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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형제 ● 대전에 있는 대학? 충남대, 한남대(예장통합), 목원대(감리교대전신학원), 배재대(아펜젤러 배재학당 - 감리교), 침신대(침례교), 혜천대(대전전문대)... 그런데 주요 사립대학은 모두 미션스쿨이다. 특히 감리교 계통 미션스쿨이 두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전에는 감리교 교세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많다. 감리교는 영국의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인 요한 웨슬리의 신앙과 신학을 바탕으로 형성된 교파로서 장로교와 동시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습니다. 감리교는 장로교와 달리 칼빈의 예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은 구원 받을 사람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미 예정해 놓으셨다는 교리를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말씀에 입각한 교리인데, 감리교에서는 이것을 인간의 입장에다 무게를 두어, 인간은 그같은 예정에 대해 알.. 2023. 12. 18.
쯔빙글리 1.개혁주의자가 되기까지의 쯔빙글리 쯔빙글리는 루터보다 7주 늦은 1484년 1월 1일 스위스의 작은 도시 빌트하우스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그 부락의 촌장을 역임해왔고, 그의 아버지는 당시 시장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카톨릭 사제였다. 쯔빙글리의 삼촌은 대학 학장이었는데, 쯔빙글리는 삼촌을 통해 신학교육을 비롯 새로운 학문 조류였던 인문주의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쯔빙글리는 10세때 라틴어문법, 음악 그리고 변증학을 배웠으며, 열성적인 그의 부모는 영특했던 쯔빙글리를 아주 어릴 때부터 외지로 유학을 보냈다. 베른 대학과 비엔나 대학을 거쳐 1502년 바젤 대학에서 당대 최고학자인 에라스무스의 개혁 사상을 소개받아 인문주의자가 되었으며, 후일 에라스무스를 직접 만나 그와 학.. 2023. 12. 18.
존 칼빈 칼빈은 성직자의 사업 담당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노용 대성당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주교의 후원을 얻어 성당 신부에게 지불되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는데, 12살 때에는 당시 성직자가 되는 풍습대로 삭발까지 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머리가 총명하고 뛰어났던 칼빈은 형제들과 함께 고향에서 카피츠학교를 다녔는데, 타고난 지성과 판단력으로 학우들 사이에서 뛰어난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칼빈은 기록에 의하면 안색이 좋지 않았으며 몸이 허약하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수줍어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사리를 판단하는 데에는 정확했다. 그리고 그의 지적 능력은 아주 뛰어났으므로 아버지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칼빈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투.. 2023. 12. 18.
마틴루터 중세 시대에 사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였다. 사제의 속죄 권한에 대한 미신 때문에 중세인들은 사죄 받는 최선의 길이 수도승이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보통 신자로 살아서는 이 땅에서 예수님의 명령을 완전히 이룰 수는 없지만 수도 생활을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이 만연하여, 많은 사람들은 수도승이나 수녀가 되려고 하였다. 중세인들에게 있어 수도자로서의 서원은 일체의 부수적인 죄악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제2의 세례로 간주되었고, 수도복의 효력은 대단해서 생전에 그것을 입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임종시에라도 입어 보길 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무지와 미신이 왕 노릇하던 시기에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든 마틴 루터가 태어났다. 마틴 루터(1483-1546)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아버지이다... 2023.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