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한 삶(12) 말씀과 성령의 조화
우리는 지난 11주 동안 성령에 의한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령에 의한 삶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요, 성령의 기름부음의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설교를 들으면 이제는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과 성령의 조화에 대하여 살펴보고자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조화는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실 때마다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말씀과 성령의 조화입니다.
1.“말씀, 말씀”
말씀을 강조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성경에 잘 계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잘 연구하여 적용하면 된다. 또 이러한 신앙생활이 가장 건전한 신앙생활이라고도 함 - 틀림
뭐가 틀린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 삶, 사역의 기준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잘 연구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뭐가 틀리다는 말인가? 이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라고 하는 것이 틀리다는 말입니다.
시편119편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록으로 제일 긴 장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것으로 만족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여호수아 시대에 나타난 말씀과 성령의 조화
여호수아 1:7-8을 읽고, 하나님께 여호수아에게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 부분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여호수아 1:7-8)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세를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고, 모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그 모든 역사들을 가장 가까이서 직접 목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셨고, 그것을 밤낮으로 묵상하라고 하셨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토록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 일부에서는 옳은 교리에만 집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조그마한 영적 체험만 해도, 목회자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필연적으로 미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의 삶은 단지 말씀에 의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말씀과 성령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신명기 34:9에 의하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신명기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지혜의 신이 충만함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은 성경을 잘 연구해서 그대로 잘 실천한 결과입니까, 아니면 성령께 민감해서 순종한 결과입니까?
성령께 민감해서 그 인도대로 순종함
여호수아의 삶은 철저하게 말씀에 기초한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은 성경을 잘 연구해서 그대로 실천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인 모세오경에는 어디에도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이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 등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성령께 민감하여 그 인도대로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 나타난 말씀과 성령의 조화
예수님의 삶은 특히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과 사역과 삶을 위한 완벽한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에도 말씀과 성령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⑴ 말씀과 성령의 조화
마가복음 1:21-27을 읽고, 사람들이 놀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두 가지 종류의 권세가 무엇이었는지 써 보십시오.
(마가복음 1:21-39)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 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32 저물어 해 질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마가복음 1:38에서 예수님께서 ?���전도(선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39절)
마가복음 1:21 이하의 사건은 마가가 기록한 예수님 공생애의 첫 번째 사건입니다. 다른 복음서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이 예수님 공생애의 첫 번째 사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가가 이 사건을 첫 번째로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의 권세가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두 가지 권세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각기 별개의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사역의 양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중 한 가지만 언급하셔도, 그 속에는 나머지 한 가지도 자동적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38절에서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오셨다는 말은 선포하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절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포는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고 성령의 사역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요약을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예, 마 4:23, 9:35).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⑵ 예수님은 말씀을 참으로 깊이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깊이 아셨습니다. 예수님께 함께 하시는 말씀의 지혜는 어렸을 때부터 율법사들이 놀랄 정도였습니다(눅 2:46-47). 또한 마태복음 5장에 7장 사이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내용을 보아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시는 한 부분을 보면, 이 사실을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4:5-7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마태복음 4:5-7)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사탄의 시험에서 두 번째 시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거기에서 사탄은 성경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편 91:11-12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의 시편 91:11-12과 사탄이 인용한 말 사이에 다른 점 한 가지를 찾아 써 보십시오.
(시편 91:11-12)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마태복음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네 모든 길에?���라는 다섯 글자로 빼고 인용함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하며 사탄의 의도를 물리치시며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심
사탄도 성경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절대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왜곡시킵니다. 원래 시편 91:11-12에 나오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여정에서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지키게 하심으로 우리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구절에서 ?���네 모든 길에?���라는 다섯 글자로 빼고 인용함으로써, 마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아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실 것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뿐 아니라, 이러한 사탄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하시며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델이실진데, 우리는 말씀을 더욱 정확하고 깊이 알아야 합니다. 단순한 이론적인 지식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⑶ 예수님의 성령께 민감해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던 성령의 사역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성령께 민감하여 사역을 감당하셨고,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을 읽고, 예수님께서 성령께 민감하여 사역을 감당하신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요한복음 5:19-20)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요한복음 10:37-38)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요한복음 14:10-11)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아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⑷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38은 예수님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한 구절입니다. 그 구절을 읽고 ( )를 채우십시오.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 성령 ) 과 ( 능력 ) 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의 삶 속에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삶 속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들 중 일부를 나열한 것입니다. 각 은사와 그것이 나타난 성경구절을 서로 연결해 보십시오.
지식의 말씀의 은사 ▷ ◁ 요한복음 11:43:44 능력 행함
지혜의 말씀의 은사 ▷ ◁ 마태복음 16:16-17, 22-23 영분별
영분별의 은사 ▷ ◁ 요한복음 8:7-9 지혜의 말씀
능력 행함의 은사 ▷ ◁ 마태복음 9:35 치유
치유의 은사 ▷ ◁ 요한복음 4:16-19 지식의 말씀
사도들의 삶에 나타난 말씀과 성령의 조화
사도들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 그대로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에게서 배운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을 읽고, 사도들의 삶 속에 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사도행전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로마서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고린도전서 2:1-2, 4-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초대교회 나타난 성령과 말씀의 조화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교회 가운데 말씀과 성령의 조화가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랬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최소한 외모적으로는 그 당시 다른 교회들에 비해 왜소한 교회였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교회들은 사도들이나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반면,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전도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또한 그 당시 다른 모든 교회들은 유대인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인 반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행 11:19-21).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그 당시 세계 복음화를 이루셨습니다.
(사도행전 11:19-21)
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안디옥 교회에는 말씀과 성령이 철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3:1-4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십시오.
(사도행전 13:1-4)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하나님 앞에 모여 있던 두 부류의 지도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무엇을 대변합니까?
누가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성경은 바울과 바나바가 누구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11:26에 의하면, 안디옥 교회는 무엇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1:25-26)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사들과 선지자들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각각 말씀과 성령을 대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도자들 뿐 아니라, 안디옥 교회는 그 성령의 음성을 분별했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성경은 교회가 그들을 안수하여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교회입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에는 말씀과 성령이 철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철저하게 말씀과 성령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교회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성령께 민감하여 그분의 인도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만약 안디옥 교회가 성령께 민감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지도자들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절대로 내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랬더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의 조화가 다가오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준비 중 필수적인 하나의 요소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두개인들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말씀도 성령도 없었습니다(마 22:29). 그들이 말씀이 없었다는 말은 그들의 삶에 이론적인 성경 지식만 가득했을 뿐, 그 실재는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이과의 요점
♡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조화는 필수적입니다.
♡ 개인뿐 아니라, 교회 안에 반드시 말씀과 성령의 조화가 있어야 합니다.
♡ 우리의 신앙의 모델인 예수님 안에 말씀과 성령의 조화가 있었습니다.
♡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삶에도 그랬습니다.
♡ 우리는 사두개인들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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