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편 묵상

[시 147편] 영육간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찬양

by 은총가득 2022. 8. 16.

 

 

[시 147편] 영육간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찬양

[내용개요]
이 시인은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불러모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다(1-3절). 그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구원 행위가 하늘의 별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능력으로 되어졌다고 말한다(4-5절). 경솔한 자를 붙드시고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6-7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식물을 주시고,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에게까지 먹을 것을 주시는 자비하심 때문이다(8-9절). 한편,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병력에 의한 국방을 믿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으라고 교훈한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과는 달라서 여호와 하나님만 믿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10-14절). 이 시인은 자연계를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찬송한다. 눈이나 서리, 우박, 추위, 바람 같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15-18절). 시인은 마지막에서도 이스라엘 에게 율례의 규례를 주신 하나님께 찬송한다(19-20절).


[강 해]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로 생활에서 회복하심을 인하여 찬송함이 마땅하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유지시키실 뿐 아니라 말씀을 보내시어 죄인들을 구원하심은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영적인 의미를 지니며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1 .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1) 이스라엘의 흩어진 마를 모으심
시인은 하나님께 찬양 드림이 아름답고 마땅함을 밝히면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훼파되었던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고 이방에 뿔뿔히 홑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셨습니다. 또한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고치시며 상처를 싸매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심은 영적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구원 역사를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음 안에서 쏜 세상 만민 중에 거하는 택하신 백성을 부르시어 죄악의 질병을 치료하여 구원하시고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a. 별과 같은 하나님 백성(창15:5)
b. 정직한 자의 찬송(시33:1)

 

2) 능력과 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로 그 능력이 많고 지혜가 풍성하심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창조와 구속 사역에서 밝히 증거되었습니다. 특히 시인은 하나님께서 포악하게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신 구원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풍성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을 멸망시키신 공의의 심판을 행하셨음을 찬양하였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함을 받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높여 교만히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였던 것입니다. 능력과 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하는 자는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a. 광대하신 여호와(시48:1)
b. 권능이 크신 여호와(나1:3)

 

 

 

 

2.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

 

1) 자연의 공급자이신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주관하시며 모든 생물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심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려 주시어 식물을 자라게 하시고 모든 들짐승과 새들에게도 식물을 공급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이러한 고백과 찬양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며 인도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의미합니다. 들짐승과 들풀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지 아니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땅에 식물이 나게 하심(시104:14)

 

2)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 없고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겸손히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자백하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a. 큰 힘으로 구원치 못함(시33:17)
b. 겸손한 자를 구원하심(시149:4)

 

3) 그 명을 땅에 보내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그들의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평안을 허락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배불리심을 인하여 찬양하라고 명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육신의 생명을 위해 내리시는 복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서 인생에게 주신 복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으로서 하나님 백성에 대한 구원 역사를 반드시 성취시키는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자기 백성에 대해 영육간에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a. 성을 파수함(느7:3)
b. 아름다운 밀로 먹이심(시81:16)

 

 

 

 

3. 이스라엘에 보내신 말씀

 

1) 추위를 녹이는 말씀
시인은 하나님께서 눈과 서리와 우박을 내리시어 임하게 된 추위를 아무도 능히 감당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셨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던 상황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인한 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을 내리심(욥37:6)

 

2) 이스라엘에 말씀을 보내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모르는 말씀과 규례를 이스라엘에 보내시어 구원을 행하셨음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오염되어 타락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냈습니다. 이방 민족들이 체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이스라엘은 체험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하시는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구원받은 자는 누구나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a. 모세에게 명한 법(말4:4)
b. 이스라엘에 정하신 법도(시78:5)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의 양식을 공급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풍성히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세상 만민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성도는 영육간에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유지케 하시며 영원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인해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마땅하도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적 의무이며 당위적 행위임을 의미한다.

2절. 세우시며.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예루살렘을 재건한 사건을 가리킨다. 흩어진 자.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해 바벨론과 애굽 등으로 포로 되어 가거나 피난한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를 가리킨다.

4절. 계수하시고 원어는 '수효를 세다'라는 뜻 외에 '알다, 지정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별의 수효를 정확히 아시고 그들의 운행을 모두 정하시는 분임을 암시한다.

6절. 붙드시고 고란이나 재앙으로 인해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을 의미한다.

