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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28강 열등감과 죄의식 ②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28                                            열등감과 죄의식 ②


열등감의 원인


  첫째,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 곧 열등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누군가의 보호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바르고 진실 된 모습입니다. 열등감을 인정하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열등감은 피조물의 본질입니다. 열등감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열등감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여 서려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열등감을 피하려는 행위는 분명 죄가 됩니다. 그러나 열등감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죄를 지은 일은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열등함을 인정했었더라면 죄가 틈을 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등감은 하나님을 찾게 되는 지름길이요 하나의 축복입니다. 열등감을 감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감추려다가 죄를 짓습니다. 물론 사람 앞에서는 감추어야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있는 것처럼 감추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교만입니다. 인간의 겸손이란 있으면서 없는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내가 피조물이라는 점. 내가 열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겸손입니다. 박사, 의사, 목사, 집사 등의 명예나 호칭은 하나의 옷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바에야 옷을 자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옷을 벗고 자기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곳에 겸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바로 깨닫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백하는 자를 세우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등하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죄를 짓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히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또한 버림받게 되면 열등감을 가집니다.


  열등감을 감추려다가 인간은 범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죄의식이 생겼습니다. 죄의식은 자신을 자책하게 만듭니다. 나는 나쁜 놈이지”, “나는 죽일 놈이야. 자책하게 합니다. 자책감은 자신을 단순한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나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인식하는 사이에 버림받은 마음과 더 큰 열등감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범죄 하면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생각해 볼 사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열등감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지는 중요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정체감입니다. 그런데 열등감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열등감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그 능력들이 아무 소용없어 진다는 말입니다.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을 교육할 때 사람이 가진 은사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실, 은사나 능력이란 하나의 재료일 뿐입니다. 정작 은사나 능력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은 내면에 있는 자신감입니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하여 생겨난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자란 자존감, 정체감이 바로 원동력인 것입니다. 자녀들을 교육할 때, 외적인 재료인 피아노, 공부, 그림 등을 가르치지만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자기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열등감은 자기 내면의 추진력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열등감을 치유하면 개인적으로 굉장한 힘을 얻습니다.


  흔히 머리가 좋다거나 나쁘거나 하는 차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약간의 시간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머리가 좋은 사람이 5시간 걸려 할 수 있는 일을 머리가 나쁜 사람은 7시간 걸려서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2시간 더 열심히 하면 되는 차이입니다. 여기서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의미지 열등감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쁘다는 것못 하는 것과 다릅니다. 조금 느릴 뿐입니다. 빨리 끝내느냐 늦게 끝내느냐의 차이입니다.

                           

  인생은 사실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할 일을 못 했다라는 말은 변명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성공하기 보다는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입니다. 머리가 좋다고 일을 반짝 끝낸 후 자만하던 사람이 종국에는 실패하는 일을 종종 봅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반짝거리는 일이 없이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이 무서운 법입니다. 남들이 1년에 할 것을 10년 동안 쉬지 않고 했던 사람이 오랜 후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가 되는 법입니다. 대가들은 머리가 반짝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꾸준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자존감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자녀들에게 키워줘야 합니다. 그런데 자존감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녀를 키울 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려 듭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부족하면 자녀들을 자꾸 야단칩니다. 그러다가 정작 내면의 추진력과 인격까지 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림받은 마음은 열등감을 키우며 자존감을 상실케 만듭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술은 배우지만 자존감을 잃고 살아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르르 주저앉는 사람들. 부모들이여 껍데기를 가꾸지 마십시오. 명언입니다. 자동차를 보십시오. 아무리 외형이 멋있어도 그 차를 움직이는 힘은 엔진에 있습니다. 엔진의 힘에 따라 3천cc, 2천cc, 1천cc 용량이 결정됩니다. 만약 자존감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용량이 자꾸만 줄어들어요. 3천cc짜리 자신을 종국에는 1천cc짜리로 줄어들게 만듭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요구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랬으면 하는데”, “당신의 기도가 부족한 것 같아”, “당신이 신경써줘야 되질 않느냐 등등. 이러한 요구를 받으면 싫든 좋든 실행에 옮겨야만 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런데 정    작 실행 중에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행하면서도 기쁘지가 않습니다. 언젠가는 이 일로 더 큰 다툼이 생겨납니다. 서로 요구하기 전에 자존감을 격려해 주고, 상대방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서로 요구만 했던 결과입니다.


