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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시 116편 / 구원받은 자의 감사와 보답

by 은총가득 2022. 3. 19.

 

 

구원받은 자의 감사와 보답[시 116편]

[내용개요]
본시는 그 내용으로 볼 때 압살롬의 반란을 퍼하던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삼하16장에 나오는 내용이 본장의 내용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고난 속에 빠져 있는 다윗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본시에서 다윗은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호소하며(1-11절),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나타내고 있다(12-19절). 이러한 다윗의 찬양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신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강 해]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비하셔서 환난 중에 부르짖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셨음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을 증거하면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1 . 기도를 들으시는 자비하신 하나님

 

1)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시인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셨으므로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기도 응답의 체험은 기도의 능력을 깨닫게 함으로 더욱 기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한 기도 응답은 기도의 능력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더 깊은 기도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도의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영혼의 호흡인 기도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갈급한 심령이 되게 합니다. 이러한 기도의 맛을 안 시인은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고백만 것입니다.
a. 부르짖음이 주의 귀에 들림(시18:6)
b.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시31:22)

 

2) 환난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
시인은 자신이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를 회상합니다. 그때에 사망의 줄이 자신을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자신에게 미쳤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에게 닥친 환난과 슬픔이 마치 죽음과도 같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때에 시인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자신의 영혼을 건져 달라고 했는데 이와 같이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시인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둔 절규요, 구원에의 호소였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올무에 걸려 부르짖는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생명을 건 부르짖음이었을 것입니다.
a. 불의의 창수가 두렵게 함(시18:4)
b.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히5:7)

 

3)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자비하심을 증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어리석은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과거에 자신이 죽음과 같은 환난과 슬픔에 처했을 때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었음을 회상함은 신앙 생활의 바른 자세로서 모든 성도가 본받을 점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에 하나짐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구속의 은혜와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기억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여 날마다 구원의 기쁨과 환희 속에서 활발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a. 인자함이 후하심(시86:5)
b. 긍휼에 풍성하심(엡2:4)

 

4) 구원받은 자의 평안함
시인은 자신의 영혼에게 평안함에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평안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시는 축복으로서의 참된 평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으면 이 평안 즉 안식에 거하게 됩니다. 시인은 자신이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할 일은 생명 있는 동안에 여호와 앞에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행한다는 말은 여호와의 법에 따라 순종하며 행함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하나님께 대한 찬송은 입술의 열매로 드려질 뿐 아니라 삶 속에서 행함의 열매도 드려져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입술의 찬송은 하나님 앞에서 위선의 가증한 행위입니다.
·태평과 안락(렘30:10)

 

2. 구원받은 자의 삶과 죽음

 

1) 여호와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인은 자신이 믿는 고로 말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큰 곤란을 당하였으나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이 보답할 길이 없음을 고백함과 동시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을 모색하던 중에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자신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겠다고 다짐합니다. 즉 시인은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하며 그 이름을 전파하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사는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과 다짐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모범이 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찬송과 행위의 열매로 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삶을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산 제사요 영적 예배라고 표현하였습니다(참조, 롬12:1-2).
a. 몸으로 영광을 돌려야 함(고전6:20)
b. 주를 위해 살아야 함(고후5:15)

 

2)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성도의 죽음
시인은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진술합니다. 이는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므로 함부로 악한 자들의 손에 죽게 하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설사 죽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값지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악한 세력에 의한 성도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참조, 롬14:8).
a. 주께서 의인을 보호하심(시37:32-33)
b.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주(계1:18)

 

3) 여호와의 진실한 종
시인은 여호와께 자신이 진실로 주의 종임을 고백하면 주께서 자신의 결박을 푸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께서 자신을 죽음과 같은 위기에서 구원해 주셨으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시인의 이러한 고백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아 그에게 소유된 자인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가 되심을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고백하며 그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a.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심(시107:14)
b. 죄에서 해방됨(롬6:22)

 

 

 

 

3. 나의 서원을 여호와에 갚을지라

 

1)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
시인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의 삶은 감사의 자세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은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하지 못한 자입니다. 성도의 감사는 구원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어 영원한 천국에 거할 패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일로 영원 세계를 살아야 합니다.
a. 감사로 주께 제사를 드림(시50:14)
b.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함(살전5:18)

 

2) 서원을 여호와께 갚음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세례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겠다는 내용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서원을 지킴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을 모든 사람 앞에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지키는 자를 기뻐하시며 영육간에 강건하고 형통한 복을 내리십니다.
a. 경건한 자들 앞에서 갚음(시22:25)
b. 지체치 아니하고 갚음(전5:4)

 

결론
성도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를 잊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그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좇아 살며 하나님에 서원하였던 것을 갚는 것입니다.


