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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시 146] 나의 평생에 찬양 할 하나님/ 10,000 Reasons

by 은총가득 2022. 8. 16.

 

 

 

 

[시 146편]  의지할 분이신 하나님
 

[내용개요]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함에 있어서 한 평생 하겠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은 믿을 바 되지 못하나 하나님은 영원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1-5절). 시인이 그렇게 믿는 이유는 여호와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참된 신이시기 때문이며 그 백성과의 계약과 그 실행에 있어서, 진실하시기 때문이다(6절). 인자하신 여호와는 약한 자를 들어 높이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악한 자를 처단하신다(7-10절).


[강 해]
시인은 생전에 여호와를 찬송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만이 의지할 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세자는 죽어 없어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통치자로서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완전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1.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송함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인은 자기 영혼에게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명하는데 이는 여호와를 찬양함에 대한 자신의 강한 의지와 다짐을 나타낸 것입니다. 시인은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전에 평생토록 여호와를 찬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므로 시인의 이러한 고백과 다짐은 곧 구원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a.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시89:5)
b.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찬양(시139:14)

 

2) 생전에 드리는 찬양
시인의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하는 찬양은 단순히 입술의 찬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삶의 경건성이 없는 입술의 찬양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가증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생전에 찬양을 드리겠다는 다짐은 하나님께 철저한 헌신된 삶에 대한 다짐인 것입니다.
a. 날마다 찬양함(시145:2)
b. 즐거이 부르고 노래함(대하23:18)

 

3) 평생의 찬송
시인은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삶을 사는 자는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동거하며 영원한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일이 그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만은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a. 생존한 동안의 찬송(시104:33)
b. 항상 주를 찬송함(시71:6)

 

2. 하나님만 의지하라

 

1)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시인은 방백들과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방백은 세상의 권세와 힘을 가진 자를 가리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세상 권세를 가진 자들의 힘과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보이는 힘을 의지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들이 도울 힘이 없으므로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인생 자체가 유한하기에 그들이 소유한 권력도 유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a. 사람의 구원이 헛됨(시60:11)
b. 한계를 지닌 인생(사2:22)

 

2) 연약한 존재인 인생
인생을 의지함이 헛됨은 인생의 숨이 끊어져 버리면 그가 가진 모든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생이 다른 적인 의지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자가 생명을 지켜 줄 수 없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권세자도 그 생명이 하여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둬 가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a. 흙으로 돌아갈 존재(시104:29)
b. 없어질 관원의 지혜(고전2:6)

 

3) 하나님을 의뢰하는 복 있는 자
시인은 힘없는 인생과는 달리 전지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주관자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사실은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과 권세가 세상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
a. 하나님께 있는 소망(벧전1:21)
b. 소망이신 그리스도(딤전1:1)

 

3.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1) 영원히 진실하신 창조주
시인은 인생이 의지해야 할 하나님에 대해 진술합니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십니다. 즉 창조의 뜻을 변개치 않으시고 끝까지 지켜 성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계시하신 뜻은 의와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함이 영원하기 때문에 인생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분의 진실함을 좇아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좇아 행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복을 내리십니다.
a. 성실이 대대에 미침(시100:5)
b. 진실하심이 영원함(시l17:2)

 

2) 약자를 구원하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다스리시어 약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시며 구원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세상 주관자들은 약자를 억압하고 강자를 두호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다스리시기에 약자를 억울한 일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공의와 긍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킬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명을 실천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a.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판단하심(시103:6)
b. 주린 영혼을 채워 주심(시107:9)

 

3)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심
시인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실 것임을 찬양합니다. 이는 인생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 이유입니다. 인생은 곧 사라져 버릴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계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뢰함으로써 영원한 복을 받게 됩니다.
a. 영원하신 통치자(출15:18)
b. 영존하신 왕(사9:6)

 

결론
어리석은 자들은 세상 권세와 재물을 의지하여 자신의 보호처를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소멸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이러한 인생을 의지하며 멸망받을 것들을 의뢰하는 것은 곧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 됩니다. 성도는 오직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만을 의뢰함으로써 영원한 구원과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단어해설]
3절. 방백들. 세상을 통치하는 권력자들을 가리킨다.

4절. 돌아가서. '거주하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죽어 무덤에 장사되는 것을 말한다.

7절. 압박당하는 자.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압제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8절. 비굴한 자. 고통과 재난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자를 의미한다.


[신학주제]


야곱의 하나님.

이 표현은 이스라엘에게 특수하게 계시된 하나님을 가리킨다. 성경은 구약 전체에서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혹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짝을 이루어 쓰고 있는데, 띠 전통이 이 시를 쓴 저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은 조상들의 하나님이 그 후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조상과 맺은 그 약속을 희손들에게까지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리석고 자고하여 하나님만이 자기들의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거부하고 이방 신에게 절을 하며 이방인과 결혼을 한다. 이때 하나님께서도 공의로 그들을 심판하시게 된다.