  요구한다는 것은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배경에 깔려있습니다. 요구를 받다보면 해야 할 일은 자꾸 많아지고 인정은 받지 못하니까 마음은 위축되고 실행능력이 자꾸 떨어집니다. 자녀들을 너무 도덕적, 윤리적으로 가르치다 보면 열등감을 조성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은 겉으로는 윤리적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위축현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자기 억압에 눌려 버립니다.


  흔히, 누군가가 자신감이 가지면 그 사람 교만해하면서 비판합니다.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안 되는 법이야 말합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되는 거야” 가르칩니다. 이런 생각들이 자신감을 눌러버립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배우는 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신앙을 자라게 한다는 이유로 요구를 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배우는 분들은 실패할 때마다 죄의식과 자책감에 빠집니다. 자신의 인격을 누르게 됩니다. 눌려진 부분들은 열등감으로 작용합니다. 삶이 자꾸만 찌듭니다. 신앙훈련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의 추진력을 찌그러뜨리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신앙이 자라는 것 같아 좋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이 지칩니다. 신앙훈련을 감당 못하게 됩니다.


  열등감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죄로 인한 자신의 추한 모습을 성령의 조명아래 비춰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열등함을 보지 못한 사람은 상대방의 열등감, 눌린 인격이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버림받음을 보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잘 살다가 어느 날 와르르 무너지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 사람 참 괜찮았는데”, “참 사람 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말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내면의 아픔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이러한 억압된 인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눌려진 인격, 많은 원인으로 자리 잡은 열등감, 이런 아픈 마음이 내 속에 있다고 인정 하십시오. 억압된 인격과 눌려진 마음 때문에 내 생활 속에 문제꺼리들이 생겨났다는 점을 인정하십시오.


  자신이 먼저 치유되어야만 가정이나 교회, 삶의 현장에서 상대방에게 요구하기보다 상대방의 인격 속에 있는 굶주림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움을 입고 싶어 하는 굶주림을 보    게 됩니다. 그들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세워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도록 도와주며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버림받지 않도록 인격을 세워줍니다. 이것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존감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볼 때 가능합니다.


  셋째, 분노를 억압하면 열등감의 원인이 됩니다.


  분노를 억압하면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분노가 속으로 파고듭니다.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간 분노는 자기학대, 자기공격을 하게 됩니다. 심하면 우울증으로 자랍니다.


  넷째, 외적인 환경조건도 열등감의 원인입니다.


  버림받은 피조물들이 죄와 죄의식, 분노 속에서 사회와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사회와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열등감을 조장하는 환경 속에서 살게 마련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곧바로 비교되는 세상.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환경적인 요인으로서 열등감의 원인으로는 신체조건, 가난, 학력, 자동차 등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원인들이 열등감을 조성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원인들은 우리 속의 비교의식과 결합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원인들    은 열등감의 문패와도 같을 뿐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초등학교 학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열등감을 없애려고 열심히 공부하여 늦게나마 학력을 높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서 열등감은 사라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느 날 다른 열등감이 이 사람에게 생겨납니다. 이처럼 열등감은 문패를 바꾸는 특징이 있습니다. 새로 생겨난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또다시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그 열등감의 요인을 없앨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열등감이 생겨납니다. 이 열등감의 악순환. 내면의 세계에 있는 아픈 마음을 주님 안에서 치유해야만 합니다.


  물론 외적인 것들은 중요합니다. 정말 학력이 문제가 된다면 야간학교라도 다녀야 합니다. 외모가 문제가 된다면 성형수술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집착하면 안 됩니다. 외적인 것 이전에 있던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야 합니다.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열등감을 없애야 합니다. 속의 원인을 제거하면 외적인 원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외적인 것들을 향한 집착을 줄일 수가 있습니다. 남들은 자기를 보고 열등하지 않다고들 하는 데 유독 자기가 자기를 가리켜 열등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속의 원인을 먼저 없애야 합니다.


  다섯째, 사단이 또 하나의 원인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 던 자가 쫓겨났고  (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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