[단어해설]
1절. 들으시므로. 상대방의 사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듣는 것을 뜻한다.

2절. 기도. 원어는 위기의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의미한다.

3절. 사망의 줄. 원어는 '줄' 외에도 '무리'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속박이나 굴레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된다. 여기서는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사망의 속박을 의미한다. 나를 두르고. 원어는 고난과 고통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4절. 구하오니. '슬퍼하다' 또는 '애곡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고난을 하소연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5절. 은혜로우시며. 원어<@WNj':하눈>은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간구를 듣고 도우는 행위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을 표현할 때만 사용된다.

6절. 어리석은 자. 경험이 부족하고 지혜가 없어 아무 말에나 속아 넘어가는 자를 가리킨다.

7절. 평안함. '휴식' 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여기서는 하나님만이 참된 평안의 처소임을 의미한다.

11절. 거짓말쟁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를 말한다.
12절. 모든 은혜. 어떤 행위에 대해 그 이상으로 베풀고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13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공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15절. 성도의 죽는 것. 성도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고난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16절. 결박. 앞에서 언급한 사망의 줄을 뜻한다.


[신학주제]


고난 가운데서의 기도.

인간은 누구나 참혹한 고난을 경험한다. 본장에서도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달아난 경우가 나타난다. 이러한 다윗의 고난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 그는 그 섭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고난 가운데서의 기도는 편안할 때 하는 기도와는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윗은 개인적인 나아가 공동체적인 위기에 직면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의인 욥도 하나님께 이유도 알 수 없는 고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도 않았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실토하기까지 했었다(참조, 욥42:3). 본장에 나오는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쫓겨 지금 크나큰 환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다윗의 기도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이나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간절한 기도로 이해될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셨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입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먼저 흘러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난은 개인이나 집단의 신앙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나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크다.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은 사단이나 인간이 가하는 허무한 고난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고난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연적인 것이다. 다윗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알게 되었고 이것은 언약을 성실히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한 놀라운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영적교훈]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고난을 결코 방관하지 아니하신다. 자신의 고난을 알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며 그 신앙은 택한 자를 결정 짓는 유일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들은 자신의 주위에 일어난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려고 애쓰며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자들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모든 고난들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나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욥과 같이 고난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고 배나 되는 복을 얻는 자가 될 것이다.

 

 

 

 

시편 116편

Ⅰ. 간구를 들으사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116:1-9

(1) 본문은 다윗의 일생과 그의 경건한 결심들을 소개하고 있다(1,2절). 그러므로 본문은 시편의 전반적인 내용을 축약해 놓았다거나 기본적인 사상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도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미천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스스로 낮아지셨다는 사실을 잘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고개를 숙여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시편은 약간은 갑작스럽게,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다(18:1도 비슷한 경우이다). 다윗이 이 시편을, 크고 첫째되는 계명에 순종하는 이 말로 시작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터인데 다른 곳에서 길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 하여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기도를 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히브리 역본에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로 되어 있다).

 

(2) 다윗의 일생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서 특별히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여기서 다윗이 일생 동안 어떤 경험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다윗은 한때 큰 곤경에 처하여 탄식하였던 일이 있었다(3절).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이 표현은 슬픔이 극에 달하여 마치 죽을 것 같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괴로웠던지 '음부의 고통'이라는 비유적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다윗은 신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였다(4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이란 표현은 다윗의 간구하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 준다. 다음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은 지극히 짧으면서도 상황에 부합하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나를 건지소서. "죽음과 죄의 고통에서 속히 구해 주옵소서. 그 고통을 인하여 내 영혼은 죽을 듯 하나이다." 다윗은 그 동안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라는 표현으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6절).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보존하신다(여기서 어리석다 함은 신실하며 교활한 짓을 하지 못하고 자기 믿는 바에 충실하게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한다'는 고백을 한 바울을 하나님이 보존하신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이제 다윗의 입을 통해 그가 경험했던 일들을 알아 보도록 하자.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불행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때 그 상황에서 잘 견디면 앞날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 주셨도다. 또한 바라는 바 소망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셨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도 믿음을 잃지 않게끔 인내심을 허락해 주신 어리석은 사람이요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어'주신 곤고한 자로다"(34:6).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은 은혜를 베푸신다. 첫째,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만일 사망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건짐을 입는 경험을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뼛속 깊이 깨달을 것이다. 각 사람의 영혼이 영적인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다. 이미 거룩한 세계에 들어간 영혼은 물론이요 장차 그 대열에 참여케 될 자들도 이 사실을 기꺼이 인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그 백성의 '눈을 눈물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견디기 힘든 슬픔에 빠졌을 때 그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는 뜻이다. 셋째, 그 '발을 넘어짐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하였다.