9절. 들짐승. 원어는 원래 집에서 기르는 가축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10절. 말의 힘. 하나님을 경멸하고 인간 자신의 힘과 수단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다리.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고 인간의 생각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13절 .견고히. 어떤 수단으로도 넘어뜨리거나 깨뜨리지 못할 만큼 단단한 상태를 가리킨다.

14절. 경내. 국가와 국가의 영토를 구분짓는 경계선을 가리킨다. 아름다운 밀. 가장 좋은 밀, 즉 최상의 식물을 의미한다.

15절. 명. 우주 삼라 만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 명령을 가리킨다. 속히 달리는도다. 하나님의 섭리 명령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곧바로 실현되어짐을 말한다.

16절. 눈을 양털같이. 더운 지대인 팔레스타인에서 눈이 양털같이 많이 내리는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19절. 야곱에게.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신학주제]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에게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였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연단의 기간을 거치게 하신 후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주셨다 그러나 이곳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과거 자기들의 민족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방 민족의 신을 섬기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며 세속 국가를 꿈꾸어 나간다. 이들의 가증됨 앞에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국가 전체를 흩으실 계획을 세우신다. 그러나 이는 조상과 맺은 언약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흩으신 민족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신 후 다시 불러모으실 계획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이방 민족의 식민 국가가 되 버린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경고 앞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의 운동을 벌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종처럼 모으시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이후의 이스라엘은 2000년 간 세계의 식민 국가가 되고 방황하는 민족으로 되 버린다.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계획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 이 후, 율적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에서 성취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민족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넓혀 주셨던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목적이 아니었다. 영적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이스라엘 조상과 맺은 하나님의 원래적 언약이었던 것이다.


[영적교훈]
구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영적 이스라엘 즉 아브라함의 언약 가운데 있는 구원받을 모든 사람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 전파와 이스라엘에 포함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우리 신자들은 아직도 그 혜택에 멀어져 있는 민족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아시아의 소수 민족들은 복음의 혜택에 있어서는 너무도 소외되어 있다. 복음 전파는 주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이다. 구원받는 자의 기쁨은 당연히 복음 전파의 모습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기쁨을 모르는 이들에게 함께 나누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http://cafe.daum.net/jususeye/acDI 

 

 

 

 

시편 147편

Ⅰ.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신 여호와 147:1-11

(1) 이 노래의 첫머리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면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면이 몇번에 걸쳐 반복되어 있다. 우선 '하나님께 찬양함이'선하다고 서술한 뒤에(1절) 비슷한 표현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해 놓았다(7절).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이 말씀은 곧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권면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곧 성도로서 지켜야 할 본분이므로 선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

 

(2)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예루살렘은 처음에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했으나 크게 일으키심을 받았고 성읍 전체가 멸망을 당했다가 다시 세우심을 입었다. 물론 두 가지 경우 모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신'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온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복음의 교회 역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그 백성 이스라엘은 간혹 자신들의 어리석은 소행으로 말미암아 흩어짐을 당하기도 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대마다 회개하게 하시고 저들이 다시금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곳에 모아 주셨다. 그러면 그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며 상심하고 돌이켜 지난날의 잘못을 기억하면서 괴로워하게 된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스스로 큰 해를 입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마음은 온통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같은 때에 평강을 전하시는 성령을 보내사 위로하시고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 사람은 하늘의 별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하였다.

 

이는 곧 별들도 모두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부르심에 따른다는 뜻이다. 별들이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등 모든 운행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다. 시편 기자는 수많은 사례 가운데 별의 경우를 예로 들어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무엇이든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시다)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는 말씀의 증거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이었다. 인간의 지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과도 같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아지며 세상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자들을 일컬으며, 악인은 하나님께 무례히 행하고 이웃과 형제를 멸시하며 어리석게도 교만한 마음을 품어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도 명하실 만큼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면서도 '우는 까마귀 새끼를'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8,9절).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구름은 우울하게 보이기도 하나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게 되고 과실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마치 어둡고 컴컴한 구름과도 같아 이를 보고 기쁨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고난의 먹구름이 있기 때문에 소나기가 내리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어' 수확을 하게 된다(히 12:11).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사람이 올라가서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일 수 없을 만큼 높은 산꼭대기에도 비를 내리사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신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풀은, 사람이 돌보지 못하며 거친 들판을 뛰어 다니는 야생 동물을 위해서 준비해 두신 먹이이다. 심지어 제 어미에게 버림을 받은 '우는 까마귀 새끼'의 소리를 들으시고 먹을 것을 베풀어주신다. 실로 하나님은 군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늘 풍성한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영광받는 것을 기뻐하신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싸움에 능한 병사와 군마가 많다고 흡족해 하실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왕이 이웃 나라를 치러 들어가면서 "여호와여. 나는 용감한 군대와 잘 훈련을 받은 군마를 거느리고 있나이다"하는 말로 승리를 거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은혜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무리를 기쁘게 받아 주신다. 여호와는...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교만함에 빠지지 않게 하며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마음은 공포에 젖어 절망하는 것을 막아준다.

