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Ⅰ. 주의 법도를 따르는 자의 축복 119:1-8
(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진실로 복되다는 점을 보여 준다(1-3절). 사람이 참으로 복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 그 도리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복 있는 사람은 아래와 같은 특성을 지닌다.
1)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지침으로 삼는다(1절).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지켜야 할 법으로 알고 그대로 행하여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주의 도를 행하는' 자라 한다(3절). 하나님께서 친히 그 도를 우리에게 정해 주셨다.
2) 또한 이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한다. 행위 완전하여. 이는 스스로를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도록 지킬 뿐 아니라 신실한 뜻을 품어 마음속에 간교함이 없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실제로도 선하며 그 길로 계속 나아가는 자들이다.
3) 이들은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기 안에 있는 믿음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는 반드시 진리, 곧 '여호와의 증거'를 지켜야 한다. 간혹 '여호와의 증거'란 그 언약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의해 '언약궤'를 가리켜 '증거의 궤'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과 함께 세운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이들은 일생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여호와를 구하는 것을 생애 최고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다(2절). 본문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라고 표현해 놓았다.
5) 이들은 평소에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3절).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많이 경험하나 그것들로 인해서 그 길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주의 법도를 지켜야 할 고귀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4절).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이는 반드시 여호와의 도를 우리의 법으로 삼고 항상 여호와를 바라보며 지혜와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5절). "여호와여 내 길을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기쁘게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다"하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자신의 영혼을 성결케 하는 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뜻도 그렇게 될 것이다. 선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계명은 인간의 내면적이거나 외면적인 문제, 즉 지성과 심성에 관하여 규정된 계명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사람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의 영혼은 순수하면서도 담대한 용기를 지녀 옳은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3) 이로 인해 다윗은 새로운 고백을 한다.
1) 이 부분에는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다윗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다윗은 항상 여호와의 '의로운 판단을'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이미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좀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갈망하며 날마다 노력하였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참된 지식을 배우려고 힘써야 한다.
2) 다윗은 이렇게 배운 지식을 활용하려 하였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주께 감사하리이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는 한 자신은 아무 것도 깨우칠 수 없었으리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지식을 배운다는 것이야말로 특별한 축복이다. 여호와의 은혜를 힘입어 그 법도를 지키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사람들은 그 율례를 잘 배운 사람들이다.
3)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진실로 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떠나시면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유혹자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Ⅱ. 말씀으로 정화됨 119:9-16
(1) 인간을 정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이 기술되어 있다.
1) 본문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은 지금 자라나는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보다 더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질문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로 깨끗케 하리니까.
2)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변이 곧 주어진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그로써 행실을 깨끗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법도로 삼아 이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방백들의 법률이나 철학자들이 제시한 도덕적 지침보다도 더 청년들의 행실을 깨끗케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생활에 여호와의 말씀을 적용하여 이를 기준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거나 수정해야 할 것이다.
(2) 이 구절은 다윗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10절). 내가 주를 찾았사오니. "지금까지 쉽게 뵈올 수 없었다 할지라도 다시금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여호와여, 그리 하지 말라 하시거나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지 마옵소서. 이렇게 주의 계명을 찾게 하셨사오나 그 계명을 떠나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소서."
(3)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는 다윗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11절).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그 말씀으로써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장해 둘 가치가 있는 보물이다. 다만 그 보물은 각 사람의 마음 이외에 다른 장소에 두면 안전하게 간수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머릿속에 담아둔다 해도 곧 잊어버리게 된다. 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말씀의 틀 안에 거하며 영혼 깊이 감동을 받았다면 결코 잃어버리는 일없이 보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12절).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매사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도리와 지혜를 일러 주소서."
(5)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우쳤던 교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힘썼다(13절).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어떤 명령을 내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들의 송사를 심판하고 아름다운 시편을 지어 예언을 전할 때는 물론이요 일상 생활의 사소한 대화 중에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을 얻게 하려고 애를 쓰곤 하였다.
(6)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되 절대로 처음의 열심을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15절).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다윗은 입술로만 여호와의 규례를 증거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묵상에 힘서 스스로 깨우치려는 노력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진실로 다윗은 화려한 왕궁이나 싸움터에서 얻은 영광보다도 여호와의 율례를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금이나 목숨을 지켜 주는 칼보다도 여호와의 율례를 한층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번 여호와의 율법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둔 자는 기쁘게 그 도를 지켜 행하게 되는 것이다.
Ⅲ. 주의 율례를 지키는 다윗 119:17-24
(1) 여기서 다윗은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17절). 사람에게 생기를 부으사 생명을 누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후대해 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며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주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후대하심을 인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생명을 거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2) 여기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이라 함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신비한 일이면서도 그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사건을 뜻하고 있다(18절). 이 일은 오랫동안 지혜롭고 명철한 자에게도 감추어져 온 것이지만 이제 어린아이 앞에서도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윗의 고백과 같이 율법이 기이하다면, 복음은 한층 더 놀랍고 신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눈의 비늘이 떨어지기 전에는 본격적으로 하늘 나라의 일에 무관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단 눈을 뜨게 하사 자신의 일을 하시면 그 말씀 가운데 '기이한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3)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라는 구절을 통해서 다윗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솔직하게 인정하였다(19절). 지금까지 선한 사람들은 모두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해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늘 나라가 자신의 본향이며 세상은 잠깐 머물다 떠나야 할 여관, 곧 지나가게 도리 순례지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고백을 했던 것이다. 다윗은 세상일에 관한 지식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쳐 영광을 한 몸에 누렸던 인물이다. 이렇게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처지를 가리켜 '객'이라고 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날마다 주의 계명과 더욱 가까워지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길을 인도하여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줄 자, 또한 함께 길을 가며 어려울 때 위로해 줄 자가 필요하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계명을 항상 내 앞에 두소서. 주의 계명만이 이 모든 것, 곧 땅에서 객이 된 자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나이다."
(4) 지금까지 다윗은 자신의 눈을 열어서(18절) 주의 계명을 보게 해 달라고(19절) 간구하였다. 이제 여기서는 여호와에 대한 지식과 그 은혜를 입으려고 간구한다(20절).
(5) 이 부분에서는 악한 사람들의 비열한 성품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21절). 그들은 마음이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일을 과정해서 자랑하는 것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하나님 앞에서 쓸데없이 자만하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과 맞서 악한 뜻을 고집하는 자들이다. 모든 고범죄의 근간에는 반드시 교만함이 깔려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주의 계명에서 떠나' 그 계명과 어긋나는 방침을 세워 고수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범죄하였다는 사실은 명약 관화한 것이다. 교만한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의 교만을 물리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떠나는 것은 스스로 저주의 그늘로 기어 들어가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갈 3:10).
(6) 이제 다윗은 사람들의 훼방과 멸시를 자기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혹은 말 그대로 '자기에게서부터 말려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의 내용으로 미루어 다윗도 사람들의 훼방과 멸시를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윗과 같이 위대하고 선한 인물도 사람들의 모욕이나 비양거림을 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즉 그는 선행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롱을 받았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시련의 날이 닥쳐도 여전히 성실하게 주의 법도를 행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7) 다윗은, 자신의 성품과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권세있는 방백들에게까지도 능욕을 당했다(23절).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훗날 예수께서 오셨을 때 갖은 험담을 퍼붓고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은'(고전 2:8) 자들도 높은 권세를 누리는 관원이었다. 다윗은 이렇게 극심한 훼방을 받으면서도 '주의 율례를 묵상' 함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지켜 행할 뿐 원수의 무리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대적하는 자들이 일어나 비방을 할 때도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에게 향하신 뜻을 찾고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 그러자 어떤 비방도 다윗을 동요시키지 못하였다.
