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과 받음의 원리
마 19:27-29
땅의 원리와 영적인 원리 속에서 “버린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씨앗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30배, 60배, 100배로 다시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버리는 것을 무조건 상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버리는 것은 얻기 위한 것이지 상실이 아닙니다. 투자는 이문을 남기기 위한 것이지 잃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버리라,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잃어버리기 위한 포기가 아닙니다. 버리고 포기하는 만큼 그 공간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땅의 것을 포기할 때 영적인 가치로 변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상을 받으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일을 했으면 일에 대한 대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속에 있는 성품입니다. 신약의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역시 하나님의 부르신 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그러므로 바울도 버릴 때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누구를 위해 버린 것일까요? 여기서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린 것은 사실이나, 주를 위해 버린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예수께 “무엇으로 보상해 주겠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예수께서 유대 나라 왕이 되면 자신도 한 자리 얻게 되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그것을 믿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바로 현재의 베드로의 신앙 상태이자 단계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신앙인들 뿐 아니라 주의 종들도 이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분명히 포기하고 버렸는데,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주님을 위해서인지 점검하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이 만일 자기를 위해 버린 상태 그대로 머물면 그 신앙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마지막은 비극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갈릴리로 도망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신앙생활하다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주를 버리고 다시 고기 잡으러 떠나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여기서 탈출해야 합니다. 신앙상태가 여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해 버렸다가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떠나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버리는 신앙의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 때문에 버리는 신앙의 단계는 언제 만들어질까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만들어집니다. 베드로는 성령 받고나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버리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지 않고는 자기를 위한 신앙을 탈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충만 받을 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충만 받아 주를 위해 버리는 자가 됩시다.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더 성숙시켜 정말 나를 위해 주를 좇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헌금하고, 주님을 위해 예배하고, 주님을 위해 전도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주님을 위해 섬기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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