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27 열등감과 죄의식 ①
열등감과 죄의식의 이해
스바냐 3장 17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첫째, 죄로 인해 생겨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열등감과 죄의식입니다.
흔히 열등감은 환경적인 요소 때문에 생겨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학력이나 자라온 배경, 외적인 조건, 신체적인 장애 등으로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환경요소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본래 인간이 죄인이기에 완벽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가지는 상한 감정입니다. 또, 죄의식은 도덕적으로 얼마나 깨끗한가 아니면 부족한가 하는 점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 죄인이기에 누구나 다 가지게 된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아무리 본인의 삶이 능력 가운데 완벽하다 할지라도, 또 환경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할지라도, 양심적으로 선을 많이 행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죄인이기에 열등감과 죄의식을 가집니다.
둘째, 열등감과 죄의식을 치유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원초적인 감정을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풍성한 축복을 주실지라도 열등감과 죄의식으로 인해 이들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열등감이 있으면 늘 위축되고 불안과 긴장에 싸입니다. 또 주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쉬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기가 힘듭니다. 죄의식이 있으면 늘 피곤합니다. 죄의식을 보상하기 위해서 늘 긴장하며 눈치를 보며 살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열등하지 않음을 압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열등하지 않음을 압니다. 우리들의 의식의 세계에서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면의 세계에 들어가면 막연하지만 열등한 부분이 있습니다. 무의식의 세계에는 열등함으로 아파하며 위축되고 긴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면에서는 죄의식으로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있음을 알아도 열등감이나 죄책감에서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치유되지 않은 내 안의 열등감이나 죄책감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제한시켜 놓습니다.
이를 비유해보면 음식을 먹는 것과 흡사합니다. 건강하려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믿고 의지적으로 씹고 삼킵니다. 그러나 삼켰다고 해서 음식물 모두가 영양분으로 몸에 흡수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음식물이 내 골수까지 영양을 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는 씹어 삼킬 뿐입니다.
삼켜진 음식물들은 소화, 흡수, 대사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한 과정이라도 잘못되면 비록 값비싼 음식을 먹었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도 속에서 부글 부글거리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설사할 게 뻔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또 먹어도 소화기관이 나쁘면 몸은 삐쩍삐쩍 마를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보화 같은 음식들, 약속, 생명의 떡을 먹었어도 우리네 영혼은 삐쩍삐쩍 마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입었어도 영적인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계속 비틀거리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들 소화기관이 고장 났는데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흡수시키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아멘아멘”하며 “믿습니다”하며 받아먹었어도 속에 그것들이 들어가 강건해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아무리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속에 들어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풍성한 삶을 살게 해야 하는 데 그러질 못하게 합니다.
왜 소화가 안 될까요? 이유는 본인 의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지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소화기관의 문제점은 열등감과 죄의식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풍요한 삶을 주셨어도 받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열등감이나 죄의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 항상“나 같은 것이 에이…”합니다. 이러한 열등감은 분노가 속에 자리 잡으면 더 커집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축복들을 거부합니다. 자신은 굶어야 하고 그냥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게 합니다. 물론 겉사람은“아, 하나님의 은혜라!”하면서 받아먹습니다. 그러나 자기 속에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안 돼!”하며 거부합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꾸만 부정적으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적으로 믿지마는 삶에는 적용을 못시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아멘”하였습니다. 성령충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만 가면 식구들에게 나눠줄 것이 없습니다. 식구들이 굶주려 있는 모습을 보면 도리어 짜증만 납니다. 분명 하늘의 음식으로 배불렀는데도 나눠줄 것이 없어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넉넉하고 은혜로운 모습으로 나눠주기는 커녕 분노만 치밀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매번 이런 생활이 계속 되다보면 죄의식에 빠져 버립니다. “왜 난 이 모양이지?”, “하나님께서는 날 덜 사랑하시는 건가?” 철야기도회에 더 열심히 나가 봅니다. 기도원에도 가봅니다. 그러나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부흥회와 목사님들, 세미나를 찾아다닙니다. 문제는 소화기에 있는데 말입니다. 내장을 먼저 고쳐야하는데 말입니다.
열등감과 죄의식을 치유하는 일은 내 안의 소화기관을 고치는 일과 같습니다. 위장이 나쁜 분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 시대는 참으로 음식의 풍요시대입니다. 영양 많은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위장이 나쁘다면 다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못 먹는 고통은 참으로 큰 고통입니다.
당신의 소화기능은 어떻습니까? 맛있는 생명의 떡이 들어오면 팍 팍 소화시키고 있습니까? “아, 난 왜 이리도 영적으로 왜소해 보이는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왜 이리도 없는지?”, “왜 난 이리도 무력한가?”, “아, 난 왜 말라빠져 있는가?” 이런 분들은 자기 안의 소화기를 보셔야 합니다.
셋째, 정죄와 책망은 다릅니다.
죄의식은 원초적인 죄의식과 후천적인 죄의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상한심령이며 후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았을 때 오는 상한심령입니다. 후천적인 죄의식 또는 죄책감은 다시 정죄와 책망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사단이 주는 것이요, 후자는 성령의 조명이 있은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는 사랑과 정상적인 판단이 있습니다. 심지어 죄를 지적하실 때에도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책망(convict)을 하시는 반면, 마귀는 정죄(condemn)합니다. 마귀는 손가락질을 합니다. “이 뻔뻔한 놈아, 위선자야” 마귀는 용서받은 죄까지도 들춰냅니다. 마귀가 말할 때, 죄를 들춥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도들이 이미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은 죄까지 들추어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성도들을 정죄하고 낙심시키고 좌절시킵니다. “집사(혹은 장로, 목사)라는 자가 그런 죄를 짓고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교회에 갈 수 있느냐? 어떻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느냐? 이 위선자야” 여러분, 이러한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사단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이러한 목소리로 여러분을 고소할 때, 재빨리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공로로 사단을 대적하십시오. “그래, 나는 그러한 죄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그 죄를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그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용서해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거짓말쟁이 사단은 그 정죄함을 가지고 내게서 떠나가라”
반면에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해 주실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시면 회개하는 맘이 넘칩니다. 그 지적이 기뻐요. “맞아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죄를 깨닫게 해 주심과 동시에 우리에게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를 회개로 인도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실 때는, 우리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매우 마음이 아프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성령께서 고치시도록 합시다. 말씀의 영양분이 쑥쑥 들어와서 영혼이 영양분으로 윤택해 지고 심령골수가 살찌고 윤택하게 만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우리들의 속이 힘 있게 만듭시다.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것이 있는 사람이 됩시다. 목마른 영혼들에게 하늘의 풍성한 것들을 한없이 나눠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오병이어의 삶을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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