(8) 다윗은 여기서 자신이 여호와의 율례를 묵상하면서 깨달았던 뜻을 설명해 주고 있다(23절). 예전에 방백들이 모여 앉아 다윗을 비난했을 때에도 여호와의 율례를 악용하여 훼방을 한 일이 있었다. 다윗에게는 여호와의 율례가 곧 '모사'였던 것이다. 이 모사가 묵묵히 참고 기다리며 모든 분노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Ⅳ. 탄식과 간구 119:25-32
(1) 다윗의 탄식과 간구가 이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25절).
1) 다윗은 여기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탄식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활이 부패하였다는 점, 즉 스스로 세상과 연합하여 거룩한 본분을 져버렸던 일을 안타까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탄식하는 다윗의 모습은 사망의 몸으로 인해 고뇌하였던 사도 바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인하여 탄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마음의 고통인지 아니면 외부적 상황의 어려움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 그 두 가지 모두가 다 해당될 것이다. 그 고통은 매우 극심하여 다윗은 사망의 진토에 이르게 되었다.
2)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다시 소생케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섭리와 은혜로 다시 생기를 부으사 깊은 병에 빠진 나를 일으켜 주소서. 이제 완전히 말랐던 영혼을 다시 일으키사 주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게 해주소서."
(2) 다윗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입장을 낱낱이 고하였다(26,27절).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이를 모두 인정하시고 앞으로 해야 할 바 계획을 세우는 일에 함께 해주소서." 하나님은 지극히 자비로우사 그 백성의 호소를 귀 기울여 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영혼 깊숙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요일 5:14,15). 나로 주의 법도와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3) 28,29절에서는 진실로 슬퍼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라는 표현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하는 25절과 같은 목적으로 기술되었음에 틀림없다. 사람의 마음에 무거운 일이 있으면 그것은 불붙은 초가 조금씩 흘러 내려 없어지듯 영혼을 상하게 한다. 이렇게 자신의 슬픔을 호소한 뒤 다윗은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하였다. 다윗은 "주의 말씀대로(신 33:25) 나를 강건하게 세우소서"하고 호소하였던 것이다.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이는 자기가 곤궁한 지경에 빠졌을 때 아미멜렉(삼상 21:2)과 아기스(삼상 21:13;27:10)를 속였던 점에 대해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없는 난국에 빠질 때마다 자기 방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거짓을 용납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더 이상 이러한 죄에 말려들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였던 것이다.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이 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거짓 행위'에 말려들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율법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든지 자신이 사용할 율법책의 사본을 직접 만들어 두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신 17:18). 그런데 다윗은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하고 기도함으로써 여호와의 율법을 자기의 마음 속에 새기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은 표적으로 이것을 간구한 것이다.
(4) 신앙 생활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신중하게 생각하여 옳은 길을 택해야 한다(30-32절). 다윗이 이렇게 했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다윗은 주의 규례를 앞에 두었다고 했는데 그 뜻은 마치 글씨 쓰는 것을 배우는 사람처럼 여호와의 율법책을 앞에 놓고 똑같이 옮겨 적고 내용을 실천하되 틀에 맞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이 한치도 틀림없이 행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평소에 늘 마음속에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의사로 신앙을 선택하여 그것을 자신의 법으로 삼는 자들은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양 따를 것이다. 성실한 길을 스스로 택한 그리스도인들은 견고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반면 우연히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방향을 따라 흔들리게 될 것이다.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주께 예배를 드릴 때 물리치지 마소서. 만일 물리치시면 나의 마음에 큰 요동이 일어나게 되리이다." 하나님께 받은 위로가 클수록 성도가 지켜야 할 의무가 많아진다(32절).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지혜를 주신 것을 "그들의 마음을 넓히셨다"는 표현을 쓴다(지혜는 '넓은 마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왕상 4:29). 혹은 성령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펴사 기쁨을 허락하셨을 때를 이렇게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여호와의 기뻐하심은 성도로 하여금 더욱더 순종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Ⅴ. 축복을 바라는 기도 119:33-40
(1) 다윗은 '주의 율례의 도'를 먼저 깨닫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고 다음과 같이 간구한다(33,34절).
1) 다윗은 하나님과 같이 '교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 앞에 나아와 올바른 도를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남겼던 훈계와는 전혀 다른 주의 율례의 도를 가르치사 나로 깨닫게 하소서"하고 호소하기를 쉬지 않았다.
2) 뿐만 아니라 다윗은 자기가 진실한 자세로 배우겠다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다면 틀림없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점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여호와의 가르치심이 없었던들 결단코 깨닫지 못하였을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겠나이다."
(2) 앞부분에서 다윗은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사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를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제 여기서는 먼저 자신의 뜻을 굽히고 주의 백성으로서 맡은 바 본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영혼의 활동을 더욱 민첩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35,36절). 다윗이 이와 같이 기도한 이유는, 무엇이 선한 것인지 깨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것을 행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빌 2:13). 그런 의미에서 '나로 행케 하소서'라는 표현은 "선한 일을 위해 강하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란 "그 증거로 권면하시는 일을 따르게 해달라"는 뜻이다. 다윗은 자신이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의무를 불평없이 수행할 뿐만 아니라 열심을 다해 기쁨으로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이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향하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인 것이다. 다윗은 또한 자신의 마음이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탐욕은 여호와의 증거를 버리고 이를 대적하는 큰 죄이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으려 하는 자는 먼저 세상을 향하여 정욕을 말끔히 제거해 버려야 할 것이다.
(3)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다윗은 스스로 정욕을 억제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37절). 이 세상에선 누리는 영광과 쾌락을 비롯하여 여러 이득으로 보이는 것이 실상은 모두 허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들을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신앙 생활에서 멀어지게 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떼지 못하고 세상에 연연해 하게 되면 마음이 전염되어 하나님과 경건한 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그 섭리하심을 베푸사 허탄한 것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하며, 그 은혜로 세상의 화려함은 보아도 유혹당하지 않게 지켜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4) 선한 사람이란 본시 '주의 종' 곧 여호와의 법도에 순종하며 언제든지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주를 경외'하기 때문에 자신이 세운 계획이나 이상을 모두 버리고 귀하고 높으신 여호와의 생각을 취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언제나 담대함을 잃지 않고 '주의 말씀을 세우소서'하고 기도하는 자야말로 여호와의 종이라 하겠다. '주의 말씀을 세우라'는 것은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달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보다 더 많이 달라고 욕심을 내어서도 안되거니와 다 받지 않겠다고 겸손해 하여서도 안된다.
(5) 이 부분에서 다윗은 자신이 받고 있는 훼방에 대해 다시 한번 기도하고 있다(39절). 앞에서도 같은 내용의 기도가 나왔었다(22절). 다윗은 한때 '여호와의 길을 떠난' 원수들에 의해 멸시 당함을 경험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과 혀를 다스리는 하나님께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39:8). 다윗은 그렇게 될까봐 심히 두려워하였다. "높은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여 '주의 규례는 선하시며' 인자하시나이다. 그러나 옳지 못한 무리를 다스리실 때에는 공의로 행하시는 것을 아나이다. 여호와여 악한 무리가 부당한 비난을 일삼으니 나의 호소를 들어주소서."
(6) 이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였노라고 고백하고 있다(40절).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마음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자 하여 간절히 원하였나이다.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생기를 부으시는 것은 언제라도 주의 법도를 실천하려는 뜻임을 아나이다."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의로 맺으셨던 언약을 따라 이 생명을 소성케 하소서."
