게 전임하셨다.

 

  혹자는 본 구절이 "너는 내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제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7,8)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Bruce) 혹자는 창 17:5과 본문의 문자적 유사성을 들어 '아브람'이 열국의 아비로서 '아브라함'으로 임명되어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작을 이룬것과 본문이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창 17:5이나 시 2:7,8에서는 '모든 나라'가 그 유업이 되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만유'가 그 유업으로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임점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위의 구약 본문들과 연결되어 아들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사를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만유보다 탁월한 지존의 위치에 있음을 시사한다.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으니라 - '저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디 후'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심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창조 사역을 이루셨다(요1:1-3; 고전8:6; 골1:16).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시다.

 한편 '세계'의 헬라어 '아이오나스'는 '시대'(an era), '세대'를 의미하는 '아이온'의 복수이다. '아이오나스'는 본래 시간적인 의미를 지니나 본절에서는 '우주 세대'로 해석되어 우주(universe, NIV)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 되심을 나타낸다.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 '영광'의 헬라어 '독세스'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겔 1:28; 11:23)를 나타내며 신약에서 하나님의 속성 전체를 의미한다(마16:27; 행7:2,55; 롬1:23; 3:23; 5:2; 딤전 1:11). 한편 '광채'에 해당하는헬라어 '아파우가스마'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빛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빛'.

 (2) 외부에서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 혹자는 본절의 '광채'가 전자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는 견해가 더 타당하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빛' 자체로 묘사되기도 하며(요1:4-9;고후4:6) 동시에 본절과 같이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여 드러내는 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영광을 볼 수 있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본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스타세오스'는 철학적인 용어로 사물의 하부에 있으면서 그 사물을 존재하게하는 실체를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 자신을 시사한다.

 

 한편 '형상'의 헬라어 '카라크테르'는 '긁어 표시하다'를 뜻하는 동사 '카랏소'에서 유래된 말이다.

 '카라크테르'는 문자적으로 '표식'이나 '인장' 혹은 '같은 모양의 복제'를 의미한다.

 이것은 '본체의 본질' 즉 하나님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그리스도를 볼 때 성부 하나님을 보는것과 같음을 의미한다(요 14:8-10).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만물'(판타)은 모든 피조물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서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시사한다. 한편 '붙드시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론'은 '인도하다', '이끌어가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가 지구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신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어떤 목적을 향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개념이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자로서 자신의 능력있는 말씀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을 유지시키며 인도하신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주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자신을 제사로 드려 자기 피로 단번에 우리를 깨끗게 하셔서 죄를 도말하셨다(9:12,26,28).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는 불완전했던 옛 언약의 제사 행위가 하지 못한 것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것이다(10:2,4,6,11).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본절은 시 110:1을 인용하여 예수께 적용시킨 것이다. '누은 곳'은 '하늘'을 의미하며(엡4:10; 빌2:9) '위엄'은 장엄함을 가리키는 것으로(8:1; 유1:25)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완곡한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 승귀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왕권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소유하심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심으로 온 우주를 지배하시며 다스리신다.

 

=====1: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 '뛰어남'의 헬라어 '크레이트톤'은 '보다 우월한', '보다 탁월한'의 의미이다. 저자가 그리스도와 천사를 비교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설명하는 이유는 천사의 사역에 있다. 이 '천사'는 1절에 언급된 '선지자'와 동일한 기능을 가진존재로서 옛 언약인 율법을 모세에게 중재한 자이다(2:2; 행7:38-39,53; 갈3:19). 그러나 천사가 모세에게 중재해 준 율법은 그리스도의 계시와 비교할 때 열등한 것이었다. 천사를 통해서 전해진 율법은 불완전하여서구속 사역을 온전히 해결할 수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을 드려 그 피로 온전히, 단번에 구속 사역을 성취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드러내셨다.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 '더욱 아름다운 이름'이란 그리스도의 '아들됨'을 의미한다(5절; 시2:7). 그리스도께서 영광받으셔서 승귀되시기 이전에는 '아들'이라는 칭호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도 '아들'이란 칭호가 주어졌으며(5:8) 성육신하시기 이전에도 아들의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주어져 있었다(2절).

=====1:5

저자는 5-14절에서 7개의 구약성경 본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우월하심을 입증하고 있다. 본절에서 인용된 두 구절은 교차 대구법적인 구조를 갖는다.

 

네가 내 아들이라 ------------------------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 본 구절은 시 2:7의 인용이다. 시편에서 언급된 '아들'은 표면적으로 '솔로몬'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나 저자는 본 구절에 나타난 '아들'이 특정한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 본절은 삼하 7:14의 인용이다. 사무엘하에서 나타난 '아들' 역시 표면적으로 '솔로몬'을 가리키나 저자는 본절을 메시야에 관한 구절로 해석하였다. 삼하 7:14은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할때 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출현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심을 시사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저자는 이런 메시야 사상을 통해서 아버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천사에게 적용될 수 없는 유일하면서도 우월한 관계임을 증명하고 있다.