 

Ⅱ.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147:12-20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과 거룩한 동산 시온을 향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권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시온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거민의 안전을 위해서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예루살렘 성에는 큰 문이 있었는데 위험한 일이 닥치면 먼저 이 문에 빗장을 지르곤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지 않고' 온 성읍을 두루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철저히 방비하여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먼저 여호와께 찬양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2) 예루살렘과 시온 거민들의 수가 늘어나게 하기 위하여 찬양을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문빗장을 견고히 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3) 온 백성이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황폐함에서 벗어나 평안히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는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라는 표현을 써서 하나님은 온 백성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쟁을 사전에 막으시기도 하거니와 이미 이러한 전쟁을 그치게 해주시기도 한다는 뜻을 나타내 주었다.

(4) 온 백성이 평강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풍요로운 생활까지 맛보게 되기 위해서도 찬양에 힘써야 한다.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가나안 땅에서 좋은 밀이 많이 산출되었으며 머릴 외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신 32:14;겔 27:17).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땅에서는 보석이나 향료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빵의 재료가 되는 '아름다움 밀'이 풍족하여 마음 든든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시온과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이는 곧 하나님이시다. 위대한 자연의 힘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자연의 세계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 천하 만물은 처음 지으심을 받을 대와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유지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소유하고 계시므로 언제든지 기쁘게 여기시는 때에 눈이나 우박을 내려 주신다(욥 38:22,23). 눈은 지극히 조용히 내리므로 마치 양털 뭉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이렇게 내리는 눈이 땅을 덮으면 양털로 짠 천을 덮어 놓은 것 같이 따뜻해져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간혹 전혀 다른 속성을 이용하여 역사하시곤 한다. 즉 약탈자의 입에서 먹을 것을 내시며 차디찬 눈을 내리시사 땅을 따뜻하게 하신다. 눈을 내리신 뒤에 다시 그 마음에 기쁘게 여기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신다'(18절). 겨우내 추위를 몰아왔던 눈과 서리, 우박 등은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신즉' 모두 녹아 없어지고 만다. 그렇게 춥다가도 하나님께서 따뜻한 남풍을 불게 하시면 곧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눈과 서리를 녹이는 말씀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며 따뜻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하고 있다(성령은 바람에 비유되었었다, 요 3:8). 물론 양쪽이 다 얼음과 같이 굳어진 영혼을 녹이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 회개의 은사는 마치 따뜻한 바람과도 같이 완악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풀어져 온화하게 변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 눈물을 흘리게 해준다. 이 은혜는 예전에 얼음과 같이 굳어져 있던 마음에도 따뜻한 사랑이 흐르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현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한가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임하사 그 영혼에 변혁을 일으키시고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신 결과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 곧 야곱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에 따라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즉 그 백성은 특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률과 율례에 따라 정치를 하는 나라로서 신정 국가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혜택을 누려 왔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율법의 중요한 사항들을 기록하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었다. 저희가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고' 말씀에 따르는 '율례와 규례를' 일러 주셨다. 이 세상에는 겉으로 보기에 큰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나라가 많다. 어떤 나라는 물질의 풍요함을 누리고 또 어떤 나라는 만방에 세력을 떨치는 방백의 다스림을 받는가 하면 수준 높은 문학으로 유명한 나라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아는 축복을 받은 나라는 지금까지 그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축복으로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해야 마땅한 것이다.cafe.daum.net/correctth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