Ⅵ. 말씀에 의한 구원 119:41-48
(1) 다윗은 주의 구원이 자기에게 임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41,42절). "여호와여 주는 구세주가 되시나이다. 인생은 혼자서는 불쌍할 수밖에 없으나 오직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나이다."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현재의 고통에서 속히 나를 구하소서. 또한 나로 영원한 구원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사 그 구원을 향해 속히 나아가게 하소서."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는 성도의 소망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과 같다. 그것은 절대로 그 소망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2) 다윗은 겸손하게 엎드려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한다(43,44절). 그는 적절하고 지혜로운 언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알고자 하여 이러한 기도를 했던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다윗이 이 기도를 통해 나타내려 했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여호와여 나의 입술로 언제나 진리의 말씀을 외우게 하소서. 또한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사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말씀에 관한 지식으로 이웃을 가르치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해주소서." 한편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신의 본분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만약에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며 입술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주의 성도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며 그 뜻을 온전히 이루게 될 것이니이다."
(3) 이 부분을 통하여 다윗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극히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45-48절)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45절). "여호와의 뜻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였나이다. 또한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는 것은 그 '규례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니이다(47,48절). 나는 주의 법도가 일반적으로 선할 뿐만 아니라 내게는 특별히 더욱 선하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할 수밖에 없나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힘입어 스스로 다섯 가지 약속을 하였다.
1) 성도로서의 본분을 행하여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을 갖겠다. 내가...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악한 길을 떠나 선한 일을 행할 때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수행함으로써 마음의 편안함을 누릴 것이나이다."
2) 또한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자신의 본분을 행하겠다. '내가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 라는 구절은 오늘의 성도들 역시 자신의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오히려 느부갓네살 앞에 섰던 세 명의 소년들과 같이 왕이 진노하는 일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 믿음을 전파해야만 할 것이다(단 3:1;행 4:20).
3)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본분을 지키겠다.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그 계명을 늘 가까이 하여 위로를 받겠나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보다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경우는 내게 없나이다."
4) 자기가 부지런하고 활발하게 이 일을 행하겠다.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에 들고. "언제나 주의 계명을 손에 들고 찬양을 할뿐만 아니라 실천에 옮길 것이니이다. 주의 계명을 내 손에 들고 그대로 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으려 하나이다."
5) 마지막으로, 본분을 행할 때 깊이 생각해서 신중하게 처신하겠다(48절).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Ⅶ. 말씀 중에 담겨 있는 위로 119:49-56
(1) 다윗은 자기가 지금까지 소망 중에 기다려온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49절). 일찍이 하나님은 다윗에게 언약을 주사 소망을 품게 해주셨다.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말씀하신대로 행하여' 주시를 간절히 원하나이다"(참조. 대상 17:23). 하나님은 신실하사 한 번 말씀으로 약속을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주시며 절대로 깨드리지 아니하신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신앙심을 불러 일으켜 주신 하나님은 그 믿음에 따라 은혜를 베풀어 주시되 결단코 실망하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2) 이 부문에서는 다윗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었던 사실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5절).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죄 가운데 빠져 죽게 된 이 생명을 다시 살리셨나이다. 또한 주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을 잊고 방황하다가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구원해 주신 일도 많나이다. 주의 법도를 떠나 악한 길로 행할 때마다 말씀이 나를 소성케 하사 선한 곳으로 인도하셨나이다. 때때로 마음이 완악해지고 주의 일에 무관심해 질 때마다 다시 소성케 하사 선한 길로 되돌아 오게 하셨나이다."
(3) 다윗은 신앙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남의 조롱을 받았었다(51절). 다윗은 실로 이스라엘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었으나 단지 하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산다는 이유로 '교만한 자가 심히 조롱하였던' 것이다. 교만한 자들은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위선적인 말투"라고 몰아 붙였으며 진지한 자세를 "풀이 죽어 침울한 것"이라고 놀려댔다. 뿐만 아니라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태도를 보고 "쓸데없이 까다롭게" 군다고 불평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주의 법을 떠나지 않은 채 끝까지 지켰던 것이다. 도중에 개가 짖어 댄다고 해서 자신의 계획을 취소하는 여행자는 없는 법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은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4) 다윗은 경건한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조롱받을 때, 더욱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려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하였다(52절). 그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참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가 모욕을 참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위로를 얻었다. 여호와의 법도를 준행함으로 인해 조롱받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이 애굽의 온갖 보화보다도 더 큰 복을 가져다 주리라' 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5) 이 부분에서는 악한 사람의 특징을 뚜렷하게 서술해 놓았다(53절). 그들은 '주의 율법을 버린 자들'이다. 다윗은 이들의 악한 성격에 충격을 받아 몹시 놀랐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사단을 기쁘게 하며 인간의 영혼에 갖은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다윗은 죄인들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에 미칠 결과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6) 이 세상은 본래 나그네 된 집으로서 그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장소에 불과한 곳이다(54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나그네'로서 이곳이 본향이 아니며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다윗의 궁성조차도 그의 인생 여정 중에 잠시 머물러 쉬는 곳에 불과하였다.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내가 그것으로 즐거워하였나이다." 다윗은 마치 여행의 지루함을 떨쳐 버리고 기분 전환을 하곤 하는 나그네들처럼 때때로 즐거운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노래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이 지은 노래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근원을 두고 있다.
(7) 평소에 다윗은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에 깨어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훈계를 되풀이하여 외움으로써 그 이름에 날마다 더 가까워지는 생활을 하려고 애를 썼다(55,56절). 특히 고통스러운 밤이 될 때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힘을 기울였다.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하루 온 종일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즉 "내가 주의 법도를 지켰으므로 이제 마음에 위로를 얻나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는 마음은 그 자체가 순종에 대한 가장 귀한 대가인 것이다.
Ⅷ. 땅에 충만한 여호와의 인자하심 119:57-64
(1)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57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나의 분깃으로 택한 것을 아시나이다. 이제 내가 복을 받게 되는 것은 오로지 주의 뜻에 달렸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법도를 자신의 규례로 삼았다.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여호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한번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할 뿐만 아니라 그 결심이 끝까지 변치 않으리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를 자신의 분깃으로 택한 자는 누구나 주 하나님께서 유일한 왕이 되신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2) 앞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었다. 그런데 이 58절에서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도에 대해 거론하면서 다시 한번 간곡한 어조로 탄원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지난날 지은 죄를 용서하옵시고 은혜를 베푸사 앞으로 늘 선한 길로 행하며 살게 해 주소서." 다윗은 '전심으로' 기도하였던 것이다.
