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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24강 분노하는 마음 ②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24                                              분노하는 마음 ②


분노하는 마음의 증상


  첫째, 인간관계가 불편해집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게 분노가 있으면 아버지와 비슷한 직위나 직장,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분노를 느낍니다. 그들 앞에만 서면 서먹서먹해집니다. 얘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빨리 그 자리를 떴으면 하는 마음만 듭니다. 가능한 눈도 마주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분노가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를 만나면 별로 할 얘기가 없다든지 자꾸 시계만 보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으셨습니까? 특정한 그 사람만 만나면 몸이 불편해집니다. 이는 꼭 그 사람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그 사람과 연관된 분노가 있기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공격적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불편을 겪게 만듭니다.


  딸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병들고 약해지셨습니다. 자기가 아버지를 돌보아야만 하는데도 딸은 이 핑계 저 핑계 대해서 아버지에게 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핑계를 댑니다. 왜 그럴까요? 아버지에게 가면 불편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아버지 얼굴만 보면 속에서 뭔가가 올라와요.     


  둘째, 특정한 사람에 대해 마음의 문이 닫힙니다.  


  전화나 방문을 안 해줬으면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무언가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 속에서 자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마음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말로 마음의 문이 닫혔는지 안 닫혔는지를 알려면 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눈을 얼마나 부딪치고 사는지 여부를 보고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부부가 살면서 눈을 얼마나 부딪치면서 사는지를 보면 사랑의 정도를 압니다. 비디오로 한 번 찍어 보십시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눈이 안 맞아요. 어쩌다 눈이    맞았다가도 시선을 얼른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손만 보입니다. 머리카락만 보입니다. 초점이 없어집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눈을 맞춘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불편하니까요. 속에 분노가 있으니까요. 눈이 안 맞으면 입까지 닫힙니다. 대화가 단절됩니다. 냉기가 흐릅니다. 겉으로 할 일만 할 뿐입니다.


  냉전이란 마음을 열었다가는 상처를 입을까봐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입니다. 그냥 마음의 문을 닫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면서 닫습니다. 부부란 서로 줘야하는 사이인데 한쪽이 마음을 닫기 시작하면 어디서 굶주림을 채웁니까? 굶어 죽어요. 한쪽이 닫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같이 죽어요. 냉전이란 간접적인 복수요 공격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냉전이 계속되면 남편은 남편대로, 술로 풀면서 바람을 피울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싹쓸이 쇼핑 등을 통해 풀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풀린 것이 아닙니다. 분노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눈을 맞추지 않으면 그 사람은 소경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눈이 닫힙니다. 여러분은 목사와 눈을 얼마나 맞추고 사시나요?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한 만큼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도들이 서로 눈을 얼마나 맞추고 교제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다른 사람의 머리 뒤에 자신을 감추고 예배드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 억압된 분노를 더 깊이 감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억압된 분노는 더 깊이 감추어지기도 하지만 분노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교묘히 포장이 됩니다. 상대방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억압된 분노는 과잉된 친절이나 충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을 정신의학에서는 ‘반동형성’이라고 합니다. 바람피우는 남편이 아내에게 더 잘해주는 격이지요.


  누군가에게 분노가 있으면 분노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에게 적개심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악수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더 눈을 맞추고 아양을 떱니다. 여러분, 너무 살살거리고 간신처럼 아부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믿었다가 발등 찍힙니다. 특히 너무 친절한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매사에 의리! 의리! 하면서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매사에 악수도 잘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들의 속에는 대개 뿌리 깊은 분노가 있습니다. 사람을 겉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다 의심을 해서는 안 되지만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속고 속이는 세상입니다. 과거 우리들은 어른들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효도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마음 중심에서부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을 보시지 않고 속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무지하게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속을 아시기에 속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화를 잘 내는 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잘 나타났습니다.

   

  넷째, 억압된 분노는 신체의 이상을 일으킵니다.