 

죄를 짓고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해주심으로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7절).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성도의 영혼을 반가이 맞으실 것이니 혹시 자기가 박대받지 않을까 하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영혼의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다. 오로지 그 품에 안기고 난 후에야 비로소 '편히 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 품안에서 기쁨을 누리자.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주시는 안식을 받아 누리자(마 11:28). 다윗은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 앞에 드려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9절).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이 구절은 자기의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생존 세계'라 함은 누구든지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은혜의 땅이며, 경작해야만 하는 기회의 땅을 뜻한다.

 

Ⅱ. 헌신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함 116:10-19

칠십인역을 비롯한 몇몇의 고대 역본에 의하면 이 부분은 앞부분과 독립되어 하나의 완전한 노래를 이루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15절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이 부분을 가리켜 "순교자의 노래"라 하기도 한다. 다윗은 여기서 세가지 고백을 한다.

(1)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다(10절).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훗날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이름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자신과 동역자들의 입장을 나타냈다(고후 4:13).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섭리하심을 믿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해 본 일도 없다. 특별히 사무엘을 통해서 양치는 목동의 지팡이를 왕의 홀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다윗은 믿음으로 그 많은 고난을 견뎌냈으며 기도와 찬송으로 여호와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뢰곤 하였다(4,12절).

 

(2) 또한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고 있다(10,11절).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경겁 중에'라는 표현을 두고 어떤 이들은 '놀랐을 때에'로 받으들이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쫓겨다니던 날에'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사울이 다윗을 쫓던 때를 말한다. 당시에 사울과 그 신하들은 물론이요 당연히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친구들까지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자 다윗은 그들을 가리켜 거짓말쟁이라고 하였었다. 누구든지 놀라서 허둥대다가 잘못 실언한 것이 있거든 회개를 통해서 취소해야 한다(물론 다윗도 그렇게 했었다, 31:22).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3)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고백하였다(12절 이하). 하나님은 두려움에 떨던 다윗에게 보다 좋은 선물을 주셨으며 환난에 빠진 그를 구하시는 은혜도 베푸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다윗은 '모든 은혜'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긍휼하심을 잘 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많은 은혜에 대한 대가로 적당한 보답을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침내 다윗은 마음을 다하여 경건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하였다(13,17절).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즉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율법에 명시된 전제를 드리고 믿음의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즐거워하겠나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원의 잔'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구원의 날을 기억하면서 마셔야 할 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제 어떤 잔을 허락하신다 하여도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마시겠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영접하겠나이다." 똑같은 내용이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나온다(요 18:11).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구든지 먼저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롬 12:1;고후 8:5). 그렇게 한 뒤에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놓아 선한 사업에 사용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야 한다. 또한 이렇듯 아무 가치도 없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며 그 백성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귀중히 보시사 그의 죽음으로 대적자들을 만족시키지 않으셨다.

 

한때 무서운 위험에 빠져 죽음의 손길을 느끼던 다윗도 이 진리를 믿고 위로를 얻었다. 더욱이 체험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고 나자 다윗은 그 말씀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었다. 앞서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고 외쳤던 다윗은 여기서 번제와 희생제보다 뛰어난 자기 자신을 드린다(16절).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이것은 그렇게되기를 스스로 선택하여 결심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성도'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우를 언급할 때에는 '나는 진실로 주의 성도'라 하지 않고 굳이 '주의 종'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종된 것을 더 영광스러워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는 길은 두가지이다. 첫째, 나면서부터 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여호와여 내 생명은 주의 집에서 태어났나이다. '주의 여종의 아들'이므로 곧 주의 종이 되나이다." 경건한 생활을 하는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비록 우리에게 의무를 지워 주기는 하지만 실로 큰 은혜이며 또 이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이유가 된다.