(3) 다윗은 항상 자신의 '행위를 생각' 하였다(59,60절). 이는 곧 다윗이 영원히 변치 않을 만큼 확고한 생각을 품고 있었음을 뜻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표현이 하나의 비유로서, 작은 수예품 하나를 만들면서도 꼼꼼하게 흠없이 마무리한다거나 자신의 재산 상태를 점검해 볼 때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과 아울러 남에게 갚아야 할 빚의 총액까지 함께 계산하는 철저한 일면을 나타내려 했다고 본다.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지켜야 할 법도로 삼고 이를 실천에 옮기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는 한 마디의 이의도 제가하지 않고 그 결심을 즉시 실행하였다(60절).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이상 다윗이 자신의 행적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매일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가 어린 시절의 헛된 교만에서 벗어나 창조주 여호와를 다시 한번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는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4) 다윗을 대적하던 무리는 모두 악인이었다. 이들은 다윗이 경건한 생활을 한다는 것 때문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면서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 때에도 마치 욥이 갈대아 사람과 스바 사람에게 약탈당했을 때 행하였던 것처럼 믿음을 굳게 지켰다는 사실을 양심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5) 다윗은 이 시편 속에서 실로 많은 기도를 하면서도 감사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62절).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할 일도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다윗은 "주께서 내게 베푸신 은총으로 인하여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 곧 지혜롭고 공의롭게 역사하시는 주의 섭리로 인하여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윗의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곤 하였다. 회중이 모여 예배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고 해서 혼자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윗은 잠자리에 누운 채로 감사드리지는 않았다. 그는 춥고 어두운 밤에 침상에서 일어나 더욱 엄숙한 자세로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6) 다윗은 종종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큰 사랑을 표현했었다(63절).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들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였다. 이는 그들이 모두 그의 절친한 친구이거나 자신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법도를 지키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런 사람들의 '동무'로 자처하였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의 전에서 거룩한 예배에 참예하였다. 그곳은 부자와 가난한 자, 방백과 농부가 회합하는 자리였다. 다윗은 그들의 희로애락에 동참하였다(히 10:33).
(7)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들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64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것과 마찬가지로 땅은 주의 인자하심으로 가득 찬 것과 마찬가지로 땅은 주의 인자하심으로 충만하다. 그러므로 사람뿐만 아니라 하등 동물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 하나님께서 선하심을 베풀어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Ⅸ. 고난을 통해 주의 율례를 배움 119:66-72
(1) 다윗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매사에 자신에게 은혜롭게 대하셨음을 인정하고 있다.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6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받을 수 있을 만한 것보다 훨씬 '선대'하시는 것임을 고백하여야 하며, 또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고자 하는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윗은 그동안 많은 경험을 하여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여호와의 훈계를 얻기를 간청하였다.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66절).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내게 훌륭한 분별력과 통찰력(명철과 지식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그렇다)을 가르치소서." 다윗은, 입으로 고기의 맛을 즐기는 것같이 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려 했으므로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명철함이 없이 지식만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하나님께서 선한 마음을 갖도록 허락해 주신 경우에는 건전한 분별력을 가지고 믿음으로 더욱 더 많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이 구절에서 다윗은 두 가지 내용을 이야기하였다(67절).
1) 물질적으로 풍요한 생활을 하던 시절에 겪은 시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마음이 평안하여 아무런 고통이 없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성도의 본분도 저버린 채 살았나이다." 풍요로운 생활은 도리어 많은 불의를 저지르게 하는 불행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체로 생활이 넉넉해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기만하고 육체의 정욕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과 연합하여 말씀이 견책을 하여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참조. 30:6).
2) 고난을 당하는 데서 오는 유익을 서술하고 있다.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내가 방황하다가 돌아왔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고난을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사 방황하던 영혼을 돌아오게 하신다. 탕자에게 주신 고난은 먼저 탕자가 제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3)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린다(68절).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주는 언제나 선을 행하사 모든 피조물을 위해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이와 같이 내게도 주의 선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나의 본분을 깨우쳐 주시고 마음으로부터 기꺼이 이 일을 행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4) 교만한 사람들은 다윗의 명성을 시기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명성이 그들의 명성을 가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명성을 더럽힐 수 있는 일을 모조리 행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다윗을 모욕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교묘하게 꾸며낸 거짓말이라도 죄가 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윗은 묵묵히 참고 견디었다. 다윗은 원수의 비난에 대해 똑같은 행위로 갚지 못하게 금하신 주의 계명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대적들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70절). 교만한 자는 시편 123:4에서 편안한 자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123:4). 이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물질적인 부요함을 누리면서 쾌락을 즐기는 부류인 것이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생활은 이들의 마음을 마비시켜 모든 일에 무관심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이 상태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의식할 수가 없다. 그저 말초적인 쾌락을 쫓아 몸을 함부로 굴리면서 지낼 뿐이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그들과 바꾸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언약을 나의 방패로 여기나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령한 즐거움을 사모하는 자들은 육체의 쾌락을 좇는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5) 교만하고 악한 무리가 화려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반면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그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는 다윗은 아직도 고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71절). 다윗은 경험에 의거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즉 그는 고난을 겪으면서 많은 유익한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다윗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으며 참된 지식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결국 고난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통해 훈계를 얻게 해주신 것이다.
(6) 다윗은 그동안 겪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의 입의 법이' 잃어버린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하고 고백하였다. 그 당시 다윗이 볼 수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에 비해 훨씬 적은 분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말씀의 고귀한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윗은 율법만 보면서도 그것이 '주의 입의 법'으로서 여호와의 뜻을 계시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평가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재산을 두고도 오로지 마음을 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였을 뿐이다.
Ⅹ. 교만한 자의 수욕을 간청함 119:73-80
(1) 다윗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73절;욥 10: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마다 아담을 지으셨던 것처럼 친히 손으로 만들어 세우신다(139:5,6).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귀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나이다. 뿐만 아니라 큰 권세와 능력으로 옷입혀 세상을 살아가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은혜의주로 선포하면서 장차 자신을 새롭고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 주께서 내 생명을 창조하신 뜻을 헤아려 알게 하시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2) 다윗은 선한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소망 중에 기다려 왔다.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말씀에 대한 소망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할지로다. 주의 말씀을 바라는 소망은 현재의 기쁨이요 장차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 품안에 안겨 마음의 위로를 얻을 분만 아니라 주의 은총을 힘입는 것은 다른 사람도 함께 기뻐할 일이다.
(3) 다윗은 여전히 고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한 징책의 정당성을 인정하였다(75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공의 그 자체이니이다." 하나님은 본질상 거룩하신 분으로서 그 백성을 다스리실 때 언제나 지혜와 공의로 행하신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줌이 있다 하여도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도가 겪는 고난은 모두 언약으로 정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겪음으로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4)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기꺼이 인정하는 자들은(다윗의 행동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75절) 믿음 안에서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긍휼과 그 긍휼에 대한 징표와 열매를 더욱 바라보게 된다. 다윗도 '주의 인자하심'과 아울러 '주의 긍휼히 여기심'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다(76,77절). 여기서 '내게 임하사' 하는 표현은 "주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그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 은혜의 역사로 인하여 내가 위안을 얻나이다. 실로 아무것도 없을 때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위로하며 어떤 이유로 괴로워하더라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리이다" 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5) 다윗의 주변에는 그의 말을 곡해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78.79절). 그는 그들의 비난이 '무고히' 행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시 무고한 비난이란 아무런 이유없이 저주하는 것과 같아서 누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거나 상하게 하지 못하는 법이다. 다윗은 이때 믿음으로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저희가 회개하든지 멸망에 빠지든지 하게 하옵소서." 다윗은 성도들의 선한 뜻을 소중하게 여겼다. 주를 경외하는 자는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선한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과의 친교와 교제를 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난 뒤에 그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들이 왕의 소행을 부끄럽게 여기고 모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이 상황을 너무나 괴로워하던 다윗은 마침내 '주를 경외하는 자로 다시금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6) 다윗은 신실하게 되기를 기도한다(80절). 다윗은 자신의 위선으로 인하여 나타날 결과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내 마음으로...완전케 하사. "그리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고 마지막 심판 날에 얼굴을 들고 주를 맞이하게 해 주소서."