[영적교훈]
우상 숭배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심판을 면할 수 없으므로 곧 인간의 몰락과 인생의 실패를 초래한다. 본장은 이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들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우상 숭배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시편 146편

 

Ⅰ. 왕좌에서도 찬양하는 다윗 146:1-4

다윗은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소리높여 찬양하는 일을 삼가므로 위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이 왕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더욱더 찬양에 힘써야 한다고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스스로 분발하여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외쳤으며 평생 동안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일을 쉬지 않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온전히 마음을 바쳐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과 송축을 받으시는 여호와이시며 나와 함께 언약을 세우신 주가 되시므로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저를 찬양하는 일에 힘을 쏟으리로다." 간혹 이 구절을 보고 다윗이 그 당시 이방 민족 사이에 널리 퍼진 풍습을 따라 자신도 영웅 대접을 받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그 무렵 여러 나라에서 영웅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다윗이 이것을 보고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복된 생활로 인도하였다는 공을 앞세워 모든 사람을 자기 그늘 아래 모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그런 뜻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놓았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3절). 다윗은 "나는 물론이요 다른 어떤 사람도 의지하지 말지니라. 절대 사람을 믿고 의지하지 말라. 원래부터 사람은 영원히 신실할 수 없는 존재이니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도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변하기도 하고 때에 다라 약속을 어길 수도 있는 존재이니라"고 백성들을 훈계하였다. 오늘날에도 사람을 영원히 변함없는 존재로 믿을 수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간혹 신실한 사람이 있어 살아있는 날 동안 최선을 다하여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더라도 그 손길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다(4절). 방백들도 언젠가는 평범한 서민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방백들이 영원히 살아 계시는 권능의 하나님과 같이 늘 도움을 베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갖지도 말아야 한다.

 

Ⅱ. 여호와께 소망 주는 자에게 내려지는 복 146:5-10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모셔들인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늘 예배에 힘쓰며 모든 소망을 주 안에 둔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땅 위에 모든 교회를 관장하시는 분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교회가 곤경에 빠졌다면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개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적인 곤경의 해결은 물론이요 그 바라는 바 소망까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몬드 박사는, 이스라엘 랍비 중의 한 사람이 10절은 메시야의 날에 실현될 내용이라고 말하였던 사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난 다음 7,8절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메시야의 특징을 설명하신 구절 곧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라 하신 표현과 비교해 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마 11:5,6).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메시야의 특징을 설명하실 때 말미에 해당하는 부분 곧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신 것은 5절과 부합되는 내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여호와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본질적으로 전능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세를 지니고 계시는 분이다(6절).

 

이와 같은 여호와의 특성이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예수께 이런 능력을 부여한 이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시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구세주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주 여호와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똑같이 인생들을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은 성도들의 믿음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영원히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 예수는 '아멘이시오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이시다(계 3:14). 이 구절을 통해서 예수는 창조의 주체이시며 원칙을 세우신 분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하나님은 무고히 상처 입은 자들의 후견인이 되신다. (본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여호와는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메시야는 큰 압제자 사단의 손아귀에서 압박당하고 있는 인류를 구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이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를 지니게 된 메시야께서 남을 억압하는 자를 포함하여 뭇 사람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다(유 1:15).

 

 

 

그러나 한편으로 궁핍한 무리를 위하여 큰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따라서 하나님은 대개의 경우 자연의 이치에 부응하는 일상적인 방법으로 주린 자에게 식물을 베풀어주신다. 그러나 간혹 까마귀로 하여금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셨을 때처럼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적은 식량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인원을 한꺼번에 먹이셨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성도의 영혼을 먹이신다는 점을 믿고 소망 중에 힘을 얻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하나님은 속박 받는 무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건지셨고 바벨론의 압박에서도 벗어나게 해주셨다. 예수께서도 많은 기사를 행하셨다. '에바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벙어리로 말하게 하시고 귀머거리로 소리를 듣게 하셨다(에바다란 '열려라' 라는 뜻이다). 또한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고 저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제한 규정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무덤 속에 갇힌 죽은 자를 일으키신 일도 있었다. 이 모든 기사와 이적을 한데 묶어 '갇힌 자를 해방'시키셨다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언젠가 예수께서 오셔서 신령한 자유를 선포하실 것을 믿고 그 안에 소망을 둔 채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 용기를 얻게 해준다(사 61:1,2). 그는 또한 시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자들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때때로 이 구절은 고난에 처한 주의 백성이 큰 기쁨을 목전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거나 마침내 보게 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일의 증거를 보이셨으며(창 21:19) 선지자를 모시던 사환의 눈을 뜨게 하사 놀라운 광경을 보게 하신 일도 있었다(왕하 6:17). 그러나 이 구절은 특별히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 9:32). 이로서 우리들은 장차 영의 눈을 밝히 뜨기 위해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일에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신다' 하였으니 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헤매이는 백성들의 짐을 가볍게 하시며 때가 이르면 그 짐을 벗게 해주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문자 그대로 비굴한 자를 일으켜 주셨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병을 고치셨던 것이다(눅 13:11).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 하시며 비참하게 멸망해 가는 무리를 위로하사 다시 일어나게 해주신다. 여호와께 의인을 사랑하시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점은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라는 부분에 잘 표현되어 있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땅위의 권세잡은 자와 음부의 세력이 연합하여 교회를 대적하려 하는 것을 분쇄하사 메시야의 영광으로 삼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10절).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이 구절은 어두움의 권세가 아무리 강력하다 하여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이기지 못할 것임을 나타내어 믿는 자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