  분노를 억압하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듭니다. 올라오는 것을 눌러야 하니까 힘이 들지요. 분노를 억압하고 사는 사람은 늘 누르고 있어야 하니까 쉬지를 못합니다. 늘 피곤합니다. 심지어는 밤에도 쉬지를 못합니다. 꿈속에서라도 분노가 올라오면 안 되니까요. 어떤 사람은 “나는 꿈을 꾸지를 않는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꿈에서까지 누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자면서도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히 “아, 피곤해”를 자주 연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예로 들겠습니다. 사람이 10이라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합시다. 일하는 데에 3을 씁니다. 그러면 나머지 7이 남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억압하는 데에 6이라는 힘을 쓴다면 이 사람은 4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하니까 늘 1의 힘만 남게 됩니다. 내면에서 6을 쓰고 밖에서 3을 쓰고 겨우 잉여 에너지는 1만 남습니다. 자연히 피곤하게 됩니다.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젊었을 때에는 잘 모릅니다. 누르는 힘이 강하니까요. 아직은 싱싱하니까요.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힘이 듭니다. 젊을 때 분노를 너무 억압한 사람은 노년이 괴롭습니다. 힘을 다 썼으니까요. 여력이 없는 게지요.


  다섯째, 심하게 억압된 분노는 자학과 심한 열등감, 우울증, 기억력감퇴 등으로 나타납니다.


  젊을 때 멀쩡했던 사람이 40이 넘고 50이 되면서 갱년기 우울증이 생깁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자들은 폐경기가 오면 속에 억압되어 있던 분노가 밖으로 나타납니다. 폐경기 증후군이니 폐경기 우울증이니 하는 병들이 그런 증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분노를 억압하면 피곤하니까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기억력도 감퇴됩니다. 우리 주변에 뭘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평소에 무언가를 늘 억압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증상은 집착이 강한 사람에게서 잘 나타납니다.


  피곤하고, 집중력이 감퇴되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우울증의 초기 증상입니다. 치유가 늦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우울한 감정까지도 억압하면서 삽니다. 그러면 억압된 감정들은 어떻게 될까요? 신체이상으로 나타납니다. 몸이 긴장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긴장할 수밖에 없을 때에는 어쩔 수없이 긴장을 해야 하지만 잠을 자면서 풀어야 합니다. 수면 시간에 풀지 못하면 잠버릇이 나빠집니다. 이를 악물고 자던지 이를 빡빡 갈며 잡니다. 다음 날 일을 할 때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우리 몸 중에 허리나 머리, 목의 근육이 가장 긴장을 잘하는 부위입니다. 억압된 분노는 계속되는 두통을 가져오고, 더 나아가 목 디스크와 허리를 잘 쓰지 못하게 만듭니다. 물론 디스크의 원인이 많지만 억압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디스크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억압된 분노는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억압된 분노는 각종 병균과 발암 물질에 대한 몸의 면역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면역성이란 신체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기 몸과 병균을 구별하는 능력이지요. 억압을 오래하면 자기라는 특성이 약해집니다. 자기와 병균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를 면역력이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억압된 분노는 감기몸살을 쉽게 앓게 합니다. 병에 쉽게 걸리게 합니다. 정신면역학에서 암에 잘 걸리는 사람들의 성격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들은 대개 속을 썩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법 없이 살 사람들’이라는 사람들이 암에 잘 걸립니다. 착한 사람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암에 잘 걸립니다. 그들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속에다가 꽁꽁 집어  넣는 사람들입니다. 더러운 꼴을 다 집어 삼키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많습니다. 적당히 터뜨리고 살아야 하는데 꾹꾹 누르고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알고 몽땅 삼키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속에서 삭이고 또 삭이고 사는 사람들은 암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을 보십시다. 그들은 복종을 강요당하며 살았던 분들입니다. 참으로 부모에게는 착한 자식이었고 나라님 앞에서는 착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살만큼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그들의 병이 너무 깊어 고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참으로 아까운 사람들이 병에 잘 걸리고, 참으로 착한 사람들이 죽을병에 잘 걸립니다. 화도 잘 내고 분노를 자주 폭발하는 사람은 병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서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에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저런 인간은 데려가시지 않고 아까운 사람은 데려가셔” 그래서일까요? 화를 잘 내고 폭발 잘하는 사람은 고혈압이나 혈관이 터져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분노는 내 안에 있으면 안 좋습니다. 또 밖에 있어도 안 좋습니다.  분노는 폭탄입니다. 죽이는 화살입니다. 분노가 안에 있으면 내가 죽습니다. 밖에 있으면 가족과 친구들이 죽습니다. 목사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교회와 성도가 죽습니다. 구역장이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구역이 죽습니다. 교사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학생들이 죽습니다. 아버지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자녀들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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