ⅩI. 소망의 근본 119:81-88
(1) 다윗은 '주의 근원을 사모'하며 '주의 말씀을 바라고'있다(81,82절). 여기서의 주의 근원은 주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다윗은 믿음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앞에 나아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과 불안과 공포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메시야의 오심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신실한 성도들의 영혼도 선지자들이 옛날부터 증거하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해' 하고 있었다(벧전 1:10). 그들은 주의말씀을 바라느라 눈이 피곤해 질 지경이었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이 구원의 소식을 멀리 떨어져서 보았고 다른 여러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다윗은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고 부르짖었다. '눈이 피곤해질지라도' 믿음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합 2:3).
(2) 다윗은 자기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다'는 점을 아뢰면서 하나님께 속히 위로해 달라고 간청한다. 가죽병은 연기가 자욱한 곳에 잠시 걸어두기만 해도 온통 까맣게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바짝 말라서 모양이 뒤틀리게 마련이다. 다윗은 이제 나이 많아 병이 든 데다가 마음의 슬픔으로 인하여 바짝 마른 가죽병이 되었다. 예전에 그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으나 어느새 쇠약해져서 그렇게 아름답던 장미빛 형색은 간 곳이 없고 양볼은 깊은 주름으로 가득해지고 말았다. 가죽병이 연기로 인하여 제 모양을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자연히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듯 쓸모없는 가죽병처럼 비참해진 다윗은 자신을 가리켜 사람들의 "천대를 받는 깨진 그릇"이라고 묘사하였다. 다윗은 이렇게 혹심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이 고백은 다윗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을 힘써 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나타내 준다.
(3)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는 무리에 대하여 기도하고 있다(84절).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을 터이니 힘을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다윗은 어떤 사람도 해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을 간구하였을 뿐이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여호와여 고난을 겪어야 할 날이 얼마나 많은지 보시옵소서.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이제는 내 고난의 날을 단축하여 주옵소서."
(4) 이 부분에서 묘사되어 있는 다윗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이 장차 얼마나 큰 핍박을 받을 것인지 암시해 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85-87절). 다윗을 핍박하는 자들은 교만한 무리였다.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이 호소는 이들이 다윗을 함정에 빠뜨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맞서 대적해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다윗을 해하려고 '웅덩이를 판' 것만 해도 '주의 법을 쫓지 아니하는' 소행이었다. 이는 곧 저희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다는 것을 뜻한다. 율법에 의하면 사람이 구덩이를 파 놓고 관리를 잘못하여 이웃에 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되어 있다(출 21:33,34). 하물며 처음부터 악한 뜻을 품고 구덩이를 팠을 경우에야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시사 도와 주셔야 한다고 호소한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여호와여 고통 중에 빠진 나를 도우사 안내하게 하옵시고 때가 이르면 이 고통에서 건져 주옵소서." '나를 도우소서' 하는 구절은 매우 포괄적인 기도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가볍게 여겨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5) 다윗은 하나님께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88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앞서 다윗은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기도했었다(40절).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소성케 하소서'하고 기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선한 뜻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 안에 선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ⅩII. 주의 말씀이 영원하심 119:89-96
(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89-91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는 영원히 나의 주시나이다"(혹자는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신 것이 곧 그 증거가 되나이다. 오늘날 주의 말씀은 하늘, 곧 말씀으로 지어 영원히 변치 않는 피조물 위에 굳게 서 있나이다."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그리고 난 다음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라는 구절을 내세워 영원히 변치 않는 자연의 속성을 제시한다. 이 땅 위에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신 결과 이루어진 일이다(창 8:22). 모든 피조물들은 제자리를 지키면서 각자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그 지으신 뜻에 부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반역할 뜻을 품고 하나님을 떠나, 이 땅 위에서 쓸데없는 부담거리가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2) 그 무렵 다윗은 큰 곤경에 처해 있었다(92절).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금방이라도 '고난 중에 멸망'할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죽지는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말미암아 다윗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믿음을 잃어 버리지 않게 된 것이다. 특별히 주의 법은 고난에 빠진 다윗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주의 법은 언제나 다윗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슬프고 외로운 지경에 빠질 때 주의 법을 묵상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일중의 하나였다. 성경은 언제나 누구에게든지 좋은 벗이 된다.
(3) 하나님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는 것은 곧 그 말씀을 극진히 사랑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93절). 이 구절에서는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4) 다윗은 자기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주장한다(94절). "나는 '주의 것이오니' 마음을 다하여 주를 섬기겠나이다. 일찍이 주께서 세우신 언약으로 나를 소유하셨나이다." 이어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하고 고백함으로써 다윗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제시한다. 주의 법도를 찾았다는 것이야말로 그 생명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5)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가 악한 뜻을 품고 있다고 하나님께 호소한다(95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방패로 삼고 스스로 위로를 얻는다. "악한 무리가 나를 멸망케 하려고 온간 궤계를 꾸미는 동안 나는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6) 다윗은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다'는 증언을 한다. 이 말은 결국 땅위의 완전함이란 한 인간이 죽기 전에 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련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완전함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다윗은 그 일생동안, 가장 강했던 용사 골리앗이 무너지는 꼴을 보았으며, 민첩하고 재빠른 아사헬이 붙잡히고, 가장 지혜로운 자로 손꼽히던 아히도벨이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아름답던 압살롬이 흉한 꼴로 변모하는 과정도 지켜보았었다. 요컨대 그는 '모든 완전한 것의' 끝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그 힘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ⅩⅢ. 지혜와 지식의 근원 119:97-104
(1)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는 비단 언약의 말씀만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율법도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것을 즐거워하였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이 구절로 미루어 보아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종일 묵상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다윗이 어떻게 하여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98-100절). 어린 시절 다윗은 들판에 나가 양을 치던 목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금 나이가 든 뒤에도 궁궐과 싸움터에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는가? 다윗은 만유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얻었다. 그것이 나로 지혜롭게 하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곧 '주의 계명'과 '증거'로 지혜를 얻은 것이다. 선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주의 말씀을 지니고 다닌다. 설혹 손에 들고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이나 머리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 지식을 계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지한 경건의 모든 예들을 충분히 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알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요 7:17).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더욱더 많은 교훈을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 진리를 사랑한다 함은 그 교훈을 얻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가리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고 표현하셨다. 다윗은 그 원수보다 더 지혜롭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를 지혜롭게 하사 원수의 계획을 알아내어 쳐부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또한 다윗의 명철함은 '모든 스승을' 능가할 정도에 이르렀다. 즉 다윗은 자기를 가르쳐 온 어떤 스승보다 더한 명철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자기를 가르쳐 주었던 스승들이 잘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주의 법에서 얻은 지혜로 마침내 온 백성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제자가 지혜로와져서 스승을 능가하게 되었다고 해서 스승이 수치를 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큰 영광이 되는 일이다. 이제 다윗의 명철함은 당대의 '노인'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이름을 떨쳤던 모든 스승까지도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박사나 장로는 물론이고 스승이나 노인들보다도 더 확실하게 천국으로 이끌어가는 인도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세상의 어떤 책보다도 더 많은 지혜를 가지고 우리들을 깨우치는 것이다.
(3) 다윗은 애써 죄의 길을 피하려 했다(101절). 내가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혹시 잘못하여 들어섰을 경우에는 언제라도 뒤로 물러설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 두었나이다. 항상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악의 유혹에 빠졌다는 느낌이 들기만 하면 즉시 돌이켜 제자리를 찾았나이다." 다윗이 죄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고 조심했다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법도로 삼고 그대로 지키려 하였다는 증거이다.
(4) 다윗은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의 생활을 하였다(102절).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으로 규례를 삼은 일도 없었거니와 평생에 단 한번도 의도적으로 주의 법도를 떠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내 마음이 그 놀라운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함이니이다."
