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의한 삶(5) 이스라엘의 불신
출16:1-3(구약106)
믿음에 의한 삶 다섯번째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중 중요한 한가지는 바로 믿음에 의한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것도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고 바로 믿음에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은 무엇보다고 중요하고 중요합니다.
믿음이 아닌 것
1.열심이 중요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열심은 당연히 있지만 열심자체가 믿음은 아님
2.성경의 내용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 나 그 성경의 내용을 믿는 것 자체가 믿음은 아닙니다.
3.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마음의 확신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럼 성경이 말한 참된 믿음은 어떤 것인가, 믿음의 성격
1.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께 두는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어떤 사실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구절들을 읽으면서 “에이,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들같으니라고. 에이,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하나님을 분노케 하고 하나님을 대적했을까. 오죽 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졌을까. 답답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불신이고, 우리는 성경의 관점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엇을 두고 불신이라고 말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은 출애굽기 16장의 사건을 가리켜 불신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14장은 홍해를 건넜던 사건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5장은 원수들의 위협으로부터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 군대를 멸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을 추며 찬송하는 장면을 쓰고 있습니다. 16장은 홍해를 건넌 흥분이 채가라앉기도 전에 먹을 것이 떨어져 모세를 원망하는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16장 사건까지 애굽에서 싸가지고 나온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동이 난 것입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광야입니다. 인구 수는 장정만 60만명.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나무도, 풀도 없었습니다. 북한의 굶주린 주민들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전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댈 곳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상황 가운데 있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나같더라도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지 모릅니다. 솔직해집시다. 오늘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그 상황의 10분의 1만큼 어려움을 당해도 더 원망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이 사건을 두고 성경은 「하나님을 불신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대적했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악심을 품었다」,「하나님을 배반했다」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6장의 이 사건이 있기 전, 홍해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전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좇아 옵니다. 이 상황에서 원망과 후회가 없을 사람이 있을까요? 더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굳이 한군데 있다면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홍해바다는 수영으로 건너기에는 먼거리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수영을 다 배운 것도 아닙니다. 물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는 곧 자살행위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애굽으로 잡혀 갈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바로가 애굽을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두겠습니까? 혹사 당하지 않으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상황에서 모세에게 원망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부터 12절입니다.
⑩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⑪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⑫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런데 보십시오. 정작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의 군대는 물 속에 수장당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아서 날뛰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을 극한 상황에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를 보시고 하나나님께서는「너희가 나를 대적했노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건을 두고 여러 군데에서「저희가 하나님께 악심을 품었다」,「하나님을 배반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환경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불신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환경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의존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울부짖으며 하는 기도를 믿음있는 기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기도했을 것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떨어졌으니까요. 원망도 하면서 투정도 부리면서 그들은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을 두고 하나님은 “저들이 나를 배반했다”고 하시는 겁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다른 여러 길을 다 놓아두고 굳이 광야로 그들을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광야 길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이 잘 풀릴 때에는 믿음이 없어도 없는 사실을 모르고 지냅니다. 하나님외에 의지할 것이 없을 그 때에만 믿음이 속에 있는지 없는지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곳입니다.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기를 신뢰하는지 보시기 원하셨습니다.
환경의 역할을 파악해야 합니다
여기서 환경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란 우리 속의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환경은 우리 속에다 믿음을 넣었다 뺐다 하지 않습니다. 환경과 믿음은 상관이 없습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아니 백성들보다 더 힘이 들었지만 전혀 믿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원망만 하면 기도응답이 왔으니까요. 홍해가 가로 막혔을 때 원망했더니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물이 없어 원망했더니 물이 납니다. 고기가 먹고싶어 원망했더니 고기가 떨어집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야, 신난다. 원망만 하면 들어주시는구나.” 그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지만 몰랐습니다.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자기들만 사랑하시는 줄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을 놓쳤습니다.
믿음은 주님에 관한 지식에 기초하지도, 환경에 기초하지도 않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아이들 역시 굶어가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서 매우 고독한 순간을 맞이했지만 전혀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속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반면 백성들 속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우리의 불신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을 던질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를 발하셨는데 오늘날 우리들을 향해서는 어떠실까요. 단순히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넘겨버릴 사안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불신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을 것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평가말입니다.
2.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것)
믿음은 성령의 조명으로 발견된 인격체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히11장 믿음의 사람들 ->공통점 ->하나님께 자신을 다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노아 ->운동장보다 더 큰 방주를 만들어라, 그 당시 전기톱, 전기대패도 없었어요, 나무한그루 자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습니까?
또 비가 올 기미도 안보여요, 만약 비가 안오면 인생 종치는 겁니다. 그가 가진것이라고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한가지입니다. 노아는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을 걸었던 겁니다.
엘리야 ->아합왕 앞에서서 아합의 죄로인하여 이슬도 내리지 않을것이라고 말하라 당시 아합의 어떤존재인가? 5공의 전두환, 그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쉽지 않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되 부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전혀 믿음이 아닙니다.
4.믿음은 매번 새롭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때마다 새롭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리하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 번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속적으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다음 순간 하나님의 인도에 전적으로 순복하려면 우리는 또 다시 그 때까지의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그 좋은 예 ->여호수아
여호수아3:8-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여호수아에게 명한 명령은 8절의 말씀과 같이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는 겁니다.
또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은 도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두 차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게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만약 그 일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여호수아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망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모든 지도력을 잃게 되고, 백성들의 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여호수아가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약속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의 인도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여리고성의 경우르 생각해 보세요. 여호수아는 바로 얼마전에 요단강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앞에 섰을 때 그는 또 다시 그 때까지의 그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서야 했습니다. 얼마전의 승리가 이번의 승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싸움에서 실패한다면 이전의 승리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에 의한 삶은 매번 새롭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믿음에 의한 삶을 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대단한 영적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쉬운 길을 택하기 원합니다. 예측 가능한 길을 택하기 원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서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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