 

=====1: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 '맏아들'의 헬라어 '프로토토콘'은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후사로 임명된 사상(2절)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그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이 칭호의 기원은 시 89:27로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창조물이 창조되기 이전에 계셨고 만유를 상속받은 자이심을 시사한다(2절; 골 1:15,18).한편 '다시'의 헬라어 '팔린'('다시', '그 위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팔린'을'에이사가게'('들어오게')와 연관시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팔린'을 '오이쿠메넨'('세상')과 연관시켜서 그리스도께서 '오이쿠메넨'을 다스리시는 통치자로서 높임을 받으시고 보좌에 좌정하시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 본절은 신32:43(LXX)의 인용이다. 신명기에는 '천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휘오이 데우)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천사들'이라고 바뀌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아들에게 천사들이 종속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천사들이 그리스도에게 종속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포함한 온 우주 즉 '오이쿠메넨'을 다스리시는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셨기 때문이다(3절). 그래서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경배해야만 한다.

 

=====1:7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 본절은 천사의 본성에 관한 진술이며 시 104:4(LXX)을 거의 그대로 인요한 것이다. 맛소라 본문에서는 본절을 "바람을 그의 사자로, 불꽃을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고 묘사함으로써, 바람과 불을 하나님의 통치의 도구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따르고 있는 70인역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들을 바람과 불꽃으로 삼는다고 말함으로써 천사들이 가변적인 본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과 천사들의 서열, 임무 등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됨을 시사한다. 또한 '삼으시느니라'의 헬라어 '포이온'은 문자적으로 '만들다'는 의미로 천사의 피조성을 시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용문을 통하여, 변하거나 소멸되지 아니하고 모든 창조 질서를 초월하시는 '아들'에 비해 가변적이며 소멸하기 쉬운 천사들이 열등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1:8,9

본문은 아들의 지위에 대한 진술로서 시 45:6,7(LXX)의 인용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 저자는 본문에서 아들을 '하나님'이라 부름으로 합당한 경배의 대상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6절에서 아들이 천사들의 경배대상이 되는 것과 상통한다. '홀'에 해당하는 헬라어 '랍도스'는 '막대기' '지팡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왕권을 시사한다. '보좌'와 '홀' 그리고 '나라'라는 표현은 '아들'의 왕적 권위와 통치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기 나라를 통치하심을 시사한다(시 103:19;애 5:19;마 25:31;계 4:2).한편 '공평'의 헬라어 '유뒤테토스'는 '막대기의 곧음'을 나타내는 말로서 '의’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홀 즉 막대기는 곧은 막대기로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정의롭고 바른 것임을 시사한다. 이 공평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기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 본문은 시 45:7을 인용한 것이다. 혹자는 위의 구절이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하신 행동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아들이 지닌 '의'는 자기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공의'의 판단으로 통치함을 의미한다(벧전 2:23;계 19:11).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 '기름 부음'은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행하는 의식이다(출 28:41; 삼상 10:1; 왕상19:16).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온전히 이루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의 기름을 예수께 부으셨다.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기름부으신 목적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하시기 위함이다.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 '동류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토쿠스'는 '동참자' 혹은 '동료'를 의미한다. '메토쿠스'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2:12에서 언급된'형제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전후 문맥이 천사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천사는 아들과 '동류'이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천사보다 뛰어난 직분을 수여하였다. 천사는 섬기는 직분을 지니나 아들은 통치하는 직분을 가지셨다.

 

=====1:10,11,12

본 구절은 시 102:25-27의 인용이다. 비록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라 할지라도 본 구절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서 아들되신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만물에 대한 그의 주권을 나타낸다.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바라 -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롬11:36). 저자는 본절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주로서 묘사함으로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 7절에서 천사들의 가변성과 유한성을 대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그것들'의 헬라어 '아우토이'는 앞절에서 언급한 땅이나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피조물을 의미한다. 모든 피조물은 멸망할 것이나 그리스도는 영원하실 것이다.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 저자는본문에서 피조물의 멸망과 유한성을 의복에 비유하고 있다. 이 의복의 비유는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의복이 '낡아진다'는 것으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멸망함을 시사하며, 다른 하나는 '갈아 입는다'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변형시키심을 시사한다. 아마도 저자는 이글을 기록하면서 파루시아(재림) 때 새롭게 변하게 될 우주를 의식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 '다함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레이프 수신'은 '끝나다' 혹은 '없어지다'라는 의미를 지닌 '에클레이포'의 미래 능동태로서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심을 암시한다(13:8).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 본절은 시 110:1을 인용한 것이다. 3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초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으로 나타난다. '내 우편에 앉았으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소유하심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주권과 통치를 나타낸다(3절).

 

 그런 그리스도의 지위와는 달리 천사들은 하나님에게서 우편에 앉으라는 초대를 받은 적도 없으며 단지 하나님 앞에 서서(눅 1:19;계 8:2) 섬기는 직분을 감당할 뿐이다. 저자는 본절에서 하나님의 초대를 통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절대성과 천사에 대한 우위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편 '네 원수로 발등상되게 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굴복시키심을 시사한다.

 

=====1:14

본절은 천사의 위상과 직분을 묘사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 '모든'은 천사들이 지닌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천사가 포함됨을 뜻한다. 한편 '부리는'의 헬라어 '레이투르기카'는 '섬기는', '봉사하는'이란 의미로서 천사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의 임무가 종으로서 섬기는 일임을 시사한다.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 저자는 본절에서 '구원'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구원얻을 후사'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수신자들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구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구원얻을 후사'는 만유의 후사이신 그리스도(2절)께서 이루신 대속 사역을 의지함으로 그와 함께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롬 8:17;딛 3:7). 천사들은 이렇게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얻은 자들을 섬겨야 한다. 한편 본절의 '아니뇨'는 수신자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수사학적인 의문이다. 저자는 이런 질문법을 통해서 지금 까지 언급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이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