(5)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103,104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세상에는 신령하고 내적이며 거룩한 향취를 풍기는 것들이 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을 인하여 명철함을 얻게 되었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그로 인하여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고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어떤 일을 하거나 남에게 권면할 때 실수하지 않을 만한 분별력을 지니게 되었나이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인하여 선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이 거짓 명철함을 얻어 진리를 알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절대로 악한 길로 들어서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나이다."
ⅩⅣ. 빛과 기쁨의 근원 119:105-112
(1) 여기서 '등이요 빛'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본성은 물론 그 말씀을 세상에 보내신 주 여호와의 크신 뜻까지도 잘 나타내 주고 있다(105절). 그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 주신다. 여호와의 계명은 성령의 기름으로 계속 타오르는 등불이다. 이것은 옛날 성소 안에서 항상 타던 등불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불기둥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주의 말씀 곧 여호와의 계명은 빛이 되어, 두 눈만 기쁘게 할뿐만 아니라 각 사람의 '발'과 '길'을 밝혀 줌으로써 보통 때나 특별한 경우에나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2) 다윗의 신앙 생활을 정의하여 이르기를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는' 것이라 한다(106절). 여호와의 계명이란 곧 그의 규례를 의미한다. 경건하게 살리라는 거룩한 맹세로 우리 스스로를 구속해 두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마치 백성들이 통치자에게 맹세하듯이 하나님께 신실성이 포함된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3) 다윗은 큰 고난을 당해 몹시 괴로워한다(107절). 이 상황에서 다윗은 곧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한다. 여호와여...나를 소성케 하소서. "고난 중에서도 기운을 잃지 말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이 고난으로 인하여 더욱 근면하게 하사 소성케 해주옵소서."
(4) 다윗은 자신의 '입'으로 바치는 '낙헌제'를 받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108절). 돈으로 산 제물이 아니라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과 기도를 받아 달라는 뜻이다. 사람이 기쁘고 풍성하게 기도와 찬양을 드리면 그것이 곧 낙헌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마음을 받아 주시는 것이다.
(5) 다윗은 늘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살았던 인물이다(109,110절). '악인이 그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의 죽음의 문턱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곤 하였다. 사울만하더라도 다윗이 하나님 앞에 경건한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한 나머지 여러 번에 걸쳐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었다. 이 악인들은 다윗을 공개적으로 처형할 수 없게 되자 가까운 측근을 중에 딴 마음을 품은 자를 통해서 해치려고 획책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다윗으로서는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의 신변을 걱정하느라 노심초사하면서도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할 시간을 마련하곤 하였다. 그 말씀은 언제나 다윗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그 말씀이 '생명샘'이 될 것이다.
(6) 시편 기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으니 이제부터 끝까지 오로지 여기에 매어달리겠다는 결심을 한다(111,112절). 주의 증거(이는 곧 진리와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그는 주의 증거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을 기대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세우신 언약은 영원한 언약임을 알았으므로 그는 그것을 자신의 '영원한 기업'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언약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겠다고 결심한다. 내가 주의 율례를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주의증거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그 율례의 계약 아래 들어와야 한다.
ⅩⅤ. 안전의 근원 119:113-120
(1)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라는 표현은 다윗이 죄의 싹이 자라지 않을까 하여 몹시 두려워했다는 점을 나타내 주고 있다(113절).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번도 두 마음을 품어 본 일이 없다는 듯은 아니고 다만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 자체를 몹시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단 한번도 두 마음을 품는 일을 묵인하거나 찬성한 저기 없었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말리며 억제하였던 것이다.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그런데 주의 법은 절대로 두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우리가 여호와의 법을 사랑하면 할수록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소행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2) 다윗은 사울이 군사를 풀어 자신을 추적할 때마다 가까운 은신처로 몸을 숨기곤 했었다. 전쟁터에 나갔을 때에는 방패를 사용하여 자기 몸을 보호하였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이야말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참된 '은신처'요, 위험 중에 보호해 주시는 '방패'가 되사 죽음의 수렁에서 생명을 건져 주시고 죄에서 영혼을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점을 고백한다(114절).
(3) 나는 내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리로다(115절). 이는 실로 성자나 군인같은 용감하고 단호한 결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된 용기는 죄를 멀리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본분을 다 하겠다고 굳게 결심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자는 우선 행악자와 어울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한 무리와 어울리는 것은 경건한 생활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행악자를 친구로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시 1:1;엡 5:11).
(4) 다윗은 앞으로도 계속 은혜를 부어 달라고 기도한다. 다윗은 두 번이나 여호와의 풍성한 은혜를 내려 달라고 호소한다.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116절). 나를 붙드소서(117절).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여호와의 백성된 도리를 다 할 수 없으며 주께서 신령한 은혜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언제 죄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으면 우리는 굳건히 서 있지도 못하고, 그가 우리를 옮기지 않으면 긴 행로를 무사히 마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 중에 소망을 두는 자들은 자신들의 기대가 무너지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소망이 부끄럽게 되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5) 악한 무리 곧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다(118-120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을 다스리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무리에게 어떤 벌을 주시는지 살펴보면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께서...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 악인은 원광 속에 섞인 찌끼와 같은 존재이다. 원광을 들여다보면 찌끼도 좋은 금속과 함께 뒤섞여 얼른 구분하기 힘들지만 결국에는 따로 분리해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는 이유는 이들이 '주의 율례에서 떠났으면' 허무한 '궤사'만 꾸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주의 율례를 버리고 부당한 계율을 따름으로써 자신을 속이며 겉으로만 선한 척하여 이웃을 기만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만한 벌을 내리신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진노를 두려워하였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악인들이 여호와의 진노하심으로 인하여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그들을 비웃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행위를 삼가 조심하였다.
ⅩⅥ. 확신의 근원 119:121-128
(1) 다윗은 악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121,122절). 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다윗은 진실로 "내가 언제나 양심적으로 저들의 몫을 지불하였사오며 군대의 힘이나 속임수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훼방한 일이 없나이다"하고 말할 수 있었다. 한편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의 임무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셔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보증이 되어 주시는 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의 섭리는 온 세상에 대하여 우리의 보증이 되실 것이다.
(2) 오랫동안 억압을 받아온 다윗은 여기서 주의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다(123절). 그 당시 그의 심정으로는 주의 구원이 너무나 늦게 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로 간절하게 기다려도 주의 구원이 오지 않자 다윗은 어쩌면 영원히 그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젖어 실망에 빠지곤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피곤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지금은 실망을 하게 된다 하여도 때가 이르면 반드시 주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3) 다윗은 여호와의 훈계를 간구하였다.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백성된 자로서 지켜야 할 본분을 가르쳐 주옵소서." 만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앞날의 소망보다도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상황이라면 성경을 보면서도 예언보다는 훈계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탄원을 한다. 나는 주의 종이오니. "그리하오니 주의 이름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내게 가르치시고' 그 일을 감당해 낼 능력도 주옵소서."
(4) 다윗은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이 너무도 뻔뻔스럽게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것을 보고 크게 탄식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사 참된 영광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기를 호소하였다.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이니이다. "무신론자와 이단자들의 주장을 유효적절하게 반박하여 하늘을 향해 함부로 놀리던 그 입을 침묵시키기 위해 일하실 때가 되었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해 일할 때니이다'로 읽기도 한다. 원문에도 이러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곧 지금이,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자기에서 신앙과 도덕의 타락에 맞서서 여호와 편에 서야 할 때라는 뜻이다.