 

둘째, 구속함을 받아 종이 되는 길도 있다. 하나님은 죄악의 포로가 된 자들을 구원하사 종으로 삼아 주셨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 되었나이다. 주의 종은 선한 사업에 힘쓸 의무가 있으나 한편으로 여호와의 보호하심을 받을 자격도 지니나이다." 이는 결국 주께서 결박을 푸셨으니 이제 그 줄로 더 단단히 주께 매시라는 것을 뜻한다. 다윗은 자기가 서원한 것과 그 외에 다른 약속을 신실히 지켜 선을 이룰 것을 결심하였다.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과 같다. 경솔하게 서원을 하고 나서 지키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서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다윗은 자신의 서원을 '예루살렘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 정에서' 갚으려 하였다. 이는 자신의 헌신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함(시 116편)

 

[1-4절]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

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혹은 ‘고통’]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고난 중에 그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는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며 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시편 저자는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사망의 고통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였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기 때문에 평생 그에게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기도는 성도의 의무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표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에게 기도할 것이며 그에게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일 것이다. 또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기도 하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의 모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세상을 사는 자이다.

 

[5-8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시고 도덕적이시다. 그는 죄를 미워하시고 노하시지만,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며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속성, 특히 그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보존하신다. 본문의 ‘어리석은 자’라는 원어(페사임)는 ‘어리석은 자’라는 뜻도 있지만, ‘단순한 자(the simple), 순진한 자’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단순한 자 혹은 순진한 자는 악의 유혹에도 쉽게 빠지며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진한 자를 지키신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라고 말한다. 그가 고난 중에서 비천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다.

 

시편 저자는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라고 말한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복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20:21). 사도들은 서신들에서 성도들에게 항상 평안을 기원하였다(롬 1:7; 고전 1:2; 벧전 1:2; 벧후 1:2). 성도는 고난 중에 평안을 잠시 잃기도 하지만, 즉시 평안을 회복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후대하시고 그 영혼을 사망에서, 그 눈을 눈물에서, 그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시기 때문이다.

 

[9-14절] 내가 생존 세계[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장이[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편 저자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곧 경건이다. 그것이 말씀과 기도의 생활이며 회개와 순종의 생활이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구원을 체험했으므로 이런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한다. 그가 큰 곤란을 당했고 경겁 중에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고난에서 건져주셨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말한다.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비교할 만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편 저자는 그 작은 보답으로서 그가 체험한 구원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고 찬송하며 영광을 돌린다. 또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개적으로 그 서원을 갚겠다고 말한다. 서원은 환난 날에 하는 약속과 결심이다.

 

[15-19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 앞에서 귀하도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殿) 정(庭)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시편 저자는 “성도의 죽음은 여호와 앞에서 귀하도다”라고 증거한다. 그는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는 지금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았고 죽음을 겁내지 않고 있다. 성도의 죽음은 짐승의 죽음과 다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귀하다. 그것은 결코 슬프거나 허무한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의 생의 완성이며 결산이며 열매이다. 성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간 후에 죽음을 맞는다. 이 세상 사는 동안 그가 행한 선행은 좋은 상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죽음은 특히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하는 사건이다.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조금 참으면, 그는 천국에서 깰 것이며, 천사들은 그의 입성(入城)을 환영할 것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라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공언하며 고백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결박을 푸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결박, 불행의 결박, 사망의 결박을 풀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사함과 의, 평안과 기쁨, 영생을 주셨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신 구원이다.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말한다. 또 그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예루살렘 성전뜰에서 그의 서원을 하나님께 갚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에게 한 서원을 갚을 것이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환난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사모하며 기도하자.

세상에는 사망의 고통이 있고 환난과 슬픔이 있다. 또 성도들은 순진해서 세상 사는 동안 실수하고 실족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건져주실 것이다. 실상, 우리가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며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자.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평생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또 하나님께 서원한 바를 갚아야 한다.우리는 내세와 천국을 확신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답게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를 순종하여 바르게만 살아야 하고,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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