(5) 다윗은 자기가 여호와의 율법과 그 말씀을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다(127,128절). 이 시편 전반에 걸쳐 이와 같은 비슷한 고백은 몇번이나 나온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재물보다도 모든 면에서 훨씬 귀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혼이 강건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을 위해 정금으로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 주었던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의 재물로 인하여 실패했을 때에도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붙잡아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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ⅩⅦ. 말씀의 인도 119:129-136
(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하늘 나라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하도록 인도해 준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랑과 은혜의 증거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말씀의 문체가 지닌 장엄함과 순결하고 깨끗한 내용 및 각 부분이 완전히 조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양심에 영향을 끼쳐 가책을 느끼게 하거나 새로운 위로를 얻게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어리석은 무리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130절). '주의 말씀'은 열기만 하여도 빛이 비추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성경을 펴놓고 읽기 시작하면 그 첫 구절에서부터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의문점이 풀리면서 차츰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함과 동시에 만물이 움직이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학자들 중에는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구약을 더욱 밝히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땅 위의 생명과 영생에 대해 깨닫게 해주는 신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기 때문에 이 세상의 나그네된 무리는 비록 우둔하다 할지라도 절대 말씀을 떠나 방황하려 하지는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과 같이 혹심한 고난을 겪으시면서 말할 수 없이 고난을 겪으시면서 말할 수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은혜를 사모하셨다.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131절). 이 표현은 마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방안에서 견디다 못해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신선한 공기를 갈망하듯이 여호와의 은혜를 사모하였다는 점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4) 다윗은 자신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여호와께 간청한다(132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의 간구는 얼마나 겸손한가. 다윗은 하나님의 손을 들어 역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부드럽게 웃으시는 모습을 구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다만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랑하옵나이다. 이렇게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셨었으니 내게도 여호와의 긍휼을 허락하옵소서." 여호와께서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긍휼을 허락하시면 그밖에 아무 것도 더 바랄 필요가 없다(고전 10:13).
(5) 앞 구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간구했었다.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선하신 역사를 일으켜 주시기를 간구한다(133절).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늘 옳은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 그 길에서 걷는 나의 발걸음이 주의 은혜로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죄악에 이끌려 다니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6)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로 하여금 평안하고 조용한 삶을 영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134절). 결국 이 말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려는 자들 때문에 불안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지켜 달라는 뜻이다. "원수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법도를 더욱 즐거히 지키겠나이다."
다윗은 다른 곳에서 가끔 사용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한다(135절). 그는 한 나라의 왕이면서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몹시 영광스럽게 여겼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총애를 받으려고 언제나 애를 썼다. 다윗은 그것이 곧 행복이요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나를 받아 주소서. 그리고 나로 하여금 주의 종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온 세상이 나를 대적하여도 오직 주 여호와께서 따뜻한 미소로 맞아 주실 것을 내가 믿나이다."
(7) '눈물이 시냇물같이 흘렀나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윗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앞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자신을 따뜻이 위로해 주셔야 한다고 간청하였었다(135절). 여기서 자기는 여호와의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고 또한 그것은 몹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한다. 왜냐하면 다윗은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사 61:3).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혹심한 고난을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치를 당하시는 것이 슬퍼 눈물을 시냇물같이 흘렀다. 다시 말해서 주위에 있는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 버렸으므로'(139절) 슬퍼하였던 것이다.
ⅩⅧ. 주의 말씀의 속성 119:137-144
(1)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노래한다(137,138절).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의 원칙에 의거하여 뜻하신 섭리대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의 피조물들에게 단 한번도 부당한 처사를 행하시지도 않으셨거니와 그렇게 하실 수도 없으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칙에 합당하게 행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들이 율법에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 본받기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과, 주위에 모든 사람들에게 의롭게 행동하고 하늘과 땅에서 맺은 언약에 충실하여 어김이 없을 것을 요구하고 계시다.
(2)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139절) 하는 표현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몹시 경멸하는 악인들의 속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을 잊어 버린 자들을 자기의 '대적'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 대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악인들의 경건치 못한 생활을 볼 때에 그의 '열성'은 그를 '소멸하였다'. 죄에 반대하는 열성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악과 맞서게 하며 적어도 날마다 더욱 충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3) 선한 사람 곧 하나님의 종이 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140절). 왜냐하면 그 말씀으로 인하여 주인의 뜻을 깨닫고 주인의 사업에 힘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여 크게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 가운데 대부분은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던 자들이다. 다윗은 '미천하여 멸시와 천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 나갔다(141절). 그는 그렇게 멸시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신앙이 시험을 당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곧 '주의 법'을 의미하고 주의 법은 곧 진리이다(142절). 인간은 사고의 능력을 지닌 존재이므로 진리로 다스림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만일 원칙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못된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창조주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시더라도 그것을 마땅히 지켜야 할 법으로 여겨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로 이해하게 하며 우리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게 하는 진리가 있다. 그런데 인간의 정욕으로 인하여 진리의 권위가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의 의지를 묶어 복종케 할 율법이 있는 것이다.
(6)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적대감을 품고 자기를 대적하는 한 비참하고 가련한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143,144절).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밖에는 무서운 환난이 닥쳤고 안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기쁨과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다. 옛날 성도들도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말씀 안에서 큰 기쁨을 얻곤 했었다(고후 1:5). 다윗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시를 보여주소서"라고 하지 않고 오로지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라고 외쳤다.
ⅩⅨ. 힘의 근원 119:145-152
(1) 다윗은 훌륭한 기도를 드린다(145,146절). 여호와여 내가 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이와 같이 마음과 뜻을 다해 오로지 기도에 힘을 쏟다 보면 주변의 일이 순조롭게 풀려 나간다고 느끼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였다. 어린아이가 무슨 문제가 생겨 괴로울 때에 그 아버지 이외에 누구에게 가겠는가? 다윗이 가장 절실하게 기도한 것은 바로 구원의 문제였다. 나를 구원하소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50:23)과 '구원에 가까운 것'(히 6:9) 이외에 다른 문제로 기도할 필요가 없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은 다윗은 즉시 응답을 얻지 못할 경우에도 계속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147,148절).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니. "그 말씀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이다." 사람이 주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많이 읽고 더욱더 묵상에 힘쓸수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점점 나아질 것이다.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읽으면서 동시에 그 말씀에 대해 묵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매일을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다윗은 만사를 제쳐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아침마다 기도하는 일로 시작한다면 하루 온종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 스스로 조심하게 될 것이다. 다윗은 야경이 다 가기 전에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라도 돌아누어 다시 잠을 청하지 않고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3)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와 위로를 베풀어 달라고 엄숙히 간청한다(149절). 여호와여 나를 살리소서. 주의 선하심으로 나를 일깨우사 힘을 얻게 하시고 활발하고 용기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주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소서."
(4) 다윗은 늘 원수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았다. 원수들은 바짝 뒤쫓아 와서 거의 그를 잡을 만한 거리에 있었다. 악을 좇는 자가 가까이 왔사오니(150절). 그들은 벌써 다윗의 바로 뒤에 와 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간혹 핍박하는 자를 들어 그의 백성을 덮치게 함으로써 고난을 겪게 하신다. 따라서 다윗도 '나의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는 말을 남겼던 것이다(삼상 20:3). 환난이 가까우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계시고, 어떠한 환난도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지 못한다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큰 즐거움이 된다. 하나님은 아득히 먼 곳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고 항상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분이다(신 4:7).
(5) 이 구절은 바로 앞부분에 나왔던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하는 고백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이다(152절). 여기서 모든 계명이라 함은 언약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자자손손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호와의 언약은 '영원히 세우신 것'으로서 비록 천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변함이 없이 굳건하게 서있을 것이라고 하였다(고후 1:20). 다윗은 일찍이 어린 나이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평생을 바쳐 구할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XⅩ. 구원의 근원 119:153-160
(1)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라고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권눙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건지소서, 나를 구속하사' 하고 기도하였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의 의로움을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나의 원한을 펴시고 나를 주의 백성으로 삼으소서"하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와 함께 할 것을 바라며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호와여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를 위로하사 용기를 잃지 말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였다.
(2) 평소 유복한 생활을 할 동안에는 여호와의 규례를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고난이 닥쳤을 때 갑자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면서 어떻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155절).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영원한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구세주를 그 마음에서 억지로 밀어내면서 구원도 밀어낸 것이다. 그 순간부터 구원은 저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멀리 떨어져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죄를 고집하면 할수록 구원은 점점 더 멀어져 갈 뿐이다.
(3) 바로 앞부분에서 다윗은 악한 자들이 비참한 현실에 처하였다는 점에 대해 서술했었다(155절). 그렇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선하신 분이시다. 만약에 그들이 주의 크신 긍휼을 만홀히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크신 긍휼을 베푸사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156절).
(4) 다윗은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적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며 날마다 잘되기를 기도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다윗이 모든 사람들 위에 승리자로 서기를 원하였다. 이런 점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교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대적들도 많고 핍박자들도 많다(157절).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대적하고 핍박을 해온다 하여도 꿋꿋한 자세로 자기의 도리를 지켜 행하기만 하면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5) 다윗은 '궤사한 자를 보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하여 사단의 뜻을 이루어 주는 도구가 되며, 세상을 타락케 하고 자기의 영혼을 멸망의 수렁으로 밀어 놓는 것이 안타까와 슬퍼하였다(158절).
(6)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주의 법도를 얼마나 잘 지켰는지 보옵소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내가 주의 법도 사랑함을 보옵소서'라고 호소할 뿐이다(159절). 주의 법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이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7)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 마음에 위로를 얻는다(160절).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모습을 보이신 이래로 말씀하셨던 것은 모두 진리이며 믿을 만한 것들이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당성을 얻은 것이 아니다.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진리오니'(똑같은 표현을 이렇게 해석하는 자들도 있다) 그 나라 또한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 나라는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ⅩXI. 화평의 근원 119:161-168
(1) 예로부터 선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남에게 핍박을 당하곤 했었다. 그런데 다윗과 같이 방백들이 핍박을 한다면 문제가 좀 더 심각해진다. 방백들이란 군대를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률가지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에 정의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서 핍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을 가지고 오히려 그 이름을 대적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윗이 먼저 그들의 신경을 건드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자신들을 두려워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명령대로 행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이 세상 사람이 모두 나를 대적하고 미워하여도 오로지 주 여호와를 섬기며 즐거워하기로 결심을 하였나이다"(161절).
(2) 앞 구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주의 말씀을 경외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분명히 밝혀 놓는다(162절).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일수록 그 속에서 많은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3) 사랑과 미움이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다. 만약 이 두 가지 감정을 제대로 다스를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자연히 잘 해결된다. 이 구절을 보면 다윗이야말로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63절).
1) 다윗은 근본적으로 죄악을 싫어하던 사람이다. 심지어 마음속으로 죄를 생각만 하는 것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곤 했었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이것은 모든 죄악에 대해 다 적용되는 말이다. 위선도 거짓이요, 잘못된 교리도 거짓이며 심지어 신앙 생활을 저버리는 일도 거짓이다. 선한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한두 마디 거짓말을 하는 것조차도 죄로 여기고 싫어한다.
2)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법이 온전한 진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4)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 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리거나 매일 한두 번 정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다윗은 적어도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였다(164절). 우리도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해야 하며, 그 외의 모든 일에도 먼저 감사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법도를 정하시고 언약을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 간혹 큰 역경을 처하게 하시는데 그러한 때에도 그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가 더 좋은 열매를 맺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마땅히 찬양을 돌려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행하는 선한 사람들은 하늘로서 내려오는 거룩한 평안을 누린다(165절). 아무도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는 없다. 물론 이들도 때때로 큰 환난을 당하곤 하지만 그 마음에 평강의 빛이 가득하니 언제나 즐겁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더라도 일체 불평을 말하지 않으며, 있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6) 이 구절은 성도가 마땅히 지켜야 할 바 본분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166절).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어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하는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지켜야 할 법도로 삼는 것이 성도의 의무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둘을 묶어 하나로 만드셨으니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의 계명을 행하려 들지 않은 한 하나님의 구원을 바랄 수도 없다는 뜻이다(계 22:14).
(7)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은 온전하고 지극한 것이라야 한다(167,168절). 이 사랑은 넉넉히 육체의 정욕을 억누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사랑임에 틀림없다. 신앙 생활에 있어 육신의 예배는 전혀 쓸모가 없다. 우리는 마음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ⅩXII. 축복을 바라는 기도 119:169-176
(1)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마치 남의 집 문가에 서서 자선을 베풀기만 기다리는 걸인과 같은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부르짖음'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까이 이르는지, 그리고 자신의 '간구'가 주의 앞에 달하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고 있다(169,170절). 즉 믿고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얻고, 죄가 기도를 가로막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자신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관심을 기울여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2) 다윗은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사 자신을 위해 그 '율례를' 가르쳐 주실 것을 기대한다(171절). 이 노래 전반에 걸쳐 비슷한 표현을 여러번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소망을 나타내다가, 이제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이미 이루어진 일로 여기는 듯이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지니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열심을 내게 되었다.
(3)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이 되게 하려고 열심을 내게 된다(172절).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말이 필요할 때 입을 다물거나 악한 의도를 품고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을 대화의 주제로 삼아 영혼의 양식을 얻고, 때때로 듣는 사람들로 주의 은혜를 맛보게 해야 한다.
(4)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다(173,174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그는 일찍이 자기를 지으신 손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 소에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도우시지 않는데 어떤 피조물이 도울 수 있겠는가. 다윗은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들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셔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1) 무엇보다도 자신은 신중하게 생각하여 신앙 생활을 하기로 정하였다는 점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
2) 자신의 마음이 하늘에 거한다는 점이다.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3) 마지막으로, 자기가성도의 본분을 즐겨 행하였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5) 이 구절은 "여호와여 나로 살게 하옵시면 반목과 투쟁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힘쓰겠나이다"라는 뜻이다(175절).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거룩하게 구별하사 위로해달라는 뜻에서 '내 혼을 살게 하소서'라고 호소하였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사 위로해 주시면 그 혼이 살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호소하면서, 다윗은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고 언약을 한다.
(6)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나 믿음이 약하여 곧잘 넘어지는 성도는 모두 잃어버린 양떼와 같다고 하였다(눅 15:4;마 18:12,13). 우리는 양과 같이 우둔한 존재라서 한 번 길을 잃어버리고 나면 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기 일쑤이다. 다윗은 참으로 세심하게 양떼를 돌보던 목자였기 때문에 "여호와여 길 잃은 양이 있을 때마다 주의 종이 열심히 찾았나이다. 이제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주의 종을 찾으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다. 이 기도는 또한 "여호와여 내가 주의 종이라는 점을 인정해 주옵소서. 비록 길을 잃었다고는 하나, 주의 종이라는 증표를 가지고 있나이다" 하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이렇게 긴 노래를 마무리하면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릴 뿐이라는 내용의 고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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